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베드로후서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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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거짓 선생들(1) (베드로 후서 2:1-3상)

Ⅰ. 제 1장의 후반부에서 사도 베드로는 구약 성서의 시대에 살았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도구로 사용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제 2장의 서두에서는 그 당시의 교회 안에 실재하였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참된 선지자를 보낼 때, 악마는 미혹하고 속이는 자를 보내는데, 구약 성서의 시대는 거짓 선지자들이며, 신약 성서의 시대에는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사도 그리고 거짓 선생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이 보내신 교사들의 임무는 진리의 도와 나아가서 영생에 이르는 참된 길을 보여 주는 것인데 반해서 거짓 사도와 거짓 선생들의 하는 일은 파괴적인 악과 나아가서 "멸망케 할 이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멸망케 할 악행과 함께 멸망케 할 이단 사상이 있다. 그리고 거짓 선생들은 호색적인 죄악을 만연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2. 멸망케 할 이단 사상들은 대개 진리의 탈을 쓰고 은근히 들어온다.

3. 파괴적인 이단 사상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한다." 그들은 큰 인류의 유일하신 구세주요 구속자이시며, 온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전부 다 구속하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위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4. 다른 사람들에게 멸망을 가져다주는 악행자들은(틀림없이)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자신을 파괴하는 자들은 곧 멸망에 이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악행을 퍼뜨릴 만큼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분명히 그리고 신속히 멸망당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개선될 길이 없다.

Ⅱ. 사도 베드로는 2절에서, 앞 절에 이어 그런 거짓 선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1. 악한 지도자들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쉽사리 놓치지 않는다. 죄악의 길이 악독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그런 길에 빠져 들어간다. 사람들은 죄악을 물 마시듯하며 죄악 가운데 살기를 즐거워하고 있다. "선지자가 거짓 것을 예언하면 백성들은 그런 거짓 예언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2. 죄악의 번창은 진리의 길에 대해 그릇된 소문을 퍼뜨린다. 다시 말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에 대해 그릇된 소문을 퍼뜨린다. 기독교의 신앙은 진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 비롯된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진실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운데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게 하는 수단으로써 우리 안에 진리를 이룩하게 하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의 도는 파괴적인 죄를 품고 있으며 이를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방을 받는다. 이러한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예언했다. 오늘날 이와 같은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이름이 원수들에게 비방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소망에 대해 저들이 악담을 할 수 없게 만들도록 힘써야 한다.

Ⅲ. 다음에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혹하는 자들이 그들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지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과 통제에 자신들을 팔아 넘기도록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아첨하는 말과 달콤한 말과 허울 좋은 화술로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섬기도록 촉구하면서, 그들의 추종자로 만들어서 이득을 보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더 많은 재산과 신용 또는 추종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생각과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도를 보여 주며, 그들의 추종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그들의 유익과 진보를 기원하고 있으나, 이 거짓 선생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일시적인 이익과 세속적인 영광만을 바라고 추구한다.

 

2:2 없음.

 

2:3

하나님의 심판 (베드로 후서 2:3-6)

사람들은 흔히 집행 유예는 용서의 전조이며, 더구나 심판이 신속히 집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그 심판이 파기되었거나 혹은 파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아무리 거짓 선생들이 얼마 동안은 성공적이며 번창해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내릴 "심판은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오래 전에 이미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까지 결정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한 이런 불신자들은 이미 정죄를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임했다. 의로우신 재판장은 속히 보복을 감행할 것이다. 그들의 재난의 날은 가까이 왔으며 그들에게 임할 모든 링들은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증거하기 위하여 베드로는 여기에서, 죄인들에게 보복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심각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들고 있다.

Ⅰ.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보자.

1.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자라도 형벌을 면제받을 수 없다. 능력과 지혜의 면에서 아무리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만일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면, 법의 심판은 그들에게 선고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별도로 취급하지 않으심으로 해서 어떤 자비를 베풀거나 죄를 경감시켜 주지 않고 무서운 형벌을 내릴 것이다.

2. 범죄자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이 받을 형벌도 또한 엄중하고 가혹하다. 본성이 인간보다 월등한 이 천사들은 신속한 처벌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잠시 동안의 유예도 그리고 자비도 베풀어지지 않았다.

