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어서  나옴으
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
여기 "섬들"이라는 말은 이방 모든 나라들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내가 태어서 나옴
으로부터 나를 부르셨"다 함은, 메시야(그리스도)께서 그 직분을 취하심이 전혀  하나
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이 여기 역설되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어야 할 사실을 절대화(絶對化)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  초
두에 메시야께서 말씀하신바, "나를 들으라", "귀를 기울이라"라는 말씀이 나온  것이
다. 하나님이 절대 시용하시고 세우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인간은  불신임할  것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간주하는 큰 범죄인
것이다. 그러나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치는 자이다(요 3:33).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이 말씀은 문자  그대
로 성취되었다. 마 1:21 참조.

 

  사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 이것은, 메시야의 말씀이 어떻게 날카로워서 사람의 심
령을 쪼갤 수 있는 것을 예언한다(히 4:12; 전 12:11; 계19:21).  그리스도의  말씀이
저렇게 "날카로운 칼 같이"나타남은,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님
께서는 그 말씀에 의하여 듣는 자들의 심령을 개조(改造)하시고 새롭게 만드신다. "마
광한"이라는 말은 닦아서 깨끗이 하였다는 뜻이다.

 

  사 49: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으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낸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메시야에게 하신것인데, 그의 사명이 무엇임을 보여준다. 곧, 여호
와의 종으로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직분이라는 것이다. 메시야는, 어디까지든지  하
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그오시는 목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로되  그
의 사역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종속적(從屬的)이고, 특별히 요한 복음은 그 모든  말씀
에 있어서 이사실을 고조(高調)한다. 요 4:34, 12:28, 13:31, 17:4 참조.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함은, 이상할것 없다. 메시야를 다윗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으니(사 55:3), 유대 민족의 유명한 조상 야곱의 이름(이스라엘)으로도  그
에게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란 명칭이 여기서 유대 민족의 명칭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아래 5,6절이 더욱 밝혀 준다. 거기서는, "나"라는 제 1인칭(第一
人稱)대명사가 "이스라엘"과 구분(區分)되어 있다. 여기서 메시야의  이름을  "이스라
엘"이라고 한 것은 확실하다.

 

  사 49:4

  본절의 말씀은, 메시야께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수고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믿어
드리지 않게 될 사실을 예언한다. 그러나 메시야께서는 그사역의  효과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갚아 주시는 심판을 믿는 고로 원망이나 불평이 전연 없다.
신자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들의 수고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낙심할 것
없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갚아 주시는 확실한 진리를 믿고 기뻐할 뿐이다.  그러므로
갈 6:9에 말하기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
르매 거두리라"고 하였다.

 

  사 49:5

 유대 민족이 메시야(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어 드리지 않는다 할찌라도(4절  참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영화로우시며("존귀한"), 또한 하나님
은 그의 힘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에게
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롬 11장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과
유가(類似)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불신앙 때문에 그 택하신 백성을 모으시는 일
에 실패하셨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 민족 중에도 그 나라
를 대표할만한 신자들이 있고 또한 때가 이르면 다수의 유대인들이 회개하게 될  것이
다(롬 11:1-12). 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
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이방인들도 역시 아스라엘이다(롬 4:16). 그러므로 메시야의 사
역은 어떤 의미로서든지 야곱 곧, 택한 백성을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 롬 11:11-24 참조.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
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이 귀절은, 윗절에 말한 대로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시는 운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다. 곧,  야곱의  지파
(유대민족)를 영적(靈的)으로 일으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도 메시야의 일이지
만, 그보다도 더 큰 일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
도록 하시는 일이다. 신약의 복음 운동은 이 말씀대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나 필경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수다히  하나님께
로 돌아오게 하셨다. 이것은 물론 그가 사도들을 세우셔서 이루신 것이다. 롬 15:8-12
참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는, 전쟁과 포로의 환난 중에서도 멸절되지 않고 살아 남
아 있는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나, 특별히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도록
되어 있는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사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맏는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에게 주신 말씀인데 곧,  메시야
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기는 하지만, 필경은 승리하여 모든 왕들까지도 심판하
게 되실 것을 가리킨다.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자,  관
원들에게 종이 된 자"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질 사실에 대하여  명확
하게도 예언한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서나 별시와 천대를 맏으실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라 하였고, 그가 잡히워 권세 잡은 자들 앞에서 심문 맏
으실 때에는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민중에게까지 미움을 당하셨으니, "백성에게  미
움을 받는 자"라 하였고, 그가 땅에 계실 때에 세금도 내시고 로마 관원의 재판을  받
으셨으니 만큼, "관원들의 종"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의 말씀과 같이 미천한 처지에 계셨으나 그의 이와 같은  생활이
진정한 승리의 걸음이었다. 그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전하는  복음은,  군왕(君
王)들 중에서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들이 있게 하며, 그의 재림 때에는
어떤 임금이든지 다 그의 심판을 받도록 되었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원인은 여호와께
서 그렇게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사 49:8

