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정월에 - 출애굽 제 40년째 되는 해 1월(아빕월)을 가리킨다. 이것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호르 산으로 진행했고, 거기서 아론이 죽었는데, 그 연대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로 기록된 사실에서 확인된다(33:38). 한편 아빕월은 오늘날 태양력 3-4월 쯤에 해당되는 봄철이다.
신 광야에 이르러서...가데스에 거하더니 -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8:15)라는별칭을 지닌 '신 광야'는 대부분이 불모의 땅으로서 가나안의 남방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34:3, 4;수 15:1). 그리고 이 지역의 한 귀퉁이에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13:26;14:28-35)가 위치해 있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말미암아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고, 이제 그 38년간의 징계의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그 땅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다음 도착지인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아론이 죽었는데, 그때가 5월 1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33:38), 이스라엘 백성들은아마 이곳 가데스에서 약 3-4달 가량 머문 것 같다. 그리고 체류의 주된 이유는 미리암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기간 때문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26:59), 어릴적에는 갈대 상자에 넣어져 강에 떠내려가는 동생 모세를 보호한 적이 있었고(출2:4), 후에는 이스라엘의 여선지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적 인물이다(출15:20;미 6:4). 그러나 한때는 교만한 생각으로 아론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전권대사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민 12:1). 아마 그의 마지막 생이 이처럼 간략히 서술된 것도 그 일에 대한 견책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리암이갈상자에 담겨져 떠내려가는 모세를 지켜보고, 또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알선해 준점에 비추어 볼 때(출 2:7), 아마 그녀의 나이는 모세 보다 10살 정도는 위였으리라추측된다. 따라서 이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므로, 미리암의 나이는 130세정도는족히 되었을 것이다.
===20:2
물이 없으므로 - 팔레스틴 남쪽 변방에 위치한 '가데스'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지역으로 본래 좋은 샘(시내)들이 여러 군데있었다. 따라서 출애굽한 백성들은 주로이곳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생활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긴 방랑 생활 끝에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당연히 물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해에는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든 샘과 시내가 말라버렸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History). 따라서 백성들은 마치 곧 죽을듯이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때 백성들이불평했던 장소에 대해 시 106:32에서는 정확히 '므리바'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도 식수가 없다는 이유로 해서 백성들은 불평한 적이 있었다(출 17:1-7). 물론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
공박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 )은 단순히 전치사로서 '...에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against)이라는 뜻이다. 곧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킬 자세로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대들면서 원망하였던 것이다(16:19, 42).
===20:3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 이는 10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 이후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그 당시 20세 이상이던 구세대가약 37년간 광야에서 죽어가던 상황을 가리킨다(13:25;14:26-35). 따라서 이러한 백성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들 조상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 백성들의 경솔하고도 배은 망덕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인내와 믿음'이었다(약5:7-11).
===20:4
너희가 어찌하여...이 광야로 인도하여 - 백성들의 역사 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반영한 말로써 진정 노예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불평이다. 아울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은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불신앙의 외침이다. 더욱이 이 말은 출애굽 초부터 계속되어온 불평인데(출14:11;16:2, 3;17:3), 광야 40년 동안에도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완악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로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이보이신 기적이 부족해서가 하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없기때문이다.
여호와의 총회 - 여호와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회중을 가리킨다. 16:2 주석을 참조하라.
===20:5
악한 곳(* , 하마콤 하라)- 직역하면 '아무 쓸모 없는 땅'. '해(害)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즉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는...없고 ...없고...없고...없고...
없도다 - 백성들이 머물렀던 가데스는그들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눈으로그곳을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곳은 모든 것이 넘치는 충만의 장소였다. 즉 그들에게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계약 백성으로서의 미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정적인 발언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말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분명히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셨지, 그들의 말대로 '죽음의 땅'을 약속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출 3:8;13:5). 그런고로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현실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히 11:1).
===20:6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나타나며 - 14:5, 10 및 16:4, 19 주석을 참조하라.
