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민수기 24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4:1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 이는 이스라엘을 축복한 자신의 예언들(23:7,18)에 대한 발람의 신앙적 평가라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낀체념이며 불가피한 상황 판단이었다. 사실 원래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하거나 축복하는것은 발람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발람의 다음 행동이다.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 즉 점괘나 신탁을 구하기 위해 따로 특별한 장소에 나아가지 아니했다는 의미이다(23:3,15). 발람은 어차피 지난 두번과 같이 하나님과의 교접 방법(23:3,5)을 써 보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런 과정을 이용하셔서이스라엘을 축복하실 것이 확실할 것이었으므로 이제 그 접근 방법을 달리하였다. 즉그는 하나님과 만나는 절차를 생략하는 대신 하나님과 직접적 저주를 바라거나 자신의의지에만 따른 저주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것은 아마 지금까지의 실패가 '사술'(邪術)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아, 더 이상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동정을 사게 되고 결국은 그가 바라던 저주를 가능케 할것으로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낯을 광야로 - 발람은 여전히 사특한 눈으로 지금껏 모압 광야에 머물고 있던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았다(22:1).

===24:2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 여기서 '하나님의 신'(the Sprit of God)은곧 '성령'을 일컫는다(삼상 10:6,10). 이 성령께서는 사악한 발람 위에 임하셔서 그를감화 감동시키시고 '영에 감동된 자'(inspired man, gh9:7)로 삼으셨다. 즉 하나님은발람의 첫번째, 두번째(23:5,16) 저주 시도에서는 그 입술만을 주장하셨으나, 세번째시도에서는 그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일종의 황홀경 속에서 그의 영의 눈을 여셔서당신의 메시지를 접하게 하셨다(Keil.Delitzsch). 따라서 발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도구로써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발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영(성령) 영접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삿14:6,19)과 사울(삼상 10:6,10;19:20,23)의 경우처럼 당신의 강권적인 역사로 그의 인격에 임하시고, 그에게 능력과 은사를덧입히셔서(출 31:3; 삿 3:10; 삼상 16:13),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의 장래를 예언케 하며, 또 그 주변국들의 운명까지 예언하게 하셨다. 한편 성령의 이러한 역사는 구원받은자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셔서 교제하시는 그러한 사역과는 다르지만(요14:16,17),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의인 뿐 아니라 악인의 인격까지도 지배하셔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온전히 이뤄가시는 만유의 대주재자이심을 또 한번 확증하셨다.

===24:3
눈을 감았던 자 - 여기서 '감다'의 히브리어 '솨탐'(* )은 '열다', '벗기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서 이 구절을 '눈이 열린 자' 혹은 '천리안을 가진 사내'(공동번역)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Clark, Hengstenberg 등)은 '솨탐'의동류어 '사탐'(* )이 '막다', '눈을감다', '비밀을 가리다'는 의미를 내포하고있다는 점에서 개역 성경처럼 '감긴눈을 가진 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맥의 흐름에비춰볼 때 앞의 두 견해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두 주장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 즉 성령에 감동된 발람(2절)은 외부와 통교할 수 있는 감각이완전히 막히고('눈을 감았던 자"), 대신 영적이며 내적인 감각 기능들이 개방되어('눈이 열린 자') 신령한 세계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Keil, Delitzsch,Hengstenberg).즉 그는 타락한 육신의 눈이 감겨지고 대신 성령으로 감화된(2절) 심령의 눈이 열려져'이상'을 뚜렷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4절).

===24:4
엎드려서(* , 노펠) - 원뜻은 '떨어지다', '누워 있다'이며, 상징적으로 '압도하다'란 의미도 지닌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신(the Sprit)에 압도되어 발람이영적 .육적으로 포복하고 있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 본다.
눈을 뜬 자 - 여기서 '눈을 뜨다'(* , 겔라)는 말의 원뜻은 '벗기다' 외에'발견하다'는 의미도 있다. 즉 단순히 눈을 뜬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을 발견해 간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는 3절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외부를 향하는 감각 기관이마비된 반면, 내적인 감각 기관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음올 시사한다. 한편 이러한내면(심령)의 눈이 감각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발람이 하나님의 신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엎드려서')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신령한 일은 오직 성령에 완전히 붙잡힌바 될 때에 비로소 감지할 수 있다(고후4:16-18).

