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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여호와의 사자가 갈길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 여기 이른바 "여호와의 사자"(* )는 실상 여호와 자신이시다. 그것은, 그가 친히 "내가 너희를...내가...내가"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가 그 자신이심을 밝히신 말씀이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자신으로서 구약 시대에 제시(提示)되신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 3:1에는"언약의 사자"(*)라고 하였으며, 히 3:1에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였다. "길갈"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가나안의 산악지방을 정복할 동안 머물렀던 근거지이다. 그리고 "보김"은 "벧엘"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70인역(LXX)은 "보김"이란 땅 이름에 "벧엘"(* )이란 말을 첨부하였다. "보김"은 "벧엘"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5 절). 전에는 법궤가 길갈에 있었지만(수 5:9), 이 때에는 벧엘로 옮겨진 것이 사실이다(20:26-27).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割禮)로 언약을 확고히 하신 그가(수 5:9, 13-15) 이제 "보김"에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가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창 13:14-15) 그들을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신 것은, (1) 그의 진실성을 증명하며, (2) 그의 구원의 능력을 실증하며, (3)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사 43:1-4). 그러므로 그는 절대로 믿을 만한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만큼 그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내용(창 17:8)의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니,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자비는 무궁하시다. 애 3:22참조.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일찌기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민족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여 주셨다(출 23:32-33, 34:12, 16; 신 7:2; 수 23:12-13).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족속과 교류하며,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납하는 의미에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 제단을 파괴해야 된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나안 족속의 제단을 파괴하려면 전쟁의 강한 정신이 요구된다. 오늘날 기독자들이 이 세상의 그 무엇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하는 심리로만 할 수 있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야 된다고 가르친다(히 12:4).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하여는 희생, 용기, 결단, 수고, 또는 죽음까지라도 각오하는 심각한 전투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세우는 경우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 민족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어 주시지 않겠다고 이미 경고하신 바 있었다(수 23:12-13). 여기 이른 바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란 말은 그들이 죄를 용납한 결과로 당하게 될 화(禍)를 의미한다. 기독자들도 죄와 싸우지 않는 때에 그 죄가 가시처럼 그들을 괴롭히며 덫처럼 그들을 잡아 거꾸러지게 만든다.

=====2:4,5
하나님("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지적하시고(2절), 그들이 그 불순종한 죄값으로 가나안에서 화를 당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실 때에 그들은 저희의 죄를 뉘우치고 큰 소리로 울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로 임하신 영(靈)이시니 만큼 그들의 심령에 압도적으로 큰 충격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들도 통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 이름을 "보김"(* ),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속죄제(贖罪祭)였을 거싱다. 그들이 통회(痛悔)한 것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한 저희의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은 죄악 문제에 대한 해결책, 곧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속죄의 제도에 순종한 신앙인 것이다. 기독 신자들도 그들의 죄악 문제에 대하여 원통한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 만족한 회개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믿음을 오래 동안 지속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씨 뿌리는 비유에 있어서 돌밭에 뿌리운 씨의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말라버림과 같은 것이다(마 13:20-21). 또한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와 같다고도 할 수 있으니, 곧 말씀을 듣고 반응을 보이다가 세상 염려 때문에 결실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마 13:22). 참된 경건은 좋은 밭에 뿌리운 씨와 같아서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다(눅 8:15).

