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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 후에. 본 장과 전 장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관용적 표현이다. 역대상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얼마 동안은 블레셋 땅 시글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삼상 25:5-7). 그리고 이때 더욱더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몰려왔기 때문에 그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진 듯하다(대상 12:1-22). 이는 곧 이제 다윗이 전사한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할 때가 이르렀음을 시사해 준다(Pulpit Commentary).

여호와께 여쭈어. 아마도 이때 다윗은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입고 있었는데, 당시 그가 다윗과 함께 있었다(삼상 23:6). 둘째, 다윗은 과거에도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에게 우림과 둠밈을 사용,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 달라고 한 적이 있다(삼상 22:10). 한편 이처럼 다윗은 사울의 사후(死後)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정세 속에서도 자기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중요한 일을 만날 때마다 취한 행동으로서(5:19, 삼상 22:10), 이는 그가 그만큼 자기의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이제 사울이 죽은 시점에서 다윗은 고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 다윗이 특별히 유다 땅을 염두에 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는 아직 사울 가문을 추종하는 적대 세력이 있었으니(8, 9절) 그는 자기 지파, 유다 땅에서 필시 정착지를 구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Lange).

헤브론.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 km 지점에 위치한 고성(古城)이다.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며(수 15:13, 삿 1:10) ‘헤브론’의 뜻은 ‘연합, 친교’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하신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윗이 유다 지파의 세력을 업고 왕이 될 정치적인 거점으로 알맞은 곳이었다(4절). (2) 헤브론은 여호수아 시대에 갈렙에게 패퇴한 아낙 자손들이 차지했던 요새로서(수 15:13-17) 산지가 성읍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3)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브론에는 다윗과 친분이 두터운 유다의 장로들이 거주하고 있었다(삼상 30:26, 30).

 

2:2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 ‘아히노암’의 뜻은 ‘호감가는 형제’이다. 그녀는 다윗이 첫 번째 아내 미갈을 발디에게 빼앗긴 후 새로 취한 또 다른 아내이다. 삼상 25:43 주석 참조. 그녀는 다윗에게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장자(長子) 암논이었다(3:2).

갈멜 사람 … 아비가일. ‘아비가일’의 뜻은 ‘아버지가 기뻐하심’이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본 남편 나발 사후(死後) 다윗에게로 개가(改嫁)하였다. 삼상 25:39-42 주석 참조. 그녀 역시 다윗에게 아들을 낳았는데 일명 ‘다니엘’(대상 3:1)이라고도 하는 ‘길르압’이다(3:3).

 

2:3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삼상 27:2에는 당시 다윗을 추종하던 자들의 수가 600 명 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가족들, 즉 딸린 식구들이 있었다 하니 적어도 그 수는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아말렉 족속에게서 탈취한 무수한 양 떼와 소 떼도 있었다(삼상 30:18-20). 따라서 아마 다윗은 이들을 헤브론에 다 수용하지 못하고 헤브론 및 그 인접한 성읍들에 분산 수용하였을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2:4 유다 사람들이 … 왕을 삼았더라. 일찍이 야곱은 유다 지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그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창 49:8, 10). 그런데 그 때 이후 약 85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비록 유다 족속만의 왕이긴 하나 다윗이 왕위에 올랐으니 비로소 그 예언은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예언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때에 보다 본격적으로 성취되었지만(5:1-3) 그 궁극적 성취는 ‘실로’ 곧 유다 혈통을 따라 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므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창 49:10 주석 참조.