===24:5
장막이...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이스라엘의 현주소는 거칠고 메마른 광야였다.그러나 발람이 바라본 것은 이스라엘의 현상적 초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 백성인그들이 지닌 내면적인 복된 상태와 미래에의 탁월한 영광이었다(사 58:11).

===24:6
그 벌어짐이 골짜기같고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곧게 뻗은 골짜기 같고'(Niv, like valleys they spread out)가 된다. 여기서 '골짜기(* , 나할)란 급류가 좌우로 힘차게 뻗쳐 흐를 수 있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위용이대단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생활용수(生活用水)가 절대 부족했던 팔레스틴의 지형 조건으로 볼 때 이러한 골짜기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에 매우 양호한 곳이었음은두말할 나위 없다(창 26:17 ; 왕하3:16 ; 시 104:10). 따라서 본 구절은 곤핍함이 없는 이스라엘의 필요한 삶을 예견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가의 동산 같으며 -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특히 식물은 수분을 절대 필요로 한다. 따라서 물이 넉넉한 강가를 따라 조성된 동산은 그 풍부한 생명력으로 인해 늘 푸르름과 넘치는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의 위용도 바로 강과 같은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에게 접맥되어 있다는 점에서 탁월할 수 밖에 없었다<시 1:3>.
여호와의 심으신 - 여기서 '심으신'(* , 나타)이란 묘목(苗木)을 동산에 심는다는 뜻으로, 이는 상징적으로 어떤 특정한 곳에 백성을 정착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미구(未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가나안에 정착시키실 사실을 예견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침향목 - 주로 인도 지방에서 자생하는 귀한 나무로 높이 3-3.7m 정도까지 성장한다.
주로 고급 향품의 재료로 사용된다(시 45:8 ; 아4:14) 백향목 - 레바논 지역에서만 자라는 매우 위품있고 아름다운 나무로서 다 높고 곧게 뻗은 자태로 인해 주로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시 92:12). 그러므로 위의 두 나무는 결국, 곧 가나안에 정착할 이스라엘의 위엄있고 찬란한 현재의 영적 상태와 미래의 축복과 영광을 예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4:7
통(* , 달레야우) - 원어상 이는 이중형(the dual)으로서, 곧 짝(pair)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말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막대의양쪽 끝에 물 담는 양동이를 매단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물이 넘치겠고 - 물이 귀한 팔레스틴의 지리적(地理的) 조건하에서 물이 풍족할것을 예견한 것은 이스라엘의 번성과 풍요와 각종 자연적 혜택등을 예언했다고 할 수있다(사44:4) 종자(* , 제라) - 문자적으로는 '씨앗'(seed)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이스라엘 후손'을 의미한다.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 생명과 번영의 근원('종자')이 물가에 있다는 것은 곧이스라엘 후손이 항상 생명의 기쁨 및 넉넉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다(신 8:7) 그 왕 - 이스라엘의 어느 특정한 왕을 가리킨다기 보다 그들이 배출할 모든 통치자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말은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왕 메시야(Messiah)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나라'란 말과 짝을 이뤄 생각해야 한다. 즉 '나라'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세울 나라로서(삼하5:3), 이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로 인해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한다. 이나라는 비록 현상적으로는 이방의 침입을 받고 상처를 입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방 세력을 괴멸하고(시 2편)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Keil,Delitzsch).
이 사실은 '진흥하리로다' - (* , 티나세)란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말은'전진하다', '높이다'란 뜻의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이스라엘의 끝없는 번영을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각 - 이는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사무엘에게 살해된 아말렉 왕(삼상 15:33)의 개인 이름이 아니라, 마치 애굽의 통치자가 '바로', 블레셋의 통치자가 '아비멜렉'이라는 왕호를 지녔던 것처럼 아말렉 왕을 통칭하는 왕호이다(Henstenberg). 한편, 그런데발람의 예언 중에 유독 아말렉 왕호가 들먹여진 것은 그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최초로 공격한 강력한 족속이었을 뿐 아니라(출 17:8,16), 그 당시 열국 중에 가장 패역한 나라로 멸망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op.cit. p189).

