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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나와 다투는 자 - 제목이 분명히 제시하고 있듯이 본 시의 저자는 다윗이며 그 내용은 다윗이 자신의 대적들에 대하여 읊은 일종의 저주시라고 할 수 있다. 본 시편에 등장하는 가윗의 대적이란 사울이나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 혹은 그의 음모에 공모하였던 하나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삼상 24:15에 근거하여 여기 나오는 다윗의 대적을 사울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곳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과 사울사이에 재판장이 되셔서 옳고 그름을 판결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그때 사용된 `판결하다'는 법정 용어가 본절에 나오는 `다투다'는 단어와 유사하기에 이 사실을 근거로 들어 다윗의 대적을 사술로 보는 것이다(두 용어의 유사 의미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주석을 참조). 그러나 이 견해는 신빙성이 없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본 시편에는 대적에 대한 다윗의 비통해 함, 원한등을 엿볼수 있게 하는 구절들이 있는데(4, 7, 8절 등)다윗의 생애를 살펴볼 때 그가 사울에 대해 어떤 비통한 감정을 갖거나 그것을 표출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 대한 개인적 악감정을 표출하는 것과 사울을 위시한 불의한 핍박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 이 대적을 사울로 보는 것도 무리는 없을 줄로 생각된다. 다투시고...싸우소서 - `다투시고'에 해당하는 원어는 `리바흐'(* )인데 이 말은 법정적 용어이므로 `변론 하시고'로 번역될 수 있다(A. Clarke). 그리고 `싸우소서'를 가리키는 원어 `르함'(* )은 전쟁 용어로 개역 성경을 그대로 따라서 번역하거나 `전투하소서'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용어는 대체로 수동태로 사용되는 단어이나 여기서는 능동태로 쓰이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Perowne, Delitzsch). 즉, 저자는 마치 자신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탄원하듯 본 시롤 시작하고 있으며 능동태의 은유적인 전쟁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대적들에 대한 변론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되 강한 주도권을 가지고 힘있게 밀어붙여 완승을 거두실 것을 소 원하고 있다. 한편, 시(詩)에 있어서의 이러한 표현 기법은 고대(古代) 전승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전다(24:8; cnf 15:3, Weiser).

=====35: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 방패는 `마겐'(* )으로 `작은 방패'를 뜻하고, 손 방패는 `친나'(* )로서 `온몸을 덮을 수 있는 큰 방패'를 뜻한다. 하나님을 인간 장수(將帥)가 사용하는 작고 큰 방패를 사용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신인 동형론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법은 이미 모세 오경에서 자주 사용되어졌었다. 한편, 이러한 신인 동형론적인 기법은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하려는 목적 때문에 사용되었다(출 15:3; 신 32:41).

=====35:3
길을 막으시고 - 여기의 `길'은 원문에 없는 것이며, `막으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고르'는 문 따위를 `닫다', `걸어 잠그다'를 뜻한다. 본 용어의 용례에 의하면 본 표현의 의미는 박해하는 자들의 방편을 무색케 하며, 효과가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Barnes).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해 달라는 것, 즉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보증해 달라는 뜻이다. 성도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 주는 이와 같은 확신울 원하며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는 자에게 제공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개인에 대한 전 구원 계획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Barnes).


=====35:4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 본절에서 부터 8절까지에서 저자는 자신과 이스라엘 전체 운명에 치명타를 가하려고 하는 반역자들 위에 수치스러운 패배가 임하기를 저주하고 있다.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 저자 자신을 모해(謀害)하려는 반역자들의 계획을 방해하셔서 그 계획을 좌절시킴으로써 그들이 실망하고 수치를 당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미루어볼 때 결국 본절에는 동일 개념의 대구가 반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5:5
바람 앞에 겨 - 악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표현은 돕는 자가 없는 상태와 무가치한 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A.A. Anderson, J. A. Alexander). 한편, 1편에서도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였다(1:4).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 천사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쫓아내고 흩어지게 해달라는 뜻이다(34:7). 성경에서 천사는 흔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악한 자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고용된 중개자로 묘사되고 있다(삼하 8:16; 왕하 19:35; 대상 21:12,30; 사 37:36).

