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1,2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 첫번 - 이 점에 잇어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 "구
레노"가 예수님 탄생 후 6년부터 9년 어간에 수리아 총독된 일은 확실하지만 , 예수님
탄생 시에 총독되었던 기록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과 같
이 해결된다.
(1) 우리 본문의 "총독"이라는 말 헤게몬(* )은 광의적으로 사용되는 것
이다. 이것은 총독 뿐 아니라 황제에게도 붙일 수 있고 기타 관리자르 가리킬 수 있
다.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으로는 있지 않았으나 다른 어떤 임무로 그 지방에 관계했
을 수 있다.
(2) 우리 본문의 "첫번"(* )이란 말을 "보다 먼저 "라는 의미로 보고 이
문구를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되었을 때보다 먼저 한 것이라"고 번역한다.
(3) 구레뇨가 두번 총독이 되었을 수 있다는 즘트의 학설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예
수님이 탄생하신 해에 충독이 되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주전 1년부터 주후 6년까지
는 누가 총독이었는지 역사상으로 허위였기 때문이다.
눅 2:3,4
베들레헴 - 이 곳은 다윗이 자라난 곳이니 영적 다윗이 되신 예수님께서 이 곳에
서 나심은 예언 성취의 의의도 없지 않다.(겔34:23,24) 그리고 메시야께서 "베들레헴"
에서 나시리라는 예언은 미5:2에 있으니 그 예언은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
눅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가니 - 로마이 법률에 여자는 호적하러 호저지
까지 갈 의무는 안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마리아는 왜 갔을까? 그가 호적지에 가야 할
책임은 없었으나 무슨 다른 볼 일이 있어서 그 남편 요셉과 동행하였을 것이다.
눅 2:6,7
맏 아들을 낳아 - 로마교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 외에 다른 아들을 낳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맏아들이라고 하였으니 맏아들이라고 한 것
은 그 후 딴 아들들이 있는 것을 생각케 한다.
구유- 순교자 유스티노와 및 가경에 의지하면 이것이 동혈안에 있었다 하니 이는
그 굴들이 외양간으로 사용되었던 까닭이겠다.. 그 굴들은 지형이 높은 고에 있는데
그 곳에서 주님께서 탄생하셨다면 이는 이사야의 에언의 성취일 거이다.(사33:16) 그
러나 우리는 이 견해를 받기 어렵다.
눅 2:8
목자들 - 미시나경에 의지하면 베들레헴에서 치는 양은 성전에서의 제사용으로 되
어 있는 것이었는데 방목한다고 한다. 목자들이 집 밖에 있었으니 섣달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다. 목자들은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이니 이들에게 그리스도 탄생이
먼저 알려진 것은 역시 복음이 특색을 나타낸다. 복음은 언제나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먼저 계시되는 것이다.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 이것은 천사가 목자들의 곁에 와서 서 있었던 것을 가리
킨다.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소식을 사람에게 전하는것만이 그의 사명이기 때문에
다른 일에 별로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려고 문득 왔다가 그
것을 모두 전하고 문득 떠나고 만다.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 "주의 영광"은 기이한 빛이니 하나님이나 천사
들이 임재를 표시하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에도 쉐기나라는 빛이 있었다.(출16:7,10
24;17, 40:34)
눅 2:10
무서워 말라 - 그들이 이 천사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가 온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이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 이 말의 헬라 원어는 "큰 기쁨을 전
하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노라"(*
)라고 번역될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 복음 전파를
하노라'란 뜻이다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복음은 언제나 사람에게 큰 기
쁨을 준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멸망 받을 사람들을 값없이 구원해 주시느 구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눅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헬
라 원어에는 이 귀절의 첫 머리에 "왜 그런고 하면"이라고 번역되는 말이 있다. 그러
므로 이 귀절은 위에 말한 "좋은 소식"이란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다윗의 동네"
는 베들레헴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곳에서 나시리라는 것은 일찌기 700년전에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예언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시도께서 이땅에서 나신 것은 놀라운
예언 성취이다. 예언이 성취될 때에 우리는 네가지 사실을 믿게 된다. (1) 그 예언을
주신 하나님을 믿게 되며(2) 그 예언이 기록된 책 곧, 구약의 예언서가 참된 줄 믿게
되며(3) 그 예언의 성취로 나타난 사건을 믿게 된다. 그리스도 탄생은 예언 성취로 되
어진 일이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수 없다.(4) 예언 성취로 나타난 것이 가져
올 모든 장래의 일들과 축복을 믿게 된다. 성경을 말하기를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
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일줄 너희로 믿게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였다. 헬라원어에는 "구주"란 말에 관사 없으니 그 이유는 이 이름이 여기서 고유
명사로 쓰인 까닭이다. 이 이름이 예수님에게 고유 명사로 쓰였다고 내가 말함은 그것
이 독특히 예수님에게만 쓰여진 이름이라는 뜻이다. "구주"는 오직 예수님 뿐이다.
