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6:1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이므로 거기서 "음성이 난"다 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심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땅"에 임하는 심판이 하늘에서부터 발동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계 16:2
악하고 독한 헌데 - 이것은 애굽에 내렸던 재앙인데(출 9:10), 세상 끝이 아주 가까운 때에 적그리스도 숭배자들에게도 내린다. 11절을 보면 이것은 심히 아픈 헌데인데,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벌하시는 방편(方便) 중 하나이다(신 28:27, 35). 이런 재앙은 네로 황제의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D* sterdiek).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오커스 에피파네(매코비 시대에 유대인을 박해한 자)도 벌레가 창자를 먹어 죽게 되었고, 헤롯 안디바도 몸에 벌레가 먹어 죽었으니(행 12:23), 그것 도 이와 비슷한 재앙이다.
계 16:3
바다 - 이것은 열국(列國)의 상징인데 그것이 피가 된다 함은, 인류가 죽어서 온 세계가 많은 죽음으로 뒤덮이게 될 것을 가리킨다. 혹설에 의하면, 이것은 글자 대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데, 바다의 물이 실제로 피가 되므로 어류(魚類)가 죽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해석도 이연(理然)한 듯하다. 옛날 애굽에도 이런 재앙이 있었다(출 7:17-21).
계 16:4-7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 이것은 음료수(飮料水)를 마사지 못하게 만드는 벌이다(시 78:44). 오늘날 인류는 음료수에 대하여 그렇게 귀한 줄 모른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핍절(乏絶)하지 않고 흔한 까닭이다. 이 흔하던 물이 홀연히 피가 된다면 인류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 - 이 문구는 "장차 오실 자"란 말이 없는 이유는, 이 발언(發言)의 때가 최후의 심판 시기(주님의 재림시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리켜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이"라 함은, 영원 자존의 주재자 곧, 심판자라는 의미이고, "거룩하심"은 죄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성품(性稟)이니 곧, 심판자의 자격이다.
피를 흘렸으므로...피를 마시게 하신 것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흔히 나타나는 비례식 보응법(比例式報應法)(시 18:24-27)이다. 극악(極惡)한 죄인들은 "네게서 난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出乎爾者 反乎爾)"라는 원리대로 무섭고도 정확하게 보복(報復)을 받는다.
제단이 말하기를 - 6:9,10을 보면, 제단은 성도가 신원(伸寃)을 위하여 기도하던 곳이니, 이제는 그 기도가 응답되어 거기서 그 신원의 지당성(至當性)을 언명(言明)한다. 6:9,10 해석을 참조하여라.
참되시고 - 이 말은, 헬라 원어로 알레디나이(* )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 대로 신실(信實)히 임하였을 뿐 아니라, 심판의 이상(理想)과 내용이 완전히 실현(實現)됨을 가리킨다(Greijdanus, Het beantwoordt ten volle niet enkel aan Gods uitspraken, maar ook aan de idee* n van oordeelen of vonnissen.-Openbaring, p. 324).
의로우시도다 - 이것은 제단에서 나오는 말인데, 심판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가리킨다. 제단에서 속죄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은 대심판 전까지 이다. 대심판 때부터는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일은 정지된다. 이런 의미에서 15:8에 성전은 닫히었다는 의미로 말씀한다.
계 16:8,9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이것은 8:12에 기록된 재앙과 대조된다. 거기서는 햇빛의 광도가 감해진 것을 말하고, 여기서는 그 열도(熱度)가 가해지는 재앙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없게도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도 하신다. 자연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干涉) 아래서는 인간에게 유조(有助)하나, 그의 진노(震怒) 아래서는 인생에게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대하여 한번 진노하시면 자연계의 천태만상(千態萬象)도 인생을 해롭게 해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그(인생)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벌을 아무리 받아도 회개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린다. 인생은 전적 부패했으므로 거듭나기 전에는, 그의 가장 정미로운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그의 사악(邪惡)한 근성(根性)은 재앙을 받는때에 특별히 드러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 귀절의 말씀을 보니 이 재앙의 목적 역시 죄인들에게 회개의 동기를 주시려는데 있다"고 했다(Bekeering was ook nog het doel dezer plagen.-Openbaring, p. 325). 이 학설도 어느 정도 그럴 듯하다. 하나님은 과연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아니하신다(겔 18:23; 벧후 3:4). 그가 마지못하여 극악한 죄인들을 벌하시되, 그들이 회개하기를 희망하시나니 저희의 망하는 것을 유쾌히 여기시지 아니하신다.