===24:8
하나님이... 들소와 같도다 - 23:22 주석 참조
삼키고...꺽으며...꿰뚫으리로다 - 마치 야생 들소와 같은 당당한 이스라엘의 기개 앞에 어느 누구도 맞서 싸울 수 없다는 뜻이다. 발람은 열려진 영의 눈으로(4절)이제 이스라엘이 출애굽 전의 나약한 노예 민족이 아니라, 어떤세력도 단번에 물리칠수 있는 막강하고 강력한 백성이 되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24:9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 23:24절 주석 참조.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 처음에 술사 발람에게 모압 왕발락이 걸었던 기대(22:6)가 이제 여기서 오히려 역(逆)으로 선포되고 있다. 그런데발람의 이 예언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재천명된 것이다(창 12:3). 실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약 상대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스라엘)을 복의 전달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참된 복(구원과 생명등)이 전달되게 하셨으며, 나아가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은 발락의 생각대로(22:6) 결코 외적 요인으로 인해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받을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타민족이 복과저주의 기로에 서게끔 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섭리였다. 지금 발람은 영에 감동되어 그러한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이 그러한 특권을 지니게 된 것은 장차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의 구세주, 곧 메시야 예수그리스도가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창12:2,3 주석>. 한편 이스라엘은 복의 대리자로서 이방 세계에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되심과, 당신을 찾는 자에게 복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할 특권과 의무를 지녔다(히 11:6).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교만치 말아야 했고, 오직 하나님의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매진해야 했다(벧전 2:9).

===24:10
손뼉을 치며 - 급한 마음으로 손벽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경멸과 조소의 의미를 담은 상징적 행동이다(욥 27:23; 겔21:17).

===24:11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 공동 번역은 이를 '당장 너 살던 곳으로 물러가라'로번역함으로써, 그 당시 발락의 노기 어린 심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즉 발락은 술사(術士)로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발람을 쫓아 보내려한 것이다. 한편, 그런데 이일 후 발람의 행적에 대해 31:16과 벧후 2:15;유1:11;계2:14 등에서 유추해 살펴보면,그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발락에게 이스라엘로 하여금 스스로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자행하게 하여 끝내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형벌을 받도록 만드는 사악한 술수를 조언했음을 알 수 있다(24장). 물론 그러한 발람의 부정한 계획은그대로 이뤄졌으나, 그 역시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만다(31:8). 이처럼 불의의 삯에 매달려 타인을 그릇 인도하는 자는 자신도 같은 종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마 24:54) 여호와가 그대를...
존귀치 못하게 - 발락의 이말은 지존자(至尊者) 하나님께 대한극도의 모욕이요 힐난이다(Clalk). 즉 발락은 하나님이 발람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음으로써, 발람이 얻을 수 있었던 재산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고 빈정거렸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인간과 아귀다툼이나 하는 하급 신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24:12,13
사자들에게...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 이는 22:18을 두고 한 발람의 자기 변호이다.

===24:14
어떻게 할 것을..고하리이다 - 발람은 끝내 발락의 나라 모압이 멸망할 것을 알고있었다(17절). 따라서 그는 모압이 멸망 당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스스로 붕괴되도록 하는 묘책을 발락에게 주지시키려 했다(25장;31:16).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는 모압과 이스라엘과 근동 지역의 미래에 대한 개괄적 예언을 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고하리이다'는 말은 '충고하겠읍니다'는 말로 번역함이 좋다(Calvin,Ainsworth). 한편 그러한 발람의 예언을 간추리면 (1)이스라엘에 한 별, 곧 메시야가오시리라는 것(17절) (2)모압. 에돔, 아말렉, 가인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18-21절), (3)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 된 셈(22절), (4)깃딤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헬라인)이 앗수르와 에벨(셈 족속)을 괴롭힐 것(23,24절)등이다.

===24:15
발람은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전처럼(3, 4절) 예언 서두에 하나님께로부터 영감받은 사실(2절)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네번째 예언의 서언(15, 16절)은 세번째 예언의 서언(3, 4절)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자세한 주석은 그곳을(참조하라). 다만 이곳에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란 수식어가 덧붙여 있을 뿐이다.한편 비록 발람의 예언 동기와 태도는 불경스러웠으나, 그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예언만은 영감된 신적 권위를지녔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 이 말은 발람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영은 이미 세번째 예언시 발람에게 임한 영이었다.(2절). 즉 그때 임한 영이 아직도 발람을 주관하고 있어, 이 네번째예언까지도 그 효력을 발했던 것 같다. 따라서 세번째 예언(3-9절)과 네번째 예언(15-24절)과의 시간적 간격은 극히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네번째 예언 후 분명 하나님의 영(the Sprit of God)은 이방의 간교한 술사 발람을 영원히 떠나갔을 것이다.

