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부아의 아들 돌라 - '부아'는 '입',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벌레'란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tola)와 그의 아비 '부아'(Puah)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창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다(묵 1:61).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를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 본절에는 아무 언급이 없다. 아마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局地戰)이었을 것이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미디안인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Goslinga) 확실치 않은 주장이다. 한편 '사밀'이 '사마레이아'(* )로 변역되어 잇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Samaria)와 동일 지역이 아닌가 추정된다.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우거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2
사사가 된 지...죽으매 -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로 그의 죽음이 언급되고 잇는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救速史)의 흐름에 있어서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10:3
그 후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라이우'(* )는 '그 사람 다음에'란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돌라를 이어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단어만으로돌라가 죽자 곧바로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지의 여부를 파악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이 말이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기 보다는 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르앗 사람 야일 -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없다.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10:4
어린 나귀 삼십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더욱 입증된다.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민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5
가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phus)의 주장에 따르먼 '가몬'(Camon)은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이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캄'(Qamm)이나 동북쪽의 '쿠메임'(Qumeim)이 바로 이 '가몬'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프'(* )는 '증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본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情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바알들과 아스다롯 -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당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킨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결쳐 살고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다.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참조.
시돈의 신들 - '시돈'(Zidon)dms enfh(Tyre)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다.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들 -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Moloch)으로, 일명 '말감'(Malcam)또는 '밀곰'(Milcom)으로도 불리웠다(왕상 11:5,7,33; 습 1:5; 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이다(16:23; 삼상 5:2-7). 이상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참조하라.
=====10:7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말이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신 열국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고통을 당했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틴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10:8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 -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한편여기서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창 15:16).
학대를 당하였고 -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이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으 힘을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킨다.
=====10:9
암몬 자손이 또...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래 이들 암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反目)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 )는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10:1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모두 의미한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절에서는 이와관련 그들의 죄목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시사해 준다.
=====10:11
애굽 사람 - 여기서 '애굽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출 1-14장)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Matthew Henry).
아모리 사람 -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노정 가운데 정복한 족속 중 하나이다(민 21:21-26).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노정(路程)을 방해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에 의해 격멸당했었다.
암몬 자손 -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을 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사람들이다(3:13).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홋을 보내사 그들의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3:15-30).
블레셋 사람 - 이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마 에훗의 뒤이은 사사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던 사건과 관런된 듯하다(3:31).
=====10:12
시돈 사람 - 이들은 사사 시대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도, 이스라엘에 의해 공격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으로 아셀과 납달리 북쪽에 거주했던 이들은 아마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4:1-3) 그를 도왔던 것 같다(Keil, goslinga, Hervey). 장차 이스라엘을압제할 열국 가운데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3:3).
아말렉 사람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을 대적했던 족속으로(출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한 적이 었다(6:3).
마온 사람 - 70인역(LXX)에는 '마디암'(* ), 즉 '미디안' 사람으로번역되어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2,p.376). 그런데 수 15:55에서 '마온'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삼상 23:24에서도그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6:7에서는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지역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라 요단 동편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한다(Keil,Goslinga, Hervey, Cundall). 물론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회박하다.
=====10: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벡성들이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자 다시금 사사 입다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때문이다(11장).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우상 숭배에 젖을 대로 젖은 당신의 백성들에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는데, 궁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간섭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10:14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환란 가운데서 구원할 수 없는 헛된 것들임을 강조한다(Wycliffe). 모세도우상들은 헛되며,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들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신 32:37,38).
=====10:15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 이러한 고백은 (1)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음과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바꿀 수 없다는 사싶을 깊이 인지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이제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 한 자세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오늘날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 지금 막 하나님의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적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조금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본절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신 이는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영광받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10: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했다(10절). 그것도 죄를 고백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2) 그들은 하나님의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15절).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 걸음 더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6-18절 강해,'참된 회개의 본'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 먹으신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근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차르'(* )는 '견디지 못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10:17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다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섬기다가(8,9절) 이제 반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피정복민들이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피정복민들을재차 공격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왕하 17:3-6; 24:1-3).
