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의 교회 모습(이사야 2:1-5)
이 설교의 명칭도(1절) 본서 이사야서의 명칭과 같다(1:1). 단지 앞에서는 "이상" 이라 일컬어지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이사야가 받은 말씀" (그가 본 문제나 일)이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가 그의 육안으로 본 것처럼 그 자신의 마음으로 아주 확신했던 진리였다. 또는 이 말씀이 그에게 이상(異象) 중에 왔다. 즉 그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메시지를 받을 때 본 것이다. 요한은 그에게 말씀하신 "음성을 알아보고" 몸을 돌이켰다고 했다(계 1:12).
이 설교는 마지막 날, 모세적(的) 시대의 후기에, 이 세상에서 메시야의 나라가 세워질 그 메시야의 날에 관한 예언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세상의 예루살렘의 마지막 날에, 즉 그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바로 직전에, 이 하늘의 예루살렘이 세워질 것이다(히 12:22; 갈 4:26). 복음의 시대는 마지막 때라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1.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이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바요, 마침내 온 것이기 때문이다.2. 우리는 우리가 복음에서 얻는 것 이외에 또 다른 거룩한 은혜의 시대가 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갈 1:8, 9).
3.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렸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 그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이 그 마지막 때이다" (요일 2:18).
이제 그 예언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Ⅰ. 이 세상에 기독교가 세워지고, 기독교 신앙이 심어지리라. 그 때 기독교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될 것이다. 그 신앙이 고백되는 곳에, 하나님은 옛날 시온 산에 있는 성전에서 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실 것이며, 백성의 경의를 받으실 것이고, 교훈과 축복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약서에 의해 형성된 복음의 교회가 그 때에아브라함의 모든 영적 후손들이 모이는 집결자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약속되어 있다.
1. 기독교 신앙이 공개적으로 가르쳐지고, 고백될 것이다.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모든 산 꼭대기에서(난외의 설명대로) 기독교가 "마련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숨기우지 못하는" 산 위에 있는 동네에 비유되어 있다(마 5:14). 그들을 주시하는 눈들이 많다. 그리스도 자신도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다" (요 18:20). 사도들이 행하는 것도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었다(행 26:26). 그것은 등불, 촛대 위에 세워진 불이었다. 그것이 모든 곳에 "대하여" (against) 말해졌다는 것은 그것이 모든 곳에 "관하여" (of) 말해졌다는 것으로 추측된다.2. 그것은 견고해지고 깊이 뿌리 박을 것이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진 영원한 산 꼭대기에 세워질 것이므로 그들이 산을 몽땅 뽑아 버릴 수 없는한 "음부의 권세도 그것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안전하게 거하는 자는 "높은 곳에 거하는" 자들이라 했다(33:16). "주께서 복음의 시온을 세우셨도다."
3. 그것은 모든 도전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모든 경쟁을 압도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날" 것이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고전 2:7)는 이 세상의 모든 지혜, 그 모든 철학과 책략을 능가할 것이다. 기독교가 가져올 영적 예배는 이방의 우상 숭배를 진압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종교의 모든 제도들은 이것과 비교해 볼 때 천하고 보잘 것 없게 보일 것이다(시 68:16 참조).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려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Ⅱ.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들어오리라는 것을 예고했다.
1. 열방이 그리로 들어오도록 허락받을 것이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뜰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던 무할례자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을 못들어 오게 하던, 가까이 못오게 하던 칸막이는 제거될 것이다.2.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그들은 접근할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를 활용할 것이며, 무수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물줄기처럼 그리고 모여들 것인데, 이것은 복음이 만들게 될 개정의 풍성함과 그들이 속히 그리고 기꺼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누구에 의해 강요받지 않고서도 자연히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주의 백성이 즐거이," 모두 자원하여 헌신할 것이다(시 110:3). 그리스도께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다(창 49:10; 사 60:4, 5 참조).