===24:17
이때의 일이...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 여기서 발람은 한 별의 출현과 한 홀의등장이 이미 일어난 일이나, 혹은 미구에 일어날 일이 아님을 두 병행 구절로 분명히묘사했다. 즉 한 별(=한 홀)의 출현은 먼 '후일에' 일어날 일이었다. 한편 발람은 예언의 핵심어로 '그'는 불특정 3인칭 대명사로 표현되는 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뒤와연결시켜 볼 때 '그'는 분명 이스라엘의 궁극적 희망인 '메시야'(Messiah)를 지칭한것으로 보인다.
즉 '별'은 성경에서 왕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며(마 2:2; 계22:16), '홀'(* ,쉐베트) - 한 나라의 통치적 주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지휘봉이다(창49:10). 따라서 이는 결국 이스라엘(야곱)의 혈통을 따라 만백성의 '왕'(통치자)으로임재하셔서 나라들을 통치하시고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심판을 내리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품격을 예시한다(사42:1-9; 계22:16).
모압 - 현상적으로는 발락이 통치하는 사해 근방의 민족을 가리키지만, 총체적으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여기 모압(Moab)은 그러한 적대 세력들을 대표하는 주동적인 민족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현재 이스라엘을 저주코자 하는 모압 왕 발락의 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바이다.
소동하는 자식들(* , 콜 베네 쉐트) - 직역하면 '셋의 모든 자식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셋의 후손들'이란 아담의 셋째 아들(창 4:25)인 셋(Seth)의자손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 특별히 모압 자손을 가리키는 말이다(Ca-lvin). 여기서 '모압 자손'이 '소동하는 자식들'로 이해된 것은 그들이 호전적이고교만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한편 발람은 이같은 용어를 사용해 교만하고 분쟁을 좋아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려던 발락과 그의 나라 모압을 힐난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호전적인 모압 족속은 넓은 의미에서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열방세력을 암시하며 더 나아가 주의 복음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발람의 예언에서볼 수 있듯이 한 홀, 또는 한 별이신 메시야의 도래로 결국 그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마 3:10,12;요3:18,19).

===24:18
원수 에돔...원수 세일 - 여기서 '세일'이란 에돔 땅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남북으로 아카바만 어귀까지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데, 결국 앞의'에돔'이란 말과 대구(對句)를 이루며 '에돔 족속'을 상징한다(창 32:3;36:8). 한편에돔 족속은 이삭 계열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이지만 전날 이스라엘이 자국의 영토를 통과하고자 할때 적극적으로 방해함으로써(20:40-21;신2:4), 비록 멸망이예고된 가나안 7족속은 아니나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에돔 역시야곱에게서 나올 '한별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들의 '산업'과 더불어 최후를 맞게 될운명이었다. 이처럼 비록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 곧 순종치 않는 자는 멸망을 면할 수 없다(롬2:28,29).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 오세 하일) - 직역하면 '권력(힘)을 가지고다스릴 것이다'이다. 즉 에돔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를 시사한다(삼하8:14;대상18:11-13). 그런데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는 다윗 왕 시대 때로부터 분명히현실화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유대 하스몬 왕조시대 때 요한 힐카누스(JohnHyrcanus)로 말미암아 에돔(이두매)지역이 유대 영토로 귀속되면서 완전히 성취되었다(B.C.129년, Joesephus). 그러나 구속사적으로는 메시야의 출현과 그 통치로 말미암아에돔으로 상징된 악의 세력들이 완전 십자가 아래 굴복될때에야 비로소 성취될 것이었다.

===24: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 여기서 '주권자'란 '짓밟다', '정복하다','통치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라다'(* )에서 유래한 말로, 곧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한 절대권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어느 특정 왕을 가리키기보다 하나님이 인준하신 이스라엘의 왕권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17절에 '홀'과 '별'로 상징된 바 곧메시야와 그 통치를 나타낸다. 진정 메시야는 야곱의 혈통을 빌어 나셔서(롬1:3;9:5)온 세상을 당신의 강력한 주권으로 통치, 심판하실 것이다.
남은 자들 - 곧 에돔 족속 중 멸절되지 않고 남은 무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최후 심판대 앞에 설 사단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결국 한 의(義)의 주권자에 의해 종래 멸망하게 될 것이다(왕상 11:16).

