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 '사랑하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함'(* )은 주로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실 때 사용된 용어이지만 본절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사람이 주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용어는 다윗과 하나님간의 밀접한 관계를 충분히 잘 보여주는 것으로 본시 전체의 사상을 요약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8:2
본절에는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그의 생애의 경험, 특히 사울의 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Lange).
반석(盤石)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 반석이나 요새는 적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난한 곳로서 피난처로 사용된다. 다윗은 실제로 사울에게 쫓길 때 이러한 곳에 숨어서 연명하곤 했었다. 다윗은 이러한 '경험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피난처가 되셨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피할 바위시요 - 여기서 '바위'는 위의 반석과 다른 의미를 가지는 용어이다 . 위의 '반석'(* , 셀라)은 그저 몸을 숨길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바위 덩어리를 의미하나 여기의 '바위'(* , 추르)는 큰 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일찍이 하나님의 별명으로 일컬어졌으며(출 17:6;33:21, 22;신 32:4;삼상 2:2)큰 산과 같은 하나님의 불변성을 상징한다(사26:4). 그리고 실제로 지형이 쉽게 변하는 사막지대에서 이 '추르'라고 하는 말은 불변성 또는 견고성을 상징했다.
나의 방패시요 - '방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겐'(* )은 조그마한 원형의 방패를 의미한다(TWOT). 방패가 적의 화살과 칼날로부터 몸을 보호하둣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몸을 항상 둘러치셔서 그의 보호자가 되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창 15:1), 아론의집(115:10), 이스라엘 민족(신 33:29), 그를 신뢰하는 모든 자들(잠 2 :7;30:5)의 방패가 되시기도 한다.
구원의 뿔 - 뿔은 승리와 권능의 상징이다. 다윗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자이며 환난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뿔'로 고백할 수 있었다.
나의 산성이시로다 - 여기까지 다윗은 모두 일곱 번에 걸쳐 하나님을 비유적으로 묘사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묘사하기 위함일 것이다(Delitzsch, Rawlinson).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마지막 비유인 산성은 높고 험한 바위로 구성된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한다(9:9}. 그리고 이곳은 적의 침입시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 되시기에 성도는 마침내 승리를 얻게된다.
=====18:3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 다윗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며 보다 확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 이 신뢰는 환란 가운데 기도로 나타난다.
=====18: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 이는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있듯이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헤어나오기 힘든 다윗의 급박한 상황을 비유한 구절이다.
불의의 창수(漲水)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 '불의의 창수'는 문자적으로 '벧리알의 창수'이다. '벧리알'(* )은 '무익한 것', '무가치한 것'을 의미하나 '파멸', 또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절이 히브리 시의 특징인 병행 대구법으로 구성되었다면 후자의 해석이 타당하다. 그리고 구약에서 '벧리알'이란 표현은 '사망'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므로(욥18;13;합2:5). 본 구절에서 '벧리알'은 '죽음'으로 해석되는 편이 타당하다(Briggs).
=====18:5
음부의 줄...사망의 올무 - 본절은 히브리 시의 대표적인 특징인 평행 대구법(parallellism)이 사용되어 다윗이 원수들에 의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음부의 줄'과 '사망의 올무'는 동일한 표현으로 다윗이 죽음의 위기에 빠져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8: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 다윗은 3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망의 위기 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는 그의 믿음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저가 그 전(殿)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 여기서 '전'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건축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은 여호와께서 우주를 다스리기 위해 앉아 계신 하늘의 거처를 의미할 것이다(Craigie).
=====18:7
여호와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강림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강림은 하나님께서 대적들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종종 묘사되었다(68:7,8;신 33:2,3;삿 5:4,5).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 이는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의 장면과 유사하다(출 19:18). 이 같은 표현은 대적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강림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두렵고 엄한 분이신지를 암시한다.
=====18:8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처럼 숨을 쉴 코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여호와의 진노를 보다 생생하졔 묘사하기 위해 신인 동형 동성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연기'는 명렬히 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창 19:28;출 19:18).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시이 피었도다 -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불은 대적들에 대한 진노의 불로서 이는 실제적으로 뇌성 벼락 또는 지진과 같은 자연의 변화를 초래할수 있다. 또한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라는 표현은 이 진노의 불이 어떤 것도 태울 수 있는 맹렬하고 뜨거운 불임을 묘사하고 있다.