=====35:6
어둡고 - 먼저 저자는 대적의 길이 암흑이 되게 해달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앞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앞에 무엇이 있고 어떠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체 밤길을 방황하는 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Barnes).
미끄럽게 하시고 - `미끄럽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할라코트'(* )인데 여기서는 어미의 중복형인 `할라클라코트'(* )쓰여 그 의미가 강조되었다 따라서 `굉장히 미끄럽게 하시고'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하다고 하겠다. 앞 구절에서 대적의 운명은 밤길을 헤메는 것에 비유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발고 있는 땅의 형편이 굉장히 미끄럽다는 악조건이 하나 더 추가됨으로써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좀더 분명히 실감케 된다.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다르게 하소서 -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것과 같으며 그 땅이 굉장히 미끄럽기까지 한데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악인들의 파멸 작업을 마무리 하기 위하여 그들을 추격하는 천사의 이미지는 대적의 완전한 멸망을 상상케 한다(J. A. Al exander).

=====35:7
무고히...무고히 - `이유없이' 본절에서 두 번 그리고 19절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있는 이 단어는. 11-18절에서 좀 더 충분하게 표출되고 있는 다윗의 고통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부당한, 그리고 애매한 고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죄없이 고난 당하신 메시야를 연상케 된다(벧전 2:19). 그렇다면 본 시편을 쓸 때 다윗은 미래에 성육신하실 메시야를염두에 두지 않았나 하는 추론까지 가능케 되며, 그 경우 본 시도 메시야 시편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견을 제기해 본다(D. Kidner).
그믈을 웅덩이에 숨기며 - `그물을 웅덩이에'(* , 솨하트 리슈탐)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들 그물의 웅덩이'인데 이것은 짐승을 잡기 위하여 그 안에 그물을 깔고 그위에는 무엇으로 살짝 덮은 웅덩이를 가리킨다. `함정' 역시 `솨하트' (* )로 웅덩이와 동일한 것이다(Perowne).

=====35:8
졸지에 - `알지 못하는 때에'. 멸망이 생각지도 못했고 예상하지도 못한 때에 대적에게 임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 여기서 다윗은 그의 대적들이 그를 모해하기 위하여 계획했었던 바가 그들에게 임할 것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7:15, 16 주석을 참조하라.

=====35: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 4-8절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의 몰락을 갈구했던 다윗은 돌연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시편 기자를 비롯한 구약성경의 저자들이 표현하는 시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들은 역경으로 인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역경 극복을 간구하는 탄원 중에서도 종국적 구원을 찬앙하곤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다윗이 경험하였던 것보다 더 큰위기를 만났었던 모세도 `하나님 같은 이가 또 어디 있으리'라는 찬양을 하나님께 올린 바 있고(출 15:11), 신약의 바울 또한 자포자기의 순간에 죽음으로 부터의 부활을 기억함으로써 소망을 회복한 기록이 있다(고후 1:8-10). 한편, `내 영혼이'라는 표현은 `나', `나 자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볼 수 있는 표현으로(6:2, 3) `나의 뼈'(10절)와 함께 사용된다. 이것은 진술한 사실에 대한 저자 자신의 확신을 보여주는 시의 표현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D. Kidner).

=====35: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 `벼'를 `영혼'과 동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 이는 전인(全人)을 강조하는 저자 자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Briggs, Kidner), 51:8의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를 근거로 해서 볼때 하나님의 구원 하심을 생각하니 고통과 위험 가운데서 부서지고 어그러진 것 같았던 뼈들이 다시 힘이 생기고 기쁘다는 의미의 `내 모든 뼈'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Barnes). 이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을 취해도 무리는 없다. 그것은 두 해석이 다 성경적 근거 구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찬양의 노래이다 성경 저자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선조들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다윗의 선조인 모세는 이미 총체적인 의미의 구원의 주(主)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분만이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밝힌 바 있는데(출 15:11), 본절의 다윗은 이러한 모세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본 표현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렀을 것이 틀림없다. 또한 다윗의 후대 사람인 이사야의글(사 40:18)에서도 우리는 그와 유사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35:11
불의한 증인 -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마스'(* )로 `사악하고 불법적인 증인'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가 "너는 허망한 풍설(風說)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 23:1)라는 본문에 동일하게 사용됨을 보아 `불의한 증인'이란 근거도 없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그 대상을 궁지에 몰아넣는 둘 이상의 불법한 거짓 증인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Anderson, Perowne). 알지 못하는 일...힐문(詰問)하며 - `알지 못하는 일' 이란 마음에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전혀 지식이 없는 어떤 일을 말한다. 또한`'힐문'은 재판 용어로 검사가 피고인에게 `묻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이 표현들에서 다윗의 대적들이 다윗이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았느냐고 거칠게 묻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데 사실 다윗은 그 생애에 있어서 거짓된 고소에 의해 많은 고통을 당했었다(삼상 24:9).

