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8:1
나와 함께(* ) - 여기 이른 바 "나"란 대명사는 에스라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
만큼(7:27-28 참조) 그가 본서의 저작자인 것이 드러난다. "나"라는 대명사는 9:15까
지 계속된다.
베벧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정확하지 않으나 약 900 마일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행하였으므로 하루에 9 마일 이상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Jacob M. Myers, The Anchor Bible, 1965,p.72). 이들의 여행이 4
개월이나 걸렸으며(7:9), 그 길은 도적이 많은 험한 길이었지만(8:31) 하나님의 은혜
로 그들이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스 8:2,3
"비느하스"는 아론의 세째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이고, "이다말"은 아론의 네째 아
들이다. 본서의 저자 에스라는 제사장겸 학사로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사명
의식이 강한 것만큼(7:10,11) 자기와 동행하는 자들 중에서 대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을
초두에 내세웠다. 여기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던 유다 지파의 다니엘(단 1:1-7)
이 아니고 레위족에 속한 자이다.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스가냐 자손 곧(2절 끝-3절 초두) - 이 문구(*
)는 다음과 같이 개역되어야 한다. 곧,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 곧 스가냐 자손이요"라고. 대상 3:22 참조. "바로스 자
손"은 2:3에 기록된 것과 같이 스룹바벧과 함께 유다에 돌아온 무리 중에도 일부 참여
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이 바벧론에서 유다로 돌아옴에 있어서 한꺼번
에 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한 지파 중에서도 선발대가 있었고 또 그 후에 돌아온 무리
도 있었다.
족보에 기록된 남자 - 이들은 에스라와 함께 유다에 돌아가도록 기록에 오른 자를
말한다. "남자"란 말(* )은 "그 남자들"이란 뜻이니, 그 무리 가운데 여자
들과 아이들도 있었지만(21절) 남자들이 그 대표자라는 의미에서 남자들의 수효만이
여기에 기록되었다. 특별히 그 위험한 길에는 남자들이 중요하기도 하였다.
신약 시대 신자들은 천성을 향하여 가는 자들이니 그들도 신앙으로 남자답게 강해
야 된다. 고전 16:13 에 말하기를, "깨어 믿음에 굳게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하
였다.
스 8:5-10
"스가냐"는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는데(대상 24:11;대하 31:15) 3절에 나온
"스가냐"와 다른 사람이다. "아딘", "엘람", "스바댜" 등의 자손들 중에서는 일찌기
스룹바벧과 함께 유다에 돌아간 자들도 있었다. 이제 그 남은 자들 가운데서 에스라와
함께 돌아가는 자들이 있었다. 유다인들이 바벧론에 포로되어 있는 동안 상업으로 성
공하여 그 방면에서 생활이 안정된 자들도 많았다. 예컨대 바벧론의 니풀(Nippur) 지
방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유다인들 중 무라수(Murashu)족의 광범위한 상업 활동이 포로
시대에 있었던 사실을 보여준다(C.F.Pfeiffer, Exile and Return, 1968, p.127). 이렇
게 물질적으로 번창하여 생활 기반이 확고하게 잡힌 자들은 고국에 돌아갈 마음이 없
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앞서 돌아간 자들의 계통에서 또 다시 돌아가는 자들이 속출하
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계통의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신 결과이다. 그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다리며 신앙적으로 살던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셨다. 시 137:1-9
참조.
스 8:11-14
여기서도 앞에 2장에 나왔던 조상들의 이름이 또 다시 나온다. 앞에 5-10 절의 해
석을 참조하라. "스가랴"란 이름이 3 절에도 나왔는데 이 두 사람은 동명 이인(同名異
人)이다. 이들은 선지자 스가랴와 다른 사람이다. 선지자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로서
이들보다 일찌기 다리오 히스타스피스(Darius Hystaspis, B.C. 521-486) 제 2 년에 예
루살렘에서 사역하였다(5:1;슥 1:1).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13절 초두) - 이 말씀은 그 지파 중에서는 최후 한
사람까지 모두 다 유다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바벧론에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은 이 밖
에도 2장, 10장;느 7장, 10장에도 있다. 그 때에 유다인들이 돌아온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지도자를 따라서 된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어떤
일정한 인물이나 어떤 장소나 시간에 매이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먼저 받는 자들도
있고 후에 받는 자들도 있다. 민 11:24-29;요 20:24-28 참조.
