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0:1-27
여기에는 언약에 인친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름들의 뜻은 다음과 같
이 알려진다.
1 느헤미야 여호와의 위로
" 시드기야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2 스라야 여호와께서 주가 되심
" 아사랴 여호와가 도우셨다
" 예레미야 여호와께서 던지신다
3 바스훌 알 수 없음
" 아마랴 여호와께서 약속하셨다
" 말기야 여호와께서 나의 왕이시다
4 핫두스 알 수 없음
" 스바냐 여호와께서 나를 회복하셨다
" 말 룩 왕
5 하 림 헌납됨
" 므레못 높음
" 오바댜 여호와의 종
6 다니엘 하나님이 판단하셨다
" 긴느돈 동산지기
" 바 룩 복이 있다 함
7 므술람 보상
" 아비야 여호와께서 아버지이시다
" 미야민 오른손에서('좋은 운'이란 뜻)
8 마아시야 여호와는 요새(要塞)
" 빌 개 기쁘다
" 스마야 여호와께서 들으심
9 예수아 여호와의 구원
" 빈누이 여호와께서 지으셨다
" 갓미엘 여호와께서 첫째이시다
10 스바냐 여호와께서 나를 회복하셨다
" 호디야 여호와께서 광채이시다
" 그리다 채납되다
" 블라야 여호와께서 기적적으로 일하셨다
" 하 난 은혜
11 미 가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
" 르 홉 넓은 곳
" 하사뱌 여호와께서 간주하신다
12 삭 굴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 세레뱌 여호와께서 태우는 열이시다
" 스바냐 여호와께서 나를 회복하셨다
13 호디야 여호와께서 광채이시다
" 바 니 여호와께서 지으신다
" 브니누 우리의 아들
14 바로스 알 수 없음
" 바핫모압 모압의 총독
" 엘 람 높은 땅
" 삿 두 알 수 없음
" 바 니 여호와께서 지으신다
15 분 니 여호와께서 지으신다
" 아스갓 갓(족속)은 강하다
" 베 배 눈동자
16 아도니야 여호와께서 주님이시다
" 비그왜 행복하다
" 아 딘 황홀함(rapture)
17 아 델 숨는 곳
" 히스기야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
" 앗 술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18 호디야 여호와께서 광채이시다
" 하 숨 알 수 없음
" 베 새 하나님의 그늘 속
19 하 립 가을
" 아나돗 지방 이름
" 노 배 알 수 없음
20 막비아스 알 수 없음
" 므술람 보상
" 헤 실 알 수 없음
21 므세사벧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다
" 사 독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다
" 얏두아 여호와께서 아셨다
22 블라댜 여호와께서 구조하셨다
" 하 난 은혜
" 아나야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23 호세아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
" 하나냐 여호와께서 은혜로우시다
" 핫 숩 여호와께서 생각하셨다
24 할르헤스 휘파람 부는 자
" 빌 하 맷돌
" 소 벡 이기는 자
25 르 훔 여호와께서 넓은 곳에 두셨다
" 하삽나 여호와께서 생각하셨다
" 마아세야 여호와의 일
26 아히야 여호와께서 나의 형제이시다
" 하 난 은혜
" 아 난 여호와께서 내게 응답하셨다
27 말 룩 왕
" 하 림 헌납되었다
" 바아나 알 수 없음
위의 명단을 보면 "여호와"의 성호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 이름의 소유자들이 이
때에는 그 이름의 뜻에 부합하는 행동과 결단을 취하였으니, 하나님의 은혜였다.
느 10:28,29
위의 명단은 언약에 인친 자들이고, 여기서는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이 그 언약에 순
종하겠다고 맹세한다.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 - 이것은 바벧론에 잡혀
가지 않고 팔레스틴에 남아서 이방인들과 함께 거주하면서도 영적(靈的)으로는 그들과
절교(絶交)하고 율법을 지켜 온 유다인을 가리킨다.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 - 곧, 사리(事理)를 바로 분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 형제 귀인들(* ) - 이들은 위의 명단에 오른 지도층
사람들을 가리킨다. "저주로 맹세하였다"고 함은 그들이 그 언약의 내용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맹세함이다.