=====35:12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나의 영혼이 ...을잃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 속에서 홀로라는 저자의 외로움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친구 없는 자들을 돕고 고통 당하는 자를 위로하기를 애썼던, 그리고 남을 위하여 진실되게 기도하였던 자신을 모두가 버렸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Perowne).

=====35:13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 이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째는 `나의 머리를 나의 가슴에 박고 기도하였다'라는 것으로 기도의 자세에 초점을 맡추는 해석인데 이것은 왕상 18:42을 근거로한다(Notscher, Kraus, De Wet te). 둘째는 `자신을 위한 간구와 동일한 내용으로 대적을 위해 간구하였다'라는 해석이다(Jarchi). 셋째는 `대적을 위하여 행한 기도가 결국에는 자신의 유익으로 돌아왔다'는 것으로 이것은 이웃을 향해 복을 빌었을 때 그 이웃이 그것을 거절하면 기도자에게 그 복이 돌아온다는 신약의 가르침에 그 근거를 둔다(사 10:13; 눅 10:6, Alex ander). 그리고 넷째는 `대적들의 고통을 생각하므로 기도가 고뇌의 짐에 눌리듯 시행되었다'는 해석이다. 이 네 번째 해석이 그 가운데서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Bar nes). 물론 세 번째 해석도 매우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으나 기도의 동기가 결국에는 이기적이었다는 인상을 주는 듯하므로 타당치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대적의 아픔, 고통을 자신의 아픔, 고통으로 알고 기도하는 기도자의 마음이 강조되고 있는 문맥을 중시할 때 네 번째 해석은 다윗의 심경을 잘 그리고 있는 것 같다.

=====35:14
굽히고 슬퍼하기를 - `슬러 하기를'은 `코테르'(* )로서 슬픔의 외적인 표시 , 예를들면 깎지 않은 수염, 씻지 않은 얼굴 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이것들은 근동 지역에서 애곡하는 모습의 외면적인 특징들이었다(읍 1:20, Perowner).

=====35:15
비류 - 70인역(LXX), 시리아역 그리고 벌게이트역(Vulgate)등은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케'(* )를 `저주스러운 것', `두통거리'(* , 마스티게스)로 번역하고있다. 이들 역본을 따르면 이 용어는 `낮은 사람', `천한사람', `사회의 버림을 받은 자'등이 되겠다(Barnes). 그러나 이러한 번역들은 본 시의 전체 문맥에 어올리지 않아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본 단어는 `나카'(* ), 즉 `두들기다', `때리다', `치다'에서 유래한 용어로 `때리는 자', `치는 자'등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번역은 본 문맥과도 잘 어올려 전자의 해석이 타당치 않음을 잘 보여준다(Perowne). 그런데 여기의 때리고, 치는 수단은 `혀'인데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본다면 `비류'란 혀로 남을 중상하고, 욕하고, 모욕하는 자로 보는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마지 아니하도다 - 멈추지 아니하였다는 뜻. 다윗의 대적들의 중상모략 행위는 단회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쉬지 않는 계속적 행동이었다.

