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1:1
"섬들" - 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 이임( )은 해안 지방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여기서는 지중해안의 여러 나라들을 가리키는데 모두 이방나라들이다.
"잠잠하라" 함은 그들이 하던 말을 그만두고 하나님에게로 와서 그의 권능을 보라
는 말이다.
"힘을 새롭게 하라" - 는 말씀은, 이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변론하기 위하여 힘을
내라는 뜻이다. 곧, 그들이 힘껏 하나님의 참되신 구우너 사역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
하여 준비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 는 말씀( )은,
"우리가 함께 심판석으로 가까이 나아가자"라고 번역해야 된다. 곧, 그들더러, 하나님
이 하시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며 비판해 보라는 것이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
자라는 사실을 도전적으로 주장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참 하나닌이신 사실은 비판을
경유하지 않은 기연 미연한 것이 아니고 모든 가능한 날카로운 비판을 이기고도 남는
사실이다.
사 41: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
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
의 활에 붙리는 초개 같게 하매. - 혹설에 여기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란 것은,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에서 일어나게 된 것을 가리킨다고하나, 그보다도 바사왕 고레
스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고레스는 이사야 이후 160년을 지나서 일어날
사람인데 이사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너다 보고 예언하였다. 특별히 이 사람을 대
항하는 자들 측에서 우상을 의뢰하리라는 말씀(7,29)은, 이 사람이 고레스임을 알게
해 준다. 그 이유는, 실상 바벧론 왕 나브나이드(Nabunaid)가 고레스를 대항하려는 방
침으로 국방(國防)을 위하여 바벧론의 우상당(偶像當)들을 수복(修復)하는데 주력하였
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 44:28에는 고레스의 이름까지 나온다. 고레스가 바벧론을 정
복할 사실에 대하여 본장 이하에 많이 관설되었다(43:14, 45:1-7, 13).
이렇게 예언자가 엄 장래에 올 인물의 이름까지 말하게 된 것은,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 없다. 요시야의 이름도 그의 출생 200년 전에 미리 말한 바 되었다(왕상 13:2). 그
러므로 에드와드 영(Edward J. Young)은 말하기를,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
으로 바사 왕 고레스가 올 것과 또 일할 것을 미리 말한 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하였
다(Who Wrote Isaiah p.50). "의로 불러서"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 )의 뜻
은, "의(義)가 그 사람(고레스)을 심부름군으로 불렀다"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의로
우신 섭리 행동이 그 사람을 심부름군으로 부르셨다는 뜻이다. 하난미께서 자기 백성
곧, 유다 민족을 바벧론에서 구원하시는 의(義)를 위하여 고레스로 자기 발 앞레 수종
들게 하셨다. 우리 본문이 말한 것과 같이, 고레스는 과연 많은 왕들을 정복하였다.
바벧론 왕, 루디아(Ludis)왕, 가바도기아(Cappadocia) 왕들도 그에게 복속하였다.
사 41: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 고레스는 많은
왕들을 정복하노라고 추격하여 원정(遠征)하되 아세아의 서쪽 끝에까지 이르렀고, 애
굽과 홍해에까지 미쳤다(Barnes).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 여기서는 선지자가 여
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대언하는 말씀이, 고레스의 위대한 일도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
터 정하신대로 된 것이라고 한다.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
라". 여기 "태초" 라는 말( )은, 처음이라는 말인데 하필 인류 역사의 초두를 가리
키지 않고 창세 전(創世前)을 의미하며, "나중 있을 자" 라는 것은, 히브리원어로 에
트 아카로님( )이니 "나중과 함께" 라는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 하나님이시고 나중에도 동일하신 하나님("내가 곧 그니라")이라는 의미이다. 이것
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인격적 신으로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자유로이 주장하심을
가리킨다.
