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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문책받는 목자 (에스겔 34:1-6)

본장에 나온 예언은 시기가 나와 있지 않다. 이후 40장에서 비로소 시기가 나온다. 예루살렘 파멸 후에 선포된 예언인 것이다. 그때가 그 파멸의 원인을 규명해 볼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1.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는 명령이 예언자에게 전달된다. "목자" 란 방백들과 정치인들, 제사장과 레위인들, 국가의 대(大)산헤드린 곧 공의회 의원 등 나라의 높고 낮은 공직에 있는 자들, 특히 지금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가 있는 두 왕들이 잘못을 범했음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목자들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 목자들은 "이스라엘의 목자장" (시 8:1)이신 하나님 밑에 있는 하급 목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화 있으라,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 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목자이고, 이스라엘의 목자이나,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관직과 권력이 마땅히 그 사람들의 죄를 막아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높을 지라도 그 권력이 그들에게서 회개와 심판을 면제해 주지 못한다. 그들도 회개해야 한다. "목자에게 화 있다! "(렘 23:1) 목자들이 불충성할 때는 하나님이 특별히 그들을 심판하신다.

Ⅱ. 하나님의 이름으로, 또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싸우시는 이유로서 독자들에 비난해야 할 거리가 무엇인지를 에스겔이 듣는다. 하나님의 싸움은 이유 없는 싸움이 아니다.

1. 저들은 온통 자기들의 치부에만 신경을 썼다. 저들의 임무는 맡은 양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목자는 양떼를 먹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임무를 등졌다. 그들이 양떼의 입에 먹이를 넣어 주어야 했던 것은 아니나, 양떼에게 먹이를 갖다 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 목자들은 이 일을 아주 게을리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먹이고,"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고 부자가 되려는 일에만 급급했다. 저들은 자기들의 자리에 톡톡히 덕을 입었다. 그들은 "기름을 먹었다." "양떼를 치는 자는 그 양의 젓을 먹는다" (고전 9:7). 그리고 가장 좋은 젓을 먹었다. 또 "양털로 옷을 해 입었다." 그러기 위해서 "기름진 양을 잡았던 "것이다. 마치 포도원 때문에 죽게 된 나봇처럼 양들은 죽었다. 공직으로 맡았으나, 공직 수행보다는 자기 이익 추구에 급급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해야 할 선행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을 둔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 이상을 추구한다" 는 것은 오래된 불평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자들의 유익과 복지를 염려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너희는 양떼를 먹이지 않는다." 저들은 너무 무심해서 어떻게 양을 먹이는지도 모르고, 너무나 게을러서 그러한 수고를 감당하기 싫어한다. 아니 그들은 원치도 않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만큼 방탕하고 불성실한 것이다.

(1) 저들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양들에 대해서는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했으며, 그들을 강건하게 하거나 치료하거나 결속시켜 주려 들지 않았다(4절). 어느 양이 상처를 입거나 길을 잃더라도,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사나 죽으나 그들에겐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양들을 조금도 돌보지 않았다.

방백들은 부당한 권리 침해를 받은 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주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양식을 줄 생각을 않았다. 굶어죽게 내버려 둔 것이었다. 제사장들은 무지한 자를 가르칠 생각을 않았고, 잘못한 자를 교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위로할 생각을 않았다. 나라의 관리들은 그 나라에서 자라나고 있는 질병을 견제할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 도처에 잘못이 범람했으나 바로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2) 멸시받는 자들에겐 저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나라에 침입한 자들에 의해 쫓겨나 아무 데고 피난처를 구해 떠나야 했으며, "산과 작은 산" 위에 거처를 찾아 "헤맸다" (6절). 그러나 그런 곳은 짐승들의 습격을 받아 "그들의 먹이" 가 될 곳이었다(5절). 모든 자들이 방랑자가 되었다. 어떤 자는 국외로 나가 거지가 되었고, 외국에 나가서 장사를 했다. 이리하여 시골은 점점 주민들이 줄어들었고함께 쇠패되어 갔으며, 추수 때나 전쟁 때나 할 것 없이 일손이 모자라게 되었다.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다" (6절). 그들은 찾지도 아니하며,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희망도 받지 못한다. "아무도 그들을 찾는 자가 없도다." 오히려 "강포로 그들을 다스리니," 그들은 점점 더 도망가게 되고, 고국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게 된다. 고국에서보다 이국에서 더 좋은 대접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가진 자들은 제 정신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 하나님과 의무에서 이탈 해 간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또 여호와께 대한 바른 지식을 가르쳐야 했었으나 쉽게 유혹자의 밤이 되고 만 제사장들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목자가 없으므로 양들도 흩어졌다" (5절). 자칭 목자라 했으나 실상을 목자노릇을 하지 아니한 자들이 있었다. 목자노릇을 하지 않는 자는 목자라 칭할 값어치가 없는 자들이다. 목자의 사명을 맡은 자들이 "어리석은 목자" (슥 11:15)이거나, 자기들의 직임만 자랑하고 그 직임을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하면, 그 양떼의 처지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목자가 없는 편이 낫다. 그리스도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자기 양들이 "목자 없는 양" 과 같다고 한탄하셨다(마 9:36). 의사가 오히려 환자에게 가장 중병을 주는 원인이 된다면, 그 환자의 처지가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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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 (에스겔 34:7-16)