=====18:9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 이는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시는 가운데 강림하셔야 했기 때문에 짙은 구름으로 자신을 두르시고 강림하신다(11절;97:2;출 19:16,18;겔 1:4).
강림하시니 - 이는 히브리어로 '야라드'(* )인데 '내려가다', '낮추다'는 뜻이다. 이 말이 하나님께 사용될 경우 인류를 위해 낮아지신 하나님의 비하(卑下) 또는 겸손의 의미를 내포하지만(Kraus).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수행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 밭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 이러한 현상은 짙은 구름이 깔려있어 해를 가렸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나타낸다(마 24:29).
=====18:10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이 그룹 위에 앉아계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80:1;99:1;삼상 4:4). 또한 그룹은 생명나무(창 3:24), 지성소(출 26:3`,33)의 수호자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그룹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 강림하실 때 타시는 살아있는 수레를 의미한다(겔 1:4-28;9:3;11:22).
=====18:11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 하나님께서 빽빽한 구름 가운데 숨으신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게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자신을 감추지 않으시면 악인뿐 아니라 의인들도 죽게 된다.
=====18:12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 광채는 구름 속의 번개를 묘사하고있다. 이 번개가 구름 속을 가로지르면서 하나님의 강림을 알린다.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 번개가 치자마자 우박과 숯불이 내린 것이다. 아마도 번개가 구름을 갈랐을 때에 구름이 우박으로 변했을 것이다(Calvin). 출 9:24에 보면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8: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 이 표현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음성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18:14
그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 '그 살'이란 벼락을 의미하며 '저희'는 다윗을핍박한 모든 대적들이다. 이는 다윗의 대적듸이 인간의 손에 의해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멸망당한 사실을 보여준다. 다윗은 자신이 대적들과 싸워 승리를 했으나 그승리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모든 승리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그분을 찬양할 수 있었다.
=====18:15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 혹자는 '물밑'이나 '세상의 터'를 다윗이 그의 원수들로부터 핍박받는 위기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Craigie). 그러나 이 표현은 악한 자들의 기세가 꺽이고 반면에 그들에 의해 고난당하던 다윗이 기세 등등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Alexander). 즉, 다윗과 그의 대적들의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것을 가리킨다.
=====18:16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 '많은 물'이란 4절의 '불의의 창수'와 비슷한표현으로 사망의 위기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 사망의 위기에서부터 건져내셨다.
=====18: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는 대표적으로 사울 왕을 지칭하는 듯하다. 사울 왕은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 군대에 의해 전사당함으로써 더 이상 다윗은 쫓겨 다니지 않게 되었다(삼상 31:1-4).
=====18:18
여호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 '의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미쉬안'(* )은 지팡이와 같은 지주(支柱)를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TWOT). 병자가 지팡이에 자기의 몸을 의지하둣 재앙의 날에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었음을 보여준다.
=====18:19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 '넓은 곳'이란 안전과 자유와 구원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협착한 장소는 고통과 비애를 상징하고(23:4) 넓은 장소는 기쁨과 자유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좁은'이란 의미의 히브리어 '차르'(* )는 고통과 재난을 상징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풍요로운 복은 '넓게 하셨다'(* , 히르하베타)는 의미로 표현되었다. 이렇게 볼때, '넓은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기쁨과 자유가 넘치는 안전한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18:20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신 이를 밝히고 있다. 즉, 그는 자기에게 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물론 의(義)라 함은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함이 아니다. 이 '의'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오직 이러한 의인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진술되고 있다(15:1-5).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 구약에서 '손'은 행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의 행위의 깨꿋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좋은 것으로 보답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18:21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 이는 율법에 기록된 여호와의 명령을 지켰다는 말이다(신 8;6;10:12;11:22;19:9;26:17;28:9;30:16;수 22:5).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 악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바요 이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자이댜(5:5).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악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한 것이다.