Ⅲ. 이 개종자들의 모임은 서로에게 예고했다. 도움과 격려를 줄 것이다. 개종자들의 경건한 열정과 결심이 아주 긴밀히 함께 섞여 있으므로, 그들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일년에 세 번씩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 그들이 길에서 그들의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가자고 선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방인들이 그들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들과 함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청할 것이다(3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비록 그것이 힘들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영혼이 그에게로 향해 올라가는 것을 도울 분 여호와의 산이로다." 하나님과의 언약과 교제를 가지려는 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와 함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을 배우자. 서로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고, 서로를 초대함으로써 성도들의 교제를 촉진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일이다. "너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 우리는 집에 머물러 있겠다" 라거나, "우리는 가겠다. 너희는 너희 마음대로 하라" 라고 말하지 말고, "오라 우리가 오르자. 우리가 일제히 올라, 서로의 손을 힘있게 하고, 서로의 명성을 지지하도록 하자" 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상의해 본 후에 가겠다" 라고 말하지 말고, "오라 우리가 곧 오르자" 라고 말해야 한다(시 122:1 참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자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복음의 교회가 여기에서는 "여호와의 산" 이라 불리울 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 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 안에 야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보존되어 있고, 그의 기도하는 자손이 그 안에 지켜져 완성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에게로 그는 결코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리라" 고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45:19).
이제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보자.
1. 그들은 "여호와의 산" 에 오르는 일로 인하여 스스로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거기에는 "그가 그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의 도는 그의 교회에서 그의 백성과의 교제 속에서, 그리고 제정된 규례가 사용되는 가운데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의 도와 우리를 향해 행하시는 은혜의 도가 그의 교회 속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당신의 말씀과 성령으로써 그 백성을 가르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의 도를 배우기 위해 그의 거룩한 산에 오르는 수고는 값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 수고를 하려하는 자들은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2. 그들이 "스스로에게" 또는 서로에게 약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그가 그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면,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만일 그가 우리에게 우리의 의무를 알게 하신다면, 우리는 그의 은혜에 의해, 그것을 행하는 일에 유념할 것이다." 이러한 겸손한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배우지도 못한채 내어 쫓김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Ⅳ. 이러한 일을 이룰 방편을 예고했다.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라." 즉 옛적에 모세의 율법이 시내산에서부터 나온 것처럼, 신약의 법이 곧 그리스도의 법이, 심지어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복음은 하나의 법, 곧 믿음의 법이다. 또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 이다. 그것은 성전이 세워졌던 "시온에서부터,"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왔다." 그리스도 자신도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다(마 4:23; 눅 23:5).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만방의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주실 때에, 그는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고 명하셨다(눅 24:47; 롬 15:19 참조). 제자들 중 대부분이 갈릴리에 집이 있었지만 그들은 "성령의 약속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했다(행 1:4). 그리고 시온산에 있는 성전에서 그들은 복음을 전파했다(행 5:20).
이러한 영예가 예루살렘에 허락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영예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까지도 그러했었다. 그리고 복음의 교회가 "산 꼭대기에 굳게 선"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어난 이 복음에 의해서였다. 이것은 "시온에서 내어 보내" 진 하나님의 힘의 지팡이였다(시 110:2).
Ⅴ. 이 세상에 구원받은 자들의 나라가 건설되리라 했다. "그가 열방 사이를 판단하시리라" 고 했다(원뜻은 열방을 다스리시리라는 것임 - 역주). 시온에서 그의 말씀을 내어 보낸 자가, 바로 그 말씀에 의해 사람들을 그 자신에게 복종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4절). 그 하나님은 지혜와 공의로 그의 교회의 유익을 의해 세상 일들을 명하고 지배하실 것이고, 그의 양심에 역사하는 그의 성령에 의해 그는 사람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견책이 사람들을 시험하고 제재할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적인 것이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Ⅵ. 이 세상에서의 복음이 성공한 결과로 큰 평화가 오리라 했다(4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라." 그들의 전쟁 도구가 농사에 쓰는 기구로 바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전쟁이 선포될 때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 것이다" 라 했다(욜 3:10). "그때에는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지금처럼,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전쟁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전쟁이 절대적으로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이 메시야의 날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도 아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들어서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라는 반론을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약속이 그에게서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그 시대의 평온함 속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그 때에는 전쟁이 대부분 그쳐 있었다. 그것은 "도적하는" 일로 입증되었다(눅 2:1).2. 복음의 의도와 힘은 평화를 이루고 모든 적의를 죽이는 것이다. 복음은 그 속에 평화에 이르려는 매우 강력한 책임감과 유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복음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과, 또한 전쟁과 싸움을 초래하는 인간의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마땅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3.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복음을 통해서 화해하고 함께 모일 것이며, 그들 사이에 이전과 같은 싸움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목자가 치는 한 양무리" 가 되었기 때문이다(엡 2:15 참조).
