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공회를 주목하여 - 공회가 시작되자 제일 먼저 바울에게 변론의 기회를 준 것인지아니면 먼저 공의회회원들로부터 바울에 대한 비난과 고소가 있은 다음 바울에게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본절에서의 바울의 변론 직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과 그것에 대하여 바울이 즉각 강경(强勁)하게 맞서는 것을 볼 때, 바울의 변론에 앞서 그에 대한 여러가지고소가(21:28)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마 바울에게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누가가 유대인들의 고소장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Howard Marshall). 바울에 대한 고소는 그가 율법과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21:28). 여하튼 바울은 공의회의 증언대에 섰고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들 앞에조금도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변론에 임하고 있다. 이 사실은 '주목하여'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테니사스'(* )는 '노려보며'의 의미를 지니며 담대하게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바울의 이런 담대하고 강한 태도는 3절에서도 잘 나타난다. 형제들아 - 22:1의 '부형들'과는 또다른 표현인 '형제들'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공의회와 같은 공식석상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반적인 인사말이었다(Lenski). 공의회에서는 회원들을 존중해 주는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4:8).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바울이 이런 호칭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두가지의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는 이 모임이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비공식 모임이었으리라는 추측이나 설득력이 약하다. 둘째는 이 모임이 공식적인 모임이기는 하였으되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양심을 가졌으므로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부당하게 굴복할 수없음을 도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추측이다. 그럼으로써 바울이 어설픈 권위나 무력에 의해 굴복되지 않는다는 결의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양심을 따라...섬겼노라 - 이 '양심'은 '선한 양심'(good conscience, RSV)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바울의 이 선언적인 진술은 전날 자신에게 덮어 씌워진 고발에대해(21:28) 무죄함을 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적어도 율법의 기준으로 볼때 바울 자신은 흠 없음을 의미하고 (빌 3:6)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명한 자의식(自意識)과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23:2
아나니아 - 이 사람은 네데배우스(Nedebaeus)의 아들 아나니아(Ananiah)로 48년에서 58년까지 대제사장으로 군림했으며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했다.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는 분반 제사장들로부터 십분의 일 세(稅)를 몰수하여 재산을 축적했고 로마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렇듯 아나니아는 탐욕적이고술수에 능한자였으며 그의 친로마 정책으로 인하여 유대인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받았다. 66년에 로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아나니아의 집은 국수주의자들에 의해방화되었으며 아나니아는 헤롯 대왕의 궁전으로 피신하여 궁전 뜰에 있는 도수관 속에숨어있다가 그의 형 히스기아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Jos. Wars II, 426). 곁에 섰는 사람들...입을 치라 -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나니아는 바울의 당당한 태도에 즉각적으로 흥분했다. '곁에 섰는 사람들'(*, 토이스 파레스토신 아우토)이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는 산헤드린 의원들이라고 보는견해와(Lenski) 그곳에 있던 시중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Haenchen), 눅 19:24와요 18:22의 예를 볼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예수께서도 뺨을 맞은 일이 있었지만(요 18:22).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뺨이나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격을 극도로 모독하는 표현인 것을 생각할 때 바울의 한 마디 말에 대해 사리를 따져보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입을 치라 명하는 아나니아의 행위는 그의 폭력적(暴力的) 성격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여실히 드러난다.
=====23:3
회칠한 담이여...치시리로다 - 바울은 아나니아의 불법적이고도 인격 모독적인 행위에 대해 조금도 굴하지 않고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회칠한 담이여'라는 표현은,일찍이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회칠한 무덤이여'(마 23:27)라고 맹렬히 질책한 것을 연상시키는데, 이 둘은모두 위선자에 대한 질책의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회칠한 무덤'이 겉은 깨끗한것 같으나 속은 썩어빠진 상태를 뜻한다면, '회칠한 담'은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못해흔들거리면서도 겉에 흰 회를 칠해서 튼튼한 것처럼 꾸미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단지 아나니아의 위선을 질책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그에게 저주를 선언하기까지에 이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는 형식이 율법에 기록된 저주 방식이기 때문이다(신 28:22). 혹자는 바울의 이말을 단순히 관용적인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도 한다(Jacquier). 아나니아가 66년에 살해당한 것을감안한다면 이 견해도 일리가 있다. 율법대로...율법을 어기고 - 바울은 아나니아의 위선을 풍자적 대조법을 사용하여지적하고 있다. 법대로 판단한다고 하는 자가 법을 어기고 있으니 얼마나 우수운 꼴인가! 재판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며(레 19:15),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형벌이 집행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도 정치 않는 상태에서 바울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벌을 명하였으니 그것은 명백히 율법을 어긴 행위였다.
