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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복음적인 약속 (스가랴 13:1-6)

Ⅰ. 그는 십자가의 피로 인하여 모든 죄의 짐을 지고 간다(1절). "그 날에" 즉 복음의 날에, "샘이 열릴 것인데," 그것은 곧 자기의 죄를 깨달아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을 죄의 오염에서 깨끗케 하려고 예비된 것이다. "그 날에," 은혜의 영이 그들에게 자기의 죄를 애통케 하기 위해 부어질 적에, 그들은 희망없는 자들처럼 애통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죄를 용서받을 것이라는 희망과 위로가 가슴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피" 에 의해서 깨끗하게 되며, 평온케 될 것이다(요일 1:7).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의 회개와 용서를 한꺼번에 주도록 들리움을 받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열려진 샘" 은 바로 조금 전에 말한(12:10) 찔림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피와 물" 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며, 또 깨끗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찔림을 당한 그리스도를 쳐다본" 모든 사람들과 그를 찌른 죄를 통애하고 마음에 쓰라림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찔림당한 그리스도를 다시 쳐다보고 그에게서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반석을 치는 것은 주를 기쁘게 한다. 그렇게 되면 그가 우리에게 "생명수의 샘" 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우리는 어떻게 하여 죄에 물들게 되었는가? 우리는 모두 죄에 물들었고, 죄를 지었으므로, 죄가 우리를 더럽혀 놓았다. 죄는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더럽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럽게 만들며,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에 의지하지 못하게 하고, 주와의 교제에 들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의식상으로 부정해져서 성전 밖으로 내쫓김을 당한 자 같이 된 것이다. "다윗 족속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이 "죄" 아래에 있는데, 그 죄는 곧 부정함이다. 진실로 우리 모두는 "부정한 것" 이며, 부정한 자들과 분깃을 같이 해야 마땅하다.

2. 우리는 어떻게 정결케 될 것인가? 보라, 우리를 정결케 하는 샘이 우리를 위하여 열려 있다. 그리하여, 그 샘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그리스도의 피와, 그 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가 새로운 계약 속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그 샘물에는 다함이 없는 충만함이 있다. 하나님께는 충분한 자비가 있고, 그리스도에게는 충분한 공적이 있다. 왜냐하면 가장 큰 죄와 죄인이 용서받는 것은 오직 복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곧 너희가 씻김을 받았느니라" 고 하였다(고전 6:11). 율법 아래에서는 씻는데 필요한 커다란 놋대야와 놋바다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그릇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끝없이 넘쳐나는 샘물이 있다.

(2) "열린 샘" 이다. 이제 누구든지 그 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다윗 족속"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거민" 즉 부자와 위대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에게도 그 샘은 열려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여도 열리어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씨로서의 다윗의 족속이며, 살아 있는 교회의 신도들로서의 예루살렘의 거민들인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은 모두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의 피로 그들의 죄에서 씻김을 받았는데" 그들은 "우리의 하나님에게 왕과 제사장들이 될" 것이다(계 1:5, 6).

Ⅱ. 그는 자기의 은혜의 권능으로, 죄, 심지어 사랑받는 자들의 죄의 권세까지 물리치신다. 이것은 언제까지나 전자에 동반된다. 열린 샘에서 씻김을 받은 자들은, 의롭다 함을 얻듯이, 또한 성결함을 받게 된다. 샘은 찔림을 당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부터 피와 같이 흘러나왔다. 이제 그 날이 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이루어지리라.

1. 우상 숭배는 깨끗이 사라질 것이며, 유대 백성들은 그 우상에게로 이끌렸던 잘못을 실질적으로 치유받게 될 것이다(2절).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으리라" 고 하였다. 조상들의 우상 예배는 한 두 세대 안에 완전히 근절될 것이다. 그 우상에게는 전혀 이름이 붙여지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아무런 존경도 받지 못할 것이다. 약속된 것처럼 "그들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호 2:7).

이리하여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우상과 우상 숭배에 대해서 뿌리 깊은 혐오를 갖게 되었고, 또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회개에서도 이루어졌다. 그 회개로 인하여 그들은 불신앙적인 유대인들처럼 의식법이라는 우상에서부터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영혼이 두 가지의 거대한 우상, 세상과 육체에서 이탈될 적에 그것은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그후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굳게 집착하게 된다.

2. 거짓 예언도 또한 끝장이 나게 될 것이다. "내가 선지자들과 더러운 사귀와 사귀의 지배를 받는 선지자들을 이 땅에서 떠나도록 할 것이라" 고 하셨다. 악마는 "더러운" 영이다. 죄와 부정함은 그로부터 나온다. 악마에게는 자기의 이익을 돕고, 자기의 지시를 따르는 많은 예언자들이 있다. 사귀를 물리치라. 그러면 예언자들은 더 이상 속이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일을 벌이는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러면 더러운 영은 그가 저지르던 악행을 행치 않으리라.

