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본절에서 7절까지는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福)에 대한 백성들의 감사의 내용이다.
주의 힘을 인하여 - `주의 힘'은 전쟁 이전에 다윗 왕이 의지했던 여호와의 `구원하는 힘'이며(20:6),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전쟁에 참전하여 보여 주신 역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의 힘'은 성소 가운데 임재하여 계신 `하나님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20;1, 5, 7). 기뻐하며...즐거워하리이다 - `기뻐하며'는 문법상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으로 기뻐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Rawlinson). 그리고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 왕이 전쟁 이전부터 확신했던 것으로, 전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저들은 과거에 믿음으로 소망했던 사실을 즐거움으로 지금 현재 누키고 있는 것이다.
=====21:2
그 미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은 단순히 승리한 사실만으로 기뻐하지 않고, 보다 신앙적인 이유에서 기뻐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는 이 은헤로운 사실에 대해 더욱 감격하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저들의 기쁨은 육체적인 욕망의 성취에 근거하였다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본 구절은 20:4의 왕을 위한 백성들의 기원과 연관된 내용으로서 백성들의 기원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주셨으며'는 의미상 `허락하셨으며'로 헤석되어야 할 것이다.
입술의 구함 - 마음의 소원이 보다 뚜렷하게 말로써 표현된 기도를 말한다. 시인이 이 같은 점층법을 사용한 것은 자신과 그의 백성이 간절히 기도했음을 암시한다.
셀라 - 3:2 주석을 참조하라.
=====21: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 이는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을 묘사한 구절이다. 여기서 `영접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담'(* )은 본래 `앞서가다' 또는 `만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보다 먼저 앞서 가셔서 아름다운 복을 예비하신 후 그를 만나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있다(Lange). 여기서 다윗이 얻은 아름다운 복이란 그가 하나님께 요청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아시고 예비하여 두신 것임을 알 수있다(Calvin). 그리고 `아름다운 복'이란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을 의미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의미할 것이다. 특히 `아름다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 )는 `정금'(창 2:12)이나 `고급 향유'(아 1:3)를 묘사할 때 사용된 수식어로서 아주 훌륭한 질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렇게 볼때 `아름다운 복'은 조금도 손색이 없이 만족스러운 복을 의미한다.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 혹자는 `정금 면류관'을 삼하 12:30과 관 련시켜, 이를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암몬 왕의 왕관으로 본다(Delitzsch). 물론 다윗 왕이 역사적으로 암몬을 정복한 후 이 왕관을 빼앗아 머리에 쓴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 견해를 주장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시에 있어서 `정금 면류관'을 이에 국한시켜 해석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본시는 메시야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아울러 다윗 왕조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금 면류관'은 다윗 왕이 하나님의 왕권의 대리자로서 인정되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당신의 대리자로 인준하셨음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Craigie, Hengstenberg, Hupfeld, Rawlinson). 따라서 본 구절은 역사적인 사건(암몬 왕의 왕관을 빼앗은 정복사건) 보다는 다윗 왕조의 견고성과 영원성이 약속된 다윗 언약과의 관계에서 혜석되어야 한다.
=====21:4
저가 성명을 구하매...영영한 장수로소이다 - 여기서 `생명'이란 일차적으로 다윗의 개인적인 생명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델리취). 왜냐하면 본 구절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감사를 드리는 내용으로서 다윗이 전쟁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사실을 감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이란 용어가 '영영한'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보다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윗이 아무리 장수했다하더라도 영영한 장수는 아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문맥에서 볼 때 '생명'이란 다윗 왕조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다윗 왕조의 영원성은 다윗 언약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해 이미 보장되었다(삼하7:16). 또한 다윗왕 자신의 왕조의 영원성을 간구한 사실은 삼하 7:29에 기록되어 있다.
=====21:5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 여기서 `영광'은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승키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의 통치가 실제로 이방 민족에게까지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삼하 10:19; 대상 14:17).
=====21:6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 이와 같은 내용은 아브라함 언약인 창12 :2 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영영토록'이란 말은 다윗 왕조의 견고성을 지시하는 말이며,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를 예시하는 말이기도 하다(Rawlinson).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 여기서 `기쁘고'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 )는 본절 이외에 출 18:9 에서만 사용된 용어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본 구절은 지금까지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의 역사로 인한 기쁨과 즐거음을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Briggs , Rawlinson).
=====21: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 이는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진술이다. 신정 국가에서 왕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 안에서 여호와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표본이 바로 다윗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 상반절과 연결시켜 볼때 여기서는 분명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관계가 선포되어지고 있다. 즉, `의지하다'(* , 바타)는 말과 `인자함'(* , 헤세드)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를 한마디로 함축시킨 용어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자함)에 대한 언약 백성들의 반응이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또다시 은혜로 백성들에게 주어진다(Craigie).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언약 백성들의 신뢰가 계속 유지되는 한, 하나님의 은혜는 불변한다는 사실이다. 다윗 왕조의 견고성은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한편 본 문맥에서는 특별히 왕의 신앙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왕이 언약 공동체의 대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1:9
저희로 풀무같게 할 것이라 - 이는 다윗왕이 암몬 자손들에게 행한 처절한 형벌을 연상케하는 구절이다(삼하 12:13). 즉, 다윗은 암몬을 정복한 후 그 백성들을 벽돌 가마에 던져 넣는무서운 형벌을 행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풀무'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 이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로서 가혹한 형벌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신 4:20; 왕상 8:51; 사 48:10; 렘 11:4; 겔 22:18, 20, 22; 말 4:1, Rawlinson). 아무튼 본 구절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다윗이 이방 민족들에게 무서울 정도로 권위있는 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 왕의 권위에 이어 곧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행위가 기록 되어있다. 이는 다윗 왕이 독단적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지시하에 행할 것임을 보여 준다(Rawlinson).
