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그 때에 - 이야기의 무대가 다시 유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그 시점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때는 헤롯왕이 통치하던 시기이며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扶助)를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이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사울은 헤롯왕이 죽은 후에 방문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12:23-25). 연대기적으로는 A.D.44년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헤롯이 44년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헤롯이 44년에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Thomas Whitelaw).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이야기의 시점은 헤롯이 죽던 해 즉 A.D.44년 유월절 전후로 볼 수 있다(3절). 헤롯 왕이 - 여기서 언급된 헤롯 왕은 헤롯 대왕(B.C.37-B.C.4)의 손자인 아그립바 1세(Agrippa I, A.D.37-44)를 가르킨다. 그는 로마 황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으면서도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 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권을 받게 된 것은 A.D.41년 갈리굴라(Caligula)가 암살당한 후 글라우디오(Claudio)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도록 공헌한 데 대한 대가였다. 그는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펴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본장에서 역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Lenski). 손을 들어 - 이 말은 헤롯에 의하여 기독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으로서 박해에 대한 헤롯의 직접적인 개입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박해의 손을 뻗쳐'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4:3과 5:18에도 이와 유사한 문장이 언급되는데(* , 에페발론 타스 케이라스) 체포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절에서는 하반절과 2절에서 박해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나오므로 `체포하다'란 의미보다 `박해의 손을 뻗치다'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 중 몇 사람 - 교회, 즉 기독교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몇 사람이 박해의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몇 사람이라는 말이 교회 전체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2,3절에서 언급된 대로 야고보나 베드로와 같은 몇몇 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두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면 교회에 대한 헤롯의 박해가 전체 기독교인들에게 미쳤을 것이고 또한 그는 그중 몇 사람을 체포하여 죽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박해의 대상을 몇 사람으로 언급하여 헤롯이 유대의 교권주의자들에게 환심을 사기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 - 사도 중에서 첫 순교자로 언급되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다(마 4:@1;10:2). 그의 아버지 세베대는 어부이면서 선주(船主)였던 것으로 보인다(막 1:20;눅 5:11).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세 명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급하고(눅 9:53, 54) 이기적인 성격이었으므로(막 10:37) 예수는 그에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하였다(막 3:17). 그런데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1:13)나 예수의 동생 야고보(15:13;21:18;갈 1:19)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헤롯의 행동에 대해 유대인들이 매우 흡족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묘사된다.`기뻐하다'로 번역된 `아레스토스'(* )는 `기분이 좋은' 또는 `만족한'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적 형용사인데 헤롯의 행위가 유대인들을 크게 만족시켰다는 뜻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헤롯의 이같은 행위에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고 유대인들로부터 환심을 사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까지 옥에 가둔 헤롯의 행위는 백성들의 반응에 자심감을 얻어 광분한 독재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잡으로 할새 - 야고보의 참수형을 보고 기뻐하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고무되어 헤롯은 베드로까지 손을 뻗쳤다. 베드로가 제자들 중 우두머리 역할을 했으므로 헤롯은 그를 잡게 되면 유대 지도자들이 자기를 더욱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본 구절에서 두개의 동사형이 함께 나온다. 즉 개역 성경에는 정확하게 그 두 동사의 의미가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 따라 본 구절을 직역하면 `추가하여 체포하다'란 의미로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시 베드로를 체포하려 했다는 의미가 강조된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두 단어는 70인역에 나오는 히브리적 구문인데(창 4:2;8:12;18:29) 누가는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유대인들과 헤롯이 기독교를 박해한 공범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누가는 복음서에서와 같이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유대 민족으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복음서에서 누가는 유대의 지도자 계급, 즉 사두개파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대 대중들도 기독교의 박해에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때는 무교절이라 - 베드로가 체포되었던 시기가 무교절(無較節)기간임을 말하고 있는데(무교절에 관해서는 눅 22:1 주석 참조) 4절에서 언급된 유월절을 니산월 14일 저녁 유월절 식사로 제한 한다면 군사들이 베드로를 유월절이 지난 후에 백성들에게 내어 놓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체포 시점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시점을 전후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점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저녁 해지면서 15일이 시작되고 무교절의 첫날이 되며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월절을 무교절과 같