하나님이 거짓 예언자들의 침묵을 작정하셨을 때는, 이 땅에서 더러운 영을 내어쫓으신다. 사귀란 그들 안에서 역사했고, 마음의 면류관을 노리는 하나님의 적수였던 자이다.

백성들이 우상에게 빠졌을 때, 유대의 교회도 역시 거짓 예언자에게 빠지고 말았다. 그 거짓 예언자는 무사태평을 약속함으로써 죄 가운데 있던 그들에게 아첨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그들이 자기의 땅을 정결케 하는 데 열심을 기울이며,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하게 되리라는 약속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축복의 효능으로 인하여 일어날 약속된 변화인 것이다. 그들은 포로기 이후에 거짓 예언자들에 대하는 맹목적인 열심을 통하여 그렇게 되었고, 또한 그러한 성격 때문에 그리스도를 죽음에 처하게 만들었고, 더욱이 그것으로 인하여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일어나 그들을 속였던 것이다" (마 24:11).

다음과 같은 사실이 여기서 예언되었다.



(1) 그 거짓 예언자들은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 대신에 마땅히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3절) 예언자라고 자처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말을 전파할 때는, 그 부모들이, 율법에 따라서, 그것 때문에 그를 찌르는 최초의 행위자가 될 것이다. "만일 너희의 아들이 너희를 몰래 하나님께로부터 유혹하면, 너는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하였다(신 13:6-11).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더 이상의 유혹을 막아야 한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예언할 적에 그를 신임할지라." 우리를 우리의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아주 혐오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마치 "악한 것은 견딜 수" 없는 자처럼 되어야 한다(계 2:2). 또한 하나님과 신성한 것에 대한 거룩한 열심은 우리로 하여금 죄와 두려운 유혹을 증오케 한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자들에게서 가장 큰 유혹이 온다. 그 곳에서, 하와로부터 온 아담의 유혹이나 아내로부터 받은 욥의 유혹같이 우리는 가장 위태한 지경에 몰리게 된다. 또한 그 곳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형제들을 도외시하고," 그의 자녀들도 알지 못하는 레위 사람같이 우리의 열심을 나타낼 가장 큰 찬양의 댓가를 받게 될 것이다(신 33:9). 그러므로 친족이라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와 대립하게 될 때에, 그들을 버리고 증오해야 한다(눅 11:26). 자연스러운 애착들, 심지어 가장 강한 애착마저도 반드시 은혜의 사랑에 의해서 조정되어야 한다.

(2) 거짓 예언자들은 자기들의 죄와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것이며, 자기들의 주장을 꺾게 될 것이다(4절). "예언자들은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반복하지도, 주장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잊게 되고 전혀 말하지 않게 되고 그것을 가졌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게 되기를 바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혜로써 그들의 마음을 깨우치셨고 두려움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그 사건들은 그들의 예언과 엇갈려서 결국 그들은 거짓을 말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예언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경멸과 혐오감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저들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수 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거칠은 의복" 이나 "머리의 관" 을 쓰지 않게 될 것인데, 그것은 마치 참된 예언자들이 엘리야를 모방하거나 또한 쾌락과 환락의 감정을 극복한 증표로 행한 것과도 같았다. 거짓된 자들은 참 예언자의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어리석음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치워버리게 됨으로써, 부주의한 백성들이 더 이상 속거나 기만당하지 않도록 된다. 만일 그것이 겸손한 마음을 솔직하게 가리키는 것이고 그 마음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면, 가장 검소한 옷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만과 야심이 가득찬 마음을 위선적으로 감추고 속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나쁜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로 선하게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보다 더 좋게 보이려고 과장하지는 않도록 해야한다.

[1] 참된 회개자와 같이, 이 거짓된 자가 자기가 속였던 자들을 더 이상 속이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내가 이전에 주장했던 대로 예언자가 아니며, 그 일에 대해서 섭리를 받게 되었거나 성별되지도 아니했고, 그 일을 위하여 가르침을 받거나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예언자의 생도와의 친분도 없었다고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농부이며, 농부의 일을 위하여 교육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예언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소를 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아모스도 원래 그러한 사람이었으나, 후에 가서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암 7:14, 15). 그러나, 이 사기꾼은 결코 그런 부르심을 받지 못하였다. 다른 사람을 속였기 때문에 자신의 고결한 마음씨를 따라서 슬퍼하는 자들은 이제 후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바로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술을 행하던" 자들은 그들이 회개하였을 적에 백성을 속이던 어리석은 "자기들의 행동을 공언했다" (행 19:18).

