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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블레셋 가드 왕의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다윗의 간구이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황망 중에 블레셋 땅으로 피했으나,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등 자신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실을 아는 아기스 왕의 신하들의 고발로 인하여(삼상 21:11), 감금될 지경에 이르렀었다.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 히브리 원문에는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다. 이것은 본 문구 이하가 다윗이 앞에서 부르짖었던 이유에 해당됨을 말해 준다. 그리고 '삼키려고'(* , 솨아프)는 원래 '헐떡거리다'의 뜻
으로서, 먹이를 찾아 덮치는 맹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동사이다(119:131;렘 14:6). 따라서 본 문구는다윗을 죽이려는 적극적 살의(殺意)를 뜻함이 분명하다. 한편 '사람'(* , 에노쉬)은 인간의 연약성을 하나님의 전능성과 대조
시켜 부각시킬 때 자주 사용된 단어이다(9:19;103:15;욥 4:17;7:17). 어쨌든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다만 '사람'이라고. 함으로써, (1)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자신을 대적하고
있으며, (2) 자신에 대한 구원의 손길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뻗쳐져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Calvin).


=====56:2
나의 원수 - '원수'(* , 쇼르르)는 '비틀다' 혹은 '함께 짓누르다'를 뜻하는(Gesenius) 동사 '솨라르'(*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대적하는 자'의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1) 다윗을 감금해 놓은 블레셋 사람, (2) 다윗으로 하여금
부득불 블레셋 땅으로 도주하게끔 만든 사울(삼상 26:19)을 아울러 가리킬 것이다(Calvin).
교만히(* , 마롬) - 이것의 원래적 의미는 '높이'이다. 이에 근거하여 영역 성경 KJV는 이를 '오 지고하신 분이여'(O thou most High)라고 번역하여, 이 말을 하나님께 대한 지칭으로 보았다. 그런가 하면 Jerusalem Bible은 이
를 3절과 연결시키면서 '나를 높이 드소서'(Raise me up)라는 명령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특성상 명사가 부사적 의미로 사용될수 있다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이 더 자연스럽다 하겠다(Kidner).(*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56:3,4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위해(危害)하려는 많은 원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인해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결심하고 있으며, 이러한 결심은 10, 11절에서도 다시 반복된다(118:6;히 13:6). 시인은 시
련이 닥쳐올수록 더욱더 여호와를 의뢰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이는 곧 고난과 환난을 가장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자세이다. 시인은 하나님과 사람간의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구분을 알고 있었다.
즉, 사람은 불원간(不遠間)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인 반면(38:3;78:39;창 6:3;사 40:6, 7), 주는 전능하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인 것이다(W. A. VanGemeren).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Calvin), 혹은 본 시편 기자가 곧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A. A. Anderson).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백성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인생들에 의해 결코 해함을 받지 않음을 가리키는 반문(反問)이다(118:6). 이는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과육을 아울
러 죽이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주님의 말씀과 상통한다.

=====56:5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 '내 말'은 다윗이 블레셋에 대해서 해칠 뜻이 전혀 없었음을 고백하는 변명이다(Calvin). 반면에 혹자는 다윗의 원수가 사울이라고 생각하여, '내말'이 사울에 대한 다윗의 충성을 다짐하는 고백을 뜻한다고 본다(Keil).그러나 본 시편의 직접적 배경을 고려할 때 칼빈(Calvin)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 같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블레셋의 신하들이 아기스 왕에 대한 다윗의 자기변호를 제멋대로 나쁜 의미로 해석하며 그릇된 추측을 한 것을 뜻한다.(*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56:6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 '엿보던'(* , 카와)은 '바라다' 혹은 '앙망하다'의 뜻으로서, 줄기차게 어떤 일 혹은 어떤 대상을 기대하거나 노리는 것을 가리킨다(욥 6:19;사 8:17, Keil). 한편 '...과 같이'(* , 아쉐르)는 '...
하였으므로'로 이해할 수 있다(삼상 28:18). 따라서 본 문구는 '저희가 내생명을 노렸으므로'로, 이해하기 쉽게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Kraus).
또 모여 숨어 내 종적(踪跡)을 살피나이다 - '모여'(* , 구르)는 원래 '길옆으로 벗어나다', '거주하다' 혹은 '움츠리다'의 뜻으로서 이 문맥에서는 '잠복하다'로 이해할수 있다(Weiser). 그리고 '숨어'(* , 차판)는 '가리다' 혹은 '
은폐하다'의 뜻이며, 본질적으로 앞의 '모여'와 거의 같은 뜻을 나타낸다. 이 같은 동의어의 반븍을 통하여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의 준동(蠢動)이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살피나이다'는 다윗에
대해 가드 왕에게 참소할 구실을 찾는 것을 가리킨다.