=====21:10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 본 구절은 다윗이 모압과 에돔 백성들에게 행한 형벌을 예언하고 있는 듯하다(삼하 8:2; 왕상 11:16).
=====21:11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 여기서 계교란 다윗의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이방 군주들의 반란 음모를 의미한다. 그러나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므로 저들의 계교로는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다윗 왕권에 대한 이방 민족들의 도전과 이에 대한 다윗 왕조의 승리에 대해서는 2편을 참조하라.
=====21:12
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등을 돌리게 할 것이다'로 해석되며, 그들을 패주시킨다는 뜻이다.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 활은 이스라엘, 특히 왕의 주요 무기 중 하나로서 왕의 힘을 상징한다(45:5, 6; 삼하 1:18, 22). 그런데 이 구절은 상반절의 종속절로서 문자적으로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길 때'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저희를 패주시키게 한 결정적인 다윗의 행위가 대적들의 얼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21:13
여호오여...칭송하겠나이다 - 마지막으로 본시는 여호와의 능력과 권능에 대한 찬양으로 끝나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이 행한 모든 능력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시는 다윗 왕권의 영화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시의 구조는 20 편의 마지막 절에서도 이미 사용된 바 있다(Briggs).
본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왕과 백성들이 성소에 모여 부르
던 감사 찬송이요 또한 앞으로의 승리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는 감사의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감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왕의 소원을 열납하신 여호와께 대한 감격이 넘치도록 들어있다. 전반부(1-7
절)에는 이스라엘 왕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찬송
과 구원으로 인한 감사의 내용이고, 후반부(8-13절)에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왕에게 보
장된 미래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나타나고 있다.
본시는 내용과 구조에 있어서 20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마 20편에서 기도했던
바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의 궁을 완전히 정복한 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시편으로 보여진다. 다윗은 본 시편에서 자신과 백성들의 기도와 믿음을 경
시하지 않으시고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을
기뻐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힘에 근거한 장래의 승리를 확신하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
다.
그러므로 본시는 왕의 승전(勝戰)을 인하여 부르는 '감사시'라고 볼 수 있다. 이스
라엘에서 왕은 백성 전체의 대표자로서 인식되는데, 왕의 안정과 가번영은 하나님 왕
국의 승리를 예표한다. 왕의 승리의 결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영영한 장수'(4절)와
'존귀와 위엄'(5절), '지극한 복'(6절), '요동치 아니함'(7절)등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얻게 될 승리와 축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본시는
'메시야 시'(messianic psalm)라고 불리는 몇편의 시(2, 45, 72, 110, 118편) 중 하나
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한편 본시는 매우 균형잡힌 문학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봉합
(inclusion) 구조로 되어 있고(1, 13절) 시적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하여 몇개의 단어
를 반복적
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통해 승리를 경험한 다윗의 감격이 드러나고 있는 본
시의 내용을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승전으로 인한 감사의 고백(21:1-7)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왕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본 대목은 하나
님께서 왕에게 베푸신 아름다운 복들을 열거하고 있다. 왕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
하여 인간적인 방법으로 복을 쟁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였다(20편).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사랑으로 응답하셔서 한량없는
축복을 베푸셨다. 이러한 복은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것이었다. 이
제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1) 그 입술의 구한 대로 강력
한 원수들을 크게 이기게 하셨다(1, 2절), (2) 하나님의 거룩한 왕권의 대리자가 되게
하셨다(3절), (3)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4절), (4) 주의 도우심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다(6절), (5절) 언약적인 사랑을 끈임없이 베풀어 부셨다(7절).
이러한 복은 세상이 주는 복과는 달리 위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것이며 썩지 않고 쇠
하지도 아니하는 영원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복은 인생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
대의 복에 해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는 물질적이고 참된 가치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긴밀한 연합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했다(7절).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운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이상을 통하여 다윗과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의지할 때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소유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성도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생활할 때만 아름다운 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2. 미래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찬양(21:8-13)
메시야의 영원한 권세를 보여주고 있는 본 대목은 특히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
에 대해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행할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
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악한 무리들은 언제나 존재하여 왔었고 당시에도 하나님이 세
우신 다윗 왕조를 완전히 멸망시키려고 기도하던 악한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은 세상의 힘과 간교함으로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악한 세력들이 존
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세상의 힘과 간교함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를 공격한다.
다윗은 본 대목에서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윗은 세상의 영원한 통치자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반드시 공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노래한다(9절). 이러한 확신은 장차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성취를 예표적으로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메시야는 만왕의 왕
으로서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협하는 모든 원수들을 부로 소멸할 권세를 갖고 계
시며(9절) 악인들의 간교한 꾀를 사전에 봉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행사하신다(11
절). 이와 같은 메시야의 권위와 권세는 세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영원하신 한
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9절). 바로 이와 같은 선지자적 조
망(眺望)을 가지고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올 메시야의 승리를 내다보며승리
의 찬가를 부를 수 있었다.
우리는 이상에서 성도의 승리의 노래를 발견하게 된다. 성도는 세상의 일시적인 것을 성취함으로 얻은 순간적이 기쁨의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권세로써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를 내다보며 영원한 기쁨의 찬양을 부른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파수하는 자드리 되어야 한다. 메시야의 영원한 통치하에서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며 악은 반드시 멸망당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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