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2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 문자적인 뜻은 '유다의 물들에서 나왔으며'이다. 여기 물줄기의 근원, 수원지를 연상케 하는 '물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비슷한 용어가 유다의 혈통을 암시하는 도 다른 대목에서 사용된 바 있다:"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민 24:7). 여기서 '유다'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출생할 것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창 49:10). 즉, 그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백성들이 타락하였음을 강하게 책망하는 것이다.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 '거룩한 성'이란 곧 예루살렘을 가리킨다(52:1;마 4:5). 이곳이 그렇게 불리운 까닭은 성전과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 법궤가 있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거룩한 성'이라는 명칭 속에서 그곳에 사는 백성들의 행실과 성품도 거룩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Keil & Delitzsch).
=====48:3
본절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결국엔 그 일들을 성취했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그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홀연히 되어진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미래에 있을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성격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신다(42:9;44:7, 8;45:21;46:10).
=====48:4
완악하며(* , 카솨) - 문자적인 뜻은 '굳은'인데 이것은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수소에서 그 의미를 따온 것이다. '굳은 목', '뺏뻣한 목', '얼굴의 굳음'(겔 2:4), '마음의 굳음'(겔 3:7) 등으로도 묘사되고 있는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는 상태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목의 힘줄은 무쇠요 - 문자적인 뜻은 '목은 쇠 근육이요'이다. 이 비유 역시 멍에를 거절하기 위해서 그 목을 뻣뻣하게 하는 황소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이마는 놋이라 - 이 표현은 흔히 수치를 모르는 매춘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렘 3:3). 그러나 여기서는 무감각하고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렘 6:28).
=====48:5
본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치 않으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불신의 심성에 놓여져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입증하고도 남을 풍성한 역사적 경험과 말씀을 통한 계시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향하는 전철을 되풀이하였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48:6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 - 3-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 때문에 먼저 어떤 일을 예언하고 그 후에 그 일을 성취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 일은 이스라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일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일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구원 사역의 완성일 것이다(Fausset).
=====48:7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 43:16-21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출애굽 사건을 '옛적 일'로 말하면서 '새 일'을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새 일'을 그토록 놀라웠던 출애굽 사건마저 압도할 만한 어떤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이라면 바벨론 포로 귀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는 구원 사역까지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48:8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 로 피트하 아제네카) - 분명히 동사 '피트하'(* )가 능동태이므로 본 구절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네가 너의 귀를 열지 않았다'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바로 앞 구절들과는 달리 귀 기울일 대상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과 특정한 어떤 사건과의 관계를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어떤 특성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번번이 영적 귀를 닫아온 민족이었다.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 문자 그대로 부면 인간 개인의 출생 당시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사실 성경에 원래부터 부패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그러나 본서가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한 단위로 보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생, 곧 국가 역사의 시초로부터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48:9
내 이름을 위하여 -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 주신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45:4)라는 표현과 배치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위하여'가 사용된 배경은 다르다. 45:4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를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고자 하셨음을 밝히는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 구원 자체의 궁극적인 이유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른 것이다(J. Watts).
=====48:10
은처럼...택하였노라 - 여기 '택하였노라'는 '시험하였노라'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당시 제련 과정에서는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음으로써 그 찌꺼가 가라앉고 순수한 원물질만 남았다. 이와같이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것과 같은 시련이 많았지만 광물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하는 바이다(Whybray).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고 죄를 고백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아무런 효과없이 시련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다 뺐다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
=====48:11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무지 때문에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바른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실상 때문에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신다면 이방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神)의 승리로 착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및 이방이 전혀 알지 못한 '새일'(6절)을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것이다.