=====56:7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 이것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필연적임을 말한다(55:23). 즉, 죄악을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응을 받은 후에야 다윗에 대한 감시의 눈을 거둘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 '뭇 백성'(* , 아밈)은 다만 '백성들'의 뜻으로서, 블레셋 족속을 가리킨다. 그리고 '낮추소서'는 다윗을 대적하던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다윗을 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등 기고만장(氣高萬丈)했던 것과 관계가 있다(Calvin).


=====56:8
유리함(* , 노드) - '도망하다' 혹은 '애통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누드'(*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부득불한 사정에 의한 도피 생활을 가리킨다. 영역본 NIV는 이 명사를 '애통'(lament)로 번역하였다.
계수하셨으니(* , 사파르) - 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죄도 없는 다윗이 얼마나 많은 도피의 걸음을 걸었는지를 세셨음을 가리킨다(욥 31:4;마 10:30). 따라서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다윗을 '유리함'의 생황에서 건져
내실 것이라는 뜻을 암시한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 다윗의 '눈물'은 자신의 고통스런 유랑 생활을 지나쳐버리시지 말라는 뜻의 호소이자(Rawlinson), 고통을 기억하사 공의로운 보응을 내려주십사하는 간구이다. '병'(* , 노드)은 가죽으로 만
든 용기(容器) 혹은 가죽 부대를 가리킨다(C. B. Moll). 이처럼 상징적인 은유를 통해, 시인은 하나님이 각 개인의 처지를 일일이 감찰하시며 또 조만간에 공의로운 심판을 시행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A. A. Anderson).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 '주의 책'은 인간의 언행 심사를 낱낱이 기록한 책으로서 하나님의 상벌의 근거가 된다(말 3:16). 따라서 본 문구는, 다윗에 대한 구원의 섭리와 악인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필
연적으로 나타날 것임을 암시한다.


=====56:9
내가 아뢰는 날 - '아뢰는'(* , 카라)은 '부르다' 혹은 '부르짖다'의 뜻이다. 그래서 영역본 NIV는 이 문구를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때'(When I call for help)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줄 아나이다 - 만일 '원수'가 자신을 쫓던 데서 물러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때문인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자나 불신자들은 그같은 경우에, 그것을 자신의 능력
혹은 우연 때문으로 돌릴 것이다.

=====56:10,11
본 두 절의 내용은 4절에 대한 시적 반복이며(Goldingay). 본절 자체 내에서도 상, 하반절이 반복구 형태를 띤다. 이러한 반복은 시인이 도달한 결론의 의미를 한층 강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편 11절은 4
절 후반부와 거의 동일하다. 다만 '혈육 있는 사람'(* , 바사르)이 '사람'(* , 아담)으로 대체된 점만 다르다. 그러나 '육체', '살' 등으로 번역될수 있는 '바사르'는 썩어 없어지는 몸을 주로 지칭하며, '아담'이라는 단어
는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생의 연약성을 강조한다는 점(8:4;89:47;144:4;창 2:7;전 3:19;사 51:12)에서, 사실상 두 단어는 동의어로 볼 수 있다.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주께 드리리니 - 다윗은 9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피력한바 있었다. 이 같은 확신과 아울러 그는 하나님께 기꺼이 감사제를 드리겠노라고 서원했
던 것 같다. 본시는 탄식이나 간구 대신 승리에의 확신과 감사로써 끝나고 있다. 기자가 구원을 기대하면서 감사제를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한 것은(50:14;107:22;116:17) 구원에 대한 보답이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주께 대한
온전한 헌신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W.A. VanGemeren).

