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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지혜의 탁월함 (전도서 8:1-5)

Ⅰ. 지혜에 대한 찬사(1절). 즉 그 모든 실행에 있어서 사려와 분별의 인도를 받는 참 경건에 대한 찬사이다. 지혜로운 자는 선량한 자로서 하나님을 알며 그를 영화롭게 하고, 자신을 알며 자기 자신을 위해 잘 행동하는 자이다. 그의 지혜는 자기에게 큰 복이 되는 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혜는 지혜자를 자기 이웃 사람들보다 더 높여 주며 그들 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준다. "지혜자와 같은 자가 누구이냐?" 하늘의 지혜는 한 인간을 필적할 수 없는 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비록 많은 학식을 지니고 고귀하며 부자라 하더라도, 참 은혜를 얻어 하나님께 귀여움을 받는 자와는 필적할 수 없는 것이다.

2. 지혜는 지혜자를 자기 이웃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용한 자로 만들어 주며, 그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자로 만든다. "지혜자" 이외에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가 누구이냐?" 즉 시세를 이해하고 시대의 사건들을 알며 중대한 위기를 깨닫고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해야 마땅한지"(대상 12:32) 지시할 만한 자가 누구겠는가?

3. 지혜는 인간을 미화시켜 친구들 보기에 아름답도록 만든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혜는 인간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만든다." 지혜는 인간에게 명예를 입혀 주며 그의 모든 당화에 광채를 더해 주고, 그로 하여금 존중받고 주목받게 해 주며 존경을 획득하게 해 준다(욥 29:7 이하). 지혜는 그를 사랑스럽고 귀염성있게 만들며 자기 고장의 애인으로, 자기 나라의 복덩이로 만들어 준다. "그 얼굴의 힘"과 그 용모의 불쾌하고 혹독한 것이(후반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음)지혜로 말미암아 달콤하고 정중한 얼굴로 "변화될 것이다." 천성이 거칠고 무뚝뚝한 이들까지도 "지혜"로 인하여 신기하도록 바뀔 것이다. 그들은 온화하게 되고 점잖게 되며 즐거운 표정을 갖게 된다.

4. 지혜는 그를 담대하게 하여 자기 대적과 그 대적들의 공격과 냉소에 대항하게 한다. "그의 얼굴의 사나움"은 지혜로써 배가(倍加)"될 것이다." 지혜는 그의 용기를 더욱 크게 북돋아 주어서, 그가 정당하게 주장할 만한 사유를 가질 때뿐만 아니라 자기 지혜로써 그 일 처리를 어떻게 하고 "사리 해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알때에도 자기의 완전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성문에서 자기 대적과 말을 주고 받을 것이다."

Ⅱ. 우리에게 강요하는 지혜의 특수사례. 그것은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위에 세우신 정부에 대해 우리는 충성되고 평화로운 끈기를 가지고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1. 국민의 의무는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1) 우리는 법을 준수해야 한다. 입법권이든 사법권이든 관권이 개입된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그 명령과 법률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네게 권고한다." 이 말은 "내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전도자로서도 네게 훈령한다"라고 보충되는 것이 더 낫다. 그는 이 양자를 겸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한 가지 지혜로 네게 추천한다. 변혁하는 데에 몰두하는 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나는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한다. 어느 곳에서든 가장 높은 권력에 복종하라. 왕의 입을 관찰하라(이 말뜻은 다음과 같다).

"그가 말하는 대로 그가 네게 명령하는 대로 행하라. 그의 말을 법으로 삼거나 법을 그의 말로 삼아라." 어떤 이는 이 구절을 이러한 순종의 한계로 이해하기도 한다. "왕의 명령을 지키라.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맹세를 고려하고서이다. 즉 선한 양심을 지키며 하나님께 대한 네 의무를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이니,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네 의무가 왕에 대한 것보다 중요하고 또 우월하기 때문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라.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도록 순수하고 완전하게 예비해 두라."



(2) 우리는 턱없이 나서서 공공 행정을 비난하거나 우리 마음에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다 비난해서도 안 된다. 어떤 불만으로든지 정부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관직을 그만두거나 팽개쳐서도 안 된다(3절). "왕이 너를 노여워하거나 네가 왕을 불쾌히 여길 때, 그의 목전에서 급히 물러나오지 말라(전 10:4). 격정을 못 이겨 급히 사라지지 말며 조정을 단념하거나 나라를 버리고 싶을 정도로 왕에게 대한 질투심을 품지도 말아라." 솔로몬의 백성들은 그가 붕어하자마자 바로 이 규칙을 어겼던 것이다. 르호보암이 야박한 대답을 하자, 그들은 "그의 목전에서 급히 나갔고" 두 번 다시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도 않았으며 타협적인 제의를 용납지도 않고, "이스라엘아!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아마 그의 면전에서 물러 나갈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가기를 급히 하지는 말아라. 아주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한다."