===24:20
아말렉을 바라보며 - 이는 발람이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힌 바 되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으로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곧 심령의 눈으로 아말렉의 미래를 바라본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적으로 발람이 아말렉 족속이 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을가능성도 있다. 아말렉은...
으뜸이나 - 크노벨(Knobel)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실제 아말렉(Amalek)이 그 역사와 힘과 명성에 있어서 열국 중 가장 탁월했다고 하였으나(Keil & Delitzsch, Vol. I-iii. P.195), 실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역사에 자주 나타나는 에서 계열(창 36:12))의 한 베두윈(Bedoudin) 족속 아말렉은(삼상 15장) 결코당시의 상황으로 볼때 주변 열강들보다 탁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발람의 예언 속에서 '열국 중 으뜸'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들이 열국 중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을 '최초로' 괴롭힌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이스라엘의 적대국이되었고 끝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대상이 된 민족이었다(출17:8,16).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 역사적으로는 사울 왕 시대 때로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하여 히스기야 시대 때 완전 성취되었다(Keil & Delitzsc, Ibid). 그러나 영적으로는 한 의(義)의 주권자(메시야)로 말미암아 최종 이루어질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말렉 역시 모압, 에돔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적대시한 바 곧 사단의 세력을 상징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24:21
가인 족속 - 여기서 '가인'은 히브리어의 정확한 발음으로 '케니'(* ,겐족속)의 어원(語源)이 되는 '카인'(* )으로서 결국 '겐 족속'(Kenites)을 지칭하는 말이된다. 그런데 이 족속이 가나안의 '겐'인지(창15:19) 혹은 미디안의 '겐'인지(삿1:16;4:11) 분명한 성경적 근거는 없으나, 뒤에 연결된 내용으로 보아 모세의 처가(妻家)가 속한 미디안의 겐 족속으로 추론할 수 있다(Calvin). 즉 이어지는 발람의 예언속에서 이 족속은 이스라엘의 우호 족속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Hofmann).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 여기 등장하는 가인(겐) 족속을 미디안의 겐 족속이라 볼 때, 이 말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거처가 바위가 많은 호렙 산주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Keil &Delitzsch). 그러나 발람의 이 예언은 보다비유적인 표현으로서, 곧 이는 가인(겐) 족속의 삶이 평탄할 것을 가리킨다(Hofmann).그들은 모세의 처가가 속한 족속으로서 매우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모세의 처남 호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10:29-32).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타민족처럼 적대적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보금자리는 대체적으로 견고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복 또는 저주를 받게 될것이라던 발람 예언(9절)의 현세적 열매이다.

===24:22
어 '키 임'(* )을 부정적 의미의 간접 의문문으로 해석했다(왕상 1:27;욥31:16;사29:16). 따라서 그는 본절을 '앗수르의 포로가 될 때까지 어찌 가인이 쇠미할것인가?' 라는 뜻으로 보았다(Vol. I-iii. p.197). 한편, 그런데 여기서 '쇠미하다'의원어 '바아르'(* )는 '불을 붙이다', '먹어 버리다', '잔인하다'는 뜻으로 서서히 괴멸해 가는 상태를 일컫는다. 사실 당시 가인(겐) 족속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무리들로서 우상을 숭배하는 다른 이방 족속과 별 차이가 없었다. 비록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우호적인 관계로 인해(삼상15:6) 순간의 안녕<21절>은 누렸었으나, 불신앙의 무리였다는 점에서 끝내 멸망에 이를 것이었다.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 후일 그들 분파 중 일부 납달리 지역에 거주한 자들은 실제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정복된후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다(왕하15:29).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여기 앗수르가 세상 열강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겐 족속이 그러한 열강들에 의해 멸절되리라는 의미이다(Keil)

===24:23
슬프다...이 일을 행하시리니 - 발람은 자기의 동족 역시 장차 멸망당할 것을 이상으로 깨닫자(24절), 그 심판의 준엄함과 비참한 결과로 인하여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다. 공동 번역은 이때 발람의 심경을 '푸념하듯이 읊었다'라고 적절히 표현하였다. 그는 동족애로 인해 회복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 이는 장차 임할 세계적인 대심판의 준엄함과 처절함을단적으로 시사한다(Hengstenberg). 특별히 여기서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행하시기로 '작정한 때'를 가리킨다(LXX, Vulgate)

