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베드로전서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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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5:1
 너희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고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다. - 여기  장로 (* )란 말은 치리 장로와 교훈 장로를 다  가리킨다(딤전5:17).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시도  베드로가 이 말을 앞에  내세우면서 권면의 말씀에 들어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장로들에게 자기와의   동류감을 일으켜서 그의 권면에 대한 그들의 동감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곧,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으로  고난받으신  사실을  친히 보고 증거한다는   말씀이다. 요15:27참조.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 는 의미도   여기에있다.  나타날 영광에참예할 자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였으니만큼, 내세의 영광에도 동참할 수 있다. 딤후 2:11-13참조.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여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한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 여기   하나님의 양무리 란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교회 를 의미한다.   시78:52;사40:11;렘13:17; 눅12:32;요10:16;행20:28-29참조.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벵겔은 말하기를, 자기   권한과 능력이 미치기만 하면 다른 직업을 취하려는 목사는  이 권면을 받아야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부득이 하여  하는 성직자는 그 직무 이행에  소명감이 없는자인  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므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이것은 위의  부득이함으로 란  말씀에  대조적으로 나오면서 자원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  자원 이란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조,  희생, 죽음까지도 환영하는    자원 이다. 만일  성직자의 소명감 표준이  단순히  인간적기질로서의   자원 일 경우에는, 교회는  세칭 호사자와  영웅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란 말씀이 여기에 부가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란  문구(*                )는  하나님을 따라 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과 합치하게 함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이렇게  목회하려면, (1) 성경말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되고,(2)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을 소유해야  된다.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교역자가 어떤 탐심을  품고(더러운 이를  위하여)일을 열심히( 즐거운뜻으로  )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라고 제재한다.   이기주의의 동기 없이 교역을 즐겁게  하려면 하늘나라의 영적 기쁨이 공급되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한 자가 체험하는
것이다.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   주장하는  자세  란  말(* )은 교권으로 누르는  행정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여기서 금지되어  있다.  교권주의가 교회에 해로운   것은 무엇인가? 교권주의자들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인도하지않고  자기들의  집권에 유리하도록   유인하다. 이것은 중앙 집권주의  이다. 이것은 참된 교역이  아니다. 진정한 교회에서는 어느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집권하도록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장로들의 동등을 유지한다. 이렇게   교직들의 동등이 유지되는   것이 성경적 교회 교리이다.   성경적  교회 교직자들에  의하면, 교직의  활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종드는 것이다. 그리고  치리회(노회,  총회)도 지교회들을 돕는 것뿐이고  지교회보다  높은 계급이 아니다. 치리회나  교역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사역에  한해서만 신자들의  순종을 요구할 수 있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모든  교직은 수종드는 일 사역하는 일을 행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봉사할 뿐이다.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 곧 신자들을 직원으로 눌러 지배하지 말고, 친히  신앙생활의 모본으로 그들을  감화시켜 인도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직권 대신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태도로 행하는 영권을 위주하라는 의미와 같다.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교역자가  어떤 탐심을 품고(더러운 이를 위하여)일을 열심히(  즐거운뜻으로 )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라고 제재한다.   이기주의의 동기 없이 교역을 즐겁게  하려면 하늘나라의 영적기쁨이 공급되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한  자가 체험하는 것이다.

