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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4: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
의 목전에서 가능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
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
리라 - 이 귀절들은, 앞장 22절 하반-25절까지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회개하는 언사
(言辭)를 받아 가지고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곧, 그들이 회개하려거든  진실되
이 하나님에게까지(*     )돌아오는 회개를 하라는 것이다.

 

  렘 4:3,4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
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여기서는, 위에 이스라엘
에게 주신 말씀을 비유적으로 유대 민족에게 주었으니, 곧, 회개를 참되이 하라는  말
씀이다. 여기서도 회개의 두 가지 요소를 지적하였으니, "묵은 당을 갈"듯이 죄를  끊
으라는 것(3절)과 "여호와께 속하라"(하나님께로 돌아옴)는 것이다(4절). "묵은 당"(*      
=닐)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니 거기엔 가시덤불(창 3:18), 곧,  죄악이
뿌리 박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아담 이와 때부터 범죄하여 내려 온  마음이니,  여러
천년 동안 묵어 굳어졌고 가시덤불이 가득한 땅과 같다. 누구든지 자기를 쳐 복종시키
지 않고 자기를 주장하는 자는, 곧, 여러 천년 묵은 굳어진 것을 주장하는 자와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이묵은 땅과 같은 굳고 악한 마음을 갈아 부드럽게  만들고,
가시덤불 같은 죄악을 끊어 버려야 한다.
   여기 "갈고"란 말은, (1) 근본적으로 자아(자아)를 거절(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
만 순종할 부드러운 마음을 마련함이다. 밭을 가는 것은 그 토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
한 것이니, 자아를 거절하고 회개하는 심령도 새로운 변동을 받을 수  있는  부드러운
것이다. 고래(고래)로 사람이 굳은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새로워짐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신자들은, 묵은 땅이 보습으로 말미암아 부드러워지듯이, 하나님의 율법으
로 인하여 파괴를 당하고 부드러워져야 한다. 그들은 늘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섭취성(섭취성)이 있어야 된다. 그들은 불치하문(불치하문)이란  말과  같이,
누구에게서나 전파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을 겸손히 받아야 된다(약 1:21). (2)  묵은
땅을 간다는 것은, 또한 가시덤불 같은 죄악을 제거함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운
말씀이 전파되어도 죄악의 가시덤불을 묵여두는 마음 밭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무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악을 고집하는  심령
들을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므로 그 가운데 사역하시지 않기 때문이다(호 10:12).
   신자들이 할 일은, 자기들이 소유한 어떤 장점(長點)이나 의(義)를 자랑하거나  의
자할 것이 아니며, 또 혹은 남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내가 남보다 낫다는 비교 의식(比
較意識)에서 안전감을 느낄 것도 아니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데만
전력해야 된다. 마 7:3-5참조. 현하 교계는, 사분오열(四分五裂)하여 각파는, 다른 파
의 잘못된다는 소식에 만족을 느끼며 스스로 안전감을 가지게 되니, 이는  그리스도를
배경하는 사상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배경하고 움직이는 그릇된  사상이다.  자파(自
派)의 허물도 나타날 때가 울터인데 그런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그런  때는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자기의 허물을 고치기 위하여
전심 전력할 것이며, 하나님만 바라볼 때 안전감에 동요가 없을 것이다. 잘 했어도 교
만할 것 없이 하나님만 믿으며, 잘못 했어도 낙심하지 않고 고치며 하나님만 믿는  자
들에게는 언제나 안전감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며 나 여호와께  속하라".  곧,
종교를 외형(外形)으로만 갖지 말고 이면(裏面)으로 가지기 위하여  죄악을  끊으므로
(마음에 할례를 받으므로)여호와께 돌아와 속하라는 뜻이다. 여기 스스로 할레를 행하
여 "여호와께 속하라"(*                       )는 말씀은, 앞에(1,2)서  이스라엘에
게 보여 주신 참된 회개의 실행을 가르쳐 준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속하
는 것이다.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된다. 하나님을 떠난 생활은 죽은 생활이니 죽은
자가 무엇을 하랴? 먼저 살고야 볼 일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
이 되어 진다.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를 모르고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
다"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도마스 구드리(Thomas  guthrie)는  말하기를,
"네가 기도하는 것보다 쾌락을 사랑하거나, 성경보다 신문 읽기를 더 좋아하거나,  성
전보다 자기집에 있기를 더 좋아하면, 이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증표이다. 그런 경우
에는 마음을 짖어 회개하여야 된다"라고 하였다. 욜 2:13에 말하기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
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 말씀은, 실상 이 아래 5-31절까지에 대한 머리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리라
는 경고이다. 그것은, 물론 바벧론의 침략(侵略)에 대한 것이다. 바벧론의 침략은, 이
렇게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니만큼, 그것을 막을 자가 없다.