=====23:4
하나님의 대제사장을...욕하느냐 - 유대 사회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자로서 대단한 권위와 존경을 받고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감히 대제사장의 권위에 맞설 수 없었다(신 17:12).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살고 있던 그들로서는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맞서는 것이, 그 내용에관계없이 제사장을 욕되게 하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일찍이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당당하게 대답한 것이 불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매를 맞으신 사실을 생각한다면(요18:22), 바울의 저주 선언은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23:5
형제들아...알지 못하였노라 - 본절에서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이 자신의 입을 치라고 명한 자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정말로 몰랐는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알고 있으면서도 빈정되는 말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자를 대제사장으로 생각할 수있겠느냐는 의미로 말했다고 본다(Zahn). 그러나 '형제들아'라는 정중한 어투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출 22:28), 그리고 그의 신앙적 인격으로 보아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참이라고 봄이 무난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1) 바울의 눈에는 질환(疾患)이 있었는데(갈 4:13, 14), 이 눈질환으로 인해 시력이 약했기 때문에 누가 대제사장 직책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본다(Chrysostom). (3) 바울이 자신의 변증에 너무나열중했기 대문에 자기의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Bengel).(4) 지금 모인 공의회는 정기적인 산헤드린의 모임이 아니라 로마 관리에 의해 긴급히소집된 회의이므로 대제사장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옷을 입지 않았고 공식 좌석에도 앉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본다(Bruce). 이가운데(3), (4)의 견해가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무난하다. 관원을 비방치 말라 - 이 말은 출 22:28을 인용한 것으로 바울이 저주를 선언한 인물이 대제사장인 것을 정말로 몰랐으며 또한 그가 율법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율법에충실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이다.
=====23:6
사두개인 - 이들은 당시 상당한 종교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그 기원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때 유명했던 대제사장 사독에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사두개인들이 구체적인 집단으로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스모니안 시대 때(B.C. 166-63) 부터이다. 이들은 순수 유대적전통만을 고수하고 이방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는데,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전승 문서들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고, 죽은 자의 부활이라든가영적 세계, 천사와 마귀 등도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라 하여 배격하였다.이들은 철저히 현세 지향적이고 친로마적이고 체제 유지적인 귀족 집단이었으므로 민중들의 생활과는 유리(遊離)되어 있었다. 바리새인 - 이들 역시 사두개파와 쌍벽을 이루던 종교적 귀족 집단이었다. 에스라로부터 시작된 유대주의에 충성하는 한 부류가 마카비 시대 때 생겨났는데, 이들은'하시딤', '하시디안'으로 불리어진 경건 집단 바리새파였다. 이들은 사두개파와 달리모세 오경 외에도 각종 구전, 전승을 동일하게 권위있는 정경으로 취급하였고, 죽은자의 부활과 내세, 천사나 마귀와 같은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였다. 이들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권만을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에 배치된다고 보아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율법과 선조들의 전통에 충실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개혁하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 사과의 뜻이 담겨 있는 바울의 변론(5절)에도 불구하고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바울에 대한 적대 행위가 더욱 노골화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던것 같다.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 아무 대책없이 자신을 내맡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산헤드린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양자 사이에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던 바울은 이를 이용하여 논쟁(論爭)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이 이렇게 한행동에 대해 혹자는 노련한 수를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Preuschen), 마 10:16에 언급된 소위 뱀 같이 지혜로운 행동이었다고 보기도 하는 반면(Nestle), 상대방을 분열시키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다고 보기도 한다(Farrar)너무 근시안적 해석이라 할수 있다. 적어도 바울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고, 또한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11절). 자
믿는 것이지만 바울의 부활 신앙이 예수의부활에 근거한 반면 바리새인들의 부활 신앙은 예수와 관계없이 전승되어온 신앙에 근거했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차이점을 갖는다.