(3) 잘못이 우리에게 드러났을 때 우리는 그 과오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네가 네 군주에게 어떤 잘못이라도 범했거든 의롭다고 우기지 말고 스스로 겸비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잘못은 그에게 더욱 노여운 것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어떤 불평으로 네 군주에게 흉계를 품었어도 그일에 착수하지 말라. 그러나 만약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 하였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빈 손으로 네 입을 막아라"(잠 30:32).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악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일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그 일이 우리에게 악한 것으로 드러나는 즉시 그 일에서 물러서야 한다.

(4) 우리는 우리의 기회에 신중히 순응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자구책(自救策)을 위한 것이 되며, 또 여러 사람들의 지탄을 위한 시정책도 되는 것이다.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느니라"(5절). 마음을 군왕에게 집중시켜 어떤 시기에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궁리하고 살피는 것은 신하의 지혜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왕의 노여움을 진정시키며 그의 총애를 얻고. 또는 이미 시행되는 법령 중의 과중한 것을 철회시킬 수도 있다. 에스더는 이하수에로를 다룸에 있어 "시기와 판단을 분별" 하느라고 무척 고심을 하였고, 따라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만사는 시기를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은 지혜의 일반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기업도 우리가 정확하게 기회를 포착하면 "그 때에는" 성공할 확률이 클 것이다.

2. 우리가 높은 권세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그는 어떤 논증들을 구사하고 있는가? 그의 논증은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말과 대동소이하다(롬 13:1 이하).

(1) 우리는 "양심을 위하여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유력한 복종의 원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고 한 맹세," 곧 우리가 정부에 충실하겠다고 한 충성의 서약, "왕과 백성간의 언약"(대하 23:16) 때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명에 의해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언약" 또는 계약을 "맺었다"(대상 11:3). "왕의 명령을 지키라."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너를 다스리겠다고 맹세하였고, 너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 속에서 그에게 충실하겠다고 서약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라고 칭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맹세의 증인인 동시에 만약 맹세를 서약자가 깨뜨리는 경우 그가 복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진노로 인하여"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왕이 차고 다니는 칼과 그가 위탁받아 가지고 휘두르는 권세는 그를 매우 무서운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행하느니라." 그는 큰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 권위를 지탱시킬 만한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4절). "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세가 있다." 사람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그 자는 잡혀오게 된다. 많은 자가 그의 명령을 시행하며, 그의 명령은 "사자의 포효"나 "죽음의 사자(使者)"들처럼 "왕의 진노"가 되거나 지고 한 통치가 된다.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 반박하는 자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 왕들은 자기들의 칙령이 논박되는 것을 참지 못할 것이며 복종만을 기대할 것이다. 요컨데 최고 통치자와 쟁론함은 위험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자들이 이를 후회하였던가! 시민은 왕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여러 군단을 휘하에 두고 있는 자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3) 우리 자신의 평안을 위하여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생활을 하며 "명령을 지키는 자라면 누구나가 어떤 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도의 말씀은 이것에 상응하고 있다(롬 13:3). "네가" 왕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의무에 충실하고 충성된 국민에게 어울리도록 "선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너는 대체로 그에 상당하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악을 행하지 않는 자는 어떤 화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8:2 없음.

 

8:3 없음.

 

8:4 없음.

 

8:5 없음.

 

8:6

죽음의 필요성 (전도서 8:6-8)

솔로몬은 5절에서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다"고 말하였다. 즉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서 아주 멀리까지 뚜렷하게 내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는 이런 지혜를 가진 자가 거의 없음을 보여 주며, 가장 지혜롭다고 하는 자 까지도 예견하지 못했던 재난에 경악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급작스런 변화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다.

