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1
여룹바알 -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Baal)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6:32 주석 참조.
하롯샘 -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Jalud) 샘으로 알려져 있다(Cundall,Hervey). 이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삼하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 었는데(삼상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레산 -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이다(창 12:6;신 11:30).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사된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므로 '모레 산'과 동일시될 수 없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자는 모레 산은 높은 곳이므로 북쪽이며 하롯 샘은 낮은 곳이니 남쪽이라는 주장을 편다(Cassel). 그러나 이것은 막연한 주장일 뿐 위치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못준다. 따라서 다만 '모레 산'은 '하롯 샘' 북쪽의 어느한 곳일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7:2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 32,000명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12절;6:5)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니다.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 알렉산더대재(Alexander the Great)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세(Cyrus III)의 군대와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지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이유는 다음 두가지에서였다. 즉 (1)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2)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6:7-16)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1)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2)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삼상 14:6).

=====7:3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영광받으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다. 만일 이들이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地境)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 5:17주석 참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길르앗은 '길르앗'(* )이 아니라 '길보아'(* )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Clericus, Bertheau, Cassel, Cundall). 왜냐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기슭의 하롯샘 곁(1절)이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1). 그러나 본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이라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서'란 말은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며,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6:35)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RSV도 이를'집으로 돌아가라'(let-return home)는 의미로 의역하고 있다.

=====7:4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아마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1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재감군(再減軍)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않으신다고했다(약 1:13). 그런데 본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의 문맥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즉 야고보 사도가 말한시험은 인간 자신의 욕심에 미혹되어 인간 스스로 고난에 빠진 것을 의미하며, 본문에서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전쟁에 합당한 자를 고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해서는 2:11-23 강해, '시험의 종류와 목적'을 보다 참조하라.

=====7:5
그 혀로 물을 핥는 자 - 6절에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라고 언급되어있다. 카일(Keil)의 말대로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이다. 그런데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들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한것으로 보아 겁장이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2). 한편 혹자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보다 훨씬 재빠르므로 전쟁에 보다 적합한 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oslinga). 아무튼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자들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15-23절)에 적합했을 것이다(Wycliffe).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 전쟁에 임할 자들 치고는 너무도 태평스러운 자세를 취한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심스러운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7:6
삼백 명 - 이처럼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3절). 즉 비록 수효면에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臨戰態勢)를 갖춘 자들이었다(6,7절).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7:7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 이 승리의 약속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주셨던 바 있다(6:16).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게 하시고(6:25,26)군대를 선발하시는 등 모든 절차를 끝내신 후 비로소 기드온에게 승리를 다시 확증시키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오직당신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선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하셨던 것이다(9-25절).

=====7:8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 여기에서 '나팔'에 해당하는 단어인 '쇼파르'(* )는 대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나팔'이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나팔'은 예배나 축제때에 악기로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레 25:9;민 10:10;왕상 1:34) 전쟁이나 기타 비상시에 신호로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민 10:9;31:6;수 6:4;삼상 13:3).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백성들은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구할 수 있으므로 '양식'도 거의 필요치 않다. 따라서본절의 '백성'은 선발된 300명임에 틀림없다. 히브리 본문 역시 '그 백성이 그들의 손에 있는 양식과 그들의 나팔을 취했다'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같은 사실은더욱 분명하다.

=====7:9
이 밤에 - 문자적으로 '그리고 바로 그 밤에 그것이 있었더라'는 뜻이다. 이는 곧정예 300명을 뽑고 그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 보낸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즉시 명령을 내리신 것은아마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대의 수효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7:10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3번씩이나 표징을 구했었던 바 있으므로(6:17,36-40) 적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 망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또 다른 표적(13,14절)을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

=====7:11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으로써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그에게 주시고자 원하셨다. 그 이유는전쟁의 승리가 기드온과 그의 백성들의 용기와 지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기원하셨기 때문이다.
군대가 있는 - 문자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는'이라는 의미이다(PulpitCommentary). 이것은 적들이 순수한 병사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므로여인들과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음을 암시 해 준다. 아마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진과 마주 대하여 배치했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과 더불어 안전한 곳에 배치시켰을 것이다(Goslinga).