=====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 이로써 베드로는 세번째로 투옥되는 셈이다(4:3;5:18). 이로한 사도들의 모습은 예수가 걸어가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용기있게 따라가는 모습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하다. 군사(軍士) 넷씩인 네 패(牌) - 옥에 갇힌 베드로를 경비하는 군사들의 근무 편성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1) 베드로의 체포가 공권력에 의한 것임과 (2) 베드로가 중죄인으로 취급받았음을 암시한다. 혹자는 베드로를 경비하기 위해 편성된 군인이 한 조에 네명씩으로 구성되어 모두 네 개의 조로 짜여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루 24시간을 한 조가 6시간씩 지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Lenski). 이에 반해서 혹자는 밤에만 베드로를 지켰던 것으로 생각하여 세 시간씩 4교대로 보초를 섰을 것으로 단정한다(A.C.Hervey, 아사노중이찌). 이 외에 네일(Wiliam Neil)은 낮과 밤에 네 조가 각기 돌아가면서 3시간씩 4교대로 보초를 선 것으로 추측한다. 혹자는 이러한 주장 중 당시 로마에서 투옥된 죄수를 지키던 관습이 두번째 주장과 같기 때문에 이 견해를 지지한다(I.H.Marshall). 베드로가 천사에 의해 풀려난 사건이 밤중에 일어 났으므로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아무튼 두 명은 묶인 죄수 옆에서, 두 사람은 옥문 밖에서 지켰을 것으로 추측된다(6절). 한편 이같은 근무 편성은 평소의 옥문지기보다 많은 수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베드로가 탈옥한 전과가 있었으므로(5:19) 병력을 증가시켰을 것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Jacquier). 그러나 로마군에서는 4명이 한 조가 되어서 세 시간씩 근무를 했다는 점에서 볼 때(Haenchen)헤롯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도 그에 준했을 것으로 보는 편이 가장 무난하다. 유월절 후에 - 베드로를 백성 앞에서 공개 재판하기로 작정한 날로 언급된 유월절 축제는 눅 22:1에서 언급된 바처럼 무교절과 동일시 되어 무교병을 먹는 일주일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Alford, Haenchen, Hervey). 따라서 유월절 후라면 적어도 니산월 21일 후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유월절이 유월절 식사를 하는 니산월 14일 저녁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Lenski, Zahn, Ephraem Syrus). 본문을 통해서는 이 두가지 견해의 타당성 여부를 구분할 근거를 찾아낼 수 없으나 누가가 유월절이라는 단어를 3절의 무교절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여기의 `유월절 후'는 무교절이 끝나는 니산월 21일 후로 보는 것이
기 위해 베드로의 체포를 선전하고 이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12:5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베드로의 체포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다. (1) 성도들이 베드로의 체포를 교회의 위기로 판단했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이미 영향력있는 사도 야고보가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베드로 역시 처형될 것이라는 결론은 자명했다. 따라서 핵심적 지도자의 상실은 곧 교회의 위기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2) 교회의 단결을 볼 수 있다. 교회가 기도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되어 뭉쳤다는 뜻이다. 즉 교회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 흩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단결하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이는 고난 중에 있는 교회가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고난 중에 해야 될 교회의 본분 중에 기도하는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다. 따라서 당시 기독교인들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했다. 그러나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초능력만을 기대하는 현실도피적 신앙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불법적 힘에 맞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그것을 따른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4)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은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의 구성상 7-11절에서 나타난 기적적 사실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즉 교회의 기도는 기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구출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단결과 기도하는 힘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동기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누가는 이와 같은 교훈적 의미를 초대 교회에 시사해 주기 위해 본문의 이야기를 기록했을 것이다.
=====12:6
그 전날 밤에 -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의 본론이 시작되면서 또다시 이야기의 시점이 언급되고 있다.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기로 작정했던 그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4절에서 유월절 후라고만 언급하였기 때문에 유월절이 끝나는 바로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막연하게 유월절이 지난 어느 날을 가리키는지 정확지 않다. 그러나 문맥상 헤롯이 잡아내려 했다는 말을 볼 때 특정한 날이 지정되었음에 틀림없고 유월절 후라는 말은 유월절이 끝난 니산월 22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유대인의 대명절로서 그 기간 중에는 죄인에게 형을 집행하지 않는 관례(慣例)가 있었기 (마 26:5)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시점은 니산월 21일을 말하는 것인데 그들의 날짜 계산이 저녁 해질 무렵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미 유월절 기간이 끝나고 22일이 시작된 날 밤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자세한 것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 옥에 갇힌 베드로의 모습에서 두 가지 저자의 의도가 암시되어 있다. (1) 옥에 갇힌 베드로의 상황이 탈출이나 구출을 엄두도 못낼만큼 삼엄하고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베드로의 양 옆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병사 두 명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는 장면 묘사는 도저히 베드로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이 다음에 진술되는 베드로의 구출에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2) 베드로 자신도 탈출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그가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로 잘 알 수 있다(Bauernfeind). 이같은 장면에 대해서 베드로가 자신의 처형 날짜가 다가왔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전제하면서 베드로의 침착성과 경건성이 강조될 수도 있다.그러나 누가는 문맥상 강조점을 베드로가 탈출에 대한 의사도 없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함으로써 베드로를 탈출시킨 하나님의 능력에 두고 있다. 한편 베드로가 두 군사 사이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진술은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1) 베드로가 양 옆으로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 옆에서 두 군사가 지키고 있다. (2) 베드로를 묶고 있는 두 쇠사슬은 각각 양편의 군사와 함께 묶여 있다. 베드로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려 한 헤롯의 의도로 보아 두번째 해석이 더 타당하다.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 감방 안에서도 두 사람의 경비병이 있고 문 밖에서도 두
=====12:7
주의 사자 -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늘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누가는 `하나님의 사자'(10:3) 또는 단순히 `천사'(10:4,22;12:8)로도 묘사하고 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5절) 하나님의 응답을 암시하며 한편으로는 베드로의 구출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것을 의미한다. 광채가 조요(照耀)하며 - 환한 빛이 감방을 비추었는데(공동번역) 이같은 묘사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그 영광이 임함을 표현하는 전통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마 28:8;눅 2:9;24:4).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 천사는 베드로를 깨우기 위한 수단으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쳤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파타쏘'(* )는`친다', `때린다' 외에 `때려 눕힌다'(strike down) 또는 `죽인다'(slay) 등으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천사가 베드로에게 세찬 충격을 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암시해 주는 듯하다(A.T.Robertson).
