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 그에게 이르렀고. 역모에 관해서는 한 사람의 범죄때문에 온 가족이 처벌당하는 일이 고대의 흔한 관습이었으므로, 사울의 보복을 피하여 다윗의 가족이 이같이 도피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Keil, Smith, Clericus). 한편 ‘아둘람 굴’은 다윗의 가족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약 15 km 정도 떨어졌으므로, 다윗의 가족들은 약 네 시간 정도 걸려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려가서. [히, 야라드] 이 단어는 베들레헴에 비하여 아둘람 지역이 상대적으로 저지대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빚진 자. 이들은 사울 왕국의 부당한 세정(稅政) 또는 채주의 강압적인 고리(高利) 등으로 인하여 주로 경제적으로 억눌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Fay, Smith).
마음이 원통한 자. 이와 같은 말이 무자(無子)로 인해 브닌나로부터 애매히 고통 당했던 한나의 경우에도 적용되었다(1:10). 따라서 아마도 이들은 사울 왕국의 비도덕성 또는 비종교성 등으로 인해 심적 영적 상처를 입고 고통을 느끼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모였고. [히, 이트카베추] 이말은 ‘모이다’(히, 카바츠)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들 스스로 모여들었다’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수 9:2, 삿 9:47, 삼하 2:25). 한편, 이처럼 스스로 뜻을 세우고 다윗에게로 모여든 여러 사람들 중에는 많은 용사들과 선지자, 그리고 지사(志士)들이 있었다(5절, 대상 12:1-18).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점점 타락하고 쇠퇴해가던 사울 왕국에서 침묵하고 안주하기 보다는 장차 이스라엘을 새롭게 할 자로 부름받은 다윗과 더불어 고난당하기를 기뻐하여 이처럼 모여들었다.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으로는 여자와 어린 아이는 항상 계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기의 이 ‘사백 명’ 역시 전투에 참여할 만한 용사들만을 의미함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 숫자는 얼마 안가서 결국 육백 명으로 불어난다(23:13, 25:13, 27:2, 30:9-10).
하나님이 나를 … 어떻게 하실지를 … 알기까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길을 밝히 보여주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고히 믿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다윗은 자신의 고난이 결코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와 능력으로써만 해결된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시 27:10).
나의 부모가 …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다윗은 노쇠한 부모와 함께 자신의 험난하고 고달픈 도피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요청을 한 것이다.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이같은 명령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애굽 땅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불러내셨던 사건과 신학적 동일선상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창 12:1, 10).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언약의 땅 가나안을 지켜야 했듯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도 어떠한 위험과 역경이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언약의 땅과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다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사실 다윗은 유다로 돌아가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등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백성들로부터 지속적인 인정을 받을수 있었으며(18:7, 28-30), 바로 이같은 일이 왕좌(王座)로 나아가기 위하여 다윗 자신이 준비해야 할 일이었다.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헤렛’(Hereth)은 오늘날 ‘카라스’(Kharas)와 동일한 지역으로 추정된다(Smith, Fay). 그 위치는 ‘십’(23:15) 남쪽 약 3.2 km, 헤브론 남서쪽약 8-9 km지점으로 ‘그일라’(Keilah, 23:1)와 인접 지역이다(Hertzberg).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여기의 ‘높은 곳’은 산당(山堂)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왕적 권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울이 선택한 높은 곳의 자리를 가리킨다(Keil, Fay).
손에 단창을 들고. ‘단창’은 사울이 항상 소지하던 것으로서(18:10, 19:9-10, 26:7, 8, 11, 12, 16, 삼하 1:6), 왕들이 흔히 지참하는 규처럼 왕의 위엄을 상징(히 1:8)하는 것이다(Fay). 그런데 사울이 규 대신에 ‘단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수행하던 왕직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9:16-17).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에셀나무’(tamarisk tree)는 보통 사막 지역의 와디(Wadi, 건천)에서 자생하는 연질(軟質)의 나무이다. 이 나무는 수많은 가느다란 가지에 비늘과 같은 잎이 달려있으며, 꽃의 색깔은 희다. 그런데 이것은 고지대에서 특히 귀하다는 사실 때문에, 대부분 산지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히 여겨졌다.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이 에셀 나무 아래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다(Klein). 더구나 여호와 숭배와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이 나무를 브엘세바에 심었다는 사실 또한 이 나무를 소중히 여기도록 한 한 가지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창 21:33). 또한 후일 사울이 이 나무 아래에 장사되었다는 사실은(31:13), 그가 이 나무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증거도 된다.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이것은 ‘어전 회의’에 대한 묘사로서, 사울은 중대한 국사(國史)는 이러한 어전 회의를 통해 의견을 듣고, 또한 명령을 시달한 것 같다.
이새의 아들.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호칭이다(20:30).
너희에게 … 밭과 포도원을 주며. 여기의 ‘밭과 포도원’은 왕에 대한 봉사와 충성의 대가로 하사 받는 토지를 가리킨다(8:14). 그런데 사실 여기의 ‘밭과 포도원’은 왕권(王權)을 이용하여 백성들로부터 거의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임이 분명하다. 바로 이같은 사실은,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경고했던 바(8:11-18), 곧 왕이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라는 예언이 사울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8:14>.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사울의 이 말도 역시 사무엘이 예언했던 왕의 직권 남용이 사울에 의하여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8:12).