4. 그리스도의 복음은, 복음이 보급되는 한 사람들을 화평하게 만들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속에 널리 퍼지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만든다.
5.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애로써 유명했다. 그들의 대적들도 그것을 알았다.
6. 우리는 이 약속이 기독교 후기에 더욱 충실히 이루어지리라고 바랄 수 있다. 그 때에 성령은 위로부터 더 풍성히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땅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시면 누가 살리요?" 그러나 그는 합당한 때가 오면 그렇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죽을 인간과는 다른 분" 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여기에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온 실제적인 추론이 나와 있다(5절).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이라는 말은
1. 육신에 의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이것에 의해 "거룩한 시기" 를 받게 하라(롬 11:14). "이방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위해 준비하고 결심하며, 이처럼 서둘러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분투하여 그리로 올라가도록 하자. 그러나 이방인 죄인들이 거룩한 산에 대해서 야곱의 족속보다 더 나은 친구들이었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기로 하자." 이처럼 일부 사람들의 열심이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게 된다.2. 또는 야곱 집이란 영적인 이스라엘, 야곱의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복음 시대에는 이처럼 큰 지식(3절)과 이처럼 큰 평화가(4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특권을 함께 누리겠는가? 그 때를 기다리며,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오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 안에서 행하자."
(1) 이 지식의 빛 안에서 신중히 행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의 도(道)를 가르치실 것인가? 그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빛과 낮의 자녀들처럼 행하자" (엡 5:8; 살전 5:8; 롬 13:12).
(2) 우리는 이 평화의 빛 속에서 즐거이 행하자.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즐거이 행하고 이 기쁨이 하나님께로 귀결되게 하여 우리의 힘이 되도록 하자(느 8:10). 이처럼 우리는 의의 햇빛 속에서 행하자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사야 2:6-9)
이방인들이 부름받는 일은 유대인들의 거부를 동반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몰락이요, "저희의 실패이니, 그것이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다." 그리고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롬 11:12-15). 이 로마서의 귀절들이 본문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말하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이 예언자가 살고 있던 그 세대에게 회개와 각성을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씀들이다. 예언자들의 말씀은 그 후에 올 사건들의 모형으로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흔히는 그 내용이 자비이든 심판이든 간에 그 당시의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이스라엘의 멸망이 나와 있다. 이것은 두 단어, 즉 본 문단의 처음과 마지막에 제시되어 있는 두 단어 속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두 가지의 무서운 말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1. 그들의 경우는 처참하다. 매우 처참하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을 버리셨다" 고 했다(6절). 비참이란 하나님께서 버리신 백성의 상태를 말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었던 자들을 버리셨다면 그 진노는 매우 컸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대 교회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후에 형편이란 실로 이러했다. Migremus hinc - 즉 그리로 나아가자.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 23:38). 어떤 쓰라린 재앙이든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극심하게 임했을 때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도움과 구조를 그들에게서 거두어 들이시사 그들을 버리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원수들의 손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떠나기 전에는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신다.2. 그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아주 철저히 절망적이었다. "그러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라고 했다(9절). 이 예언적인 기도는 그들이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용서치 않으리이다."