=====7:12
미디안 사람과...동방의 모든 사람 - 이들 미디안 연합군들이 어떠한 자들인지에대하여서는 6:3 주석을 참조하라.
골짜기에 누웠는데 -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이었으므로(9절)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산 앞 꼴짜기'(1절)를 의미한다. 한편 이처럼 적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에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깊은 잠을 자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에 정신이 없어 자기들끼리서로 싸웠을 정도이다(22절). 더욱이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이경 초 곧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잠을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수효가 메뚜기 떼같이 많은 것만을 믿고서 정신 상태가 해이해져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 무수한 메뚜기 떼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상징하였다. 6:5 주석 참조.
그 약대의 무수함 - 약대는 유목민들이 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운송 수단이다. 특히 미디안의 침략에는 이 약대가 병기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은 전투시에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위용면에서도 상대방을 크게 위압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약대를 사용한 예는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적절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6:5 주석 참조.

=====7:13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 꿈이란 한갖 생리적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함부로해몽(解夢) 운운하는 것은 매우 터무니 없는 일이다(전 5: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다(민 12:6;욥 7:14;렘 23:28).기드온과 부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일 기드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14절과 같이 해몽하였다고 할 때과연 그것이 기드온에게 큰 확신을 주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면 그 해몽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 할것이기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일행이 잠복한 때에 꼭 맞춰 꿈과 해몽을 적병의 입을 빌어 들려주심으로써,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한편 이와관련해서는 창 40:5-19 강해, '구약에 나타난 꿈과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참조하라.
보리떡 한 덩어리 -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6:15) 기드온을상징한다(14절).
한 장막 - 이는 대표 단수로 미디안 전체 장막을 의미한다. 특히 '장막'이라는 표현은 유목민의 거주지이므로 미디안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용어 이다.

=====7:14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 문자적으로 '이는-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란 의미이다. 즉이것은 어떤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동료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미디안 사람이 이처럼 판정적인 표현을 사용한것은 은연 중에나마 미디안 진영에 '기드온'이란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 원어로는 '엘로힘'(* )이다. 이처럼 미디안 사람이 신명칭으로보통 명사인 '엘로힘'을 사용한 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엘로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자신들의 '신'을 가리키던 명칭이기 때문이다. 6:40 주석 참조.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 기드온은 그들의 꿈과 해몽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리라 약속했던 또 하나의 증표였기 때문이다(9-11절). 따라서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Goslinga). 사실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장비와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군대의 정신력이 더욱중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전투력이 두려움으로 인해 매우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싸움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것이다(Matthew Henry'sCommentary,Vol.II,pp.166 f).
미디안 군대 -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연합 군대를 가리킨다(12절;6:33).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 기드온이 수립한 횃불 작전(19-23절)은 비밀스럽게 적진 가까이 가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 와중에 뛰어들어 싸우는 것이었다. 기드온이 본절에서 자신의 용사 300명을 100명씩 세 대로 나눈 것도 보다 비밀을 잘 유지할수 있고, 적들이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한꺼번에 기습 공격할 수 있는 형태를갖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병사를 세 대로 나누어 미다안을 공략하는 것은 꼴짜기에 위치한 미디안 사람들(12절)을 공격하는데도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나팔과...횃불을 감추게 하고 - 기드온 군대의 주무기는 이처럼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횃불이었다. 이는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다음과 같은 목적에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1)나팔을 붊으로써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의 대 공격을 알리는 신호인 듯한 위협을 주고자 하였다. 이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천사들을 통해 들릴 나팔 소리를 상기케 한다(계 8:2). (2)항아리는 횃불을감추는 데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깨뜨려질 때의 그 요란한 소리는 마치 적군을 짓밟아부수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3)야밤에 횃불을 한꺼번에 밝힘으로써 군대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드온 군대는 갑자기 기습하여 대적들의 장막을 불태우려는 계산도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복음의 횃불을 밝히 들고 나가야 할 것이다.