3. 죄는 그만큼 죄를 범한 자의 지위를 비천하게 떨어뜨린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높은 지위에서 떨어지며, 그들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을 빼앗긴다. 하나님을 거슬리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4.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은 모두 지옥의 나락으로 던짐을 당하게 된다. 영광의 극치와 불행의 심연 사이에는 그런자들이 쉴 만한 장소나 상태가 없다. 만일 피조물이 하늘에서 범죄하면 그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

5. 죄는 어두움의 소산이며, 어두움은 죄의 삯이다. 비참과 고난의 어두움은 죄의 어두움에 뒤따라 일어난다. 하나님의 법이 보여 주는 빛과 지시에 따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비치는 빛과 그의 임재하심 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6. 죄가 사람들을 형벌에 묶어두는 것과 같이 비참과 고통이 사람들을 형벌 아래 가두어 둔다. 비참이라는 어두움이 그들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으로부터 헤어나지를 못한다.

7. 가장 심한 고통은 마지막 심판 때에 이루어진다. 이미 지옥에 떨어져 있는 천사들에게는 아직 최후의 심판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Ⅱ. 하나님이 천사들을 다루셨던 것과 같은 동일한 방법으로 옛 세상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옛 세상을 용서치 않으셨다.

1. 범죄자의 질과 마찬가지로 그 수도 자비를 얻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일 그 범죄가 우주적이면 그 형벌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된다.

2. 그러나 비록 적은 수의 의인이라도 있으면 그들은 보호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악인들과 함께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 자비를 기억하신다.

3. 부패와 타락이 우주적으로 만연된 시대일지라도 모범적인 언행으로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의로운 전도자들"은 그런 우주적인 파멸로부터 보호함을 받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사람들을 섬기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창조한 피조물이지만, 죄인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런 피조물들을 도구로 이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물을 가지고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

5.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심판을 내리셨을까? "그것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건치 못하게 될 때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철저한 멸망을 받도록 내버림을 당하게 된다.

Ⅲ.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셨는가 살펴보자. 그것들이 비록 여호와의 동산과 같은 땅에 위치했었다 해도, 그 열매가 풍성한 땅을 사람들이 죄로 물들게 할 때, 하나님은 쉽사리 그 땅을 벌거숭이의 땅으로 전락시키고, 물댄 동산과 같던 땅을 먼지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1. 어떤 정치적 결속이나 동맹도 죄많은 백성들에게 내릴 심판을 막아 주지 못한다. 소돔과 그 이웃 도성들이 그들의 정치적인 세력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마치 천사들이 본성적인 위엄으로도 그리고 옛 세상이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과 같다.

2. 하나님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을 심판하시는데 뿐은 피조물들을 역이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옛 세상을 물로," 소돔은 불로 심판하셨다. 물과 불이 그의 백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은(사 43:2) 그것들을 가지고 그의 원수들을 전멸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가 못하다.

3. 가장 흉악한 죄는 가장 비참한 심판을 초래한다. 지독한 악독을 행하는 자들은 질병을 통해 그 악독이 기억된다. 여호와 앞에 범죄하는 자는 가장 무서운 보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이전 시대에 있어서 죄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후에 오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나중 사람들은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 다만 그들의 세월만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의 삶의 과정과 방법까지 따르는 것이다." 경건치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여전히 불경건한 상황을 계속하면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보복의 예들을 통해서 크게 각성해야만 한다. 그러한 보복의 예들은 우리를 권고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 살고 있을지라도, 이미 약속된 바 죄의 용서를 얻도록 이끌어 주기 위한 것들이다.

 

2:4 없음.

 

2:5 없음.

 

2:6 없음.

 

2:7

의인의 구원 (베드로 후서 2:7-9)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는 멸망을 내리실지라도, 의로운 구원을 명령하신다. 하나님이 불과 유황을 사악한 자들의 머리 위에 내리실 때에도, 그는 의로운 자들의 머리를 싸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그들을 숨겨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하나님께서 솔을 보호해 준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롯의 인품을 살펴보자. 그는 "의인"이라고 일컬어졌다. 이는 대체로 그의 생각이 바르고 언행이 착실하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단순한 하나의 행동을 보시고 그 사람을 의인이라든가 또는 불의한 자라고 판단치 않으시고, 그의 삶 전체 과정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그런데 여기 온갖 선에서 떠난 부패하고 타락한 세대 중에 한 사람의 의인이 있다. 그는 악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불의한 도시 가운데서도 의로운 걸음을 걸었다.