===20:8
지팡이를 가지고 - 이 지팡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17:8)가 아니라, 출애굽 당시모세가 바로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던 그 지팡이(출 7:15;9:23)를 가리킨다. 그리고이 지팡이는 '르비딤 물 사건'에서도 사용되었었다(출 17:5). 그러므로 모세는 이 지팡이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보통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때는 이 지팡이를 땅에 내려 놓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이'지팡이'는 그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의 목전에서 - 여호와의 이적이 공개적으로 실행되어 그의 영광과 능력을 여러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참된 능력과 진리는 항상 떳떳하여가리울 것이 없다.
반석에게 명하여 - 여기서 '반석'(* , 셀라)이란 '바위' 외에 '높은 요새'란의미도 지닌다. 그러므로 이것은 출 17:1-7의 르비딤물 사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반석'(* ,추르), 곧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다란 바위임을 짐작할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지 그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는 명령만을하도록 당부하셨다. 그 이상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장;히 11:3). 그것을 운행하시는(롬 11:36)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20:9
그 명대로 - 출애굽 후 지금까지 모세의 순종은 완벽했다. 그러나 11절의 결정적인불순종으로 인해 모세는 그가 이때껏 쌓아 올린 순종의 아름다움을 산산히 부수어 놓고 말았다. 이는 상징적으로 율법 준수의 한계를 암시한다. 즉 율법 계시의 전수자요, 공포자인 그도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가나안 입국 실패는 이러한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하겠다.
===20:10
패역한 너희여(* , 함모림) -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할 수 있다. 즉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시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스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지나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시 106:33). 따라서 이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12절>.
===20:11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 모세는 순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 두 번 내리쳤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이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과(10절)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절),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댔다.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냄으로써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런 처사라 할 수 있다(시 106:32, 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하나의 죄목이었다(12절). 한편 구약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매'를 맞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영생수를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셰가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덧붙혀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가데스의 거역만 범하지 않았던들, 그가 가나안 땅에들어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한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바를 온전히 이루셨다.
===20:12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28절).
나를 믿지 아니하고 -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절) 하나님을 불신앙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못하고, 교만히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절>을 두고 한 말이다. 어쩌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치 않는 것도 불신앙의 한단면인지 모른다.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에게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던 것이다. 너희는...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있는 영예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다(28절;27:12-14;신 32:48-52).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한다.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마 17:3).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율법 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롬 3:28).율법은 단지 우리를 가나안(천국)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할 뿐이다(롬3:20;갈 3:24, 25).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구속사의 대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다른 뜻이었다.
===20:13
므리바 물 - '므리바'(* )란 '다투다', '싸우다'는 뜻의 '리브'(* )에서 나온 말로서, 곧 '다툼'. '투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다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킨다(27:14;신 32:51). 따라서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한 것과는 다르다(출 17:7). 그러나 물 때문에 마음이 상한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은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 사건 자체와 의미는 상호 밀접히 연관된다. 출 20:1-7 주석 부분참조.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한 아론과모세를 징벌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대로 물을 공급하사 불평을 일추시킴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증명하셨다(Keil).
===20:14
에돔 왕에게 - '에돔'은 이삭의 아들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거주지 또는 그 민족의이름이다(창 25:22, 23). 그리고 에돔의 위치는 그 당시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가데스의 동북쪽에 있었으며, 사해(死海)에서 남쪽으로 홍해 동북면 아카바 만에 미치는 산악 지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통과하여 가나안 동편, 곧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에 진격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가데스에서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는길은 매우 험준하고 가파른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돔지역은'약속의 땅'에 포함되지 않은 곳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관심 밖의 땅이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왕'이란 말은 왕정 시대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한 지역을 통괄하는 족장(ruler, chief)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이들은 창 36:15-19에 언급된 14명의 우두머리들 보다 그 권위가 큰 족장이었던 것 같다(대상 1:43-54). 한편, 약 300년 후 사사 시대 당시 입다의 진술에 의하면, 이때 모세는 모압 왕에게도 역시 사자를 보내어 관할 지역 통과 요청을 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삿 11:17). 그런데 본 민수기의 기록에는 그 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아마 에돔 지역의 통과가 불가능하다면 설사 모압 지역의 통과가 허락된다 하여도 별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에돔 지역의 통과 사실 여부에만 그 기록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Hengstenberg, Pulpit, Commentary).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 공동 번역에는 이를 '당신의 아우 이스라엘이오'라고 기록했다. 즉 모세는 조상 야곱과 에서(에돔)의 혈육의 정을 근거로(신 23:7) 상당히 친근하게 에돔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이다<신 2:4-8>.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 - 여기서 '고난'(* ,텔라아)은 '지치다'란 뜻의 히브리어 '라아'(* )에서 파생된 말로서, 산고(産苦)와 같이 괴로운 '진통'(KJV,travail)을 의미한다. 실제 이 '고난'은 15절에 언급된 애굽 치하에서의 압제당한 사실을 가리킨다(출 2:23).