=====7:17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 횃불 작전은 한 두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드온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호에따라서만 움직이도록 명령했다.

=====7:18
여호와를 위하라 - 20절에는 '여호와를 위한 칼이여'라고 하여 '칼'(* , 헤렙)이 추가되어 있다. 그래서 몇몇 히브리어 사본과 시리아 역본 등은 본절에도 '칼'이란 단어를 삽입시켰다. 또한 영역 성경 KJV도 이러한 견해를 취하여 '칼'(sword)을삽입시켰다. 이러한 견해를 따라 혹자는 '칼'이란 단어가 본절에서 누락된 것으로 추정하였다(Hervey, Cassel).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추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본절은기드온이 용사들에게 함성의 군호(軍號)를 주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고, 20절은300명이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어떻게 함성을 질렀는가하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을 뿐이다.

=====7:19
이경 초에 -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의 밤 시간 계산은 해지는 시각과 해뜨는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해질때부터 밤 10시경이 초경(애 2:19)이며, 10시경부터 2시까지가 이경, 그리고 2시부터 해뜰때까지가 삼경이다. 따라서 '이경 초'라 함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한편 신약시대에 와서 이러한 시간구분법은 좀더 세분되어 일, 이, 삼, 사경으로 나뉜다(마 14:25;막 6:48). 이는 곧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화폐 및 월력' 참조.
번병의 체번할 때라 -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기드온 군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그 시각은 근무 교대를 위해 인수 인계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래도외부 경계에 소홀히 하기 쉽다.

=====7:20
본절에는 기드온의 군대가 '횃불'과 '나팔 소리' 그리고 '함성 소리'로 보초 교대중에 있는 미디안 사람 뿐 아니라 편히 잠자고있는 약대 떼까지 놀라게 하는 장면이묘사되어있다. 그곳은 골짜기였으므로(12절)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평지보다 나팔 소리와 함성 소리가 더욱 크고 우렁차게 들렸을 것이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 이 함성의 표현은 이스라엘 군대의 대표가 누구인지를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군대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에의해서(출 14:13,14)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대표자는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따르는 종으로서 그분을 대리할 뿐이다. 한편 기드온은 300명 용사들에게 이 함성을지르게 함으로써 이미 이 이름들로 인해 두려워 떨었던 미디안 군대를(14절)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이다.

=====7:21
각기 당처에 서서...에워싸매 - 기드온의 용사들은 포위망을 좁히지 않고, 단지 적진의 사면을 에워싸고서 계속하여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그러자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나팔 소리와 함성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미디안 군인들의 마음은 무너져 버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은 혼비 백산하여 도주하기에 급급하였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승리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에 의하여이루어진 것이었다(계 19:21).

=====7:22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 불의와 비리는 스스로 자멸하기 때문에 구태여손을 써서 패망시킬 필요조차 없을 때가 많다. 이 때 성도의 할일은 다만 진리의 빛을발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일 뿐이다.
스레라의 벧싯다 - 아직까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지명이다. 혹자는 '스레라'를수 3:16과 왕상 7:46에 언급된 '사르단'과 동일시한다(Keil).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던 성읍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리고 가까운 요단 나루 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그 부근에는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곳으로 도망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므낫세 남쪽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가 동원된점으로 보아(24절) '스레라'가 '사르단'과 동일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답밧 - 요단 강 건너편, 즉 동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 외에는 달리 정확한 위치를 획인할 수 없다. 혹자는 길르앗 산지의 '라스 아부 타밧'(Ras Abu Tabat)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아벨므홀라 - 이 역시 요단 동편의 답밧부근에 위치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왕상 19:16에는 엘리사의 고향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동일 지명인지도분명치 않다.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벤산 남쪽 16km 지점의 요단강서편의 한 유적지가 바로 이 '아벨므홀라'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7:23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 곧 '이들 지파들의 지경(地境)에서부터'란 뜻이다. 6:35 주석 참조.

