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운명 (이사야 21:1-10)
우리는 앞에서(13장) 바벨론에 관한 한 가지 경고를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멸망에 관한 또다른 예언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구구절절이 말씀하시사 그의 백성들이 굳게 확신하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셨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때로(29:1 에서처럼) 이스라엘에게 친구인 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으로써 그들에게 때로는 정말 원수가 되었던 그 우정을 믿지 말것을 경고하시고자 했으며, 또 이것으로써 그들의 적대감을 무서워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고자 했다. 바벨론은 멸망할 운명에 놓여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 거울을 통해서 바벨론이 비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안으로 볼 때는 바벨론이 번영하고 있고 여왕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때에도 그러하다.
바벨론을 여기에서는 "해변 광야" 또는 "평지" 라 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평평한 땅으로서, 작은 바다와 같은(사람들이 에이레에 있는 호수들을 부르는 것과 같이) 호수나 협만으로 가득했고, 구스강의 여러 물줄기로 물이 풍성한 곳이었다. 바벨론이 유명해진 것은 근래에 와서이다. 바벨론 왕조가 앗수르 인들의 손에 있을 때에는 니느웨가 바벨론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바벨론은 모든 왕구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때에 바벨론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는데, 하나님은 그 이전에 이미 그들의 번성을 두려워하거나, 포로가 되었을지라도 때가 되면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예언자를 통해 바벨론의 멸망을 명백하게 그리고 반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고해 주신 것이다(욥 5:3; 시 37:35, 36).
혹자는 바벨론이 여기에서 광야라 불리우고 있는 이유는, 비록 그것이 지금은 사람이 많은 성읍일지라도 조만간에 광야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은 이 복음적인 예비자에 의해 매우 자주 예언되고 있다. 그것은 그 멸망이 신약 성서 교회의 큰 대적, 죄인의 파멸을 알리는 예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예언들을 차용한 많은 표현들이 들어있는 "요한계시록" 에 예언되어 있다. 따라서 그 책의 예언을 이해하려는 자들은 이것을 참고하고 대조해야 한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메대와 바샤 사람들은 바벨론을 강하게 급습할 것이다(1, 2절). 그들은 "광야에서, 곧 두려운 땅에서 올" 것이다. 군인들의 주요 훈련장인 메대와 바샤의 북방은 황폐하고 산이 많았다. 또 매우 막강한 군인들을 배출해냈으므로 그곳을 지나야 했던 나그네들을 두렵게 했다. "엘람" (즉 바샤)은 메대 군대와 합세하여 바벨론을 쳐 포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 이러한 종류의 일거리가 생겼을 때는, 비록 광야에서든 무서운 땅에서이건, 그 일을 하기에 적당한 도구들을 찾아내실 것이다. 이 군대는 "남방 회오리 바람같이" 급작스럽고 강하게 올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굉장한 소리를 낼 것이며 길에 높여 있는 모든 것들을 뒤엎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어떤 패잔병들이 그들에게로 투항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남을 속이는 자는 역시 속인다."역사가들은 가다타스(Gadatas)와 고브랴스(Gobryas)라는 바벨론 왕의 두 장군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중에 고레스왕에게 투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읍의 모든 거리를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당을 데리고 직접 왕궁으로 들어가 벨사살 왕을 살해했다고 한다. 이처럼 "속이는 자" 의 도움으로 "약탈하는 자는 약탈을 했다." 혹자는 본문(2절)을 이렇게 읽고 있다. "속이는 자, 바벨론을 속이는 자가 있을 것이며, 그 약탈하는 자(바벨론)를 약탈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또는 한 마디로 연결시켜서, 33장 1절에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속이는 자는 속이는 자를, 약탈하는 자가 약탈하는 자를 발견했다" 라고도 볼 수 있다.
바샤 사람들은 바벨론 사람에게 보복할 것이다. 즉 속임수와 폭력, 또 불의한 전쟁과 기만적인 협정으로써 그 이웃들을 삼킨 자들이 적수를 만나게 될 것이며, 같은 방법에 의해 그들 자신이 삼키울 것이다.