===20:15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 야곱과 그 일행 70명이 요셉의 초청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일을 말한다(창 46:1-27).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 야레우 라누) - '우리에게 악을 행하였다', '괴롭혔다'(KJV, vexed), '거칠게 다루었다'(RSV, dealt harshly)로 번역할 수있다. 애굽인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히브리인들을 모질게 취급했음을 의미한다<출1:8-14>.
===20:16
천사를 보내사 - 혹자는 이 '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이해하기도 하나(Knobel), 그렇지 않다. 여기서 '천사'는 이스라엘 역사의 고비 때마다 결정적으로 나타나사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언약의 그 천사' 곧 '제 2위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 즉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직접 개입하여 애굽의 장자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출 12:23). 그러므로 지금 모세는 출애굽의 대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은혜로 되어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의 변방...가데스에 있사오니 - 여기 '변방'이란 에돔의 서쪽 경계이며, 사해의 남서쪽이라 생각된다. 이곳은 가데스 바네아의 북동쪽 끝단으로서, 만일에돔이 이곳까지 관할하였다면 그 당시 그들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17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 모세는 사해 남쪽에 위치한 에돔 땅을 지나요단 동편(Trans Jordan) 지역으로 진입하려 했다. 따라서 그들이 들어가려 했던 곳에는 '에돔'과 더불어 사해 동쪽의 '모압' 및 요단강 상류 동편의 '암몬'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모압과 암몬사이에는 '아모리 남 왕국'이, 그리고 암몬 북쪽 바산 지역에는'아모리 북 왕국'이 각각 그 세력을 굳히고 있었다. 이들 왕국들은 세력권 다툼에 온힘을 쏟았으며 최근엔 아모리 남 왕국이 모압을 쳐 아르논 강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다(21:26). 모세는 이같은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에돔과 모압으로 통하는 대로(大路)로 자신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14-21절;삿 11:17). 즉 아모리 왕국이 강해져 가는 것을 에돔과 모압이 우려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에돔 왕이 모세의 소청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세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한 후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두 왕국의 적대국인 아모리와 충돌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즉 모세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적 실리를 위해서라도 에돔 왕이길을 터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밭으로나...
마시지 아니하고 - 즉 통과시 도로만 이용할 뿐 통과 지역에 털끝만한손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말이다<19절>.
왕의 대로(대로)만 통과하고 - '왕의 대로'(King's Highway)란 고유 명사로서,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 북쪽으로부터 아모리와 모압과 에돔을 통과하여 아카바 만의 어귀인 '에시온 게벧'에 까지 이르는 거대한 국제 도로를 일컫는다. 이 도로는 아마도 군사적 목적으로 주변 국가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화시에는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를 왕래하는 대상(隊商)이 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200만명 이상의 백성을 진행시켜야 하는 모세로서는 이 넓은 길이 행군에 절대적으로 요청되었을 것임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8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 에돔왕은 오랜 민족적 감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통과를 불허했다(창 27:41). 더욱이 그는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통과를 저지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이러한 적대 행위로 인해 후일 그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옵 1장).
===20:19
대로(* , 메실라) - '돋운 길'(사 49:11)이란 뜻으로서, 군사 또는 무역용으로 닦은 길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왕의 대로'를 지칭한다<17절>. 이 대로는 오늘날에도 '왕의길'(Derb es Sultan)이라 일컬어진다.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결코 아무 일도 아니다'란 뜻이다. 즉 '왕의 대로'만 사용할 뿐 더이상 바랄 것도 피해 줄 것도 없다는 뜻이다.
===20:20
강한 손으로 막으니 - 에돔 왕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행군을 재개하자에돔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강한 무력'(RSV, a strong force)으로 이스라엘의 진입을막았다.