1. 우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뜻과 예지 속에서 그 시간까지도 정확히 결정되고 있고 지정되어 있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지혜 안에서 정해져 있다. "모든 목적에는" 미리 정해진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최상의 시간이 된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적절한 "시기와 판단"이고 지혜와 의로움으로 정해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예정을 어리석다거나 불의롭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2. 우리는 미래의 일과 사건의 기한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어둡다. 인간은 장래 자기가 "어찌 될지를 모른다." 그리고 "그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를 모른다." 그리고 "그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7절) 미래에 사는 인간에 의해 예견될 수도 없고 인간에게 예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별들이 사람에게 그 장래를 말해 줄 수도 없으려니와 점성술도 역시 예언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게 미래의 일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서 감추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3. 우리가 재난을 예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피하거나 그 재화를 방어할 줄 모른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또 우리가 성공하기에 적당한 행동 시기를 몰라서 우리의 호기회를 놓치고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화가 아닐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오직 한 가지 길, 단 하나의 방법, 단 한 번의 적당한 기회가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하다." 그것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어서 천에 하나 정도가 적중할 뿐이다. 사람들이 겪는 많은 불행도 만약 그들이 미리 그 불행을 볼 수 있었고, 그 참상을 모면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을 미리 발견했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충분한 예지가 없고 주의깊지 못하므로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4. 다른 화는 무엇이든지 다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다 죽음이란 숙명적인 필연성 아래 있다(8절).

(1) 영혼이 사퇴를 요구당하는 날이면 그것은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무기나 논쟁으로 그 사퇴 요구를 반박해야 소용없는 짓이며, 우리 자신이나 어떤 친구로 그것을 시비해 봐야 무익한 짓이다. 영을 주신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라는 소환을 받을 때 자기 자신의 "생기를 주장하여 그것을 머무르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이 죽음의 관할 권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또 사망의 영장이 찾아오지 않는 곳을 발견하려고 해 봐도 그런 곳은 없다. 비록 죽음의 눈은 모든 육안으로부터 감춰져 있지만, 영혼의 그 사망의 눈을 피해 도주할 수는 없다. 인간은 죽음의 날을 연기시킬 권세도 없으며 기도나 뇌물로써도 유예시킬 수 없다. 어떤 보석금도 받아 들여지지를 않을 것이며, 어떤 변명(essoine)이나 보호나 협상(imparlance)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의 "생기를 주장하며 머무르게 할 수도 없다." 모든 권세를 지닌 왕이라 하더라도 자기 신하들 중의 가장 고귀한 자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다. 약과 의술을 지닌 의사들도 이룰 수 없으며, 힘이 있는 용사나 능변의 웅변가도, 가장 훌륭한 중재자인 성자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날들은 정해져 있어서 지정된 시각이 닥쳐오면 도저히 죽음의 일격을 피할 도리가 없다.

(2) 죽음은 우리 모두가 조만간 시합장에 나가 도전해야만 될 적수이다. "그 전쟁에는 모면할 자도 없으며" 유대인들 중에서는 있었던 것처럼 일이 있는 자들이라든가 겁약한 자라고 하여 퇴거시키는 법도 없다(신 20:5, 8).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는 죽음과 악전 고투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몸을 벗어버릴 때까지는 결코 무장을 풀지 못할 것이며, 죽음이 판정승을 거두기까지는 절대로 이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가장 연소한 노인이라도 "명예로운 병사(miels emeritus) ─공로로 제대의 자격을 부여받는 병사"─라고 하여 제외되지 않는다. 죽음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로서 "이 전쟁에는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어떤 이는 이런 해석을 한다). 즉 우리를 위해 딴 사람을 대리 응소시킬 수도 없고 우리 대신 싸워 줄 투사가 용납되지도 않는다. 우리 스스로 직접 첨전해야 하며 우리는 전투에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3) 악인들은 흔히 군주의 정의를 피하거나 외람되게 맞서지만 그 악함도 그들을 죽음의 체포로부터 안전히 지켜주지 못하며, 가장 완고한 죄인도 이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는 없다. 비록 그가 "자기의 악함 속에서" 아무리 스스로 강하게 한다" 할지라도(시 52:7)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 강한 상대가 아닐 수 없다. 가장 교활한 악인도 죽음을 속이지 못하며, 가장 뻔뻔스러운 악인일지라도 죽음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인간들이 스스로 몰두하는 악은 그들을 사망에서 구출해 주기는커녕 그들을 사망에서 내어줄 것이다.

 

8:7 없음.

 

8:8 없음.