=====7:24
에브라임 온 산지 -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 남쪽에 넓게 펼쳐진 산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경계를 이루었다(수 16,17장). 이 지파는 처음에는 전쟁에 소집되지 않았으나(8:1) 도망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후에 소집되었다. 이로 보아 미디안 사람들이 주로 도망해 간 곳은 가나안 남부 지역임이 분명하다.
벧 바라 -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다. 다만 문맥상으로 보아 이스르엘 골짜기에서요단 나루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나루턱을 취하고 - 문자적으로는 '그 물들을(the waters) 취하고'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벧 바라에서 여리고 동편 요단 나루턱까지 이르는 모든 나루터를 의미하는것으로 추정된다.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이 나루턱들을 지키게 한 것은 적들이 요단을 건너 동편땅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6:33).

=====7:25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 - 이들은 미디안 연합군의 군사 지도자 중 일원이었지미디안 족속의 최고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이것은 8:5에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서도 확증된다. 왜냐하면 한 족속에 두 왕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렙 바위...스엡 포도주 틀 - 본 전투에서 '오렙'과 '스엡'이 죽임을 당한 것과관련하여 알려진 지명이므로 사 10:26 외에는 성경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따라서 '오렙'은 '갈가마귀'를 '스엡'은 '늑대'를 뜻한다는 것 외에 달리 그것들이 어디에 위치하였던 바위이며 포도주 틀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Lange).

 

 

 

   앞서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은 기드온이(6:14)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삼백
용사를 선발, 미디안 사람을 치는 장면이다.  이 전쟁은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  세바
와 살문나를 죽이미로써 끝을 맺는다(8:21).  그 가운데서도 특히 본장에서는  기드온
이 이스라엘 사람 중 정예 부대를 뽑는 과정(1-8절)과 또한 봅힌 300명만으로  메뚜기
떼같이 많은 미디안 사람을 치는 과정(9-25절)이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
리고 이 작전의 배후에 기드온의 힘과 능력이 되시고, 전쟁에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밀하신 손길도 강조되어 있다(2, 4, 9, 22절).
 사실상 기드온이 수행한 이 전쟁은 그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
다.  더군다나 사사 시대에는 각 지파간의 단결력이 미약했으므로 자칫 잘못하다간 기
드온과 그의 용사들은 중다한 적 사이에서 고립, 전멸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기드
온을 붙들고 계시며 그에게 능력과 지혜가 되어 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드온은
수치상(數値相)으로, 또한 이론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지
도로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추격해 오던 애굽 왕 바로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
(水葬)시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셨다(출 14:26-310.  그리고 히스기야 왕 당시  앗수
르가 유다를 침략했을 때, 사실 유다는 풍전 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
다.  때문에 이때 히스기야 왕은 사람의 힘으로는 그 막강한 앗수르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
에 응답하셨는데(왕하 19:20-28) 그 결과 밤새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몰살되었다
(왕하 19:35).  이처럼 구약 시대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전쟁에
능하신 신으로 묘사되어 왔다(시 24:8).  그리고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해서 만군의 여호와 되심을 보여 주셨다.
 한편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영적 전쟁을 치룬다(엡 6:12).  그
런데 성도가 자신의 힘만으로 그 전쟁을 수행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다만 성도
는 이미 싸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요 16:33)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
행할 때에만 승리할 수 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의 가지신 분이시기에 능
히 성도를 도우실 수 있다(마 28:18).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고후
1):4)고 고백했던 것이다.