Ⅱ. 이 결과로 바벨론과 관계를 맺고 있던 자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1. 학대당하는 불쌍한 포로들에게는,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에게는 멸망자가 그들에게는 건지는 자가 되리라는 것을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을 포위하기 위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들을 때, 모든 탄식이 그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눈물을 구스 강물에 흘리지 않을 것이며, 수금을 다시 찾을 것이며, 이전에 그리워하면서 눈물짓던 시온을 기억할 때 미소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때가 되면 일어나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12:5). 하나님이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끊으실 것이며, 그들의 땅에서 악인의 막대기를 제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탄식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2. 교만한 압제자들에게는 혹독한 묵시가 될 것이며(2절), 바벨론 왕에게는 얼마동안 특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슬프게 탄식해야 하는 불가피한 운명에 처한 자로 나와있는 자는 바로 바벨론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같으리라……" (3, 4절). 이 예언은, 벨사살에게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즉 벨사살의 성읍이 함락되고, 사람의 손이 나타나 벽에 이상한 글씨를 쓰자, "그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며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 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쳤으며" 결국은 죽임을 당한 바로 그 날 밤에(단 5:6) 글자 그대로 충실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 슬픔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니엘의 그 해석은 그의 두려움을 증가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즉시 뒤따라와 문에 서있는 사형 집행자의 경보는 그것을 설상가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었다" 는 그 말은 벨사살의 멸망을 촉구한 그 상황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그는 주위에 술잔과 기생들 그리고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천 명의 그의 신하들을 거느리고서 극치의 환락과 유흥에 빠져 있던 날 밤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가 성전 기명들을 더럽히면서, 특히 하나님과 신앙에 도전하면서 그 자신에게 방해받지 않고 고요한 그리고 가장 절묘한 관능의 희열을 약속하던 때 즉 그의 환락의 밤은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변한 밤이었다. 그러므로 헛된 환락과 관능적인 즐거움을 따르지 말자.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 목의 고삐를 늦추지 말도록 하자. 우리는 그 환락이 어떤 쓰라림으로 끝날지, 웃음이 얼마나 빨리 애통으로 변할지 모르면서도 오직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리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쁨과 떨림을 함께 갖자.
Ⅲ. 그 대적이 바벨론을 놀라게 할 때의 바벨론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온통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있을 것이다(5절). "온갖 종류의 진수성찬으로 식탁을 베풀라.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안심하고 먹고 마시면서 유쾌하게 지낼 동안 망대에서 망보게 하라. 그리고 경보가 울리면, 방백들은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르고 그 대적을 따듯하게 환영해 줄 준비를 할지어다." 이처럼 그들은 방심 상태에 있으며, 마치 갑옷을 벗고 있는 자들처럼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입고 있었다.
Ⅳ. 바벨론이 고레스와 다리오에 의해 습격당하게 될 때의 놀라움이 묘사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위험한 시기에 보통 그렇게 하는 것처럼, 궁 가까이에 있는 망대에 파숫군이 세워져 있는 것을 이사야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 그 왕은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발견하기에 가장 편리한 장소에, 파수병을 배치하여 파숫군의 의무를 따라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라고" 명했다(6절).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에서(삼하 18:24) 그리고 예후의 이야기에서(왕하 9:17) 파숫군이 이처럼 보고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이 파숫군은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을 발견했을데, 우리는 그 속에 총사령관이 타고 있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샤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던 나귀 또는 노새가 끄는 다른 병거와, 마찬가지로 메대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던 약대가 끄는 병거를 보았다. 따라서 - 그로티우스(Grotius)의 견해대로 - 이 두병거는 바벨론을 치기 위해 결합된 두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이 병거들이 그 궁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고 있는 것일 것이다. 에레미야 51장 31, 32절과 대조해 보라.
바벨론 왕이 한쪽 구석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는 그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때, "보발군이 달려 만나고 사자가 달려 만나서 바벨론 왕에게 고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더이다 하리라" 고 했다. 이 파숫군은 저 멀리있는 이 병거들을 보고서 첫번째 소식을 받기 위해 자세히,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서(8절) "'사자로다'라고 그는 부르짖었다" (개역과 다름). 파숫군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분명한 음성으로 들렸을 것이고, 우리가 지금은 그 뜻을 모르지만, 그들은 그 뜻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주의를 환기시키는 신호였던 것 같다. 사자가 으르렁거릴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또는 "그는 사자같이 부르짖었다" (개역은 이렇게 됨). 사태가 매우 위급했으므로 사자같이 매우 크고 그리고 매우 절실하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1. 그는 지정된 그 위치에 꾸준히 있었음을 고백한다.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방금 전까지도 아무런 물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은 안전하고 조용해 보였습니다" 는 것이다. 혹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예언대로 바벨론의 함락을 기대했으나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불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합 2:1 처럼) 더 기다리겠다는 결심이 덧붙여 있다. "내가" 그 현재의 섭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기 위해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2. 그는 자기가 발견한 것을 알린다(9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이것은 그 적이 전력을 다하여 그 성읍으로 들어오고 있거나 그 소식이 그 왕궁으로 전해 오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환상이다.
