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요한일서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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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범죄문제(죄를 범할 경우)의 해결책이 있다고 하여 죄를  장려함이 아니다. 이는 다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피 속에 독이 생긴 병자를 취급하는 의사가 약을 줄 때에  나으면 다시 똑같은 병이 재발하도록 부중의해도 좋다 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거의 죽을 정도로 상한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가 또다시 그곳에 올라가서 떨어질 마음이 있으랴?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이 말씀을 보면, 요한  신학의 또  다른 일면을 알 수 있다. 그는 신자라도 죄를  범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만일의 경우가 되어야 할  것이고, 상사가 되어사는 안될 것을 이 문구가 표시하였다. 죄를 범하면 이란 말(*              )은 부정과거시상의 가정법으로서, 계속적인 죄행이 아니고 개체의 죄행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이 부정과거 시상이 채용된 이유는 죄행의  특례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요한은 이 점에 와서 우리란 말을  사용하면서 자기를 일반 교유들 가운데 포함시킨다.  이것은 자기도  그들과 같은 죄인일 뿐 특종 인물이 아님을 표시한다.
  대언자 란 말(* )의 글 뜻은  겉으로 불리운 자  곧 누구를 도와주기  위하여  그의 곁으로 불리워 온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가리켜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으니(요14:16),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자신이 대언자이심을 암시한다.  그는   우리 신자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변호하시는 대언자이시다. 롬8:34참조.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저는 이란 말(*            )을  자역하면  저가 친히 라고 한다.  화목제물 (*               ). 이것은 죄값이 되는 동시에,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가 되실 뿐 아니라   역시 화목 제물이시다. 누가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한다면, 그것은 헛된 말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친히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는  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  우리 란 말은  그 때  이 서신을 받을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키고,  온   세상 은 장래에 구속받을 백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문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받을 구원의 은혜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피조물 전체에 미치는  일반적  혜택도 염두에  둔 말이다.  사65:17;롬8:20-21;골1:20참조. 이 말슴은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  이 귀절에서 신자의  행위 문제를 취급하는데, 위
이 1:6-7에 연속하여 말한다. 신자의 옳은 행위(주님의 계명을 지킴)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아는  증표이다. 그의  계명이란 것은  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다(요13:34-35,15:12). 이와 같은 종교적 윤리는 율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와 하나님과의 영적  사귐(1:7)을 뿌리로 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 요한일서에는   안다 는 말씀이 많다. 이것을 보면 본서는  우리 각자의 영적 상황을  재확인   시키는 성경이다. 우리는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기 쉽고, 또한  제대로  되어 있는데도 되지 못한 줄로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관념적 지식(이론 지식)이  아니고 인격적  지식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인격적 지식은  신용있는 행동으로야  성립된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 비로소 그의 신임을  얻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토아, 곧 그의 사랑을 받음과  같은  생동력 있는 교제에 참여한다(요14:2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의 지식론은 어디까지나 행동주의이고 관념론이 아니다.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무력한 공론이 아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령 속에 새긴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있는 활동을 나타낸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아노라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를 참된 신자라고 하기는 어렵다.