[2] 그는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일꾼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농부가 될 것이라" 고 하였고, "나는 나 자신을 또다시 나의 소명에 합당하게 할 것이며, 내게 속하지 않은 일들은 간섭치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소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소를 치게 될 것이며, 결코 전도자라고 자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의무에서부터 멀어졌다고 확신하게 되면, 비록 우리에게는 아주 심한 치욕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일에 다시 돌아감으로써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한다.

[3] 그는 모진 훈련을 통하여 잘못을 깨닫도록 하는 그들이 바로 자기의 친구임을 알게 될 것이다(6절).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선지자라고 주장했던 그가 갑자기 그 주장을 버리고 나는 선지자가 아니라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즉, "너의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 자국은 어찜이냐?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이냐? 천벌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네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너는 이러한 것에서 깨닫지 아니했는가? 그것이야말로 너에게 그 지혜를 주는 책망과 징계가 아닌가?"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이다. 즉 "그러하다. 이 상처는 내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를 얽매어 놓고, 미친 사람으로 대하였으며, 그리하여 제 정신이 들게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를 칼로 찌른" 거짓 예언자의 부모들은(3절) 먼저 징계로써 그로 개심케 하려고 한 다음에야 그리했던 것 같다. 불순종하는 아들에게 관한 율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 즉, 부모는 먼저 불효한 아들을 돌로 쳐죽이기 이전 먼저 자식들을 징책해야 한다(신 21:18, 19).

그러나 굴복당하여 죽음의 벌을 받지 않게 되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자기에게 상처를 주고 그럼으로 해서 자기를 경책하였던 자들이 친구요, 진실된 자들이라고 고백할 줄 아는 마음의 솔직함을 가진 자들이었다. "친구의 상처는 신실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잠 27:6).

어떤 주석가들은, 그리스도가 찔림을 당하셨다는 말 다음에 즉시 이것이 언급됨을 주시하면서, 그것은 곧 저 위대한 예언자에 관한 말이지 전에 말한 거짓 예언자에 관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십자가에 매어달을 적에 손에 상처를 받았고, 부활 후에도 그에게는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그는 어떻게 상처가 났는가를 말씀하신다. 즉, 그는 거짓 예언자로서 그 상처를 받으셨다. 대제사장들이 그를 속이는 자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 그의 친구가 되었던 유대인의 집에서 상처를 받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백성에게로 오셨고," 비록 그들이 쓰라린 대적자이었으나, 그는 그들을 자기의 "친구" 라고 부르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유다를 향하여, "친구여, 무엇을 하러 왔느냐?" 라고 말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베드로가 그를 단념시키려 하였을 때에,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대적자" 라고 부른 것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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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수난 예언 (스가랴 13:7-9)

Ⅰ. 여기서의 예언은 찔림을 당하여 열린 샘처럼 되었던 그리스도와 그의 고난에 대한 예언이다. "칼아, 깨어서 나의 목자를 치라" 고 하였다(7절). 이것은, 그 아들이 자진해서 속죄 제물이 되고자 했을 때, 그의 아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자기의 정의의 칼에 명령과 의무를 부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 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셨고,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하였" 기 때문이다(사 53:4, 10).