기름을 부어. 다윗은 그의 일생 동안 다음과 같이 세 번 기름 부음을 받았다. (1) 약 15년 전 사무엘에게서(삼상 16:13), (2) 본 절에서 유다의 장로들로부터 유다의 왕으로, (3) 약 7년 6개월 후 이스라엘 장로들에게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5:3). 그런데 다윗의 두 번째, 세 번째 기름 부음 받음은 사실상 첫 번째 기름 부음 받음의 결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무엘을 통해 받은 기름 부음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신 사건이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두, 세 번째의 기름 부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성격상 두 번째, 세 번째의 기름 부음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화 되는 사건, 즉 다윗이 실제로 왕위에 오르는 공식적인 행사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1)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삼상 15:29)과 (2)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는 당시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결국 승리한다는 영적 진리(요 16:33)를 발견하게 된다.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강 동편, 므낫세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성읍이다(민 32:39-40). 벧스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 km 지점에 위치한 이곳 일대는 요단 강 동쪽 유역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사울의 시체를 되찾아 엄숙히 장례를 치러 준 까닭(삼상 31:11-13)은 일전에 그들이 암몬 왕 나하스에게 포위당했을 때 사울이 와서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삼상 11:1-11).

 

2:5 전령들을 보내어. 이는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공식적으로 행한 첫 행사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면 다윗이 이처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기도 한다. (1)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므로(삼상 11장) 그들의 오해가 없도록, 즉 다윗이 사울 왕을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7절)라는 견해(Keil & Delitzsch Commentary). (2) 그들도 다윗을 왕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견해(Matthew Henry). 그러나 이 견해만을 주장하는 것은 부족한 것 같다. 왜냐하면 다윗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보다 하나님의 공의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왕적 권위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다는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그와 같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1:14-15). 따라서 다윗이 이처럼 그들에게 전령을 보낸 근본 이유는, 자기를 대신하여 사울의 시체를 장사지낸 야베스 사람들의 선행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는 앞서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 ‘활 노래’(1:17-27)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한 것은 그의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2:6 은혜와 진리.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 말이다. ‘은혜’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단순한 관대함이나 인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즉 이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어 그의 보호를 받게 되는 은혜를 의미한다(출 19:5-6, 신 5:32-33). ‘진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메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식언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지키신다는 의미의 ‘진실’을 말한다(삼상 15:29). 따라서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Lange).

 

2:7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성경에서 ‘손’은 종종 ‘힘’이나 ‘능력’을 상징한다(창 9:2, 14:22, 32:11, 출 2:19, 레 26:25). 그리고 ‘담대히 할지어다’라는 말의 직접적 의미는 ‘용맹의 아들이 되라’이다. 따라서 본 절은 내가 너희를 보호할 테니 ‘낙심 말고 힘을 내라’(공동번역)는 의미이다. 이는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약속이다. 즉 일찍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의 침략 위기에게서 사울 왕의 도움으로 구출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삼상 11장). 그러나 사울 왕이 없는 지금 저들은 외적의 침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와 같은 의사는 왕적 권위로서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최상의 약속이었다.

 

2:8 넬의 아들 아브넬. 넬은 사울의 숙부였으니(삼상 14:50), 아브넬은 사울의 사촌이며, 이스보셋의 당숙(堂叔)이다.

이스보셋. 대상 8:33, 9:39에 의하면 그는 사울의 넷째 아들로서 그 본명이 ‘에스바알’로 되어 있다. 에스바알은 ‘바알의 사람’이란 뜻인데 이것이 ‘부끄러움의 사람’이란 뜻인 ‘이스보셋’으로 바뀐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당시 ‘바알’이란 히브리어는 ‘주인’ 또는 ‘주님’을 의미했다. 그러나 후대에 이스라엘에 바알 종교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바알이란 말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름에 포함된 ‘바알’이란 말을 ‘부끄러움’이란 의미의 ‘보셋’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여룹바알’이란 이름이 ‘여룹보셋’ 또는 ‘여룹베셋’(11:21)으로 바뀐 것도 아마 갈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Rust, Pulpit Commentary).

마하나님. ‘두 진영’ 또는 ‘두 군대’라는 뜻이다. 이곳은 유서 깊은 땅으로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중 천사들을 만났던 곳이다(창 32:1-2). 때문에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다만 추정하면 요단 동쪽 갈르엣과 얍복 강 사이에 위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판의 기업 경계에 위치했으므로 아브넬과 이스보셋은 이 두 지파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수 13:26, 30). 한편 이곳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 피신하였던 곳이기도 하다(17:24, 27, 19:32).