=====56:13
히브리어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다. 따라서 본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갚으려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 '건지셨음이라'(* , 히찰레타)는 '구원하다'를 뜻하는 '나찰'(* )의 환료형으로서 과거 시제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다윗이 본 시편을 기록했을 당시에 그는 여전히 원수의 손아귀
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같이 완료형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에 의한 자신의 구원이 완료되기나 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 '하나님 앞'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가리킨다. 본 시편을 기록할 당시,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감금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거기서 죽임을 당할 위협에 처해 있기까지 했다. 한편 '생명의 빛'은 하나님의 보호와 계시로 부터 격리된 '음부의 밤'과 반대되는 개념이다(Keil). 따라서 '생명의
빛에 다닌다'라는 말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가리킨다(116:8, 9;욥 33:30).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앞'과 '생명의 빛'은 의미상 동격(同格)이다.
실촉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붙들어주심(145:14)에 의하여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반문(反問)이다. 한편 '실족지'(* , 데히)는 '밀쳐 넘어뜨리다' 혹은 '쫓아내다'의 뜻이
있는 동사 '다하'(*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사면 초가(四面楚歌)와도 같은 위태롭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구원을 확신하는 굳센 믿음을 보여주는 본시는, 시편  분류상으로
는 개인적인 비탄시로 보는 것은 일반적이다.
  본시는 57편과 더불어 '한쌍의 시편'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거의  같은
말로 서두를 시작하며 비슷한 길이와 같은 주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제의
'다윗의 믹담시'라는 것은 '다윗의 작품 중에서 황금시'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시는
시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본시의 작시 배경은, 표제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 땅 가
드에 망명한 다윗이 블레셋인들에게 사로잡혀 위경에 처한 사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삼상 21:10-15). 이런 면에서 이 시는 34편과 긴밀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이러한 본시에는 다윗은 캄캄한 어둠이 깔린 칠흑과도 같은 답답한  현실에  봉착해
있는 사람답지 않게, 침착과 평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적극
적 믿음을 보여준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연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이다.  그러
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구체적 삶 가운데서의 역사하심을 믿는 자는 다윗과 같이  환
경을 초극하는 놀랍고도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히 11:38). 부언컨대, 다
윗이 이토록 늠름한 신앙의 용자(勇者)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생명의  빛'
으로 확실히 믿고 신뢰했기 때문이다(13절). 다윗은 한때 블레셋 군대를 대파(大破)한
직후에도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삼
하 22:29)라고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찬양의 노래를 읊은 바 있다.
  한편 본시는 편의상 1-4절과 5-11절의 두 부분으로 구분되며,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
릴 것을 서원하는 12, 13절은 일종의 부가절로 이해될 수 있다.  이중에서도  1-3절과
5-9절에는 간략한 비탄의 내용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고백이 각각 내포되어  잇고,  이
두 부분은 공히 담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후렴구를 가진다(4절, 10 ,11절). 이와  같은
구조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보다 자세히 상고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본시에서는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신앙적인 간구가  돋
보인다(1, 8-10절). 시인은 극심한 곤경 가운에서도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    확신중에
간구를 드린다. 사실 그때에 다윗이 당한 인간적 외로움과 공포는  엄청났다.  다윗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던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을 증거를 확
보하기 위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으며, 기회가 닿는 대로 다윗을 아기스 왕에
게 참소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어디로 가나 그들의 미행과 감시를 받아야 했다.  고국
을 떠나 타국 땅에 망명한 것만 하더라도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는데,  자신
의 생명을 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 항시 주위를 맴돌고 있는 처지는  참
으로 고통의 극치였을 것이다.
  한편 다윗의 생애는 그야말로 명암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삶이었다. 통일 이스라엘의
기틀을 닦고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우리에
게 익숙한 다윗의 영광스러운 모습이라면, 일개 목동의 신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들림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은 무수한 환난은 바로 그 삶의 어두운 부분의 일부인 것
이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성은 바로 그가 이와 같은 고난과 역경들을  반전(反轉)기킬
수 있는 굳센 믿음을 지녔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연약성과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을 아울러 깨닫고 있었다. 그는 사울에 의해서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죽음의 위험을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사울의 손에 죽었던가? 결코 그렇치  않