===24:24
깃딤 해변에서 - '깃딤'이란 지중해의 '구브로'(Cyprus) 섬을 일컫는다. 이 섬은통상 성경에서 '서방의 섬'이란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데(렘 2:10;겔27:6;단11:30)당시 베니게 해상 교역의 주요 기항지였다. 따라서 서방에서 동방 쪽으로 항해하는 모든 배들은 일단 이곳을 거치게끔 되어 있었다(Keil &Delitzsch, op. cit. p 198). 따라서 발람은 '앗수르'와 '에벨'을 학대하고 괴롭게 할 세력이 '서방 쪽에서' 오리라는예언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서방(西方)의 나라가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는 예언되고 있지 않다. 한편 역사적으로는 마케도냐의 알렉산더가 B.C 4세기경 근동지역을 점령했을 때, 헬라인들이 유대와 앗수르를 괴롭힌 적이 있다. 그러나 팔레스틴탈굼(the Palestinian Targum)과 벌겟역(the vulgate)은 이 나라를 '이탈리아'(로마)로 언급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 여기서 '에벧'(* )의 문자적 의미는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이다. 따라서 혹자(Onkelos)는 여기 '에벨'이 '유프라테스 강건너' 쪽의 민족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 말이 칠십인역(LXX)과 벌겟역(Vulgate), 그리고 페쉬타역(Peshtta)이 취하고 있듯이, 순전히 '히브리인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발람은 그 민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이스라엘' 혹은 '야곱'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여기'에벨'은 아마 '에벨 온 자손'(창10:21) 곧 셈족속의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인듯 하다.이런 견지에서 카일(Keil)은 여기서 '앗수르'는 유프라테스 동편에 위치하는 겐 족속의 대표로, '에벨'은 서편에 위치하는 셈 족속의 대표로 각기 사용되었다고 보았다(Penteuch, Vol. I-iii. p. 199). 한편 여기서 학대하며...괴롭게는 원어상 둘다 '멸시하다', '거칠게 대하다', '모욕하다' 등의뜻을 지닌 히브리어 '아나'(* )에서 파생된 말인데, 이말은 일찍이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예시될 때 적용된 단어이다(창15:13).
그도 멸망하리로다 - 서방쪽(깃딤 해변 쪽)에서 올 막강한 세력(헬라 ?)도 역시멸망될 것이 예언되었다. 실제로 헬라인들은 후에 발흥한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앗수르에서 바벨로니아로, 그에서 폐르시아, 헬라, 로마로이어지는 근동의 패권자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이러한 B.C.1400년대의 예언은 그후 A.D.1세기 전까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비록 '세계'란 무대 위에서 최후 승리한 강국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세상 나라 역시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 곧 메시야(Messiah)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말미암아 멸망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는 오직 그분이 통치하시는 '홀'(笏)만이충만하게 넘칠 것이다.

===24:25
발람이...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 이말은 실제 발람이 400마일(약 640km)이나 되는먼 자기 고향으로 곧장 되돌아 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단지 발람이 자기 고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의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따라서 이후 진행되는상황으로 보면 발람은 예언 직후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신23:4)로 가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발람에게로 인도해 왔던 미디안 장로들과 함께 미디안 땅으로 갔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사악한 꾀를 발락에게 일러줌으로써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주(심판) 받도록 했다(계2:14).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후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에 그는 미디안 다섯 왕들과 함께 그곳에서 죽임을당하였던 것이다(31:7,8). 한편 행스텐베르그(Hengstengbrg)는 발람의 이후 행적을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다. 즉 발락 해어진 발람은 자기의 예언이 이스라엘에게 길(吉)함을 알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찾아가 그 예언의 의미를 풀이해 준뒤, 발락이 보장해 주었을 부(富)와 명예를 모세에게 요구하다가 거절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 격분한 그는 이스라엘에게 보복하기 위해 미디안 족속에게로 가서 사악한 꾀를 베풀어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Vol. I-iii. p.203)

 

 

 