=====2:6-10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또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을 목도한 지도자들("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섬겨왔다. 이 사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교회에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이란 것은 인간적인 어떤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적 운동은 하나님의 영력의 간섭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적 능력도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서 실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롬 10:17 에는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세우신 기관은 역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도하시며 다스리심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통하여 각 개인을 지도하신다면 더욱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별히 세워서 자기 백성을 위해 영적으로 더욱 유력하게 일하시는 방면이 있다. (1) 그것은, 지도자를 모본으로 세워주셔서 그들의 신앙 생활이 구체화되도록 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연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영력을 받아 구원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용기를 얻는다. 성경은 확실히 이 방면을 제시하여 준다. 곧, 성경이 우리에게 기도의 용기를 주기 위하여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하였다(약 5:17-18). (2)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한 체휼(體恤) 때문이다. 지도자의 눈물이 피지도자들의 눈물을 발생시키고, 지도자의 사랑의 수고가 지도를 받는 자들의 마음 속 깊이에 아름다둔 덕행의 동기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오직 인간인 지도자를 통로(通路)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사들은 고난 당하는 일도 없고 눈물도 없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10 절 상반) 곧,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뜻이다. 정통 학자들 중에서 이 문구를 내세(來世)과 관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세대 사람들이 죽어서 그 영혼으로 앞서 간 성도들이 가 있는 복된 세계로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 (10절 중간) 이것을보면 인생은 올바른 영적 교육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라고 하여 그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거나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뿐 아니라 국가적, 또는 사회적 교육 기관이 참된 종교 교육을 보장하는 일도 매우 드물다. 어떤 시대에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잘 공경하도록 권장하는 일이 있게 되면 그 때에 부모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착실히 실시해야 된다. 그렇게 못하면, 그 부모들이 별세한 뒤에 그들의 사회는 불신앙과 세속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실시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신 6:6-7; 시 78;5-8). 이 일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지도할 자는 교회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 시대만 책임진 것이 아니고 장래 세대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일해야 된다. 딤후 2:2에 말하기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2:11-13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하여 말한다. (1) 그들이 참된 신, 곧 그들을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살아 계신 여호와를 버렸음.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는,선을 악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강퍅한 행동이다. 이렇게 행한 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사 5:20). (2) 그들이 다른민족들의 신(神)들을 따름.
곧, 그들이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 - 을 섬겼으니, "바알과 아스다롯" - 이었다. "바알"(* )은 소유주(owner)란 뜻인데 이스라엘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예컨대 베니게 족속들과 아람 족속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그리고 "아스다롯"(* )은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신(母性神)이었다. 그들이 이 두 가지 우상을 농신(農神-풍년 들게 하는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그렇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미신(迷信)으로 타락했던가? 이것은 우리로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몇가지 원인을 알 때에 이 의문이 풀린다. (1)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효과적인 증거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10절). 인간은 특별히종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제시(提示)를 보수(保守)하지 않는 한(限), 어두운 미신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조상 때부터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하나님을 떠난 것이 곧 죽음임) 어두워졌기 때문이다(엡 2:1). (2) 음란의 미혹에빠진 원인도 있었다(민 25:1-3). 겔 16:17, 20:30, 23:3참조. 이 참조 귀절들에 지적된 말씀은 영적 음행, 곧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따름에 대한 비유적 언사이다. 그때의 우상당(偶像堂)에는 창녀(娼女)가 배속되어 있어서 그 우상 숭배 행위의 한 순서로 음행도 들어 있었다.