 

  렘 4:5,6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
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
르게 할 것임이니라 - 이 말씀은,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대 민족은  견고한  성
(防牌의 태세를 갖춘 예루살렘)으로 피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이라 함은, 곧, 바벧론이 유다를 대항하여 싸우려고 온다는
것이다. 이 아래 나오는 모든 말씀은, 베벧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다 나라가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을 진술한다. 이와 같은 진술을 볼 대에, 우리는 죄악의  참상(慘狀)을
연상(聯想)해야 된다. 그들이 받는 전화(戰禍)가 이렇게 비참한 것 같이, 그들의 죄상
(罪狀)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하였던 것이다.

 

  렘 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당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 - 여
기서 침략과 바벧론이 "사자"(*         =아르예)로 비유되었으니, 이는, 그 잔인성이
유대 민족을 아낌 없이 괴롭힐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대하여 이처
럼 심하게 되어지는 원인은, 그들의 죄악이 "사자"와 같이 강포하였음을  알게  한다.
그들은, 이 침략을 당하기 전까지 죄에 대하여 사자처럼 두려워할 줄 모르고 강력하게
움직였던 사실을 연상하고 회개해야 된다. 죄는 사자처럼 범하고도 대접은 양 같이 임
할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여기에 "황폐"란 말이 두번 나
온다. 이것 역시 유대 민족의 범한 죄가, 실상 심령계(心靈界)에 있는 아름다운  하나
님의 질서를 여지없이 파괴하여 황야(荒野)와 같이 되게 한 사실을 생각케 한다. 사회
나 국가의 외부적인 질서가 황폐되기 전에, 먼저 심령의 질서가 황폐하여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령계의 비참한 광경을 그의 심판에 의하여 외부적 사회와 환경의  참
상(慘狀)으로 나타내시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이 받는 벌은, 흔히 그 지은 죄의 성격
(性格)에 해당(該當)하는 것이다. 시 18:25, 26참조. 일례를 들면, 유대인들이 이방신
들을 섬겼기 때문에 그 벌로 이방으로 사로잡혀 가서 이방인들을 섬기게 되는 것과 같
은 것이다. 렘 5:19 참조.

 

  렘 4:8,9

  여기서는, 유대인들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취하게 될 비참스러운 태도를  진
술한다. 그것은, (1)일반 민중은 "애곡"함(8절). (2) 지도자들은 국난(國亂)을 당하여
"실심"(失心), 또는 "놀람"(9절). 국난을 당할 때엔 마땅히 지도자들은, 승산(勝算)있
는 지도력(指導力)을 가지고 태연(泰然)하게 처하여 일반 민중을 위로해야 되건만, 도
리어 낙심하고 놀라니 이것은 그들에게 신앙 없는 증거이다.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
의 심판을 받는 세대는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참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국난의  때에
어찌할 줄을 모른다. 왕들과 방백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실심하고, 제사장들은 마땅히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마음이 든든해야 될 터인데
도리어 놀라고,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늘 교통하므로 뜻하지 않은 비상 사태(非常事態)
아래서도 놀라지 않아야 될 터인데 도리어 깜짝 놀란다.
   현대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실상 모든 인류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은 마당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 환난이 임할 때에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야 한
다.

 

  렘 4:10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미쳤나이다
- 바벧론이 유다 나라를 침략할 때에 유다 민족은 하나님에게 속은 셈이다.  하나님께
서 "속이셨"다 함은, 일찌기 거짓 선지자들이 유대인들더러 "평강하다 평강하다" 했는
데도 불구하고, 평강하기는 커녕 도리어 바벧론의 침략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
나님이 직접 그들을 속인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이 저희를 속이도록 허용하신 것
뿐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신 것은, 순종치 않는 유대인들을 벌하시기  위함이었
다. 그들이 참 선지자의 말을 순종치 않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짓 선지자에게 내어
맡기시고, 그들로 하여금 속임을 당하도록 버려 두신 것이다. 살후  2:9-12에  말하기
를, "약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
심이니라"하였다. 렘 14:13, 23:17; 왕상 22:20-23 참조.