=====23:7
다툼이 생겨 - 바울의 발언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신학적 논쟁을불러 일으켰다. '다툼'(* , 스타시스)은 '놓다', 또는 '두다'의 뜻을 갖는'히스테미'(* )에서 온 단어로 '세움'을 뜻한다. 즉 서로 다른 입장을 옳다고 주장하면서 맞세우는 것이다. 이 두 종파는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들 간에 대립되는 신학적 노선에 있어서는 첨예한 분열상(分裂相)을 드러내었다. 이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기회만 있으면 논쟁을 일삼는 소위 비신앙적신학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23:8
부활도...천사도...영도 없다. - 사두개인들은 합리적이고 현세지향적이며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다. 특히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복음서에서도 예수와 부딪히는 주제로 등장한다(마 22:23).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부활,천사, 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주제들은 두 집단이 가장 첨예한 대립을보인 부분이었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신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감정적대립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 이상으로 격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견해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의 지배 원리 - 바리새인 : 역사는 신적 목적을 가지며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 진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바리새인의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였으며 역사 자체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천사론 - 바리새인 : 천사와 마귀의 계층이 있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천사도 없고 마귀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자유 의지와 결정론 - 바리새인 : 자유 의지나 또는 하나님의 주권만으로는 다른 일(사람)의 운명을 취소할 수 없다는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두개인 : 자유 의지란 궁급적으로 역사 과정의 한 결정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회적 활동 - 바리새인 : 인간 평등을 주장하면사 다방면에 걸쳐 순수한 민족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사두개인 : 자신들의 이해 득실(利害得失)에 민감하여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였다.
=====23:9
훤화 - 헬라어 '크라우게'(* )는 '비명을 지르다', '울부짖다'란 뜻의 '크라조'(* )에서 유래한 말로 큰 외침이나 고함 소리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의 논쟁이 매우 격렬해졌음을 시사한다. 서기관이...가로되...혹 영이나 혹 천사 -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논쟁 가운데 누가는 몇 사람의 바리새인이 말한 바울에 대한 변론을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서기관은 율법 전문가를 가리키는데 바리새인이 대부분이었다. 바리새인들의 말인즉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고 할 때 그것이 다메섹에서의 체험을 말하는 것인지(22:6-10), 아니면 그후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22:17-21)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한편 바울을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몇몇 바리새인은 본문에 등장하는 자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의 변호성 발언도 바울에 대한 지속적 지지의 입장을 나타낸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이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어도 관대한 입장을 지닌 자들이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중 다수는 그생활 양식에 있어 다른 유대인들과 별로 상충(相沖)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0
큰 분쟁이 생기니...빼앗아 가지고 - 급기야는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험악해지고 말았다. '찢겨질까'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서가파스데'(*)는 '깨뜨려 버리다', '산산조각을 내다'는 뜻의 '디아스파오'(* )의 제1부정 과거형으로서 천부장이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바울의 신상에 큰 위험이 있었을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빼앗아'라는 표현도 사두개인들이 바울을 붙잡고 폭력을 가하려 했기 때문에 강제로 떼내어 데려가야만 했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묘사한다.
=====23:11
주께서...담대하라...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께서는 일찍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같은 말로 위로했었다(1:18;요 16:33 참조).이제껏 바울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환상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16:9;18:9;22:17;27:23, 24) 그 상황이 지금처럼("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가깝게느껴지도록 묘사된 경우는 없었다. 이는 현재 시점의 긴박성을 시사한다. 그는 일찍이예루살렘을 방문한 후에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운 바 있고(19:21)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이미 각오한 바 있었지만(20:23;21:10-13),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자 그의 심정은 적잖이 당혹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고 로마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공해주셨다. 22:21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말씀이 여기서는 '로마'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로마로 가는 것은 단순한 바울의 바램이아니라 주님이 부여해 준 사명(使命)임이 분명하게 제시되며 지금 그에게 매우 가깝게감지되는 격려의 말씀은 이후 2년간에 걸친 로마 전도 여행에서 많은 위험이 따름에도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23:12
당을 지어 맹세하되...마시지도 아니하겠다 - 합법적인 재판을 통하여 바울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단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해할 암살단을 구성하였다. 아마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이 집단 안에는 앞에서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몄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21:27-29).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단식 서약은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삼상 14:24). 이 맹세의 본래적 형식은 '만일...하면 내가(우리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였으리라 본다(Haenchen). 그런데 만일 이들이 실제로 바울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맹세를 위하여 굶주려 죽어야 했을까? 당시에는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네 가지 경우가 랍비에 의해 허용되었다고 하는데, '선동에 의한 맹세', '과장된 맹세', '잘못된 맹세', '억업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맹세'가 그것이다. 아마이들 중에는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두개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만약의 경우 빠져나갈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어찡든 이들의 맹세는 바울을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굳은결의를 보여준다.