2. 다른 사람들의 죄가 이 의로운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악 가운데서 즐기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그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악인들과 함께 하면 우리는 죄 의식과 비탄에서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일지라도 이를 괴로워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가 있다.

3. 이 선량한 사람의 슬픔과 고통의 기간 및 그 고민의 원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있다. 그것은 "날마다"의 일이었다. 그는 그들의 악행을 흔히 듣고 보았어도 만성이 되지 않았으며, 거기에 따라서 일어나는 공포심을 무디게 하지도 않았다.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심판에서도 보호를 받는 의인이다. 이러한 예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을 구해 주시고, 그의 원수를 벌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인이라 할지라도 유혹과 시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마귀와 그 수족들은 의인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고통을 퍼부을 것이며, 의인들은 이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늘에 가기까지는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예상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한다.

(1)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을 알고 계신다. "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을 따로 세우신다. 그리고 다섯 서읍 중에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아신다. 또 비록 그 숫자가 많아도 하나님은 그 중의 하나라도 모르고 넘기거나 무시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길과 방법을 모르시지 않으신다. 그들은 때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주신다.

(3)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하시는 일이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들을 "시험에서" 건져내며, 그들이 죄 가운데 떨어지는 것과 그리고 환란으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을 막는 길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능력은 이를 실천에 옮기게 하신다.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시련이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막아 주실 수도 있을 것이다.

(4) 하나님은 경건한 자와 사악한 자들을 크게 차별을 두고 대하신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멸망에서 구원하실 때에도 그의 그 원수들은 멸망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불의한 자들은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길이 없다. 불의한 자들은 "심판날까지 지키심을 받는다. "

[1] 심판의 날이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다. "

[2]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을 보존시키고 계신 것은 다만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것이다.

 

2:8 없음.

 

2:9 없음.

 

2:10

거짓 선생들(2) (베드로 후서 2:10-22)

Ⅰ. 사도 베드로의 의도는 미혹자들에 대해서 우리를 경고하며, 또 우리를 무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는 이제 보다 각별하게 그들에 대해서 언급하며, 그들의 성격과 행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화제를 돌리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가인이 무서운 복수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서도 각별한 보도를 받은 것과 같이, 가장 가혹하며 과중한 최후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 한동안 무법한 자들을 보전해 두시는 이 세상의 공의로우신 심판자에 대해 유감없이 바르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런 거짓 선생들을 이같이 다루시는 것일까? 이점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Ⅱ. "거짓 선생들은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이다. "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각과 욕망에 따라서 산다. 그들은 그들의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에 굴복시키거나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를" 거부하면서, 그들 자신의 정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훈에 정반대 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행하며, 타락된 본성의 요구에만 응하며 산다. 악한 생각은 종종 악한 행위를 수반한다. 또 죄를 퍼뜨리는 자는 불법을 증진시킨다. 그들은 자신이 현재 처하고 있는 더러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 그들이 이미 저지른 불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도 만족치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며" 그들의 죄악의 길을 계속 걸어가며, 불신앙적인 것과 불결하고 부정한 것을 더 한층 증대시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권위있게 세우시고 그들에게 존경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다. 우리는 그러한 것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다. 이는 그들이 대담하고 용감하며, 완고하기 때문이며, 마음속에 저주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혀를 가지고서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 대해 비방하며 비난하는 말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Ⅲ. 사도 베드로는 보다 탁월한 피조물들, 비록 "천사들"일지라도 그들의 매우 특별한 상태에 대해 진술함으로 그들의 죄가 더욱 가중된 것임을 보여 준다.

1. 그들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와 힘으로 옷입히운 자들보다 월등하다. 더욱이 그들은 다스리는 이들을 비방하는 거짓 선생들보다는 더욱 월등하다. 선한 천사들은 모든 본성적인 것과 도덕적인 우월성에 있어서 힘과 이해 그리고 거룩함이 우리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2. 선한 천사들은 그들 자신들이나 우리 또는 그 양편 모두에게 대해서, 죄를 지은 피조물들에 대한 고발자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왕좌 앞에 설 수 있도록 허락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열심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들의 잘못을 꾸짖고 나선다.

3. 천사들은 죄를 지은 피조물들을 "주 앞에서 송사한다. " 천사들은 그들의 잘못을 판단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들의 죄과를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 공공연히 어떨 수 방하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직 이러한 송사는 심판자이시며 모든 불신앙과 불의에 대해 보복하실 주님 앞에서만 행해진다.

