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 여기서 `의인들', `정직한 자'는 여호와 앞에 서서 경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들을 의미한다(15편; 24편; 100:4; 118:19f, Kraus). 구약 시대에 성전(또는 성소)에 들어가 여호와를 경배할 수 있는 자격은 율법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부여되었다(Bri- ggs). 물론 이들은 하나님 처럼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들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었다. 이와관련 하여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한 불신자들은 결코 마음으로부터 주를 찬양할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불신자들의 불경스러운 업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주석하였다. 그러나 경건한 무리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에 열중해야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들의 삶 속에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조건, 곧 경건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땅히 할 바로다'는 `몰두할 것이로다', 또는 `열중할 것이로다'로 해석할 수 있다(Calvin).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수금'(* , 킨노르)은 다윗과 레위인 악사들의 악기였고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이다. 이 악기에는 울림통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현의 숫자는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비파'(* , 네벧)는 줄대가 비스듬하게 생긴 현악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악기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에만 연주되었다는 점이다(대상 15:16). 즉, 이 악기들은 예배용 악기들이라 말할 수 있다(92: 1-3; 삼상 10:5; 삼하 6:5; 대상 15:16; 25:1, 3, 6; 대하 512; 29:25; 느 12:27).
=====33: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수금'(* , 킨노르)은 다윗과 레위인 악사들의 악기였고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이다. 이 악기에는 울림통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현의 숫자는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비파'(* , 네벧)는 줄대가 비스듬하게 생긴 현악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악기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에만 연주되었다는 점이다(대상 15:16). 즉, 이 악기들은 예배용 악기들이라 말할 수 있다(92: 1-3; 삼상 10:5; 삼하 6:5; 대상 15:16; 25:1, 3, 6; 대하 512; 29:25; 느 12:27).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여 - 사실상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가 본절 초두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기 시작하는 첫절로 보아야 한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란 그 말씀의 의도와 목적이 모순되지 않으며 아울러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롬 7:12, Delitzsch).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 여기서 `진실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 )는 `확고 부동함', `충실', `성실'을 의미한다. 이는 한마디로 행위에 있어서 전혀 결점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지키는 데 있어서 확고 부동하시며, 악인에게 형벌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시다(신 32:4, Briggs).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 율법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투영되어 있는데, 본 구절은 그중 `정의와 공의'의 측면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층만하도다 - 본 구절에서 다윗은 율법의 특성중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근거에는 정의의와 공의뿐만 아니라 그의 인자하심도 포함되며 이 두가지 속성이 합하여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구성한다. 따라서 본절에서 시인은 공의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송의 근거로 삼고 있다.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다윗은 찬양의 또 다른 근거로서 여호와의 창조를 들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천지 창조시 `...이 있으라'는 명령을 가리키며, `입 기운' 또한 `여호와의말씀'과 동의어 반복이다(사 11:4). 그리고 `만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암'(* )은 본래 `군사들'을 의미 하는데, `하늘'이라는 의미의 `솨마임'(* )과 함께 언급되면 천사들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하늘의 발광체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을 의미한다(Brig- gs, Delitzsch, Rawlinson). 그런데 이러한 광대한 하늘과 광체들을 오직 말씀으로써 창조하셨으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능히 합당하신 것이다.
=====33: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 이는 창조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물의 모습(창 1:7)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양쪽에 많은물이 쌓여졌던 홍해 사건과 요단 강 사건에서도 보여 진다(출 15:8; 수 3:13,16). 그런데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은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이지만 바닷물이 넘치지 않고 한곳에 억류되어 있었던 것은 창조시의 놀사운 기적이었다(Delitzsch). 여기서 `무더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드'(* )는 `억류된 물'을 의미하며 특별히 이 단어는 피조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또는 지배)를 암시한다(TWOT).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 혹자는 이를 궁창 위에 억류된 물을 묘사하고 있는것 으로 해석하려 한다(Briggs). 하지만 `깊은 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홈'(* )은 `하늘 아래의 원천(源泉)', `깊은 바다 밑의 물'을 의미하므로(창 49:25; 욘 2:5) 이 해석은 옳지 않다(TWOT). 이 구절은 깊은 바다를 하나님께서 해연(海淵)에 저장해 두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에 대해서는 창 7:11; 욥 38 :22, 23을 참조하라. 여기서 `테홈'이란 용어는 창 1:2에서는 최초의 바다, 곧 혼돈의 바다라는 의미로 언급되어 있다. 만일 `테홈'이 이러한 의미로 여기서 사용되었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혼돈의 바다를 진정 시키셨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Kra- us).