미스바 - 성경에는 지명은 동일하나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는 '미스바'가 대여섯군데나 있다(수 11:3,8; 15:38; 18:26; 삼상 22:3).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미스바'는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이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얍복 강북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지일 가능성이 크다(창 31:49).
=====10:18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 암몬 사람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막상 선두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이 반드시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도망하게 된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이다.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아가 암몬 사람과 싸워 이기는 사람을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전장에서 우리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된 이후 3년만에 자기를
지지한 자들이 일으킨 반역을 진압하던 중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을 보았다. 따라
서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 내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을 것이며, 주
위의 적들로 인해 빈번히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한 때 두 사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니 곧 돌라(1, 2절)와 야일(3-5절)
이다. 그러나 돌라와 야일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주위 모든 나라의 신들
을 섬기기 시작하여 급기야 하나님께선 그들을 암몬과 블레셋 족속들의 휘하에서 18년
동안 압제를 당하도록 만드셨다(6-9절).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전과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회개하였는데, 조금 특이한 점은 전체 사사 시대 중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진지하게 하나님께 회개하였다는 것이다(10-16절). 즉 그들의
회개는 압제로 인한 고통에서 비롯되어졌다는 측면에서는 여느 때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우상을 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을 섬
겼다는 점에서(10절) 그들의 회개가 매우 진지하고 진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의 진실한 회개는 사사가 다시 나타날 영적인 배경이 되었는데(17, 18절) 실제로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 입다가 등장한다.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전과 다름없이 사사 시대에 반복되는 악순환
의 역사를 보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의 악한 본성
(롬 1:28)을 더욱 확실히 입증시켜 준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우리는 본서에 나타나
는 악순환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인간의 악한 성향 뿐 아니라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변치 않으시는 사랑도 또한 발견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된 생
활을 반복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할 때에는 한번도
그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끊임없이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22)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날마다 죄 가운데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이것이 곧 기독교의 복음이자 정수(精髓)이니 우리는 오늘날 죄 가운
데 신음하고 있는 만민들에게 이 진리를 힘써 증거해야 할 것이다(딤후 4:2).
1. 사사 돌라와 야일(10:1-5)
기드온에 뒤이어 새로이 등장한 이스라엘의 두 사사 돌라(1, 2절)와 야일(3-5절)에
대한 기사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돌라와 야일 이 두 사사의 행적에 대해서 거의 언급
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짧은 본문으로도 그들에게서 공통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 그들은 사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다스린
45년 동안(2, 3절)에는 이스라엘이 주위의 열국으로부터 압제를 당하지 않고 평안했던
데서 잘 암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돌라는 아비멜렉 이후 어수선했던 이스라엘의
형편을 틈타 이스라엘을 괴롭힌 어떤 대적을 물리침으로써(1절)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
할도 했다.
(2) 그들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그속사에 있어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본서의 저자는 그들의 행적이 구속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
지 않았으므로 그들에 대하여 비교적 간략하게 기술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두 사람
은 사사로서 활약은 했으나 그속사적으로 뚜렷한 업적이 없으므로 소위 이들을 '소사
사(小士師)라고도 부른다.