=====23: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 무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을 죽이겠다고 동맹하였다. 여기서 '동맹'(* , 쉬노모시안)은 '함께 맹세하다'는 뜻의'쉬놈뉘미'(* )에서 온 말로 이집단의 강한 결집력(結集力)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살벌한 맹세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기억하는 바울의 굳은 결심을 돌려좋을 수는 없었다(11절).
=====23: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무리들에게 일단 문제가 되는 것은 안토니오 성 안에서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바울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마침내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리라는 계획이었다. 본문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한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이다. 본문에 서기관 즉 율법학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바울을 옹호했던 바리새인들을(9절) 염두에 둔 암살단이 그들의 계획에 대해 보다 확실한 지지를 보내리라 판단한 자들에게로 갔음을 시사한다.
=====23:15
바울을...데리고 내려오게 -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세운 계획은 상당한 실현 가능성을 지녔다. 천부장도 자초지종을 알고자 하였고(22:30) 전날의 공의회에서는 소란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조사할수 없었으므로 공회가 천부장에게 재심을 요구한다면 천부장이 이를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로마 군대가 바울을 공의회에 출석시키기 위해 성에서 데리고 내려올 때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법이나 절차에 상관없이 오직 바울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바울을 죽이고 난 후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든 개의치 않겠다는 식의 맹목적이고저돌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한편 이들이 바울을 산헤드린에서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죽이려 한것은 기습(奇襲)하기에 용이함도 있었겠지만 산헤드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하기 위함이라고 보기도 한다(Haenchen).
=====23:16
바울의 생질이...고한지라 - 바울에 대한 친척관계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우리는여기서 최소한 바울에 게는 출가한 누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바울과 누이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생질 사이에 관계에 대해 두 가지로 추측한다. (1) 바울집단이 바리새인이었으므로(6절), 바울의 누이는 바리새인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고남편이 예루살렘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며,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할 때 그 누이의 집에서 머물렀을 것이라고 본다(Lenski). 그렇다면 본문의 생질은 예루살렘에서 나고 예루살렘에서 자랐을 것이다.(2) 바울의 누이는 다소에서 살았고 다만 그의 아들을 삼촌 바울이 공부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 율법 공부를 시키기 위해 유학 보냈을 것이라고 본다(Bruce). 두 가지 모두추측일 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생질이 다행스럽게도 바울을 해치려는 자들의 암살 계획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음모자들이 자만과 자신감에 가득찬 나머지 계획의 비밀을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는 어떤 바리새인이 바울의 생질에게 알려 주었다고도 본다(Vincent). 바울의 생질은 정보를 입수하자 곧바로 영문 안으로 찾아가 바울을 면회한다. 바울에게는 아직 아무런 구체적 혐의가 없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면회가 자유롭게 허용되었을 것이다.
=====23:17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인도하라 - 백부장은 백명 가량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인데, 바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듯 백부장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최고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한편 어떤 학자는 바울이 백부장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는 누가의 기록에 대해 의구심을 표한다(Haenchen). 그러나 이는 바울의 위치을 격상시켜 보이고자 하는 누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성(緊迫性)에 따른 것으로 봄이타당하다(Howard Marshall).
=====23:18
죄수 바울이 - 백부장은 바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여 그대로 따라 주었다. 그런데 그는 바울을'죄수'(* , 데스미오스)라고 부른다. 아직 유죄 판결도 받지 않은 상태인 바울을 '죄수'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렌스키(Lenski)의 말대로 이 용어가 감금되어 있는 자를 가리킨다면 그리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세 종류로 되어 있었다. (1) 공중 감옥(custodia publica)은 보통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대개 어두운 지하실이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갇혔던 옥이이에 해당하는 듯하다(16:24). (2) 자유 감옥(Custodia libera)은 상류층 죄수를 가두가는 곳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3) 군영 감옥(custodia Militaris)에서는 군사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손과 죄수의 한 손을 함께 묶어 감시하게 한다. 지금 바울이 같힌 곳이 바로 이 군영 옥이다.
=====23:19
손을 잡고 물러가서 - 천부장은 백부장을 통해 바울의 말을 전해듣는 순간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라고 직감했는지 바울의 생질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물었다. 여기서 천부장의 친절한 행동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광분해 있는 유대인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예수께서 수난을 당할 때에도 이방인 빌라도의 우호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유대인들의피의 요구는 가히 광적이었다(눅 23:13-23).
=====23:20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 바울의 생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용상 15절의 것과 일치한다. 여기서 '유대인들'이란 직접적으로 음모에 가담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누가가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 행위로 인해 바울이 이방 선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조함으로써그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은 은연중에 이스라엘 전체를 지시하는 셈이다.