===20:21
이스라엘이...돌이키니라 - '왕의 대로'가 그토록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에돔과 접전하지 아니하고 쉽게 행군 방향을 돌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찍이하나님께서는 세일 산을 중심한 에돔 땅을 에서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며(창 36:1, 8, 9) (2) 하나님께서 형제 민족의 땅을 탐하거나 침범치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신 2:4, 5;23:7). (3) 하나님께서는 소모적인 전쟁을 막으시고, 가나안7족속의 징벌(신 7:1)을 위해 힘을 비축케 하셨기 때문이다. (4)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주관자도 되시는 분으로서 이번 경우오직 정의와 평화의 원칙으로 이 땅을 통과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22
호르 산에 이르렀더니 - '호르산'은 에돔 변경에 위치한 곳으로(23절;33:37). 가데스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에벧 마두라'(Jebel Madurah)로 추정된다.이 산은 가데스에서 모압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도로상에 있다.
===20:23
에돔 땅 변경 호르 산 -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使臣)을 보낸 모세는 아마에돔 왕이 허락해 줄 것으로 간주하여<17절>, 회보가 올 동안 당시 에돔 국경을 형성하고 있던 아라바 지역의 호르 산까지 진행했던 것 같다.
===20:24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죽음을'열조에계로 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창 15:15;25:8;35:29;49:29, 33). 이는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의 내세관이 반영된 말로서, 사실 그들에게는 신약 시대와 같은부활 사상은 희박했다(계시의 점진적 측면에서 구약후기의 히브리인들에게서 부활 사사이 가끔 언급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 이후에는 사자(死者)들이 '음부'라는 처소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했다<창 37:35 주석 참조>.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비록 '영생'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후손을 통해 자신들이 영존(永存)하는 것으로 확신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독립된 한 개체로서의 자신보다는가문 또는 혈족 내에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욱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또다른 형태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확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이미 죽은 자신들의 조상은 그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고 믿었으며(전 12:7), 결국 자신들이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조상들이 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 그 결정적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론 역시 혈기에 찬 모세의 행동<11, 12절>에 동조했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결국 아론의 죽음은 자연사(自然死) 이상의 의미, 즉 하나님의 징벌로볼 수 있다.
===20:25
너는 아론과...호르 산에 올라 - 여호와 종교는 산(山)의 종교라 할만큼 산과 밀접하다. 즉 하나님은 많은 경우 산에서 당신의 종들을 친밀히 만나시고 당신의 뜻을 계시해 오셨다. 이제도 하나님은 출애굽의 두 영웅(모세와 아론)과 그 뒤를 이어 제 2대(代) 대제사장이 될 엘르아살을 산으로 부르시고 아론의 최후를 주도하셨다. 그러므로아론의 죽음은 다른 여타 악인의 최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곧 하나님이 함께 하는죽음으로 볼 수 있다.
===20:26
아론의 옷을 벗겨...엘르아살에게 입히라 - 여기서 '아론의 옷'이란 대제사장의 의복을 뜻한다.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봉사를 할 때 그는 반드시 이 복장은착용해야만 한다<출 28:1-43>. 그러므로 모세가 아론에게서 이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는것은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그의 아들에게 전수된다는 상징적 행동이었다<레8:7-9>.
===20:27
회중의 목전에서...오르니라 - 모세는 제사장직에 도전한 고라 일당의 반란 사건(16장)의 경험을 살려 대제사장직의 직책이 인간의 자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16:3),하나님의 권위로 위임된 것임을 온 백성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백성들의 '목전에서' 현직 대제사장과 신임 대제사장을 대동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산에 올랐다.
===20:28
아론이...죽으니라 - 출애굽시 아론의 나이는 83세였고(출 7:7), 죽을 때 나이가123세였으므로(33:39). 그가 출애굽 제 40년 5월1일에 죽었다는 33:38의 기록은 정확하다. 한편,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은 지금도 살아 계시사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히 7:21, 24). 이처럼 인간 대제사장은 죽어갔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신 '대제사장직'을 영원히 지속시키시는 것은 인간과 영원히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며, 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20:29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 보통의 애도 기간은 7일간이었으나(창 50:10;삼상 31:13), 모세와 아론의 경우 각각 30일간 진행되었다(신 34:8). 이는 지도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로써 국장(國葬)에 해당한다.