=====48:12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 41:4과 외관상으로 유사하지만 그곳에서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도르'(* )가 사용되었고(41:4에서 '만대'로 번역됨) 이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역사성' 보다는 온 우주의 흥망 성쇠(興亡盛衰)를 쥐고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48:13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 문자적인 뜻은 '내 오른손이 하늘을 재었다'이다. 40:12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그 능력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만물을 창조, 보존하시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그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모르실 리 없다. 자신이 만물의 흥망 성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관심을 집중시키신 후 하나님께서는 시야를 좁혀 이스라엘 영역 속에서 되어질 일을 소개하고자 하신다.
=====48:14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 위에 시행할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하는'이란 표현이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도덕적 품성을 기뻐했다거나 그가 경건한 자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도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만 적용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온전히 적용할 대상은 메시야이신 예수 뿐이시다(눅 3:22). 그렇다면 이 표현은 메시야의 예표적 인물로서의 고레스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48:15
본절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이방 왕 고레스를 선택하고 그로 흥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 되어지는 일임을 드러낸다. 원문에 보면 '그 길이 형통하리라'가 '그가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리라'라고 되어 주어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인칭의 변화는 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자 고유의 기법이다(Barnes).
=====48:16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 본 구절을 기점으로 화자(話者)가 하나님에서 본서 저자인 선지자로 바뀌고 있다.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나온 것은 저자의 사역이 자신이 아닌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화자가 바뀜으로써 이어질 예언의 내용, 곧 17-22절이 몹시 중요한 내용임을 기대케 한다.
=====48:17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여호와라 - 본절은 저자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수식어들을 사용한 데다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직접 연이어 놓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본문의 수식어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이스라엘간의 언약 관계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르치고...인도하는 - 이 용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압축시켜 놓은 것인데, 원문에 보면 이 용어들은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괄목할 만한데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계속되는 상황을 강조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각된다.
=====48:18
얼핏 보면 본절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백성에게 의도한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함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본절이 지닌 시적 성격을 드러내 보면 잘 알 수 있다. 본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축복 부분만 시적 구조에 충실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강과 같았(겠)다. 너의 평강이 그리고 너의 의가. 바다 물결 같았(겠)다.' 본절의 주안점은 무한한 평강과 의에 있는 바,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축복이다. 즉, 평강과 의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에서 나타나는 축복이다.
=====48:19
18절과 본절 상반절에는 축복이 기록되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내적 축복인 반면 후자는 외적 축복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히 후자의 내용은 낯익은 것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축복을 반영하고 있다(창 22:17;32:12).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 이름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 백성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반역으로 일관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혈통적,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렴풋이나마 시사되고 있는 듯하다. 즉, 언약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쥐고 있던 그 영광스러운 신정 체제는 이제 망각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림자와 모형의 시대가 지나가고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이 넌지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48:20
피하고 - 압제하는 민족으로부터 온갖 수단을 다해 탈출해 나오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온 자들은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땅 끝까지 그 사역을 선포할 것이다.
=====48:21
본절에는 과거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가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보증물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서 있는 시점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인 1차 독자들에게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 귀환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준하는 실제적인 보증물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이 제시하는 사건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사건을 말라해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본절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근거로 하여 20절에 나타난 앞으로 있을 구원 사역을 튼튼하게 제시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반복하지만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여호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본서가 암시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사역이란 옛날 출애굽으로 대표되는 구원 사역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역인 것이다. 이 새로운 구원 사역은 천지를 처음 창조한 하나님의 사역에 필적한 것이며, 그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 주며, 그 목적을 완성시켜 주는 새 창조의 사역임을 이미 40장 이후부터 저자가 계속 시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49-53장에 서술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48:22
여호와게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심으로 벌어질 일 중의 하나는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부류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갈라질 것이다.