=====18:22
규레...율례 - 이 두 용어는 21절의 '도'와 같은 의미로 보다 구체적으로는'율법'을 가리킨다. 119편에서도 이 용어들은 '율법'이나 '계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18:23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완전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완전성이란 도덕적으로 전혀 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실 만큼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
=====18:24
내 손의 깨꿋한 대로 - 이 표현은 20절의 '내 의를 따라'와 평행 대구를 이루고 있 으므로 그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완전한 의를 소유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죄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음을 고백하고있다.
=====18:25,26
위에서 자신의 구원이 우연한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순진한 마음과 완전함의 결과임을 말한 다윗은 여기서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를 진술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상들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가짐과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이러한 원리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있다.
자비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시드'(* )는 인애,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헤세드'(* )에서 파생된 말로서 인간사이의 일반적인 사랑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의 사람, 곧 경건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완전한 자 - 23절 주석을 참조하라.
=====18:26
깨꿋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르'(* )는 '분리시키다', '쪼개다', '선택하다'는 뜻의 동사 '바라르'(* )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을 세속으로부터 분리시켜 날마다 그 순수함을 유지하는 자를 가리킨다(사52:11;단 11:35).
사특한 자 - 이는 생각과 행동이 왜곡되고 비뚤어진 자를 말한다(욥 9:20;잠 28:18).
=====18:27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 본절에는 곤고한 백성과 교만한 눈이 대조되어 있다. 곤고한 백성은 핍박을 받으나 의롭게 살고자 하는 경건한 무리를, 교만한 눈은 부요하나 경건치 못한 악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공정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다윗은 이러한사실을 그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너무나도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 이와 병행 구절인 삼하 22:29에서는 '주님 자신이나의 등불'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등불은 흑암을 물리친 등불임이 분명하다.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을 때 다윗을 괴롭힌 흑암이 물러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등불은 다윗을 건지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Kraus). 그런데 성경에서 등불은 영광과 존귀의 상징이다(삼하 21:17).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깨서 다윗을 영화릅게 하셨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 여기서 흑암은 등불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다윗의 고통을 상징한다(욥29:3). 그리고 '밝히시리이다'는 미완료형으로 미래성, 계속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윗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 한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자기의 편이되어 주셔서 그의 모든 고통을 물리쳐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18:29
사울을 비롯한 대적들의 핍박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노래한 다윗은 이제 본절에서 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위태로운 전쟁터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노래한다.
적군에 달리며 - '적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드'(* )는 '침략자의 무리', '습격 도당'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기서는 이방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윗은 수차례에 걸쳐 이방의 대군과 맞서 싸운 적이 있다. 그때에 다윗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적군을 향해 달려갔다(삼상17:45).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 혹자는 이 담을 뛰어넘는 행위를 다윗의 용기에 비유하고 있다(Briggs). 그래서 이러한 다윗의 행동이 대단한 용기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러한 용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혹자는 담을 적의 최종적인 수비선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를 취하면 본 구절은 다윗의 완전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Craigie). 여기서는 앞 구절과 연관지어 볼 때 이 견해가 더 적합하다.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精美)하니 - 다윗은 앞에서 자신의 구원받음이 하나님의 도를 순종한 자연스런 결과임을 천명한 바 있다(20,21절). 이에 근거해 볼 때, 다윗은 구원의 조건이 되는 하나님의 도가 얼마나 믿을 만하고 정확한 것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저는...방패시로다 -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수비용 무기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비유하고 있다.
=====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여 - 여기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 )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는 호칭이다(50:1;89:6;95:3;창 14:20;28:3).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가운데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반석이뇨 - 여기서 '반석'(* , 추르)은 하나님의 불변하신 속성을 비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18: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 이 구절은 허리띠를 단단하게 찬 전사를 연상하게 한다. 허리띠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차는군장(軍裝)이다. 그런데 다윗의 허리띠는 하나님의 힘으로 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진술하고 있다.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 이는 다윗이 나아가는 곳마다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음 구절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18:33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 암사슴은 민첩하기로 유명한 짐승이다(삼하 2;;대상 12:8). 다윗은 하나님의 힘을 입어 암사슴같이 민첩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는 암사슴 같이 빠른 발로 적의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도망치는 적을 따라가 섬멸할수 있었다.
나를 나의 높은곳에 세우시며 - '나의높은 곳'은 다윗이 쫓은 적의 요새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다윗이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난 후에 얻은 존귀의 상태를 의미한다(Hengstenberg, lange). 즉, 본 구절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복된 상태를 일컫는다.