  발람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상 숭배 관례에 근거해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
써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였었다(23
장). 본장은 바로 그러한 발락과 발람의 어리석은 계획이 좌절된  이야기가  계속되며
나아가서 그 허무한 결말이 다뤄져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발람은 첫번째, 두번째 예언 방법과는 달리 사술을 쓰지 않고 이번에는 하나
님의 뜻을 거스려서라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1절). 그러나 오히려 그는 직접 성
령에 감동되어 이스라엘의 힘차고 아름다운 위용과 축복된 미래를 예언하게  된다(2-9
절). 이에 대해 발락은 극히 분노했고 발람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게 된다(10-14절).
더불어 그는 제 4 예언, 곧 야곱의 별에대한 내용과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장래에
관한 예언까지 하게 되는데(15-24절), 특히 야곱의 별에 대한 예언은 장차 도래할  메
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발락과 발람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각기 제곳으로 돌아간다.(25절).
  그러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악한 계획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탐욕의  마
음으로 가득찼던 발람은 발락과 헤어지기 전에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불의(不義)의 재물을 취하였다. 즉 발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들이므로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범하
도록 유혹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 징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
여 그는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음행(淫行)으로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하는(25장) 간교한
계략을 알려 주었다(31:6;계 2:14). 발람은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역사속에서  재물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거역한 대표적인 인물로 낙인 찍히게 된다(벧후 2:15;유  1:11).
여하튼 발람의 행적은 물질을 사랑하는 자의 자기 멸망에 이를 때까지의 어리석고  끝
없는 욕망의 행진(약 1:15)과 거룩한 백성에 대한 악한 세력들의  끝없는  도전이라는
이중적인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 발람의 세번째 예언(24:1-14)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람의 첫번째, 두번째 예언에서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축복의 말씀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다(23:5,16). 이에 비해 본문의  세
번째 예언에서는 사술을 쓰지 않는 발람에게 성령께서 직접 임하셔서  계시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1,2절). 그 계시의 주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막의 아름다움과 그
위용, 곧 삭막한 광야에서 안식과 풍요를 공급하는 옥토와 같고 그 어떤 세력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찬 이스라엘의 탁월성에 관한 것이다(2-9절).
  한편 기대했던 내용과는 전혀 반대적인 예언을 전하는 발람의 말을  들었던  발락은
손뼉을 치기까지 하며 극한 분노를 표출한다(10,11절). 이에 대해 발람은 위선된 말로
극구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기에 이른다(12-14절).
  이처럼 발락과 발람의 사악한 모략은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데 그들의 실패는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오직 여호와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해 되어진 것이다.  그리
고 이러한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얼마나 성실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지를 보여 주는 위대한 사랑의 실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서 역사의 키를 잡으신 채 당신의 선하신 뜻과 경륜에 따라 당신의 영
광된 목적을 성취해 가신다.

  * 야곱의 장막이 아름다운 이유. 인간의 참된 아름다움은 진정 외모가 아니라  그의
내적 영혼의 품위와 격조에서 보다 깊이 드러난다. 아가서에 의하면 술람미 여인도 외
형적인 아름다움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솔로몬의 큰 사랑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지극히 사랑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 '나의  어
여쁜 자', '나의 비둘기'라고 묘사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술람미
여인의 심령은 솔로몬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할 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을 창조하시면서(잔 2:27) 그 영이 이성과 감정과 의지
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생활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창
조시에 부여받았던 그 조화와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었다. 즉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
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영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반면에 타락한  유체와
마음(렘 17:9)이 원하는 것만을 행함으로써 더욱 부패하여  갔다(갈  5:16,17,19-21).
따라서 인간은 영과 마음의 조화가 보여 주는 인격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
고 교만과 허영과 권세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기 위하여 각종 죄악을 스스럼없이  자행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추악한 인간 개혁을 위한 한 조처를  결행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인간성 회복이 그것이다(고후 5:17). 범죄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그의 마음은 새롭게 변화되며, 더욱이 성
령께서 그의 심령 가운데 생명의 법으로(롬 8:2) 내주(內住)하시기 때문에 다시  하늘
에 속한 신령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곳, 그분
이 임재하시는 인격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변화의 싹이 돋아나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
께서 내주하시는 개인이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공동체(교회, 마 18:20;엡  1:23;골
1:18)는 부패된 세상에서 아름답고 고상한 존재로 나타나며 어둡고 썩은 세상에서  빛
과 향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본장에서 발람이 이스라엘의 진영을 보고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한 것(5,6절)도
바로 그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숱한 원망과 죄악
을 저지른 그야말로 형편없는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그들의 죄를  용
서하시며 끝끝내 당신의 영광스런 백성 삼기를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
해 계셨다. 그 때문에 그들의 모습은 사악한 인간이 보기에도 영광스럽고 지복한 존재
로 보여졌던 것이다.