전장 하반부(47:12-15)에서는 바벧론의 국가 안전 보호 장치의 무력함을 강조함으
로써 완벽한 바벧론의 멸망을 상상케 하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장에서는 40-45장에
서와 같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14-16절). 특별히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성, 특히 구제 불능의 완고성이 강조되고 있다(4, 8절). 또한 멸망할 바벧론이 의
지했던 우상을 동일하게 숭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우매성이 지적되지만(5절) 이스라
엘은 바벧론과 다르게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이 수염됨을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는 전
장에서 우상 숭배로 멸망하는 바벧론의 운명을 진술한 반면 본장에서는 동일하게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서술함으로써 택항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점적으
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장에서는 40-46장에 이르는 동안 특징적으로 나타나던 강렬한 감정의 표현
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언급하면서 자주 이스라
엘의 완고성과 구제 불능성이 삽입되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짤막짤막한 열
거와 대배가 자주 이어지고 있음으로 이러한 급변을 분명하게 해준다. 본장에 열거된
단편적인 주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상태(1a, 12a절), 유일한 신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12, 13절), 고레스의 사명(14-16절), 얼마 남지 않은 유다의 포로 해방(20절)
등이고, 대비된 주제들로는 옛 일과 새 일(3, 5a절, 6, 7a절)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에 관한 부정적인 묘사들의 내용으로는 비신실한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1b절), 영적
완고성(4절), 과도한 우상 숭배(5b절), 교만, 반역(7b, 8, 18, 19절) 등을 들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적 특징 외에 본장은 몇 개의 명령형의 서두들에 의해 구조가 결정된
다. 즉,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로 시작되는 변론적 강화인 1-11절, '들으라'로 시
작되는 도전적인 강화인 12-15절, '가까이 나오라 그리고 들으라'로 시작되는 대화식
강화인 16절, 한 메신저에 의해 소개되는 형식을 취한 후회성 강화인 17-19절, 창
19:15과 같은 서론적 교훈과 함께 '나오라'로 시작되는 찬양인 20, 21절(52:11, 12),
짤막한 심판 강화인 22절(57:21) 등이다. 그러나 본장은 다양한 강화들로 구성되어 있
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곧,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
님의 '새로운 사역'을 예고하고 있는 전반부(1-11절), '새로운 사역'의 내용의 일부가
바벧론 포로 귀환임을 밝히는 중반부(12-16절), '새로운 사역'의 주 내용을 예고하는
후반부(17-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이스라엘의 완고성에 관계없이 시행되는 하나님의
자비의 구원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
시대를 거쳐 출애굽 후 광야 시대를 지나 왕국 시대를 맞이하면서 선택받은 민족임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선택된 민족답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탁월한 공동체적 윤리를 실행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구원 역사를 경험한 상태에서도 조금도 변화
되지 않고 이방을 답습하여 우상 숭배에 몰입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다
(1-5절).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창 12:1-3) 당신의 이름
을 위해(9, 11절) 무조건적 구원을 시행하실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저
자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새 일' 선포 예고(48:1-11)
전장(47장)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바벧론의 죄악상으로
인하여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임을 선포했다. 반면에 본 단락에서는 바벧론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면서도 심판보다는 오히려 구원을 약속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는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과거의 구원 사역에 대해 무관심했던 이스라
엘에 대해 기술하는 전반부(1-6a절), (2) 미래에 성취될 구원 사역의 예고와 성취의
이유를 설명하는 후반부(6b-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의 강조점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과거의 구원 사역을 망각한 이스라엘의 패역함(1-6b절):이스라엘은 야곱의 후
손으로 구성되 민족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다(1절).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출애굽 사건, 홍해 사건, 그리고 광야에서의 만나, 메추라기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낸 사건 등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신실하게 보호하셨다. 그러나 이스
라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치 않는 영적 무지를 드러냈다(4절).
광야 시대를 지나고 사사 시대를 넘어 왕국 시대를 이르러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
신들의 고집대로 행동했다(삼상 8:19;대하 24:19;30:8;렘 32:33;44:16;슥 7:11). 심지
어 하나님의 인내하심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경우 자신들이 숭배하던 우상의 덕택으로
돌렸다(5절). 결국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
판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 완고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혜(6b-11절):과거의 은혜를 망각한 이
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구원 사역을 예고하신다. 그런데
새로운 구원 사역의 성격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의 구원 사역과는
질적으로 구원되는 탁월한 것임은 분명하다(43:18).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완고한 이스라엘을 멸절하지 않
으시고 주권적 능력으로 구원시키실 것이다(11절). 이러한 은혜는 일차적으로 바벧론
포로 귀환에서 드러나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에서 완성된다.
