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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악독 (*  )은  남을 해하려는 독한 마음이고,  궤휼 (*  )은 남을 해하려는 속임수이다.  외식 (*                        )은 겉으로 선하게 보이는 언행으로서, 삥거기에 해당한 내용은 가지지 않은 행위이고,  시기  (*             )는  투기 라고개역함이 적합하니, 이것은 노골적으로 남의 잘되는 것을 방해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비방하는 말 (*)은 남을 악평해 돌리는 험구이다. 위의 모든 죄악들은 중생한  새 사람의 아이같은(2절)특성, 곧 무사기하고 순진한 성격과 대조된다. 이런 죄악들은   이 세상에서 오랬동안 죄를  쌓아 나온 엥사람에게 속한 것이므로 천국의 갓난 아이인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벧전 2:2
   간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란  말 (* ]은 직역하면,   간사함이 없는 말씀(혹은도)의 젖 이란 의미이다.   간사함이 없다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즙에 비유한 말이다. 베드로가 여기에  말씀의 젖 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이 글을 받을 자들의 영적 생활이 유치하다는 사실을 포함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여기서   바울과 다른 관점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서(고전3:1; 히5:12 참조),  그리스도 신자가  언제든지  악에 대하여는  순진하여 악을 범하지   않고 아이같이    되기를 원한다. 롬16:19;고전14:20참조. 이처럼 그가  그리스도 신자들을 갓난 아이로   보고 그들을 위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젖 으로 비유한 것은 자연스러운 어법이다.   말씀의 젖 (*                    )이란 문구에 있어서  말씀 (*                )이란 단어에 대하여 라이첸슈타인은 말하기를, 이것이 헬라의 신비종교에서  사용한   신화 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용어를 신비종교의 의미로  억측한 것뿐이다. 성경에는 인간을 신화하는 사상이  전혀 없다.  크레다너스는 이 귀절을  해석하면서  라이첸슈타인의 그 같은 견해를 반대하였다.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리라. -    이것은 시34:8의 인용인데, 그들이 말씀의 젖을 사모하게 될 이유를  보여준다. 한번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빨아본 유아는 다시금 그 젖을 사모하게   된다. 여기 말한 바, 주의 인자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맛을 가리킨다.  영혼의 안식처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 문구 해석에 있어서 크레다너스는  여기  주의 인자 란 것이 완전히 계시된 복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위의 두 가지  해석은 대동소이하다.

