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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바냐에게 임한 말씀 (스바냐 1:1-6)

여기에는 이 책의 표제가 나와 있다.

Ⅰ. 거기에서 이런 것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는 어떤 것이며, 누가 준 것인가? 그 권위는 하늘에서 온 것이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표제는 곧 "여호와의 말씀" 이란 그것이다.

2. 이것을 교회에 전달하는 도구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이름은 "스바냐" 요, 그 뜻은 "여호와의 종" 이란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종" 예언자들에게 자기의 비밀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 가계가 나와 있는 예언자들 중에서 다른 예언자들의 가계는 기껏해야 아버지대(代) 정도를 넘지 않았다. 단지 스가랴만은 예외로 할아버지대까지 나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온 스바냐는 4대(代)를 걸쳐 이름이 나와 있고, 그 최고 위의 인물은 바로 "히스기야"였다. 이것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이름과 그 어원이 같은데(본문의 히스기야는 Hizkiah이요, 왕 히스기야는 Hezekiah로 영문 성경에 되어 있음-역주)(왕하 18:1), 아마 같은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예언자는 그 경건한 군왕의 후손이요 왕가의 후손이므로, 8절에 나와 있듯이 왕손들의 우행을 누구보다 더 잘 비판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이 예언자는 언제 예언했는가?-"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 라고 했다. 그는 선정을 했다. 그는 재위 12년에 가서 보다 적극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일대 개혁 사업을 해나갔다. 그때 그는 우상과 우상 숭배를 파괴시켰다. 그런데 스바냐가 요시야 통치 초기에 예언을 했는지 어떤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만일 그랬다고 하면, 스바냐의 예언이 그 개혁 사업에 중대한,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를 비판했을 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요시야는 그것을 제거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자와 사역자들이 각각 자기 역할을 잘 해 나가는 그 때에는, 개혁 사업도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스바냐의 활동이 요시야 통치 말엽이었다면, 타락한 민족이 전철을 밟아 다시금 악에 빠지는 슬픈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시야가 우상 숭배를 멸했지만, 그 우상 숭배는 바로 그의 시대에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그때는 이미 그 개혁의 열의도 식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자기들은 파멸을 대망한다는 듯이 개혁되기 싫어하는 민족에게 아무리 훌륭한 개혁자들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Ⅱ. 이 책의 내용이 요약되어 나온다. 여기에 나와 있는 일반적 명제는 이렇다.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무서운 파멸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스바냐는 무슨 서론이나 변명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낸다(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파멸이 다가 오고 있는데, 그 파멸은 전면적인 것이요, 전능하신 자가 보내신 것이다. 일단 발언한 것은 실행하실 수 있고, 또 실행하시려고 하시는 바로 그 분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리라. 내가 모든 것을 아울러 멸하리라. 나는 내가 지금까지 베풀어 온 모든 축복을 취소할 것이니, 그들이 그 축복을 업신여겼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니라." 여기에서 작정되어 있는 소멸은

1. 하등 동물까지 제거할 것이다. "내가 짐승들, 하늘의 새와 바다의 고기들을" (3절), 대홍수 때처럼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창 7:23).

동물들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동물을 잘못 사용할 때-그리하여 동물들이 "허무에 종속되고" 말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몹시 노여워하신다는 증거로서 동물들을 멸하심으로써 인간을 벌하시는 것이다. 이 어법은 상징적인 것이므로, 온 세계의 황폐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하늘의 새들처럼 지극히 높이 날던 자들, 자기들은 원수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자긍하던 자들-바다의 고기처럼 자기들을 은밀히 감추고 있으므로 원수의 눈이 자기들을 찾아내지 못하리라고 자처하고 있던 자들-도 역시 원수의 밥이 되어,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2. 인생들을 제거할 것이다. "내가 사람을 멸하리라. 내가 사람들을 지면에서 끊으리라. 그 땅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리라. 내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사람도 멸하리라. 그 땅은 이제 자기의 안식일을 즐길 것이다. 내가 악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끊으리라. 악인들 중에 있던 소수의 선인들도 이 총괄적인 재난에 희생될 것이니라. 그들이 설사 여호와께로부터 단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땅에서 끊쳐지리라."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과 더불어 이 싸움을 싸우고 계신 것이다. 곧 도시나 시골이나, 어디든 하나님이 "자기의 손을 뻗칠" 것이니, 곧 전능과 진노의 손을 뻗칠 것이다. "누가 그의 분노의 권능을 알리요?" (4절)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앞에서 자기를 낮추려 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그 손의 권능에 의해서 할 수 없이 낮아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알려진 유다,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예루살렘이라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이 그 위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3. 모든 악인들과 그들의 악의 이용물이 되던 모든 것을 제거하리라(3절). "내가 거치게 하는 것들과 악인들을 같이 진멸하리라. 즉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 죄와 죄인들을 함께 진멸하리라." 요시야는 거치는(걸림) 돌을 제거해 버렸다. 할 수 있는 한, 우상 숭배의 유물들을 말끔히 제하였고, 이제는 더 이상 우상 숭배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희망했다. 그러나 "악인들은 또 다시 악을 행할 것이요," 개는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다. 그러므로 죄는 고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죄인들을 소멸해 버리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야 "악인들은 그 걸림돌이 되는" 그들의 사악과 "함께"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겔 14:3). 정의의 검(사법)으로는 그러한 일이 불가능했으므로, 이제 전쟁의 검으로 이루어지리라.

