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 다윗을 격동시키사. 본 절과 평행절인 역대상 21:1에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 절에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한 분이 하나님이셨는데, 왜 역대기의 기자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인구조사를 한 것이 왜 잘못인가?
인구조사 : 이스라엘에서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이 원래 악한 일은 아니었다. 광야에서 40 년간 방랑하던 기간의 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민 1:2). 그리고 광야의 방랑 기간의 끝 즈음에 모세에게 같은 일을 하라는 명이 주어졌다(민 26:2).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이스라엘의 무장된 군사의 총수가 40 년 전의 수보다 줄어들었음이 드러났다. 이와 함께 인구조사는 정복된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데 유용한 기준을 제공하였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한 이유 : 인구조사 자체에 잘못이 없었다면, 다윗이 인구를 조사했을 때 이스라엘이 왜 그토록 가혹한 징벌을 받아야 했는가? 대상 21:14에 의하면, 다윗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70,000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대답은 대상 21장 바로 앞에 있는 몇 장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장들은 대적을 물리친 다윗의 승리에 대해 기록한다. 이 장들에 다윗이 블레셋, 모압, 암몬, 아람 족속 등을 물리쳤다고 기록돼 있다(대상 18-20장). 다윗이 성공으로 우쭐해져 자기가 보기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군대를 증강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는 인구조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은 이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임을 깨닫고 다윗을 만류하였다.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대상 21:3). 그러나 다윗은 들으려하지 않았다. “왕이 이 일을 한 것은 교만과 야심 때문이었다”(부조와 선지자, 747). 하나님께서 요압의 입술을 통해 다윗에게 마지막 경고를 주셨는데도 왕은 단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불쾌히 여겨 이스라엘에게 징벌을 내리셨다.
누가 다윗을 부추겨 인구조사를 하도록 했는가? : 인구조사를 일으킨 장본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 세상사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의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 히브리 사고에 따르면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그분이 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사탄이 욥을 괴롭히도록 허용하셨고(욥 1:12), 또한 그분은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도록 허용하셨지만, 자신이 직접 그렇게 한 것처럼 표현된다(출 4:21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주석 참조). 그리고 그분은 사울이 실패할 것을 아셨지만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하도록 허용하셨다.
본 절과 대상 21장에 나오는 평행 기사에서 몇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다윗은 인구조사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기로 선택했다는데 책임이 있다. (2)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대적인 사탄은 인구를 조사하도록 다윗을 충동했다는 데 책임이 있다. (3) 하나님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도록 허용하셨고, 다윗이 자신의 야망을 따라가도록 허용하셨다는데 책임이 있다.
결론 : 본 절과 대상 21장의 기사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히브리 사고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허용하신 것을 자신이 하신 것처럼 간주한다. 그분은 사탄에게 자유를 주어 다윗을 충동하여 죄에 빠지도록 허용했고, 그분은 또한 다윗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그가 죄를 짓기로 선택하도록 허용하셨지만, 궁극적으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충동하거나 사주하여 악을 행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들에게 자유를 주어 악이나 선을 선택하도록 허용하실 뿐이다.
한편, 본 장의 인구 조사는 다윗 통치의 말기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Hengstenberg). 그 근거로서 인구 조사가 약 10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군대 장관 요압이 수도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당시의 태평 성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때는 대내외적으로 모든 정벌과 반란이 완료되고 진압됨으로써 태평 성대를 구가하고 있던 다윗 통치의 말기라고 볼 수 있다.
인구를 조사하여 … 내게 보고하라. 다윗의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의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인구 조사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정하에 여러번 인구를 계수한 바 있기 때문이다(출 30:12, 38:26, 민 1:44-46, 26:51). 문제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군사적인 목적, 또는 왕권의 강화 등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제사장들이 그 일을 감당하였다(민 1:3, 26:1, 2). 이에 반해 여기서 다윗은 요압을 인구 조사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또한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조사받은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을 내게 하였다(출 30:2). 그리고 이 생명의 속전은 성소에 봉헌됨으로써 여호와께 속하게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의식이었다(출 30:13). 그러나 다윗은 본 인구 조사에서 이를 시행치 않았다. 이로 보아, 다윗은 단순한 인구 조사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었다(Lange, Smith, Keil, The Interpreter’s Bible, Hengstenberg, Schmid). 그런데 이와 같은 다윗의 행위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고, 강화된 군사력과 왕권으로부터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삼상 17:47). 그러므로 이는, 후일 바벨론 왕의 사신들의 방문을 받은 히스기야 왕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보여줌으로써 재력과 군사력을 자랑한 교만죄와 같은 성질의 죄였다. 이처럼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 자기의 세력과 영광스러운 번영을 확인하고 자랑하려 했다. 특히 군사력에 대한 실세를 파악(9절)함으로써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는 (1)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며, (2) 하나님 보다는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흔히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인간의 과시욕과 명예욕은 그러한 번영과 힘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로서, 결국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게 된다(시 94:2, 잠 21:4, 눅 1:51).