 

  렘 4:11,12

  이 두 귀절은, 예루살렘에 임할 재앙의 참상(참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하려
고 머리말 격으로 나온다. 곧,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해 준다. "이를 자"(말을 일러 줄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는 물론 여호와 하나
님이시다. 그의 하시는 말씀은, "뜨거운 바람이(이것은 사막에서 불어 오는데, 그것이
불 때에는 모든 초목이 다 말라 죽는다고 함) 광야 자산(樹木이 없는  붉은  산)에서"
불어 오리라는 것이다. 이 "바람"(*      =루아크)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하는바,
곧, 바벧론의 침략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알곡과 죽정이를 갈라 놓는 키질과  같
은 환난이 아니고, 유대 민족 전체를 무섭게 벌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경한 벌을 받는 일이 있다. 그들이 그  경
한 벌하(罰下)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더 중한 벌을 받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
한 벌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시켜 정결케 하시려는 반가운 채찍인 줄 알
고, 그것을 감수(甘受)하여 정성껏 회개해야 된다.

 

  렘 4:13,14

   여기서는, 유대인들의 당할 전화(戰禍)가 얼마나 무서울 것을 알게  하는  동시에,
그 전화의 원인이 그들의 죄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회리바람 같"은 바벧론의 "병거"
와 "독수리보다 빠른" 바벧론의 "말들"을 보는 유대인들은, "우리는  멸망하도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국난(國難)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하
신다. 그것은, 그들이 죄를 회개함이란 것이다. 죄 때문에 임한 환난은, 그 죄를 회개
할 때에 해결된다. 이 해결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도 된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며 절망하는 자들에게도 회개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 여기 "네 마음의 악"(*            )이란 말과 "악
한 생각"(*                       )이란 말을 보면, 이 때에 우대인들에게  문제되었
던 것이 외식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겉모양으로는 종교적  의식을  가졌으나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은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종교가  내적(內的)으
로 바로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사람들이 경건하게 종교적 제도
나 의식을 지키는 것만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고, 오직 심령 속의  악을  제거(除
去)하여야만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 있다.

 

  렘 4:15,16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
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
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 이 귀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깊이 듣지 않는  외
식자들을 상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에 살깊이 지키지 않고 겉  모양으로
종교인 노릇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중대한 말씀 앞에서도 그것을 한 귀로는 듣는 듯하
나 한 귀로는 흘러 보낸다. 외식자들에게는 이것이 문제거리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
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체 하면서 실상은 듣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
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런 사람들을 경성시키기 위하여 바벧론 침략에 대한  예언
을 심히 자극성(자극성) 있게 전한다. 곧, 바벧론 침략이 그의 예언하는 시간에  당장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기를, "단(이스라엘의 極北으로서 北方 이방 나라의 군대가 들
어오는 關門)에서 소리(전쟁의 警報)를 선포하며 에브라임산(유다 나라에 접근한 북국
이스라엘의 산)에서 재앙(전쟁의 재앙)을 공포하는도다"라고 한다. 이것은, 미래사(未
來事)에 대한 그의 확신을 표시하는 어법(語法)이다. 그는, 또한 유대인에 대한  바벧
론의 침략이 있을 것에 대하여 이방 나라들에게(유다 예루살렘에도 고하겠지만)  알리
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벧론 내침(來侵)에 대한 그의 예언을  외식
하는 유대인들이 살깊이 들어주지 않는 까닭이다. 그들이 살깊이 들어주지 않을  바에
는 이방인들에게라도 이 예언을 전하여, 이 예언이 성취될 때에 여호와 살아 계신  것
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라는 것이다.

 

  렘 4:17,18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
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 여기서는, 외식하는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의 예
언을 살깊이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한, 바벧론의 전화(戰禍)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이다. 그 전화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기를, "밭을 지키는 자  같이"하겠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그 당하는 재앙에 대
하여 그들은 수원수구(誰怨誰垢)할 것 없고, 자책(自責)과 회개할 것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말한 옛글에도, "모든일을 자기에게서  찾아보라"(反
求諸己)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람의 불행이 자기 자신의 잘못에 달려 있다는 것은  너
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렘 4:19-22