=====18: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 '가르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드'(* )는 '단련시키다', '훈련시키다'는 뚱으로(대상 25:7;렘 31:18;미 4:3)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단련시켜 싸움하기에 적합한 자로 만드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실제로 거룩한 용사로서 모든 전술을 다윗에게 가르쳐 주셨다.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 하나님에 의해 단련된 다윗의 팔은 영웅적인 껌으로 놋활을 당길 수 있었다.이 놋활은 보통 사람의 힘으로서 당길 수 없는 금속 무기이다. 그런데 다윗이 이것을 당길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놀라운 힘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요. 이는 또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힘은 본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18:35
주의 구원하는 방패 - 이 방패로써 다윗은 대적의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 오른손은 권능을 상징한다(44:3;45:4;48:10;60:5). 이 능에 사로잡혀 다윗은 모든 대적들을 능히 이길수 있었다.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 여기서 '온유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 )는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1) 응답(창 23:14;욥 1:7), (2) 수고(119:107;전 1:13;3:10;사53:7), (3) 낮은 마음 또는 관대함(잠 15:33;습 2:3)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 세 가지 경우 중 어느 것을 택한다 하더라도 해석상 아무 무리가 없지만 전체 문맥을 고려해 볼 때 (1)번의 경우를 택하는 것이 옳을 둣하다(Kraus). 왜냐하면 본시에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다윗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6절). 사실상 이 부분에 묘사되고 있는 다윗의 승리의 장면은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편,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응답이 그분의 관대하신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때 우리는 (3)번의 의미를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18: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 '넓게 하셨다'는 말은 자유롭고 안전하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 의미에 대해서는 19절 주석을 참조하라. 다윗은 이전에 대적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가 없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대적들을물리침으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것이다(Kraus,Rawlinson, Lange).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의 발목이 흔들리지 않았나이다'이다. 이는 다윗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동시에 그의 입지(立志)가 견고해졌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의 대군을 물리침으로써 명실 상부하게 팔레스틴의 실권자로 부상하게 되었다(Briggs).
=====18:37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 이제는 대적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다윗의 그칠 줄 모르는 힘을 보여주고있다. 이러한 힘을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았다.
=====18:38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 - 본 구절은 원수들의 완전한 파멸을 보여준다.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완전한 승리를 부각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현 방법을 사용했다.
=====18:39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 승리의 원동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 32절 주석을 참조하라.
=====18:40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는 문자적으로 '목을 내게로 돌리게 하셨다'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 앞에서 원수들을 도망치게 하셨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여기서 원수들의 도망함이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18:41
여호와께서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 하셨나이다 - 이방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사실이 다소 이상하게 보여지나 저들은 위급한때에 여호와의 명성을 듣고 여호와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을 섬기둣이 그룻된 동기로 불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하지 않으셨다(잠 1:28-30, Rawlinson). 여기서 다윗은 우상에 대한 이방인들의 신앙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8:42
바람 앞에 티끌같이...거리의 진흙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 '티끌'이나 '진흙'은 허무함과 공허함을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이다(창 3:19;욥7:21;16:15;20:11;사41:25).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이 그의 원수들을 비참할 정도로 멸망시켰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18: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 여기서 '백성의 다툼'이란 다윗이 통일국가의 왕이 되기 전까지의 북왕국(이스보셋 왕조)과 남왕국(유다 왕조) 간의 대치 상황을 의미한다.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된 이후 무려 7년 동안이나 이스보셋과 대치하였으나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삼하 4;5-7) 전쟁을 치르지 아니하고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삼하 5:1-3).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 이 구절은 다윗이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이방 나라를 정복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을 정복하고 그들과 종주권(宗主權)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이방의 나라들은 다윗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등 다윗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 )은 이방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언급된 '백성'도 이방 민족을 지칭한다.
=====18:44
저희가 내 풍성(風聲)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 '내 풍성을 들은 즉시로'는 문자적으로 '그 귀로 듣고서'이다. 이는 다윗과 정면으로 싸우지 아니했던 이방 나라들이 연전연승(蓮戰蓮勝)하는 다윗의 명성만을 전해 듣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즉, 다윗 왕이 아람 동맹군인 하닷에셀의 군대를 크게 파하였을때(삼하 8:9)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하맛 왕과 그밖의 많은 왕들이 다윗 왕에게 항복하고 화친을 도모하였던 것이다(삼하 8;10;10:19).