         1. 선발된 기드온의 삼백 용사(7:1-8)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기드온이 백성 중에서 미디안 연합군과 싸울 삼백 명의 용사
를 선발하는 장면이다.  즉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 사람의  연합군은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약탈할 채비를 갖추었다.  이에 기드온
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을 불고, 사자를 보내어 백성들을 모은 후(6:33, 34)  하
롯 샘 곁에 진을 쳤다(1절).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수효
를 믿고서 자긍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두려워 떠는 자와(3절) 무릎을 끓고 물을  마
시는 자를 돌려 보내고 300명만 남기셨다(4-8절).  이것은 분명히 전쟁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사람의 수효나 칼과 창등 병기의 수효와 관계없음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까지 사사 드보라가 다스리던 40년 동안 태평 성대를  누렸었다
(5:31).  때문에 기드온이 그들을 소집했을 때 그들은 미처 전열을 갖추지 못한  오합
지졸(烏合之卒)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디
안 연합군을 붙이시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의 수가 많아 싸움에 이긴 것으로 착각,  교
만하게 될 소지가 있었다(2절).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분명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
시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적은 수효인 300명으로  미
디안 연합군을 맞아 싸우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도
록 하셨다.
 한편 역사상 초대 교회가 확장된 것도 많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극히  적
은 무리 곧 11사도를 중심한 120명(행 1:13-15)과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였다.  설령이 충만한 그들을 통해 십자가의 도는 상상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전파
되었다.  이로 보건대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사용하시 보
다 선발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통해 영광받기 원하심을 알
수 있다.
 사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인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상적인
능력을 의지하는 자기 교회를 이끌어 갈 때 그 교회는  이름만의  교회이지  인간적인
집단으로 전략하게 된다.   인간의 능력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는 인간이 영광을  받으
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아무리  적은
무리라 할지라도 성령이 충만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며 그들을 통
해 역사하신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 집사를 뽑을 때에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행 6:3)을 택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 - 야보고 사도는 일찍이 우리에게 증거하시기를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니라"(약  1:13)고  말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시기도 했을 뿐 아니라  친히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시험하라고도 말씀하셨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 중  가나안
모든 족속을 다 쫓아내지는 못했다. 이것을 가르켜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 남은
가나안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시
고자 원했다고 언급했다(2:22). 그리고 본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
데 정예 부대를 뽑기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셨다(4절). 또한 스가랴 선지자도 하나님께
서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슥 13:9).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고 요청하시기도 했었다(말 3:10).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담
겨 있음도 알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기 위하여 시험하신다. 즉 이스라엘 백성
들이 출애굽 노정에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가
나안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단은 고해(苦
海)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2) 하나님께선 당신의 백성을 복주시기 위해서 시험하신다(약 1:12). 때문에 하나님
께서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도  시험하셨다(욥
1:1, 8 ). 분명히 하나님께선 욥에게 하신 시험은 그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영적인 신앙의 눈을 더욱 넓게 뜨도록 하여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욥 42:5, 6). 이와 관련해서는 2:11-23 강해, '시험의 종류와 목적'을  보
다 참조하라.
 한편 이상과는 달리 야고보 사도가 언급한 바 있는 시험의 종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
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자기 욕심에 미혹되어 받게 되는  시험을  의미한다
(약 1:14).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쳐 교도소에 가서 고생을 했다 하자!  이
때 그의 받는 고생은 타인의 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물건을  훔
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든 싸회나 이웃의 탓을 한다. 이와 같이 성도도 자신의 욕심
에 미혹되어 고난을 당하면서 그 고난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시키는 우(愚)에 빠질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경계하기 위하여 야고보 사도는  하
나님께서는 그러한 종류의 시험을 하시지 않는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2. 승리의 표징(7:9-18)
   기드온이 300 용사를 선발한 날 밤, 하나님께서 이미 미디안 연합군을 기드온 용사
들의 손에 붙이셨음을(9-12절) 확신시켜 주기 위해 한 표징을 보이시는 장면이다.  그
표징은 미디안의 두 보초간에 나누는 꿈 이야기를 통해 주어진 것으로(13, 14절),  미