정월에 - 출애굽 제 40년째 되는 해 1월(아빕월)을 가리킨다. 이것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호르 산으로 진행했고, 거기서 아론이 죽었는데, 그 연대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로 기록된 사실에서 확인된다(33:38). 한편 아빕월은 오늘날 태양력 3-4월 쯤에 해당되는 봄철이다.
신 광야에 이르러서...가데스에 거하더니 -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8:15)라는별칭을 지닌 '신 광야'는 대부분이 불모의 땅으로서 가나안의 남방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34:3, 4;수 15:1). 그리고 이 지역의 한 귀퉁이에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13:26;14:28-35)가 위치해 있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말미암아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고, 이제 그 38년간의 징계의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그 땅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다음 도착지인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아론이 죽었는데, 그때가 5월 1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33:38), 이스라엘 백성들은아마 이곳 가데스에서 약 3-4달 가량 머문 것 같다. 그리고 체류의 주된 이유는 미리암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기간 때문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26:59), 어릴적에는 갈대 상자에 넣어져 강에 떠내려가는 동생 모세를 보호한 적이 있었고(출2:4), 후에는 이스라엘의 여선지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적 인물이다(출15:20;미 6:4). 그러나 한때는 교만한 생각으로 아론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전권대사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민 12:1). 아마 그의 마지막 생이 이처럼 간략히 서술된 것도 그 일에 대한 견책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리암이갈상자에 담겨져 떠내려가는 모세를 지켜보고, 또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알선해 준점에 비추어 볼 때(출 2:7), 아마 그녀의 나이는 모세 보다 10살 정도는 위였으리라추측된다. 따라서 이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므로, 미리암의 나이는 130세정도는족히 되었을 것이다.
===20:2
물이 없으므로 - 팔레스틴 남쪽 변방에 위치한 '가데스'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지역으로 본래 좋은 샘(시내)들이 여러 군데있었다. 따라서 출애굽한 백성들은 주로이곳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생활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긴 방랑 생활 끝에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당연히 물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해에는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든 샘과 시내가 말라버렸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History). 따라서 백성들은 마치 곧 죽을듯이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때 백성들이불평했던 장소에 대해 시 106:32에서는 정확히 '므리바'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도 식수가 없다는 이유로 해서 백성들은 불평한 적이 있었다(출 17:1-7). 물론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
공박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 )은 단순히 전치사로서 '...에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against)이라는 뜻이다. 곧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킬 자세로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대들면서 원망하였던 것이다(16:19, 42).
===20:3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 이는 10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 이후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그 당시 20세 이상이던 구세대가약 37년간 광야에서 죽어가던 상황을 가리킨다(13:25;14:26-35). 따라서 이러한 백성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들 조상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 백성들의 경솔하고도 배은 망덕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인내와 믿음'이었다(약5:7-11).
===20:4
너희가 어찌하여...이 광야로 인도하여 - 백성들의 역사 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반영한 말로써 진정 노예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불평이다. 아울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은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불신앙의 외침이다. 더욱이 이 말은 출애굽 초부터 계속되어온 불평인데(출14:11;16:2, 3;17:3), 광야 40년 동안에도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완악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로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이보이신 기적이 부족해서가 하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없기때문이다.
여호와의 총회 - 여호와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회중을 가리킨다. 16:2 주석을 참조하라.
===20:5
악한 곳(* , 하마콤 하라)- 직역하면 '아무 쓸모 없는 땅'. '해(害)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즉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는...없고 ...없고...없고...없고...
없도다 - 백성들이 머물렀던 가데스는그들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눈으로그곳을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곳은 모든 것이 넘치는 충만의 장소였다. 즉 그들에게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계약 백성으로서의 미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정적인 발언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말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분명히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셨지, 그들의 말대로 '죽음의 땅'을 약속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출 3:8;13:5). 그런고로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현실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히 11:1).
===20:6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나타나며 - 14:5, 10 및 16:4, 19 주석을 참조하라.