 

2:9 길르앗. 다윗이 이곳의 야베스 거민들에게 사절단을 파송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4-7절) 길르앗 족속이 이스보셋을 추종한 것으로 보아 아직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민심을 온전히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술.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추정이 있다. (1) ‘그술’을 가리킨다는 추측(시리아역과 벌게이트역). 즉 필사자가 히브리어 ‘게슈리’라는 말을 ‘아슈리’라는 말로 잘못 베꼈다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술은 아람 소국(小國)의 하나로서 다윗 시대에 자신의 왕을 모시고 섬겼던 지역이다(3:3). 따라서 이 추측은 옳지 않다. (2) 아술이 아셀 성읍과 그 지역을 가리킨다는 추측(Keil & Delitzsch). 즉 아셀 성읍은 이스르엘 동편에 위치한 곳으로 길보아 전투 때(삼상 31장) 블레셋에게 빼앗겼으나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시 점령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Bachienne). 이 추측은 바로 다음에 이스르엘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볼 때 매우 가능성이 있다(Rust).

이스르엘.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삼상 31:1)을 거쳐 갈멜 산 부근을 지나 지중해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넓은 계곡과 평야 지대이다. 하지만 사울 당시 이스라엘은 길보아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을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그런데 이스보셋이 이곳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 이는 분명 아브넬이 다시 군사들을 규합하여 정복하였을 것이다.

 

2:10 두 해 동안 … 칠 년 육 개월. 두 통치자의 통치 기간이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 왕의 사후 얼마 안 있어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1-4절) 이스보셋은 5년여 동안 아브넬과 함께 재편성한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워 빼앗겼던 땅을 다시 탈환한 후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Bunsen, Ewald, Keil & Delitzsch Commentary).

 

2:11 없음.

 

2:12 기브온에 이르고. ‘기브온’의 뜻은 ‘언덕’이다. 예루살렘 북서쪽 9 km 지점에 위치한 히위 족속의 성읍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수 18:25). 한편 이곳은 헤브론에서는 약 35 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마하나님에서는 약 60 km 정도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이스보셋이 군사를 이끌고 먼저 이곳으로 나아왔다는 것은 곧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습적으로 군사 행동을 감행하였음을 의미한다.

 

2:13 스루야의 아들 요압. 18절 주석 참조.