=====12:8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 이 명령은 계속 강조되고 있는 사실 즉 베드로 자신에게는 탈출하려 하는 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베드로가 허리띠를 풀고 신까지 벗어놓고 있었다는 점에서 잘 증명된다. 당시의 복장은 반드시 허리띠를 띠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 , 산달리아)는 나무나 가죽으로 밑바닥을 만들어 가죽끈을 이용해서 발목에 메는 것이었으므로 벗었다가 신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본 구절은 편안한 상태에서 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천사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베드로의 모습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베드로의 구출이 계획되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12:9
참인줄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 여기서 언급된 `환상'은 바로 앞의 `참'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실제적으로 경험되는 현실이 아닌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Haenchen).이같은 묘사 역시 베드로에게는 스스로 탈출하려는 계획이나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의 구출 사건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12:10
성으로 통한 쇠문 절로 열리는지라 - 성으로 통하는 쇠문은 `거리로 통하는 철문'을 의미하는데 보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도시 또는 시내로 향한 것을 뜻한다. 또한 쇠로 된 문이란 매우 육중하고 함부로 열 수 없는 견고한 문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절로 열리는지라'는 말과 대조되어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해 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은 헤롯이 베드로를 성 중에서 가장 견고한 감옥에 구금(拘禁)했음을 의미한다.
=====12:11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알겠노라 - 이 표현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정신을 차렸다는 말은 곧이어 언급된 ` 알겠노라'와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자신을 구출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2) 9절에서 베드로가 자신이 구출되고 있는 사실을 환상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환상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본문의 전체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두번째 해석이 더 타당하다. 베드로는 꿈인지 생시인지 의아해 하면서 천사를 따라 나온 후 천사가 떠나버리자 자기가 감옥 바깥에 확실히 나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환상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사건의 전모에 대한 의미를 깨닫기 전에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심리 상태를 묘사해 준다. 베드로는 자신이 당한 일의 의미를 깨닫기 전에 먼저 놀라운 사건이 환상인지 실제인지 인식해야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자기가 왜 하나님에 의해 구출되어야 했는지 알게 되는 인식의 과정을 거쳤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 `오이다'(* )는 경험적인 지식에 주로 사용되는 `기노스코'(* )와는 달리 직관적 지식을 의미한다. 이는 베드로가 정신이 들면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12:12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 베드로가 감옥으로부터 구출되어 처음으로 찾아간 집을 언급하고 있는 본문은 마리아에게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가라는 요한에게 강조점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요한의 이름이 당시 독자들에게 지명도(知名度)가 높은 이름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이며(골 4:10) 바울과 바나바의 보조자이며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다. 이는 바울이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이 유대식 이름인 것과 동일하다. 그는 바울의 제1차 여행때 바나바와 바울과 동행하였는데(12:25;13:5) 2차 여행 때 그의 동행에 관한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게 되기도 한다(15:37,38). 또한 1:13이하에 언급되는 다락방이 본문과 동일한 장소라고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제자들이 수시로 모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 5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성도들은 베드로가 체포된 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베드로가 구출되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본절에는 미완료 동사와 분사형이 함께 사용되어 끊임없이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 강조되었다.
=====12:13
대문 - 혹자는 베드로가 찾은 이 집이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본체로 들어가는 큰 집이라고 주장한다(hAENCHEN). 그 근거는 `대문'에 해당하는 `퓔론'(* )이 주로 `행랑의 대문' 또는 `궁전의 큰 대문'을 의미한다는데에 있다. 마가의 다락방이 1:13에 언급된 것과 동일하다면 그 집은 상당히 큰 규모였을 것이며 정원도 지닌 집이었을 것이다. 한편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은 일상적일 수도 있으나 헤롯의 박해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계집 아이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디스케'는 `계집아이' 또는 `처녀' 외에 `하녀'도 의미한다. 이는 요 18:17에서 대제사장의 여종 곧 문 지키는 여종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용어다. 따라서 본절에서 `파이디스케'는 단순히 계집아이가 아니라 큰 집의 문간방에 거하면서 손님이 왔을 때 문을 열어 주는 `하녀'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영접하러 - 이 말의 헬라어 `휘파쿠오'는 주로 `칭송하다' 또는 `따르다'의 의미로 사용되며(롬 6:16;엡 6:5;골 3:22;살후 1:8) 간혹 `열다'로도 사용된다.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2:14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 로데가 얼굴을 보지 않고서 음성만 듣고 베드로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에 자주 왔음과 그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였음을 시사해 준다. 기뻐하며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 너무 기뻐서 문여는 것조차 잊고 안으로 달려가는 로데의 모습은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기적의 의외성(意外性)을 보여준다. 즉 그녀의 행동은 베드로가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잘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15절에서 로데의 증언을 듣고서 `미쳤다'고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당시 그 집에 모인 성도들은 사도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조차 투옥되어 핍박자의 손길이 자기들에게도 미치리라 생각하여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했었다. 그러던 차에 베드로가 나타났으니 기쁘기도 하며 놀랍기도 했을 것이다.