이 말씀은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사함 받았다), 민족이라는 집합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임했으므로, 전체적으로 패망되었고 그들의 교회가 완전히 철거되어야 했고, 다시는 이러한 집단으로 형성되거나 그들의 옛 특허장이 회복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Ⅱ. 이러한 파멸을 당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공과와 그 근거가 되고 있는 이유가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그들에게 멸망을 초래하는 것은 바로 죄이다. 하나님을 격동시켜 그의 백성을 버리게 만드는 것은 이것 곧 죄이며 죄 외에는 없다.
이 예언자가 열거하고 있는 죄목들은 - 나중에 그리스도를 못박고 그의 추종자들을 박해하는 그들의 극한적인 죄악을 말해 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 그 당시에 그들 중에 만연되어 있던 죄악들을 말한다. 이사야는 이것을 그 때에 그가 가르치던 자들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이것을 언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세대의 죄악들이 결국에는 무서운 결과를 쌓아 올리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들이 바벨론에 유배됨으로 인하여 저들은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거부를 당했다. 그 유배는 모형이었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여기에 언급된 죄악들이 그들에게 초래한 결과이다. 그들의 죄악이란 바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하고 은혜로운 모든 계획을 아주 직접적으로 거역한 것이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 자신의 백성으로서 따로 세우셨다. 그들을 모든 다른 백성들과 구별하셨고, 그들보다 존귀케 하셨다(민 23:9). 그러나 그들은 "동방 풍속이 가득" 하였다. 그들은 외국인들을 "귀화시켰다." 그러나 "개종시키는지는" 않았다. 외국인들로 그들 가운데 정착하도록 격려했고, 그들과 섞여 살게 했다(호 7:8). 그들의 나라는 아랍인들과 갈대아인, 모압인들과 암몬인, 그리고 다른 동방 족속들이 거주했으며, 유대인들은 그들과 함께 그 열방들의 유행과 관습을 허용했고, 또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여졌다." 즉 그들을 좋아했고, 자기들의 나라보다는 그들의 나라를 더 좋아했으며, 그들을 따를수록, 더 점잖고 세련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면류관과 계약을 더럽혔다. 하나님께 낯선 자들을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될 위험에 빠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도를 곧 배우기 때문이다.2.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과 선견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판단을 내리는 제사장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무시했고, 블레셋 사람들처럼 술객이 되었으며, 점성술을 도입했다. 그리고 별이나 구름, 새의 비상이나 짐승의 내장 또는 다른 미술적인 미신에 의해 은밀한 것을 들추어 내거나 장차의 일을 예언하는 척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복술로 유명했다(삼상 6:2). 참된 신성을 무시하는 자들이 거짓된 점술에 속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처럼 거짓되고 허탄한 것을 위해 하나님과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긍휼을 버리는 자들은 분명히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고, 당신이 그들의 부와 힘이 되시겠다고 확신시켜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능력과 약속을 불신했기 때문에, 금을 그들의 소망으로 만들었고, 마필과 병거를 가득히 두고 거기에다 자기들의 안전을 걸었다(7절). 하나님은 왕들에게까지도 자기들을 위해 말의 수효를 증가시키고 "은금을 크게 더하는" 것은 분명히 금하셨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당신 자신만을 의지하도록 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처럼 은금을 가득 가지며 거대한 마필과 병거를 갖기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그들의 권세는 그 이웃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은 은과 금, 말과 병거를 갖는 것이 아니라,
(1) 그것을 탐욕스럽게 원하는 그 욕망이다. 따라서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흡족한 보화나 병거에는 그 한계나 제한이 없다. 이 세상의 것들을 충분히 가지고서도 그것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홀로 전능하신 분)에게서도 결코 만족을 못누리신다.
(2) 우리가 금은 마병이 없이는 안전하고 편하고 행복하게 될 수 없고, 오직 그런 것들이 있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의지하는 마음이 죄악이다.