=====2:1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셨으므로 그들이 즉시 이방 세력에게 삼키웠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현상은 신약 교회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 신약 교회도 하나님을 떠나면 속화(俗化)되는 법이다.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 "어디를 가든지"란 문구에 있어서 "가든지"란 말(* )은 전쟁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왕하 18:7 ; 신 28:25 참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패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일찌기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바이다. 신 28:15, 25 참조. 본서의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약신(契約神) 성격을 역설(力說)하여 하나님의 진실성을 지적한다.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는 언제든지 먼저 예언하신 것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절대적 신앙의 대사응로 계시(啓示)되어 계신다. 누구든지 그를 믿지 않는 것은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2:16,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지도자로 "사사"(士師)를 세워 주셨으나 그들이 극히 타락했을 때에는 사사의 지도도 순종하지 않았다. "사사"란 말의 히브리어(* )는 재판하는 자를 가리키지만(D.K. Budde, der Grundbegriff dafurist Recht schaffen), 이는 일반 국가 행정에 속하는 재판장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우신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말을 "사사"라고 번역함보다는 구원자란 뜻을 내포하는 "심판자"라고 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쫓아" - (17절 상반)란 문구의 히브리어(*)는 "다른 신들을 쫓아 음란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음란하여"란 말(* )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니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섬기는 자를 가리켜서 음란한자라고 하시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다.(1)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니 만큼, 신자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은 여호와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만 섬겨야 된다(신 6:5). (2)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신자를 사랑하시되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 같이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것(엡 5:25). 그러므로 그는 신자도 그렇게 전심 전력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 신자가 하나님을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하지않을 때에 그는 질투하신다고 하였다(출 20:5). 이것은 신자에게 대한 그의 사랑이 불붙듯하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속히 치우쳐 - (17절 하반). 여기 "속히"(* )란 말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얼마 전까지 하나님 여호와를 공경하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속히 타락했을까 함이다.그러나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된다. 인류가 아담의 타락 후 이미 종교적으로는 타락되어있으니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는 그의 부패성이 발동하게 된다. "치우쳐"란 말(* )은 배반함(turned aside)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쫓는 배신 행위를 가리킨다.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 (17절 끝). 곧, 사사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즐이 그들의 신실했던 선조들처럼 행치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니 - 곧, 사사의 구원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지적한다.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사사기의 이 말씀은, 그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가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도자 없이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사회에도) 지도자들을 세워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시하시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신 동기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가 사사를 세우신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 때문에 일어난 그의 긍휼이었다. "슬피 부르짖으므로." 곧, 그들이 애달프게 기도했다는 것이다. 큰 죄인이라도 그 지은 죄를 진실히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호 6:6).

======2:19-21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지도자가 별세한 뒤에는 또 다시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특별히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19절 끝)란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강퍅해진 사실을 지적한다. 사람의 일반적 범죄는 성령을 근심케 하고(엡4:30), 그의 강퍅성은 벌을 초래한다.(창 6:5-7).

====2:22,23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거민, 곧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던 그 족속들을 더 이상 쫓아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시는 목적을 밝혀준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 (22절 하반)고하였다. 여기 "시험"이란 말(* )은 시련(試鍊)을 의미한다. "시험하려 함이라"고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할 때에 그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으로 인하여 연단을 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잘 믿는 신자들의 주위에도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하는 시험거리들을 남겨두신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역시 그들을 시련하시려는데 있다. 신자들은 시련을 통하여 성화(聖化)되어 간다. 벧전1:6-7; 욥 23:10 참조.

 

 

 

   전장(前章)에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과정에 대해
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제 본장 본장은 사사 시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과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범죄들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측면
에서 개괄적으로 조명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사사기 전체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있는 전장(前章)과
는 달리 타락과 압제와 구원으로 반복되는 이스라엘 역사의 신학적 해설을 담고  잇는
장(章)으로서 사사기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본장의 핵심적인 개념은 '언약'(Covenant)으로 본장에서 '언약' 또는 '맹세'라는  단
어가 5회 가량 언급되고 있다(1, 2 ,25, 20절).  그리고 이러한 본장 전체는 고대  근
동 지방의 '종주권 계약'(Sovereignty treaty)의 형식과 유사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
는 바 곧 다음과 같다.  (1) 군주되신 여호와가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고실행하였음을
선포(1절), (2) 언약 규정의 선포와 그 규정을 어긴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지적(2
절), (3) 규정된 형벌에 따른 저주의 선포(3절), (4) 봉신(封臣)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와 군주이신 여호와의 구원(4, 5절) 등이다.
 이상에서처럼 이스라엘이 점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이그러진 길로    걸어가게
된 데에는 지도자의 죽음이 크게 작용하였다.  즉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위대한
신앙인물, 역사의 산 증인들이 사라지자 점차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망각하게 된 것이
다(6-10절).  아무튼 이후 전개되는 사사 시대의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의 타락 - 하나
님의 책망 - 백성의 회개 -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형식으로 반복된다(11-23절).  따라
서 본장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언약적 관계의 견고성 : 이러한 사실은 사사 시대의 초기에 이미 여호와께서  이
스라엘의 악함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들의 죄악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언약
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신 여호와의 신실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언약적 관계의 저변(低邊)에 깔려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 이러한 사실은 이스
라엘 백성들이 언제든지 회개하고 슬피 울며 간구하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
시고(18절) 구원자를 보내셨다는 데서 발견하게 된다.
 (3) 언약적 관계의 궁극적 종착역은 이스라엘이 구원이라는 사실 : 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고 징계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을 멸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시
험 속에서 정금같이 단련되어 차원높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조차 사도 바울이 때가 차면 마침내 온    이스라엘
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고 담대히 증거한 점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된다(롬  11:25,
26).