 

8:9

지배자의 폐단 (전도서 8:9-13)

솔로몬은 본장의 서두에서 치안을 교란하는 백성들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말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였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전에 그가 불평한 적이 있는(3:16; 4:1)독재적이고도 억압적인 지배자 들의 해독을 들어서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1. 그는 그런 지배자들을 많이 보았다(9절). 인간과 그들의 형편을 심각하게 관찰하고 검토하는 중에 그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주장하여 그를 해롭게 하는 때"가 많이 있음을 보았다. 즉

(1) 피지배자의 해가 된다(이렇게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지배자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그 국민에게 "그들의 선을 이루며"(롬 13:1, 4), 정의를 관리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에게 해가 되게 하고, 그들의 재산을 침범하여,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여 불의한 행동을 비호하기도 한다. 국민의 신앙과 권익을 보호해야 할 위정자들이 이 양자의 파괴를 도모하여 든다면 그 나라 백성은 불행한 것이다.

(2) 지배자들의 해가 된다(우리는 그렇게 번역한다). 즉 "그들 자신을 해롭게 한다." 그들은 자만과 탐욕을 느끼며, 정욕을 충족시키고 보복적인 조처를 취한다. 그래서 저희 죄악의 말(斗)을 그득히 채워 저희의 파멸을 채촉하고 그 멸망을 더 악화시킨다. Agens agendo repatitur, 즉 "남를 해롭게 하는 짓은 결국 자신의 해로 돌아올 것이다."

2. 그는 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을 보았다(10절). "내가 본즉 약한" 지배자들이 "거룩한 자의 처소로부터 오고 가며, 최고 재판소로 위풍당당하게 행차했다가 화려하게 퇴청하곤 했다[이 최고 재판소는 "거룩한 자의 처소"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심판이 여호와의 것"인 까닭이다(신 1:17). 또 그는 "신들 중에서 심판하시며"(시 82:1), "재판에서 그 재판관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대하 19:6)]. 그들은 평생 그 집무를 계속하며 자기들의 악정에 대해 대가를 치루는 법도 없었다. 오히려 존귀한 가운데서 임종하며 훌륭하게 매장되었다. 그들의 임무는 durantevita, 즉 "사는 동안 하는" 것이지 Quamdiu se bene gesserint, 즉 "훌륭한 처신을 하는 중"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들은 저들이 그렇게 행하던 성읍에서 잊혀졌다." "그들이 간 뒤 그들의 악한 행위도 그들에게 치욕과 불명예가 되도록 기억되지 않았다." 혹은 이 구절은 그들의 위엄과 권세가 헛됨을 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의 끝에는 이를 가리켜 한 그의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것도 헛되도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과 권세와 존귀를 자랑하는데, 이는 그들이 "거룩한 자의 처소"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1)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들이 몸이 티끌 속에 매장되지 않게끔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한다. "나는" 그들이 무덤에 안치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화려함은 비록 무덤에까지는 그를 따라가지만 "그를 따라 내려 갈" 수는 없었다(시 49:17).

(2) 또한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이름이 망각 속에 매장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이 "잊혀진 바가 되기" 때문이다.

3. 그는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중에도 번영함을 보고 마음이 더욱 담대하게 되어 그 악행을 계속하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였다(11절). 이것은 일반적인 죄인 전체와 특히 악한 지배자들에게 해당되는 사실이다. "그들의 악업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형벌이 결코 집행되지 않을 줄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법을 무시하며, "그들의 마음은 악을 행하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감히 훨씬 더 많은 해를 끼치려 들며, 악한 계획의 규모를 더욱 크게 잡고서도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강압적으로 불의를 자행한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하자.

(1) 하늘과 땅을 주재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은 악한 일과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판결을 내리시며, 하층 인생들의 악행뿐만 아니라 위인들과 위정자들의 악한 일에 대해서도 선고하신다.

(2) 이 선고의 집행은 경우에 따라 상당기간 동안 지연되기도 하여, 죄인들이 벌받지 않고 지낼뿐더러 형통하고 성공하는 수도 있다.

(3) 이와 같이 무탈한 것은 죄인들의 불경건한 마음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며, 하나님의 참으심은 도리어 많은 자에게 수치스럽도록 모욕당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으심에 의해 참회하는 대신 그로 인해 저희의 완고함을 더 굳게 하는 것이다.

(4) 죄인들은 이 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니, 현재는 비록 "판결이 신속하게 집행되지 않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더욱 엄하게 실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천천히 오기는 하지만 확실히 오는 것이다. 진로하심은 한동안에는 비장되어 있으나 "진로의 날을 위해 명심되고 있답니다."