야셀. 본래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성읍이었으나, 후에 갓 족속의 정착지가 되었다(민 32:35, 수 13:25). 또한 이곳은 아모리 지경과의 경계지가 되었고, 갓 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네 성읍 중 하나였다(수 21:39).
장막을 치고.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요압은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막을 아로엘과 야셀 사이의 초원 지대에 건설하고, 이 장막을 인구 조사의 본부로 이용했다(Keil, Lange).
닷딤홋시. 이곳의 위치는 불분명하나 갈릴리 바다 동편인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북단 ‘다냐안’으로 갔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길르앗에서 다냐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데, 이렇게 볼 때 닷딤홋시 땅은 갈릴리 바다 동편일 수 밖에 없다(Keil).
다냐안. 이는 정확히 말해서 ‘단야안’이며, 곧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단’을 가리킨다(수 19:47, 삿 18:29). 이곳은 다메섹 남서쪽에 위치했으며 당시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지였다. 한편, ‘야안’은 베니게의 신(神)의 이름으로, 이교적인 풍습에 의해 이 우상의 이름이 지명에 붙여진 듯하다(Bunsen).
시돈. ‘시돈’은 사실상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다윗 왕국의 속국으로서 당시 군역(軍役)에 가담하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시돈성(城)은 베니게의 부요한 성읍이었으며, 단의 북서쪽 지중해 해안에 위치하였다(창 10:15, 수 11:8, 19:28).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 ‘히위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히위 사람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하였지만(수 11:19), 이들 이방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 즉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공동 거주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후에 ‘열방의 둘레’라는 뜻의 ‘갈릴리’로 불려지게 되었다(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이들 이방인들 역시도 군역(軍役)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유다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남쪽 유다의 행정 중심지였다(대하 19:4).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最南端)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판도를 서술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기술하였다(삿 20:1, 삼상 3:20, 삼하 3:10).
칼을 빼는 담대한 자. 모세 율법에 따르면(민 1:3, 26:2), 이스라엘 백성 중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자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였다. 그런데 요압의 인구 조사 결과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 전투 능력이 있는 장정들은 도합 130만 명이었다(대상 21:5의 기록에는 157만명). 이런 수치에 근거하여 통례상 군복무 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가량이라고 본다면, 당시 다윗 통치하의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500-600만 명 가량으로 추산될 수 있다(Keil, Fay).
여호와께 아뢰되 …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여호와께 진심으로 회개하는 다윗의 겸손한 모습이다. 여기서 ‘큰 죄’라 함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군사력(힘)을 의지한 그의 자고하고 교만한 생각과 행동이었다.
여호와여 …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다윗 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다윗의 솔직하고도 겸허한 ‘회개’에 있었다. 즉 다윗도 간음, 살인, 교만 등 온갖 죄악을 저질렀으나,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요압의 보고를 접한 직후에 무디어졌던 양심의 기능이 회복되어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까지는 약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8절). 그는 그동안 이생의 자랑이라는 편협한 사고에 의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보이셨다(눅 15:17-24). 한편 다윗의 회개는 자신의 실수에 따르는 책임(형벌)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손길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맡김으로써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태도였다.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 여기서 ‘선견자’(先見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제’는 ‘이상을 보다’는 의미의 동사 ‘하자’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는 하나님의 이상 또는 계시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단 2:26, 41, 43, 45, 4:20, 7:2). 삼상 9:9 주석 참조. 이러한 선지자 갓은 다윗의 망명 시절에 모압 땅을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갈 것을 다윗에게 권면하기도 하였다(삼상 22:5).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전쟁의 재앙’은 대적의 손에 죽는 것이며, ‘기근의 재앙’은 흉작을 유발하여 사회를 피폐시킨다. 반면, ‘전염병’(히, 데베르)은 ‘불치의 전염병’으로서 고대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하였다(The Interpreter’s Bible, Wycliffe Bible Commentary). 다윗은 이 중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된 전염병의 재앙을 택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선택은 기왕이면 하나님께 직접 매 맞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즉, 다윗은 사악한 인간이나 피폐된 사회에 붙여지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형벌을 받는 것이 긍휼하신 여호와의 위로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여기서 재앙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다윗의 신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전 지역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삿 20:1, 삼상 3:20).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결과를 생생히 보여 준다. 그런데 다윗의 범죄 때문에 백성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1절에 나와 있다. 즉 이 재앙은 다윗의 범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기도 했다.