4. 선한 천사들은 아무리 악한 불법과 범죄들을 송사 할지라도 가혹한 욕설과 천박한 훼방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천사들의 본을 받아야 한다. 만일 불법한 자들에게 불평할 만한 일이 있으면 이를 하나님께 돌려야 하겠다. 그것도 걱정과 욕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정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야 우리는 자비하시고 긍휼히 넘치시는 분에게 우리가 속해 있다고 것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Ⅲ. 미혹하는 선생들이 탁월한 피조물들과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11절)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12절) 그들이 제일 미천한 피조물들과 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각이 없는 말과 노새와 같다. "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없는 짐승과 같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지 못하므로 이성을 활용하거나 또는 그 이성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보는 것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다. "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감각에 의해서만 사물을 판단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감각이 사물을 즐겁고 유쾌한 것으로만 나타내 줌으로 그들은 그렇게 인정하고 귀하게 여긴다. 짐승들이 자기들의 감각적인 기호의 본능을 따르는 것처럼, 죄된 인간의 부패한 마음의 성향을 따른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각과 이성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무지는 훼방의 원인이 된다.

2. 멸망은 무지의 결과에서 올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부패로 말미암아 멸망당한다. 그들의 악함은 내세에 가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 그들 자신들을 들어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있어서도 종종 불행과 파멸을 초래한다. 확신컨대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으며" 죄의 폭로가 죄에 대한 매력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교만한 범죄자들은 마땅히 이 세상에서도 곤욕을 치르며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불의에 대한 마땅한 대가"일 뿐이다. 이러한 죄인들은 도박군이 스스로를 속이듯이 불행 중에 자기들 스스로를 속이며, 그들이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왜냐하면 그들이 범하는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를 유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축제와 먹고 마시는 데 있어서의 무절제함은 그들로 하여금 갖은 양상의 음탕한 죄를 저지르게 한다. 그만큼 그들의 "눈은 음심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방탕한 모습은 자신의 불순한 정욕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와 유사한 것을 유발케 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범죄하기를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색욕을 갈망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마음은 만족을 모르며, 그들의 눈은 부정한 욕망을 만족을 시킬 수 있는 것을 끝없이 찾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죄를 짓는데 뻔뻔스러우며 또 끊임없는 범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같은 범죄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열심히 유혹하며 때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리고 "불안정한" 가운데 죄와 불경으로 이끌려 갈 위험에 놓여 있는 자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 보자. 은혜가 충만치 못한 마음의 소유자는 쉽사리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되거나, 아니면 그런 음탕한 사람들을 쉽사리 설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탕하며 음란할 뿐만 아니라 또한 탐욕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이러한 간계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요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들의 영혼의 욕구는 이 세상의 재물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이 세상의 재산을 모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일에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쏟고 있으며, 온갖 계획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그런 온갖 욕심에 자기 자신들을 내어 맡긴다면,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그들을 향해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경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내리신 저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그러한 저주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한다.

Ⅳ.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들어가면서(15,16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탐심 많은 자들까지도 "저주의 자식"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1.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났다. "이렇게 자기를 추구하는 자들은 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바른 길을 떠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2. 그들은 잘못된 길에 빠졌다. 그들은 잘못을 범했으며, 생명의 길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종당에는 지옥에 빠질 것이다. 베드로는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이 곧 그러한 길임을 보여 주었다.

(1) 그 길은 사람들의 불의의 삯으로 말미암아 이끌려 가는 불의한 길이다.

(2)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사물들은 죄인들이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삯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주 실망한다.

(3) 이 세상의 것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들은 저 세상의 더 좋은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사랑한 발람은 그가 가는 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길인 줄 알면서도, 그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벗어나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만들었다.

(4) 동일한 원리에 따라 악명 높은 죄인들과 함께 동일한 죄된 행실을 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사악한 범죄자들의 추종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종국에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모방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내세에는 "마땅히 차지하게 될 자리"에 이르게 된다.

(5) 사악하고 마음이 굳어진 죄인들은 때때로 그들의 죄에 대한 책망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는 길을 중단시키며, 양심의 입을 열어 주시기도 하시며, 놀라우신 섭리를 통해 그들을 놀라게도 하고 공포심을 느끼게도 하신다.