2.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48:12-16)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지적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
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진술했던 전 단락(1-11절)에 이어 본 단락에서는 새로운 구원
사역으로서 고레스를 통한 바벧론 포로 귀환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나를 들으라'
(12절)는 다정한 명령에 이어 '가까이 나아와 들으라'(16절)는 권고를 재차 진술함으
로써 좀더 중요한 내용이 진술될 것에 대한 개대감을 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하
나님 속성에 대한 소개(12, 13절), (2) 새로운 구원 사역의 내용 소개(14-16b절), (3)
새로운 화자 등장(16b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이 취급하는 주요 주제들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선포(12, 13절):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
씀으로 창조하시고 친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구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증폭시키고 남은 자에 대해 위로를 전달하
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완고하고 어리석은 당신의 백성에 대해 섬
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내용(14-16b절):저자는 지금까지 고레스의 이름을 두 번
거명하였다(44:28;45:1). 그리고 그의 사역에 대해 이방의 나라들을 정복하는 것임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41:2, 3, 25;43:14;45:1-3, 13). 그러나 여기서는 좀더 진전하
여
멸망시킬 상대가 구체적으로 바벧론임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유다를 멸망시킬 바벧
론이 결국 고레스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됨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다.
(3) 여호와의 종에 대한 소개(16b절):저자는 본 단락 마지막 절에서 '이제는 주 여
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돌연적으로 새로운 화
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에(49장) 등장을 '여호와의 종'을 미
리 소개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새로운 구원 사역의 주체가 될 인물을 낯설지 않게 하
기 위한 사전 정지(整地) 작업으로 새로운 화자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여호와의 종으로 대변되는 메시야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3.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예고(48:17-22)
전 단락에서 고레스를 통한 바벧론 포로 귀환을 새로운 구원 사역의 일부로 소개하
는 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 사역을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의 완고성에 대해 한탄조로 성토
(聲討)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차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한
소재, 즉 아브라함의 언약을 연상케 하는 '모래'와 '모래 알갱이'(창 22:17), 광야 반
석에서 물을 먹은 사건을 연상케 하는 '강', '물결', '물'(43:14-21;출 17:1-7;시
78:15, 16, 20;105:41, 42) 등을 사용함으로써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
려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한 한탄(17-19
절), (2) 바벧론으로부터의 해방(20절), (3) 메시야를 통한 구원 예고(21절), (4) 청
중의 결단 촉구(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본 단락이 갖는 핵심적 내용은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예언
하는 것이다. 앞의 두 단락(1-11절, 12-16절)의 요약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한 한탄과 확실한 이스라엘의 바벧론 포로 귀환 진술에 이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사역이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의 비유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21절). 이 사역의 본질
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 사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구원을 '옛 일'로 전락
시켜 버릴 만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을 묘사함에 있어 동일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43:14-21). 그곳에서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 일'로 정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49장에서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하나님의 종의 노래를 싣고 있
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충분히 고지(告知)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은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진정한 기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여전히 영적 무지로
인해 메시지 수용을 거부한다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 없다(22절). 저자는 이와같이 유
다에게 궁극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종말
론적 희망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와 긍휼을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단에 예속된 무리들에게는 가차없이 심판하시지만, 언약 백성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마련하여 궁극적으로 구원해주신다(막 1:4;눅 24:47;행 52:31;롬 2:4;고후 7:10). 그러무로 성도는 자신의 추악함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며 담대하게 생활해야 할 것이다.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 문자적인 뜻은 '유다의 물들에서 나왔으며'이다. 여기 물줄기의 근원, 수원지를 연상케 하는 '물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비슷한 용어가 유다의 혈통을 암시하는 도 다른 대목에서 사용된 바 있다:"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민 24:7). 여기서 '유다'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출생할 것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창 49:10). 즉, 그토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백성들이 타락하였음을 강하게 책망하는 것이다.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 '거룩한 성'이란 곧 예루살렘을 가리킨다(52:1;마 4:5). 이곳이 그렇게 불리운 까닭은 성전과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 법궤가 있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거룩한 성'이라는 명칭 속에서 그곳에 사는 백성들의 행실과 성품도 거룩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Keil & Delitzsch).
