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
이니라. - 이 귀절은 앞장 29절의 말씀을 밝혀준다. 보라 란 말(* )은
여기서 감탄사와 같으니, 독자로 하여금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목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자녀되게 하시려고 나타내신 사랑은 우리의 죄 값으
로 그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하도다 (* ).
이 말씀을 자역하면 또한 우리가 그러하도다 이다. 곧,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
녀 라는 이름을 가진 것( 자녀라 일컬음 )만이 아니고, 사실상 자녀의 내용도 가진다
는 뜻이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 이 말씀의 헬라 원
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그 뜻을 더 잘 밝힌다. 곧,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한 고
로 우리를 알지 못하느니라 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다른 성격을 가진 그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
하는 세상이 그의 자녀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정리이다. 우리가 세상의 사랑을 받
지 못함으로 인하여 원통히 여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증표이다.요15:21,23,17:14참조.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아직 나
타나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씀은 현세에서 내부적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내부적으로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현세에 소망을 두지 말고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자녀 의
영광을 소망해야 된다. 이 영광은 성경에 약속되어 있다(마19:28-29,25:34;요
17:22,24;롬8:18,23-25;빌3:21).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
는 것은. -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
은 이 란 문구에 있어서 그와 같 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성결에서만이
아니라, 부활할 몸의 영광애가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을 것을 가리킨다(빌3:21). 우리
신자들이 장차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에 대하여 신약이 많이 말씀하는 (롬8:29;엡
4:13;빌3:21;골3:4) 동시에, 그들이 현세에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해 간다
고 말씀하기도 한다(고후3:28).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우리는 내세 영광은
우리가 현세에서도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
함이니. - 이 말씀은 우리가 그를 면대하게 될 때에 변화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의
계산 볼 것 이라 함은 우리가 내세에 이르러서 그를 전지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
다. 이것은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아는 범위에서는 직접적인 것이니 만큼,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전13:12참조.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
니라. - 이것은 주님을 면대하려는 소망을 가지는 신자의 생활을 가리킨다. 그는 신
랑을 맞이할 신부가 단장하는 것처럼. 항상 자기를 의와 성결로 단장한다. 계19:7-8
참조.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마샬은 여기 죄는 불법이
라 고 한 말을 해석함에 있어서 살후2:3,8에서 진술된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
를 연상케 한다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범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마귀와 적그리스도 편에 가담하니다 .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죄를 없이 하려고 란 문구에 있어서 없이한다 는 말로 헬라 원어(*
)는 요1:29에 나온 세상 죄를 지고 간다 는 헬라어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은 사
실상 지고 간다 는 의미로 번역될 것이 아니고 치원 버린다 는 뜻으로 번역되어야 한
다.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
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그 안에 거하는 자 는 누구인가? 그는 인류의
죄를 없이 하려고 역사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신앙으로 그 실생활
을 가지는 자이다. 그는 관념적 신자가 아니다. 그런 신자는 범죄하니 아니한다(*
)고 한다. 이것은 참된 산자가 혹시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고
(2:1하반), 상습적으로 죄 가운데 살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범죄하지 아니한다는
말의 헬라 원어(* )가 현재동사인데, 헬라어 문법상 현재동
서는 상습적 행위를 가리킨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여기 이른 바 그리스도를 본다 는 말(* )과 안다 는 말(* )
은 그리스도께 대한 육신의 감각을 말함이 아니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접촉을
가리킨다. 이 표현들은 특별히 요한의 사상의 특징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것을 받았다. 요14:19-24,16:16,22참조.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만나게 되며 또 보게 된다(요14:20-21).
요일 3: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목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
과 같이 의롭고. - 이 말씀부터 이 아래 10절까지는 신자가 범죄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말씀한다.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사도 요한의 시대에
반율법주의자들의 미혹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이와 같은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 다는 말은 위의 3절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본절이 그
말씀에 대한 재설명인 것은 확실하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하지는 못하나 그
리스도와의 연합을 성립시키는 믿음과 계명을 지키는 노력은 가졌다. 신자의 노력 자
체가 공로는 아니지만 그것은 신앙의 진실성을 성립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이 있어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의를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의롭다. 롬8:1 고후5:21참조.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 니라. - 마귀는 처
음부터 범죄함 마귀는 인류보다 먼저 범죄하였을 뿐 아니라, 그 범죄가 모든 인
류의 범죄의 근원이다. 요8:44참조. 범죄를 기탄없이 일삼는 자는 마귀의 영을 받은
자 곧, 마귀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
심이니라. - 여기서는 진정한 신자가 상습적으로 범죄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 곧, 죄악을 멸하시기 위함인데,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기탄없이(상습적으로) 범죄
할 수 있으랴?