(6) 비록 흔하지 않고 특별한 책망이 잠시 동안 사람들의 용기를 좌절시키며, 죄의 길로 향한 그들의 빠른 발걸음을 저지시킨다고는 할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죄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거룩한 길로 들어서도록 하지는 못한다. 만일 죄를 책망하는 것으로써 한 인간을 그의 본연의 임무로 돌이키게 할 수 있다면, 사실 여기에 나타난 발람에 대한 책망은 그 효과를 나타냈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놀라운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사람으로서는 증명할 수 없지만, 하여간 "말 못하는 나귀"가 인간의 목소리로 그의 주인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그를 여기서는 선지자라고 일컫고 있다(민 22:23, 24). 하지만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들어 있었던 것처럼, 그도 여호와의 선지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나귀는 선지자의 광적인 행동을 폭로하며, 그가 악한 길로 빠져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일반적인 책망의 방식으로 돌이키게 할 수 없는 자들은 아무리 기적적인 방식을 통해 책망하더라도 그들을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제지를 받았으나 세상의 명예와 재물에 대한 강한 욕심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러한 제지를 벗어나 보려고 애썼다.

Ⅴ. 사도 베드로는 미혹하는 선생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다(17절). 그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그들은 "물 없는 샘" 또는 우물과 같다.

(1) 목회자들은 사람들이 교훈과 지도와 그리고 위로를 찾을 수 있는 "샘" 또는 우물이 되어야 한다.

(2) 그리고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구하는 이런 것들을 줄 것이 없다. 진리의 말씀은 생명의 물인데, 그것은 마시는 자에게 영혼의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들 미혹하는 선생들은 죄를 퍼뜨리며, 증진시키는데 힘 쓸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속에 진리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텅빈 상태로 있게 마련이다. 그들 자신이 무지하고 공허한 사람들로부터 우리들이 지식과 이해력을 얻어보려고 하면 그런 우리들의 기대는 허사로 끝날 수밖에 없다.

2. 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구름"과 같다. 우리는 구름에게서 우리를 시원하게 하는 비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구름은 비를 부어 주지 못하는 구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이기 때문인데, 그 바람은 성령의 바람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인기와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장을 내세우고 이를 퍼뜨리는 자들이다. 그리고 구름이 햇빛을 가리우고, 하늘을 흐리게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지식이 없고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말로 교훈을 어둡게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사람들이 어두움을 증진시키는 것을 볼 때, 다음 세상에서 그들은 반드시 어둠 속에 거한 것이 틀림없다. 위세가 당당한 미혹자인 마귀와 마귀가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그 추종자들을 위해서는 지독한 어두움이 마련되어 있다. 더욱이 그것은 영원히 마련되어 있다. 지옥의 불은 영원하며, 밑없는 심연에서 나오는 연기는 영원히 영원히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렇게 다루시는 것은 정당한 것이며 거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1) 그들은 그들이 대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며, 사람들이 고기를 잡듯이 그들을 올무 속에 가두어 넣기 때문이다.

(2) 소리는 크나 의미는 없는 허탄한 자랑의 말과 그럴 듯한 표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3) 그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매우 고마운 일이라고 하면서, "타락한 애정"과 그들의 "육체적인 정욕"에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4) 그들은 해롭고도 파괴적인 죄를 퍼뜨리고, 또한 이러한 죄를 지니고 있는 자들을 피하고 그들과 멀리 한 사람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적응력과 근면으로 죄와 허물을 증진시키는 기술과 재주를 터득하고 있다. 그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어부와 같이 이 방면의 기법이 훌륭하며, 매우 성공적이다. 이 사람들의 하는 일은 그들을 자기들의 뒤를 이을 제자들로 삼는 일이다. 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이 포섭하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 미끼를 적중시키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 그들의 방법과 술책을 살펴 볼 가치가 있다.

[2] 미혹하는 선생들은 그들을 이끌어 들이기 위한 관능적인 쾌락을 소유하기 때문에, 그들을 포섭하는데 특별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그들에게 자기를 부정하며 나갈 것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정욕적인 것을 억제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더 이상 번창해 나가지 못하며, 반면에 죄가 그토록 많이 번져나가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못된다.