=====18:45
이방인들이 쇠미(衰微)하여 - '쇠미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벧'(* )은 '힘을 잃다'는 뜻으로 이는 이방민족들이 다윗의 세력 앞에서 전의(戰意)를 상실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벧'은 '어리석다', '바보짓을 하다'(잠17:7,21;30:32;렘17:11)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의미를 취할 경우 저들이 다윗왕 앞에서 우둔해지고 바보처럼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와같이 이방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 앞에서는 그 지혜와 힘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채 항복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상 숭배 자체가 얼마나 무기력하며 어리석은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 '그 견고한 곳'이란 이방인들의 요새인둣하다. 따라서 저들은 요새에서 나와 다윗 왕에게 항복한 것이다.
=====18:46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 본 구절에서 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본시의 종결 부분으로 하나님께 승리의 영광을 돌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 곧 자존성(自存性)을 찬양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승리의 원동력이 하나님의 살아계심 때문에 가능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Craigie). 여호와께서 생존하시다는 사실은 본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서 본시에 나타난 다윗의 모든 승리들의 근거요 출발점이다. 또한 하나님의 자존성은 다른 이방신들과 명확한 구분점이기도 하다(왕하 19:4;사37:4,17;단6:26).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 '반석'에 대해서는 2절의 '바위'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18:47
이 하나님이 나를위하여 보수(報睡)하시고 - '이 하나님'은 '하나님'(* ,엘)에 정관사 '하'(* )가 붙은 강조형으로 46절의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생존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다윗을 위해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보수하신다'는 말은 곧 다윗을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지시하는 말이다(3,6,14,17절, Rawlinson).
=====18:48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 여기서 원수들이란 특별히 다윗을 핍박했던 사울왕과 그의 무리들로 이해할 수 있으며(Rawlinson) 또한 다윗에게 대적한 모든 이방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Anderson).
=====18:49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셨기때문에(43절) 다윗은 더 이상 그들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서 마음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었다. 이는 또한 간접적으로 다윗이 이방인들 중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즉, 다윗은 열방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선포함으로 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을 것이 분명하다(Calvin). 이 해석은 바울 사도가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본 구절을 인용한데서(롬 15:9) 비롯된 것 같다.
=====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 다윗은 여기서 자신을 신정 국가의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다윗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다윗이 왕으로 있는 신정 국가를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삼하 5:12). 한편, '큰 구원'(* , 막딜 예슈오트)은 원문상으로 복수 형태이다. 이와 같은 복수 형태는 (1)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여러 번의 구원의 역사들을 의미하는 동시에 (2) 그 구원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Lange).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 '기름부음 받은 자'는 '왕'의 동의어로 다윗 왕 자신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인자'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가리키는 말로서 구체적으로는 원수로부터 그를 구원하신 사실과 그를 열방의 머리로 삼으신 사실 등을 의미한다.