=====35:16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 여기의 `망령되이'에 해당하는 원어 `하네프'(* )는 `불경스러운', `경건하지 못한', `파렴치한'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만취된 술 좌석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조롱하는 자'란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할 수 없는 구절이다. `조롱하는 자'에 해당하는 혀브리어 '라에그' (* )는 `더듬더듬 하는자', `외국말을 하는자', 더 나아가서 `농담하는자', `조롱하는 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마오그'(* )는 원래 `빵, 케이크 한 덩이'의 뜻으로 빵이나 떡 등을 차려 놓은 식탁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서 고려할 때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란 좋은 식사를 돕기 위하여 부자의 식탁 주위를 서성거리며 농담을 들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근동의 부자들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갖기 위하여 돈을주고 농담꾼, 익살꾼을 고용하여 자신들이 식사하는 동안 식탁주위에서 그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게 하였는데 농담꾼들은 때로 서툰 외국말을 흉내 내거나 저질의 음담 패설(淫談悖說)등으로 부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곤 하였다고 한다(Perowne). 아무튼 이 구절은 다윗의 대적들이 음모를 꾸미는 과정에서 주모자에게 그 음모가 성공하리라는 등의 아부성의 발언을 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를 갈도다 -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분노 혹은 진노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욥 169; 마 8:12; 13:42, 50; 22:13; 24:51; 25:30; 눅 13:28). 즉, 이것은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그 과정에서 때로 분노하기도 하면서 음모의 성공을 기약했던 것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35:17
유잃다 것 - `사랑하는 것'(KJV, darling; NIV, precious)으로 번역된 동일 구절의 `내 영혼'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이 단어는 22:20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70인역(LXX )에서도 `나의 하나뿐인 것'(* , 텐 모노게네 무)으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11:34) 이 용어를 유일할 뿐 아니라 사랑스럽고 귀한 `생명'으로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35:18
대회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 이는 9, 10절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구절로 비애의 탄원에 이어 분명한 구원을 내다보고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다. 더구나 여기서는 `교회' (* , 에클레시아)가운데서 찬양을 드리고 있는데 이것은 개인의 경험을 다수, 단체의 경험으로 확대하는, 즉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경험을 더욱 중시하는 본 시편 저자의 의중을 잘 그리고 있는 표현법이다(18:49; 22:25).

=====35:19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 - `무리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케르'(* )는 `어떤 정당한 이유가 없이'라는 뜻이며 바로 이어지고 있는 `무고히'와 분명한 평행을 이루는 단어이다. 즉, 다윗은 본절에서 그의 대적들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자신을 대적한다고 토로하는 것이다(마 5:11). 다윗은 그가 그들에게 어떤 잘못된 일을 한 적이 없음을 의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기에 본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기만을 바라는 기도로 볼 수 있다(Barnes).
눈짓하지 - 원어의 일차적인 뜻은 `자르다', `산산이 부수다'인데 동일한 표현의 잠 16:30을 고려할 때 이는 남에게 해악,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다(Gesenius). 그러나 동일 구절의 `기뻐하지'가 이 단어와 평행임을 생각할 때 대적이 숭리하여 기쁨의 눈짓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그들로 하여금 패배케 해 달라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5:20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 다윗의 대적들이 이웃과 좋은 말로 대화하는 것을, 혹은주위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들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자들을 싸움장이라고 부른다(Barnes).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 - `평안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게아'(* )로서 문자적인 뜻으로는 `겁많은', `소심한'이다(사 28:12; 렘 6:16). 따라서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란 일차적으로 소극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Barnes). 그러나 본 문맥과 이 원어의 의미 범주(conn otation)를 고려할 때 `다른 사람과 다투고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는 기질의 사람들'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이런 류의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35:21
하하 - 원어는 `헤아흐'(* )로서 기쁨의 탄성인데 특히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고 음흉하게 즐거워하는 탄성이다(겔 25:3, Keil & Delitzsch). 뿐만 아니라 이는 사악한 승리자의 탄성이기도 하다(10:13; 28:3). 더 나아가서 이 탄성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께 온갖 조롱을 퍼부으며 희희낙락했던 자들의 탄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눅 2 3:35-37).

=====35:22
잠잠하지 마옵솟서 - 말하자면 대적들을 꾸짖고 징벌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호소라고 볼 수 있다(Jamison, Fausset, Brown).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꼭 개입하셔야 할 고통스러운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개입하지 않으실 때 터뜨릴 수 있는 탄성으로 그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10:1). 주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라고 외치셨는데, 이 탄성은 시편의 예언(22편)을 응하게 하는 탄성일 뿐 아니라 고난의절정에 신성(神性)을 입으신 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성(人性)을 입으신 인간이셨던 그분이 느끼셨던 절망감, 외로뭉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탄성이기도 한 것이다.