맹약하였으되. 당시 다윗과 요나단 간의 우정과 사랑의 맹약은 너무도 진솔하고 탄탄한 것이었으므로, 사울 뿐만 아니라 사울의 신하들 및 모든 백성들도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다윗의 도피 생활에 분명 요나단이 개입되었을 터인데, 그러한 정보를 신하들 중 한 명도 자신에게 고발하지 않고 있다고 사울이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들이 … 나를 치려 하는 것. 이는 다윗에 대한 사울의 피해 의식이 점차 심화되어, 신하들은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 모해자(謀害者)로 의심하는 사울의 병적 증세를 보여 준다.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 21:1 주석 참조.
음식. 성소의 떡상에서 물려냈던 진설병(21:5-6)을 말한다.
놉에 있는 제사장들. 원래 ‘놉’은 제사장의 성읍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이 성읍에서 집단 거주하게 된 까닭은, 실로가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에서 엘리 제사장의 후손들이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던 바로 이 성읍으로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때 엘리의 후손들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성막을 다시 재건했을 것이다(21:1).
오늘이라도 … 나를 치게 하려. 다윗에 대한 사울 왕의 피해의식과 강박 관념이 잘 드러난 말이다. 사실 사무엘로부터 폐위 선언(13:13-14, 15:23, 26)을 듣고 곧이어 다윗이 출현하게 되자, 사울은 다윗으로부터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왕의 호위대장. 여기의 ‘호위대장’(히, 미쉐마아트)은 어원학상으로 볼 때 ‘순종해야 되는 자, 듣는 자, 청중’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시종’ 즉 ‘옆에서 모셔서는 자’란 말로서, 왕의 개인 보좌관 내지는 조언자를 가리킨다(Klein, Keil, Smith, 삼하 23:22, 23, 대상 11:24-25).
왕의 신하들이 …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죽여야 하는 대상이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 신분에 있는 사람들이며, (2) 이들 제사장들에 대한 사울의 재판이 완전한 독단과 조작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제사장. 본서 저자는 ‘제사장’ 앞에 계약적 의미를 강조하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첨부함으로써, 사울의 신하들이 왜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사울의 명령을 이행치 아니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암시를 한다. 즉 사울의 신하들은, (1) 자신들이 여호와의 계약 백성임을 믿고 있었으며, (2)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자신들 간의 계약적 관계를 제사 의식을 통하여 연결 및 유지해 주는 중요한 직분자들이었음을 깨닫고 있었으므로 제사장들을 죽이려하지 않았다.
에돔 사람 도엑. 여기서도 ‘도엑’이라는 인물이 ‘에돔 사람’임이 강조되고 있다. 21:7 주석 참조.
그 날에. 무고한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이 지체없이 시행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놉 제사장 학살 사건’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즉 (1)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 직무를 맡고 있는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무고한 혐으로 가혹하게 처단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한 처사요, 따라서 그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8:7)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 행위였다. (2) 일찍이 대제사장 엘리의 가문에 내려졌던 심판적 예언의 성취였다(2:31-36, 3:11-14). 즉 제사장 아히멜렉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써 심판적 경고를 받았던 엘리의 증손자로서(14:3) 조상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의 불의한 재판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대소사(大小事) 및 길흉(吉凶)의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하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한편 여기의 ‘세마포 에봇’은 일반 제사장들이나 성막 봉사자들이 입던 옷으로서, 대제사장들이 입는 에봇과는 분명히 구분된다(2:18).
남녀 … 젖 먹는 자들과 소 … 양을 칼로 쳤더라. 제사장을 죽이라는(17-18절) 사울의 명령보다 더 심하게 이처럼 행한 것은 분명 ‘도엑’ 자신의 독단적 판단에 따른 행위로는 볼 수 없다. 틀림없이 이것은 ‘놉’이라는 성읍 전체를 ‘진멸’해야 하겠다고 판단한 사울의 또다른 명령에 따른 행위였을 것이다. 일찍이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15:18, 19, 23). 그러나 이제 사울은 그 때 휘둘렀어야 했을 ‘진멸의 칼날’을 오히려 선량한 놉의 제사장들에게 사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쌓고 있었다.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아비아달’이 이같이 다윗에게로 도망간 까닭은,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기는 등 사울과는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역시 사울에게 쫓기는 자신을 기꺼이 받아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 아버지 집 …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같이 유감을 표명한 까닭은,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의 가문이 사울로부터 화를 당하게 된 것은 자신이 그에게 거짓말을 해서 그로부터 도움을 받게된 사실이 주요한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1:2). 따라서 다윗은 이처럼 아히멜렉을 위시한 제사장들의 죽음의 궁극적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였다(시 32:5). 그는 자신의 거짓말 범죄(21:2)에 대한 인정과 회개의 표시로 긴급 구조를 요청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을 자신의 무리 안에 받아들였다. 이같이 비록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참된 회개를 통하여 신앙을 회복하는 행위야말로 다윗을 다윗답게 한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삼하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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