지금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보내는 책망을 읽었다. 따라서 목자들에게는 의분을 양떼에게는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그 두 가지 의사를 준렬히 밝히신다. 목자는 소환되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는 명령을 받는다(7,9절).

이제 자기들만 생각해 오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하찮은 생각을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찮게 생각하던 그 양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그 목자들을 겸비케 한다. "여호와의 말씀" 을 듣는 자들은 그 말씀 속에서 자기들의 운명까지 읽게 될 것이다.

Ⅰ. 하나님은 목자를 지극히 멸시하신다. 그들의 범죄는 반복되었다(8절). 하나님의 양은 기만자들의 밥이 되었으니, 먼저는 우상숭배 때문이요, 다음에는 포로 생활로 이끄는 파괴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목자들은 양들을 조금도 돌보지 않아서, 양은 목자 없는 처지와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맹세로 말씀하신다(8,10절). "내가 목자를 치리라." 목자들은 양을 치라는 사명을 하나님에게서 받았고, 하나님은 그들로 인하여 자기가 세움을 입으리라 생각하시고 자기의 이름을 사용케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안 된다. 내가 그들을 치리라" 고 하신다. 우리가 목자란 칭호와 권위만 가지고서 그 직능을 다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편들어 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칠 것이요,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임무를 수행한 방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양을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라. 그렇게 많이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그들에게 책임추궁하리라." 마지막 날에도 영혼을 돌볼 책임을 지고서 영혼을 돌보지 아니한 자들은 그것에 대한 문책을 받을 것이다. 사역자들은 "책임을" 진자들답게 "파수하고" 일해야 한다(히 13:17).

2. 그들은 "일과 품삯을 모두"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양을 먹이지 못하리라." 즉 먹이는 척하는 일을 못하게 되리라.

주셨으나 그 권력을 악용하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이 다시 그 권력을 탈취하는 일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받을 벌의 전부라면, 능히 그것을 감내하리라. 그래서 이런 말이 첨부되어 있다. "목자들은 자신들을 먹이지도 못할 것이니,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빼앗음이로다." 공사를 가지고서 사적인 치부를 한 자들은 그런 대가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들을 부지해 주어야 할 자들에게 유린당하는 일을 언제까지 방관하진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명백한 적들에게서뿐만 아니라 위장한 친구들인 목자들에게서도 양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Ⅱ. 하나님은 양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이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토록 괄시를 받기 때문에 더욱 그들을 돌보시는 것 같다. 그래서 "고아가 그에게서 자비를 얻게 되는 "법이다. 이리하여 값진 약속이 내린다. 그것은 유대인의 귀환과 고 국에서의 재정착에서 이루어질 것이었다. 목자들은 "여호와의 이 말씀을 듣고," 자기들은 이 일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가엾은 양들은 이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으라.

정치인과 성직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저들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자기 교회를 능히 돌보실 수 있다. 하급 목자들은 무심하더라도, 목자장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들은 거짓될지라도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시다."

1. 하나님은 흩어졌던 자기 양을 모아, 그 떠나갔던 우리로 데려 오실 것이다. "나, 곧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내가 그 일을 할 것이요, 그것으로 인한 모든 영광을 누리리라. 내가 목자처럼(12절) 양을 찾고 찾되, 길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오듯이, 흐리고 캄캄한 날에 양이 흩어졌던 그 모든 곳에서 데려 오리라." 흐리고 캄캄한 날은 양이 흩어지게 하는 폭풍우의 날이었다.