계 16:10,11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 이것은, 문자적 의미 대로 햇빛이 어두워지는 재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정치가 어두워지므로 그 백성이 그 어두운 정치에서 받는 고초(苦楚)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9:1-11에 있는 다섯째 나팔 재앙이 역시 이와 비슷한 흑암의 재앙이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 이것은, 그들이 종기(腫氣)의 고통 중에 감감한 암흑을 당하므로, 견딜 수 없어 안타까와 함이다. 죄는, 일시적 쾌락(一時的快樂)을 주지만, 그 결과는 영원히 안타까운 고통을 가져 온다. 안타까운 고통은 죽음보다 불행한 것이다(계 9:5,6). 출 9:11 참조.
회개치 아니하더라 - 위의 8,9절의 해석 참조.
계 16:12
유브라데 - 여섯째 나팔의 재앙에 있어서도 그리했지만, 여기 여섯째 대접의 재앙도 유브라데강과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대접 재앙은, 나팔 재앙을 좀 다른 형식으로 거듭 말한 것 뿐이라는 학설이 있다. 유브라데강은, 옛적 이스라엘의 이상적 국경(창 15:18)인데 열국(列國)의 왕이 거기를 넘어 온다 함은, 적그리스도 나라와 및 그 연방(聯邦)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한다는 비유이다. 그러므로 유브라데강은, 글자 대로의 의미로보다 상징적 의미로 봄이 적당하다. 이 세상 끝날에 적그리스도 나라와 및 그 연방들의 위치가 세계의 어느 경역(境域)에 있든지, 모두 다 이 비유 안에 총괄 되었다. 이 전쟁이 17:12-14, 19:11-21에도 재설(再設)된 듯하니, 그 귀절들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강물이 말라서 - 사 11:15, 16 참조. 이것도 비유니, 큰 강물이 마를 듯한 대 경이(大驚異)의 사변(事變), 곧, 원방(遠方)의 국가들이 대군(大軍)을 가져다가 전쟁하게 될 사변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과학적 운수(科學的運輸)는 하해(河海)를 육지 같이 건너는 형편이 되었다.
계 16:13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 "개구리"(* )는 떠듦과 추함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인데 애굽에 내렸던 재앙 중 하나이다(출 8:6). 이것이 바사 종교에서 죽음과 재앙의 근원으로 인정되어 있는데(Charles), 이렇게 이방 종교에서도 그것을 흉물(凶物)로 알았다. 그러나 우리 본문에서 이것이 관설된 것은, 출 8:6과 관련되었다. 이것은 사귀를 상징한다. 사귀의 운동은 평화롭지 않고 소요(騷擾)하며, 성결하지 않고 추악하다. 소란을 일으키며, 추악한 짓을 일삼는 국가는, 이런 사귀의 충동(衝動)을 받는 것이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이것은 사단과 짐승(적그리스도)과 선지자(13:11)의 삼위 일체(三位一體)임을 암시한다. 이 삼합 일체는,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신(聖神)과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흉내 내는 간교한 현상이다.
계 16:14
귀신의 영 - 이것은 헬라 원어로 프뉴-마타 다이모니온(* )이니 직역(直譯)하면, "귀신들의 영들"이란 의미이다.
이적을 행하여 -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과 달라서 그 목적은 악하고, 그 방법은 거짓되다(살후 2:4).