디안 진영에 이미 기드온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고, 곧바로 기습할
채비를 갖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15-18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표징을 보여 주셨다.  이 표징은 그의 백성에게 큰 확신과 소망을  주는
것임과 동시에 대적에 대한 두려움도 제거시켜 주는 것이었다.
 한편 이상에서 보듯 이스라엘이 메소보다미아(3:8), 모압(3:12), 가나안(4:2),  미디
안(6:1)등과 같은 대적과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였듯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끊임없는
영적 전투의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으면서(딤
후 2:26 ; 벧전 5:8)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엡 6:11)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승리의 표징인  예
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언제든 대적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구약 성경에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의 하나님으로 언급되어 있듯이(출 14:14 ; 23:27
; 삼하 5:24 ; 대하 20:29 ; 32:8 ; 느 4:20 ; 시 24:8 ; 슥 14:3), 신약 성경에 기록
된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리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는  분이시다
(눅 21:18).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한  '요새'(삼하  22:2  ;  시
18:2 ; 91:2 ; 144:2)로, '피난처'(신 33:27 ; 시 27:5 ; 31:20 ; 46:1 ; 73:3  ;  사
25)로, 그리고 '방패'(창 15:1 ; 신 33:29 ; 시 33:20 ; 84:11 ;  115:9)로  묘사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의 보호자 되시어 성도로 하여금 승리케 하신다(마 12:20
; 요 16:33 ; 고전 15:24 ; 계 3:21).  그러므로 성도는 승리의 표징이신 "믿음의  주
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히 12:2) 바라봄으로써 능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꿈의 유형(類型) - 본문에는 미디안 군사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13, 14절).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을 꾼다.  이 꿈은 사람이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정신
의 활동이지만 대개는 꿈꾸는 자의 의지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심리학자들
은 꿈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연구하며, 정신 의학자들은 꿈의 현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정신 건강을 진단하기도 한다.  이 꿈에 대한 관심은 현대의 심리학자 뿐만 아
니라 이미 고대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오펜하임(Oppenheim)에 따르면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꿈을 다음의 세 가지로  구별했
다고 한다.  즉 그는 (1) 해석이 필요할 때도 있으나 또한 필요치 않을 때도 있는  꿈
과, (2) 상징적으로 마음의 상태와 꿈꾸는 자의 영육간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꿈,
그리고 (3)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시하는 예언적 꿈으로 구분했다.
 한편 구약 성경에는 이 꿈과 해몽에 대한 기사가 많이 언급되어 있다<창  20:1-7  강
해, 구약에 나타난 꿈>.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구약 성경에서는 '꿈'이 하나님의  계시
의 한 방편으로 종종 사용되었다(창 28:11-22 ; 37:5-10 ; 렘 23:28).  요셉은 그러한
계시적인 꿈을 잘 해석한 인물이었다(창 40:5-22 ; 41:1-32).  그리고 다니엘도  꿈을
잘 풀이했으며 동시에 자신 역시 꿈을 꾸는 자였다(단 7:1-28).  이처럼 구약  시대에
꿈을 꾸는 것과 꿈을 해석하는 일은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제한이
제한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그 꿈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절대로 우위에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신 13:1-5).
 한편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꿈에 대한 기사가 구약 시대에  비해  훨씬  줄어든다.  
그것도 마태복음에만 6번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
여 주는 곳에서 1번 외에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욜 2:28 ; 행 2:17).  이를 통해
볼 때 신약 시대에서는 꿈의 계시적 기능이 구약 시대보다 약화되었다고 해도  괴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가 더욱  밝
혀졌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각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가 주어졌던 데  기인하는  듯하
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구약 시대의 구속사의 계시가 신약 시대의 성경으로  완성되
었으므로 오늘날에는 예언의 은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다(Gaffin).  그러나 이것은
예언의 은사가 지니는 기능을 오해했던 데서 비롯된 주장이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예언은 성령의 은사로서 성경의 계시로 국한되어 사용될 때도 있으나(계 1:3) 보다 넓
은 의미로 교회의 덕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고전14:4).
 아무튼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어 구속 계시에 대한 꿈이나 예언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한 증거로 나타나는 각종  은사
와 꿈, 이상 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전 12:4-11).  왜냐하면 성령의 모든  은사는
그 나름대로 개인이나 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은사를  잘서대
로 잘 사용하도록 하며, 그러한 은사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영적으로 분별하는 일이 교
회의 지도자가 해야할 일이다.  또한 성도들은 꿈이나 이상을 통한 것이 하나님의  기
록된 말씀에 위배되는지의 여부를 밝히 알고서 그 은사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왜
냐하면 무분별한 은사의 남용은 교회의 덕보다 해악(害惡)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고린도 교회였다(고전 14장).