요일 3:9
하나님게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
힘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함은
상습적으로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성결하여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씨 는 그리스도 신자에게 있는 중생된 생명(성령에게 붙들
리운 범위내의 영적 생명)을 의미하고, 거듭난 자의 영혼 자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요3:6-7;벧전
1:23)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여기 이른바 저도란 말은 역
시 일반 신자를 가리킨다. 이 말씀은 위의 상반절의 뜻을 좀더 강화한 것이다.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서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
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이
러므로 란 말이 헬라 원문에는 없고, 그대신 이것으로 라는 말(* )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는 표식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
사이다. 그 가리키는 표식의 냐용은 본절 하반절이 보여주었으니, 곧 의와 사랑 을
행하는 여부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한 바의는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인가?
그의 란 것은 일반 의미의 의 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결과로써 성립된 의 이
다. 요16:10;요일2:1,3:7참조. 다시 말하면,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그의
속죄의 의(요16:10)로 말미암아 그의 주관 편에서 반영된 의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의 말한 바 형제 사랑도 역시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랑이 신자에게 역사하여 이루는
열매인 것이다(요일4:7-11). 하나님께 속한 자 란 말과 하나님의 자녀 란 말은 본서
에서 같은 뜻을 의미한다.
요일 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은 예수님이 주신 계명이다(요13:34,15:12,17). 여기 서로란 말(* )
사소한 수식어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속죄해 주신 사랑에 근거를 가진 중요한 말씀
이다. 신자라면 누구든지 속죄의 사랑을 받은 자이니만큼 남을 사랑할 근거를 가지
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을 받기만 할 위치에 있지 않다. 사랑은 한편에서만 베
풀 때에 쇠퇴하기 쉬우나 양편이 서로 사랑하면 불붙듯이 더욱 커간다. 처음부터 들
은 소식이라 곧, 처음 전도를 받을 때에 이미 들은 것이란 말씀이다. 신자들이 서
로 사랑함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니,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해서 늘 있어야
할 것이었다(고전13:13). 그러므로 그들이 복음을 받던 그 때부터 서로 사랑하라
는 부탁의 말씀을 들었다.
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여기서는 의를 미
워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사실을 지적한다. 내가 내 자신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나
를 미워하는 것은 영생으로 인도하나 (요12:25), 형제의 의로움을 미워함은
마귀의 심리이다.요8:40,42,44-45,47,49참조. 악한 자에게 속하 였다 함은 마귀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가인은 아벨에게 대하여 근본적으로 대
립되어있었기 때문에 아벨의 옳은 행실을 도리어 미워하였고, 결국 그를 죽이기까지
하였다. 창4:1-8참조.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여기
서도 사도 요한은 악과 의를 영적으로 말슴한다. 그는 신앙으로 제사드린 아벨의 행
위를 의로 간주하고 불신앙으로 제사드린 가인의 행동을 악으로여겼다. 히;11:4참조.
이것은 예수님의 윤리관처럼 종교적이다. 예수님도 이런 영적인 대립 때문에 한 가족
들 중에도 분쟁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눅12:49-53).
요일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 여기 이상히 여기지
말라 란 것은 신자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마땅하므로 그런 미움받는 것을 불합
리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자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그가 세상과 타
협하지 않는 증거이다. 그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그의 생명줄이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환영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반갑게 여겨야 한다. 요15:19-21;행5:41참조.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 이
문구의 헬라 원문을 다음과 같이 개역할 수 있다.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아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을 인함이라 고 여기 옮겨 란 말은 현재완료동
사이니만큼 벌써 옮겨진 사실을 가리킨다. 참된 신자의 구원을 현세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사상은 사도 요한의 특징이다(요5:24).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증거라는 뜻이다. 이같이 생각되는 이유는,자가 다른 신자(그리스도 안의
형제)를 상습적으로 미워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미워함과 같기 때문이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 형제(그리스도의 보혈로 함께 구
원받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의 동기이므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런 미움을 살인 과 같이 보신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없어지기를 원
하는 마음이니;, 곧 정신적 살인이다. 예수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의
미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
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2)고 하셨다. 형제에게 대하여 노 함, 라가 (무지란 놈)
라고 함, 미련한 놈 이라고 하는 이 세 가지는 형제를 미워함이다. 살인하는 자마
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살인하는 자란 말은
여기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가리킨다. 형제는 그리스도 신자를 가리키고,
미워함 (* 상습적으로 미워함 을 의미한다. 누가 그리스도 신자를 상습적
으로 미워한다면, 그에게는 그리스도 신앙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에게 신앙이 있
다면, 필연적으로 자기와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얻은 형제를 사랑하게 될 것이
고 상습적으로 미워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상습적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의를
미워하는 자요, 불신자요, 따라서 그에게는 영생이 없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
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
하여 생명을 버리셨다(요10:15,17). 버리셨 다는 말씀은 피돌적의미의 부득이한
수난 뿐 아니라, 적극적 의미의 희생물로 생명 버림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것을 보
고 우리도 믿는 형제를 그렇게 사랑해야 될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우
리의 형제애가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완전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며, 속죄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아니다. 여기 마땅하니라 고 한 말씀(* )은 빚지
고 있음을 가리킨다. 신자는 이같이 다른 한 신자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버릴 빚을 지
고 있다. 이것은 작은 일을 위해 너무 큰 희생우가 명령한 것같다. 그러나 참된 신자
라면, (1)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줄 아는 고로(마16:26) 그 한 영혼을 위하여 그
는 자기를 희생해야 될 것이다.그뿐아니라, (2) 그는 그렇게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라는 것만큼 그렇게 함으로 만족해야 될 것이다. 위의 사고방
식이 어디까지나 진리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행하지 못한다. 그것은 많은 수
효를 위한 희생이라야 공을 세우는 것인줄 아는 우리의 공명심 때문이다. 그것은
암암리에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알면서도 진리대로 행하지 않으니, 결국 여
적으로 손해를 당한다.