영영토톡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 또는 구원의 역사가 자기 당대(當代)로 끝나지 아니하고 앞으로 자기 후손들에게도 계속 이어질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다윗의 확신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삼하7:12-16). 즉,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조가 앞으로 계속해서 견고할 것이라고 다윗에게 계시해 주셨던것이다. 한편, 여기서 '후손'은 다윗 왕의 후손들, 곧 다윗 왕조의 왕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한다(Kidner, Calvin, Rawlinson). 왜냐하면 본절에 '영영토록'이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한다는 사실을 크게 뒷받침해 준다. 그 이유는 다윗 왕조가 사실상 영원토록 보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영영토륵 다윗과 그 후손에게 하나님의 인자가 베풀어진다는 사실은 다윗 왕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토록 견고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성도들은 영원토록 보호받는다는 사실이 이구절에서 명백해 진다(마 28:20).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다윗의 감사와 찬양이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본시는
(1) 다윗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1-19절), (2)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상급(10-17절),
(3)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얻은 다윗의 승리(28-45절), (4)생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결론적 찬양(46-5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시는 원래 삼하 22장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대중 예배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형태
로 약간 수정되어 시편에 수록되었다. 다윗이 어떠한 상황자에서 본시를 쓰게 되었는
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삼하 22장과 표제문을 참조해 볼 때 자신의 모든
대적들로부터 벗어나 평안을 누리던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의 일생은 순탄하지
못했고 숱한 우여 곡절(迂餘曲折)을 겪었다. 그는 사울 왕의 미움과 신하들의 모함으
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도망을 다녀야 하는 처지였다(4, 5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도피자의 생활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부르짖었다(6절). 그 결
과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과 그의 원수들으 마제압하고 통일 왕국의 주도권을 장악
하도록 섭리하셨다. 이러한 안정된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일생을 회고하면서 승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시를 읊었던 것이
다. 그러므로 본시에는 수많은 위기와 환난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한편 본시의 분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사실 형식상으로 보
면 찬양시에 근접해 있고, 내영상으로 보면 고난시(4절), 율법시(21절 이하), 감사시
(49절) 등으로 볼 수 있는 복합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본시는 왕의 '개
인적 감사시'(an indivisual psalm of thankgiving)로 보는 것은 가장 타당하다. 다윗
은 본시에서 왕국의 설립과 통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와 구
원을 감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다윗은 자신의 일생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내가 피할 바위',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등 다양한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시편은 물로 성
경 전체에서 가장 광범위한 것으로서 무수한 위기 상황 속에서 적절하게 구원을 베푸
신 하나님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부가시키고 있다.
이제 고난의 일생을 통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다윗의 감사가
드러나고 있는 본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내용적 특성과 중심 사상을 심
층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다윗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18:1-19)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웅장함을 묘사하고 있는 본 대목은 (1) 하나님에 대한 자윗의
신앙 고백과 찬양(1, 2절), (2) 사망의 위기 중에 부르짖는 다윗(3-6절), (3) 강림하
시는 하나님의 위엄(7-15절), (4) 사망의 위기 중에 구원받는 다윗(16-1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 대목에서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와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사마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4, 5절).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
서 다윗은 결코 낙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6절).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
면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
는 확신을 가졌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기도가 다윗의 위기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 승
리의 발판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들을시고 핍박자
들을 물리치시고 승리를 베푸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다윗은 사마의 위
기에서 벗어나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안전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는 실로 극
적인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다윗이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다
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기도는 (1)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2) 모든 환난을 물리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3) 기쁨과 자유로 나아가
는 지름길이다.
* 강림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본시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강
림하시는 장면이 드러나 있다(7-15절). 이제 본 강해에서는 여호와의 강림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발견할 수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
시고 하늘에서 땅으로 행차하신 사실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하게 보여주
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극도의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친
히 찾아오심으로 뜨거운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2) 하나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늘의 하늘이라도 그의 거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 이와같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이 땅에 기꺼이 강림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게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얼마난 비천해지셨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낮아
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3) 하나님의 내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서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이 세상 가운데 계시
며 인간의 모든 일을 간섭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하나님게서는 단지 하늘 위에서 인
생의 행사릉 살펴보는데 그치지 않으셧고 다윗의 울부짖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는 친
히 강림하셔서 선약간에 공정한 심판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악한 계
획대로 이 세상의 일들이 진행되도록 방관하지 않으신다. 반대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인간사에 개입하셔서 의로운 자를 보호하시며 악한 자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도록
만드신다.