=====48:3
본절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결국엔 그 일들을 성취했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그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홀연히 되어진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미래에 있을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성격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하신다(42:9;44:7, 8;45:21;46:10).
=====48:4
완악하며(* , 카솨) - 문자적인 뜻은 '굳은'인데 이것은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수소에서 그 의미를 따온 것이다. '굳은 목', '뺏뻣한 목', '얼굴의 굳음'(겔 2:4), '마음의 굳음'(겔 3:7) 등으로도 묘사되고 있는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는 상태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무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목의 힘줄은 무쇠요 - 문자적인 뜻은 '목은 쇠 근육이요'이다. 이 비유 역시 멍에를 거절하기 위해서 그 목을 뻣뻣하게 하는 황소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이마는 놋이라 - 이 표현은 흔히 수치를 모르는 매춘부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렘 3:3). 그러나 여기서는 무감각하고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렘 6:28).
=====48:5
본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치 않으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불신의 심성에 놓여져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을 입증하고도 남을 풍성한 역사적 경험과 말씀을 통한 계시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향하는 전철을 되풀이하였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48:6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 - 3-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 때문에 먼저 어떤 일을 예언하고 그 후에 그 일을 성취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 일은 이스라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 일은 1차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일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구원 사역의 완성일 것이다(Fausset).
=====48:7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 43:16-21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출애굽 사건을 '옛적 일'로 말하면서 '새 일'을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새 일'을 그토록 놀라웠던 출애굽 사건마저 압도할 만한 어떤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이라면 바벨론 포로 귀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는 구원 사역까지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48:8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 로 피트하 아제네카) - 분명히 동사 '피트하'(* )가 능동태이므로 본 구절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네가 너의 귀를 열지 않았다'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바로 앞 구절들과는 달리 귀 기울일 대상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과 특정한 어떤 사건과의 관계를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어떤 특성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번번이 영적 귀를 닫아온 민족이었다.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 문자 그대로 부면 인간 개인의 출생 당시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사실 성경에 원래부터 부패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그러나 본서가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한 단위로 보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생, 곧 국가 역사의 시초로부터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을 지적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48:9
내 이름을 위하여 -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 주신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45:4)라는 표현과 배치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위하여'가 사용된 배경은 다르다. 45:4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를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고자 하셨음을 밝히는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 구원 자체의 궁극적인 이유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른 것이다(J. Watts).
=====48:10
은처럼...택하였노라 - 여기 '택하였노라'는 '시험하였노라'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당시 제련 과정에서는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음으로써 그 찌꺼가 가라앉고 순수한 원물질만 남았다. 이와같이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것과 같은 시련이 많았지만 광물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하는 바이다(Whybray).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고 죄를 고백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아무런 효과없이 시련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다 뺐다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
=====48:11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무지 때문에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바른 계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실상 때문에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신다면 이방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神)의 승리로 착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및 이방이 전혀 알지 못한 '새일'(6절)을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것이다.
=====48:12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 41:4과 외관상으로 유사하지만 그곳에서는 '역사성'을 강조하는 '도르'(* )가 사용되었고(41:4에서 '만대'로 번역됨) 이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역사성' 보다는 온 우주의 흥망 성쇠(興亡盛衰)를 쥐고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48:13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 문자적인 뜻은 '내 오른손이 하늘을 재었다'이다. 40:12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그 능력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만물을 창조, 보존하시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그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모르실 리 없다. 자신이 만물의 흥망 성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관심을 집중시키신 후 하나님께서는 시야를 좁혀 이스라엘 영역 속에서 되어질 일을 소개하고자 하신다.