기브온 못 가. 이곳에는 양 진영이 탐을 낼 만큼 많은 물을 담아 놓을 수 있었던 큰 저수지가 있었다. 미국 펜실바니아 박물관 팀(1956-1960년, J. B. Pritchard 가 이끔)의 발굴 조사에 의해 오늘날 그 못의 규모가 드러났다. 그 안에는 79 개의 층계가 나선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직경은 약 11 m, 깊이가 약 14 m이다. 따라서 이곳에 물을 채우면 4-6천 명이 물을 마실 수 있었으니 당분간 성이 포위되더라도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이렇게 볼 때, 기드온 못은 물이 귀한 가나안에서 아주 중요한 식수 공급원이었으며 전략적으로 차지하는 의미 또한 매우 컸다. 그러므로 이곳의 지배권을 쟁탈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2:14 겨루게 하자. 이 말의 히브리어 ‘사하크’는 ‘비웃다, 조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여기서는 양 진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람의 흥미를 돋우는 어떤 군사 게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헐뜯고 비웃고 욕하는 가운데 싸우는 처절한 칼부림(sword play, Living Bible)을 의미한다. 아마 과거 블레셋의 골리앗이 제안하였던 싸움이 바로 이와 같은 성격이었을 것이다(삼상 17:8-9). 풀핏 주석에 따르면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벌어지던 이 같은 전쟁 놀이는 과거 북유럽이나 아라비아 지방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아브넬의 제안에 요압이 이처럼 선뜻 응낙한 것은 반드시 자기 부하들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신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아브넬로부터 조롱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 이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Matthew Henry). 하지만 그 결과는 양측 모두 12 명씩의 인명을 잃게 되었다. 만일 아브넬이나 요압 중 한 사람만이라도 부하를 사랑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15 열두 명이요 … 열두 명이라. 이처럼 이스보셋과 다윗측에서 각각 열두 명의 군사를 출전시킨 것은 온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12 지파 전체의 지배권을 걸고서 싸운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2:16 머리를 잡고 … 옆구리를 찌르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각자가 상대의 머리를 잡고 그리고 그의 칼은 상대의 옆구리에’이다. 즉 원문에는 ‘찌르매’라는 동사가 없다. 이는 곧 당시의 처절한 싸움의 상황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각자가 상대의 머리를 잡음과 동시에 아주 날렵하게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렀음을 보여준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일제히 쓰러진지라. ‘일제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흐다우’는 ‘함께, 똑같이’란 의미이다. 구약에서 이 말은 (1) 행동의 일치(신 25:11), (2) 시간의 일치(시 4:8)를 의미할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의 이 말이 두 번째 경우인 시간의 일치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 똑같은 상처를 입고 똑같은 시간에 쓰러져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그들이 모두 상처를 입고 죽었다는 의미로서 행동의 일치를 나타내는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말에서 우리는 그 날에 대표로 나온 24명의 용사들이 (1) 방어 무기(방패 등)도 없이 싸웠고 (2) 아주 치열하게 싸웠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이 양 손에 칼과 방패 따위를 들고 있었다면 상대방의 머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헬갓 핫수림. 이는 ‘헬갓’과 ‘핫수림’이 합해진 복합 명사이다. 이 중 ‘헬갓’은 ‘들’(field)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해석의 초점은 두 번째 단어 ‘핫수림’에 있다. 왜냐하면 ‘핫수림’은 ‘추르’의 복수형으로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1) ‘옆구리’로 보는 견해(공동번역). 이 견해를 따르면 ‘헬갓 핫수림’은 ‘옆구리들의 들’이 된다. (2) ‘음모자’로 보는 견해(LXX). 이에 의거해서 데니우스(Thenius) 같은 이는 ‘헬갓 핫수림’을 ‘모해자들의 들’로 해석한다(Lange). (3) ‘반석’으로 보는 견해(Vulgate).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은 반석이 ‘강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헬갓 핫수림’을 ‘강한 자들의 들’로 해석한다(Patrick). (4) ‘날카로운 칼날’로 보는 견해(Dake, 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그 근거로서 첫째는 ‘추르’가 대부분 ‘반석’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시 89:43에서 ‘날카로운 칼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의미는 칼날에 찔려 소년들이 모두 죽은 본문의 사건과도 매우 부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이상과 같은 네 가지 견해 중 처음 세 견해는 그 근거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본문과도 잘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 번째 견해에 근거해 ‘헬갓 핫수림’을 ‘날카로운 칼날들의 들’로 해석하는 것이 비교적 무난할 것이다.

 

2:17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선택된 24명의 용사들이 승부를 가리지도 못한 채 모두 죽자(16절) 피를 본 양측의 군사들이 자극을 받아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맹렬하다’에 해당하는 ‘카샤’는 ‘잔혹하다, 단단하다’는 뜻으로 전쟁의 참혹성을 말해 준다.

 