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곧, 누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복음 진리가 믿어지지 않은 증거라는 뜻이다.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 여기   그의 말씀 은 예수님의 계명이니, 재래의 계명이 완성채, 곧 복음적 계명이다(요13:34-35).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여기   하나님의 사랑 이란 말은 하나님을 위한 신자들의 사랑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하나님의 사랑 (*               )이란 말은 문자역대로  그 하나님의  그 사랑 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명을 지키는 신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시며  사랑해주신다는 말씀은 요14:21에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같이 해석한다. 특별히 벵겔의 해석은 참고할 만하다.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   그 속에서란 말은   이 사람에게서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  온전케 되었다 (*                            )는 말은  목적을 이루었다 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신자를 특별히 사랑하시기로 목적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고 하셨다.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 곧, 우리의
그리스도 신자된 증거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남들을 사랑함이다(요13:34-35).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의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  이 옛  계명 은 8절에서 다시  새 계명 이란 명칭을  받았으니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 요한의 견지에서는 이 모순된 듯한 언사에 요점이 있는 것이다. 사랑을 내용으로  한 신수의 계명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진리인  의미에서(레19:18;신6:5). 옛 계명  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실현된 의미에서(요13:34-35),   새 계명 이다. 진정한 사랑을 무시한 인본중의  도덕률은 옛적부터  그 무엇이든지 사람을 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신본주의 사랑을 신약적인 완성으로 인하여 영원히 천국의 법이 된 것이다(롬13:8)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제에게서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 여기  다시 란 말(*            )은  다른 의미에서는  혹은   다른 관점에서는 이란 뜻이다. 즉, 종류의 차이를 말함이 아니고  같은 것에  대한 인식의 다른 측면을 가리킨다. 위이  옛 계명 은 동시에  새 계명 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곧, 그리스도와 신자들에게 참되다는 뜻이다. 예수님게서 행하신 사랑(계명)을 일반  신자들도 본받아서 행해야 된다. 그  사랑의 성질은 한 사람을 위해서도 생명을  버릴 정도의  희생  정신을 가진다(요15:12-13). 칼빈은 여기  참된 이란 말이 진리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다시 마라면,  사랑의 계명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는데, 금생과 내세에 언제나 따라갈 인류의 행동 원리라는 말슴이다. 그리스도는 이것이 진리로 드러나도록 친히 행하여 완성하셨으니, 신자들은 이것을 생명의 길로 알고 따라가야 된다.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 곧 복음의 빛  이  새 시대를 가져왔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새 시대가 되었으니, 신자는  이 시대에 완전히 세운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 계명을  지키면, 그것 새 시대의 사람된 증표를    발휘함이다. 그러나 아직 그의 속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 따라서 그는 진정으로 빛가운데 거하지 않는 자이다.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  빛 이란    말에 대하여는  1:5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있다하며 란
말은   있다고 말하며  (*        )란  뜻이다. 이것은  사람이 외식하거나 혹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착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계명지키기를 힘씀으로 자기의 영적 상황을 감정해야  된다.  1:7해석 참조. 여기  형제  란 말은 기독 신자를 가리킨다. 신자가 같은 신자를 사랑하되 우선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 성경적 교훈이다.  갈6:10참조.   빛 가운데  있다   고 함은  하나님과 사귀었다  함을 말한다(1:5-6) 누구든지  하나님과 사귀었으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열매를 낸다(4:20)    
 형제를 미워하는 자  여기  미워하는 이란 말(*           )은 계속적 또는 상습적으로 미워함을 가리킨다. 진정한 신자도 불행히  남을 미워하게 되는 일이 혹시 있으나,
조만간 회개한다.  어두운 가운데 있 다  함은, 하나님과  사귀지 못한 생활  처지(그
리스도를 믿지 않는 처지)를 가리킨다.