=====48:14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 위에 시행할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하는'이란 표현이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도덕적 품성을 기뻐했다거나 그가 경건한 자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도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레스에게만 적용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온전히 적용할 대상은 메시야이신 예수 뿐이시다(눅 3:22). 그렇다면 이 표현은 메시야의 예표적 인물로서의 고레스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48:15
본절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 '나'가 세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이방 왕 고레스를 선택하고 그로 흥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 되어지는 일임을 드러낸다. 원문에 보면 '그 길이 형통하리라'가 '그가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리라'라고 되어 주어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인칭의 변화는 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자 고유의 기법이다(Barnes).
=====48:16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 본 구절을 기점으로 화자(話者)가 하나님에서 본서 저자인 선지자로 바뀌고 있다.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먼저 '신'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는데 이 용어가 나온 것은 저자의 사역이 자신이 아닌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화자가 바뀜으로써 이어질 예언의 내용, 곧 17-22절이 몹시 중요한 내용임을 기대케 한다.
=====48:17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여호와라 - 본절은 저자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수식어들을 사용한 데다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직접 연이어 놓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본문의 수식어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이스라엘간의 언약 관계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르치고...인도하는 - 이 용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압축시켜 놓은 것인데, 원문에 보면 이 용어들은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괄목할 만한데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계속되는 상황을 강조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부각된다.
=====48:18
얼핏 보면 본절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 같지만, 사실은 백성에게 의도한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함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본절이 지닌 시적 성격을 드러내 보면 잘 알 수 있다. 본절에 드러난 하나님의 축복 부분만 시적 구조에 충실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강과 같았(겠)다. 너의 평강이 그리고 너의 의가. 바다 물결 같았(겠)다.' 본절의 주안점은 무한한 평강과 의에 있는 바,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축복이다. 즉, 평강과 의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에서 나타나는 축복이다.
=====48:19
18절과 본절 상반절에는 축복이 기록되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내적 축복인 반면 후자는 외적 축복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히 후자의 내용은 낯익은 것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축복을 반영하고 있다(창 22:17;32:12).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 이름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 백성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반역으로 일관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혈통적,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로 대치시키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렴풋이나마 시사되고 있는 듯하다. 즉, 언약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쥐고 있던 그 영광스러운 신정 체제는 이제 망각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림자와 모형의 시대가 지나가고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이 넌지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48:20
피하고 - 압제하는 민족으로부터 온갖 수단을 다해 탈출해 나오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놓았으니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온 자들은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땅 끝까지 그 사역을 선포할 것이다.
=====48:21
본절에는 과거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가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보증물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서 있는 시점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인 1차 독자들에게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 귀환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준하는 실제적인 보증물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이 제시하는 사건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사건을 말라해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본절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근거로 하여 20절에 나타난 앞으로 있을 구원 사역을 튼튼하게 제시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반복하지만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여호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본서가 암시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사역이란 옛날 출애굽으로 대표되는 구원 사역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역인 것이다. 이 새로운 구원 사역은 천지를 처음 창조한 하나님의 사역에 필적한 것이며, 그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 주며, 그 목적을 완성시켜 주는 새 창조의 사역임을 이미 40장 이후부터 저자가 계속 시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49-53장에 서술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48:22
여호와게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심으로 벌어질 일 중의 하나는 두 부류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부류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갈라질 것이다.