=====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 여기서 `온 땅'은 문자 그대로 무생물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거민'과 같은 온 인류에 대한 시적(詩的) 표현이다. 한편 `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 ) 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33: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 여기서 다윗은 온 인류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고 있다. `견고히 섰도다'란 표현은 창조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존재하게 되었음(창 1:3-31)을 보여 준다. 이와같은 창조의 사역은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을 충분히 보여줌과 동시에 그 어느 존재도 그 권능에 도전할수 없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온 인류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 굴복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Rawlinson, Kraus).
=====3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圖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 여기서 `열방'이나 `민족들'은 12절의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와 대조되는 말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방 나라와 그 민족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영원성에 비하여 너무나도 일순간적이다.
=====33:11
여호와의 도모 - 이 말은 10절의 `열방의 도모'란 표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도모'란 단순히 마음의 생각 또는 계획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를 가리킨다. 인간의 도모는 불확실하고 불왕전한 계획이지만 하나님의 도모는 완전하여 반드시 성취된다. 본시의 저자는 이러한 대조틀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성과 전능하심을 암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백성은 복이 있도다 - 10,11절과 연결시켜생각해 볼 때 선민(選民)이 복된 까닭은 (1)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열방의 일시적 계획과는 달리 영원하기 때문이며(Kraus), (2) 선민 스스로가 이 영원한 계획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민을 일방적으로 선택하여 영원한 계획 안에 들어오게 하셨기 때문이다(135:4; 출 19:5; 신 4:20; 7:6; 14:2; 왕상 8:53, Rawl- inson, Briggs).
=====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또 다른 하나의 근거로서 절대 주권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의 `하늘에서'란 온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앉아계신 하늘 보좌를 가리키는 말이다(9:8; 29:10; 55:20; 102:13; 사 63:15; 66:1). 따라서 이 용어는 온 우주의 왕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세상과 무관하게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창조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3:14
본절은 13절과 병행 대국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를 살피시며 주관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33: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 또는 온 우주의 왕이 되실수 밖에 없는 근원적 이유를 말해 주고 있다. 그 이유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지으셨다는사실이다(94:9; 창 2:7, 8; 슥 1 2:1). 즉,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지으셨기 때문에 그 마음의 변화를 모두 알고 계시며 따라서 인간 행동을 정확히 판단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Delitzsch). 한편, `일반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하드'(* )는 `함께',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용어이다(TWOT). 그래서 혹자는 육체와 더불어 마음도 `함께'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으나(Briggs),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이 용어는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을 `한결같이'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Delitzsch). 즉, 하나님은 `모든 영의 아버지'(히 12:9)로서, 온 인류를 한 순간에 지으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출생시마다 `한결같이 지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33:16,17
많은 군대...말은 헛 것임이여 - `많은 군대'와 `말'은 이방 나라의 왕들이 의지하는 세속적인 권력의 총체를 의미한다(20:7). 이러한 권력들은 인간 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항하는 저 이방 세력들이 아무리 크고 엄청날지라도 결코 그 계획을 성취할 수 없으며 아울러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도 없다.
=====33:18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에는 `주목하라', `보라'는 의미의동사 `힌네'(* )가 초두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로써 시인은 이제 막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내용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상기시키고 있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 16, 17절의 세속직 권력을 의지하는 이방의 `왕'과 대조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는 커룩한 성도가 `경외하는자',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자들을 돌보시기 위해 그들을 살펴보신다. 그리고 성도를 향하신 자상한 하나님의 눈은 악한 자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살펴 보시는 무서운 하나님의 눈과 크게 대조된다(Briggs).
=====33: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 이는 하나님백성의 복된 사실(12절)을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해 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사망'이나 `기근시'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재앙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앙시에 많은 군대나 말의 힘은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지만(16,17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능히 구원하여 주신다(왕상 17:6, 16, Rawlinson).