“인구 조사하는 일은 백성 중에 불만을 일으켰으나, 그들 자신들도 다윗의 행위를 자극시킨 동일한 죄악을 품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압살롬의 죄를 통하여 다윗을 형벌하신 것처럼 다윗의 과오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벌하셨다”(부조와 선지자, 748).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여기서 ‘뉘우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은 ‘뜻을 돌이키다’는 뜻으로써(창 6:6, 출 32:14, 삿 2:18, 시 106:45),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거두셨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심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과 그 백성을 사랑하신 긍휼과 자비의 성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가변적(可變的) 속성을 반영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서 불변성(不變性)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로우시며 초월적인 품격을 지니신 분으로서, 당신의 목적을 수행하실 때 인간과 더불어 섭리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대응 여부에 따라 그 섭리의 방식을 다양하게 하실 수 있다.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여부스 인은 예루살렘 성의 원주민이다(5:6-8).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 동북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대하 3:1). 그런데 타작 마당은 추수한 곡물의 겨나 지푸라기 등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Smith). 결국 이곳은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다(대하 3:1). 한편 역대상에는 ‘아라우나’의 이름이 ‘오르난’으로 기록되어 있다(대상 21:15, 18, 20, 21, 22, 23).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구약에서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브람/아브라함, 야곱/이스라엘, 이드로/르우엘, 요람/여호람, 요아스/여호아스, 여호야긴/여고니야 등등. 이런 관습은 고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왕하 15:29)은 불(Pul)로도 불렸다(대상 5:26). 한 사람의 개성, 기능, 경험, 혹은 삶의 정황 등이 바뀌면 제2의 이름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아라우나와 오르난이 동일인이라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2) 원래 히브리어 본문은 자음으로만 기록돼 있었고, 자음만 보면 이 두 이름은 거의 똑같다. 모음 부호는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가 기록된 후 거의 천 년이 지나서야 본문에 붙여졌다. 모음과 어미는 이 기사들이 기록되던 시기에 동일한 자음을 다르게 발음한 것에 따라 붙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이름은 언어학적으로 관련돼 있고, 동일한 히브리어 어근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3)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표기이며, ‘오르난’은 히브리식 표기이다(Keil, Ewald, Lange). 그런데 70인역(LXX)에는 일괄적으로 ‘오르나’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아라우나라는 이름이 왕의 공식적인 칭호였다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 “아라우나라는 이름이 ‘자유인’ 또는 ‘귀족들’을 뜻하는 힛타이트어라고 설명되어 왔다. 다른 학자들은 이 말이 ‘주인’을 의미하는 후르어에서 파생됐다고 여긴다. 삼하 24:16에서 이름은 정관사와 함께 나오고, 따라서 23절은 ‘아라우나 왕’을 가리키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라우나는 여부스 족의 예루살렘의 마지막 왕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J. D. Douglas, ed.,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3 vols. [Leicester, England: Inter-Varsity Press, 1980], s.v. “Araunah”).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무릎을 꿇고 몸을 숙이는 자세를 가리키는데, 이는 윗 사람에 대한 경외와 절대 복종의 자세이다(삼상 25:23, 에 8:3, 왕하 4:37).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성공적인 제사는 하나님께서 제물과 함께 그 제물 드리는 사람을 함께 받으시는 제사이다(창 4:4, 5). 그러므로 여기서 아라우나는 다윗 왕의 제사에서 제물과 더불어 제물 드리는 자가 모두 기쁘게 여호와께 기쁘게 받으심 됨으로써, 성공적인 제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이로 보아 아라우나는 예루살렘 정복 이후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것이 분명하다.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병행 구절인 대상 21:25에는 그 땅 값으로 금 600세겔을 지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이같은 차이를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로 보려 한다(Keil). 그러나 착오 치고는 너무나 큰 차이다. 또 혹자는(Bochart) 대략 금화가 은화의 12배의 가치에 해당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즉 50 X 12=600), 여기서의 ‘은’(히, 케셒)을 단지 ‘돈’이란 뜻을 지닌, 실상의 ‘금’으로 본다. 그리고 대상 21:25의 ‘금’(히, 자합)을 ‘은 600세겔에 해당하는 금’으로 고쳐 해석한다. 그러나 이처럼 원문을 임의로 고쳐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각기 다른 두 품목에 대한 두 가격으로 보아야 한다(Pulpit Commentary). 즉, 여기에서 지불된 은 50세겔(은 1세겔은 대략 노동자 4일의 품삭에 해당됨)은 소와 타작 마당에 해당하는 값이며, 대상 21:25에 나타난 금 600세겔은 성전 부지로 사들인 모리아 산 전체에 대한 값이라고 볼 수 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번제’는 다윗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레 1:4). 그리고 다윗은 번제에 이어 화목제를 드렸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다는 근거하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과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감사하여 드린 제사이다.
이에 … 재앙이 그쳤더라. 다윗의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내의 전염병 재앙은 완전히 그쳤다. 이것은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재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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