전장 하반부(47:12-15)에서는 바벧론의 국가 안전 보호 장치의 무력함을 강조함으
로써 완벽한 바벧론의 멸망을 상상케 하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장에서는 40-45장에
서와 같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14-16절). 특별히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성, 특히 구제 불능의 완고성이 강조되고 있다(4, 8절). 또한 멸망할 바벧론이 의
지했던 우상을 동일하게 숭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우매성이 지적되지만(5절) 이스라
엘은 바벧론과 다르게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이 수염됨을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는 전
장에서 우상 숭배로 멸망하는 바벧론의 운명을 진술한 반면 본장에서는 동일하게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서술함으로써 택항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점적으
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장에서는 40-46장에 이르는 동안 특징적으로 나타나던 강렬한 감정의 표현
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언급하면서 자주 이스라
엘의 완고성과 구제 불능성이 삽입되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짤막짤막한 열
거와 대배가 자주 이어지고 있음으로 이러한 급변을 분명하게 해준다. 본장에 열거된
단편적인 주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상태(1a, 12a절), 유일한 신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12, 13절), 고레스의 사명(14-16절), 얼마 남지 않은 유다의 포로 해방(20절)
등이고, 대비된 주제들로는 옛 일과 새 일(3, 5a절, 6, 7a절)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에 관한 부정적인 묘사들의 내용으로는 비신실한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1b절), 영적
완고성(4절), 과도한 우상 숭배(5b절), 교만, 반역(7b, 8, 18, 19절) 등을 들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적 특징 외에 본장은 몇 개의 명령형의 서두들에 의해 구조가 결정된
다. 즉,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로 시작되는 변론적 강화인 1-11절, '들으라'로 시
작되는 도전적인 강화인 12-15절, '가까이 나오라 그리고 들으라'로 시작되는 대화식
강화인 16절, 한 메신저에 의해 소개되는 형식을 취한 후회성 강화인 17-19절, 창
19:15과 같은 서론적 교훈과 함께 '나오라'로 시작되는 찬양인 20, 21절(52:11, 12),
짤막한 심판 강화인 22절(57:21) 등이다. 그러나 본장은 다양한 강화들로 구성되어 있
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곧,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주는 하나
님의 '새로운 사역'을 예고하고 있는 전반부(1-11절), '새로운 사역'의 내용의 일부가
바벧론 포로 귀환임을 밝히는 중반부(12-16절), '새로운 사역'의 주 내용을 예고하는
후반부(17-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이스라엘의 완고성에 관계없이 시행되는 하나님의
자비의 구원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
시대를 거쳐 출애굽 후 광야 시대를 지나 왕국 시대를 맞이하면서 선택받은 민족임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선택된 민족답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탁월한 공동체적 윤리를 실행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구원 역사를 경험한 상태에서도 조금도 변화
되지 않고 이방을 답습하여 우상 숭배에 몰입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다
(1-5절).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창 12:1-3) 당신의 이름
을 위해(9, 11절) 무조건적 구원을 시행하실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저
자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새 일' 선포 예고(48:1-11)
전장(47장)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바벧론의 죄악상으로
인하여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임을 선포했다. 반면에 본 단락에서는 바벧론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면서도 심판보다는 오히려 구원을 약속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는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과거의 구원 사역에 대해 무관심했던 이스라
엘에 대해 기술하는 전반부(1-6a절), (2) 미래에 성취될 구원 사역의 예고와 성취의
이유를 설명하는 후반부(6b-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의 강조점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과거의 구원 사역을 망각한 이스라엘의 패역함(1-6b절):이스라엘은 야곱의 후
손으로 구성되 민족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다(1절).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출애굽 사건, 홍해 사건, 그리고 광야에서의 만나, 메추라기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낸 사건 등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신실하게 보호하셨다. 그러나 이스
라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치 않는 영적 무지를 드러냈다(4절).
