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에스겔 10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겔 10:1,2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
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
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  여기 "보좌 형상 같"은 것이 나타 났다 하였고, 또 "하나님
이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명령하여 "숯불을...성읍 위에 흩으라"고 하신 것은,
예루살렘 성읍을  심판하실이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언제
나 심판자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잘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여기 이와 같은 계시(啓示)
가 나타난다. "숯불울...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심은, 그가 장차 예루살렘 성읍을 심판
하실것을 상징적(象徵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겔 10:3,4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 뜰에 가득하며 여호
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 여기 이른바 "구름"(      =아난)은, 칼빈(Calvi
n)에 의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표, 혹은
" 그 영광이 땅 위에 나타난  외부적 표현"(die irdische hulle der gottlichen Doxa)
이라고 한다(Cooke, Schumpp).출 16:10,19:916, 40:34; 민 9:15 참조.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4절). 이와 같은 하나님의 동작은9:3
에도 있다. 이것을 보고  쿡(Cooke)이란 학자는. 이렇게 움직임은 무게가 없으니 하나
님의 동작(動作)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귀절이 후대(後代)에
가입(加入)된 것이라고  하였고, 크레이 추말(Kraetzschmar)은, 이귀절을 아주 없애버
려야 할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헴만(Herrmann)은, 3-6절의 부분을 전부 후대의 삽
구(揷句)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9:3의 말씀을 거듭한 것은 문제될 것 없다. 그
이유는, 여기 제 10장의 계시(啓示)는 제 9장의 내용을 다른 각도(角度)로 한 번 다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바와 같은 학자들의 추측은 모두 다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법궤 위("그룹들 머리위"-1절)에 계시다가 이제 "성전 문지방에 임하"
심은,  그가 거기서 떠나시려는 준비이다. 이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지 아
니하시는 증표이다.

 

  겔 10:5-8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 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
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 여기 "가는
베옷 입은 자"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제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는 광경
(光景)이 기록되어 있다. "그룹들의 날게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
성 같더라". 이것은, 그들의 날개 소리가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계시(啓示)한다는 뜻
이니, 곧, 하나님의 진노와  엄위(嚴威)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그의 말씀과 같이 분명
하다는 뜻이다(출 19:16-25; 시 29:3; 히 12;18-20).
   "불을 취하라". 그룹은 불과  관련되어 있는데(창 3:24),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震
怒)를 상징하나 역시 그의 성결(聖潔)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성결의
불을 체험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성결을 찬송한다.(계 4:80. 성결은 뜨거움으로 비유
될만하다. 그것은, 의(義)에  대하여 불 같이 뜨거운 동시에. 죄를 미워하는데도 역시
뜨겁다. 이런 뜨거움이  없는  미온 상태는 주님께서 토하시겠다고 하셨다.(계 3:15-1
6). 이사야서 를  보면,  그룹들이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였다
(사 6:6-7). 우리는 그룹들과 같이 주님의 성결을 본받아야 한다. 주님의 성결을 본받
음에 있어서 뜨겁지  못한자들은 결국 주님을 멀리 떠나게 되고, 나중에는 주님에게서
버림을 당한다. 거룩치 못한 자는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히 12:14). 그러므로 모
든 참다운 성도는 심히 뜨거운 마음으로 성결의 도(道)를 지켰다. 욥은 말하기를, "내
가 그의 입술의 멸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
나"라고 하여였다(욥 23:12).
   그룹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8절), 우리는 그것을 보고 배울 것이 있다. "날
개"는 신앙을 상징한다. 계시록 12장을 보면, 하늘에서 쫓겨난 용(龍)이 여자(교회)를
핍박할 때에, 그 여자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
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았다고 한다(계 12:14). 이
것은, 교회가 믿음(두  날개로 비유되었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사실을 보
여준다. 믿음은 과연 날개로  비유될 만하다. 새(鳥)는 육지에 발을 대고도 살지만 궁
창에서 난다. 그와 같이. 사람이  발로 땅을 디디고 살지만, 날개와 같은 신앙에 의하
여 공기 같이 보이지 않는 영계(하나님의  세계)에서 움직이며 살 수 있다. 성도는 곤
난한 일을 당할 때에, 새와 같이 날아서 안식처(安息處)를 찾아 가고  싶어 한다.그러
므로 다윗은 환난 때를 당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라고 하였다(시 55:6). 이소원은, 그가 여호와를 신앙하였을 때에 이루
어졌다. 그 때에 그는 날아다니는 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쩐일인
고"라고 하였다(시 11:1).
   우리는 영혼의 최후 구원을 위하여,  물질이 아닌 영계(靈界)에서 살 줄 알아야 된
다(벧전 1:8-9). 물질에 의존(依存)하는  생활 방법으로써는 영계에서 살 수 없다. 아
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발 붙일 만큼의 땅도  받지 않았으나(행 7:5). 보이지 않는 영계에 날개
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투신(投身)한 셈이다. 모세도 육신의 모든 영광과 재물에 몸을
붙이지 않고, 도리어 보이지 않는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믿음의 날개를 사용하였다(히
11:24-26).
   "그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손"은 봉사의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 신자들은, 신앙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는 듯이 살면서 모든 봉사를 해야
한다.