     1.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여호와의 사자(2:1-5)
   가나안 정착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떠나 가나안  백성
들과 언약을 맺고 우상을 섬긴 사실(2, 3절)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임재하여
그들을 책망하며 저주하는 장면이다(1절).  그러자 백성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통회
하며 하나님 앞에 새로이 제단을 쌓는 장면이다(4, 5절).  그런데 이러한 본문은 다음
과 같은 특성 때문에 사사기서 전체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된다.
 (1) 본문은 사사 시대 초기에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적 자세가 어떠했는가를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버리고 가나안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며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사사 시대의 출발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2절).
 (2) 본문은 초기 가나안 정착 과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들을    진멸하지
못한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즉 그들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가나안인들을 진멸하
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 속에 거하며 그들과 협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
엘 가나안 역사는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얼룩지게 되었던 것이다.
 (3) 본문은 여호수아가 죽고, 가나안 정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때에 처음으로 여호
와의 사자가 등장하였으므로 보여 준다(1절).  이것은 모든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지만 특히 사사 시대를 이끌어 가실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4)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만일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면 하나님의 책망이나 간섭도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방인
들과 같이 저희를 더러움 속에 그대로 버려두셔서 역사 속에 도태되도록 하셨을  것이
다(롬 1:24).  그리고 결단코 어떠한 회개의 기회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물론
본문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며 구원하셨다는 말은 없으나 전체  문맥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의 그들의 회개와 눈물의 제사를 받으시고  구원하셨음이  틀림없
다.
 (5) 결국 본문은 죄 - 징계 - 간구 - 구원 - 망각 - 죄와 같은 사사기 역사의 악순환
의 모형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애당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인들을    진멸하면
(신 7:2) 순종의 역사로 시작되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
고 찬란하며 영광된 역사로 점철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
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처럼(롬 5:12) 출애굽 세대의  불순종
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죄악의 역사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기고 구원의 방편을 모색하셨으니 곧 예수 그
리스도이시다.  즉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의 뿌리를 없애시고(롬 6:6) 다시는 그의 백성들이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며 자유
를 누릴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롬 8:1).