느 10:30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 이것은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서약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일찌기 모세에게 주신 그 말씀(신 7:3-4)대로 돌아가는 회
개 운동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법을 주신 목적은 국제 결혼을 무조건 금하심이
아니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 우상을 도입(導入)하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방지책이
다. 부부 관계야말로 강하게 종교적 영향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훈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한다(고후 6:14). 신자가 불신
자와 결혼하면 그 신앙이 약해지거나 죄와 타협하게 될 경우가 많아진다. 신자로서 자
녀의 결혼이 올바로 되는 여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 자녀가 불신 결혼할
경우 얼마나 큰 손해를 볼 것인가 ?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고 흥망(興亡)에 관계 있
는 중대한 문제이다.
느 10:31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 이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다
짐하는 말이다. 이 말은 매매 자체를 정죄함이 아니고 육신의 안식을 방해할 정도로,
또는 신령한 예배에 지장을 줄 정도로 취해지는 상업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이다. 안식
일에 육신이 쉬어야 되는 이유는, (1)그 날을 종일 바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육신이 피곤하면 예배에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기 어렵다. 신 6:5
참조. (2)그 날이 영원한 안식(내세의 안식)을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히
4:4-6,8-11).
우리는 여기서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된다. 안식일에 쉰다는 것은 아
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정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날에 쉰다는 것은 세상 일로
인한 고역을 하지 않고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평안을 누림을 가리
킨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즐거운 날이다. 사 58:13-14 참조. 이것은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을 모본으로 한다(출 20:8-11).
신약 시대에 신자들이 거룩하게 지키는 날은 구약식 안식일(안식일에는 불도 피우
지 못했음. 출 35:3)과 다른 "주의 날"(계 1:10)이다. "주일"은 시 118:22-24의 말씀
과 같이 즐거워할 날이다. 이것은 구약 안식일이 예표한 것으로서(골 2:16-17) 칠일
중 첫날에 지키는 것이다(행 20:7).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바리새식 율법주의
의 번쇠한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취급되는 것이다. 이 문
제로 서로 비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될 것도 신약성경은 가르친다(롬 14:5-6;골
2:16). 주일이 구약 안식일의 성취이므로 주일을 지키는 법이 안식일을 지키는 법과
꼭 같지는 않다. 그러나 원리에 있어서 양자(兩者)는 서로 공통점들을 가졌으니, 신자
들이 그 날에 안식함(육신의 사업과 노동을 정지함), 하나님을 예배함, 기뻐함 등이
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일 성수의 중요성이다. 주일 제도는 진리니만큼 우리가 이것
을 파수해야 된다. 이것을 파수하지 않음은 불경건이다. 다만 그 파수하는 방법이 그
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만큼 은혜로 실행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신약 성경에는 주일
성수를 적극적으로 권장한 교훈이 없고 성수하지 못한 일 때문에 책망한 말씀도 없다
고 하면서 주일 성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주일은 창조 질서에 속
한(유다인에게만 아니고 온 인류에게 주신) 안식일(창 2:1-3)의 후신(後身)이니 특별
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것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 신약 성경에는 신자들이 주일을 성
수하였던 증거가 있다(행 20:7;고전 16:1;계 1:10).
체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 이것은 레 25:1-7;신
15:1-2,12-15의 말씀대로 행하겠다는 서약이다. 매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
해 주는 제도는 인류의 영육이 아울러 복 받는 데 유익할 것이다. 그것은, (1)영적으
로 해방의 제도로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을 예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제도
(희년의 영적 의미는 원리적으로 안식년과 같음)가 자기의 영적 구원 사업을 비유한
것이라고 해석하셨다(눅 4:17-19). 구약 시대 사람들이 이 제도를 지킨 것은 영적으로
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은 상징적 행위였다. (2)육적으로 땅을 비옥하게 만들
것이고 또 사회 공동체 안의 부조리와 불평을 해소시킬 것이다. 땅을 1년 동안 경작하
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 땅은 비옥해질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해에 채무자들의 빚
이 탕감되는 경우 그들은 한 번 다시 경제적 기반을 새로 닦아 나아갈 소망과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런 제도가 실시되는 사회에는 빈부(貧富)의 격차(隔差)가 심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모든 인류가 이 제도를 실시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땅위에 사회 복지
가 실현될 것이다.
