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1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
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 이 귀
절 말씀은, 신 24:1-4에 있는 내용에 의하여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게 주신 율법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아내가 수치스러운 일을 범한 때에는 내어 보냄
이 되는데, 후에 그가 돌아오려 해도 본부(本夫)는 받지 않도록 된 것이다. 여기서 하
나님은, 유다 민족을 그와 같은 경우의 여자와 같이 보신다. 유다 민족은 하나님을 떠
나 많은 우상을 섬겼으니 그것이 음행이었다. 9절 참조. 이스라엘의 국법대로는 본부
가 그런 음녀를 회복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이 진심으로 회개할 때에
받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 대하여는 은혜롭게 행하신
다.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이 말의 히브리 원어 웨쇼브 엘라이(* )
를, 랑게(Lange)와 기타 유력(有力)한 주석가(註釋家)들은, "그러나 내게로 돌아오라"
란 명령사(命令詞)로 번역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더러 돌아오라고 하시는 말씀(회개
하라는 말씀)은, 무서운 율법적 명령이 아니고 지극히 은혜로운 말씀이다. 그가 죄인
들더러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심정은, 매우 뜨거운 사랑으로 긴장된 대망(待望)인 것
이다. 눅 15:20을 보면, 탕자가 그의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에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
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내어
버리는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그가 회개할 때에 받으신다. 그러므로 시 27:10에 말하기
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서는 공의로우시나 그의 사랑이 오히려 지배적(支配的)인 활동을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4:16). 우리의 죄가 많은 중, 알려진 죄
보다 알려지지 않은 죄의 수요가 더욱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우
리의 죄보다 많고 풍성하시다.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에 그의 사죄하시는 은혜가 그렇
게 풍성하신 원인은, 회개자의 죄가(罪價)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대신이 되신
이가 무한히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 자신이시
다. 그러므로 스펄죤(Spurgeon)은, "공중에 있는 저 많은 별들이 모두 다 인간이 사는
세계이고, 또 거기 사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 무수한 세
계의 무수한 반역자들의 죄 값을 담당하시기에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넉넉하다"란 의미
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하시되 영구히 사하시고 다시 정죄
하시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롬 11:29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
하심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와 같이 크기 때문에 세상 풍속대로
는 회복할 수 없는 죄인들더러, "그러나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하신다. 그 범하던 죄
를 원통히 회개하고 고치고 진실되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
는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도 진정으로 회개할 대에 구원이 그에게 임하였다(눅
23:43). 전 세계가 욕하는 악인이라도 회개하고 주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렘 3:2-7
\ 1. 그들이, "자산"(* =쉐파임, 곧, 나무 없는 산) 어디서나 우상을 섬겼고
또 열심으로 섬겼다. 우리 본문에 말하기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다고 한다. 곧,
그들이 어디서든지 우상을 섬겼고, 또 길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 창기(娼妓)의 행
동처럼 열심으로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여행자의
장막을 수선 하기 위하여 광야에 앉아 있는 아라바(광야의 이름)사람 같았다(2절).
보통으로는 그들이 나무 많은 산에서 우상을 섬기는데, 그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심
지어 나무 없는 산("자산")에서도 우상을 섬겼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우상 섬기는
데 열중한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신자들의 우상 섬긴 일을 보고 반성해야 한다. 신약 시대 신자
들의 우상 숭배는 마음 속에서 행해진다(골 3:5). 신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그 마음 속
구석구석 어디든지 우상 섬기는 곳이 되기 쉽다. 곧, 돈 우상, 명예 우상, 가족 우상,
민족 우상 등등 그 수효를 다 셀 수 없다. 신자가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거나), 혹은 무엇을 하나님처럼 사랑하면(하나님처럼 두려워
하면), 그것은 우상 숭배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사람에게 맡기시며
다스리라고 하셨는데(창 1:28), 다스리지는 않고 도리어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그것을
너무 사랑하는 것은, 탈선적 행동이다. 어찌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사랑을 피조물에
게 주는가? 그것이 곧 사랑을 오용(誤用)하는 죄, 곧, 음행이다.
2. 죄 때문에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지는 않고 도리어 파염치적(파염치적)으로 계속
하여 범죄함(3절).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더욱 징계하시기 때문에(히12:6), 그
의 택한 백성이 범죄할 때에는 육적 징계(육적징계)를 아끼지 아니하신다. 아합왕이
우상 숭배를 심히 한고로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왕상 18장; 약
5:18 참조. 그러므로 택한 백성에게 내린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레미야 시대
는, 유다 민족의 저렇게 우상 숭배한 죄 때문에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비(4,5월에 내
리는 비인데, 그 땅의 곡식을 결실케 하는 비)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창녀의
낯"을 가지고 (수치를 모르고) 기탄 없이 범죄하였다.
3. 외식하는 경건(4,5). 그 때에 유대인들은, 경건한 듯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
르며 그의 노(怒)를 계속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노를 한 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5절 상반)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
)는, 실상, "노를 영원토록 지니겠으며 끝까지 가지시겠
나이까"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권고를 요청하는 그때의 유대인들의
기도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악을(우상 숭배를)계속하였다. 이것
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권고를 요청하는 그때의 유디인들의 기도인 듯하다. 그러나 그
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악을(우상 숭배를) 계속하였다. 이것은 외식하는 종교 행위이
다. 10절 참조. 외식으로 종교 행위를 가지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농락(籠絡)하는
것이다. 그것은, 로마 군병들이 가시 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
히고, 그 앞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면서 손바닥으로 때
린 것과 마찬가지이다(요 19:1-3). 그들이 외식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도
리어 그를 괴롭히는 악행이었다. 외식적 종교 행위는,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외식으로 종교 행위를 가지는 그들 자신도 괴로움을 면치못한다. 사
1:14, 43:22-24 참조.