=====12:15
네가 미쳤다 - 그들의 반응은 로데의 진술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즉 그들은 베드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무시했다. 베드로가 투옥된 후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했던 그들의 모습과 본절에서의 반응이 매우 상반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반응이 불신앙에 근거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너무도 뜻밖의 소식을 접했기에 그들은 로데가 잘못 본것으로 여겨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힘써 말하되 - 이 표현은 성도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즉 로데가 자신의 진술이 진실됨을 강하게 강조하는 만큼 성도들의 부정적인 반응도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의 천사 - 이 말은 베드로를 지켜주는 수호 천사를 말하는 것으로 유대인들은 당시 각 개인을 지켜주는 수호 천사가 있다고 믿었다(창 48:15,16;단 3:28;6:22;마 18:10;히 1:14).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를 지켜주는 천사가 찾아와 베드로의 죽음을 전해주는 것으로 오해하였을 가능성도 있다(Lenski). 그들이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베드로 체포 직전에 야고보가 참수형(斬首形)을 당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인 있을 것이다.
=====12:16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 현재분사를 사용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장면묘사는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17절에 베드로가 급히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점(17절)과 병사들의 소동(18절)이 베드로에게 닥친 상황의 긴박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12:17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 베드로의 출현으로 사람들이 기쁨과 놀라움으로 흥분했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손을 흔들어' 조용히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은 자신의 구출이 헤롯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출될 당시는 한밤이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6절) 아직 아무도 베드로의 구출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자신의 출현이 알려져 또다시 체포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을 수 있다. 그는 오래 머물수 없는 위급한 상황임을 직시하고 곧 떠나야 할 마음 때문에 같이 기뻐할 겨를도 없이 먼저 자신의 구출 경위를 증언하기 위해 조용히 할 것을 지시했던 것이다.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 여기서 언급된 야고보가 정확히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12사도 중의 하나인 알패오 야고보라는 설도 있으나(Calvin,Bengel) 대체적으로 모든 주석가들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로 보고 있다(Alford, Meyer, Lumby, Knowling, Lenski, Hervey). 여기서 언급된 인물은 당시 지명도가 높은 유명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을 맡게 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적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15:13:21:18;고전 15:7;갈 1:19;2:9,12). 그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때로는 비난했던 적이 있으나(요 7:2-5) 그의 변화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14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초대 교회의 탁월한 지도자로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15:12-21).이와는 달리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다.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 베드로는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행선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 즉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은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과 클레멘트(Clement)의 설교에 근거하여 베드로의 행선지가 로마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세비우스의 기록 자체가 별로 신빙성이 없고 오히려 로마 교회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주장이 대두된 듯하다. 특히 이후에 베드로는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했으며(A.D.44)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베드로도 그곳에 있었다(갈 2:9). 따라서 베드로가 이후에 로마에 머물면서 로마교회를 일으켰다는 카톨릭 신학자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지지되는 지명은 안디옥으로 꼽히고 있다(Haenchen). 그러나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베드로는 헤롯이 죽은 후(12:23) 예루살렘 회의 때 돌아오게 된다(15:7).
=====12:18
날이 새매 -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마가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감으로써 일단락되고 여기서는 이야기의 뒷마무리가 묘사되고 있다. 날이 밝아오는 아침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베드로의 구출 사건은 간밤에 감쪽같이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은 구출 사건이 한밤중이었다면 왜 아침까지 군사들이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 군사들이 천사에 의해 깊은 잠에 빠졌거나 날이 샐 동안 베드로가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시점은 4-6절에서 언급된 바 있는 날 즉 헤롯이 베드로를 유대인들 앞에 끌어내려고 작정해 둔 날이었다. 적지 않게 소동하니 - 큰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적지 않게'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이는 본서에서만 나타나는 누가의 독특한 용법이다(15:2;17:4,12;19:23,24). 이는 소동하는 정도가 매우 심했음을 강조해 준다. 한편 `소동하니'란 말은 어떤 문제가 야기되어 그 문제로 인해 야단법석이 난 상황에 적용된다. 아마 군사들은 근무 교대 시간에 이르러 베드로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여 서로 놀라고 당황하였을 것이며 곧 그 사실을 헤롯에게 보고되었을 것이다. 이에 헤롯 궁전 안에는 큰 혼란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12:19
심문하고 - 여기서 언급된 법정 용어 `아나크리노'(* )는 `심문하다', `질문하다' 또는 `조사하다'는 뜻 외에 `심판하다'와 `책임을 묻다'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문책(問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죽이라 명하니라 - 베드로가 없어진 것에 대한 결과로 파수꾼들이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 여기서 두 가지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1) 베드로의 구출이 헤롯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11절에서 베드로를 구출하는 주님의 뜻이 헤롯을 실망케 하려는데 있음을 베드로가 깨닫는 장면을 통해 이미 암시되었다. (2) 베드로가 옥에 그대로 있었다면 야고보의 경우처럼 처형당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즉 헤롯이 파수꾼들을 처형시킬 정도였다면 그가 베드로를 체포한 것이 어떤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였음을 시사한다.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4Km 지점에 있는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로서 고넬료가 있었던 곳이며(10:1) 로마 총독의 관저(官邸)가 있는 곳으로 팔레스틴의 로마 행정 중심 도시이다. 헤롯이 갑자기 가이사랴로 내려간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헤롯이 가이사랴로 내려갔다는 것은 헤롯의 박해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시사한다. 가이사랴가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기는 하나 헤롯 안티파터(Antipater)에 의해 건축되었으므로, 헤롯 왕가는 그곳에 거할 장소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헤롯 아그립바(1세)는 기습된 베드로의 탈출을 경험하고 박해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는 유월절 절기가 끝난 상황이므로 그느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쉬고자 했을 것이다. 한편 가이사랴가 예루살렘보다 북서쪽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가다'로 표현된 것은 위치의 표현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기인한다. 즉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가면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반면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방향이 어디든지 상관없이 `내려간다'고 표현한다.