=====23:21
좇지 마옵소서 - 여기서 '좇다'의 헬라어 '페이스데스'(* )는 '설복하다', '감언으로속이다'는 뜻인 '페이도'(* )의 제 1부정 과거 수동태 가정법으로, 음모를꾸미고 있는 무리들이 무슨 이유를 들어 바울의 재심을 요청한다 하더리도 설득당하거나 속임을 당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숨어서...허락만 기다리나이다 - '숨어서'(* , 에네드류우신)는 16절의 '매복'과 같은 어원에서 왔으며 '안'(in)을 뜻하는 '엔'(* )과 '자리'를 뜻하는 '헤드라'(* )의 합성어로 '잠복' 또는 '복병'을 가리킨다. 바울의 생질은 음모자들이 천부장의 승락만을 기다린다고 첨가함으로써 천부장의 권위를높여주는 동시에 그의 책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23:22
경계하되...이르지 말라 -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순수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전날의 소동으로 미루어 보건대(9, 10절), 유대인들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천부장은 친절하게도 둘 사이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경계시킨다. 이렇게 한 데에는두 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바울의 생질이 음모자들의 계획을 천부장에게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의 신변(身邊)에 위험이 닥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음모자들이 자기들의 계획이 드러난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방법을 새로이 계획할 것이고그렇게 되면 그날밤에 바울을 호송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울은 또 한번의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는 주님에 그에게 두신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11절).
=====23:23
밤 제 삼시에 - 현대적 시간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저녁 9시를 가리킨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집요함과 폭력성을 익히 잘 알던 터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것이다. 그래서 당장 그날 밤 음모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울을 빼돌리려 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 데 호위 병력을 무려 사백 칠십명이나 동원하는 것은 천부장이이 일을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했던가를 말해준다. 물론 천부장의 이러한 조치가 바울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로마 시민이 자기의 관할 구역에서무고한 희생을 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아무튼 바울로서는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23:24
총독 벧릭스 -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려 한 것은(23절), 총독이 주재하고 있는 그곳에서 바울을정식으로 재판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총독 벧릭스는본래 노예였으나 글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모친 안토니아(Antonia)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를 안토니우스 벧릭스(Antonius Felix)라고 불렀다. 그의 형제 팔라스(Pallas)역시 같은 노예였으나 그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고그의 총애를 받는 총신(寵臣)이 되기까지 하였다. 벧릭스는 그의 형제 팔라스의 도움으로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A.D. 52년에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A.D. 58년 까지 자리를 지켰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벧릭스는 잔인하고 음탕하며노예의 정신으로 왕의 권력을 행사하였다고 한다(Tacitus, History, V.P). 그의 음탕함은 결혼을 세 여자와 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한 여인은 안토니아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였고, 또 한 여인은 헤롯 아그립바 I세의 딸 드루실라(Drusilla)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짐승을 준비하라 -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90km 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탈 것을 이용해야 했다. 여기서 '짐승'(* , 크테네)은 전쟁용 말이 아닌 일반 운송용 나귀나 말을 가리킨다.
=====23:25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 이 표현은 대략적인 내용을 적는다는 뜻으로, 누가가 루시아의 편지를 입수하여 그전체를 축자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대략의 중심내용만을 기록하였음을 말해준다. 루시아가 이 편지를 벧릭스에게 쓰는 것은 로마법에 의한 절차를 보여준다. 로마법에 의하면 하급 관리가 상급자에게 어떤 사건에 대하여 보고할 때에는 서면(書面)에 기록된 진술서를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23:26
글라우디오 루시아 - 천부장의 이름이 여기서 밝혀진다. 이름의 전반부는 로마식이고 후반부는 헬라식인데, 이는 루시아가 헬라인으로서 글라우디오 치하에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였음을 암시한다(22:28 주석참조). 각하 - 헬라어 '크라티스토스'(* )는 '강한', '고귀한'을 뜻하는'크라튀스'(* )의 최상급으로, '가장 숭고한', '지존하신'의 의미이나 이말은 본래 로마의 원로원 의원 다음 서열에 속하는 기사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문안하노이다 - 벧릭스에게 보내는 루시아의 사건 진술서는 당시의 전형적인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1) 발신인의 이름을 먼저 밝히고, (2) 다음에 수신인의 이름을적고, (3) 이어서 문안을 하는 말로 내용을 써나가는 형식이 그것인데, 성서 가운데히브리서와 요한 일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신들이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23:27
이 사람이...구원하여다가 - 루시아는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질 경우를 우려한 나머지 보고 내용을 아전 인수(我田引水)격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지닌 것을 안 것은 이미 바울을 체포하고 채찍질을 명한 이후였지만 보고 내용에는 이 사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21:33;22:24).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로마 당국이 바울의 로마시민권을 처음부터 존중해 주었다는 것이다(Haenchen).