===20:8
지팡이를 가지고 - 이 지팡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17:8)가 아니라, 출애굽 당시모세가 바로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던 그 지팡이(출 7:15;9:23)를 가리킨다. 그리고이 지팡이는 '르비딤 물 사건'에서도 사용되었었다(출 17:5). 그러므로 모세는 이 지팡이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보통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때는 이 지팡이를 땅에 내려 놓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이'지팡이'는 그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의 목전에서 - 여호와의 이적이 공개적으로 실행되어 그의 영광과 능력을 여러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참된 능력과 진리는 항상 떳떳하여가리울 것이 없다.
반석에게 명하여 - 여기서 '반석'(* , 셀라)이란 '바위' 외에 '높은 요새'란의미도 지닌다. 그러므로 이것은 출 17:1-7의 르비딤물 사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반석'(* ,추르), 곧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다란 바위임을 짐작할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지 그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는 명령만을하도록 당부하셨다. 그 이상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장;히 11:3). 그것을 운행하시는(롬 11:36)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20:9
그 명대로 - 출애굽 후 지금까지 모세의 순종은 완벽했다. 그러나 11절의 결정적인불순종으로 인해 모세는 그가 이때껏 쌓아 올린 순종의 아름다움을 산산히 부수어 놓고 말았다. 이는 상징적으로 율법 준수의 한계를 암시한다. 즉 율법 계시의 전수자요, 공포자인 그도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가나안 입국 실패는 이러한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하겠다.
===20:10
패역한 너희여(* , 함모림) -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할 수 있다. 즉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시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스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지나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시 106:33). 따라서 이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12절>.
===20:11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 모세는 순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 두 번 내리쳤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이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과(10절)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절),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댔다.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냄으로써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런 처사라 할 수 있다(시 106:32, 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하나의 죄목이었다(12절). 한편 구약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매'를 맞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영생수를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셰가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덧붙혀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가데스의 거역만 범하지 않았던들, 그가 가나안 땅에들어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한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바를 온전히 이루셨다.
===20:12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28절).
나를 믿지 아니하고 -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절) 하나님을 불신앙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못하고, 교만히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절>을 두고 한 말이다. 어쩌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치 않는 것도 불신앙의 한단면인지 모른다.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에게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던 것이다. 너희는...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있는 영예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다(28절;27:12-14;신 32:48-52).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한다.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마 17:3).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율법 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롬 3:28).율법은 단지 우리를 가나안(천국)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할 뿐이다(롬3:20;갈 3:24, 25).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구속사의 대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다른 뜻이었다.
===20:13
므리바 물 - '므리바'(* )란 '다투다', '싸우다'는 뜻의 '리브'(* )에서 나온 말로서, 곧 '다툼'. '투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다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킨다(27:14;신 32:51). 따라서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한 것과는 다르다(출 17:7). 그러나 물 때문에 마음이 상한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은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 사건 자체와 의미는 상호 밀접히 연관된다. 출 20:1-7 주석 부분참조.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한 아론과모세를 징벌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대로 물을 공급하사 불평을 일추시킴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증명하셨다(Keil).
===20:14
에돔 왕에게 - '에돔'은 이삭의 아들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거주지 또는 그 민족의이름이다(창 25:22, 23). 그리고 에돔의 위치는 그 당시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가데스의 동북쪽에 있었으며, 사해(死海)에서 남쪽으로 홍해 동북면 아카바 만에 미치는 산악 지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통과하여 가나안 동편, 곧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에 진격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가데스에서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는길은 매우 험준하고 가파른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돔지역은'약속의 땅'에 포함되지 않은 곳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관심 밖의 땅이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왕'이란 말은 왕정 시대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한 지역을 통괄하는 족장(ruler, chief)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이들은 창 36:15-19에 언급된 14명의 우두머리들 보다 그 권위가 큰 족장이었던 것 같다(대상 1:43-54). 한편, 약 300년 후 사사 시대 당시 입다의 진술에 의하면, 이때 모세는 모압 왕에게도 역시 사자를 보내어 관할 지역 통과 요청을 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삿 11:17). 그런데 본 민수기의 기록에는 그 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아마 에돔 지역의 통과가 불가능하다면 설사 모압 지역의 통과가 허락된다 하여도 별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에돔 지역의 통과 사실 여부에만 그 기록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Hengstenberg, Pulpit, Commentary).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 공동 번역에는 이를 '당신의 아우 이스라엘이오'라고 기록했다. 즉 모세는 조상 야곱과 에서(에돔)의 혈육의 정을 근거로(신 23:7) 상당히 친근하게 에돔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이다<신 2:4-8>.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 - 여기서 '고난'(* ,텔라아)은 '지치다'란 뜻의 히브리어 '라아'(* )에서 파생된 말로서, 산고(産苦)와 같이 괴로운 '진통'(KJV,travail)을 의미한다. 실제 이 '고난'은 15절에 언급된 애굽 치하에서의 압제당한 사실을 가리킨다(출 2:23).