   2. 발람의 네번째 에언(24:15-25)
  바로 직전,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된 미래와 아름다운 위용에 대해 예언한(3-9절) 발
람은 이제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의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자
신의 임무를 종결짓는다.
  이러한 본문은 몇 개의 예언을 주축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예언자 발람이 자신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 내용(15,16절),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
자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17절),    이스라엘이 모압, 에돔, 아말렉 족속에게
기필코 승리하리라는 예언(17-20절),    가인 족속이 앗시리아의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21,22절).    메소포타미아 지역(깃딤)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앗시리아와 에벧(셈
족속)을 괴롭힐 것에 대한 예언(24절).    이러한 예언을 마친 발락과 발람이  허무한
발길을 돌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가는 장면(25절) 등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해치려는 세력을 통하여서도 앞으로 당신이  진
행시켜 나가실 놀라운 경륜을 펼쳐 보이셨는데 이는 곧 진정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만을 지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온 세계와 인격과 인류의 운명을 관할하시는 만왕의  왕
이심을 보여 준 뜻깊은 사건이었다(행 17:26).

  * 예언자 발람의 자기 소개. 발람은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을 함에 앞서  두번씩이나
(3,4,15,16절) 예언자로서의 자신에 관해 소개하였다. 그의 이러한 자기 소개를  살펴
보면 곧 다음과 같다.
     눈을 감았던 자-이는 발람이 자신의 육체의 눈은 감겨졌으나 대신  그의  심령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계시를 뚜렷이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뜻
은 죄로 어두워진 인간의 시각으로는 결코 감지할 수 없지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영안을 통해서는 마침내 확연히 볼 수 있다(고후 4:16-18).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심령의 눈이 뜨여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자
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이다. 특히 이러한 기능을 인간에게  부여
하시는 분은 성령으로서 그분은 어두워진 인간의 영안을 밝히실 뿐 아니라 진리를  깨
닫게 하시고 또한 밝히 알도록 가르치신다(요 14:17;15:26;16:13;요일 2:27).
     지극히 높은 자의 지식을 아는 자-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알며 그분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는 영적으로 완
숙한 단계를 가리킨다(벧후 3:18).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계시하기 위해서  특수한
때에만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보는 자라는 뜻이다.
  이처럼 발람은 자기를 가리켜 철저히 하나님의 뜻만을 보고 듣고 깨달아 전하는  자
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가 자신의 전 의지를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드린 결과
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뻗대어 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굴복시키고 만 것이다. 즉 그는 성령의 완전한 지배를 받아 자신의  어리석은  소욕은
실현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만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
은 의인 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역사하시는, 모든 인격들의 주관자가  되신다.  또한
성령에 강권적으로 사로잡힌 자는 중생 여부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삼상 19:23).

  *야곱에서 나온 한 별.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별'에 관한 예언은 구약의  대부분
의 예언(17절)이 그러하듯 이중성을 가진다. 즉 이 예언은 일반적인 역사성을 지닐 뿐
아니라 영적인 측면, 곧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오늘날의 신약 시대와 최후  심판에까지
연결되는 등의 이중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
시 각 세부 사항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또 그것이 영적으로는 어떻게 성
취되는지에 괸해 동시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여기서는 주로 영적거 측면을 살피기로 하겠는데, 흔히 성경에서는 별이 왕의  위엄
과 영광을 나타내는 자연적인 표상(表象)으로 이해된다(마 2:2). 따라서 이는 결국 이
스라엘의 참된 통치자이신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확증이라도 하듯이 예수님께서 이땅에 탄생하실 때에 베들레헴  마
굿간 위에 이상한 별이 빛났었다. 또한 예수께서도 친히 자신을 가리켜 '나는  광명한
새벽 별'(계 22:16)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실로 밤 하늘에 빛나는 별로 인해 어두운 세상이 밝은 빛을 얻을 수 있듯 죄악의 어
두운 밤을 맞은 이 세상은 영광과 위엄을 지니시고 모든 불의한 세력을 깨뜨리셔서 당
신의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참
빛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인류의 참된 통치자와 주관자시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것이다(삼하 7:12-16;렘 30:9;겔 34:24;37:24;효 3:5).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