=====33: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 `우리'가 복수인 반면 `영혼'은 단수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여호와를 바라 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바람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카'(* )는 `사모하다'는 의미외에도 `기다리다', `기대하다'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따라서 이 말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Kraus). 그리고 성도들의 기다림은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도우심을 받기 위한 것이다. 한편, `방패'(* , 마겐)에 대해서는 18:2주석을 참조하라.
=====33:21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 본절 초두와 중간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가 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 즉, 여기에서 성도가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가 기쁨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한편, `성호'에 대해서는 20:1 주석을 참조하라.
=====33: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 이는 결론적인 기도이다. 여기서 `인자하심'(* , 헤세드)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도들이 이미 경험한 사랑이기도 하다. 이 사랑에 호소함으로써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될 것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찬양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및 그분의 사역을 찬송하는 것이
라고 볼 때, 본시는 '찬양시'의 전형에 속한다. 이 시는 '회개와 용서'를 주제로 한
다윗의 참회(懺悔) 시인 32편에 이어서 하나님의 창조, 주권, 심판, 구원 등의 구체적
인 증거를 들어 주께 찬양을 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본시가 32편의
후반부로 연결되는 듯하지만 주제와 형식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사실 보아 전
혀 별개의 독립된 시임을 알 수 있다. 즉 본 시는 '찬양시'의 전형적 형태인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바 (1)찬양에의 권유(1-3절), (2) 찬양의 이유(4-9
절), (3) 결론적 기도(20-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첫째, 히스기야(B.C 728-697) 당
시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였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 개입으로이를
물리친 것을 찬양하는 것(왕하 18장)이라는 견해와 둘째, 다윗이 암몬을 하나님의 도
우심으로 정복한 후에 지은 것(삼하 12:26-31)이라는 견해 등 두 가지가 제시되어 왔
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확실한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구원, 그리고 보호를 찬양의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죄악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원죄(原罪)를 범한 아담 때부터
약속되어진(창 3:15) 것으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되어 왔다(벧전 1:10-12). 그
리고 그 구원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동의 탄생(마 1:23)과 죽으심(마
27,45-50), 부활(막 16:9) 및 승천(눅 24:51)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의 감격에 겨워 하나님을 찬양하는 본시는 저자 한 사람의 고백이라
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아래 살고 있는 전인류의 고백이요 찬양이 될 수 있다
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더해 준다. 성경에 기졺된 시편들 중에서 본시와 같이 하나님
의 창조와 역사를 찬양하는 시로서는 65, 103, 115, 135, 146, 147, 148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본시는 모두 22개인 히브리어 아파벱을 행의 처음 시작으로 사용하는 알파
벱 시(acrostic song)처럼 모두 22줄로 구성되어 있다(9, 10, 25, 34, 37편 참조). 이
러한 외형적 형식외에도 본시의 중요 부분인 1-4절, 9절, 13-22절에는 3, 3의 박자
(meter)를 갖춘 일정한 운율이 있다.
한편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저자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본시를 통해 우
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1) 전승(戰勝)을 감사하는 본시 저자의 감격 어린
찬양은, 억만 죄악에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감격의
생활을 게을리하는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에게 감사의 자세를 배우게 해준다(신 8:10;
골 1:12;3:15;살전 5:18). (2) 또한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갖가지 크고 작은 위험과 어
려움이 있을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세상적인 것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진정한 문제 해결은 바로 전능자 하나님께만 있음을 직시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배우게 된다(수 17:7).
1. 찬양에의 권유(33:1-3)
본문은 이 시편의 서론적인 부분으로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령적 어투로 기술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32편 마지막 절(11절)의 '의인=정직한 자'라는 내용과 본문 1절의
'의인=정직한 자'라는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에 본시를 32편의 후반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주제의 흐름이 32편의 경우는 참회와 용서이며 본시는 감사와 찬송이란
저에서 별개의 독립된 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이 부를 것을 세 번의 반복 강조 향태로 기술
하고 있다. 또한 내용을 살펴보며 '즐거워하라', '감사하고', '찬송할지어다', '노래
하며' 등의 표현이 나열된다. 이와 같은 외형적 강조 형태와 내용상의 특징은 본시가
신년제 축하 예배에 사용되었으리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편 1절의 '의인들', '정직한 자들'등은 찬양할 사람들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의 바울 사도는 의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였다(롬
3:9 ,10). 따라서 본문의 '의인'은 신앙적이나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께서 '택하시어'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은 것처럼 본래 죄인이나 의롭게 여김
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특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경건에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자들을 가리킨다(롬 5장). 우리는 위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찬양
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사항이 아니라 택함 받은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하
는 필수 사항임을 배우게 된다(72:15;119:62).