사 41:5-7
여기 있는 말씀은 고레스왕을 대적하는 나라들이 우상을 의지하게 되는 것을 가리
킨다. 바벧론 왕 나브나이드(Nabunaid)는 과연 이 예언대로 고레스왕을 대적하기 위해
우상 전각(殿閣)을 수축하는데 전력했다. 여기 몇 가지 사실이 기록되었으니, (1) 고
레스왕의 정복하는 시대에 많은 나라들이 요동하게 되었다는 것(5절). "섬들"이라는
말은 열국을 의미한다. (2) 이 열국이 서로 협력하여 고레스를 막으려 함(6절). (3)
이 나라들이 고레스를 막는 방법으로서 우상 숭배에 전력하였다(7절).
여기
"장려하며" - 란 말이 두번 나오고,
"땜이 잘 된다" - 란 말이 한번 나오고,
"못을 단단히 박아" - 라는 말이 나옴을 보아 얼마나 그들이 우상에게 전심하고 있
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우상 주의에 열중한다. 그들이 하
나님을 모르는 것인 만큼, 그들의 어두운 생각으로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다. 선지자 이사야는 불신 세계의 이와 같은 특징을 여기 잘 묘사한다.
사 41:8,9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 이 귀절들은, 위에 관설
된 이방들의 우상 배경한 반대 운동(유대인들을 바벧론에서 건지는 고레스를 반대함)
때문에 유대인들은 두려워하지 말 것을 보여준다. (1) 그들은 여호와의 종("나의 종")
이니 열국의 반대 운동을 두려워 할것 없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말이, 40장-66장까
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택함 받은 사실을 생각
케 한다(창 26:24). (2) 그들은 택함 받은 백성("나의 택한 야곱") 인고로 열국을 두
려워할 것 없다. 열국에 비하여 유대 민족은 볼꼴 업슨다 미약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수모를 받을 만한 처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들을 택한 사실을
기억하사 그들을 끝까지 지켜 주신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친구("나의 벗")라고 할만
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고로 열방을 두려워할 것 없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
고 하신 것만큼 아브라함과 함께 택함 받은 백서은 하나님의 친구 되는 복을 누린다
(약 2:23).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땅 끝"이나 "땅 모퉁이"처럼 멀리 있는 지방인 갈대
아우르에서 불러 내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땅 끝"과 "땅 모퉁이" 라는 말을 사용
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시는 것이 전혀 그의 주권(主權)에 있고, 어떤 지역
(地域)이나 인종(人種)에 좌우(左右)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유대인은 팔레스틴
을 중심하여 생각하고"땅 끝" 곧, 이방을 무시하였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히 아브라함을 택하셨으니, 그를 끝까지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계약
에 참예한 이스라엘 민족(택한 백성)을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위의 두 귀절의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는 원인과 또한
그 구원의 성격을 말해준다. 곧, 구원을 받게 된 원인을 택함 받은 사실에 있고, 구원
의 성격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
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위의 사실(8,9)을 배경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두려워하거나 놀랄것 없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것만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또한 하나님
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것은 그들의 생활에 나타난 경
험이겠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신 사실은, 그런 경험을 가져오게 하는 영원한 근
거이다. "너를 굳세게 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든든하
게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실 때에는 그들의 마음도
평안케 하여 주신다. 여기 "참으로"( )라는 말이 두번 나오는데 "더욱이"를 의미
한다. 이것은 그가 유대 민족을 도우심에 있어서 힘있게 말씀하시는 표현이다. "의로
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의로우신
행동이다. 마르티는 말하기를, "의(義)가, 여호와에게는 구원 성취의 방법이고 이스라
엘에게는 구원이다"라고 하였다(K. Marti, das Recht ist fur Jahwe die Verwirkicung
des Heils, fur Israel die Rettung).
사 41:11,12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루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 이 말씀
은, 유대를 박해하던 바벧론과 그 속국들이 멸망 당할 것을 보여주는데 그 멸망이 순
전히 하나님의 간섭으로 된 것을 나타낸다. "노하던 자들(그렇게 강한 세력을 가지고
유대 민족을 압박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다"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간섭이다.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됨은 역시 우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강하던 나라들이 어떻게 이렇게 떨어질까? 또 그런 강한 나라들을, 찾아도 만나보지
못하도록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르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 이것은 위의 말씀(11, 12)과 같이 유다를 핍박하던
자들이 멸절되는 원인을 보여준다. 그 원인은,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도와주시겠다
고 말씀하신데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음에는 그대로 되어지는 법이다.