(1) 그러나 그들이 어디 있든지 하나님의 눈을 "그들을 찾아 내시리라." "내가 내 양을 찾아내리라." 그 우리에 속했던 양은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으리라. "여호와는 자기 양을 아신다." "그는 그들의 일" 과 "그들의 거처를 아신다" (계 2:13). 또 숨어 있는 곳을 아신다.

(2) 하나님은 자기 때가 되면, 팔을 펼쳐 "그들을 집으로 네려 오실" 것이다(13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리라."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사 저들에게 돌아올 마음을 주시고, 섭리로써 그들에게 문을 여시고 귀향길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또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일시에 집단으로 돌아오리라. 그들이 분산해 있는 곳에서 "내가 그들을 모으리라. 잃어버린 자를 찾으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16절)."

이 일은 스룹바벨, 에스라,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의 지휘하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을 당당하게 떠나왔을 때 성취되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길로 들어섰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 때 실수했던 자들이 진리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들이 모아졌고, 흩어졌던 종교적 집회가 재개되었다. 나아가 교회가 안식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을 때 이 약속은 더 한층 실현되었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자기 초장의 양" 처럼 먹이실 것이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포로들을 무사히 고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며(13절), "이스라엘 산 위에서," "좋은 초장," "기름진 초장" (14절)에서 "그들을 먹이시리라." 거기에 그들의 "먹이" 가 있으며, 그들의 "우리" 가 마련될 것이다. 그것은 "좋은 우리" 이다. 거기서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실 "뿐만 아니라 "눕게 하리라" (15절). 이것은 그들의 안식을 뜻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처럼 다시는 푸른 초장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방해없이 편히 쉴 것이요, 거기엔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는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는도다" (시 23:2). 이것을 비슷한 약속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뿐 아니라, 시온산의 성소를 특권으로 되찾게 할 것이라 하셨다(렘 23:3, 4). 그들의 다시 제단과 성전을 가지게 되고, 그 혜택을 누릴 때, 그때 그들은 푸른 목장에서 먹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상처 입은 자를 싸맬 것이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할 것이며, "" 시온에서," 시온과 더불어 "애곡하는" 자들을 위로할 것이다. 상한 심령의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포해야 하는 사역자들이 사명을 무시하더라도, 보혜사 성령은 그의 사명을 간과하는 일이 없으시다.

그런데 그 다음의 말을 들어보자. "강하고 살찐 자는 내가 멸하리라." 불안한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그분이 건방진 죄인들에게는 공포를 선고하신다. "모든 계곡이 메워지" 듯이,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질 것이다" (눅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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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돌보시는 하나님 (에스겔 34:17-31)

이제 예언자는 목자들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양들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하나님이 양들에게 자애롭게 말하라고, 그들에게 예비된 자비를 확신시켜 주라고 예언자에게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자들은 구별해 내고, 진귀한 자와 천박한 자들을 구별해 내서, 그들에게 메시야 약속을 주며, 메시야는 초림하셔서 그 구별을 철저히 할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명령도 받았다("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왔노라." 요 9:39). 그러나 그 사명은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었다. 그 때에는 메시야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여,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서게 하리라" (마 25:32, 33). 아마 본문도 이 사실을 염두해 둔 것 같다.

Ⅰ. 기름지고 강한 자들에게는, 즉 "숫양과 숫염소" (17절), 목자와 같은 권력은 가지지 않았으나 재물로 압제하는 자들, 기회를 이용하여 약자를 못살게 구는 자들에게는 죄책이 선고된다. 많이 가진 자들은 점점 더 가지기 원한다. 자기들의 가엾은 이웃을 억누르는 갖가지 방법을 모색한다(삼하 12:4). 부자는 자기들의 부만을 이용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그들을 법정으로 끌어내지" 않는가? (약 2:6) 가난한 종과 소작인들은 많은 부자 지주와 주인들에게서 혹독하게 이용당한다.