   기독교의 구속적 본질(本質) - 본문을 보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타락의 길을
막 시작하려는. 아니 이미 패역한 행위 속에서 사마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는 장면이 나온
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구속적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즉 기독교가 비기독교적
인 여타 주장들을 물리치고 참 진리의 종교이며 구원의 종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죄악의 땅으로 내려 오셔서 인간들을 만나셨다
는 사실이다.
  불교가 선천적인 악과 생존의 비참함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온갖 인간적인 행위와 구
도(求道)가 삶을 요청하는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 죄악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근
본적이고 완전한 구원의 근거를 제공하신다.  그리고 모든 이방 종교가 본능적인 욕망
들의 충족을 위하여 신(神) 아닌 피조물들을 빌미로 하여 구속의  가능성을    구가하나
그것은 늪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이 불교가 땅곳에 구원의 가능성을 찾고 다른 이방 종교가    본능적인  욕망의
충족을 구원인 것으로 믿고 있으나 기독교는 그 구원의 가능성을 하늘에서 찾으며  전
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발견하자마자 인간의 죄악된 본질을 발견하게 되고 인간의 근본 저 밑에서부터 회개하
므로 새로운 구원의 삶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타 종교가 고난과 구도의 종교
라면 기독교는 기쁨과 행복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마 9:13), 구원의 사도로 죄인을 찾아오신 하나님 안에서 이제는  영
원히 정죄함없이(롬 8:1, 2) 빛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 여호수아의 세대와 그 이후 세대(2:6-10)
   여호수아 생존시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회고하
는 장면으로서 이후 이스라엘이 타락과 실패의 역사를 거듭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을 경외하였었다(5-7절).  그러나 여호수아도  결
국 수한(壽限)이 다되어 열조에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로나 그 이후  태어난
이스라엘 새 세대는 점차 여호와 신잉에서 멀어져 가고 만    것이다(8-10절).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 그 이면에 가리워져 있는 이스라엘의 타락 원인을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신정 국가를 세운 이흐부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명실 공히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몰랐
다는 사실이 그 첫째 원인이다.  사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을
위해 세움받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제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에게는 다른 인간적인 지도자가 필요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될 뿐이
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
를 구하므로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이후에    그들이    하나님께
왕을 구하는 사건이 나오는데(삼상 12:12) 그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 여호와가 행하신 일에 대한 교육의 부재가 둘째 원인이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
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본 자들은(7절) 마땅히 그 후대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자 천국(가나안) 시민으로서의 당연히 행할 바에 대해서 교육하여야 했었다.   그런데
도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결국 그 후손들은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
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즉 이미 택함받고 구
원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죄악된 세상과 접하지 않을 수 없
으므로 철저한 신앙의 무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르치는 것
으로 공생애 3년을 다 보내셨고 그의 제자들도 무리들을 힘써 가르치며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던 것이다.

   이적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태도 - 본문에는 하나님의 큰 이적과 역사를 몸소 체
험하였던 자들이 일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짐작케
해주는 구절이 나온다(7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권능과 의지 등을  드러
내시는 이적(민 14:11-19 강해, 이적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서는 이처럼 긍정적인  반
응을 보이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자들도 있다.  즉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이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대별될 수 있다.  이제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초자연적 이적을 목격해야만 하나님을 믿겠다는 태도 : 경험주의자들이나 실증주
의자들이 주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오관(五官)으로  확인
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요 20:26, 27).   그러나  이적
체험에 주안점을 두는 신앙은 자칫하면 광신적 상태에 빠지기 쉬우며 이적이 사라지면
쉽게 신앙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
만 믿는 자들을 책망하셨던 것이다(요 4:48).
 (2) 이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 : 이는 철저한 무신론자나 유물론자,  불가
지론자 등에게서 발견되는 태도이다.  이들은 자연법에 근거한 사실적 증거들만을  신
봉하고 있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신(神)의 개입을 허용치 않는다.  설령 그들 앞에  죽
었던 자가 다시 살아와서 진리를 증거할지라도 그들은 믿지 않는 것이다(눅6:31).
 (3) 이적을 보지 않고도 믿는 태도(요 20:29) : 이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태도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조종하심과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믿는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이러한 자들에게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이 함께 계셔서 그들의 신앙을 이끄신다는  점이다.
사실 성령의 도움이 없다면 죄악으로 흐려진 인간의 영안만을 통해선  올바른  진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전 2:11-14).