사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
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제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 여기 "야곱"이라
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데 그들을 "지렁이 같"다 함은, 그들이 낮고 천함
을 의미한다. 욥 25:6 참조. 그들의 가치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
신 사실에 있다. 그들을 도와주는 힘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 시 212편 참조.
사 41:15,16
여기서는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타작 기계가 곡식을 떨듯이
"산들" - 과 같은 강한 원수 나라를 파멸시키리라고 한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같으니 유대 민족이 언제 이렇게 한 적이 있는가? 그러나 이 말씀은 유대 민족으
로 예표된 교회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세상나라를 정복할 것을 예언하는것이
다.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적기독(敵基督) 나라들을 파괴하실 것이니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승리에 참예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해방될
것은, 자기들의 힘으로 될 것이 아니고 주님의 힘으로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주
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승리에 참예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
기 말슴하시기를,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 - 이라고 하신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
는 이 귀절들에 기록된 내용이 때가 이르기 전에 성취되기를 바랄것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그 원수들을 발 아래 두실 때에, 우리는 그 승
리에 참예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Whenever we read those
prophecies, our minds ought to be raised to the kingdom of Christ, that, free
from every wicked disposition, we may observe becoming moderation, and may not
desire that this bruising should take place before the proper time; for it ought
to be abundantly sufficient for us, if our Head shall at length prostrate his
enemies under his feet, that we may share in the triumph of his vetory.-Calvin's
Commentaries, Isaiah Vol. III, p.265).
사 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
라. - 여기 이른바 "가련하고 빈핍한 자"라는 말은, 계속하여 유대 민족이 어떠한 자
임을 보여준다. 곧, 위의 14적에서는 지렁이 같다 하시고, 여기 와서는 저희의 구원이
저희 자신의 공로나 의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운 주권 행사에 달렸다는 것
을 보여준다. "물"은 구원을 비유하는데 예수님도 역시 이 비유를 사용하였다(요
4:10).
사 41:18-20
여기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실 구원을 두 가지로 비유하였으니, 하나는 마른 땅에 샘
물이요, 다른 하나는 광야에 나무들이다. 여기 기록된 나무들은 제목으로 사용될 나무
("백향목", "싯딤나무",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와 피서(避署)를 위한 그늘로
사용되는 나무("화석류")와 기름을 내기 위한 나무("들 감람나무") 등이다. 광야가 이
와 같이 좋은 자원(資源)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야 될 것이다. 이것
은, 광야와 같은 인류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자원 같이 될 것을 비
유한다. 우리는 메마른 광야와 같으나 그리스도는 우리로 영적으로 부요하게 만드실
수 있다. 그러므로 20절에 말하기를, 무리가 이런 이적스러운 일을 보고 여호와께 영
광을 들리리라고 한다.
"자산" - (자山)이라는 것은 나무 없는 붉은 산을 의미한다.
"삿딤나무" - 는 아카시아의 일종으로서 목재(木材)로도 사용하거니와 고무진이 있
는 나무라고도 한다.
사 41:21-24
이 귀절들은 또 다시, 열방(바벧론과 그 속국들)의 우상 주의가 허무한 것을 지적
하면서 유대인들을 위로한다, 말을 힘있게 하기 위하여 우상들과 도전적(挑戰的)인 대
화(對話)를 하시듯이 말씀하신다. 곧, 우상들더러 여호와 하나님에게 대하여 소송하듯
이 할 말을 해 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거는, 모든 반대와 비판을 다 통과하고 승
리하는 진리이다. 여호와의 증거는 결단코 반대자들의 비판을 기피(忌避)하는 무력(無
力)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여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아라" - 고 하였다. 그들이(우상들이) 믿을만한 참 신일
찐댄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 관설돈 대로 "확실한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고,
(1) 장래 일을 진술함이다(22절 하반 끝과 23절 초두). 장래사(將來事)를 참되이 예
언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난미 참 신에게만 있다(신 18:22; 렘 28:9). 더구나 몇
백년 후의 장래사를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우상은 생명이 없나니 장래사를 말하지 못
할 것은 명백하다.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 여기 이름바. "이전 일의 어떠한 것"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
)의 자역(字譯)대로 첫머리의 것이 "어떤 것"이라는 뜻이니 곧, 미래 일에 대하여 그
첫머리의 사건을 말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사건의 그 첫머리를 말하여
우리가 그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첫머리의 것"이란 말은, 선지자의 예언 중 벌써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곧, 거짓 신은, 이런 놀라운 예언 성취의 사건을 성립시키지 못한다
는 것이다.