2. 찬양하는 이유(33:4-19)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권면한 후 본문에서는 구체적인 찬양의 내용을 조목조
목 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말씀에 관한 찬양(4-9절), (2)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10-12절), (3) 하나님의 섭
리하심에 관한 찬양(13-19절). 이와같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창조, 역사, 섭리 등고
같은 주제로 하나님을 찬소하는 것은 '찬양시'가 이스라엘의 중요한 종교적 축제일(유
월절, 칠칠절, 장막절 등)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상고해 볼 때 본시도 중요한 종교적
행사시 공적으로 사용되었던 찬양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찬양시는 주로
공적 예배 시에 예배자들의 관심과 주(主)목적을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것으로부터 돌
이켜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귀중한 역할 수행한다.
한편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말씀에 관한 찬양(4-9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시인은 하나님 말
씀의 능력과 정직함, 그리고 진실함으로 들고 있다(4, 6, 7, 9절). 그 말씀에 대해서
시인은 창조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입 기운
'으로써 하늘과 우주 만상이 지어졌고 물이 나누어졌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변함없이 정직하고 성실한 것임을 확증한다. 다시 말해서 신인
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말씀'과 '행사'는 불가분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
다(4절). 특히 4, 5절 내용은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은 단순한 조성자(maker)이신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후에도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지니고 보살펴주시는 분임을 밝힌다.
(2) 하나님 통치에 대한 찬양(10-12절): 시인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변
함없는 통치 목적의 일관성르 찬양의 이유로 들고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은 늘 변하는
세상 것과는 달리 언제나 변함 없으시기에 이미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도 변치않는다는 사실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날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교만해진 개인이나 민족은 수치와 파멸을 당케 되며
그 통치를 대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한 자들은 기뻐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관한 찬양(13-19): 시인은 인가의 구원과 안전이 '군대와
말'(16, 17절) 등과 같은 인간적 방법이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
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당신의 은혜와 선물임을 찬양의 이유로 든다. 즉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으로서 절대로 실수가 없으시다
(13-15절).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주관적 의지대로 무엇이나 행하실 수 잇는 분이지만
전제 군주들처럼 무작정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지식과 완전한 자제력 그리
고 완전한 사랑에 근거하여 권능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
로 경외하는 자는 구원과 안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살펴볼 때 시인의 하나님게 대한 찬양의 이유는 점층적으로 깊어
지고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승리를 맛본 시
인은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변함없음을 체험케 된다. 즉, 정
직하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특별히 지키시며 승리와 구
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신앙이 점점 확고햐가지며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
는 것이다. 한편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기자의 고백은 성경 전체 속에 흐르는 구원
에 대한 사상과 일치한다(삼상17:47;잠21:31). 특히 신약시대 이후 인간의 구원은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값없이 받는,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임을 상고
해 볼 때 시인의 고백은 오늘날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다 하겠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은 자칫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에 빠져 고민할 때 자신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었는지를 점검해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경의 진리를 의심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
음을 분명히 깨달아 확신해야 하겠다(삼상15:29;사61:8). 둘째, 오늘날 조금 지식이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선행 단체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교훈을 주는 종교와는 달리
죽음이냐 영생이냐라는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참종교임을 알아야 하겠다(요
3:16;10:28;롬10:9).
3. 결론적 기도(33:20-22)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니의 구원과 도우심을 확신하는 가운데 그 은혜를 간구하는내용으로 본시를 끝맺는다. 본문에 표현된 간구와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즉, 시인은 하나님께 나아가 끈기있게 기다릴줄 아는 인내심을 보이고 있으며(20절f.),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있다(20절 ff.). 시인의 마음이 여호와를 '즐거워한다'는 것도 사실은 선취적(先取的) 믿음에서 비롯된것이다(21절f.).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의 성호' 곧 계시된 그분의 성품을 깨달아 믿고 있다(21ff.).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시인이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보다는 그 은혜를 주시는 분인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러한 굳건한 신앙에 근거한 소망은 결단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롬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