 벧전 2:4
  사람에게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게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사람이 버렸어도 버려지지 않는 천적 보험을 가지신  산 돌 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한 천국(참된교회)의 기반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택함받은 신자들은 그에게로 나아가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모인다.   산 돌 에  대하여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그는 그  자신이 살았고,  그 자신이 생명이시요 또 생명을 주신다. 그리고  그가 견고하심으로 남을   견고케 해주시고, 그에게 부딪치는 자를 부서뜨리신다 라고 하였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짐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윗 귀절들의 말씀은 개인 신자의 영적 생명이  성장해야   할 것을 가리키고, 본절에서부터 10절까지는 신자의   단체생활(교회생활)의  건전한 성장을  권장한다. 그들의  개인 생활에는 갓난 아이같이 말씀의  젖을 사모함이 필요하였다.  신자는 연령이 높아 갈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것이  강하여 좀더 갓난 아이처럼 되어가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의  단체적 성장이  수반되지 아니하면 안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독선주의는 성경적이   아니니  위태하다. 그 이유는,  나 개인의 신앙생활도 나 한사람의 힘으로만 해나갈수 없고  무수한 다른 사람들(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다른 지체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자는 이런 단체(즉,  집 으로 비유된 단체)로서의 성장을 얻기  위하여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아간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인간들에게 나아가고  말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산 돌 이신 예수에게 나아가려는 것이다. 교회가 성립되는 터는  그리스도여야 하고 방향도  그리스도여야 하고,  그 모근 하는 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또 그리스도 를 중심해야 한다. 너희도 산  돌같이 란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실(요14: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신령한 집은 신자들의 단체 곧, 교회를 가리키는바,  그것은, (1)신령한이라고 하였으니, 성령의  역사를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뜻이다.  그 성원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봉사하는 단체(신령한 자들)가 되어야하고, (2) 집  이라고  하였으니 만큼, 그 성원들이  성령님의 내적 교통에 의하여  가족적인 참 사랑의  교제(빌2:1-2)를  가진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마10:6;딤전3:4-5;딛1:11참조.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이것은  신자들이 합하여 하나님의 계실 영적 교제의 즐거움을 주신다 고 하였다.세워지고 (*                )라는 말은 일반 신자들의 처신법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들의 피동적 위치를   의미한다. 그들의 피동적 위치란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를 말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기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목적을 이룬다. 나는  사해에서 헤엄쳐 본  일이 있다. 그 물에서 내가 내 몸을  움직일 때에는 몸이 뜨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내 몸이 잘 뜨는  것을 체험하였다. 루터는 말하기를,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 고 하였다. 신령한 제사 는  롬12:1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림이니, 그것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1) 그리스도게서 속죄해 주신  은혜와 중보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할 수 있고, (2)  성령님의 역사(중생, 신앙, 성화의 역사)를 받아서만( 신령한 사람이  되어서야)할 수 있다.  제사장 이란 말(*                     )은  제사장 단체 라고 번역함이 옳다. 베드로는 이 편지에서 그리스도  신자들(교역자와 일반 신자들)이 다 람께 제사장인 사실을 가르쳐 준다(2:9). 그의  견지에서  그들은 함께 하나의 건축물과  가고, 함께 하나의 제사장 단체인  것이다. 이 일체성이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의 말씀 중심인 한에  있어서는 기독교회의 근본 요소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신 것이다.