소멸되고 말 죄인들이란 어떤 자들인가를 보자.



(1) 단호한 우상 숭배자들, 곧 우상 숭배를 맹세했고, 우상과 결혼한 자들이다. "바알의 남은 자들은 끊어" 지리라 했다. 곧 바알의 성과 그 상을 예배하는 자들이 끊어지리라는 것이다. 요시야는 굉장히 많은 바알 상을 제거시켰다. 그러나 요시야의 정의의 눈을 교묘히 피하고, 그의 칼을 대담하게 피한 자들이 있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이 친히 그 남은 것들까지도 끊어버리실 것이다. 갈대아인들은 바알의 상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요, 그 상을 경배하는 자는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마림" 도 끊어지리라. 요시야의 개혁 사실(史實) 속에서도 이 이름을 보게 된다(왕하 23:5). "그가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였다" 고 했는데, 이 때 나온 단어가 바로 "그마림" 이란 말이다. 이 말의 뜻은 "검은 사람들" 을 뜻하며, 그들이 검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보는 자도 있다. 그것은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 어떤 자는 그들이 제단에 참례할 때 얼굴을 검게 칠했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몰록 신(神)에게 자기 자식들을 바칠 때 사용한 그 검은 불길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본다. 아무튼 그마림 제사장들은 바알의 예배를 직접 주관하던 자들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그마림" 도 "그 제사장과 아울러," 즉 성직자와 일반 신도들이 아울러 "끊쳐지리라." 또 그들의 이름도 멸절되리라고 했다. 그들의 종단도 완전히 파멸되어 잊혀지든가, 혐오스런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타의 우상 숭배자들 중에는, "지붕 위에서 하늘의 일월성진을 예배하는 자들" 이 있었는데, 그들도 멸망당하리라. 그들은 자기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자기들의 우상 숭배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의 지붕 위에서 해와 달과 별을 위해 제물을 드리고 분향을 하던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오, 어떤 상대자도 용납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 혹자는 일월성진이야말로 가장 진귀하고 그럴 듯한 우상 숭배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거룩한 영광을 별들에게 보내는 것은 거룩한 영광을 돌이나 짐승에게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시 하나님을 크게 분노케 하는 일이다. 지상의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이나 지옥의 악마들은 물론이지만, 하늘의 일월성진을 숭배하는 자들도 멸망할 것이다. 방탕한 여자의 죄도 방탕한 남자의 죄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2)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화해시킨다고 생각하는 자들, 그들 사이에 공정을 기하여 중립을 지키고, 여호와의 몰록을 함께 예배하며, "그 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또는 이렇게 읽는 것이 좋겠다) "여호와의 몰록에게" 맹세하는 자들도 망하리라. 그들은 맹세와 계약으로써 하나님과 우상을 모두 섬기겠다고 약속한 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좋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의 국가적 신앙이다. 장구한 역사 동안 그래 왔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그 신앙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록 신을 겸하여 섬기면, 여호와 예배가 더 잘되고, 더 아름답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몰록 예배가 다른 나라에서도 성행하고 있고 여행자들도 그것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신앙에도 큰 매력과 강한 장점이 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아무런 형상도 없는 그런 신을 예배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상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몰록-곧 "왕" 을 뜻한다-이란 상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몰록에게 맹세를 하여," 그 맹세를 지키느라고 그 우상에게 자기들의 자녀를 잡아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응당 용서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그런 과정 속에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속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우상에게로 자기들의 애정과 애모를 분할하여 바치는 자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할 뿐 아니라, 우상 숭배자들과 공동 운명을 떠맡게 되고 만다.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어떤 교제가 가능하겠는가?