     3. 이스라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2:11-23)
   여호수아 사후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삶의 양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그들을 참된 신 여호와를 버린 대신 도리어    이방신을  좇았는데(11-13
절) 그 결과 하나님의 징게의 채찍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14, 15, 20-23절).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시시  때때
로 보내주신 구원자 사사들의 활동 덕분이었다(16-19절).  이러한 본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 주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본성적으로 신을 숭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광야 생활과는  다른  안정된
정착 생활을 하게 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말았다(13절).  아마 그들은 가나안
의 우수한 농경 문화를 잘 수용하여 경제적인 안정만 누릴 수 있다면 더 이상  여호와
를 숭배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신의  굴레
를 완전히 벗어버린 무신론자가 되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부자들이 자기  배와  돈을
신(神)으로 섬기듯이 이스라엘은 농사 신인 바알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고 말았던 것이
다.  이처럼 인간은 참 신을 배반하여 신 아닌 것들을 숭배할 수 있을지언정 본성  저
깊은 곳에 있는 신의 자리를 없앨 수는 없다.
 (2) 이스라엘의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
님의 법에 따라 판단해 볼 때 영원한 재앙 속에 버리워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징벌이었다(1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 백성들이 대적들에게 압박과 고통을 받아 슬피 부르짖을 때에는 그 뜻을    돌이키시
어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18절).    마찬가지로 패역하기 이를 데 없는 죄인조차도 구원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한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즉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며
(롬 1:28) 허망한 생각들과 허탄한 신화들을 좇으므로(롬 1:23-25) 멸망의 길을  달려
가나 오직 여호와의 사랑만이 구원의 근거가 되셔서 그들을 멸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
시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험  가운데서  피할  길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이다(고전
10:13).  여기서 '피할 길'이란 결국 회개의 기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
께서는 항상 탕자의 아버지와 같이(눅 15:11-32) 당신 백성들이 회개하여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피할  길을
예비해 두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패역한 길 속에서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고대 근동의 신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택한 민족이었으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러하지 아니하고 틈만  나면
주변의 여러 다양한 이방신들을 섬겼다.  본문 중에도 그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
다는 가사가 나오는데(12, 13절), 이제 당시 근동 지방에서 숭배되던 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팔레스틴의 신들

     신       나 라         지 위           성경   구절

    바알     가나안       젊은 폭풍신        왕상 16:31 ; 18:18-46

    아스다롯     가나안       모신, 사랑, 다산   13절 ; 10:6 ; 삼상 12
                              10 ; 왕상 11:5

    그모스     모압          국가의 전쟁신     11:24 ; 민 21:29 ;
                            왕상 11:7, 33 ;
                            렘 48:7

    몰록     암몬          국가의 신        습 1:5 ; 렘 49:1 ; 왕상
 (밀감, 밀곰)                        11:5, 7, 33

    다곤     블레셋       국가의 곡물신     16:23 ; 삼상 5:2-7

    하늘황후     가나안       아스다롯과 동일   렘 7:18 ; 44:17-25

    기타     엘(가나안.만신전의 우두머리), 아나트(전쟁신), 모트(죽음의 신)
         모트(죽음의 신), 아다드(수리아의 폭풍신), 테습(힛타이트의
         폭풍신), 한나한나(힛타이트의 모신), 아린나(힛타이트의
         태양여신)


  메소포타미아의 신들

    신         나 라          지 위            성경 구절

    므로닥     바벨론       젊은 폭풍신, 주신    렘 50:2

    벨         바벨론       태양의 신        사 46:1 ; 렘 50:2
                            ; 51:44

    느보     바벨론       므로닥의 아들     사 46:1

    담무스     수메르       젊은 폭풍신        겔 8:14

    기타     아누(만신전의 우두머리). 엔릴(폭풍의 신), 에아엔귀
         (깊음의 신), 신[난다]    (달신), 이쉬할(다산신), 티아맛
         (소금물의 신)

 