         3. 횃불 작전의 성공(7:19-25)
   미디안 연합군들 사이에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음을 목격한  기
드온이(13, 14절) 그날 밤에 미디안 진을 급습, 적들을 섬멸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공격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기드온의 용사들이 횃불을 항아리에 감추었다가  터
뜨리면서 나팔을 불고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18, 20절)는 함성을  질렀
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기드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미디안
사람들과 그 연합군은 혼비 백산(魂飛魄散)하였고(21, 22절), 이때를 이용해서 기드온
과 그의 300명 용사는 전의를 상실한 그들을 맞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전을 기드온이 하나님께 지시받아 수행한 것인지의 여부를 차치(且置)하
고 서라도 여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나타난다. 즉 이 야간 기습  작
전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므로 미디안 진영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였
을 뿐 아니라 두려움에 휩싸여 자기편끼리 싸웠던 것이다(22절).
 이러한 와중에서 기드온 군대는 자기편끼리 싸우다 지친 자들을 쉽게 무찌를 수 있었
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가까스로 도망친 자들을 치기 위해서 기드온은  에브라
임 지파에게 연락을 취해 그들의 퇴로(退路)를 차단시겼다(24절). 이처럼 기드온의 군
대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세계 역사상 전무 후무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25절).
 이상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해 하늘의 천군 천사와 불말과 불병거
로(왕하 6:17)항상 지키신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주위의 여러 나라와 싸우는  중에
서도  입증되었다(삼하  8:1-14).  즉   다윗은   항상   여호와를   의지했으므로(시
20:1-7;25:2, 3)그가 수행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지혜
와 용맹으로 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항상 자기의 힘이  되시
고 능력이 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이다(시 18:1). 이와 같이  하나님께
서는 성도가 자신의 전 삶을 당신에게 맡기기를 원하시며, 그 성도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와 주시기를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칼날 - 본문에는 이스라엘 용사들이 '여호와의 칼'이란 말을  연호(連呼)
하는 장면이 나온다(20절). 여기서 이 '하나님의 칼'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
리고 동방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의미한다. 그들은 7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했던 자들로서(6:1)하나님의 칼 앞에서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칼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쓰인 예는  모세
의 마지막 노래에서도 나온다(신 32:41).
 또한 여호수아의 지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치고자 할 때 그 여리고  성을
징벌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났던 적도  있다(수
5:13). 그리고 이 하나님의 칼은 범죄한 다윗을 징계하는 데  사용된  '온역'(溫疫)과
같은 의미로도 언급되었으며(대상 21:12)에돔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나타나기도  했다
(사 34:5). 이외에 하나님의 칼은 열국을 징벌하는  심판의  도구로도  사용되었다(사
66:16;렘 12:12;47:6;계 19:15).
 이처럼 '하나님의 칼날'은 범죄한 자들에게는 진노와 심판의 칼로서 나타났는데,  이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때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화염검을
두심으로 처음 나타났다(창 3:24). 이상과 같이 죄를 가장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심판의 칼을 드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칼
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이 하나님의 칼이 도리어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
의 사랑으로 존재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뢰하는 자를 위해 그  칼로써  모든
대적을 섬멸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행여 범죄한 자가 있거든 하나님의
칼날이 임하기 전에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도리어 그 칼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사하므로 이 세상과 온갖 죄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호크마 주석과 강해
21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1장
20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2장
19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3장
18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4장
17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5장
16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6장
»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7장
14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8장
13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09장
12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0장
11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1장
10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2장
9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3장
8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4장
7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5장
6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6장
5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7장
4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8장
3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19장
2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20장
1 사사기 호크마 주석, 사사기 21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