Ⅴ. 바벨론의 패망에 관한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마침내 언급되어 있다. 병거에 있는 자가(파숫군의 말을 듣고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하도다." 또는 이 일의 결과에 대해 묻는 그 예언자에게 하나님이 이처럼 대답하셨다. "그것은 이제 이렇게 되어 바벨론은 정말 돌이킬 수 없이 함락되었도다.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 땅에 떨어졌도다." 바벨론은 매춘부(즉 우상 숭배)의 어미였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와 다투는 한 가지 이유였다. 그러나 그녀의 우상들은 이제 그녀를 보호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들 중 몇이 부숴져 땅에 떨어질 것이며 나머지 실어갈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나머지의 일부는 사로잡혀가 그것들을 나르는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46:1, 2).
Ⅵ.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였으므로 바벨론의 함락에 관한 이 예언은 특히 그들을 안위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합당한 때에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그들이 의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10절). 다음을 살펴보자.
1. 예언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준 명칭을 보자.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라고 했다. 이 예언자는 그들을 "자기의 것" 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예언자와 같은 조국의 사람들이었고, 그가 특별한 이해 관계와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들로 말하고 있으며, 그 땅의 신실한 자들, 즉 참 이스라엘인들에게 직접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1) 교회는 하나님의 마당이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가장 귀중한 과실과 소산물들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함께 모아져 쌓여있다.
(2)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마당의 곡식이다. 사곡한 자들은 짚과 겨에 불과하므로 많은 자리를 차지하나, 그 가치는 보잘 것 없다. 지금은 밀알이 겨와 섞여 있으나 머지않아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마당의 곡식은 환란과 핍박으로써 타작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의 옛 이스라엘은 흔히 젊었을 때부터 밭 가는 자의 쟁기(시 129:3)와 타작하는 사람의 도리깨 밑에서 고통당했다.
(4) 그 때에도 하나님은 그것을 자기의 타작한 곡식으로 인정하신다. 그것은 여전히 그의 것이다. 아니, 그것을 타작하는 것은 그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그의 제지와 지시 하에 행해진다. 그 타작하는 자들에게는 그 명령을 거역할 권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 단지 "위에서부터 그들에게 허락된" 권력을 지닐 뿐이다.
2. 이사야는 그들에게 전달한 자기의 말의 진실성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실하므로, 그들은 거기에다 소망을 둘 수 있었다.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대로" - 내 자신이 꾸민 이야기나 공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만을 - "너희에게 고하였노라" 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교회에 관한 모든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만군의 주시요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즉 그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능히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교회의 유익이 되는 일이면 모든 행하실 수 있는 은혜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며, 그의 예언자들의 말은 곧 여호와로부터 받은 말씀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선포하도록 맡기신 것 중 그 어느 것도 감히 묻어 둘 수 없는 것처럼, 그가 그들에게 알리시지 않은 것을 그로부터 받은 것으로써 선포할 수도 없다(고전 11:23).
두마에 관한 경고 (이사야 21:11,12)
두마에 관한 예언은 매우 짧으며 동시에 이해하기에 모호하고 어렵다. 혹자는 두마가 아라비아의 일부이고, 그 거민들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의 혈통을 잇고 있는(창 25:13, 14) 게달 자손들처럼(16, 17절), 이스마엘의 여섯째 아들인 두마의 혈통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혹자는, 여기에 세일산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두마를 에돔사람들의 땅인 이두메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어떤 이웃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며, 그들의 환란이 여기에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 환란에 대비할 것을 그들에게 예고해 주기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위험을 당한다 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그들이나 다른 민족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할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피조물에 대한 모든 신뢰는 결국 우리를 좌절 시키며, 그런 것들은 우리의 밑에서 부러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피조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점을 그들에게 지우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이 성취된 역사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풀이하기가 어려울지라도, 그것을 적용시키기는 쉬울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한 에돔 사람이 그 파숫군에게 질문을 한다. 어떤 사람이 "세일에서 (소리쳐) 불렀다." 그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태평스럽고 방심한 상태에 있지만 남달리 공적 안녕과 복지에 관심이 깊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을 통해서 바울에게 도와 주기를 원한 것처럼(행 16:9), 환상 중에 세일산의 이 사람은 그 예언자가 그들에게 알려 주고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공적 평화에 속한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인들은 아무 것도 주의하지 않고 있을 때, 세일에서 온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의 충고를 구하며, 기꺼이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그 질문은 심각하다.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하는 것이다. 그 질문은 그 사람, 곧 그 "파숫군" 에게 적당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직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요, 진심으로 묻고 대답 얻기를 원하는 자라서 그 질문을 되풀이 하고 있다. 다음 사실들을 주목해 두자.(1) 하나님의 예언자들과 사역자들은 파숫군으로 임명된 자들이요, 우리는 그들을 그러한 자로서 간주해야 한다. 그들은 평화시대에 성읍에 있는 파숫군으로서, 모두가 안전한가를 살펴야 하고, 문마다 두드리면서 각 사람에게 물어야 하며(문이 잠겼는가? "불 관리는 잘 되어 있는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들을 지도해 주고, 무질서한 자들을 제지시켜야 한다(아 3:3; 5:7). 전시에는 그들은 주둔지에 있는 파숫군과도 같다(겔 33:7). 그들은 대적의 행동을 주시해야 하며 그것을 통고해야 한다. 즉 관측하고 나서는 경고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극기해야 한다.