 벧전 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울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본절은 사28:16인용이다. 여기  모퉁이 란 말의 헬라 원어(*                            )는 히브리 원어 로쉬 핀나(*             )란 말의 번역이다. 그런데, 이것이  건축물에 있는 어느 돌을 가리키는가? 크레다너스가  소개한 대로 학자들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갈린다. (1) 그란트는 이것을 가옥의 현관이나 기초의 중요한  곳에  그 외관미를 위하거나  혹은 견고케 하기 위하여 설치되는 돌이라고 한다. (2)  예레미야스는 말하기를, 이것은 초석도 아니고 모퉁이돌도 아니라 현관돌일 것이라고  하였다(*                          ). (3) 칼빈은   이것을 가옥의 두 벽을 연락시키는   모퉁이에  설치되는 돌로 생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요긴한  돌과 같으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합시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엡2:11-22참조.    요세푸스는  성전의  모퉁이돌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돌의 길이는  20야드요, 그 넓이는 10야드요, 그 두께는 5야드이다. (*                                        ). 저를 믿는 자 (*           )는  그의 위에 신뢰하는 자  라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건축물의 무게가  그 힘받이가 되는 모퉁이돌에 의지하고 서 있음과  같이, 진정한 교회의 성원은 오직  그리스도 위에 의지하여 서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란 것은  그 신뢰한 대로 목
적을 이루고 실망하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6절 초두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괴연  보배 가 되셔서 구원을 공급하신다는 말씀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시118:22; 사8:14 참조. 여기 포함된  요지는, (1)그리스도를 믿지 아나하는 자들로 말하면 마침내  자기들의 어리석음이 탄로되는  때가 있다는  것,  그들은 진리를 아는 듯이 교만하게 예수님을 저버린다. 그러나 그들이 버린 예수님은 과연  그리스도요 구주로 드러난 것이고, 또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건축자들이 어떤 돌을 쓸데 없는 주 알고 내버렸으나, 그 돌이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됨과 같다. (2)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발이  돌에 부딪혀 넘어짐같이 저희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렘13:16; 마21:42-44; 눅20:17-18 참조.
   저를 믿는 자는  그의 위에 신뢰하는 자 라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건축물의 무게가  그 힘받이가 되는 모퉁이돌에 의지하고 서 있음과 같이, 진정한 교회의 성원은 오직  그리스도 위에 의지하여 서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란 것은 그 신뢰한 대로 목적을 이루고 실망하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족속 이란 말(*            )은 출생 계통이 같은 자들을  가리키는 명사이다. 여기서는   이것이 영적으로 같은 계통에서 출생된  자들 곧, 영적 가족을 말한다. 왕 같은 제사장들 이란 말(*                    )은  왕적 제사장들 이란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왕적 영광에 참여함(왕노릇함)을 가리킨다. 성경에  왕 노릇  함 (롬5:17)으로 번역된 헬라어(* ]는  다스림 이라고도 번역된다. 다스림이나 왕노릇 함은 결국 같은 의미이다. 그러면 신자에게 속한 왕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인류의 타락   전 시대로 돌아가서 생각한다면, 본래 인류에게주신(창1:28,2:15)  다스리는 권세란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만물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느 인격(신앙,  경건, 순결의  소유자)으로  만물을   정복함과  성도들을 봉사함이다(마20:25-28).   이것은  세상의   후사 (*)되는 복이다. 이것은 범죄 전  인류의 본연이며 본질에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조상 아담을 지으셨는데, 범죄 후 인류는 이 다스리는 복을 상실하였다(창3:17).   (2) 신약적인  구원론에서  신자의 왕권은 내세에 신자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기고(고전6:2-3)  성화된 인격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이다(마23:9-12).이것은  만유의 후사이신(히1: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으셨다가 다시 살으신 승리에   의하여 인류에게 찾아 주신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상실하였던   후사권을 회복해 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성품으로 입으셨으며,  또 후사권을  취하셨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후사 가 된다고 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 (롬8:17)가  됨이다. 고전3:21-23참조.    루터는 다음과  같이 중요한 해석으로 보충하였다. 즉,  기독교 신자들을  왕 이라고 함은 그들이 금  면류관을 썼다거나,  영토와 백성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만물과 죽음과  죄와 지옥을 이긴다는  의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지금  왕이신 것처럼 그도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왕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자가  세에  왕노릇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원의 본질을 말함이고, 상급과 같은  더 가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들은 다스린다는 말을 들을때에 인류 상대로 봉사함(눅22:25-26)을    생각하지 않고, 높은 지위에서  자기 중심으로 휘두르는  세속적 영광을 생각한다. 구원받은  신자들 중에왕된 무리와 그  밑에 백성된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함은  성경적이  아니다. 내넷에 신자들이 왕노릇한다고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하여  함께 있는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계20:4)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고) 구원받는 법은 없다. 롬6:3-5,8:1 참조.  거룩한 나라  이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영적 왕국이라는  말이다. 신자가 각기 개인  자격으로  최고의 복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같은 하나의  단체 안의 성원으로서만 그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이 암시한다.
 그의  소유된 백성 - 여기 소유 란  말(*                  )은  소득 혹은  획득 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 소득을  위하여  독생자를 희생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참으로 이것은  그에게 보배로운  소유이다(출19:5;말3:17)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상반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신자들의 축복받은  목적에 대한 진술이다.  요컨대,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그런  축복을 받았다.
그들은  어두운데서 불리워 나와  빛 가운데  들어왔으니,  이제부터 하나님을 찬송할 만한 밝은 심령도 가지고 있다.   빛 이란 것은 영적 축복과 내세의 축복 상태를 비유한다(행26:18;골1:12-13).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본절은 이방 신자들의 그 현재에 받은 구원의 축복을 그 전에 불행하였던 형편에  대조  시킨다.  이런 인상 깊은 대조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한 생각을  더 가지게 한다. 우리가 현재에 소유하고 있는 영적 축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때에는, 과거 불신 시대의 암매와 불행을 회상하여 현재의 형편과  대조함이 좋다. 본절의 말씀은  베드로가 호2:23을 염두에  둔 것이다. 롬9:25참조.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   (1) 그리스도  신자들의 영원한  집은  하늘에 있고  땅에 있지 않으며(빌
3:20),  (2) 그드리  생활 원칙은  이   세상의 그것과  본질에 있어서  같지 않고(요
15:19), (3) 또 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박해를 받게 되며(딤후3:12), (4)  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잠간이어서 하루 밤 숙박과 같이 짧다.대상29:15  시39:12; 히11:13참조.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여기   육체  란 말(*  )은 몸을 가리키지 않고 인간의   죄악성 (혹은 부패성)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영혼 자체의  죄악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독자의 인격 속에서 거듭난  생명을 거스려 쉬지 않고 전쟁하고 있다. 그 전쟁은   무섭다. 그 이유는, (1) 그것이 그렇게도 모략적이고 조직적이고 또 장기적인 까닭이며,  (2)  크레다너스의 말과 같이, 그 전쟁의 공격 목표가 인생에게 하나만 있고  둘도 없는 귀한 영혼을 멸망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싱를 선하게  가져   이것은 윗절 말씀의 결과이다. 그들이 정욕을   제지시켜야(11절) 행실을 선하게 할 수 있다.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여기  보고 란 말(*                           )에 대해 마이어는 사람이  친히 자기의 눈으로  힘있게 묵도함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불신자들이 신자의 선행을   몰라 보고 공연히  비방만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오래 참으시는 주님께서  조만간 그 기막히는 사정을 밝히  판단해  주시는 그의 섭리적 역사가 나타난다. 그  때에 그  불신자들도 전에 몰랐던 신자의 선행을  비로소  정신차려 깨닫고(힘있게 보고), 후회하며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나아간다.    권고하시는 날 (* )이란 말을 직역하면,   검사하시는 날  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세상 끝날 때의 심판이 아니고, 악인을 회개시키기 위한  특수 간섭의 시기를 가리킨다.