4. 남들이 그 죄 때문에 징계 받은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기는 경성하지 않는 죄
(6-10. 곧, 요시야왕 때에 북국 이스라엘이 "배역"(* =이는 이스라엘의 固有名
詞와 같이 使用되었음:6,8,10,11,12)하고 (우상 숭배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는 사실
을, 남쪽 나라 유다가 잘 알고 있었으며(6,7), 또 필경 이스라엘의 징계 받는 것(주전
722년)을 친히 목도하였다. 그리하고도 유다는 회개치 않고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니,
그것이 큰 죄악이라고 예레미야는 외친다(주전 622년 경). 남들이 벌 받을 때에 그것
을 보는 자는, 자기도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인 줄 알고 철저히 회개해야 된다.
눅 13:1-5참조. "더렵혀"다는 말(9절)은 히브리 원어로 카나프(* )니, 심히 더
렵혔다는 의미이다.
렘 3:11-14
이스라엘더러 돌아오라는 말씀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면서 두 번 선포된다(12,14).
1.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란 말씀으로 소망을 주신다. 죄인들더러 돌아오라는 말씀
은 듣기에 역스러운 말씀이 아니고, 도리어 그들이 환영해야 할 자비로운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자비를 소망으로 하고 죄인들은 단 마음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그
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돌아옴이 무엇인지를 밝혔으니, 곧, 그들의 죄를 자복함이라
는 것이다(12,13).
2. 14-18절에서도 돌아오라고 하시며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 따른다. (1) 하나님께
서 그들의 "남편"과 같은 이라고 하시며 소망을 주심(14절). (2)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하시되 그들을 단체 취급하심 보다, 각 개인을 개별적으로 취급하여, "시온(하나님
계신 곳)으로 데려오"겠다고 하신다. 이것이 구원의 따뜻한 소망이다(14절 하반). (3)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세우겠다고 하심(15절). 이것은, 유대인들
이 포로 되었던 자리에서 회개한 뒤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 있을 선한 지도자들의 인도
를 가지리키도 한다. 그러나 또한 멀리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시대의 참된 지도자
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4) 신약 시대의 영적 예배(靈的禮拜)(16절). 신약 시대의 영
적 이스라엘(그리스도 신자들)이 "번성하여 많아질"터인데, 그 때에 그들은 "언약궤"
를 중심한 구약식 예배를 드리지 않고, 다만 영과 진리로 이루어지는(요4:24) 예배 행
위를 가지게 된다. "언약궤"에 대하여는 다음 귀절들을 참조하여라. 출
25:17-21,22,29:42, 31:18, 34:28, 40:3,5,20; 레 16:14-19; 밑 7:8,9; 삼상 4:3; 삼
하 6:2; 왕하 19:15; 시 80:1, 99:1참조. (5) 유대인의 종교("예루살렘"으로 상징됨:
용 4:22 참조)는, 세계 만민이 귀속(歸屬)하는 종교가 됨(17,18). 이 종교를 믿는 자
들은 "유다 족속"이나 "이스라엘 족속"이나 다 하나 된다. 이것은, 세계 만민이 그리
스도를 참되이 믿는 한에 있어서, 원칙상으로는 하나를 이루게 됨을 의미한다.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것을 말하면서, 멀리 신약 시대의 영적 축복을
소개한 것은 엉뚱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의 참된 회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만 성취될 것을 내어다 본 것은 자연스럽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죄인이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것은 소망 있는 일로 귀결(歸結)될 뿐이다. 회개는 저렇게 좋은 것이다.
고후 7:8-10 참조.
렘 3:19-22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경영과 반대로 나가는 이스라엘 자손의 잘못을 지적한다.
곧, 하나님께서는 경영하시기를("스스로 말하기를"),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으시고,
"낙토"(가나안 땅)를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며 섬기도록 하
셨다(19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내가 남편을 속이"듯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
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우상 섬기는 "자산(나무 없는 붉은 산)위에서" 그들의 문제
해결도 못받고, 고통으로 인하여 "애곡"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고통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로 받는 보응이다(20,21).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돌아오라"고 하시는 자비로운 음성을 따라 그에게로 가야 된다(22절 상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렇게 사랑하시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것은 사랑을 저버린 죄악이다. 사랑을 저버리는 것처럼 뼈아픈 것은 없다.
렘 3:22-25
이 부분은, 윗말씀에서 회개하라는 부탁을 받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진술한다. 다시 말하면, 선지자가 장차 북국 이스라엘에 회개 운동이 있을 것을 보여주어, 남쪽 유다 나라를 부끄럽게 한다(Calvin). "이스라엘은 회개하는데 어찌하여 유다는 회개하지 않는가?"라는 암시(暗示)가 이 부분에 포함되었다.
여기 회개의 언사(言辭) 중에 몇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1) 그들이 "주께"로 옴(22절 상반). (2)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심(22절). (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소망을 두지 아니함. 곧, 이 회개자는, 산들 위에서 행하여지는 무리들의 우상 숭배가 헛된 줄 알며, 구원은 여호와께만 있는 줄 안다(23절). (4) 그들이 당하는 "부끄러운" 일, 곧, 외부의 침략을 받아 가축과 자녀들을 잃게 된 것은, 그들의 죄 값임을 자인(自認)함. 그 죄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聽從)치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보여주시는 대신 그의 말씀을 주셨으니, 그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權威)를 무시하는 죄악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죄 값으로 지금 징게를 받는 줄 안다. 그것이 회개의 태도이다(24,25). 눅 23:4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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