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4: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
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
가 없도다 - 권서 잡은 솔로몬이 이와 같은 말을 하게된 것은 이 세상 모든 권세 잡은
자들에게 모본이 된다. 권세 잡은 자가 학대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임을 안다면
남들을 학대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억울함을 당한 자의 깊은 탄식을 살펴 신원하여
줄 것이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
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는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다(잠 21:13).
전 4:2,3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
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며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 압제를 받는 생활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사상은 얼핏 보면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존중시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게제(Gese)란 학자는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
라는 성경 귀절들(시 22:10, 71:6; 사 44:2,24, 46:3)에 의하여 솔로몬의 이부분 말씀
을 옳지 않게 생각 하였다(Krisis, s. 147).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솔로몬의 말을 부당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솔로몬
의 이 말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자체를 죽음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불의
한 압제를 받는 고통스러운 생활이 죽음만 못하는 것 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솔로몬
이 여기서 자살(自殺)을 장려하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니다.엘리야도 한 때
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자살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고(왕상
19:4), 욥도 역시 그리하지 않았다(욥3장).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때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할 만큼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도록 하신다. 그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 생명이나 또 그 밖에 무서이든지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후 1:9 참조.
전 4:4-6
내가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
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
라 한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 여기서는 솔로몬이 지나친 욕심으로 소득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헛됨을
지적한다. 수고 그것이 선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웃과 경쟁하는 의미에서
(경쟁심에서 情記가 나옴) 가지는 욕심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이다. 약 1:15 참조.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은 무사주의(無事主義) 곧 게으른 생활을 좋게 여김이 아니
다. 게으른 생활은 자기 살을 먹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무런 수입을 얻지 못하고 다
만 멸망을 자취하는 것 뿐이다. 위의 말씀(4절)은 6절 상반의 교훈처럼 사람이 소유를
적게 가지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평안함을 장려한다. 시 131:1-3 참조. 시 37:16에
말하기를,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라고 하였고, 잠
16:8에는 말하기를,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
니라"고 하였다.
전 4:7,8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라믄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
으니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
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 이말씀은 극단적인 개인 주의 자가 자기의 탐심만
채우기 위하여 수고함이 헛되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곧,
개인주의 자는 심지어 말로를 당하여 고백하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지 못하게 하는고"라고 한다. 이 말씀은 개인주의의 헛됨을 결론
함이다. 개인주의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끝까지 불만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그자신
을 만족하게 하려고 심지어 자기 자식과 형제도 돌보지 않았으나 그런 생활은 허무한
것을 가져온 것 뿐이다. 잠 15:6에 말하기를,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되느니라"고 하였
다. 나발은 다윗의 청구를 거절하고 자기 자신은 잔치를 배설하여 즐겼다. 그러나 그
는 마침내 몸이 돌 같이 굳어지면서 죽었다(삼상 25:38).
전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여기 이른바 "상"이란 말(9절 끝)과 "화"
란 말(10절끝)을 보면 그 상벌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보여 준다. 자
연적으로 되는 일을 가리켜서는 상이라는 말이든지 화란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장려하시는 것은 이 본문이 말하는 대로 합심 협력인데 그것은 하나
님의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둘씩 동행하도록 하셨다(눅 10:1). 우리 본문이 말한대로 둘이란 것은 숫자적으로 엄
격하게 두 사람만 가리킨것이 아니고 다만 협동(協同)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
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이렇게 횡적(橫的)으로 여러 사람의 단합을 힘써야
된다. 그 반면에 우리가 회개하는데 있어서는 홀로 해야 진실하고 또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참되이 하게 된다. 슥 12:10-14 참조.
전 4:11
두 사람이 함께누으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도와 줄것을 비유한다. 인간은 연약하나 서로 위로하며 도와줄 때에 역
경과 환난 중에서라도 귀한 일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인도의 산다싱은 그 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건전하다고 할 수 없으나 우리가 그의 생활에서 본받을 것은 많다. 그가 전
도 여행중에 히말라야 산을 경유할 때에 되어진 일인데,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만나서
그를 구하기 위하여 업고 가다보니 자기 체온 때문에 등에 업힌 사람이 살아났을뿐 아
니라 자기 자신도 몸이 얼지 않고 그 산을 무사히 넘게 되었다. 살전 5:14; 히 3:13
참조.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
니하느니라 - 이 말씀은 합심의 힘을 장려한다. 신자들은 우선 기도 생활에 있어서 합
심을 힘써야 된다(마 18:19-20; 행 1:13-14).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교회 생활에 있
어서 합심을 위주해야 된다(빌 2:2).
전 4:13-16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저
는 그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음이라 내가 본즉 해 아
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매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이 말씀은, (1)왕위에 늙도록 앉아서 교만하여졌음으로 옳은 충고를 받지 않는 자가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그리고 이 말씀은 가난하고 또한 고난을 받던자가 하나님의 특수 섭리로 높아질 수 있는 것을 보여 준다(14-15).삼상 2:8 참조. 요셉이 이같은 축복을 받앗다(창 40:1-41:44). (3) 이렇게 귀하게 된 사람도 나중에는 많은 사람에게서 배척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16절). 이렇게 솔로몬은, 인간은 누구든지 자충족자(自充足者)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한때 환영을 받던 자도 얼마 후에는 다시 그 영예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이 세상 역사가 말해 준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믿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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