 벧전 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와이나. -  제도 란 말(*               )은 하나님이  내신 제도를 의미한다. 땅 위에 있는 제도는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다(롬13:1). 그러므로   거기에 순응함은 주님의 뜻을 위하여 그리함이다.  순응하되.    칼빈은  말하기를, 이것은  어떤  정부든지 무론하고 거기에 순복하라는 의미와 근사하다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비록 부패한 정권이라도  무정주보다는 좋다고 하였다.  촬스 빅이란 학자는 여기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 란 문구의  인간 이란 말(*                   )이   인간적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는  여기서 정부에 대한  베드로의 견해와 바울의 견해가  서로 반대된다고 말하였다. 곧,    바울은 정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으나(롬13:1), 베드로는 정권이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크레다너스에   의하면, 여기   인간 이란 말이 정부  제도의  유래보다도 그 목적과 관계된 것이다. 즉, 정부의 제도는 인간의 생활을 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나오는 사상을  보면, 정권의 유래가 하나님에게 달렸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한다(같은 책).

 벧전 2: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 여기  방백 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                )는  집권자들 이라
고 개역되어야 한다. 그들은 왕의  지휘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모든 관원이다. 베드로는 이런 관원들도 하나님의 사자의  권위를 가진다고  한다. 그 권위가 성립되는 것은 그 자신들의 인격을 배경한    것이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로 제정된 직위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치가 혹시 명민치 못하여도 치리자로서의 그 직위는  존경을 받음이 마땅하다.   직위의 권위는 하나님이내신 것이다(롬13:1).

 벧전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 이 문구는 헬라
원어에서 알기 쉽게 개역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너희의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무식한 말)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까닭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이 국가 제도에 순종하는  선행은 하나님을 모르고 또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기독자들을 구박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할 말이 없도록 만든다.

 벧전 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자유  한다 함은 그리스도 신자가 그리스도의 구속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속박과  저주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를 영원히  섬기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가 이처럼 영원히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니, 얼핏 보면 그는  그리스도 밖의 어떤 것의 지배도 받지 아니할 처지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죄에서 해방된  것은 자유 방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의에 속하기 위한 것이다(롬6:18;갈5:13). 곧,  그는 땅위에서  모든 옳은 법규와 제도들까지도 선히 지키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의의 빛을 발해야 된다. 악을 가리운 가 함은 악을눈감아 줌을 가리킨다.