4. 하나님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 그들의 숭배의 단독 대상이었고, 그가 친히 그들의 예배 의식을 제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그의 법령을 경시했다(8절). 그들의 땅은 우상이 가득했고 성읍마다 각각 신들을 가지고 있었다(렘 11:13). 그리고 그 땅이 아름다을수록, 거기에 맞게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호 10:1). 하나의 하나님으로서는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둘로서는 너무 많음을 발견할 것이나. 수 백 개의 하나님으로도 충족치 않을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우상의 수효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처럼 주책스러웠고, 이처럼 비참하게 흘려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공경했다." 마치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피조물이요 자기들의 생각으로 고안해 내서 "자기들의 손가락으로 만든" 그런 것이라야 그들에게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과 금을 풍성히 주셨는데, 그 은과 금으로 그들이 우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우상 숭배를 더욱 무거운 죄로 만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덕으로 "여수룬이 살지게 되더니" 마침내는 (하나님을) "발로 찼도다" (신 32:15; 호 2:8 참조).
5. 하나님은 그들을 번영시키셨고, 그들에게 영예를 부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비열하게 몰락시키고 업신여겼다(9절). "천한 자도 자기의 우상에게," 즉 조금이라도 이성(理性)의 흔적을 갖고 있는 가장 천한 것보다도 더 못한 것에게 "굴복했다" 고 했다. 죄는 아무리 초라한 사람들이나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인격을 저하시키는 일이 된다. 비천한 자가 그의 윗사람에게 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는 것" 은 매우 합당치 못한 일이다(44:19). 무식하고 바보스런 사람들만이 이런 짓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귀한 자" 도 자신의 위엄을 잊고 스스로를 굴복시켜 우상을 숭배했고, 자기 자신보다도 낫지 못한 사람들을 신으로 섬겼으며, 그 자신보다 더 비천한 돌을 신성시했다. 우상 숭배자들은 "음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낮춘다" 고 했다(57:9).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도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자기들을 비천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여 하나님께 굴복하려 하지 않으면서, 하찮은 우상에게는 절하기 위해 자신들을 굽히다니,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 그 심판에 의해서 천한 자들도 낮아지고 고귀한 자들도 굴복되리라는 경고라고 보고 있다.
우상 숭배자의 파멸(이사야 2:10-22)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면, 그들의 땅이 얼마나 황폐케 될 것인가를 여기에서 계속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처음에는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후에는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의 멸망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는 그것은, 비열하고 교만한 죄인들을 깨우치고 그들이 하나님보다 더욱 기뻐하고 의지한 착상을 제거해 버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방법을 말해 주는 일반적인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조만간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도를 모색하시리라는 것을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Ⅰ. 즉 그는 방심 상태에 있는 죄인들을 놀라게 하고 일깨우기 위해 방도를 모색하실 것이다. 그 죄인들은 스스로에게 화평을 약속하여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이다(10절).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라. 하나님이 매우 무서운 심판으로 너희를 칠 것이요, 그것을 알면 큰 놀라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을 피해야 한다. 그 때에 너희는 온갖 용기를 잃고, 나뭇잎만 흔들려도 떨 것이다. 너희는 기절할 것이며(눅 21:26)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할 것이다(잠 28:1)." 이와 같은 요지가 19절에도 있다.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 로, 곧 가장 어둡고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고 했다. 그들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할" 것이며, 자기들을 가리지 말라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들을 박멸시켜 달라고 할 것이다(호 10:8). 로마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눅 23:30), 그리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이교도의 권세가 멸망될 때(계 6:16)도 특히 그러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의 존귀한 영광을 두려워하니라." 그때는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삼키는 분이 되시며, 자기들은 그 앞의 지프라기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일어나서 땅을 진동시키시고, 그 땅에서 악인들을 뽑아버리시리라" (욥 38:13). 또한 그들이 의지하고 있던 세상적인 온갖 지주들과 함을 훼파하실 것이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욥 37:22). 그리고 그 영광은 조만간에 우리 모두를 그 앞에서 도망하도록 만들 것이다.2.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에게로 달아나지 않는 자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그에게서 떠나 거짓된 은신처로 달아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진노에 쫓기우는 자들이 그것을 피하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숨기거나 피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4. 세상의 것들은 흔들릴 것들이다. 그것들은 격동을 당하여 사멸을 향해 급히 달려간다.