=====23:28
알고자 하여 - 유대인들이 바울을 붙든 것은 단순히 사형(私刑)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적(公的)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기 위함이었다(21:27-32). 따라서 그들은 로마 당국의 허가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결박한 것은 군중들의 소요 사태를일단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21:32, 33). 만일의 사태로 인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초래될지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가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23:29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 - 이런 일은 이미 예전에 갈리오 총독 때에도 있었던 일로 총독 갈리오는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소송이 로마 법정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것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을 거부하였었다(18:15). 여기서도 천부장 루시아는 문제의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별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은 율법에관한 문제일 뿐 형사 처벌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루시아가 바울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의미한다.
=====23:30
해하려는 간계 - 40여명의 단식 맹세자들의 음모를 가리킨다(12, 13, 20, 21절). 송사하는 사람들도...하였나이다 - 천부장이 이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준 때는바울을 호송하는 군인들이 안전한 지대로 빠져나간 후였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기 위해 누가가 본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넣었다고 이해하지만(Haeanchen) 근거가 회박한 견해이다.
=====23:31
보병이...안디바드리에 이르러 - 안디바드리(Antipatris)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사이에 있는 도시로 본래의 이름은카바르 - 사바(Kaphar-Saba)였는데, 헤롯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후 그의 부친 아티바터(Antipater)의 이름을 따서 이처럼 명명했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않는데, 학자들은 예루살렘 북서쪽 유대 구릉의 끝에 있는 현재의 라스엘-아인(Rasel-Ain)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까지가 56km 이상이라고볼 때 밤새 이 먼 거리를 로마의 보병들이 바울을 호위하여 걸었다면, 비록 밤의 기온이 선선하여 걷기에는 힘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당한 강행군(强行軍)을 한 셈이다.
=====23:32
마병으로...돌아가니라 - 바울은 안디바드리까지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추격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더이상 중무장한 군대의 호위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홀가분하게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으므로 마병을 제외한나머지 군대는 철수하게 했다.
=====23:33
가이사랴에 들어가서...그 앞에 세우니 -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의 39km를 기병들에 의해 바울은 무사히 호송되어 루시아가 보낸 편지와 함께(26-30절) 벧릭스에게 직접 인도되었다. '세우니'의 헬라어 '파레스테산'(* )은 재판정 앞에 출두시킨다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이다(롬 14:10).
=====23:34
어느 영지 사람이냐 - 벧릭스는 일종의 예비 심문(preliminary interrogation)을 행하고 있다. '영지'에해당하는 헬라어 '에파르케이아'(* )는 '지배한다', '통치한다'는 뜻의'아르코'(* )에 '위에'(upon)를 뜻하는 전치사 '에피'(* )가 붙은 말로통치권이 미치는 곳이란 뜻이다. '어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아스'(* )가 '어떤 종류의' 영지, 즉 황제의 영지인지, 원로원의 영지인지를 묻는 것으로 보는견해와(Wendt, Robertson) 황제의 직할지인가 아니면 지방 총독의 속주인가를 묻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Haenchen, Bruce), 후자가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지금 그의 출신지를 묻는 이유는 바울의 출신지에 따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바울의 출신지가 지방 총독의 관할권이라면 그를 그 지역의 총독에게 보내 재판을 받게 할 수도 있었다(본서 서론, '로마의 행정 및 군대 제도' 참조).
=====23:35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이었으므로벧릭스는 자기가 재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서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 '헤롯 궁'은 본래 헤롯 대왕(B.C. 37~A.D. 4)이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위해 가이사랴에 크게 지은 궁전이었는데 후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 및 본영으로 사용되었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될 때의 명칭은 '브라이도리온'이다(막 15:16). 대개의 고대 궁전이 그러하듯이 헤롯 궁도 요새의 역할을 하고 재판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지하에는 감옥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울을 이 지하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는지 아니면 따로 방을 하나주어 그곳에 머무르게 하면서 감시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로마 시민이었고 재판도 받지 않은 상태이고 루시아의 편지 내용이 바울의 무죄를 암시하였으므로(29절) 벧릭스는 바울을 죄수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바울은 가벼운 구금(拘禁)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