스 8:15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 - "아하와" 지방은 그 때 바벧론에 살던 유다인들의 중심지
였다. 그곳은 유브라데강 서쪽, 혹은 남쪽인 듯하다(Ewald). 에스라가 이 때에 무리를
그곳에 모은 목적은 금식기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21절 참조.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 그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무리 중에 제사장들
은 있었으나 일반 레위인들은 없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의 제사 제도를
완비하려는 것이었는데 제사장들을 도울 수 있는 레위인들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스 8:16,17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할 일로서 무엇보다도 여호아께 제사드리는 일을 중
요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일을 도울 수 있는 레위인들을 모집하는데 착수하였다.
그는 요인들을 각처에 파견하여 이 일을 실행케 하였으니, 그들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
다.
엘리에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라
아리엘 하나님의 사자(獅子)
스마야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엘라단 하나님이 주셨다
야 립 여호와께서 싸워주신다
엘라단 하나님이 주셨다
나 단 하나님이 주셨다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므술람 보상한다
요야립 여호와께서 싸워주시옵소서
엘라단 하나님이 주셨다
위의 이름들은 거의 전부가 "하나님", 혹은 "여호와"란 칭호와 관련되어 있다. 이
들이 특별히 에스라를 수종들었으니만큼 모두 다 경건한 자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잇도"는 가시뱌 지방 레위인 족장이었다. 에스라는 수종자들 11명을 잇도에게 보
내어 그 지방의 레위인들을 모집해 오도록 하였다. "느디님", 곧 성전에서 수종들던
종들이 그 지방에 살고 있었다.
스 8:18-20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을 입고(18절 초두) - 이와 같은 신앙 사상은 에스
라의 확신에 속한다. 7:6,28 참조. 에스라의 파견을 받은 지도자들이 나아가 활동한
결과로 레위인들 259명을 모집해 왔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
에 적합한 일꾼들이 었음이 분명하다. 18절에 "명철한 사람"이란 말이 특별히 사용된
것은 이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적합한 일꾼을 구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신다. 마 9:37-38 참조.
스 8:21,22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21절 상반) - 에스라가 이렇
게 동행자들을 모으고 금식을 선포한 것은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그 기도의 요지는 그
들의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원함이다. 에스라는 일찌기 왕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자기는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 신앙 간증대로 그는 군대의 호송(護送)을 왕에게 청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
게 불신자에게 신앙 양심을 지켰으며, 자기의 말한 대로 신앙 용단을 한 것이다. 우리
는 이 부분에 나타난 에스라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1)겸손함(21절). 그의
겸손은 기도 생활로 나타난다. 신자로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큰 교
만이다. 신자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자기의 재주나 경험이나 지식만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상이다. (2)권세 앞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함(22절 상반).
신자가 불신자들 앞에서 하나님 여호와에 대하여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의 도
우심을 받지 못한다. (3)언행이 일치함(22절 하반).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자들로 판정된
다. 딛 1:16 에 말하기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다.
스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 그들의 "금식"은 전심기도를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앞으
로 당할 위험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적으로 기원한 행동이다. 어려운 때에 우리는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육체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신앙 용단으로 처사해야 된다. 우
리가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도와주신다.
스 8:24-27
에스라가 사람들이 즐거이 드린 예물들을 12 인의 두목에게 신중히 맡겨 예루살렘
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성경의 교훈은 언제나 공금(公金) 취급에 있어서 실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보관하며 또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
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삼가 지키라(28-29) - 에스라의 이 교훈은 사
도 바울의 연보 취급과 일치한다. 고후 8:20-21에 말하기를,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우리
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즐거이 드린 예물"이란 말(* )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원리를 가르친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자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것이다(고후 9:7).
스 8:31-35
여기서는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무엇보다 먼저 처리한 것과 행한 것을 말해준다. (1)하나님께 즐거이 드린 예물을 신중히 전달하였으며(32-34), (2)번제를 드렸고(35절), (3)왕의 조서를 관원들에게 전달하였다(36절).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책임진 것을 먼저 실행함으로 양심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32-34). 이것은 종교 윤리의 모본이다. 그들이 맡아 가지고 온 예물들은 하나님의 것인 만큼 그것이 완전히 전달되어야 그들의 양심이 평안해질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오늘의 기독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죄인이었고 또 구속받아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니만큼 헌신제(번제)를 먼저 드린 것이다(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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