=====35:23
떨치고 깨셔서 - 마치 잠에서 깨어 일어나듯 빨리 일어나라는 것,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간인 양 표현하는 이러한 기법을 신인 동형론이라고 부른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기법을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대개 절박하게 하나님의 구원, 도우심이 요구되는 때에 이러한 표현을 했다(3:7; 44:23).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頌辭)를 다스리소서 -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자신의 송사를 처리하여 달라는 청원. 하나님은 당신의 율법을 따라 땅위의 모든 재판관을 공의롭게 다스리겠노라고 선언하신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의(義)의 친구가 되시겠다고도 선언하셨는데 여기서 다윗은 바로 그 선언에 의존하여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7:6; 94:1, 2).

=====35:24
주의 공의(公醫)대로 - 말하자면 이는 `바르고 의롭게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 혹은 그의 의로우심은 공평과 정의에 대한 최고의 표준인데 본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공격을 일삼는 자들을 억제케 하고 자신을 위해 의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그 품성을 명백히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가 옳고 바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품성을 따라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에 개입하셔서 판결해 주실 것을 기꺼이 요청할 수 있다. 이와같이 우리와 다론 사람 사이의 문제의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그 문제를 청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인 경우 우리는 그분의 공의에 호소할 수 없고 단지 그의 긍휼을 소망할 따름이다. 따라서 어떤 고통이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문제인지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인지를 분별하는 일은 중요하다(Barnes). 저희로...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 대적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게, 혹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공할 경우 그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이 옳았기 때문에 거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19절과 비교하라).

=====35:25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 문자적인 뜻은 `우리의 즐거움, 우리의 소망이다' 로 원했던 것을 얻었을 때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개역 성경의 번역은 무난한 편이다.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 여기의 `삼켰다'(* , 발라)는완 전한 멸망, 파멸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제사장도 아니면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행하려 했던 고라, 다단 그리고 아비람은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빠져 땅에 의해 삼키움을 당하고 말았는데(민 16:31-35) 그때에도 동일하게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즉, 여기서 다윗은 자선의 대적이 자신을 완전히 멸망시켰다고 기뻐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35:26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 - 여기서 `의'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체테크'(* )는 일차적으로 `공의', `의로움'으로 해석되나 문맥에 걸맞는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문맥이 대적의 방해로 인한 하나님과 저자 사이의 혼란한 삶, 관계를 다루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방해 받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의 회복'으로 해석함이 바람직하다 하겠다(Kraus). 그러한 회복을 원하는 자라면 그와 동일한 운명에 처해 있던 그의 추종자들임이 분명하다(34:5 주석 참조).
기꺼이 부르고 - 문자적인 뜻은 `기쁨으로 인하여 소리를 지르게 해달라'이다. 이제 자신을 구원하셔서 자신의 추종자를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 편이시며 간섭 하셔서 당신의 자비로운 역사를 행하시는 분임을 목도케 하심으로써 기뻐하게 해달라는 말이다(Barnes).

=====35:27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 - 여기서 `의'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체데크'(* )는 일차적으로 `공의', `의로움'으로 해석되나 문맥에 걸맞는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문맥에 걸맞는 정확한 번역은 아닌다. 문맥이 대적의 방해로 인한 하나님과 저자 사이의혼란한 삶,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방해받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의 회복'으로 해석함이 바람직하다 하겠다(Kraus). 그러한 회복을 원하는 자라면 그와 동일한 운명에 처해 있던 그의 추종자들임이 분명하다(34: 5 주석 참조).
기꺼이 부르고 - 문자적인 뜻은 `기쁨으로 인하여 소리를 지르게 해 달라'이다. 이제 자신을 구원하셔서 자신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 편이시며 간섭하셔서 당신의 자비로운 역사를 행하시는 분임을 목도케 하심으로써 기뻐하게 해달라는 말이다(Barnes).

