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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18:1
  마므레 상수리 수풀 - 이것은  헤브론 땅에 있는 아모리 사람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수풀"인데, 아브라함이 거처하던 곳이다. 13:18, 14:13 참조. 그곳은 매우 더운 지방이었기 때문에 그런  수풀 그늘 밑에 장막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모리 사람 마므레는 아브라함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 "오정  즈음"은 매우 뜨거운 때였으니 만큼, 여행자들이 그 앞을 지나 가다가 쉬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의 풍속은 여행자들을 친절히 도와 주었다.

  창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 여기 세 "사람"은 후에 나타난대로 땅 위의 사람이 아니고,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실존들로서 임시로 사람의 형상을 취하였던 것 뿐이다. 이 세 사람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다(13, 19:1).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는 것은, 그가 살아  계신 인격적 신(人格的神)이심을 보여 준다. 그의 이와 같은 계시(啓示)를 신학상으로 의인주의(擬人主義 = Anthropomorphism)의 계시라고 한다. 그가 이와 같이 자기를  계시하시는 목적은, 그가 무한히 완전하시고 육신은 없으면서도 사람과 같은  성품이 계심을 보여 주려  하심이다. 그가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니만큼, 그와 사람 사이에는  같은 방면이 있으며, 또한 접촉점이 있다. 여기서 신인 교제(神人交際)가 성립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 상대로 구원을 주시기 위한 계약을 실시하시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인격적 신이 아니시고  어떤 추상적 이법(理法)에 불과하다면, 우리에게는 구주(救主)가 없을 번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신 인격적 신이시다. 따라서 우주와 인류의 역사(歷史)는 그의 살아 계신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죄악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성령에  의하여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된 성경 기자(記者)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이론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인격성(人格性)을 우리에게 직접 말하는 것 뿐이다.

  창 18:3-7
 이 부분에서는, 아브라함이 그 세 사람을 극히 친절하게 대우한 사실을 보여 준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 생활의 중요한 방면이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로 신앙한 동시에 인간을 참으로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와 관계 없는 지나가는 행인을 위하여 그렇게 큰 연회를 베풀었다. 히 13:1-2에 말하기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창세기  18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선한  행실을 말함이다. 신자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만큼  하나님과도 가까와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일  4:20-21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마22:39).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태산  같은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로 깨닫고 보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데 있
어서 최대 한도로 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을 평화롭게, 밝게, 힘있게 만드는 것이다. 남을 깊이 사랑할 때에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결과가 되어진다. 특별히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할 때, 그것은 나 자신을 더욱 심각하게 사랑하는 결과가 되어진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하신 말씀(마 22:39)에는, 이웃 사랑함을 내 몸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라는 뜻도 있다.
   이 부분(3-8)에 나타난대로 아브라함이 그  세 사람을 대접한 행동에는 몇 가지 아름다운 것이 있다. (1) 그들을 대접하되 겸손하게 한 것.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3절), "가져오게 하사"(4절)란 말씀들을 보면,대접하는 아브라함이 대접 받는 그들에게 대접 받아 주기를 애걸하였다.  이것은, 신앙의 사람 루디아가 "나를 주 믿는 자로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한 것과 마찬가지이다(행16:15). (2) 열심으로 한 것.  "급히 장막에  들어가"(6절 상반)란 말이라든지,   "속히 고운 가루  세스아를 가져다가...떡을 만들라"(6절 하반)고 한  것과   "짐승 떼에 달려 가서...급히 요리한지라"(7절)고 한 말들이 모두 다 그 행동의 열
심을 보여 준다.
   남을 대접하는 자들은, 주님을 대접한 것과 같은 상급이 있을  줄  알고(마25:31-40) 열심으로 해야 된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사람에게  무관심하였던    유대인들의  죄악을  거듭거듭  책망하였다(사 58:3-11;  슥7:1-12).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4절) - 이것은, 근동 지방의 풍속이다(19:2, 24:32, 43:24).
   고운 가루 세 스아(6절) - "스아"는 곡식을 되는 것인데, 한 에바와 같은 분량(42
리터)이다.
   그들이 먹으니라(8절 끝) - 초자연적 실존들이 어떻게 음식을 먹을수 있을까? 그들이 먹는 행동을    취한것은, 생리적 욕구에 의하여    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가까운 접촉을 가지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니, 그것은 능력으라 한 것이다(Augustine).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잡수신  일과 마찬가지이다(눅24:30, 43). 그러므로  그들이 먹은 것은, 먹은 모양만  취한 것이 아니니, 그들은 그때에 아브라함과  필요한 접촉을 가지기  위하여 진정으로 음식을  섭취하였다.  칼빈
(Calvin)은 말하기를, "그  때에 그들의 몸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그들을 위하여 지어 주셨던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 때에 하나님께서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化肉)을 예표한 것이다.