요일 3:17
누가 이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
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 재물을 소유한 신자로서 구제할 마음을 막는
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속에 거할까보냐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으
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이 계셔주시며 사랑하며 주신다
(4:12). 잠14:31에 말하기를,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
는 자용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고 하였고, 잠
19:17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
아 주시리라 고 하였다. 시41:1;잠14:21,17:5,21:13,22:9,28:27참조.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자
녀 란 말은 영적 자녀 란 뜻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듭난 자들을 가리킨다.
딤전1:2참조. 말과 혀로만 사랑 함은 공허한 사랑이고 거짓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본래 사랑없는 악한 생활에 한 가지 죄(거짓말하는 죄)를 첨부하는 가증
된 행위이다. 고전4:20;약1:22;2:15-16,3:2참조.
요일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
로다. - 곧 누구든지 자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를 사랑하면, 그것으로
그 자신도 구원받을 참 성도인 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가 일반인에게
사랑을 행하는 것이 그의 성도된 증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믿는 형제를 그렇게
사랑함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누가 믿는 형제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 형제
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에서 사랑한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사랑이요, 성
령으로 말미암은 사랑이다(24절). 그러므로 이런 사랑의 소유자는 그 자신이 하나님
의 자녀인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여기 진리 란 말은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된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1:6,8,2:4,21). 진리에 속함 은
구원에 참여한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말한다.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 형제애를 참되이 가지는 한, 그것은 우리 자신
이 확실히 영적 권속인 사실을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내세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
울 것 없이 평안할 것을 내다보게 된다. 현세에서 신앙 양심에 평안을 소유한 자는
내세의 평안을 예감한다.
요일 3:20,21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
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
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이 두 귀절은 윗절에 있는 말슴 마음을 주 앞
에서 굳세게 한다는 것이 무엇임을 해석한다. 곧, 하나님 앞에서 담대해지려면 우리
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 (* ) 이
란 것은 일반적인 인류의 마음을 가리키지 않고 진실한 신자들의 양심(책망하는 작
용을 가진 심리)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듭난 자의 곧, 착한 양심 이다(딤
전1:19,3:9). 착한 양심은 하나님을 찾아간다(벧전3:21). 신자가 자기 양심에 거리
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거리끼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가 양심
앞에 담대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그러하다. 신자가 진실히 형제를 사랑하는 경우에 그
는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확신하고 담대해진다. 이것이 영적 형제애를 실행
하는 신자가 받는 첫째 복이다.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이것은 형제애를 실행하는 자의 둘째 복이니,
기도 응답을 받음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기도를 응답하신다. 그 응답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만큼, 그의 뜻(곧, 계명)에 순종하는 자에게 한하여만 이루어진
다.
요일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
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하나님의 계명은 단순한 규율이나 율법 조문이
아니다. 이것은 (1)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과 (2) 서로 서랑하라는 그리
스도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계명은 폭군의 명령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
은 신자들의 기쁜 신뢰와 감심 순종(사랑으로 행하는 순종)을 요구하는 구주님의 계
명이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원인 결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신앙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영적 형제애가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라야 모든 자
들이 형제임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
신 서영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히시는 줄을 아느이라. - 신자가 하나님의 계
명을 지키면 두 가지 복된 사실을 체험한다. (1) 그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합하게
되고(요14:21), (2)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알
게 하심이다. 이 지식은 외부적인 이적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감심으로 순종할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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