"후래사를 진술하라". - 이것은 22절 초두의 말을 중복하는 것 뿐이다.
(2) 우상들은 복은 내리든지 화를 내리든지 해보라는 것이다. 화복(禍福)을 주지 못
하는 자는 참 신이 아니다(23절 하반-24).
하나님은 여기서 유다 나라의 원수들(바벧론과 그 속국들)이 우상을 의지하고 고레
스왕(유대인을 해방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자)을 대적하는 사실에 대하여 도전한 말
씀이다. 이렇게 말씀이 도전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우상을 의지하는 인류의 생활이 도
무지 헛된 사실에 대하여 강하게 말하려는데 있다.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만 믿어야 바
로 되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음으로 패망하
는 것이다. 그들이 맏는 것 중에는 보이는 우상도 있거니와 보이지 않응 우상도 많으
니 곧, 심령 속에 있는 사상적(思想的) 우상이다(골 3:5). 물질을 탐하는 사상도 우상
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 밖에 다른 것을 사모하고 믿는 사상은 우상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그릇되이 가지는 철학 사상, 윤리 사상, 기타 모든 것은 다
허무한 우상이다. 인류의 모든 불행은 이런 우상주의가 빚어 놓은 것이다. 우상주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나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사을 불행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원수 곧, 우상주의에 대하여 간단
없이 공격한다.
사 41: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 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 이 말씀도 고레스왕을 가리키는 예언인데 앞에 2절에서는 그가 동방에서 일
어날 것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북방"( -차폰)이라고도 하며 "해 돋는 곳"(
=미즈라크 쉐메쉬)이라고도 한다. "북방"이라고 한 것은, 그가 메디아(Media)에 가서
지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다. 메디아는 바벧론 북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동방 곧, "해 돋는 곳에서 오게"된다는 것은, 그의 출생지인 바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고레스는, 바사에서 나서 바사에서 자랐으며 바사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가서 메디아(Media)를 정복하고, 서쪽으로 가서 루디아(Ludia)를 정복하고, 나중에는
남쪽으로 와서 바벧론을 정복하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말은, 물론 고레스왕을 가리키는데 그가 유대인을 해방
하여 본국으로 보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참 신이라고 고백한 일도 있다. 스 1:2-4
참조. 그가 바벧론을 정복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사 41:26
여기서는 또 다시 우상들을 향하여 도전적으로 말씀한다. 곧, 그것들 중에 고레스
의 의로운 일에 대하여 예언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예언하고 미리부터
그 예언이 이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다시말하면, 그것들은, 예언을 해
놓고 역설하기를, "이 예언대로 꼭 될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 나는 말씀이 이
뜻이다. "이가 옳다"고 말함은 곧, 그 예언이 확실히 이루어진다고 장담함이다. 본절
하반절은, 그렇게 할 자도 없고 또 우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자도 없다고 결론
한다.
사 41:27
이 말씀은, 고레스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유대인 해방에 대하여 예언한 자는, 우상
들이 아니고(26절)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곧,
"내가 비로소 시온에" - 이
"기쁜 소식" - 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을 보라" -고 한 말씀에 있어서 "그들"이라는 것은 누구를 의미함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을 의미했든지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임할 기쁜 일에 관련된 것이다. 오직 여호와께서 고레스로 말미암은 유대인 해방에 대하여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를 예루살렘에 보내실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바로 이사야이다.
사 41:28,29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또 다시 우상 주의에 속하는 사람들 측을 향하여 그들의 하는 일이 모두 헛됨을 말씀하신다. 그들 중에 장래 유대 나라에 대하여 예언할 자가 하나도 없음을 단언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