  창 18:10
  기한이 이를 때에 - 이 말은 히브리 원어로 카에드 카야(*          )이니, "명년 이맘 때에"란 뜻이다.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란 말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을 가리킨다.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은, 자기가 늙었으므로 생산을 못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자연을 믿지 못한 그의 불신앙이다.

   창 18:13,14
  여기서는, 우리 본문이 말한대로  사라에게 약속하시는 그 발언자가 여호와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이 때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 발언자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책망하신 내용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녀의 불신앙이었다. 그 책망에 뒤이어 또  다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으니, 사라의 불신앙 때문에 본래의  약속을 철회하시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라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들어 주신다.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 이  귀절에는, 하나님의 재약속으로 말미암아 생긴 사라의 신앙이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서 저자에  의하면, 이 때의  사라의 신앙이 인정되었다(히11:11). 그러면, 사라의 신앙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드려워한 태도로 증명된다. 이와 같은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경외(敬畏)였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  말씀은, 겉으로 나타나게 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속으로 웃은 사실을, 하나님은 아셨다. 그래도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한(15절 초두) 사실을 보니, 그가 이제분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들이고 순종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셔서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을지라도 그들의 신앙은 신앙으로 인정하여 주신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이만도,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하여 엘리사를 찾아 왔을  때에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지시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그가 후에 그의 종들의 권면을 받고 요단강에서 일곱번 목욕하였더니 그의 몸이 깨끗해졌다(왕하 5:1-14).

  창 18:16,17
  이 부분 말씀을 보면, 그  때에 나타나셨던 세 사람 중 한 분은 여호와 자신이었던 것이 분명하다(19:1 참조).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시 25:14; 렘23:18-22; 암 3:7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라면 무엇이든지 그에게 숨기지 않으실 정도로 그를 신임하신다.

  창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 이 계약은 다른 곳에도 있다(15:4-21, 17:5-8, 22:17-18).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성립될 신정 국가(神政國家)를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론 메시야 중심한 영적(靈的) 왕국을 가리킨다. 17:5에는, 아브라함이 열국(列國)의 아비가 되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메시야)으로 말미암아 많은 민족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을 것을 가리킨다(Calvin).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야." 복은 저주와 정반대이다. 저주가 죄 값인 반면에, "복"은 속죄(贖罪)의 결과인 것이다. 그를 인하여 복을 받는 일은, 아브라함의 자손, 곧, 메시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 그런데, 메시야의 왕국에 대한 이 약속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우리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과 및 그의 복음운동으로 이루어졌고, 장차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에서는 이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았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므로 왕국 성취는 연기되고, 구약에 명백히 예언되어 있지 않은 신약의 보편주의적 운동(신약 교회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끝에 유대인 왕국  예언이 문자대로 성취된다고  한다(Gaebelein, The Prophet,  pp. 1, 166,Christianity or Religion, p. 85).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서 "다윗의 왕국" 예언 성취가 연기되었다는 말씀은 찾을 수  없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곧, 왕국을 빼앗긴다고 하는  말씀과 그와 유사한  말씀이 있을 뿐이다(마 21:43).  마 8:11-12; 눅
14:24 참조. 그리고 천국  곧, 왕국은 이방인들에게 주리라고 하셧으니(마 21:43), 이것이 신약의 복음  운동이다. 빼앗긴다는 말과 연기된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왕국(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 곧 바로 복음 전파로 교회를 세우는 운동에서 성취된다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은, 왕국(천국)과 교회를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시(同一視)하셨다.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가 그렇고, 마 16:16 이하는, 한 가지  사건을 가르치는 예언에 있어서    "교회"란 말 대신에 "천국"(곧, 왕
국)이란 말을 사용하신 예(例)도 있다. 그 예언은, 베드로와 및 사도들의 복음 전도로 교회가 성립된 사실에서 그 성취를 본 것이다(행 2장).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할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경건한 백성을 세우시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경건한 백성을 통하여 마침내 메시야가 나시도록 하셔서 만민 구원의 약속을 이루신다.

  창 18:20,21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짓음"이란 말은, 그 도시들 가운데서 억울함을 당한 자들의 호소를 말함이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르 낮추시어 사람 모양으로 말씀하시는 체휼(體恤)에 속한다. 그는,  소돔 고모라에 가 보시기 전에도 그 도시들의 죄악상(罪惡相)을 잘 아시고  계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 가셔서 알아 보시겠다고 하신다. 그 말씀은, 그가 아브라함과 접촉하시기 위하여 사람 모양으로 말씀하신 의인주의(擬人主義)에 속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체휼하셔서 자기 자신을 인간처럼  나타내심은, 우리에게 그의 인격성(人格性)을 보여 주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대하여 사람과 교제하듯이 기도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생명 없는 이법(理法)이 아니시고 살아 계신 인격적 신(人格的神)이시다.

  창 18:22-33
  하나님에게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이제 그 도시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 부분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도고(禱告)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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