[3] 한동안 진리를 고수하며 죄에서 멀리 하던 자들이 미혹하는 자들의 교활함과 근면 때문에 그들에게 속게 되면 그들은 한동안 깨끗이 피할 수 있었던 죄에 다시금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 경계하라. 여러분의 신앙적인 경계를 항상 유지하며, 성경을 상고하고, 성령께서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 이끄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동행하며 그리고 여러분을 타락한 심령으로 내버리도록 유발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경계하라. 그것은 여러분이 아름답고 허울좋은 거짓 선생들의 가식으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고 있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그들 자신의 악과 욕망을 따르는 죄의 방탕을 허락하는 것이다. "

이러한 사람들에게 붙잡혀 배도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베드로는 그들의 자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은 죄의 종이기 때문에 가장 악한 노예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욕은 그들을 완전히 정복해 버렸고, 그들은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육신의 지시에 순응하고, 그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육신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춤으로 전적으로 정욕에 매여 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매우 부패하고 타락하였기에, 그들에게 부과되는 일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영적인 원수들에 의해 정복당하고, 포위되었으며, 불의한 종들에게 항복하고 만다. "자신들이 죄의 종이요, 자신이 정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정복당하고, 그들에게 이끌려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미혹자들에게 이끌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하고 있다(20절). 그 자신이 죄의 노예인 자들에게 속으며, 쾌락으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이끌린다는 것은 부끄럽고 명예롭지 못한 일일뿐만 아니라,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로부터 깨끗이 떨어져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손해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중 형편이 처음 시작할 때의 형편보다 훨씬 못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사람들이 완전히 중생되고 구원받을 만큼 변화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더 크고 이름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세상적인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피하는 것은 이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로써 참으로 신실한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나, 공공연히 죄를 행하는 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 없겠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들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방탕의 생활을 영위하며, 악한 세대에 우리 자신을 내맡겨 버린다면, 이는 복음을 따라 살려고 힘쓰는 자들을 괴롭히고 또한 그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되며, 자존자이신 하나님께 대해 이미 반기를 들고 있는 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며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며, 또한 하나님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경화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한 동안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지킴을 받는다." 그들은 그들의 심령이 구원받을 만큼 중상되어 있지 못했던 자들이다. 종교 교육은 하나님의 은혜로도 새롭게 하지 못했던 자들을 제지시키고 있다. 우리가 만일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머리 속에 그리스도께 대한 추상적인 지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받아 간직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성화되지도 못하고 구원받지도 못한다.

셋째, 세상의 타락으로부터 한동안 피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 그럴 듯한 이론(異論)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거짓 선생들에 의해 우선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더욱이 무지하고 안정되지 못한 자들은 이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리게 되며, 이미 소유하고 있는 교훈의 진리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거니와, 이러한 미혹자들에 의해 언급되어지는 모든 이론(異論)에 대해 답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이 올무에 한 번 걸리기만 하면 그들은 쉽사리 넘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만 하며,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길을 잃어버리게 하고자 하는 자들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는 "한 번 피했던 사람이 또 다시 올무에 걸리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훨씬 나빠지기" 때문이다.

Ⅵ. 사도 베드로는 이 제 2장의 마지막 두 절에서 비교하는 상태는 무지한 상태보다 더 악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義)의 길"에 대한 지식을 얻은 후에도 그것을 저주하며 그 비슷한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교란 의의 길에서 그들이 어떤 부정과 그리고 진리의 말씀에서 어떤 거짓을 발견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도에 대해 이렇게 악의적인 평판을 가하며, 진리의 길에 대해 거짓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신랄한 비판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저버리는 자들의 불행은 어떤 다른 범죄자들이 당하는 불행보다 더욱 비참하고 또 필할 수 없는 것이다.

1.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불순종하며,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대해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 자들에 대해서도 분노하시지만, 그들의 행위로 복음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 더욱 분노하시기 때문이다.

2. 그 마귀는 한때 그를 떠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겠다고 고백하였다가, 다시 그의 손아귀에 들어 온 사람들을 더욱 면밀하게 주시며, 더욱 가까이 에서 감시한다(마 12:45). 그들은 더 심한 경계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토한 것을 다시 핥아먹으며, 그들이 한 때 멀리 했던, 그리고 그들이 한 때 증오했던 것과 같은 피와 불경건으로 돌아가며, 그리고 그들이 한 때 죄씻음을 받았던 것으로 보였던 종전의 더러움에 다시 빠지게 될 경우, 그들이 더 심한 경계를 받게 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자! 만일 이 마지막 두 절에서 성서가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것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죄에 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면, 우리는 전자 즉 기독교를 입증하고, 그 속에 간직된 것을 지키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의의 길이요, 거룩한 계명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 우리는 후자 다시 말해서 죄를 미워하고, 동시에 그 죄로부터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죄는 가장 공격적이며 증오해야 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2:1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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