=====12:20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 헤롯은 보복 조처로 시돈과 두로 지방에 대해 아마 식량 공급을 중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시대 이후(왕상 5:9;스 3:7) 식량을 유대지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12: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 앞절과 연관하여 볼 때 아마도 이 `날'은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절단과 `평화 조약 체결'을 발표하는 날이었던 듯하다(Haenchen). 이와 달리 여러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글을 인용하여 이 날이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영국에서 돌아온 승리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경기일 둘째날이었다고 말한다(Lenski, Whitelaw, H. Marshall, Bruce). 요세푸스가 묘사한 당시의 장면은 21-23절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므로 이보다 더 정확한 근거가 없는 한 부정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주가가 다음절과 아무 연관이 없는 한절을 삽입시켰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헤롯은 백성들이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을 정하였던 것이고, 이와같은 축제일을 기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사절단이 헤롯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헤롯은 은으로 만든 빛나는 옷을 입었으며 그 옷이 햇빛에 빛나자 아첨꾼들이 그를 신으로 추대하여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백성을 효유(曉諭)한대 - `효유하다'란 말은 군중을 향해 연설을 한다는 의미다. 이는 어떤 공식적인 행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백성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아우투스'(* )는 직역하면 `그들에게'라고 해야 한다(새번역, 현대인의 성경,KJV, NASB, RSV,JB, LB). 그런데 지시대명사의 성격상 앞에서(20절) 언급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Haenchen). 하지만 22절에서 헤롯의 연설에 반응을 보인 것은 `군중'을 뜻하는 `데모스'(* )이다. 이는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축제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헤롯은 경기일 둘째날 모여든 모든 군중들을 향해 승전을 기념하는 연설을 했을 것이다.
=====12:22
이것은 신의 소리요 -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대개의 경우 모든 자연을 신으로 보기 때문에, 신들의 질서는 인간 세계와 밀접하며, 범상하지 않은 사람은 신으로, 기이하거나 거대한 자연 현상은 신적인 것으로 이해했다(14:11;28:6). 이와같은 범신론적인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신의 소리'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헤롯을 향해 `신의 소리'라고 외친 사람들을 대해 요세푸스는 막연히 `아첨꾼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첨꾼들을 유대인들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비록 헬라나 로마 세계에서 범신론이 퍼져 있기는 해도 유일신 신앙을 가진 유대교는 그것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함성은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 이 말은 헤롯이 군중들이 자신을 추켜 세우는 함성을 듣고 매우 만족해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루스드라에서 그 주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대할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으며 그들을 만류(挽留)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했던 것(14:8-18)과 매우 대조적이다. 주의 사자가 곧 치니 - 헤롯의 불경건을 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은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해 나타난 것과 같은 `주의 사자'였다. 그가 행한 것은 헤롯을 `쳤다'는 것으로 7절에서 잠들어 있는 베드로를 쳤을 때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물리적인 힘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 사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어떤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 요세푸스는 헤롯의 죽음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기를 헤롯이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인해 5일 후에 죽게 됐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생겨났다고 한다. 충이 먹어 - 헤롯이 죽어간 과정은 벌레에 먹히어 가는 과정이었다.어떻게 먹히게 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교회를 박해했던 헤롯의 비참한 최후를 강조하는 것이다.누가는 이같은 묘사를 통해 교회를 박해하는 자가 맞게 되는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줌으로써 독재자들이 기타 교권주의자들이 박해를 못하도록 경고하려 했던 것같다. 헤롯을 죽게 한 것이 주의 사자였다는 것은 박해자를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 헤롯의 비참한 최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본문은 기독교의 확장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이같은 형식의 문장은 6:7과 19:20에서도 나오는데 기독교의 거침없는 성장을 요약해 주고 있다.
=====12:25
부조(扶助)의 일을 마치고 - 본문은 문맥상 매우 이질적이다. 11:30과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사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베드로 구출 사건과 헤롯의 죽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베드로 사건과 헤롯의 죽음 이후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헌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기근을 디베료 율리우스 알렉산더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 발생한 것으로 기술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점은 A.D.46년경으로 추정된다(F.F.Bruce). 그렇지만 헤롯 아그립바가 A.D.44년 죽었으므로 그들의 예루살렘 방문은 베드로의 구출 사건과 2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장(前章)을 통해서 우리는 바나바와 바둘의 안디옥 교회에서의 사역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반면 본장에서는 이방 교회의 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예루
살렘 교회에 임한 파상적(波狀的) 핍박이 주요 내용으로 전개된다. 본장을 통해서 우
리는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 당시 정치권의 속성을 알 수 있거니와 그것은 헤롯 왕
의 교회 핍박 동기와 주변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알력들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본
장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시 위해서 교회와 국가의 본질적 속성에 관해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핍박의 구속사적 의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핍박은 그 시대에 따라 정도의 차
이는 있을지언정, 그 양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선지자나
의로운 성도들 역시 그 시대 사람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예수
역시 핍박을 받은 산증인이셨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를 주(主)로 영접했던 초대 교회와 성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
다. 본장에 언급된 핍박의 양상 또한 이전까지 초대 교회에 가해진 핍박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핍박과 달리 본장에 기록된 핍박은 구속사적 맥락에서 그 의의
를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에로의 복음 전파라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
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 전파(1:8)에 대해서 아직도 유대적 민족주
의 우월감에 심취되어 이방인 전도에 소극적인 예루살렘 교회를 하나님께서 흩어버리
신 것이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전도와 세계 복음화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예루살렘 교회에 임한 핍박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
용되었던 작은 가시와 같다고 하겠다.