 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여기 목자장 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히13:20참조.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받는 것이다. 신자의 한평생 생활을 전투로   비유한다면(엡6:11-17),그 최후의 신앙 승리는  영광의 면류관 을 받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시들지 아니  한다는 것은 소멸되거나 변동됨이 영원히 가치있는 것을 비유한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  때에 수건으로 허리르  동이신 일(요13:1-11)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곧, 이 문구는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   잠3:34;약4:6참조. 여기  대적하시되  란  말과  주시느니라 란  말은 둘 다   현재동사이다. 크레다너스는 이 현재사가  행동의 습관성을 의미하는   사실에 근거하여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뫄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 은 하나님의   상칙적 행위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 진리는 세상 어디서든지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하나님의 능하신 손 이란 말씀은  위의 말씀과 같이, 교만한 자(그들이  아무리 강해도)를 떨어뜨리시고,   겸손한  자들(그들이  아무리  무력해진  것  같을지라도)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높아지려고 덤빌 필요는 없다.   높이시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인간은 자기가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 상관할 것 없이,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히 순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 여기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란 것은, 윗절의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란 말씀과도 어느  정도 연럭하는  것이다. 곧, 신자가  하나님의 능하신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히 처신함은  오직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림 이다.  염려 란 것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를  심려하는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을 자기가 맡으려는 교만이다. 그런  염려는 불신앙의 죄이고 심신에 손해를 끼친다.   여기  맡기라 란 말(*               )은  던지라  는 뜻이다. 던진다는 것은 쓸데 없을 뿐 아니라  해로운 것을  내버린다는 의미에서  던짐이다. 내 힘에 겨운 어려운   일을 내가 해결해 보려고 심려하다가는   도리어 해를 받을 뿐이다. 우리가 염려를 주님께  던질 이유는,  그가  그 염려건을 맡아 처리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방법은  어떤것인가? 첫째, 당장 염려를 중지해 보라. 그래도  안돼면  둘째, 특별기도를 힘쓰면 마음에 평안이 오고, 그 염려건이 주님께  맡겨진다.  세째 만일 그래도 안되면 나는 내 할일만 꾸준히 실행하면서 계속 기도할 것이다.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이 문구는 신자가 그 염려를  주님께 맡길 이유를   보여었으니, 곧 그렇게 하는  신자를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것이다.   권고 로 번역된 헬라 원어(*           )는  돌보아줌 을 의미한다. 이 의미가 한자로는 잘  밝혀지고 있으나  그 발음은  권면한다  는  권고와 같으니만큼   돌보아 주심 이라고   개역하는 것이  좋겠다. 시37:5-6 참조.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  윗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염려건을   주님께 맡김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하고서 방심하면 위태하다.  마귀는  방심하는 자를 역시 미혹의 좋은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  염려건을 주님께  맡긴  뒤에도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근신은 세상에 취하지 않음이고,  깬다 (* ]는 말은 신앙으로 깨어 있음을 가리킨다.(고전16:13)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현제들도  동일한 고난을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  약4:7참조.   우리가 주 인에서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야만   저놈을 힘있게 대항할  수도  있고 또  마침내 이긴다.  엡6:10-17참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하신다.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여기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에 뒤이어서 고난문제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 본서의   수신자들이 그때에받는 고난이  마귀로 말미암았다는 의미안가? 그런  것은 아니라 그들이 환난을  당하고 있음을 계기로  하여 마귀가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마귀는 개인  신자로 하여금 교회에 개하여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도록 유혹한다.  그 유혹에 빠진  자는 자기 혼자만 그런 환난(믿음을 인한 핍박)을 당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원망하게 되기도 쉽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것을  경계한다. 신자가 환난을  이길 용기를  얻는  비결은 그와 성경이 같은(동류요 형제)  다른 신자들도 핍박당함을   인식함이다. 우리는  남들도 같은  환난을   당하는 줄 알 때에 자신도   마땅히 당할 것을 당하는 줄 알고  위로를 얻는다.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리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  본절도 신자가 마귀로 인하여 오는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 또 한가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이  힘으로는 도저히 환난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해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벧전 5:11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이 귀절은 주님의  능력이 어떻게 크심을 말씀한다.  윗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는 고난받는 성도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세세 무궁토록 있다.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 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이 말씀은 신자가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 은혜라는 의미이다.

 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여기  바벨론  이란 것은  혹설에 로마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은 글자대로 바벨론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여기  사랑의 입맞춤 이란 것은 당시의 교회에  집회가 있을 때에 사용된 의식인데,  기도한  후에 남자들끼리 따로,  여자들끼리 서로 입맞춤으로  우애를 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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