===20:15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 야곱과 그 일행 70명이 요셉의 초청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일을 말한다(창 46:1-27).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 야레우 라누) - '우리에게 악을 행하였다', '괴롭혔다'(KJV, vexed), '거칠게 다루었다'(RSV, dealt harshly)로 번역할 수있다. 애굽인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히브리인들을 모질게 취급했음을 의미한다<출1:8-14>.
===20:16
천사를 보내사 - 혹자는 이 '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이해하기도 하나(Knobel), 그렇지 않다. 여기서 '천사'는 이스라엘 역사의 고비 때마다 결정적으로 나타나사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언약의 그 천사' 곧 '제 2위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 즉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직접 개입하여 애굽의 장자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출 12:23). 그러므로 지금 모세는 출애굽의 대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은혜로 되어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의 변방...가데스에 있사오니 - 여기 '변방'이란 에돔의 서쪽 경계이며, 사해의 남서쪽이라 생각된다. 이곳은 가데스 바네아의 북동쪽 끝단으로서, 만일에돔이 이곳까지 관할하였다면 그 당시 그들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17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 모세는 사해 남쪽에 위치한 에돔 땅을 지나요단 동편(Trans Jordan) 지역으로 진입하려 했다. 따라서 그들이 들어가려 했던 곳에는 '에돔'과 더불어 사해 동쪽의 '모압' 및 요단강 상류 동편의 '암몬'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모압과 암몬사이에는 '아모리 남 왕국'이, 그리고 암몬 북쪽 바산 지역에는'아모리 북 왕국'이 각각 그 세력을 굳히고 있었다. 이들 왕국들은 세력권 다툼에 온힘을 쏟았으며 최근엔 아모리 남 왕국이 모압을 쳐 아르논 강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다(21:26). 모세는 이같은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에돔과 모압으로 통하는 대로(大路)로 자신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14-21절;삿 11:17). 즉 아모리 왕국이 강해져 가는 것을 에돔과 모압이 우려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에돔 왕이 모세의 소청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세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한 후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두 왕국의 적대국인 아모리와 충돌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즉 모세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적 실리를 위해서라도 에돔 왕이길을 터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밭으로나...
마시지 아니하고 - 즉 통과시 도로만 이용할 뿐 통과 지역에 털끝만한손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말이다<19절>.
왕의 대로(대로)만 통과하고 - '왕의 대로'(King's Highway)란 고유 명사로서,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 북쪽으로부터 아모리와 모압과 에돔을 통과하여 아카바 만의 어귀인 '에시온 게벧'에 까지 이르는 거대한 국제 도로를 일컫는다. 이 도로는 아마도 군사적 목적으로 주변 국가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화시에는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를 왕래하는 대상(隊商)이 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200만명 이상의 백성을 진행시켜야 하는 모세로서는 이 넓은 길이 행군에 절대적으로 요청되었을 것임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8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 에돔왕은 오랜 민족적 감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통과를 불허했다(창 27:41). 더욱이 그는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통과를 저지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이러한 적대 행위로 인해 후일 그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옵 1장).
===20:19
대로(* , 메실라) - '돋운 길'(사 49:11)이란 뜻으로서, 군사 또는 무역용으로 닦은 길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왕의 대로'를 지칭한다<17절>. 이 대로는 오늘날에도 '왕의길'(Derb es Sultan)이라 일컬어진다.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결코 아무 일도 아니다'란 뜻이다. 즉 '왕의 대로'만 사용할 뿐 더이상 바랄 것도 피해 줄 것도 없다는 뜻이다.
===20:20
강한 손으로 막으니 - 에돔 왕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행군을 재개하자에돔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강한 무력'(RSV, a strong force)으로 이스라엘의 진입을막았다.