(4) 하나님의 불가시성을 알 수 있다. 본시를 참고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강
림하셨지만 그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도록 빽빽한 구름과 흑암으로 가리워져 있엇
다(9-12절).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영이시기에 때문에 죄많은 인생이 결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행
위들을 통해 그 존재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신실성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별해 놓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언약이 체
결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게서는 이러한 약속을 수행하시기 위해 다윗이 위기에 처
했을 때 강림하셔서 구원을 베푸셨다. 우리는 여기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보
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보상(18:20-27)
승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헌신이 드러나고 있는 본 대목은 (1) 하나님
의 말씀을 준수하는 다윗의 생활(20-23절), (2) 공의로운 하나님의 보상(24-27절) 등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 대목에서 우리는 다윗의 구원과 존귀가 우연이나 행운에서 비롯되
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응답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강림으로 말미암
아 원수들의 핍박에서 구원받은 다윗은 이러한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준수한 자신의 의로움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20절). 물론 이와 같은 다윗의 말은
결코 인간이 자기의 힘이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죄와 형벌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
혜를 입는 방법밖에 없다. 다만 본문에서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주된 요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을 통해서 한나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순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연약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죄
악된 세상 속에서도 순결을 지켰다(25, 26절). 다윗은 원수들에게 핍박을 받는 고난
중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거룩한 삶은 하
나님 말슴의 능력에 기인한다. 그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순결하게 보전하였으며 의
를 준행할 수 있었다(21, 22절)
다윗은 경건한 삶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그는 사망의
위기에서 구원받았으며 아울러 기쁨과 자유를 보장받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하
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악인에게는 형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결정되며, 의인
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써 보응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보상(報償)의 성경적 의미. 본 시편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행한 대로 보응하신
다는 사상을 강하게 부가시키고 있다(20-27절). 이제 본 강해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보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구약 성경의 보상 개념: 구약 성경에는 공정하고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각 행
위들에 적합한 상급과 징벌을 부여하신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삿 9:23, 24에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의 분쟁은 여룹바알의 아들들에게 행한 죄로 인해 하나님
이 내리는 보응이라고 해석된다. 삼상 15:2, 3에서 아말렉에 대한 전쟁은 하나님의 내
리시는 천벌로 간주된다. 이처럼 구약은 역사를 우연히 진행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
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이해한다(창 2:4-11:9). 예언서들은 하나님과 이
스라엘의 관계를 순종과 불순종을 통해 결정되는 인격적 관계로 이해하며 맹목적인 자
비를 배제한다(암 1:3-2:16). 에스겔은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다는 개인적 보응에 대해 말한다(겔 18:21 이하). 물론 이것은 교리적 입장에서 언
급한 객관적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회개하는 자를 돌보신다는 확신에서 나
온 주장이다. 또한 잠언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축복의 근원이며, 불순종은 멸망의
지름길이라는 보응의 이중적 개념을 말한다(잠 11:21, 31:19:17)/
그렇지만 73편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하늘과 땅에서의 모든 보상을 능가한다는 믿음
으로 보으의 원칙을 완전히 초월한다(73: 25, 26). 욥기는 하나님께서 기계적인 보상
의 원칙에 얽매여 계시지 않음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를
근거로 하여 악행을 징벌하시고 선행에 대해 상주신다는 보상의 원리를 증거하고 있지
만,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구원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보사의 사상
을 훨씬 초월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 신약 성경의 보상 개념: 신약 성경은 벙사의 이중적 측면에 대하여 자유롭게 언
급한다. 공판 복음서의 많은 구절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상급을 받고 죄를 지을
때 징벌을 당할 것임을 언급한다(마 5:12;24:38-41;막 10:21;12:9;갈 6:8).바울도 역
시 자신의 권고에 약속과 위협을 첨가시키면서(갈 5:21) 심판이 공력에 따라 이루어진
다고 말한다(고전 3:13 이하).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요구하시는 거룩한 하나님
이시고 성령님은 무아경(無我境)의 영역보다 윤리적 영역에 주목하고 계심을 말한다
(갈 5:22).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등에도 배교자에게는 징벌이 있지만 말슴을 따라 신
실하게 사는 자에게는 안식과 구원을 상급으로 주어짐을 말하고 있다(히 4:3; 9:28).
그러나 신약 성경은 보상의 개념을 초월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상
급을 주시지 않고 아버지로서 상급을 주신다고 말한다(마 6:1;25:34). 바울은 상급이
은혜를 따라 주어지며(롬 4:5) 칭의(稱義) 또한 믿음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믿음 그 자
체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적(功積) 사상을 거부한다. 요한은 영생이 은
혜로부터 오며(요 1:12, 16) 신성한 생명의 은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요일 3:9-10)고
강조한다. 사실 엄격한 보상은 인류 전체에 대한 심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롬
3:9-18).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상느 은혜로운 관용을 포함하는 행위이다. 보상은 우리
가 하나님 앞에 놓여 있으며 천국의 은사를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준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보상이란 기계적으로 적용된느 인과 응보 사상이 아니라
신자들이 천국의 영광 가운게서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
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이다.