 요일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거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 이
말씀은 남들을 사랑하는 그것이 벌써 그가  빛 가운데 거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자기 속에 꺼리낌이 없다함은,  불신자가  복음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로 말미암아  막히는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마13:41,18:7;롬14:13참조. 또 이에 대한 다른  해석이 있으니, 이 해석이 다음 귀절과 잘 통한다.  고다, 그가  빛 (복음 진리)을 참되이  가졌으므로 자신을 망하게 할 어두움이 그의 속에 없다는 말슴이다. 요11:9-10참조.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  누구든지  현제  곧 동일한 주님을 신앙하는 자를  상습적으로  미워한다면 그것은 그가 실질에 있어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실을 실증함이다. 참된  신자라면 주님을 믿는 형제에 대하여 동류감을 가지게 된다.  만일 누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는 실질에 있어서는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못한 자요,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그는 어두움에 속한  생활습성으로 인하여 영안이 어두워진 자이다. 그의 눈(두 눈)이 멀어졌다(과거사)함은 진리를  분변치 못한다는 의미이다. 나귀를 어두운 탄광  속에 가두어 두면 그  동물도  소경이 된다고 한다. 사람의 양심도 계속 억압해 두면 그 양심이 마비된다.

 요일 2:12-14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슴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  이 귀절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적 자격을 인식시켜서 그들이 행해야 할 책임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영적  자격을 세 가지로 말씀하였다. (1)  자녀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일반적 명칭)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사죄를 받고(12절), 또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하는 자들이다(14절).  (2)  아비들 (*                 =교회의 주요한 인물들에 대한  칭호). 그들은  태초부터  계신이  를 아는 자들 곧,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노숙한 자들이다(13절 상반-14). (3)  청년들 (*                  =원기 있는 년기의 신자들). 그들은 영적  전투력이 강하여 저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재케 되고, 또 마귀를 이긴 자들이다.    위의 세  가지 구분은 실질에 있어서  세 가지의 인물들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첫째 것은 교회에 대한  전칭 명사이고, 둘째와 세째는 현저한 두 종류의 사람을 가리킨 듯하다. 이처럼 사도 요한은 교회 전체를 그 편지의 대상자로 생각한 것이다.    요한은 여기서 동일한 호소를 거듭  역설하였으니,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그의 간곡한 심정을 알 수 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 인간은 죄로  인하여 연약해졌으므로 세상을 거룩하게 바로 이용할 줄 모르고, 그것에 애착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너희에게 하나님의 영이 계시어 너희가  세상이   있는 좋은 것만을 분별하게 되어라. 피조물을 애착하여  창조자를 내버리는 너희에게는 화있도다 라고 하였다. 약4:4  참조.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 말씀에 대한 대한 해석중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없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의견도 있으니, 그것은  한나가게서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   곧,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지은 것이지만, 인간이 그것들과 잘못 관계하면 그것들이 세 가지 악,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으로 화하고  만다. 이 세 가지는 어느 것이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함보다 더하게 한다. 딤후3:4참조. 정욕 이란 것(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은  뜨거운 욕심인데 그것을 품은 자들은 죄로 끌려가게 되고(창3:6;약1:15),  이생의   자랑 을 품은 자는 하나님과  내세를 비웃으리만큼 외면하고  이 세상의  미혹에 빠진다(벧후3:3-4)   사도 요한이 신자들에게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첫째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사랑해주실 상대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고(15-16), 둘재는 이 세상과 정욕은 다 지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요일 2:17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본 절은 앞  저에서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한  둘째 잉유이다. 그것은, 곧 세상과
정욕은 다 지나가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전7:29-31 참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곧, 여기서 저자 요한은 율법을 지키는데 완전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신앙의 순종을 말한다. 비록 그 순종이 불완전 하여도 하나님은 받아주신다는 것이다.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 본절 이하는 신자가  적그리스도 르르  주의해야 할 것을 말씀한다.  아이들아  이 말의 헬라  원어(*             )는 훈육을 받아야 할 미성년자를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그 때 교회의  온  회중을 이 말로써 불렀다. 이것은 그가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른 명칭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말로써 자기의 연로함을 드러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시작된  시기인데(히1:1), 그것의  끝은 이 세상 끝이다.  많은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권위를 패하려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살후2:3에   언급된  불법의 사람 곧  최후의  적그리스도와는 다른 인물들이다.  불법의 사람 은 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과 동일한 자로서 말세의 끝에 나타날 자이다. 그와 다르게 여기 언급한 적그리스도들은 일반 배교자들을  가리킨 말이다. 이 적그리스도들은,  (1) 진정한 교회의 권속이 아니므로  참 교회를  배반하고 나간 자들이고(19절), (2)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자 들이다(22절).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이 귀절은  적그리스도의 특징을 말하는데 참 교회를 배반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이라. - 이 말씀은
작적그리스도를 경계하라는 경고(18-19)가  이 편지를 받을 신자들에게  잘 이해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식별할  만한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사도는 말한다. 여기  거룩하신 자 (*                     )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기름 부음 은 그 신자들에게 성령주심을 말한다.     모든 것을 아느니라 란 것은 특히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성령은 모르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령을 아는 신자의 지식은  모든 것을 아는 지식과 같다. 이런 영적 지식이 전체적으로 일시에 신자들에게 임한다는 말씀이 아니고,  필요한 것은 그때 또는 영원토록 그 받은 성령에 의하여  알려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성부와 성자까지)을 아는 참된  지식은 오직  상령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고전  12:3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한다. 마16:16-17;요6:45참조. 진정한 지식은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관련되어 있은  것이다. 발달된 과학 지식도 그것이   무신혼자의 소유닌 한에 있어서는, 피상적 지식이지 참된 지식이 아니다.