2:18 스루야. 이름의 뜻은 ‘분열됨’으로 다윗의 누이이다(대상 2:16).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그 계대(係代)를 말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서 요압, 아비새, 아사헬이 ‘스루야의 아들’로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1) 스루야가 특별히 뛰어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2) 스루야가 일찍 남편을 사별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3) 요압, 아비새, 아사헬과 다윗과의 친분 관계를 보다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압.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심’이다. 요압은 다윗 왕조의 중심 인물이며 또한 본서에 빈번히 등장한다. 그는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다윗을 추종했으며, 이스라엘의 통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10:6-19, 11:1, 12:26, 왕상 11:15-16). 그러나 그는 이중 인격자의 성질을 가진 자로서 한편으로는 다윗을 심히 괴롭히기도 했다. 즉, 그는 다윗을 위해 시온 성을 쌓는 데 협력하는(대상 11:8) 등 많은 충성을 하였으면서도(14:23, 31-33, 18:14-33), 한편으로는 다윗이 죽이지 말라고 부탁, 또는 명령한 압살롬, 아마사, 아브넬 등을 교묘한 꾀를 써서 살해하였다(3:27, 18:14, 20:10). 이러한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다윗 왕조를 위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충성했던 것이 아니라 다분히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야망으로 행동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그를 미워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결국 요압은 이러한 자기의 기질로 인해 솔로몬의 군대 장관 브나야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왕상 2:31-35). 우리는 요압의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곧, 참된 충성이란 많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질과 욕망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아비새. ‘선물의 아비’란 뜻이다. 아비새 역시 형 요압과 함께 일생 동안 다윗 왕조에 충성을 다 하였다(17:25, 대상 2:16). 그는 요압과 더불어 다윗 군대의 유력한 장군이 되어(10:9-10) 압살롬의 반역을 평정하며(18:1-15) 다윗의 목숨을 구하는 등(21:15-17)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그는 혼자서 창으로 삼백 명의 적군을 무찌른 일로 유명하다(23:18, 대상 11:20).

아사헬. ‘하나님께서 만드심’이란 뜻이다. 요압과 아비새의 동생으로서 다윗의 30 용사 중 한 사람이다(23:24).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기도 한 그는(대상 27:7) 특히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였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스보셋의 군장(軍長) 아브넬에게 살해당하는 불운을 격는다(23절).

 

2:19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이 말은 ‘한눈 팔지 아니하고, 오직’이란 뜻이다. 후퇴하는 적의 패장(敗將)을 처치한다는 것은 용사로서 매우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아사헬은 다른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아브넬의 뒤만을 쫓았다.

 

2:20 없음.

 

2:21 청년 하나를 붙잡아 그의 군복을 빼앗으라. 여기서 ‘군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리차’는 본래 싸움에서 승리하고 얻는 ‘전리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브넬의 이와 같은 말은 다른 데로 가서 공을 세우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더 나아가 이 말 속에는 ‘아사헬, 너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2:22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아브넬의 이 같은 말은 아사헬과의 싸움을 피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아브넬은 행여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아사헬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와 관련하여 아브넬이 굳이 요압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전에 아브넬과 요압은 친구 관계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다윗이 사울 왕의 핍박으로 인해 도피하기 이전에는 이들이 서로 군대의 동료로서 우정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Keil). (2) 아브넬이 대세가 다윗측에게로 기우는 것을 확인한 후 앞으로 자신이 요압의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될 때 그 후환을 염려하여 이 같은 말을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Pulpit Commentary, Rust, Matthew Henry). (3) 아브넬이 요압의 사나운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복수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같이 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Lange).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추측들 모두가 가능성이 없는 것들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들을 종합하여 본 절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2:23 그가 물러나기를 거절하매. 이로 보아 아사헬은 자신의 빠른 걸음만을 믿고서 만용을 부렸음이 분명하다. 만일 그가 사리를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아브넬이 자신보다 뛰어난 백전 노장임을 깨닫고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창 뒤 끝으로 … 찌르니. 이것을 보아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일 마음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저 아사헬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창 뒤 끝으로 찔렀다(Hertzberg, Lange).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사헬이 죽은 것은 아마 (1) 창의 뒤 끝에 금속 종류가 부착되어 있었거나(Lange, Pulpit Commentary), (2) 아사헬의 달려옴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일 것이다(Matthew Henry).

엎드러져 죽으매. 이처럼 18절에서부터 본 절에 이르기까지 아사헬의 죽음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아마 이는 훗날 요압에 의해 아브넬이 살해당한 이유가 바로 이 아사헬의 죽음 탓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인 듯하다(3:27, 30).