   시험의 종류와 목적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시는 분으로 묘
사되어 있다(22절).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      )
는 '시도하다', '증명하다'(prove, test), '유혹하다'(tempt), '연단하다'(trial)  등
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
간을 시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시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다 차원 높은 신앙으로 인도하시려
는 선한 목적이 있으나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자신의 불신앙을 기반으로  하
여 참된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패역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행
15:10 ; 고전 10:9).
 한편 이상의 두 가지 시험 중 하나님의 시험은 목적에 따라 다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시험 :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민족들의 회개
를 유도하기 위해 종종 시험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선 당신의 백성을 대적의 손에  내
어놓아 곤경을 당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을 떠난 삶에는 참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을 깨닫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을 위하여 열국이나 사단을 곧잘 도구로  사
용하시는데 이렇게 사단으로 하여금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도록 허용하실지라도 하나
님께선 결단코 당신 백성을 영원한 멸망의 죄악 속에 빠뜨리지는  않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2) 신앙이나 인격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 :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의 믿음
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정도를 알아보시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신다.  아
브라함의 시험과 욥의 시험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창 22:1 ; 욥 1:6-22).    이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온갖 미혹에 넘어지기 쉬운 인간들을 시험하심으로 매사에 믿음으로  대
처할 수 있도록 연단하신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6)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히 4:15)  받으셨
는데 이로 말미암아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가 있게 된 것이다(히 2:18).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시험은 어떠한 형태이든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
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시험이 닥쳤을 때 먼저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  시험
이 나의 회개를 요구하는지 아니면 신앙의 성장을 요구하는지를 잘 분별하여 믿음으로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고전 10:13).  한편 이러한 '시험'에 대해서는 창  22:1-19  강
해, '시험에 대한 이해'를 참조하라.

   사사들의 입지(立地) -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종교적 암흑 시대라 칭할 수  있는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셨음을  알
수 있다(16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의 위치와 그들의 입지(立地)에  대
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사사들은 백성의 간택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그때  그
때 성령의 강동하심으로 부름을 받았으며(3:9 ; 6:34 ; 11:29 ; 13:25) 급박한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그래서 사사들은  대
부분 전쟁에 능한 군대 지휘자로서 세움을 받은 것이다.  물론 모세나 여호수아도  하
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세움을 받았으나 그들은 장로들과 온 이스라엘의 지지속
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2) 사사들의 활동 범위는 대부분 국지적(局地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임기도
단회적이었다.  이들은 주로 자기 지파를 구원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동시대에 둘  이
상의 사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종종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도구
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들을 '구원자들'(3:9, 15: ; 느 9:27)로 칭하기도 했다.
 (3) 사사들 중에는 도덕적으로 저급한 수준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에훗
은 암살자였으며(3:15-25). 야엘은 이스라엘의 배반자였다(4:17-21).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삼손도 블레셋 여인들과 부정한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다(14장).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그들의 도덕적 약점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셔서  이스
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을 태평하게 하셨는데(3:11, 30
; 5;31) 여기서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참 인도자는 여호와뿐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4) 사사들이 임무는 대단히 광범위한 편이어서 때에 따라 재판관이나 행정관이 되기
도 하고 선지자나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사 시대가 이스라엘  역
사에 있어서 암울한 시기였긴 하나 사사들이 활동할 때는 도덕적으로나 정치적,  또는
영적으로 비교적 양호한 상태가 될 수 있었다.
 (5) 모세와 여호수아의 소명에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수반했으나(출 3:1-4 ;  17  ;
수 1:1-9) 사사 시대에는 어떠한 새로운 언약도 없었다.  그 이유는 모세 언약의 핵심
요소인 가나안 입성이 성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의 끊임없는 불순종의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벌 이외에 어떤 새로운 계약의 요건이  성립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볼 때 사사들은 구속사의 어떤  쟝르를  형성할만한 핵심적인 인물 이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빈약한 입지(立地)는 오히려 하나님의 온전한 지배권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사들 각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구속사적인 의미를 발견하기 보다는 그들이 살았던  사사 시대가 갖는 구속사적인 과정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다.   한편이상과 같은 '사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3:7-11 강해, '이스라엘 구원자 사사'
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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