어린 아기를 안고 있던 여인은, 아기를 가르자는 제의에 이의를 말하지 않았다. 사탄은 절반만 가져도, 결국에는 전체를 갖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기의 진짜 어머니는 "가르지 마옵소서"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절반만을 가져서는 아무것도 못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쓴물을 내어보내는 샘에서 나온 물은 오랫동안 달지 못한 법이다. 말감에게 맹세한 자들이 여호와께 뭐라고 맹세할 것이 있겠는가?



(3) 하나님을 배신하고 나간 자들은 한 번도 자기들의 이름을 여호와께 바치지 아니했던 자들과 동시에 망하리라(6절).

[1] "여호와를 배반한 자들" 을 내가 멸절하리라.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시작을 잘 했으며, 자기들의 이름을 하나님께 바쳤던 자들이요, 처음에는 그를 경배했으나, 이제는 도망갔고, 빗나갔으며, 우상 숭배에 빠졌고, 자기들이 교육 받아오던 하나님의 그 좋은 길을 버리고, 경멸하는 그런 자들이다. 하나님 예배를 배반한 자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미치는 자들을 하나님은 분명코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버림받은 자들로 여겨질 것이니, 아무런 자비도 기대할 수 없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한 자들," "그를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 아무런 신앙 고백도 하지 않은 자들, 그래서 자기들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들도 결국에는 자기들이 그런 이유로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리라. 아니 그들이 받는 책망은 이런 것이다. 그들은 무신론적이요 부주의한 자들이니,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확실히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 가치를 지니지 못한 자들이다.

 

1:2 없음.

 

1:3 없음.

 

1:4 없음.

 

1:5 없음.

 

1:6 없음.

 

1:7

심판의 예고 (스바냐 1:7-13)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벌하기 위해 곧 오리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충고되고 있다. 그의 "임재" 는 정당한 복수자로서의 임재요, 그의 날은 그의 심판과 진노의 날인데, 그것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7절).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임재를 선용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계속하여 그 임재를 사라지게 만든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자로 임재하시어, 그들이 그의 은총을 무시한 사실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된다. "여호와의 날" 이 다가 오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날이다. 그래서 저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여기 본문에서는 그날을 그의 "희생의 날," 곧 그가 준비한 희생의 날이라고 했다. 저 건방진 죄인들을 처벌하는 일이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제사)날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침해된 하나님의 영예에 다소 보상이 될 것이다.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바친 자들은 의당 참 하나님께 제물이 되는 것이다.

희생 제사가 있는 날에는 큰 살륙을 해야 한다. 이제 예루살렘에 바로 그런 날이 일어날 것이다. 많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이되, 제단을 위해 바치는 양처럼 아무런 미련없이, 오히려 즐거이 죽이게 될 것이다. "여호와가 많이 죽이리라."

희생 제사의 날에는, 그 제물을 놓고 큰 잔치가 벌어지곤 했었다.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의 주민이 그들의 원수 갈대아인들의 밥이 되고, 그들은 저들을 놓고 큰 잔치를 벌이리라. 이들은 옛부터 하나님이 준비해 두었던 손님들이요, 그들은 실컷 먹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학살로 복수하며, 약탈로 탐심을 채우리라.

이제는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희생 제물로 정해진 자들, 즉 이 심판날에 벌을 받을 자들은 누구이며, 해명을 요구하게끔 된 그 내용은 어떤 사건인가?

1. 주인공들은 왕족들이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았던 고로, 그들의 교만과 허식과 위선에 대해서 그들이 먼저 심문을 받는다(8절).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을 벌하리라." 저들은 자기들에게는 벌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자기들도 높지만 하나님은 자기들보다 더 위에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들과 같은 부류의 자들, 즉 "이방인의 옷" 을 입은 자들, 자기 본국을 경멸하여(아마 그 나라는 옷을 아주 수수하게 입는 것이 관습이었던 것 같다. 야곱의 자손들은 "수수한 사람" 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의복을 입고 나다니기를 좋아하며 외국의 의상 모양을 도입하고는-하나님은 의복에 있어서까지도 그들과는 구별되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건만-그들과 비슷한 모양을 하려고 애썼던 자들은 이제 심판을 받으리라.