2. 반복된 악순환(10:6-18)
사사 돌라와 야일이 죽자 또다시 이스라엘의 범죄 - 하나님의 징벌 - 백성들의 회
개라는 사사 시대의 전형적인 악순환의 역사가 반복되는 장면이다. 즉 야일의 죽음
이휴 사사들의 공백기가 생기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국의 신들을 섬겨 또다시 하나님
의 진노를 격동시켰다(6, 7절). 저자가 본문에서 열국의 각종 신들의 이름을 열거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매우 심각했던 것 같다. 이스라
엘 사회에서 이러한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이다. 사실 여
호와의 종교와 이방 우상 종교와의 혼합주의는 참된 여호와 종교가 설 땅이 없도록 만
든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사사들이 통치하는 기간 중에는 어느 정도 꼬리를 감춘 듯
했으나 영적 지도자이며 정치 지도자인 사사가 죽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우
상 숭배에 빠져 영적인 침체기에 이른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공의는 어김없이 징계의 도구로 남겨 둔 족속들을 통하여 나타
나(7-9절)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에로 이끌게 된다(10-16절). 즉 대적들의 손에 빠진
이스라엘은 다시금 평화를 갈구하게 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압제와 고통의 원인이
자신들의 범죄 때문임을 자각, 회개케 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사
실은 본문에서의 이스라엘의 이러한 회개가 사사나 선지자를 통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회개 태도가 진실하고 매우 구체적이었던 점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저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 내려 계획하시는데(17, 18절)
곧 지도자들을 갈구하는 백성들에게 사사 입다를 구원자로 보내셨다(11짱).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 의해
서 발동된 것이긴 하나 결국에는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는 목적도 단순히 그들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히 12:6). 따라서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인간이 진정 참 생명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나 죽
으나 하나님의 장중에 사로잡힌 바 되는 것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대 근동의 우상 숭배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 - 고대 근동에서는 각 지방, 각 족
속들마다제각기 섬기는 수많은 지역 신들이 있었다<6절 주석 ; 2:11-23 강해, 고대 근
동의 신들>. 그러므로 그러한 신들과 각종 우상들이 당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심지어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족장들의 종교 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이방 종교의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그 한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하
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 이것은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연관지어 생각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이방 종교, 그중
에서도 나무를 숭배한 아세라 종교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자
신도 모르게 그러한 풍습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부터는 끊임없이 이러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여호와 종교는 이로 인
하여 항상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편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제사장 나라로서 모든 이방 국가들에게 여호와 종교를 전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과는 구별된 백성 곧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출 19:6).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삶은 이방인과 구
별되기는 커녕 닮아가고 있었으며, 더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었다
(2:10-13).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전역사 동안 우상 숭배가 항상 극성을 부
린 것은 아니다. 사사들이 나타날 때에는 여호와 종교가 우세했으며(2:18).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유능한 왕정 치하에서 여호와 종교는 유례없이 부흥했다. 그러나 대체
로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종교적 부패는 왕정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특히 북쪽
이스라엘에서 더욱 극심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참된 신앙은 주변의 거짓
된 신앙에 포위되어 항상 위협을 당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서 거론되어 오고 있는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
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가 토착 종교에 의해 변질되어 이상한 형태의 혼합
종교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끓임없이 정통 신앙에 맞서
도전해 오고 있는 각종 이단 사설(異端邪說)을 엄히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저들의
겉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로 꾸며져 있으나 실상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요 성도를
미혹하여 진리의 길에서 이탈시키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요일 4:1-6). 따라서 과거
이스라엘이 주변의 이교 풍습(異敎風習)과 사신 숭배(邪神崇拜)문화 가운데서 끓임없
이 경성하며 여호와 신앙을 수호해야 했듯 오늘날 우리도 난무하는 이단과 사이비 종
교 가운데서 경성하여 진리와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요이 1:7-11).
참된 회개의 본 - 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자손의 압제로 인해 하나님께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의 회개는 여느 때와 달리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실천이 동반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깨닫
고(10, 15절)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낱낱이 고한 후 그 잘못된 길에서 떠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올무가 될 소지가 있는 모든 요소를 철저히 근절시겼다(16절). 다시 말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압제가 하나님의 진노
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업빠싸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 비유에서(눅 15:1-32) 탕자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탕자는 허랑 방
탕하여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며 고생을 하게 되자 그러한 어려움의 근원이 아버지의
품을 떠난 사실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모든 수치와 염치 없음을 무릎쓰고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1) 참된 회개에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제일 먼저 요구된
다. 그렇지 아니할진대 그 누구도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할 필요도 없
게 된다.
(2) 참된 회개는 회개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는 것이 요구된다. 즉 성도가
회개할 때 그 대상은 단순히 사람에게만이 아니다. 비록 그가 사람에게 잘못했을지라
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법죄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회개해야 할 대상은 하나
님과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시 51:3, 4;눅 15:18).
(3) 참된 회개에는 진실된 방향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즉 누구든 회개할 때에는 말로써만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갔듯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듯이 구체적으로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엔 하나님께서도 역시 진정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 18: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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