===20:21
이스라엘이...돌이키니라 - '왕의 대로'가 그토록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에돔과 접전하지 아니하고 쉽게 행군 방향을 돌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찍이하나님께서는 세일 산을 중심한 에돔 땅을 에서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며(창 36:1, 8, 9) (2) 하나님께서 형제 민족의 땅을 탐하거나 침범치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신 2:4, 5;23:7). (3) 하나님께서는 소모적인 전쟁을 막으시고, 가나안7족속의 징벌(신 7:1)을 위해 힘을 비축케 하셨기 때문이다. (4)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주관자도 되시는 분으로서 이번 경우오직 정의와 평화의 원칙으로 이 땅을 통과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22
호르 산에 이르렀더니 - '호르산'은 에돔 변경에 위치한 곳으로(23절;33:37). 가데스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에벧 마두라'(Jebel Madurah)로 추정된다.이 산은 가데스에서 모압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도로상에 있다.
===20:23
에돔 땅 변경 호르 산 -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使臣)을 보낸 모세는 아마에돔 왕이 허락해 줄 것으로 간주하여<17절>, 회보가 올 동안 당시 에돔 국경을 형성하고 있던 아라바 지역의 호르 산까지 진행했던 것 같다.
===20:24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죽음을'열조에계로 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창 15:15;25:8;35:29;49:29, 33). 이는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의 내세관이 반영된 말로서, 사실 그들에게는 신약 시대와 같은부활 사상은 희박했다(계시의 점진적 측면에서 구약후기의 히브리인들에게서 부활 사사이 가끔 언급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 이후에는 사자(死者)들이 '음부'라는 처소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했다<창 37:35 주석 참조>.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비록 '영생'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후손을 통해 자신들이 영존(永存)하는 것으로 확신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독립된 한 개체로서의 자신보다는가문 또는 혈족 내에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욱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또다른 형태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확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이미 죽은 자신들의 조상은 그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고 믿었으며(전 12:7), 결국 자신들이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조상들이 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 그 결정적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론 역시 혈기에 찬 모세의 행동<11, 12절>에 동조했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결국 아론의 죽음은 자연사(自然死) 이상의 의미, 즉 하나님의 징벌로볼 수 있다.
===20:25
너는 아론과...호르 산에 올라 - 여호와 종교는 산(山)의 종교라 할만큼 산과 밀접하다. 즉 하나님은 많은 경우 산에서 당신의 종들을 친밀히 만나시고 당신의 뜻을 계시해 오셨다. 이제도 하나님은 출애굽의 두 영웅(모세와 아론)과 그 뒤를 이어 제 2대(代) 대제사장이 될 엘르아살을 산으로 부르시고 아론의 최후를 주도하셨다. 그러므로아론의 죽음은 다른 여타 악인의 최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곧 하나님이 함께 하는죽음으로 볼 수 있다.
===20:26
아론의 옷을 벗겨...엘르아살에게 입히라 - 여기서 '아론의 옷'이란 대제사장의 의복을 뜻한다.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봉사를 할 때 그는 반드시 이 복장은착용해야만 한다<출 28:1-43>. 그러므로 모세가 아론에게서 이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는것은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그의 아들에게 전수된다는 상징적 행동이었다<레8:7-9>.
===20:27
회중의 목전에서...오르니라 - 모세는 제사장직에 도전한 고라 일당의 반란 사건(16장)의 경험을 살려 대제사장직의 직책이 인간의 자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16:3),하나님의 권위로 위임된 것임을 온 백성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백성들의 '목전에서' 현직 대제사장과 신임 대제사장을 대동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산에 올랐다.
===20:28
아론이...죽으니라 - 출애굽시 아론의 나이는 83세였고(출 7:7), 죽을 때 나이가123세였으므로(33:39). 그가 출애굽 제 40년 5월1일에 죽었다는 33:38의 기록은 정확하다. 한편,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은 지금도 살아 계시사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히 7:21, 24). 이처럼 인간 대제사장은 죽어갔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신 '대제사장직'을 영원히 지속시키시는 것은 인간과 영원히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며, 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20:29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 보통의 애도 기간은 7일간이었으나(창 50:10;삼상 31:13), 모세와 아론의 경우 각각 30일간 진행되었다(신 34:8). 이는 지도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로써 국장(國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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