" 방백들과 왕자들" 은 국산품 의복을 싫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세마포" 와 "비단" (겔 16:10)을 주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옷감을 구입하기 위해 외국에까지 사람을 보내어야만 했다. 그들은 멀리 외국에 가서 사온 값비싼 옷감이 아니면 만족할 줄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는 서민층에서도 방백들과 왕자들의 행세를 모방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의복을 자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요, 타락의 증좌이다.

2. 고관들과 그들의 하인들이 그 다음으로 심문을 받는다(9절). "그 같은 날에 문턱을 뛰어넘는 자들을 벌하리라." 이 말이 당시에는 너무나 분명히 이해되었을 것이다. 아마 이 말은 그들이 이웃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 같다. 그들은 폭력으로 이웃집에 쳐들어가서 그들의 재산을 징발하느라고 "그 문턱을 뛰어넘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 집이 자기들의 집인양 행동했고, 자기들이 점령하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힘이 미치는 것은 무엇이나 자기들의 것을 삼았다. 그래서 "강포(폭력)와 궤휼(속임수)로" 탈취해온 재물이 "자기 주인들의 집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 그 집을 죄악으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그러나 부당하게 취한 그 재물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주인들을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것-그들이 명령을 받아 행했으므로-으로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임무가 지상의 어느 주인에 대한 우리의 임무보다는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3. 그 다음으로는 교역하는 사람들, 곧 부유한 상인들이 심문을 받으리라. 예루살렘의 변방, "막데스의 주민들" 에게서도 부정이 발각되었다. 그곳은 절구(막데스란 말의 뜻이 그러하다)처럼, 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대였다. 그 곳에는 "금 세공자" 가 살았다(느 3:32). 그리고 상인들도 거주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끊어졌다" (그들이 파산하여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 "은을 나르던 모든 자들이 끊어졌도다." 첫째로는 그들이 나르던 그 은 때문에 약탈자에 의해 죽은 것이다. 은이라는 것이 그들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그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정복자들은 그 부자들을 목표로 삼았고, 그래서 우선 그들을 데려가 버렸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구조된다.

아니면, 본문은 일반적으로 무역의 쇠잔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전체적으로 미칠 파멸의 서곡이었던 것이다. 큰 상인들이 없어지고, 은행이 파산하는 것-이런 일은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남들까지도 파멸시킨다-은 국운이 쇠하였다는 조짐이다.

4. 방심하던 자들, 쾌락의 자식들, 무사안일하게 살던 자들이 그 다음으로 심판을 받으리라(12절). 그들은 그 나라 도처에서 나와서, 그 나라의 본부에 있는 자기들의 자리를, 곧 자기들의 개인 거처를 찾아 안락을 즐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 내어 벌하시리라. "그 때에 내가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을 수색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을 찾아 내고, 그들에게 적당한 벌을 주리라.

이 말씀은, 그들이 죄를 부끄러워해서이든 벌이 무서워서든, 아무튼 몸을 숨길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 멀리 있을 때 달아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수색하리니," 마치 공범자에 의해서 위장하고 숨어있는 악한을 찾아 내듯 수색하리라. 하나님의 손이 "그의 모든 적을 찾아 내리니,"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든지 찾아 내리라. 그래서 그 은밀한 우상 숭배자들을 벌할 뿐 아니라 그 은밀한 쾌락주의자들과 불경한 자들도 처벌하리라. 이들이 바로 본문에 나와 있는 자들이요, 그런 자들을 찾아 내기 위해서 엄밀한 수색작업이 있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 그들의 성질은 쾌락 추구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그늘에 앉아 있다" (우리 성경에는 "찌게같이" 역주). 즉 쾌락에 취해 있고, 재물과 악의를 조장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태평하고 평안하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마치 모압과 같다(렘 48:11). 그들은(모압)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지지 않았도다" 라고 했다. 그들은 "포도주와 독주로 만취되며," 온갖 생각을 잊어버리고는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 (사 56:12)고 말하고 있던 자들이다.

" 그들이 그들의 그늘에 앉아 있다" 는 뜻은 그들이 "자기들의 기름에 잠겼다" 는 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시 17:10).