  여기에는, 장차 바벧론 침략으로 말미암은 유다의 비참한 정경을 아는 선지자의 심
리 고통이 진술된다.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곧, 그가
바벧론의 내침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은, 확신없는 말이 아니고 그 심령에서부터  벌써
전쟁의 나팔소리를 듣는 것처럼, 하나님의 감동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
하는 이유도, 역시 바벧론 내침에 대한 예언을 따끔하게 믿어주지 않는 외식하는 유대
인들을 경성(警醒)시키기 위함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장래에 대하여  현재의
사실처럼 확실히 말하되, 유대인들이 경성하여 주지 않는 것이 그의 안타까와하는  사
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적으로 그들을 자극시킬 만한 용어(用語)들을 많이 쓰면
서 말하기를, "패망에 패망이 연속"한다 함. 곧, 전쟁으로 말미암은 재앙이 오래 계속
한다고 하여, 그들을 무섭게 함이다.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
간에 열파되도다"라고 함. 곧, 그는, 외식하는 유대인들이 의지하는 무장 지대(武裝地
帶), 곧, 도시(都市)들을 "천막"(天幕)이나 "휘장"(揮帳)과 같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케 하고, 그것들이 그 전쟁 때에 "홀연히 파멸"된다고 한다. 그는, 또한 그  전화
가 계속되는 것을 심히 괴로워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
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라고 한다.
   그는 저렇게 외식하는 유대인들의 바벧론 내침 예언에 대하여 무감각한 우매(愚昧)
를 깨우치기 위하여, 그 전화에 대한 자기의 고통을 표본으로 보여주었다(19-21).  그
리고 그는, 이제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로서 그 백성의 무지(無知)를 책
망한다. 그가 유대인들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말함은 자기를 하나님의  대언자의
처지에 세우고 말함이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
다. 롬 16:19' 고전 14:20 참조.

 

  렘 4:23-26

  이 부분 말씀은,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나타난다.
   (1) 바벧론 내침으로 인하여 나타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증표로서 유다에 임할
참상(慘狀). 여기서도 이 참상이 미래에 될 일이지만 확실하다는  의미에서  선지자는
벌써 그 때에 그 참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본문에,  "본즉"(*         
=라이티=보았다는 過去詞)이란 말이 네 번 나온다(23,24,25,26). 이 만큼 그는 미래사
(未來詞)를 벌써 과거사(過去詞)처럼 확신하고 말한다. 이런 확신은,  철면피(鐵面皮)
와 같은 외식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극을 줄만하였다. 그는, 이런 확신으로 장차  임
할 유다의 참상을 진술함에 있어서, 그야말로 영혼을 전률(戰慄)케 할만한 말들을  사
용한다. 곧, "혼돈하고 공허하며"(*             =토후  와보후),  "빛이  없으며"(23
절),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24절),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5절),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학칼멜 함미드빨), "성
읍이... 무너졌으"며 (26절),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임(28절 상
반). 위의 일곱 가지 표현은,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결과로 당할 것이  두려움과
절망과 비애(悲哀)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무서운 일을 내어다 보는  죄
인들은 회개해야 된다.
   (2) 유다에 임할 바벧론의 침략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잠모디) 것이
므로 꼭 그대로 되고야 만다는 것(28절 하반). 심판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죄인들
이 어찌 막을 도리가 있으랴?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 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한다 하였고(29절), 유다가 외국에 아첨하기를, 여자가 고운 옷으로 단장하고 "연인"(戀人)을 꾀이듯이 하면서 도움을 받으려 하여도 외국(우리 본문에는 "연인"으로 비유되었음)의  배척을  당한다고 한다(30절). 하나님께서 그 징벌을 정하셨으니, 유다 민족은 필경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을 당할 것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잘 청종하여 회개하여야 한다.
   (3) 예레미야가 유대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예언하는 중, 한 마디 또 귀한 말씀을 붙인 것이 있다. 그것은 27절 하반절에 있으니,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 웨칼라 로 에에세)란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벧론을 유다에 보내어 징벌하실 것이로되, 그의 택한 백성은 망하지 아니하리라는  계약을 지키시기 위하여(레 26:44), 남겨 둘 사람들이  있을  것을  말함이다.  사  6:13,
10:20 이하, 11:11,16; 암 9:8; 미2:12, 5:6; 습 3:13 참조. 만일 하나님께서  바벧론
침략으로써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실 작정이라면, 그 예언을 듣는 자들은 회개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겨 둘 백성이 있다는 자비로운 약속을 듣는 자들은, 아무쪼록 회개하여 그 남은 백성의 반렬(班列)에 참여하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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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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