(2) 파숫군에게 묻는 것이, 특히 거듭거듭,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하고 묻는 것이 우리 의무이다. 파숫군은 다른 사람들이 잘 때에도 깨어있기 때문이다.
[1] 밤 어느 시기인가? 죄와 방심 속에서 오랜 잠을 잤으니, 이제는 일어나야 할 때,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지 않았는가?(롬 13:11) 우리는 할 일이 많다.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므로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파숫군, 몇 시인가? 어두운 긴밤이 끝나면 서광의 소망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2] 그 밤에 대해 어떤 소식이 있는가 "밤에 대해 무엇이 왔느뇨?" (혹자는 그렇게 풀이한다) "그 예언자는 오늘 밤 어떤 이상을 보았느냐?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노라." 아니면 오히려 "오늘밤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날씨는 어떤가? 무슨 새 소식이 있는가?" 라는 뜻이다. 우리는 경보를 예상해야 하며 방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여호와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하리라" 고 했다. 우리는 경보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우리의 터전을 지킬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다가 위험의 암시가 나자마자 즉시 우리의 무기, 곧 영적 무기를 들어야 한다.
2. 이 질문에 대한 그 파숫군의 대답을 보자. 그 파숫군은 비록 자기를 부르는 자는 세일산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졸거나 잠자코 있지 않고서 그에게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이 오리라."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 것이다.
(1) 그것은 하나의 예보였다. "먼저 빛과 평화와 기회의 아침이 온다. 너는 또 한날의 안락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고통과 재앙의 밤이 온다" 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과정 속에서 볼 때, 아침과 밤이 서로 교체되고 뒤를 잇는 것이 통례라는 것을 기억하자. 밤인가? 그러나 아침이 온다. 그리고 새벽은 자기의 자리를 알고 있다(시 30:5). 낮인가? 그러나 밤은 또 온다. 젊음과 건강의 아침이 있다면, 병과 노년의 밤이 올 것이다. 그 가정에, 그 사회에 번영의 아침이 있을 때에라도, 우리는 다른 변화를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통 재앙의 밤을 보내시기 전에, 기회의 아침을 주시어 그의 백성들이 그 불가피한 폭풍과 그밖의 것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신다.
(2) 하나의 자극을 주면서 대답했다 즉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현재의 아침을 이용하여 그 후에 올 밤을 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세밀히 알아보라. 인내하라. 즐거이 순종하라."
본문의 표현법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할 일을 선택케 하기 때문이다.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알아 보고 싶으면 알아보자). 물으려 하지 않는다면, 네게 위험하다. 너는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정중한 제안이 네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또한 결단을 재촉받고 있다. "만일 네가 말하려거든, 잠자코 있지 말고 그렇게 말하라. 네가 하려는 것을 빨리 하라.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그들에게는 할 일은 매우 많은데 할 시간은 조금밖에 없으므로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아라비아의 운명 (이사야 21:13-17)
아라비아는 가나안 땅의 동편과 남편에 위치한 큰 나라였다. 그 중 대부분의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소유했다. 여기에서 "드단"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13절) 그두라가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은 드단의 후예들이다. 데마와 게달의 거민들은 이스마엘의 혈통이었다(창 25:3, 13, 15). 아라비아 사람들은 대개 천막에 살았고 가축을 지녔으며 노동에 단련된 강인한 백성들이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그들과 더 호전적인 동방 민족들 간에 있는 일종의 벽으로서 아라비아 사람들을 의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는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영문은 "짐 - burden)를 들을 것이며, 그 아라비아는 결국 자기들의 힘에 겨워 몰락하게 되고 말게 것을 볼 것이다.