"그리그도"란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을 가지나니 히브리 말 메시야의 뜻과 같
다. 구약을 보면 기음 부음 받은 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 였다. 에수는 이 삼직을 다
가지신다. 산과 육지에 작은 계천이 흐르다가 큰 바다에 이르러 끝을 내는 것과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직 , 제사장직, 선지자직은 예수 그리스도를 에
표하다가 그에게서 크게 이루어졌다. "주"란 말은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주재자를 가리
킨다.
눅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 "천군"은 곧 천사들이 단체적으로 나
타난 것을 가리킨다. 15절에는 이것을 "천사들"이가마다 말로 바꾼다. 그들이 "홀연
히"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했으니 이것도 천사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잡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을 빨리 행하는 것 뿐
이다. 사명만 위하여 문득 나타났다가 사명을 다한 뒤에는 문득 사라져 보이지 않는
다.
눅 2:14
하나님께 영광 - (1)구속 사업은 순연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므로 하나님에게 영광
을 돌려야 마땅하고 (2)또한 구속사업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운
명에 있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시어서 우리 대신 욕을 당하신 값으로 하나
님과 화목하고 영적 평안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 천국의 찬양에 나타난 진리야말로
복음의 전수이다.
눅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 "천사"는 보이지 아니하되 사람이 신령한 눈이
열리면 보인다.(왕하6:17). 그리고 천사는 사람이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창19장)
이 때에 목자들은 눈이 열려서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보았다. 이렇게 천사
들은 다만 하나님의 명령을 땅 위에 그대로 전한 뒤에 더 머물러 있지 않고 땅에서 떠
나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행하는 일 밖에 아무런 다른 사무를 가
지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일을 위하여 시간을 쓰는 일이 없다. 땅에서도 하나님의 일
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그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말며"(눅10:4)라고 하신 것도 그런
뜻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맡기신 복음 전도의 일에만 열중하여 거기동작을 함 따름
이다.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 보자. - 여기 "이제"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데(*
)이니 "이제"라는 뜻보다 "자"라는 뜻을 가져서 마을 힘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
들은 일심단결하여 힘있게 작정하기를 "자!베들레헴까지 가 보자"고 한 것이다. 글것
은 그들이 신앙 행동이다. 그들은 천사들이 전한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
베들레헴에 가 보기로 결정하고 빨리 가게 되었다.
눅 2:16
빨리 가서 - 이것을 보면 그들은 천사들의말을 그대로 믿고 의심하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믿었기 때문에 곧 행동한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급하였다 그들은 그
런 이상한 일을 보고 믿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도 이상한 일을 본다면 반드
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으로 믿어야 할까? 그들이 그렇게 믿은 까닭은 (1)천사
들이 한 목자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고 많은 목자드에게 나타났던 까닭이다. 같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때에 그것은 참된 것이도 한 개인의 주관이 아닌 것이다.
(2)그 이상한 일과 함께 성령님의 감동이 그들에게 와서 그것을 믿게 하여 주셨기 때
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절대로 믿을 만한 기사가 특별히 계시 시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계시시대"라는 것은 구약의 계시와 및 신약의 계시를 위하여
있는 시대들을 가리킨다. 누가 천사를 보았다고 할 때에 우리가 함부로 믿으면 안된
다. 현대에 있을 수 있는 이상한 일들은 우리가 성경에 의지하여 비관하며 분별하여야
된다. 현대 어더한 계시나 이상한 일을 보았다고 하는 자들 중에 자기 자신이나 혹은
마귀로 말미암아 속히운 자들이 많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선지와 사도의
전도 곧,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신앙법칙이다.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 이것을 보면, 마리아는 이보다
벌써 먼저 성자 화육에 대하여 나타난 영광에 부닥친 자임을 스스로 나타낸다. 벌써
알려진 것이 있으므로 새 지식에 대하여 놀랄 것은 없고 상고하고 또 간수한다.