3. 다윗의 승리(18:28-45)
본 대목에는 이방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승 장구한 다윗이 승전담이 감격적으로 묘사
되어 있다. 특히 여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승리가 인간적인 힘이나 전략을 통해서 이루
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는 시종 일
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의 존재를 찬양하였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46절 이하
에서 이스라엘의 승전을 찬양의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데서 분명해 진다. 다윗은 본
대목에서 승리의 모든 원동력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었다느 사실을 반복적으로 설명
한다. 처음부터 다윗은 자신의 영광스런 등불을 켠 이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28절). 다윗은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거나 교만에 빠지지 않았
고, 모든 승리의 영광을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헤로 인식하였다. 다윗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적의 강력한 수비선을 뚫고 적군의 진지(陣地)를 향해 담대하게 돌진할 수 있
었던 용기와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았다고 말한다(29절). 하나님은 친히 다윗의
허리띠(요띠)가 되어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여 주셨고(32절),다윗의 발을 암사슴 발
같이 빠르게 하셨다(33절). 또한 영웅적인 힘으로 놋활을 당기게 하셨으며(34절), 창
과 활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다윗의 방패가 되셨고(35절), 발목에 힘을 공급해 주셨
다(36절).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무장한 결과 다윗은 적군들을 바람 앞의 티끌같이,
거리의 진흙같이 진멸하였을 뿐 아니라(38, 42절) 필레스틴의 강력한 실려자로 부상
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다윗의 승전담에서 우리느 (1) 성도의 승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
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러므로 (2) 모든 영광을 겸손하게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
는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영적 무장의 본질. 성도의 삶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다윗은 본시에서 자신이 열방돠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근거가 완벽한 무장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본 강해에서
다윗의 경우를 중심으로 영적 무자의 본질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장이 필수적이다. 다윗은 전사(戰士)의 힘을 받
쳐줄 수 있는 허리띠와 적을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는 놋활, 그리고 적의 모든 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와 도망치는 적을 따라잡을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 그는적을 섬멸할 수 있는 예리한 칼도 소유했을 것이다.이러한 무장을 통하여 다윗
은 대적으로부터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은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하기 위하여 전신 갑주(全身甲胄)로 무장할 거을 권고하는 신약 성경의 교훈을 예표적
으로 보여준다(엡 6:11).
(2) 그러나 무기가 승리의 궁극적 원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윗이 본 시편에서
소개하는 무기는 하나님께서 손수 준비해 주신 것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무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전쟁할 때에 먼저 가셔서 그를
대신하여 싸워주셨다. 이렇게 볼 때 사실상 모든 전쟁의 승팬느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다윗의 승리의 배후에는 항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존재한
다. 다만 하나님은 다윗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신다. 이러한 사실
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승패의 결정적 원인에 하나님께 있음을 자각하고 싸움에 임할
때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였다(삼하 5:19, 23). 이러한 다윗의 자세가 가장
완벽한 영적 무장이며 승리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고 구체
적으로 그의 뜻을 따를 때 다윗과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다.
(3) 그러므로 성도는 악의 영들과 영적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해야 한다. 외적인 계산과 비교에 연연하기보
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무장될 때 진정한 승리가 보장된다.
4. 결론적 찬양(18:46-50)
원수들의 패망을 선포하고 승리의 기쁨을 맛본 다윗은 본시를 하나님게 대한 찬양으
로 마무리짓고자 한다. 다윗은 자신의 승리의 영광이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
암았음을 절감했다(35절).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광
범위하게 찬미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다윗은 하
나님의 생존하심을 높이고 있다(46절).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신들과는 달리 실제로 살
아계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자느 자신의 은혜스런 과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며 자신의 구원과 승리가 하나님의 생존의 결과임을 재확인
하였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을 행한 자에게는 선한 것으로, 악을 행한 자에게는 악한
것으로 갚으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찬양한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했다. 다윗은 아우러 자기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인자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종들에게 베풀어질 것임을 확신한다(50절). 그렇다.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인자는 오직 다윗에게만 베풀어진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보장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49절).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윗의 결론적 찬양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되엇다. 이와 같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느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찬양이 결코 피상적이거나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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