 

  겔 10:9

  내가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 "바퀴"는, 봉사를 상징하기도
한다(그들의 순종과 봉사로 실현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섭리임). "바퀴"는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의 위치는, 수레 맨 밑에 있어서 무거운 짐을  싣고 다
니는 것이다. 그것의 위치는, 수레 맨 밑에 있어서 무거운 짐을 싣고 굴러 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끄는대로 신속히 간다. 신자들도 주님을 순종하는에 있어서,  바퀴처럼
감심(甘心)으로 하는 것과 신속(迅速)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는
우리가 생각해 볼 여유도 가지지 않아야 된다. 그 이유는, 그 멸령에는  절대 오류(誤
謬)가 없고, 그 순종자에게 언제나 축복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使命)을 화급히 순종해야 된다. 우리가 먼 나라에는 가지  못하되, 내 가
정에서 이 사명을 신속히 실행해야 된다.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하여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죤 와나메이커(John Wa
namaker)는,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우편국장이었고,  겸하여  큰 백화점을
경영하면서 그는, 유년 주일학교 교장으로도 일하였다. 그런데 그는 직장을 위하여 시
간을 사용함보다 주일학교를 위하여 더욱 많이 힘썼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
기를,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어떻게 그렇게 주일학교를 위하여 힘씁니까?"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주일학교 일은 나의 원업(原業)이고 직장은 나의 부업(副業)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겔 10:10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 네 그룹들이
소유한 바퀴들은, 서로끼리 충돌됨이 없이 모두 다 같은 일을 한다. 우리 신자들도 이
처럼 단합(團合)을 힘써야 된다. "바퀴 안에  바퀴"에  대하여는 1:16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겔 10:11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며 - 신자들도 이렇게 행해야 된다. (1) 주님을 따르는 일은 절
대적으로 옳은 것이기 때문에 방향을 돌이키지 않는다. 눅 9:62에 말하기를, "손에 쟁
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하였다. 기독
신자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택하여 가는  중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경우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면, 돌이킬 필요가 없다. 그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있다. 그것은 겸손히 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이다. 옳은 길
을 가면서도 교만하게 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는다. (2) 주님을 따르는
길은, 필경 면류관을 받는 길이다. 겔 6:9에 말하기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
는 길에서 우리가 돌이킬 필요는 없다.

 

  겔 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
라 - "눈"은 지혜와 밝음을 의미하나니, 주님이 지시하신 길은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
니다. 그 길을 가는 자는 영원히  속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신자도 무수한
눈을 가진 자와 같으며, 그보다도 하나님의 눈을 가진 자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
나님의 눈과 같다고, 성경는 말한다.  히 4:12-13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
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
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하였다.
 


  겔 10:14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
요 세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네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 이것은, 그들의 활동이 어
느 방면으로든지  대비(對備)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기독 신자도 교회 생활에 있어서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나는 모른다"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하면, 그
어떤 일에 대해서든지,  그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든지 외면(外面)할 수 없다. 진실한
신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또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책임감을 느껴
봉사한다. 유명한 성도 바실(Basil)의 생활은 번개불과 같았고. 그이 설교는 우뢰소리와 같았다고 한다(His speech was thunder; his life, lightening).

 겔 10:15-17
  여기서는  그룹들과 바퀴의 행동이 통일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서로 단합(團合)하여 완전을 이룬다.

  겔 10:18,19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려는, 위태한 광경을 보여준다. 유다 민족은 하나님보다 성전을 더욱 존중시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는 의미에서 성전을 떠나신다. 하나님이 떠나신 성전은 아무 가치(價値)도 없다.

  겔 10:20-22
  선지자는  여기서,  그가 본 그룹들이 일찌기 그발강가에 나타났던 생물(生物)들과 같은 존재임을 말하여준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