4. 우리는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왈가왈부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일의 종말이 우리의 불평을 침묵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공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예견하였다. 그는 악한 지배자가 "일백 번"이나 부당한 일을 행한다고 가정한다. 그럼에도 예상과는 전연 다르게 불의한 통치자를 징벌하는 일은 지체되며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인내는 "연장된다." 그가 권세잡는 날은 늘어나며 그는 계속 압제를 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이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 준다.

(1)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억압을 받고 있을망정 확실히 행복한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다. 또 그들만이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들이다."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으로 그를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양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특색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이 언제나 자기들 위에 머물고 계심을 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자신들을 입증시키는 일이 자기들의 관심사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만한 압제자들의 손아귀에 있는 때에도 그들보다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것에 복종한다.

[2] 최악의 경우에도 "그들이 잘 될 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의 행복이다.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얻는 저들의 행복은 고난을 당한다고 하여 침해받지 않으며, 하나님과 갖는 저희 교제도 환란 때문에 중단되는 일이 없다. 그들은 순경에 처해 있으니 곤경 가운데에 있더라도 그들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종국에는 복된 구원을 받고 고생에 대한 풍부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딴 사람들은 어찌 되더라도 그들만큼은 잘 되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며, 하나님의 약속과 모든 성도의 경험에 의해 그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끝이 좋은 것은 무엇이든 다 좋은 것이다.

(2) 악한 사람들은 확실히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비록 한 때에는 융성하고 우세하더라도, 축복이 의인을 잊지 않고 꼭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주가 꼭 그들에게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악인은 잘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딴 사람의 예상과 다르며 그들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도 다르다. "악인들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그들은 못될 것이다"(사 3:10, 11). 그들은 못된 행동을 하였고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Nhil potest ad malos pervenire quod prosit, imo nihil quod non nccea ─"악인에게는 유익을 줄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며,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어떤 사건조차도 일어나지 않는다"(세네카).

[1] 악인의 날은 모든 사람의 날이 그러하듯 "그림자와 같아서" 불확실하고 쇠퇴할 뿐만 아니라 전혀 무익하기도 하다. 선량한 사람의 날은 그 안에 어떤 실체가 있다. 그는 살아서 선한 목적을 이룬다. 그러나 악인의 날은 모두가 "그림자 같아서" 공허하고 가치가 없다.

[2] 이러한 날들은 그기 기대하던 만큼 "길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기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다"(시 55:23). 그가 설사 딴 사람들의 예상을 넘어설 만큼 "장수한다"고 하더라도(12절) 그의 날은 붕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영생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땅 위에서 산 그의 오랜 생애도 아무 가치가 없는 삶이 되고 말 것이다.

[3] 하나님의 악인들에게서 크게 문제삼는 것은 그들이 그 "앞에서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점이 그들의 사악의 기저(基底)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모든 행복으로부터 단절되게 한다.

 

8:10 없음.

 

8:11 없음.

 

8:12 없음.

 

8:13 없음.

 

8:14

섭리의 신비 (전도서 8:14-17)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은 옛부터 악인의 번영과 의인이 곤란이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선하심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느냐 하는 난제에 고심해 왔다.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Ⅰ. 그는 우리가 마치 무슨 이상한 일이라도 발생한 듯이 깜짝 놀라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그도 그 당시에 이런 일을 직접 목격하였던 까닭이다(14절).

1. 그는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기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매우 혹독한 일로 고난을 당하며, 마치 모종의 큰 악 때문에 벌을 당하기라도 하는 듯이 계속해서 오랫동안 그런 수난을 겪었다.

2. 그는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어떤 선행에 대한 상이라도 받으며, 게다가 자기 자신들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또 사람들로부터 보답받기라도 하듯이 눈에 띄게 번창하였다. 우리 눈에 띄는 장면은 너무 대조적이고 역설적이다. 정직한 자는 고통을 당하며 그 마음에 낭패를 겪는데 반하여, 악인은 편안하며 두려움이 없고 안전하다. 정직한 자는 신의 섭리에 의해 어긋나기만 하며 고난의 길을 걷지만, 악한 자는 번영을 누리며 성공을 구가하고 운명의 신이 미소를 보내 준다. 의인은 박수갈채를 받고, 보다 애호를 받는다.