(2) 양 기구(機構)의 근본적 속성. 양 기구라 함은 교회와 국가를 말한다. 본장의
내용은 양 기구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 내용
을 각각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가) 교회의 속성. 참된 교회와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그 진위(眞僞)가 판명된다.
교회의 기반은 무절제한 폭력과 살기 등등한 위협을 본질로 하는 세속적 정치 권력과
는 달리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에 근거한다.
본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교회의 속성을 여실히 반영해 주는 바, 그것은 간악
한 헤롯 왕의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일심으로 간구하는 모습에 발
견할 수 있다. 이처럼 핍박 속에서 기도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범적 실례는 제도적인
폭력과 구조악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현대 교회의 향방을 결정해 주는 지침이 된다고
하겠다. 실제로 심각한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 계층간의 불화, 불의한 권력의 무분
별한 폭력, 인권 유린 등과 같은 제도적인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교회들이 이를 방
어하기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삼고, 이를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경향들이 발생하는
데 이러한 것들이 교회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런 부류의 신학적 조류들은 어느 정도의 도덕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모
르지만, 성격적인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고로 세속적 권력
이 비록 불의한 폭력을 자행한다 하더라도, 그 해결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했던 예
루살렘 교회의 모범은 시대적 요청 앞에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귀한 열쇠를 제시해 준
다고 하겠다.
(나) 정치 권력의 속성. 대부분의 세속 정치의 양상은 하나님의 공의에 배치되는
바 본장에 등장하는 헤롯 왕의 대내외적인 통치 양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본장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대내적인 통치의 성격을 살펴보자. 그가 야고보
를 사형에 처했던 까닭은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본문으로 미루어 보건대, 유
대인의 환심을 얻기 위함이 주된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3절). 그가 평소부터 자신의
임명권자인 로마 황제와 통치 관할 대상인 유대인들 쌍방에게 신임을 얻고자 분주했음
을 감안할 때, 그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은 유대인들에 대하 환심의 제스처였음
이 분명하다. 이런 연유로 헤롯 왕은 야고보와 참형이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게되었을
때에, 그 여파를 베드로에게까지 확대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사실들은 헤롯 왕의
대내적 통치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바, 그의 공권력 행사는 자신의 권좌를 돈독히
할 요량에서 시행되었고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할 정치가의 양심을 폐기 처분한 행동
임을 시사한다.
둘째로, 대외적인 외교술을 들 수 있다. 본문에서 헤롯 왕의 외교 상대는 두로와 시
돈 사람들이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주요 상항(商港)이었다.
여기서는 헤롯 왕이 이들 지역의 사람들과 불화하게 된 연유가 밝혀지지 않지만, 추측
건대 수출을 통한 상업에 있어서 경쟁적인 관계로부터 비롯된 듯하다. 아무튼 헤롯 왕
은 그 결과 두로와 시돈 지방에 식량 공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당시 상업에만 의존했
던 이 지역 사람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헤롯의 이런 조치를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식량의 무기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상대 국가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기에, 인
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이를 시행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
나 헤롯 왕은 개인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주저없이 식량 공급을 차단하였던 것이다. 여
기에서도 우리는 정치 권력의 비정함과 비인격성을 발견하게 되거니와 이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공의도 국가적 이익 앞에 종종 무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헤롯의 식량 무기화 정책에 의해 총체적 위기에 놓였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 역
시 그 해결 방법에서 정도(正道)를 벗어났다. 그들은 헤롯 왕의 측근 중 정책에 영향
력을 미칠 수 있는 신하를 매수하여 화해를 청한 듯하다(20절). 다른 사본에 의하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집요한 공작적 외교는 일단의 성공을 보게 되어, 헤롯 왕의 노
여움을 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 왕의
환심을 사기위해 적지 않은 뇌물과 감언 이설을 동원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세속 정치
권력 속에 만연된 퇴폐 행각의 속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오늘날 '세상'과 '하나님 나라'라는 두 영역의 일원으로 살아가
는 성도들에게 올바른 처신의 길이 어떤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에서 정치
권력의 수장인 헤롯 왕은 하나님의 징벌에 의해 죽음을 당한 반면, 교회의 수장격인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구출되었던 것이다. 이 대조적 양상은 세상 권력에
성도들이 선택해야만 하는 길에 대한 분명한 제시가 된다고 하겠다.