=====35:28
주의 의를 말하며 - `말하며'에 해당하는 원어 `하가'(* )는 `으르렁대다', `속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내다', `말하다' `감개(感慨) 깊게 말하다'등의 뜻이 있다 그런데 본절은 원수의 음모를 수포로 돌려서 평안한 삶을 회복케 하실 하나님의 의를 이야기하는 대목이므로 `감개 깊게, 되새김질 하듯 하나님의 의를 말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하다 하겠다. 한편, `감개 깊게 말하다'라는 말은 시편(2편)에서만 쓰는 표현이다(#$} 7) #> 땁)1쐬 } 5 ) 사 31 } 4, 78).
찬송하리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힐라'(* )는 `힐렐'(* )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문자 그대로 찬양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힐렐'의 두 번째 자음( )에 강조형을 나타내는 점(5)이 찍혀 있다. 이것은 단어가 나타내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인데 찬양을 강조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찬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어지는, 개역 성경에는 `종일'로 되어 있는 `욤'(* ), 한 날 은 문자 그대로의 '하루'가 아니라 그이상의 `오랜 동안'으로 해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시는 대적들의 증오와 핍박으로 인하여 신음하는 다윗의 비참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는 개인적 호소문이다. 악인의 실상과 다윗의 고통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는  본시
는 (1) 대적들의 음모로부터 구원받기를 간구하는 전반부(1-10절), (2) 부당하게 고통
당하는 다윗의 비탄이 생생하게 부가되고 잇는 중반부(11-18절), (3) 배은 망덕한  적
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요청하는 후반부(19-2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세 부분은 모두 구원의 호소로 시작하여 확신을 소유한 후 감사의 맹세로  귀결된
다. 시 전체에는 영혼의 깊은 고뇌와 슬픔이 짙게 배어 잇으며 동시에 여호와를  신뢰
함으로써 주어지는 평온과 확신이 드러나 있다.
  본시를 쓸 때의 역사적 정황은 다윗이 사울에 의해 박해받던 시기로 추정된다. 다윗
은 자신을 박해하는 불경건한 사울과 그 추종자들 때문에 심각한 고통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아픔 속에서 다윗은 원수들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일관된 부르짖음을    토로하였
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시인의 고통이 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들은  13-15
절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의 전반적이 내용과 '병들
었다'는 말이 고통을 느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잇음을 볼 때 본 시편이 다윗의 환난
속에서 저술되었다는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한편 본 시편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비탄시' 혹은 '기도시'로 알려져 있으나,  원
수들의 진멸을 호소하는 '저주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
대하여 공의로 심판하시므로 의인들이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27절).
다윗은 의인들이 악인의 간사한 술책에 빠져 심한 어려움을 겪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드리 하나님을 버리고 실족하게 될까 매우걱정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게
서 직접 출정하시어서 악의 세력들으 완전히 궤멸시키시고 진멸하실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풀기 어려운 신학적 문제에 직면한다. 본시에 언급된  저주와
복수에 대한 기도는 신약의 '원수에 대한 사랑'의 교훈(마 5:44)과 모순되지  않는가?
우리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1)다윗은 신정국  이스라
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요청한 것이지 결코 개인적인 증오심을 드
러낸 것은 아니다. (2) 다우시은 개인적 원수에 대해  관용과  사랑을  베풀었다(삼상
24:1-22;26:5-12). (3) 세상에 관영하는 악에 대한 실제적 응징없이는 정의의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윗은 저주와 심판을 불가피하게 요구하였다.
  이제 원수들의 실패와 멸망을 희구하는 본 시편을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심
층적으로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1. 원수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 요청(35:1-10)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고통과 번민을 느끼고 잇는 다윗은 본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한다. 파괴자로부터의 안전한 보호를 요구하는 본연은 (1) 하나님게서 직접  전투
에 출정해 주실 것에 대한 요청(1-6절), (2) 원수들의 사악함에 대한  고발(7,  8절),
(3) 여호와의 구원 호소(9, 10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연은 초두로부터 하나님을 전사(戰士)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를 요청하고 있다(1-3절). 이러한 장면은 시인이 처해 있는 홰녕이 얼마나 급박한가에
대해 알려준다. 시인은 먼저 보복의 심판을 간구함으로써 자신의 위기 상황에 대한 주
의를 환기시키고 불의한 세력의 타도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다. 다윗이  이러한
호전적(好戰的)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이유는 죄악에
대한 단호한 결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윗은 극악 무도한 원수들이 반드시  파멸되
어야 할 필연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수의 멸망을 희구(希求)하는 다윗의 태도가 합당한지에 대해서  살
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는 다윗의 저주가 개인적 감정에서 기인한 사사로운  분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멸망을 기도했다. 둘째로,  다윗은
사인(私印)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
리자로서의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촉구했다. 이러한 사실은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무서운 천벌을 선언하였고(행 5:5, 10) 사도 바울이    바예수라
는 박수 무당에게 동일한 저주를 공포한 행위(행 13:10, 11)와 비교될 수 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원수의 파멸과 실패에 대해 기원한 다윗의 기도는 성도의 사랑과 상호 배
치되지 않는 정당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살펴본 다윗의 기도를 통해 죄의 심각성과 무서움을 심각히 자각할
수 있으며 동시에 대적들이 병들었을 때 기도하며 위로해 주는 따뜻한 원수 사랑을 배
울 수 있다. 우리는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하라는 평범한 금언을 다시 한번  상기
할 필요가 있다.