Ⅰ. 멸망시키는 군대가 칼, 곧 "뺀 칼" 과 "당긴 활" 과 온갖 "전쟁의 어려움" 을 가지고 그들에게로 올 것이다(15절). 아마 막강하고 의기양양한 군대를 이끌고 행군하던 앗수르 왕은 도중에서 아라비아를 지나게 되었고, 거기에서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땅을 쉽게 빼앗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전쟁의 슬픔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평화의 축복에 감사해야 하겠다.
Ⅱ. 이 결과로, 그 불쌍한 나라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도망하여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드단 대상(隊商)" 들은 그들의 대상과 함께 대로로 다니곤 했으나, 이제 부득이 그 길을 떠나 "아라비아 수풀에 유숙하게" 될 것이며(13절), 예전처럼 그들의 천막의 편익을 얻지 못하게 되어, 가난하게 되고 풍파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Ⅲ. 그들이 자기들을 침입한 군대를 도망하였을 때는, 음식물이 없어 곧 죽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영양 공급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데마 땅의 거민들아(그들은 아마도 드단 대상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엇을 것이다)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너희가 불쌍히 여겨야 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방황이 좋아서 떠돌아다니는 자들이 아니요, 낭비 때문에 궁핍해지게는 되지 않았다. 단지 칼날을 피하여 도망하게 된 것뿐이다." 데마는(우리가 욥 6:19 에서 발견하듯이) 때때로 물이 모자라곤 하던 지방이다. 그리고 아마 그곳의 귀한 물은 이 고통당하는 불쌍한 피난민들에게 특히 반가운 것이 되었으리라고 단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자.
1. 환란을 예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죽기 전에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성읍에 살던 사람들이 부득이 숲에 유숙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떡을 마음껏 먹는 자들도 필요한 양식의 부족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산은 그리 견고하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요동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리 높지도 않다.이 아라비아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서 역경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이 재앙들을 더 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2.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우리도 언제 우리가 그렇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기꺼이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라. 그리고 떡이 필요하여 구하는 자에게 그것을 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들을 대접하라. 요청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주라." 그렇게 하는 자들은 나중에 그것이 기억되어 자기들의 칭송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우리가 읽는 바대로) 데마 사람들이 목마른 자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곧 쓰러지는 자들을 부축한 사실이 여기에 기억되어 그 땅의 칭송이 되고 있다.Ⅳ. 게달의 모든 자랑거리들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무수한 소떼와 약대를 자랑했는가? 그들은 그 대적에 의해 모두 쫓겨날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전시에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궁수는 그 대적을 저지시키기 보다는 자신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가 줄어들어, "그 남은 수가 적으리라" (17절). 그 강건하고 숙달된 사람들과 활동가들도 매우 극소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방어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기 때문에 가장 위험했고, 제일 먼저 그 대적들의 칼에 쓰러지거나 그 대적들의 수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명을 띠고 임할 때는, 궁술이나(궁수들이 아무리 과녁을 잘 맞추었을지라도) 강한 자의 용맹도 그 심판에서 백성들을 막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것은 오히려 당사자들을 위험하게 한다. 이처럼 곧 무로 돌아가버리는 것들은 아무런 자랑거리가 못된다.
Ⅴ. 이 모든 것은 삽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품군의 정한 기한 같이(정확히 계산하여 일년 내에) 이 심판이 게달에게 임할 것이라" 고 했다. 이 정해진 기한이 지금 우리에게는 큰 의미를 주지 못할지라도(우리는 그 예언이 전해진 때나 그것이 성취된 때를 발견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당시의 아라비아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일깨워, 니느웨 사람들처럼 심판이 방금 문에 도착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 심판을 막을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심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곧 심판의 목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즉 한 해에 시작되고 끝났을 것이다.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순식간에 큰 일을 행하실 수 있다.
Ⅵ. 이 경고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리로써 인정되고 있다(1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셨도다. 너희는 나의 말을 그의 말씀으로 여겨도 좋다" 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말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 그리고 다시(17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했다. 그들에 관한 하나님 자신의 은혜로운 계획을 이행하시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권능은 속이지 않으리라" 는 것을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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