1.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부르셨는가? "하나님으로서, 그는 나의 짝된 자" 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시되는 것이 찬탈" 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아버지" 는 "하나" 이다. 그는 마치 영원으로부터 그의 곁에 있고, 그와 더불어 있었고, 인간 구원 역사에서 그의 선택된 자이며, 그에게서 하나님이 기쁨을 얻게 된다. 그들 사이에는 화평의 권면이 오갔다. "중보자로서, 그는 나의 목자, 곧 무리를 먹이는 책임을 맡은 크고 선하신 목자" 라고 하였다(11:7). 그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목자인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칼아 깨어서, 그를 치라" 고 하였다. 만일 그가 희생의 제물이 되려면, 그는 반드시 죽음을 당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의 피를 흘리지 아니하면 결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목자같이 여겨 그를 찌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목자같이 그를 찌를 것인데(3절과 비교하라), 그것은 그가 "그의 피" 로 "하나님의 양떼를 사셨기" 때문이다(행 20:38). 막대기에게 그를 바로 잡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칼에게 그를 죽이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는 끊어져야 하나, 스스로를 위한 것은 아니기" (단 9:26) 때문이다. 그 책임을 맡은 것은 전쟁의 칼이 아니다. 그것은 용사로 영광되이 죽게 한다. 오히려 치욕의 나무에 달려서 죄인으로 죽게 되는 정의의 칼이다. 그 칼은 반드시 그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대답할 만한 자기의 죄가 없다. 정의의 칼은 그에게 죄에 대하여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모든 재판장이 재판정으로부터 특정한 명령이 있어 그를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것이 허락되기까지는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선포와 예정 속에서, "세상의 기초(창세)에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었다. 그러나, 그를 치기로 되었던 칼은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는데, 이제 깨어나라고 한다. 그것은 "그를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깨어서 그를 치고 집을 부수라" 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Ⅱ. 그래서 제자들이 흩어지리라는 것이 예언되었다. "목자를 치라. 그리하면 양들이 흩어지리라." 그가 팔리시던 날 밤에 그분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걸려 넘어지게 될 때에,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성취하시리라고 선포하신다. 그들은 모두 "그를 저버리고 달아났다" (마 26:31; 막 14:27). 목자를 치는 것은 곧 양을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그를 홀로 남겨둔다" (요 16:32). 여기서는 그들이 겁많은 양과 같다. 그렇지만, 그 목자는 그들에게 안전함을 보장해 주셨는데, 그것은, 그가 "만일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그들은 제 갈길로 가게 하라" 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하여 또다른 이해의 적용이 있을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유대의 "목자" 이셨고, 그들은 그를 쳐서 때렸으며, 따라서 그들은 곧 밖으로 흩어져, 열방에 분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러한 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 내가 나의 손을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리라" 는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그리스도가 고난 당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고난을 당할 것인데, 그것은 "그가 마신 잔을 마시는" 것이며, "그가 받은 세례를 받는 것" 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한 데 모으시며, 그들이 갈릴리에서 만나도록 하게 하시리라는 약속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군병 중에 보잘 것 없는 자가 비록 흩어질지라도, 그들은 다시 모일 것이다. 그의 양의 무리는 비록 먹이를 탐내는 짐승에게 위협을 받을지라도 스스로를 깨달아서, 그의 품으로 모이며, 그의 가슴에 안길 것이다. 때때로 양들은 광야에서 흩어져서 잃어버리게 되어도, 두려워서 먹이가 되는(민 14:31) 작은 양 새끼들은 집으로 옮겨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의 손을 그들에게 펼치시는 것이다.

Ⅲ. 불신앙적인 유대인이 배척당하고 파멸당하리라는 것이 예언되었다(8절). 또한 그 말씀은 타락하고 위선적인 성전이 파괴될 때에 성취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온 땅 중에서 2/3가 멸절하리라" 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로마의 군대는 그 땅을 황폐케 하였고, 적어도 유대인의 2/3를 죽였다. 여기서 "온 땅 중에서 2/3가 멸절되리라는 것은" 이방 종교와 유대교가 파멸당하고, 그 1/3인 기독교인만 홀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은 유대의 예배 의식을 아주 없애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을 때, 이방인의 우상 숭배도 근절되었다.

Ⅳ. 믿는 자들과 일반 그리스도 교회의 선택받은 남은 자들이 보전되고 변화되리라는 것이 예언되었다(9절). "그래서 1/3은 남겨둘 것이다" 고 하였다. 예루살렘과 유대가 멸망하였을 적에, 그 나라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산으로 달아나라" 고 하신 경고를 받으면서 자기들의 안전을 위하여 자리를 옮기며, 요단 건너편 "펠라" 라고 하는 도성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시련을 당하나 다음에는 승리를 얻게 되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거기에 속한 믿는 자들을 보게 된다.

1. 그들의 시련이라는 것은 "내가 그 삼분지 일을 고난의 불속에 던질 것이며,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는 것이었다. 이것은 베드로 전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한 "불같은 시련" 이었던 초대 교회의 박해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위하여 남겨두셨던 자들은 이 땅에서 단련되고 시험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이 찬양과 영광으로" 나타나기까지 시험받아야 할 것이다(벧전 1:6, 7). 그런데 그것은 "이제 당신께서 나를 두려워하심을 알았나이다" 고 하면서, 이삭을 그에게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시험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는 완전하며, "나타나게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험받아야 한다. 그들은 찌꺼기로부터 깨끗하게 되어야 하며, 그들의 타락은 정결케 되어 빛나고 보다 훌륭하게 되어야 한다.

2. 그들의 승리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과의 교제가 곧 그들의 승리가 된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를 것이며,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리라" 고 하셨다. 그들은 기도로써 하나님께 요청하며, 그로부터 화평의 응답을 얻으며 나와의 화평한 교제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그의 성도들은 이러한 영광을 누렸다."

(2) 하나님과의 언약이 곧 그들의 승리가 된다. "내가 이르기를, 그들은 나의 백성이라, 내가 선택하고 사랑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며," 내게 풍족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할 것이다. 내 안에서 그들은 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자랑삼을 것이다. "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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