계 16:15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 어떤 사본(38, 47)에는, "그가 도적 같이 오리니"(*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본(寫本)의 권위로 보아서 이 둘째 사구(寫句)를 받기 어렵다. 이것은, 주님께서 홀연히 뜻밖에 두려운 사변(事變)으로 내림(來臨)하실 것을 가리킨다. 이 사변적 내림은 여기서 세계적 전쟁을 의미한다. 이 전쟁이 광명한 자(참 신자)에게는 구원을 알게 하는 심판의 뜻으로 알려진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암흑과 광명, 참신과 거짓 신을 나타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하는 동안 어떤 신자들은 순교의 복된 기회를 얻고,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의 기이(奇異)한 보호 밑에서 정절(貞節)을 지키면서, 흑암의 권세가 천벌(天罰)을 받아 망하는 것을 본다. 그와 반면에, 어떤 의식자들은 이 때에 더욱 타락한다. 그러므로 이 때에 신자들의 복 받을 길은, 오직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 - 는 그것 뿐이다. "깨"는 것은 힘써 기도함이고(엡 6:18; 벧전 4:7; 마 26:41), "옷을 지킨"다 함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죄 받고 새로워진 신앙 인격(信仰人格)을 보수(保守)함이니, 이 보수는 신앙으로만 할 수 있다. "벌거벗고 다닌"다 함은 이 신앙을 버리고 방종하게 그 때의 타락한 세상과 타협함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 - 이것은 위의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함"의 결과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공로(功勞)를 신앙으로 힘입으면 사죄를 받아 자기의 수치(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그리스도 밖에서는 자기의 수치가 따름)를 면한다.
계 16:16
아마겟돈 - 이것은 본래 하르 메깃도(* )인데, 거기서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을 멸하였고(삿 5:19), 또한 거기서 아하시야왕이 예후위 화살에 죽었고(왕하 9:27), 거기서 바로느고가 유대 왕 요시야를 죽였다(왕하 23:29; 대하 35:22). 그곳은 유대인들이 국가적 슬픔을 표시할 때에 관설한다. 따라서 그곳은, 온 세상의 비애(悲哀)를 상징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그곳은, 세계 최후 전쟁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궁켈(Gunkel)과 부셋트(Bousset)는, 이 명칭이 어떤 옛날의 신화(神話)에 근거한다고 하였다(Sch* pfung und Chaos, 263-266). 곧, 옛날에 어떤 산에서 신(神)들이 최후 전쟁을 하였다고 하는 신화에서 이 명칭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억설이다(Swete). 사도 요한은, 일률적으로 구약 사상만 인용한다. 그러면, 이 명칭은,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백성이 적그리스도 나라들을 이긴 전승지(戰勝地)에 대한 상징적 명사(象徵的名詞)가 될 만하다.
계 16:17
공기 가운데 쏟으매 - 이것은 성경이 말한 대로 사단의 활동 근거지인 공중에 재앙을 내림이다(엡 2:2). 하나님께서 사단의 근거지를 치시매, 사단의 힘에 의존하던 땅 위의 모든 조직체들(예컨데 바벨론과 및 모든 이 세상 국가들의 도시들)이 무너진다. 이 귀절들의 말씀은, 17-19장에 있는 말씀(바벨론과 적그리스도 나라들의 멸망에 대한 것)에 대한 머리말임에 틀림 없다.
되었다 - 천국의 원수들은 다 처분되고 구원은 완성될 것이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그것의 확실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여기서 과거사(過去事)로 말한다.
계 16:18
번개, 음성, 뇌성, 지진 - 이것은 대심판이 나타날 것을 시위(示威)하는 상징들이다(4:5, 8:5의 해석 참조).
계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 여기 이른바 "큰 성"은 바벨론인데 17장에 해설된다. 로마여(Lohmeyer)는 말하기를, 여기 이른바 "큰 성"은 예루살렘인데, 이것을 영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이름(固有名詞)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Die grosse Stadt kann nur urspr* nglich Jerusalem sein; doch bekundet sich in dem Fehlen des Eigennamens wohl das geistliche Verst* ndnis des Sehers.-Offenbarung, p. 137-138). 그러나 이 해석은 마땅치 않다. "세 갈래로 갈라짐"은 완전한 멸망을 가리킨다.
진노의 포도주잔 - 14:8 해석 참조.
계 16:21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 - 구역(舊譯)에서는 이것을 100근으로 환산하였다. 이렇게 위로부터 이상한 포재(雹災)가 내려 타도(打倒)하고, 아래로부터 지진이 땅을 터트리니(18절), 그 때에 죄인들은 피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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