한편 본장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1-11절;12-24;25절). 그 자세한 내용은 문
단 강해를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25절 한 절로 되어 있는 마지막 부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래 25절은 다음 장인 13장의 내용과 결부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신학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기에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단락으로 분류했음을 유의하기로 하자.
1. 질풍 노도와 같은 헤롯의 박해(12:1-11)
복음의 확장으로 기독교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자 헤롯 왕은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탄
압하기 시작하였다. 본 단락에서 등장하는 헤롯 왕은 예수의 탄생 때에 이스라엘의 모
든 유아를 살해했던 헤롯 대왕의 손자(눅 1:5) 헤롯 아그립바 1세(A.D.37-44)이다. 그
는 세례 요한을 희생의 제물로 삼았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이기도 하
다(눅 3:19). 이처럼 헤롯 왕가의 기독교에 대해서 언제나 적대적이었으며, 그들의 재
임 기간 중에 순교자의 피가 끊이질 않았다. 앞서 장 강해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헤롯
왕가의 최대 관심은 오직 권좌의 유지에 있었던 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은 헤롯의
통치에 있어 직.간접적 걸림돌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본 단락에
서 헤롯 왕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핍박했던 직접적인 동기를 고찰해 보기로 하
자. 이 고찰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줄것이다.
이때까지 예루살렘 교회의 성격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간주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
면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임 장소가 주로 회당이나 성전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인 스
스로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 역시
기독교인들의 반이방주의적 경향 때문에 공식적인 반대 표명을 유보했던 것으로 보인
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유보적 태도는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 이후에 돌변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베
드로의 친이방적 행위를 사후 승인한 데서 그 반감이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자신이 유대인이기를 자처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호감을 획득하기에
혈안이 된 헤롯 왕이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호재(好材)로 이용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헤롯 왕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를 감햄함으로써
민족주의적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3절). 역으로 이런 사실들은 박해
이전의 예루살렘 교회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 주는 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
의 보수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비록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은 베드로의 고넬료 회심
사건을 사후 인정했지만, 안디옥 교회에 비해(13:1-3) 이방인 전도에 있어서 덜 적극
적이었다. 고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는 복음 전도에 대한 그들의 보수성에 대하
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사건인 동시에 스데반의 순교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더 먼 지
역에 복음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박해는 기독교 역사상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바, 본 단락에
서는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야고보의 순교 유형이다. 순교는 박해중 가
장 큰 고난으로서, 세상에서는 파멸이지만, 하늘에서는 영광이다. 그래서 많은 신앙의
선진들은 순교의 현장에서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조차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죽
어갈 수 있었다. 본문은 야고보의 순교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본서 7장
의 스데반의 순교 사건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베드로의
고난 유형이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순교한 것과 달리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으로 인해
순교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이처럼 베드로의 구출은 히브리서 11:34의 언급대로 '칼
날을 피하기도'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베드로와 야고보의 상이한 고난의 형태를 목격하면서도 우리가 그 유형의 기준
점을 찾아 낼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이 두가지 양상의 수많은 고난
의 사건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성도들의 고난의 양상은 오직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안에서만 결정되어짐을 알 수 있다.
2. 박해자의 죽음과 복음의 흥왕(12:12-24)
본 단락의 주요한 내용은 헤롯 왕의 죽음과 복음의 확장이다. 우리는 본 단락의 주
요 내용을 통해서 본장에 기록된 헤롯의 적극적 핍박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허용되
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승리'와 '박해자의 파멸'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하
나님의 경륜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교회의 승리. 장 강해를 통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거니와 본문
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처형 기도(企圖)라는 풍
전 등화(風前燈火)와 같은 때를 당하여서도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만 의탁하는
아름다운 선례를 보여 주었다. 표면적으로 바라볼 때 예루살렘 교회가 위기 상황에 대
처한 방법인 기도(22절)는 현실을 외면한 무기력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해결 가능성이 다분한 문제는 동분 서주하면서 담판을 지으며, 해결 불
가능한 문제는 사기와 같은 권모 술수를 동원하거나, 이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자포자
기해 버리곤 했다. 즉 세상의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자신의 능력과 수고에 의존한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은 이와 반대다. 가능한 문제는 별 탈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
고, 불가능한 문제는 일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절대적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적 신앙의 자세로서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본질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이는 기도
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처형 직전의 베드로가 구출되는 기적을 일으켰거니와 이것은
교회와 성도의 본질이 합일했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이며, 동시에 헤
롯 와에 대한 교회의 승리인 것이다.
한편 본 단락에서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한편의 에피소드(episode)가 소개되는데,
그것은 베드로 구출 사건을 실제 상황으로믿지 않았던 성도들의 충격에서 비롯된다.