(2)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신론적이다. 그들은 심히 무절제한 생활을 했으므로,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축복도 저주도, 아무 것도 내리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아무 일도 아니하시리다" 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섭리로써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음을 부정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길흉화복은 운명의 수레바퀴 때문에 오는 것이지, 결코 어떤 현명하고 지극히 높은 통치자의 뜻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부정한다. 그래서 도덕적 상벌을 부정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자기를 섬기는 자들에게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요, 자기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져서 득이 될 것도, 죄를 지어서 손해를 볼 것도 도무지 없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의 욕정의 결과이다. 그들이 그처럼 육욕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그토록 무참한 자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쾌락욕에 의해서 자신들이 스스로 바보가 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욕정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먼저 생각으로,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우리와 같은 분이다" 하는 헛되고 악랄한 마음을 품지 않고는, 자기들의 배를 신으로 삼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리라. 그러므로 그들의 종국은 파멸이라" (빌 3:19).

Ⅱ. 하나님이 이 죄인들을 어떤 파멸로, 어떻게 벌하실 것인가?

1. 하나님은 그들을 침묵케 하시리라(7절).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 하나님은 그들을 강압적으로 침묵케 만들 것이요, 너무나 무섭고 경악스러워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 것이다. 그들은 말을 잃을 것이다. 그들의 죄에 대한 일체의 변명, 곧 그들에게 내린 선고에 대한 이의가 종식될 것이요, 한 마디도 말을 못하게 되리라.

2. "여호와의 희생 날" 이 되었으므로(8절) 하나님이 그들을 "희생 제물로 만드실" 것이다. 즉 그들을 원수의 손에 내어 주며, 그것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얻으리라.

3. 도시와 시골을 온통 통곡 소리로 가득 채우리라(10절). "그 날에 어문(魚門)-그 부근에 고기 연못이 있었거나 고기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에서 곡성이 나리라."

어문은 다윗성에 속한 곳이었다(대하 33:14; 느 3:3). 아마 스가랴 14장 10절에서 말하는 "첫째 문" 과 같은 곳일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뒤이어 나오는 말씀, "제2의 곳에서 부르짖는 소리" 가 나리라는 것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즉 그 "제2의 것" 은 이 첫째 문인 어문 다음에 있는 둘째 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온 예루살렘 성벽에서 경보가 울리리라. 그리고 거기에는 "작은 산에서 나는 크게 무너지는 소리" 가 있을 것이다. 즉 예루살렘 주변에 있던 산에서 나는 큰 소리요, 승전의 침략군이 환호하는 소리이거나 비참한 피해자들이 내는 애곡 소리, 혹은 그 모든 소리가 혼합된 소리를 말할 것이다. 도시의 주민들, 즉 가장 견고한 도성의 주민들도 "부르짖을 것이요" (11절), 그들의 비탄 소리가 그렇게 요란할 것이다.

4. 그들의 모든 소유물은 탈취될 것이다. 그것은 원수들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13절). "그들의 재물," "상품(商品)이 노략될 것이다." 즉 부자들이 노략을 당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집은" 무너져 내리고, "폐허" 가 되리라. "새로" 집을 지은 사람들도 "거기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요," 침략자들이 거기에서 살 것이며, 소유물을 점령하리라. 그리고 "포도나무" 를 심은 자들도 그 "포도주" 를 먹지 못할 것이다. 연약해진 친구들을 위로하는 데에 재산을 쓰는 대신에, 그들은 원수들이 그들의 재산을 탐내기 때문에 결국에는 잃게 되고 말 것이다(신 28:30).

 

1:8 없음.

 

1:9 없음.

 

1:10 없음.

 

1:11 없음.

 

1:12 없음.

 

1:13 없음.

 

1:14

여호와의 큰 날 (스바냐 1:14-18)

여기 본문에 나타나 있는 바, 갈대아인들에 의해서 다가 올 유다와 예루살렘의 파멸을 알리는 경고 이상으로 생동감 있는 것도 없거니와, 그 이상으로 방심한 자들을 일깨워 주기에 적합한 말도 또한 없다. 이 묘사는 시온에 있는 죄인들을 떨게 하기에 족하다-즉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수하시는 날, 그 날이 "여호와의 날" 이라는 말씀이다. 또 그 날을 "여호와의 큰 날(the great day)" 이라 했으니, 심판의 날의 상징이요, 운명적인 날이며, 우리 구주께서 예언하신 예루살렘의 최후 멸망과도 같은 것이다(마 24:27).