Ⅱ. 그는 우리가 이를 계기로 이것은 불법이라고 하나님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 세상의 허무성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는 잘못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 대하여는 이것이 "땅 위에서 행하는 헛된 것이요." 다시 "이것도 헛되도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이 세상의 일이 최상의 것들이 아니며, 이 세상 사물은 우리의 분깃이나 행복으로 삼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한 확실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재물 중 그토록 많은 양을 가장 흉악한 원수들에게 주셨을 리 만무하며, 그토록 많은 고난을 그의 최상의 친구들에게 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생 뒤에는 다른 생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저 다른 생에서 받을 기쁨과 슬픔이야 말로 진실되고 실체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을 참으로 행복하게 하거나 참으로 불행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세상에는 진정한 행복과 불행이 있을 수 없다.

Ⅲ. 그는 우리에게 그 같은 부조리에 대하여 신경을 쓰거나 고심하지 말며, 불안해 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유쾌하게 즐기며 그것에 만족하라고 이른다. 설령 남의 것이 훨씬 더 낫고 우리가 가진 것이 무가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변변치 않더라도 우리 것을 최대한 선용하라는 것이다(15절).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였노라." 그 희락은 거룩한 안보(安保)이며 마음의 평정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권세, 섭리, 약속에 대한 신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일," 즉 자기 신분을 따라 가지게 되는 이 세상 것들을 침착하고도 감사히 사용하는 일과 무슨 일이 생기든지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선량한 자는 해 "위에서" 훨씬 더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되지만) 더 나은 것이 없음이라. 이것은 그가 수고하는 중에 항상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다. 희락은 그가 세상 사업에서 수고하여 자신을 위해 얻는 모든 열매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누리고 그것에서 많은 낙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그것을 갖고자 원하는 대로 세상이 응해 주지 않는다 하여, 심술어린 불만심으로 희락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우리의 현재 삶은 "해 아래"의 삶이지만, 우리가 구하는 것은 "장차 올 세계의 생"이다. 그 세계는 "해가 흑암으로 변하여"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을 때까지 존속할 것이다. 현재의 이 삶은 날로 계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삶이 우리에게 부여되고 그 날이 우리에게 할당된 것은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생이 지속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생의 목적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Ⅳ. 그는 우리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길이 바다에 있으며, 그 길은 큰 하수에 있어서"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세계를 통치하시는 가운데 취하시는 조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많더라도 그것을 만족히 여기며 경건하게 있어야 한다(16, 17절). 여기에서 그가 제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그 자신과 그 외의 많은 자들은 이에 대해 아주 면밀히 연구하였고,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의 이유를 캐내고자 하였다. 그로서는 "자기 마음을 기울여" 이 "지혜를 알고자 하였으며" "땅 위에서" 신의 섭리에 의해 "되어지는 일을 보려고 하였다." 그는 이 땅의 일들이 시행됨에 있어서 어떤 확실한 도식(圖式)이나 항구적 법칙 또는 방법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전심 전력을 다하였다. 즉 자연계의 운행만큼 확실하고 일관성있는 통치의 궤도가 존재하는지도 발견해 내려고 하였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현재 달의 변화를 통해 만월이 되는 때가 언제쯤일지 우리가 예언할 것 같이, 현재 되어진 일을 보고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지 확실하게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그는 찾아 내고자 열망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딴 사람들도 이 연구에 착수하였는데 너무나 몰두하여 그들은 "낮이든 밤이든 잠잘" 시간조차 갖지 못했고, 이 일들에 대한 걱정이 너무나 심해서 잠잘 마음도 가질 수 없었다. 혹자는 이것을 솔로몬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이렇게 큰 연구에 열중하느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잘 수도 없었다고 해석한다.

2. 이 모두 헛일이었다(17절).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와 그의 섭리를 살펴보고 이 부분과 저 부분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해 아래서 행해진 일"에 어떤 확실한 방법이 있음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그 특성을 해독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도 발견할 수 없으며, 선례를 살펴보아도 이 법정의 법규를 알 수는 없고 재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다.

[1]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하며 그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아무리 수고할지라도"

[2] 그가 아무리 재간이 있으며, "비록" 딴 일들에서는 "지혜로운 자"여서 왕들 자신의 의향을 잴 수 있고 그들의 발자욱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3] 그가 성공을 매우 자신하며 "그것을 알려고 생각하더라도 그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깨달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으며, 그는 자기의 이전 길에 매여있지도 않다. "그의 판단은 큰 깊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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