앞 단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드로는 사형수로서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엄격한 감시
하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베드로가 구출되기를 바라는
목적에서라기 보다는 다만 자기들의 지도자와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으로서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베드로의 구출 사건이 실제 상황으로 전개되었을 때 그들은 반신 반의하면서
사실을 즉시 수락하지 않는 믿음의 한계를 보였다. 그들의 믿음은 간구한 바대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아이인 로데의 믿음(13-15절)과는 대조적으로 지극히 피상적인 것
이었다. 비록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핍박자 헤롯 왕의 박해에 직면하여 일심으
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진의가 송두리째 번복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에피소드에는 신앙의 굳건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관념적인 믿음에 대한
일말의 경고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2) 박해자의 파멸. 초대 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에 대한 헤롯의 처형 기도 사건은
교회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교회의 승리는 단지 베드로의 구출에 그치지 않고, 박해
자들의 죽음이라는 결정적 국면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교회가 박해자 헤롯 왕이 죽기
를 직접 간구한 것은 아니겠지만 분면 헤롯의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이루
어진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23절). 특히 헤롯 왕은 자신의 통치술의 일환으로 예루살
렘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우상화하기를 즐겨하였다(22
절). 이런 사실들은 헤롯의 사단적 속성을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거니와 스스로 하나님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헤롯 왕에게 고통스런 죽음을 내린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 심
판이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승리'와 '박해자의 파멸'이라는 내용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진행
되는 본 단락은 '하나님의 말씀의 흥왕'(24절)이라는 결론에 달하게 된다. 이 결론적
인 구절은 본서의 전체적인 내용이 핵심 주제로서, 아무리 심각한 박해와 위협이 거세
게 진행된다고 하지라도, 복음은 겨자씨와 누룩과 같이 필연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압축해 주고 있다. 고로 '하나님 말씀의 흥왕'이라는 주제는 당시 초대 교회에
서 뿐만 아니라, 암울한 시대일수록 더욱 빛나는 말씀이 될 것이다.
* 베드로의 잠적. 본문에서 우리는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
던 성도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구출 경위를 설명하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린 사실을 읽
을 수 있다(17-19절). 이에 관해서는 주로 가이사랴 설, 안디옥 설, 그리고 로마 설
등이 있지만, 이 주장들은 거의 추측에 가까와 베드로의 정확한 행방은 알 길이 없다.
특히 로마 카톨릭 측에서는 이때 베드로가 곧장 로마로 가서 그곳에 교회를 세워 활동
했다고 추측을 하지만 거의 신빙성이 없다. 카톨릭 교회에서 베드로의 로마 설을 주장
하는 것은 그들 조직의 수장인 교황이 베드로의 직계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는 성경의 함구(緘口)하고 있는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하
기 보다는 베드로의 잠적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
다. 우리는 베드로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이방 전도에 그의 소극성에 유의해
본 바가 있다. 물론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파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민족주의적 편견을 완전히 씻어 버리지는 못하였다. 사실 베드
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에게서 파견된 예루살렘 성도들
의 도착 소식을 듣고서는, 서둘러 식사를 중단한 것으로바울에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
다(갈 2:11-21). 아직까지도 베드로에게 유대적 요소가 여전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적 분위기는 기세 등등했는데, 본서 15장에 의하면
그들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사실들은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의 첫열매를 수납하였다 하더라도 이
방인 전도에 관한한, 명백한 한계들을 보여준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복음 전파라는
구속사적 사명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보다 더 적합한 하나님
의 도구가 요청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의 잠적은 단지 헤롯 왕의 핍박에 대한
피신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역할 전환을 위한 퇴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본서
13장 이후 복음 사역의 주된 인물과 교회가 사도 바울과 안디옥 교회였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 같은 사실들은 오늘날 복음의 진리를 온전하게 증거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도 동
일하게 적요되는 바, 항상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준행할 수 있
도록 자신의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할 것을 교훈해 준다.
3. 수납된 이방인의 부조(12:25)
본 단락은 25절 한 절로 구성되는 매우 짧은 단락이지만 내용상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1) 결론적 성격. 25절의 상반절 내용, 즉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는
11:27-30의 결론에 해당한다. 이는 11장 끝 부분에 나오는 문단에서 '부조(扶助)가 갖
는 의미'라는 강해를 참조한다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상황에 의하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에 적지 않은 갈등이 상존해 있었다.
그중에서 특별한 쟁점이 되었던 사안은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여전히 주장하였던 예루
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이신 칭의(以信稱義)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바울이 개척한 이방인 교회에 돌아다니면서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구원
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했었다. 그 결과 그들의 주장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 대치되
었고 이로써 이방인 성도들은 미혹을 받게 되었다(갈 1:6;3:1-29).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온전치 못한 사도인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서는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비록 이들의 주장은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
로서 비난을 면키 어려웠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되고도
남았다. 이런 차제에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개척한 여러 이방 교회의 부조를 가지고 예
루살렘 교회에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가지고 가는 부조가 수납되도록 특별히 기도를 부탁하
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자신의 생명이 무사히 보전될 수 있도록 기
도를 부툭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 만큼 당시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간에 심
각한 갈등과 긴장이 있었음을 입증해 주는 실례가 된다(롬 15:31).
이런 맥락에서 본 25절 상반절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본서 11:27-30의 부
조를 보낼 때의 모든 염려와 갈등이 주(主) 안에서 해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
울이 이방 교회에 전했던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공인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바울
의 사도성을 확인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25절 상반절은 11:27-30의 결
론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2) 도입부적 성격. 25절의 후반부 즉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
아오니라'는 내용은 특별히 13장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이방 선교에 대한 서론적 언
급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과 복음의 진리성
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앞으로의 선교 사역에 더 많은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예루살렘에서 나올 때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와서 1차 선교 여행에 수종자로 동행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본 25절 하반절이 13장에서 전개되는 선교의 도입부에 해당함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사도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