았다. 사울이 자신의 가까이서 시중들던 다윗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애썼지만(삼상
18:11;19:10-17, 20-24),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체험들을 통하여 불굴의 신앙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
나님만 의지하면 결국 구원될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1) 신자들은 현재 당하는 환난보다 더 어려운 곤경을
빠졌던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함으로써 그 고통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며(히  12:1),
(2) 신자들은 육신을 죽이는 사람보다 영혼까지도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해야 함(마 10:28)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로, 다윗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를 거듭 피력한다(2, 5, 6절). 당시 다윗
이 당했던 곤고한 형편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다윗은 그를  모
함하기 위한 블레셋 신하들의 음모를 지적한다(5절). 즉, 아기스의 신하들은 틈만  있
으면 다윗에 대하여 참소를 하여, 다윗이 아기스의 손에 처형당하도록 유도했다. 그렇
다고 해서 다윗에게 어떠한 변명의 기회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만일 다윗이 그들에
게라도 변명을 하려 했다면, 그들은 다윗의 변명을 왜곡하여 왕에 대한 참소의 재료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밤낮으로 아기스의 신하들이나 그  하수인들에  의해서
감시를 당하였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감시한 것은, 다윗을 해칠 결정적 기회를
포착하고, 다윗을 참소할 빌미를 획득하려는 등의 목적에서였다(6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윗에 대한 모해 공작은 그 도(度)를 더해갔다. 그들이 이
토록 다윗을 눈 속에 든 가시와도 같이 여겼던 것은, 혹시 다윗이 아기스 왕의 마음에
들어 중용(重用)될까봐서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다윗은 사울의 미움을 사서    쫓겨다니
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추측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한편 다윗이 본시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였거니와, 그 어느 것
못지않게 참기 힘들었던 것은, 무고한 자를 살해하려는 악인들이 활개를 치는 사실 그
자체였다고도 볼 수 있게다. 거듭되는 시련과 도피의 와중에서 다윗은 악인들의  혈기
등등함과 오만 방자함을 뼈저리게 경험하였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악
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기를 염원하였을 것이다(7절).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하나님을 동행하고자 하는 자는 자신에게  닥쳐
오는 핍박과 시련을 그저 우연의 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을 원하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던 이 같은 고통들을 하나님께 아뢴다.  물
론 하나님은 다윗의 어려움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
님의 도움을 구하는 직접적 간구 이회에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도  중요함
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면, 신자들을 기도케 한 그 사정도  듣
고 싶어하실 것임에 분명하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바로
이 같은 인격적인 기도가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온전
히 아뢰는(삼상 1:15)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는 (1)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과
더 친밀해지기를 원하시며(마 6:6), (2)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위한  중요
한 통로임(눅 1:10)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로 본시에서는 기도 응답을 확신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다윗의  선취적(先取
的) 신앙이 돋보인다(9, 12, 13절).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것을 확신하
며, 이에 따라 자신이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할지에 대하여 다짐한다.  사
실 다윗의 이러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오히려  아
기스의 신하들은 점점 더 세게 다윗의 목을 졸라대고 있었다. 비록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원을 요청했지만(1-4절), 하나님의 응답은 그 즉시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응답하시겠다는 어던 징조도 전혀 보여주지 않으셨다. 따라서 현상적
으로 볼 때는, 다윗의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였다. 사실, 자신이 구원
될 수 있다는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
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러면, 그러한 확신을 가능케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다윗은 하나님이 어던 분이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는 하나님은 신자에 대한 약속을 굳게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민 23:19). 또한 다윗은 과거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참모습이다.  자신과 관계된 소망스런 서광(瑞光)이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비취기 때문에 자신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믿음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현재적 상황의 호악(好惡)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를 전망하는 것이 가히 참믿음인  것이다(히 11:1이하).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1) 진정한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의  실질적 존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이며(히 11:1), (2) 한 신자가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진정성은 환난의 시금석을 통해서 판정될 수 있음(마 13:21)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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