 벧전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  
뭇    사람을 공경하며 . 이것은 위의 13절  이하의 말씀을 받아가지고 결론한다. 즉,
모든 참된 제도와 지위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  만큼(13-16),  신자는 사람들이 지
니고 있느 그 지위대로 그들을  귀중히 여겨야 된다. 여기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들의 눈에는 낮아 보이는  지위도 하나님이  내신 것인  한, 신자들은 그지위와  관련된 지를 귀히 여겨야 된다. 영적으로  나의 형제로 관계되는  자에게는 그런 관계대로 대우하고, 나를 다스리는 관계의 인물에게는  그런 관계의  대우를 하여야 한다. 이헐게함이 신수의 제도를 존귀히 여기는 견지에서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신본주의 도덕이다. 그러므로  이 도덕의 정신대로 행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곧, 일반   신자)의 면밀한 순종 생활이다. 그는 인간의 칭찬이나 상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인정으로만 만족하는  종이니만큼, 그는  여러 가지 괴로운 환경 가운데서도 평안을 잃지 않는다.

 벧전 2:19
   애매하고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이 말(*                                     )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 때문에 라고  번역함이 옳다. 본절의  의미는 이렇다.  곧, 종이 까다로운 주인의 학대를 받을지라도 사람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하나님께 대한 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잘 하면  그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름다움 이란 말(*           )은 본래  은혜 라는 의미인바,  여기서는 열납된다는 뜻을 가진다.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이것은 그 선행이 하나님께 열난되어  그의 은혜로 갚음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용된 말씀이다 라고 하였다.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4:15의 해석 참조.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 함은 긋가  보시기에 가치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고생할 바에는 하나님 나라에 값있게 남아있을 고생을 해야 된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이를 위하여 란 말은 위의 20절 말씀이 보여준  것과 같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음 을 위한다는 뜻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적이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숭 있다(롬8:30;빌3:12-14).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 라는 말씀(엡4:1)도  다시 기억해야 된다. 우리는 구원도 받았다(엡1:12,14).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만 할  수 있다.  특별히 우리는 그의 고난을 본받아야 된다.

 벧전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 이 귀절은 그리스도의 완
전무결하신 인격을 가리킨다.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란 말씀 한 마디로써도 우리는 그가 완전하신 사실을 알수  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약3:1)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완전하셨으되 억울한 고난을 받으시고 참으셨다. 그렇다면, 본래부터  죄  많은 우리로서는 혹시 무고히 핍박을 당할지라도  억울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된다(행5:41;벧전4:14-16).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본 절이하의 묘사는 베드로가 친히 예수님의 행적을 묵도하고  한 말씀이다.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마25:64에 예수님께서 장차 구름을  타고오시리라고 하신  그  말씀도 위협이 아니고 경고이며, 악인들의 회개를 권고하신 사랑이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학대한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청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선하신 처분에 맡기셨고, 자기로서는  복수하시지 않았다는 의미이다(눅23:34). 마5:44참조.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윌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밍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으니. - 본절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삼중의의를 말하였으니,  그의  죽으심은 (1) 우리의 죄값 지불이요, (2) 우리의 신생 곧, 죄악  생활에서 떠나서  의의 생활에 나아가게 하심이고, (3) 우리를 구원하여 완전케( 나음을 얻었 음)하심이다. 베드로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이사야 53 장을 염두에 두었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긴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양은   길을 잘 잃는다.  그 짐승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다.
그와 같이 어두워진 인간은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사53:6). 그리스도는 길 잃은 양과 같이 위태한  자리에 있던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목양과 감시를 받는 우리  양 떼(평신도들과   교역자들)로서는 핍박과  고난중에서도   걱정할  것 없다(겔34:2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팅을 맡으셨으니, 우리가 육체에  해를 당한들 무슨 염려가 있으랴(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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