  2. 부당한 증오에 대한 비탄(35:11-18)
  하나님을 곤경에 빠져 허덕리는 외로운 자들을 수호하는 투사로 묘사한 다윗은 본연
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슬픔을 애절하게 묘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
고 있다. 다윗이 자신의 통탄할 만한 상태에 기술하고 있는 본연은 (1) 원수들의 모함
(11, 12절), (2) 원수에 대한 다윗의 사랑(13, 14절), (3) 원수들의 사악한    태도(15,
16절), (4) 구원에 대한 간구와 감사의 서원(17, 1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은 본연에서 원수의 태도와 자신의 입장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면서 원수들의  멸
망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다윗은 선에 대해 악으로 보상을 받았다(11, 12절). 다
윗은 대적들이 병들었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
되지 않을 때에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에 원수들은 다윗의 곤경을    조롱하고
기뻐했으며 노골적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인간적인    배신감과
비애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판결을 기대하며 비탄 중에 기도하였
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며 대회중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원수들에게 행한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도록  하
자. 다윗은 13절에서 '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이것은  타
인을 위한 중보 기도는 그 내용이 대상자에게 마땅하지 않을 때에는 그 본래의 기도자
에게 되돌아 감을 의미한다(마 10:13;롬 12:20, 21). 우리의 진실한 중보 기도는 일단
하나님 앞에 모두 상달되며 결코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출 2:23;행 10:4).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
다 하라 만일 평아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
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 10:5, 6)고 말씀하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처음부터  자신의
축복을 계산한 가식적 기도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이웃을  향한
진실된 기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해 드리는 사랑의 기도는 상대방의 거절에 의하
여 본인에게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 볼 때 우리는 다윗의 사랑과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는 가운데 인내하며 원수들을 위하여 기
도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 결과 다윗은 모욕과 천대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확
신하는 놀라운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
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마 5:44)을 무시하거나 비현실적 교훈을 치부하지 말
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윗처럼  축
복하가 견고한 신앙의 소유자로 성숫시키시고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실 것이다.

  3.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간구(35:19-28)
  공정한 기준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이 촉구되고 있는 본연은 (1) 악인의 잘못에 대한
고소(19-21절), (2)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 촉구(22-25절), (3) 여호와에 대한  찬양
서원(27, 2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다윗은 음모와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원수들에 대한 분노를 최대한 억제하면
서 정의의 회복과 의인의 보호를 담담하게 요청한다. 다윗은 더 이상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선과 악의 실상을 첨예(尖銳)하게 대조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악인들은 현재 중상 모략으로 인하여 곤경에 처해 있는 의인의 모
습을 보고 승리감에 젖어 있다(21절). 이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잠정적으로 일정한  기
간 동안만 침묵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교만과 포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다
윗은 하나님의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다윗은 상대방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
람들로부터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였다. 그중에서 아브넬은 다윗이 사울의 죽음과 더불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시기하여 다윗의 왕권을 인정치 않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을 내세워 독립 정부를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왕상  2:44-46).
그런데 아브넬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삼하 2:12-23;3:6-30), 시므이는  후일에
솔로몬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왕하 2:44-46). 여기서 우리는 무고한 자를    미워하는
대적들의 멸망을 소망했던 다윗의 간구가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121:3, 4) 당신의  백성
을 위해 활동하신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서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판단을  요구
한다. 이러한 다윗의 시급하고 간절한 열망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 대한 분명
한 확신으로부터 출발된다. 다윗은 선한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에게  반드시  정당한
보응을 시행하시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편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
시면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느 서원을 한다. 그는 찬양이 하나님께 대한  최상의
경배 행위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와 같은 약속을 시의 말미에 첨가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을 믿고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는 다윗의 신앙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자만이 오직 사단과 세상에 대하여 일말(一抹)의 공포도 느끼지 않고 담대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악을 철저하게 심판하실 하나님의 종국적 완성의 날을 대망하면서 현재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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