 요일 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 본절은 사도 요한이 위의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라는  말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다시  말씀한다. 그가 이 말씀을 쓰게 된 동기는,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이 참으로 복음을 아는 성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교훈도 잘 분별할  수 있었다.  거짓 에 속한  자들(적그리스도의 무리)과   진리 에 속한 자들은 서로 나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 았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요일 2:22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예수님은 참으로  라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신데, 이 진실된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비진리를 좇는 자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대리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하나님의 보내신 자)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동시에 그에게  대표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교계에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을까? 특별히 바르트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훈이 그런 과오를  범한다. 이 교훈은 인간이신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켜 생각한다.  이 교훈을 따르는 이들은,  어떻게 시간 공간성을 지닌 예수께서 하나님(그리스도)이겠는가 라고 한다. 이것은  바르트의 사상에 근거한 말이다. 바르트는  그의  로마서 주석 에 말하기를,  역사 세계 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는 문제성이고 신화이다  라고 한다. 이것은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잘못된 주장이다.  하나님은 기적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그리스도를 사람(예수)이 되게 하셨다(요1:14).

 요일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함이   왜 하나님  아버지도 부인함이 되는지(22절), 여기서 그 이유를  해설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현되셨기 때문이라도 한다. 요14:7-11상반 참조.

 요일 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 여기   너희 (*          )라는 대명사는 헬라 원어에서  역설적으로 사용되어서 신자들과  배교자들과의 대조를 보여준다. 그들(배교자들)은 위태한  지경에 빠졌으나,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역설함이다.  들은 것 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복음을 가리킨다(요3:16;요일2:25)

 요일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   약속하신
약속 이란 말씀은  윗절에 나온 말씀 곧    처음부터 들은  것 이 무엇임을 밝혀준다.  처음부터 들은 것 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니 곧,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마 하신 말씀이라는 뜻이다.    문법상으로 여기 나오는   그가 란 말(*          )은 역설체이다. 이 역설체는 약속자가 실패하기  쉬운 인간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이니 란 말(*                       )도 역설체이니, 이는 이 귀절에 취급된 약속 내용의 중대성을 표시한다.

 요일 2: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 사도가 그런 글을 써  보낸 목적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미혹하는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그들은 것 곧,복음을 굳게 파수케  하려는 것이다. 미혹케 하는  자들이란  멀(* )은 관사를 지녔기 때문에 일정한 인물들의 무리이고, 또한 현재분사( 하는자들 )이니만큼 그 당시에  활동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반율법적인 그노시스케린도와 그의  일파를 가리킨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4:3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라. 여기  이것 이란 말(*             =이것들)은 위의 20-25절의 내용을 가리키면서 문법상 본절 초두에 나왔으니 역시 역설체이다.   이  부분 내용(특히 20절에  기름부음 받았다 는 것)이 이 아래(27-28)에서   되풀이 된다. 이런 중복체는  사도요한의 문학적 특성이다. 이는 무의미한  중복이 아니고 그의 신앙의  확고함과 진리 전달의 간절성을 보여준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으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  20절   해석참조.  너희는  이란  말(*   ) 초두에 나온  것은 문법상 역설체이다. 이것은  위의22절에 기술된 적그리스도들과 대조된 표현이다. 기름 부음  이란 말(*              )은 계시사적인 용어로서 하나님의 성령   주심울 상징한다.  특별히  행10:36에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란  말씀으로보아서 위의 해석이 정당하다.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여기  가르치며 란 동사(*  )는 현재사로서  헬라어 문법대로 계속성을 가진   동작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위이 문구에  모든  것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한하여)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일세에 다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계속하녀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다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이다.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그 안에 거하라 함은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순종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께 대한  것이니만큼, 외부적으로는 물론이고 특별히 영적으로 참되고 또 신실해야 된다.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이 말슴은   그의 강림하실 때에 란 말씀과 같으나 다만 그의  재림시의 심판으로 인하여 모든 일이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을 가리키기 위한 말씀이다(롬14:10-12;고후5:10;히4:12-13). 여기  담대히 란 말은 감출 것  없이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태도이다. 그것은 부끄러워함과 두려워함 없이, 다만 기쁘고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시는 심판 때에 신자는    이런 담대함을 가질 수 있기 위히여  현세에서 그리스도(예수)안에 거해야 된다. 거한다 는 말(*                 )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주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회개와 신앙을 지속하는 실생활이다.

 요일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넌 줄을 알리라. - 본절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결해지도록 힘써야 될  것을 가르친다. 이 교훈은 3:9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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