느 10:32,33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32절 하
반) - 이스라엘 사람이 본래 속전(贖錢) 반 세겔씩을 내도록 되어 있었으나(출
30:11-16) 후대에는 외국의 압제를 받아 너무 가난해진 결과(느 9:37)로 이렇게 3분의
1 세겔로 적어진 듯하다. 이 속전은 성전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다(마 17:24-27). 하나
님의 율법이 그 사회에 실시되게 하려면 우선 성전을 중심한 모든 제도들이 잘 정비되
어야 할 것이었다. 오늘 신약 시대의 "성전"은 건물이 아니고 신자들 자신이다(고전
3:16-17,6:19;고후 6:16;엡 2:21-22,4:15-16;벧전 2:5).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성전
된 자기 자신을 성화(성전을 성화시킴과 같이)할 목적으로 희생하는 일에는 등한히 하
면서 그들이 예배당을 구약 시대 성전처럼 오해하여 그것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예배당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먼저 힘쓸 것은 우리 자신 안에 하나
님을 모시도록 성화(聖化)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하여 신앙, 순종, 또는 희
생함이 더 필요하다.
진설병...소제...번제 - "진설병"은 성소 안에 떡 열 두 개를 안식일마다 번갈아
진설하는 것을 가리킨다. 묵은 떡은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먹도록 되어 있다(출 25:30;
레 24:5-9).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온 생명떡이 되실 것을
상징한다. 요 6:33-35 참조. "소제"는 곡식으로 성립되는 제물이니 노력을 제물로 드
린다는 비유이다. 레 2:1,4,13,15,5:11 참조. 그리고 "번제"는 그 드리는 자의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 1:4,17:11 참조.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 - 이것은 제물로 드릴 것들을 가리킨다. 민
28:9-15 참조. 구약 시대에는 이렇게 생축을 제물로 드렸는데 그것은 신약 시대에 그
리스도 안에서 신자의 헌신을 비유한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물질보다 먼저 그리스
도 안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되어야 한다. 롬 12:1-2;고후 8:4 참조. 많은 기
독 신자들이 자기들의 헌신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만족한 줄 안다. 엡 5:1-2 참조.
느 10:34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 - 이것은 "상번제"를 위한 것이다. 레 6:8-13;민 28:1-8 참조. 이 세상
에서는 사람들의 죄가 언제나 없어지지 않는 것인 만큼 그들을 대신하여 제물되는 것
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단번에 속죄 제물과 번제물이 되심으로 영원히
효과를 내시는(히 9:25-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구약 시대의 "상번
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
느 10:35-37
출 13:2,12-13,23:19 상반, 34:26;레 19:23-24,23:17,27:26,27;민
15:20-21,18:12-16;신 18:4,26:2 참조. "첫 열매"와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인들의 맏아들을 죽이실 때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을 살려주셨기 때문이다. 민 8:17 참조.
느 10:37-39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 민 18:8-14 참조.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 민 18:21-32 참조. 신약 시대 교회도 십일조
헌납을 귀한 헌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십일조 헌납은 유다인들에게 국한된 제도가 아
니다. 벌써 아브라함이 그것을 멜기세덱에게 바친 바 있었고(창 14:20), 예수님도 이
것을 좋게 여기셨다(마 23:23). 그러나 교회가 이것을 법제화할 것은 아니고 그 이상
헌금이나 비록 그 이하 헌금도 감심으로 하도록 권장해야 된다. 그 이유는 신자가 하
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고후
8:11-12,9:1-7). 출 35:5,20-29,36:3;대상 28:9,29:5,9,14,17 참조. 그런데 신자들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여 즐거움으로 드리는 헌금은 십일조 이상을 바치게 되어진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 그 때에 이스라엘의 경건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고 움직인 동시에 뜨겁게 움직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교리적이면서 영적 열심에 불탔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이다. 교리만 강조하면서 영열(靈熱)을 가지지 못하는 운동은 율법주의로 흘러가지 쉽고, 또한 열심에 치중하여 교리를 무시하는 것은 광신주의(狂神主義)로 떨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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