"숫양" 과 "숫염소" 는 모든 푸른 초장을 독점할 뿐 아니라, 약한 양들이 자기들이 먹다 남은 풀을 먹는 것까지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저들은 "남은 꼴, 남은 물을 발로 밟는다." 그래서 결국 다른 양떼는 저들이 밟아놓은 더러운 꼴과 물을 먹어야 한다(18,19절). 이것은 지위 높은 자들이 압제와 착취로 자기 이웃을 계속 가난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저들에게 생존의 여유도 좀처럼 주지 않으려 하며 저들이 받아야 할 적은 임금마저 아까워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도 이것은 "저들에게 작은 일로 보여졌다." 저들은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편히 잘 사는 수많은 사람이 자기들 주변에게 자기들이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하며, 저들의 생각대로 한다. "평안하고" "교만한" 자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의 위로를 받고 살아가게 하는데 대해 인색하다. 이것뿐이 아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약하고 병든 양들의 골칫거리 노릇을 했다. 그들은 "옆구리와 어깨로 파리한 양들을 밀쳤다" (21절). 또 "병든 자들을 뿔로 받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저들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면 사태가 어려워지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양들은 그 중 한 마리가 아프고 쇠약해지면, 나머지도 할 수 있는 대로 안전을 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병든 자에게 더욱 가혹했다. 저들은 스스로를 부지할 수 없는 자들을 시골에서 내어 쫓았다. "그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우리와 언제나 함께 있는 가난한 자들은 일반인에게 욕지기 나는 자들이라 생각하여 쫓아낸 것이다. "환난 당한 자에게 환난을 더 가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다.

아마 여기 나온 "수양" 과 "수염소" 는 서기관들이 바리새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대로 교회를 소란케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3절). 그들은 과부의 집을 탈취했고, 지식의 열쇠를 빼앗았고, 하나님의 진리라는 신성한 물을 오염시켰으며,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사람의 양심을 유린했다. "여호와께 수종들던" 가난한 양떼(슥 11:11) 에게는 언제나 환난과 걱정이 따른다. 하나님의 양들이 큰 피해와 어려움을 받는다 해서 이상히 여길 필요는 없다(행 20:30).

Ⅱ. 가난하고 약하면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바라던 양들에게는 위로가 선포된다. "내가 내 양을 찾아내리라(22절). 그들은 이전처럼 짐승의 법이 되거나 수양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리라."

이 때, 예언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또 그 나라의 건설, 거기서 교회가 받아 누릴 진귀한 은덕을 말해 준다.

1.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보자.

(1) 메시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파송을 받고 오리라. "내가 그를 세우리라" (23절).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29절). 하나님이 그를 성별하시고, 인치시고, 임명하셨다.

(2) 그는 양의 목자장이 될 것이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양들을 위해 행하리라. 그는 "한 목자" 가 되고, 그 밑에서 유태인과 이방인이 "한 무리" 를 이루리라.

(3) 그는 "하나님의 종" 이다. 하나님이 고용하신,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종이다. 사람들 가운데다 그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일하는 종이다.

(4)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 다윗이다. 거룩한 산 시은에 왕으로 즉위하고, 모퉁이돌이 된 자요, 왕권에 관한 계약이 수립된 자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시리라." "그는 "다윗의 뿌리요, 그 후손이다."

(5) 그는 "유명한 식물" 이다. 왜냐하면 "의로운 가지" (렘 23:5), 여호와의 가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가지이기 때문이다(사 4:2). 그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보좌 중의 보좌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유명한 가지" 라 불릴 수 있다. 혹자는 이 말을 교회, 곧 "여호와의 식물" 로 이해한다(시 51:3). "그 이름이 기억될 것이요" (시 45:17).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도다.

2. 메시야 나라가 건설되는데 필요한 대헌장이 작성된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라" (25절). 은총의 계약은 평화의 계약이다.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화평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말씀하시며, 평화를 확신시켜 주며, 우리가 행복하는데 필요한 모든 복을 베풀어주신다. 이 평화의 계약의 방침은 이런 것이다. "나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들에게 넉넉한 하나님이 되어(24절), 내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은 나를 인정하리라. 이것을 위해서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라." 주 예수를 자기들의 "왕" 으로 삼는 자들, 그리고 그들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 으로 삼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곧, 이스라엘의 족속도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 으로 삼는다면, 그는 우리를 "자기 백성" 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 계약으로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단호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나 여호와 저들의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리라. 저들과 교제하리라. 그리고 저들은 이것을 알고 거기서 위로를 받으라."

3. 메시야의 나라의 성실한 신민이 되고 평화의 계약에 관계된 자들의 특권에 대해서 살펴보자. 여기서는 그런 것이 상징적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할 열쇠가 있다(31절). 여기서는 "양" 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이 실상은 사람이며, "여호와" 를 "자기 하나님" 으로 모시는 자들이요, 그와 계약을 맺고 있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약속된다.