5. 땅이 진동한다는 일은 땅 위의 것들을 전적으로 애착하고 있던 자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며, 또 앞으로도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6. 땅 자체가 진동할 때면, 토굴 속으로 피하려는 생각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과 위에 있는 거룩한 것 이외에는 피난처가 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Ⅱ. 하나님은 교만한 죄인들을 굴복시키고 낮추기 위해 방도를 모색하실 것이다. 그 죄인들은 남에게 크게 보이며, 스스로도 높게 생각하며 자기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자들이다.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리라" 고 했다(11절). 높은 것을 노리는 눈, 마음의 교만이 나타나 있는 얼굴은 수치와 절망으로 떨구어질 것이다. 그리고 "교만한 자가 굴복되리니," 그들의 의기가 꺾여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풀이 죽어서, 그들이 자랑하던 것들을 이제는 부끄러워할 것이다. 이것은 반복되어 있다(17절). "자고한 자는 굴복되리라." 교만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쓰러지고 말 것이다. 사람들의 교만은 어떻게 해서든 꺾일 것이다. 즉 그 교만의 화를 깨닫게 하고 교만한 자들을 겸손으로 옷입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이든, 또는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스로 굴복하던 그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버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꺾여질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도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는 교훈을 종종 하셨다. 그런 자는 참된 회개를 통해서 스스로를 낮추게 되거나.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고 그에게 경멸을 퍼붓게 될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1. 이것은 왜 불가피한 사건인가?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만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은 비천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교만한 자를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영예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며 욥이 감히 하나님과 겨룰 수 있다고 하던 그 주장을 반증하신다(욥 40:11-14).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인정하리라."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공의의 영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경쟁하나, 하나님은 그 자신의 영광을 지극히 위하시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스스로 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 대항한다. 그들이 그를 반대하므로 그도 그들을 반대하신다. 그러나 그는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 (시 46:10). 그리고 하나님이 홀로 높임을 받으실 그 날이 오고 있으며, 그 때에 그는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실" 것이다(고전 15:24).
2. 이 사건은 어떻게 행해질 것인가? 그들을 낮추시는 심판에 의해서 되리라. 즉 그 심판은 사람들에게 굴욕을 줄 것이며, 그들을 쓰러뜨릴 것이다(12절). "만군의 여호와의 날," 곧 그의 진노와 심판의 날이 "모든 교만자에게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무례함을 비웃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깨닫기도 전에 그의 날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시 37:13). 이 여호와의 날이 본문에는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에" 임한다고 했다. 제롬(Jerome)은 백향목을 하나님을 찬양하는(시 148:9), "여호와가 심으신" (사 41:19) "그의 나무" (시 104:16)라고 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백향나무 위에 임하고 있다. 제롬에 의하면 이 사실은 각계각층 사람들 중 일부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또 일부는 멸망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소리의 힘이 "백향목을 꺾는" 일례노 나와있으며(시 29:5), 여기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백향목에," 가장 곧고 당당한 레바논의 백향목에 - 상수리나무에, 가장 강하고 탄탄한 바산의 상수리나무에 - 자연적인 고지와 요새에, 골짜기 위에 솟아올라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이는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 에(14절) - 인공적인 요새, 곧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 에(15절) 임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1) 이러한 것은 그 교만한 백성들 자체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백향목과 상수리나무처럼 견고히 뿌리박고 있어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자들을 관목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온 땅을 채울듯이 보이는, 높은 산이요 솟아오른 작은 산들이다. 