 

2:24 기아 맞은쪽 암마 산. ‘기아’의 뜻은 ‘폭포’ 또는 ‘솟는 샘’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베냐민 땅, 기브온 광야의 어느 한 지점인 것으로 추측되는 데 사람들이 쉬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샘이나 개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암마 산’ 역시 기브온 광야에서 요단 강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2:25 베냐민 족속. 당시 기브온에 정착하고 있던 베냐민 지파로서 이스보셋을 추종하던 세력이다(9절). 이들은 마침 기브온 못을 확보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아왔던 아브넬과 합세하였을 것이다(12, 15절). 그런데 이처럼 이들이 그 어느 지파보다도 적극적으로 이스보셋과 아브넬을 추종하였던 까닭은 아마 사울 가문이 자신과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10:17-24).

 

2:26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이 말은 ‘계속해서 칼로 죽여야만 하겠느냐’는 뜻이다. 즉 아브넬은 ‘이제 피 흘리는 싸움을 그만 두자’고 휴전 제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참혹한 일’에 해당하는 ‘마라’는 ‘괴로움, 불미스러움, 쓴 맛’ 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양측 모두 전멸하고 마는 ‘비극’을 의미한다. 때문에 불가타역(Vulgate)은 이를 ‘목숨걸고 싸우는 일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로 번역하고 있다(Lange, Pulpit Commentary).

형제 쫓기를 … 명령하겠느냐. 지금 대진해 있는 군사들이 형제들, 곧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넬의 간교성과 다급함을 엿볼 수 있다. 즉 먼저 동족간의 싸움을 제의하고 피흘리기를 좋아하였던 그가(14절) 이제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동족애에 호소하여 휴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로써 휴전이 성립되게 된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곧 장차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5:1-5)의 간섭하심의 결과였음이 분명하다.

 

2:27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아브넬이 무슨 말을 했기에 요압의 책망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14절에서 발견된다. 즉 요압은 기브온 전투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아브넬의 전쟁 제의 땃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즉 아브넬의 전쟁 제의만 없었더라면 기브온 못가로 나아왔던 양측의 군사들(13절)이 서로 화해하는 가운데 당일 아침에 각기 처소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Lange).

 

2:28 나팔을 불매 …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이처럼 요압이 아브넬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여 퇴각 나팔을 불고 싸움을 중지시킨 것은 아마 다윗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즉 동족간의 무모한 피흘림을 계속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 장차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여야 할 다윗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성질 급한 요압이었기는 하지만 이를 고려, 일단 싸움을 중지시켰을 것이다(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2:29 아라바. 본래는 요단 강 상류의 헤르몬 산으로부터 갈릴리 호수, 요단 계곡, 사해를 통하여 아카바 만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침식지(浸蝕地)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얍복 강이 흘러들어 오는 요단 강 일대의 계곡 지대를 가리킨다.

비드론 온 땅. ‘비드론’의 뜻은 ‘협곡’ 또는 ‘갈라진 틈’이다. 이로 보아 ‘비드론 온 땅’이란 요단 강 동편의 한 골짜기 일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2:30 없어졌으나. 이에 해당하는 ‘파카드’는 ‘빠뜨리다, 빠지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전사(戰死)하여 생존자의 수에서 빠진 것을 의미한다.

 

2:31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다윗 측의 전사자 수가 이십 명인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수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요압의 뛰어난 전술과 그 휘하 용사들의 용맹성에서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브넬 휘하의 베냐민인들 역시 호전적(好戰的)이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었던 점(창 49:27)에 비추어 볼 때 이 역시 이스보셋 왕가(8-10절)를 쇠퇴하게 하고 대신 다윗 왕조를 굳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2:32 베들레헴에 … 장사하고. 베들레헴은 기브온에서 남쪽으로 약 20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압은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사헬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조상 묘. 요압, 아비새, 아사헬의 아버지 곧 스루야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증거해 주는 구절이다. 18절 주석 참조. 그런데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은 별다른 명성을 얻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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