눅 2:21,22
세례 요한이 할례를 받을 때에는 이웃과 친족이 모여서 기뻐하더니(눅1:57-63),
예수님의 할례식에는 그 부모 밖에 아무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 이것도 고난을 받으시
므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주님의 당하신 고적인 것이다.
눅 2:23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 이것은 출13:2-16에 제정된 율법인
데 그 취지는 이러한다. 곧,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처음 난 자들을 죽이실때에 이스라
엘의 처음 난 자들 만은 그 죽음을 면하게 하셨다. 그가 그리하신 만큼 이스라엘의 처
음 난 자들을 자기에게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이렇게 처음 난 자는 죽어야 마땅
하다는 것이다. (출13:13-16). 예수님도 이 규레에 매인 까닭은 , 그가 사람의 법에
매일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마는 자기 백성을 대신 속죄하시기 위하여 사람
들이 지킬 모든 법 아래 들어가 율법을 지키시게 된 것이다.
눅 2:24
비둘기 한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 레12:8을 보면, 이것은
가난하여 힘이 없는 자가 드리는 제물이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과 곤고 가
운데 계셨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 혹은 말하기를 여기 "시므온"은 가말
리엘의 아버지라 하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틀림없는 자연 발생의 제사장이
니 제도 제사의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직접세우신 제사장인 듯하다.
눅 2:26,27
주의 그리스도 - 이 말은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시므온이 그
리스도를 보기전에 죽지아니하리라"는 성령의지시를 받은 것은 , 그 개인의 영적 행복
을 위한다고 할 수 있으나 그보다도 하나님의교회를 위하여 그 계시를 받앗다. 여기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이런 사람이 하게 되었으니 , 그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심을 알
아야함이 교회에 필요함을 나타낸다. 만님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그 아기였던 시대에
도 기적적인 증거를 받으신 것이 하나님 백성의 신앙에 유익하다.시므온은 이 일을 위
하여 같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님에게 대한 증거는 , 그
어느 것이든지 성령님께서 성립시키신 사실이 시므온의경우에 있어서도 참되다.
눅 2:28,29
주재 - 헬라원어로 데스포타(* )이니 이 말은 노예에게 대한 절대 주
권자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을 이런 절대성적 주재로 알고 순종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
이다.
놓아 주시는도다. - 이것은 메시야 대망의 파수직에 방면됨을 말하는 것이다. 시므
온은 그 받은성직의솜여을 느끼는데에 있어서 파수직적이었다. 시므온이 찬송은 5세기
이후에 별세자의 찬송이 되어왔다. 그 찬송의 이름은 "눈 시마티스(nun simatis)"라고
한다.
눅 2:30-32
주의 구원을 보았아오니 - 시므온의 이 말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의구원 운동을 보았다는 의미인동시에 자기 자신이 그구원에 참예하였다는 고백이라고
도 할 수 있다. 그는 이 구원 운동이 천하 만민에게 미칠 보편적인 것을 지적한다가.
비추는 빛. -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임할 구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이 구원
운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광이 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원이 유대인에게서
났기 때문이다(요4:22)
눅 2:34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 이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서
궁극적으로 구원으로나 멸망으로 결정 받아 나뉘어질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피조물
중의 무엇으로 인하여서는 궁극적 흥망의 결절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피조물
끼리는 그런 결정을 지을 권도 없고 진리도 없고 능도 없기 때문이다. 마21:44 ; 행
4:11; 롬9:33 벧전 2:6 참조
비방을 받는 표적 -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셔서 모든 욕을 받으시는 것을 그의 특징
으로 하다 싶이 하신 고난의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세상의 죄를 적대하신 까닭
이다.
눅 2:35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인하여 마리아가 당할 심령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빛과 같아 서 모든
악한 생각을 판별해 줄 것을 가리킨다.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
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 여기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복음을
기록하는 누가가 어떻게 자세하게 확실히 말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눅1:3,4).