그들은 모두에 의해 응시의 대상이 되며, 그들 자신은 요동치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나, 하나님의 벼락이 가장 증오하는 자들이다. Feruntque summos fulmina montes - 가장 높은 산이 벼락에 가장 위험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 앞에서, 이 산들이 흩어지며 이 작은 산들은 엎드러지고, "초같이 녹아지리라" (합 3:6; 시 68:8). 이 허풍스러운 사람들은 시끄러운 종이 걸려있는 높은 망대와 같이 그들에게는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살인무기가 걸려 있다. 그래서 그것이 그들의 튼튼한 성벽이 되니, 그들은 그들의 천성적 강함(완고성)으로 무장하여 있고 요새화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2) 또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자랑하던 즉 그들이 신뢰하며 뽑내는 것들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이 자기들의 힘과 방위가 된다고 신뢰한 바로 그것들 위에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믿던 그 모든 병기를 앗아갈 것이니라." 레바논의 거민들이 자기들의 백향목을, 바산의 거민들이 자기들이 상수리나무를 자랑스럽게 여겼는가? 실로 그 점에서는 그들과 필적한 도시가 없도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그들의 백향목과 상수리나무와 또 그것으로 지은 집들을 훼파하리라. 예루살렘이 그 주위에 있는 산들을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자랑하거나 그 성벽과 보루를 자랑했는가? 그 모든 것들은 여호와의 날이 되면 뒤엎어져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힘과 안전으로 자랑하던 것들만이 아니라,
[1] 그들은 자기들의 대외적인 무역을 자랑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다시스의 모든 배에도 임할" 것이다. 다시스의 배들도 여호사밧의 배처럼 부서질 것이다. 그것들은 바닥에서 침몰하거나 항구에서 파선될 것이다. 스블론은 배의 정박지였으나, 그때에는 배가 출항하는 것을 더 이상 즐거워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백성 위에 멸망을 내리실 때면, 그는 그들의 온갖 출구를 막으실 수 있다.
[2] 그들은 대내적인 온갖 장식물을 자랑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즉(어떤 사람들의 해석대로) 그들의 배에 있는 그림이나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아마도 그리이스에서 배로 실어온 그림의 진본에도 임할 것이다. 그리이스는 후대에 가서 화가로서 유명했던 곳이다. "보기에 아름다운 모든 그림들(개역:조각물)에"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아마도 그 그림들은 그들의 친척들의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림들이 아름답기 때문이거나 그 친척들이 섬기는 신들을 그린 그림들이었기 때문에, 그 우상 숭배자는 그것들을 매우 좋아했을 것이다. 혹은 그 색조나 기교가 훌륭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찬양했을 것이다. 우리가 제 2 계명이나 제 7 계명을 범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만들거나 그림으로 우리 방을 장식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림으로 즐거움을 삼고 그것을 좋아하고 자랑하며, 자비를 베푸는 일에 쓰여져야 할 돈을 거기에다 사용하며 거기에 우리 마음을 두는 것은, 즐길 것이 너무 많은 자들이 나쁜 영향에 빠지게 되듯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여 우리에게서 그 모든 헛된 장식물들을 빼앗아가게 한다.
Ⅲ. 또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로 하여금 그네들의 우상과 그 우상에 대한 그네들의 온갖 열성과 경의를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방도를 모색하실 것이다.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다" 라고 했다(18절).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 하므로(17절), 하나님은 바로처럼 하나님께 대적하여 자기 자신들을 높이는 교만한 자들 위에 경멸을 쏟으실 뿐만 아니라, 신적 영예를 가로채려는 모든 거짓된 신들 위에 더욱더 경멸을 퍼부으실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없어질 것이다. 온전히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을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들은 완전히 쫓겨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거짓된 신들의 허탄함을 보자. 그들은 자기 자신을 안전케 할 수 없고 더욱이 그 숭배자들을 안전케 할 능력이 없다.2. 그들에 대한 참되신 하나님의 승리를 보자. "진리는 위대하니, 반드시 이기리라" 는 사실 때문이다. 다곤은 하나님의 궤 앞에 쓰러졌고, 바알도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러졌다. 이 방의 모든 신들은 쇠진케 될 것이며(습 2:11), 점차로 망할 것이다(렘 10:11). 의로우신 절대주께서 그 모든 사칭하는 신들을 이기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상을 없애실 뿐만 아니라, 그 숭배자들도 그것의 허탄함과 거짓됨을 은혜롭게도 깨달아 알게 되며, (에브라임도 그것을 깨닫고는 "내가 더 이상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랴" 라고) 최근에 자기들이 겪은 슬픈 경험, 즉 우상이 자기들을 도울 수 없다는 그 무서운 절망 때문에 그들은 우상을 버리게 될 것이다(20절).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나, 그들의 안전함을 위해 이처럼 피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신으로 만들어 놓고서 곤궁한 때에 친구로 삼기를 원했던 그 우상들을 두더쥐와 박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다 던져 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 우상의 짐에서 벗어날 때, "암혈에 들어가 여호와의 위엄을 피하게" 되리라(21절). 다음 사실들을 기억하자.