(1) 그들은 하나님이 보호 하에서 성소를 누리게 되리라. 그리스도 곧 우리의 선한 목자는 "악한 짐승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25절). 즉 우리의 모든 영적 대적들을 추방시키고, 그들의 권세를 꺾으며, 이기시리라. 우는 사자라도 삼키는 사자는 못되리라. "그들이 더 이상 이방인들의 노획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 그 땅의 짐승도 그들을삼키지 못하리라. "죄와 사탄, 죽음과 지옥이 정복된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안심하고 살리라." 우리 안에서만이 아니라 들에서, "광야에서," "살림에서" 도 편히 살리라(거기는 짐승이 있던 곳이다). 그들이 이제 거기에 거할 뿐 아니라, 거기서 잠자리라. 이것은 더 이상 짐승들이 그들에게 위험물이 되지 않으며, 저들의 양심도 정화되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악에서 안전할 뿐 아니라 악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해방된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는 자는 안심하고 쉴 수 있다. 그가 그들을 지켜주고 평안케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을 해칠 수 없다. 아니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땅이 꺼진다 해도 우리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공포거리에서 구출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들을 괴롭히는 온갖 공포 자체에서도 해방하신다. 악으로부터 이 같은 자유가 약속되어 있다.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하리라" (27절). 저들 땅의 비옥성이 이웃의 유혹이었으나 침입을 받거나 종살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저들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자비 때문이다.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알리라." 우리를 불안케 하는 모든 걱정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서, 그를 잘못 아는 데서 온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은 하나님을 믿을 용기를 준다. "내가 그들의 명예를 꺽었도다." 이것은 우리의 복음의 상태에도 적용된다(눅 1:74). "우리는 우리의 대적의 수중에서 구출받았으니, 아무 두려움 없이 그를 섬기기 위함이로다."



(2) 그들은 온갖 영적 부요, 온갖 복을 누리고 위로와 행복을 가지리라.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망하지 않으리라" (29절). 심판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받았던 기근과 결핍이 그들에게 커다란 치욕을 가져왔었다. 이방인들도 가나안 땅의 비옥성은 익히 알고 있는 터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들 중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비 곧 축복의 소나기가 때맞추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26절).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먹이는 목자요, 그들은 "들어오며 나가며, 꼴을 만나리라."

[1] 그들은 굶어 죽지 않게 되리라. 저들은 세상을 그 몫으로 받은 자들처럼 세상과 더불어 멸절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들의 몫은 빵이 아니다.

의식적 법의 규례는 "빈한한 요소" 라 해 왔다. 기독교의 규례와 비교해 볼 때 거기에는 "풀 베는 사람이 자기 손을 채우고, 묶는 자가 자기 가슴에 품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굶주림으로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 그리고 그가 자기 양들을 인도하는 그 잔잔한 물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다. "



[2] "복의 소나기" 가 내리리라(26,27절). 하늘이 이슬을 내리리라. 그래서 "들의 나무들이 열매를 내리라." 이 풍요의 자리는 하나님의 산," 그의 거룩한 시온 산이니, 복음의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잔치를 베푸셨다." 복음의 혜택을 입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그 잔치에 참여해야 한다.

이같은 풍요의 원인은 "때맞게 내린 소나기," 시온 산에 내린 비 그리스도의 은총, 이슬 같이 떨어진 그의 교훈, 그의 성령의 위로이다. 이같은 사례의 풍요는 우리에게 내린 하늘의 축복이요, 우리를 통해 생산된 은총의 산물, 또 그 같은 열매를 맺는 데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위로이다. 이 풍요는 그 범위가 대단히 넓어, "내산 사면에" 모두 미친다. "시온에서 율법이 나오며," 어두움 세계로 빛이 나아가고, 바른 땅에 물이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시온의 이웃에 사는 모든 자들이 그것 때문에 더 잘 살게 되리라. 교회에 가까우면 하나님과도 가깝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풍요의 결과는 "내가 그들로 복되게 한다" 는 것이다. 즉 만복의 모형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사 19:24). 또는 그들 주위의 모든 자들에게 복의 출산지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복을 받은" 자들은 자기들이 이 세상을 복되기 하는 역할을 다하려고 애써야 한다. "선" 한 자는 "선" 을 행하라. 은총을 받은 자는 그와 같은 은혜를 남에게 베풀어라.

그리고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한 이러한 약속은 그것을 들은 당시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태 중" 에 있는 한은, 그들 나라가 완전히 패망하지 않으리라 희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사 45:8). 그러나 이것이 실현된 자들에게 더 큰 위로를 준다. 바로 그들이 이 선한 목자의 양들이요, 그의 초장에서 먹으며, 그를 통해서 "온갖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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