광야 시대를 지나고 사사 시대를 넘어 왕국 시대를 이르러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자
신들의 고집대로 행동했다(삼상 8:19;대하 24:19;30:8;렘 32:33;44:16;슥 7:11). 심지
어 하나님의 인내하심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경우 자신들이 숭배하던 우상의 덕택으로
돌렸다(5절). 결국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
판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 완고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혜(6b-11절):과거의 은혜를 망각한 이
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구원 사역을 예고하신다. 그런데
새로운 구원 사역의 성격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의 구원 사역과는
질적으로 구원되는 탁월한 것임은 분명하다(43:18).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완고한 이스라엘을 멸절하지 않
으시고 주권적 능력으로 구원시키실 것이다(11절). 이러한 은혜는 일차적으로 바벧론
포로 귀환에서 드러나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에서 완성된다.
2.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48:12-16)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지적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
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진술했던 전 단락(1-11절)에 이어 본 단락에서는 새로운 구원
사역으로서 고레스를 통한 바벧론 포로 귀환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나를 들으라'
(12절)는 다정한 명령에 이어 '가까이 나아와 들으라'(16절)는 권고를 재차 진술함으
로써 좀더 중요한 내용이 진술될 것에 대한 개대감을 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하
나님 속성에 대한 소개(12, 13절), (2) 새로운 구원 사역의 내용 소개(14-16b절), (3)
새로운 화자 등장(16b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이 취급하는 주요 주제들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선포(12, 13절):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
씀으로 창조하시고 친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구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증폭시키고 남은 자에 대해 위로를 전달하
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완고하고 어리석은 당신의 백성에 대해 섬
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내용(14-16b절):저자는 지금까지 고레스의 이름을 두 번
거명하였다(44:28;45:1). 그리고 그의 사역에 대해 이방의 나라들을 정복하는 것임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41:2, 3, 25;43:14;45:1-3, 13). 그러나 여기서는 좀더 진전하
여
멸망시킬 상대가 구체적으로 바벧론임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유다를 멸망시킬 바벧
론이 결국 고레스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됨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다.
(3) 여호와의 종에 대한 소개(16b절):저자는 본 단락 마지막 절에서 '이제는 주 여
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돌연적으로 새로운 화
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에(49장) 등장을 '여호와의 종'을 미
리 소개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새로운 구원 사역의 주체가 될 인물을 낯설지 않게 하
기 위한 사전 정지(整地) 작업으로 새로운 화자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여호와의 종으로 대변되는 메시야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3.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예고(48:17-22)
전 단락에서 고레스를 통한 바벧론 포로 귀환을 새로운 구원 사역의 일부로 소개하
는 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 사역을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의 완고성에 대해 한탄조로 성토
(聲討)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차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한
소재, 즉 아브라함의 언약을 연상케 하는 '모래'와 '모래 알갱이'(창 22:17), 광야 반
석에서 물을 먹은 사건을 연상케 하는 '강', '물결', '물'(43:14-21;출 17:1-7;시
78:15, 16, 20;105:41, 42) 등을 사용함으로써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
려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한 한탄(17-19
절), (2) 바벧론으로부터의 해방(20절), (3) 메시야를 통한 구원 예고(21절), (4) 청
중의 결단 촉구(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본 단락이 갖는 핵심적 내용은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예언
하는 것이다. 앞의 두 단락(1-11절, 12-16절)의 요약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완고함에
대한 한탄과 확실한 이스라엘의 바벧론 포로 귀환 진술에 이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사역이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의 비유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21절). 이 사역의 본질
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 사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구원을 '옛 일'로 전락
시켜 버릴 만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을 묘사함에 있어 동일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43:14-21). 그곳에서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 일'로 정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49장에서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하나님의 종의 노래를 싣고 있
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충분히 고지(告知)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은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진정한 기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여전히 영적 무지로
인해 메시지 수용을 거부한다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 없다(22절). 저자는 이와같이 유
다에게 궁극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종말
론적 희망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와 긍휼을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단에 예속된 무리들에게는 가차없이 심판하시지만, 언약 백성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마련하여 궁극적으로 구원해주신다(막 1:4;눅 24:47;행 52:31;롬 2:4;고후 7:10). 그러무로 성도는 자신의 추악함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며 담대하게 생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