그는 여기서 여선지 "안나"의 속한 지파와 그 부친의이름까지 명세를 붙여 기록하였
다. 뿐만 아니라 그는그 여선지가 출가하여 남편과 동거한 연수와 및 과부된 연수까지
밝혔다. 아기 예수님을 증거한 자들이 연령이 높은 일에 대하여 우리는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노인으로 상징될 수 있는 구약이 아기로 상징될 수 있는 신약의구
원 운동에 대하여 증거하고 물러서는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눅 2:40
눅 2:52 해석을 참조하여라.
눅 2:41,42
유월절 -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명절이다. 이
절기는 맨 처음에 저희가 출애굽 활동을 취하기 직전에 지킨 것이다. 그 지키는 방법
에 대하여는 출12:1-13:10까지를 참조하여라
눅 2:43
날들 - 이것은 7일 동안을 이름이다(출12:15,16)
눅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 (1)
예수님께서 집으로 돌아갈 것도 잊은 듯이 성전에 그대로 머물러 계셨으니 그 얼마나
성전 행사의 첫 경험에 있어서 열중하시고 착념하신 바를 알수 있다. (2)예수님께서
그 부모를 떨어져 그냥 예루살렘에 계신 줄은 그 부모가 몰랐으니 그것은 예수님에게
대한 그들이 신뢰심이 켰던 증거이다. 이것을 보아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가정에서 신
임을 받도록 행하시며, 양천에게 근심되게 행하신 일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3) 양
친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애셨으니 예수님은 어렸을 때에 이적이나 능력을 행자하시는
습관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이적 행하신 일이 많았으면 양친은 그가 넉넉히 자력
으로 찾아 오실 줄 알고 계속하여 가던 길을 갔었을 듯하다.
눅 2:46,47
듣기도 하시면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
예수님께서 학습하시는 처지에 계셨느냐? 혹은 교수하시는 처지에 계셨느냐? "영아 시
대의 예수"라는 아라비아 복음은 둘째 의견을 택한 듯하다. 그 이유는 스승이 앉고 제
자가 서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로스텔만과 플러머는 첫째 의견을 지지 하였다.
눅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 이는 윗절에 말한대로 예수님의 지혜가 비범하셨기 때문
에 놀랐다는 것이다. 그런데로 불구하고 그 모친이 그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한 것은 아직도 예수님에게 대하여 적합하게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다.
그 지혜가 그렇게 비범하신대 그에게 잘못하심이 있으랴?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음
귀절에 대답하시기를 "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라고 하셨다.
눅 2:49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 귀절은 또 다르게 번
역할 수 있으니 곧 "내가 반드시 아버지의 일에 있을 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이 보이는 요긴한 뜻은 다음과 같다. (1)예수님께서 친히 자기는 하
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이고 (2)예수님을 자기들의 아들로 찾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 찾아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과 같
이 계신다.(3) 양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제야 계시되어 알바가 아니
고 벌써부터 알 수 있도록 계시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눅 2:50
양카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 몬테휘오레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양친이
위에 발표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실로 보아 예수님의 초자연적 출생은 믿
기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출생하셨다면 위에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비범하다 할지라도 양친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기 때문이라고 하다.
그러나 여기 양친이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의 메시야격이 나타내신
그 말씀을 그 현재에는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 뿐이고 그 이후에도 그들이그 말씀
뜻을 몰랐다는 것은 아니다.
눅 2:51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마리아가 성자에 대하여 난해한 것이 있
었지만 그 난해의 것을 마음에 건사해 둔 것은 귀한 일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난해의 것을 내어 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신앙자의 할 일이 아니다.
눅 2:52
예수님이 그 지혜와 신장에 있어서 점차 장성하셨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면서 도 참된 인간성을 가지고 계셨음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는 외형으로만 인간이 아니시고 실질에 있어서 우리와 다름이 없는 참 사람이었다. 아기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사랑스러워지셨음은 그가 유년 시대에도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하셨기 때문이다. (요8:29). 그가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러워지신 것은 그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었다. 선량한 이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도 귀엽게 보는 법이다. 그러나 선량한 성인에 대하여는 세상 사람들이 반대하거나 핍박하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