(1)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권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조만간에 그것으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매우 좋아했던 우상들을 심지어 가장 귀한 금은 우상을 아주 싫어하도록 만드실 수 있다. 탐심에 차있는 자들은 은과 금을 그들의 우상으로, 돈을 그들의 신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신뢰하였으나 그것이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것에 의해 보호받기를 기대했었으나 오히려 그것에 의해 위험을 당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곧 그것이 그들의 원수들을 이끌어들이고, 그들의 배를 침몰시키거나 그들의 도망을 방해하는 그런 때가 올지도 모른다. 사공들이 물건을 버리며, 심지어는 "밀을 바다에" 버리고(욘 1:5; 행 27:38). "아랍 사람이 급히 의복을 버린" (왕하 7:15) 때가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처럼 상한 갈대에게서 교육을 받은 사실에 화가 나서 그것을 던져 버릴 것이다(겔 7:19 참조). 우상 숭배자들은 그 우상을, 또 자기들이 그것을 의지했던 그 사실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될까 두려워하여 그들은 우상을 던져 버린다. 그것은 도적이 수색을 당하거나 추적을 당할 때는, 그가 훔친 물건들을 버리는 것과도 같다.
(3) 두더지와 박쥐가 거하는 가장 어두운 굴은 눈을 가지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우상을 스스로 거기에 던지도록 만드실 수 있다(30:22). 그때에 그들은 "그들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1:29).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로다" (렘 48:13).
(4) 사람이 죄를 싫어하며 떠나지만, 진실한 회개를 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즉 죄에 물렸기 때문에 싫어하고, 죄를 범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떠나나, 하나님께 대한 어떤 사랑으로 인해 회개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비굴한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하는 수도 있다.
Ⅳ. 하나님은 육신의 팔(인생들)을 의지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 신뢰를 부끄러워하도록 하는 방도를 모색하실 것이다(22절).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는 이것을 너희에게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미리 경계하여 불안과 실망으로 인한 수치를 막을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
1. "즉 사람은 얼마나 연약한가? 그의 호흡은 코에 있어, 매 순간마다 내어 보내져 조만간 영원히 사라진다." 인간은 죽어가는 피조물이며 곧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호흡이 들어있는 코는 신체의 외부에 속해 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문에 서있는 자처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콧구멍은 항상 열려 있어 그 속에 있는 호흡은 순식간에, 우리가 알기도 전에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슬프게도 인생에게는 중요하게 여길 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겉으로 보기와 다르며, 그 스스로 가장하는 바와도 다르며, 우리가 환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허탄한 것과도 같다. 아니 그는 허망한 것, 아주 허망한 것이다. 나아가 성소의 저울에 달아 볼때, 그는 허망한 것보다 더 못하며 더 가볍다.2. "따라서 인생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의 이득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아무리 지위높고 강한 사람들이라도 의뢰하지 말라.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는 사람의 능력을 마음에 두지 말라. 왜냐하면, 그 능력은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으며, 파생된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심판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너희 두려움이 되거나 너희 소망이 되게 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그에게 모든 인간의 능력이 속해있고, 거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그의 은혜를 믿고, 너의 도움을 위해 그를 택하라. 그리고 너희 소망을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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