Ⅰ. 그런데 그 "여호와의 날" 이 매우 임박했다고 했다. "재앙의 날은 멀리 있도다" 고 말하듯, 그 환상은 "먼 훗날의" 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이 먼 홋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이 예언자는 아주 진지하게, 마치 "불이야! 불이야!" 하면서, 이웃집에 다가 온 위험을 보고 자기 집 식구들을 깨우는 자의 태도와 같이 말한다. "가깝도다! 가깝도다! 지금이야말로 경성할 때로다. 때로 너무 늦어지기 전에 자신의 안전을 구하라." "저주가 자지 않는 때" 에 잠을 자는 자들, 저주가 서두르고 있는 때에 머뭇거리고 있는 자들은 분명 미친 사람들이다.

Ⅱ. 그날은 매우 무서운 날이라고 했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 곧 그날의 요란한 소리만 듣고도-그날이 오면-" 용사들이 거기서 심히 애곡할" 정도로 무섭다. 용사들도 아이처럼 무서워 우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는 자들은 근심하리라. 여호와의 그 큰 날에는 용사들도 바위와 산들에게 자기를 가리워 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헛되도다.

이 날의 도래를 이 예언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가를 보라(15절). 그날은 "진노의 날" 이로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요, 완전한 진노, 극상의 진노의 날이로다. 그날이 죄인들에게는 "고통과 근심" 의 날이로다. 죄인들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평안과 구조를 도무지 찾지 못하리라. 저주받은 자들의 비극은 이제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 속에서 절정에 달하리니,-이것이 그 원인이다-죄인들의 "영혼이 고통과 근심" 을 겪으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분노하심의 결과이다(롬 2:8, 9).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환난과 고통" 의 날이 될 것이요, 온 땅에 "황무함과 파괴함" 의 날이 되리라. 그 비옥하던 땅이 광야로 변하리라. 그날은 "암흑과 비운의 날" 이 되리라. 만사가 비극적으로 보이고, 일말의 위안이나 희망도 찾아보지 못하게 되리라. 사방을 둘러보나, 온통 어두움 뿐이리라. 그날은 "구름과 짙은 흑암의 날" 이리라. 고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위협적인 일이다. 그 짙은 구름은 폭풍을 몰고 오리라.

Ⅲ. 그날은 파괴의 날이라고 했다(16,17절). 이러한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1. 지역의 파멸, 즉 가장 잘 요새화되었던 곳도 파괴되리라. "견고한 성읍을 치는 나팔과 경고" 가 있을 것이요, "높은 망대" 를 무너뜨릴 것이다. 어떤 요새와 성벽이 하나님의 분노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2. 사람들의 파멸(17절).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리리라. 가장 강한 자에도 그리하리라. 그들의 심장과 손이 그들을 저버리리라. 그들은 소경처럼 지향없이 걷을 것이니, 그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악한 자의 길을 걷는 자들이 언젠가는 소경처럼 흑암에 행하고, 의심과 위험 속에서, 아무런 거침이나 위안도 없이 다니다가 마침내는 구렁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잔인한 원수의 손아귀에 넘길 것이요, 그 원수들은 "그들의 피를 티끌처럼 쏟을 것이요," 흥건하게, 미련없이 쏟을 것이며, "그들의 육체" 는 "분뇨" 같이 거름더미에 버려질 것이다.

Ⅳ. 그날의 파멸도 피할 수도 없거니와 전반적인 것이다(18절).

1. 그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소용이 없다. "그들의 은과 금" 도-그들은 재앙의 날을 대비하여 이런 것을 욕심껏 비장해 두었거나, 그러한 시절에도 그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그렇게 방탕하게 지냈을 것이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 예언자도 이러한 사건을 가리키기 위해서 여기에서 인용한 말씀을 이용하고 있다(겔 7:19). 분노의 날에는 재물도 소용없다는 것을 명심하자(잠 11:4). 아니 오히려 재물은 사람의 분을 사며(전 5:13), 하나님의 분노를 오용한다.

2. 도망가거나 숨을 길도 없다.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슨 숨을 곳이라도 있는가? 여호와의 질투의 불길이 어떠하며, 그 힘이 얼마 만한가를 기억하라. 그것이 온 땅을 삼킬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그 앞에 맞설 수 있으랴! 하나님이 일소하리니,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을" -농부가 경작할 때 땅의 구루터기들을 모아서 불태워 없애듯이-" 속히 멸절하리라." 때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죄악된 나라들을 멸절하되, 완전히 멸절시켜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한 파멸은 실효성이 있으며, 완벽하며, 순식간에 일어난다. 하나님이 인내하신다고 죄인들은 조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죄악의 그릇이 가득하게 되면, 하나님의 정의가 발동되어 모든 것을 이기고, 그 뜻을 속히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1:1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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