  여호와께서도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
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
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 이 귀절은 고후 6:2에  인용되었는
데 이는 신약 시대를 예언한다. "은혜의 때"나 "구원의 날"은, 하나님께서 경하신  특
별한 시기이니 곧,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복음으로 만민을 구원하시는 시기이다. "응답
하였고", "도왔도다"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 전혀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통에서 되어질 사실을 예언한다. 요 5:17,19,30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구원 사
역을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시며 기도하시는 중에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
는 일을 하시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셨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에 있어서도  그
는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갑사하나이다"  하셨고(요  11:41),
70인이 전도하고 돌아온 때에도 그는 기도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
을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
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
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셨다(눅  10:21,22).  요
1:51, 8:29 참조.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라는 말씀은, 메시야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도록
하실 것을 예언함이다. 히 8:6; 눅 22:20 참조. 이 "언약"은, 영원 전에 맺으신  영원
하 계약에 대하여 지금 말하는 것 뿐이니, 이때에 비로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메시야
를 하나님 백성의 중보자로 세우실 작정은(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구약을  보며느
하나님 아들이 중보자로서 알려져 있으며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시  2:7).
또한 그를 하나님의 종이라고도 하였다(사 53:4-12). 그는, 영원 전부터 중보자로  삼
위 일체 안에서  의정(議定)되신  것이  사실이다(사  41:1,  43:10;  마  12:18;  눅
24:26,27; 행 2:23, 4:28; 벧전 1:20). 특별히 벧전 1:20을 보면,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아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이로써 영원한 구속 계약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헤르만 바빙크(H. Bavinck)는 말
하기를, "하나님께서 계약을 맺으심에 있어서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로 더불어 먼저 하시고 나중에 그리스도로 더불러 하신 것이다. 은혜의  계약은  벌써
영원 전에 삼위 일체의 의론(議論)으로 약정(約定)하신 것이며, 그것이 인류 타락  후
에 실현되어 온 것이다"라고 하였다(Het is niet zoo, dat God  eerst  zijn  verbond
met Adam en Noach,  met  Abraham  en  Israel  opricht  en  eindelijk  eerst  met
Christus. Maar het vervond der genade ligt van eeuwigheid gereed in  get  pactum
salutis der drie personen en wordt van stonde aan na den val  Hem  gerealiseerd.
...Geref. Dog. III. p.195).
  그는 또 말하기를, "시간 세계에 계시된(아브라함과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은
혜 계약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하고 변동 없는 근거 위에  확립되어  있
다. 그것은 삼위 일체 되신 하나님의 계약(契約)과 의정(議定) 속에 견고히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두가가의 실행에 있어서 실족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
다(Het verbond der genade, dat in den tijd wordt geopenbard, hangt  niet  in  de
lucht maar rust op een eeuwigen, onveranderlijken grondslag. Het  ligt  vast  in
den raad en in het verbond  van  God  drieeenig,  en  it  daarvan  de  onfeibaar
volgende toepassing en uitvoering. ...idem, p. 195).

 

  사 49: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 여기  "내가"라는
말을 메시야 자신이시다. 그가 하신 이 말씀은, 바벧론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들더러
"나오라"고 하시는 복된 말씀이면서, 겸하여 더 멀리 신약 시대에 모든  영적  포로들
(죄인들)을 복음으로 살아나도록 하는 운동을 예언한다. 눅 4:18,19 참조. "흑암에 있
는 자"는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인생들을 비유한다. "나타나라"함은 복음의 빛을  받으
라는 말씀과 같다. 엡 5:7-14 참조.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이 말씀은, 우대인들이 바벧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길
가운데서도 먹을 것이 있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약 시대에 가득  신자들이
풍성한 은혜를 받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기 어려운 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  같이
은혜가 풍성할 것을 예언한다. 길에서는 먹을 것을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우양(牛羊)
을 먹이는 자들도 길에서는 만족히 먹일 수 없으므로 풀밭으로 가야  한다.  그것들이
길에서는 끌리워 가는 중에 길가에 있는 엉성하게 돋아 난 풀을 요행히 먹을 수  있으
나 보통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신령한 교훈을 취할 수 있다. 여기"길"이란 것은 사람이 일하는
것을 비유한다. 곧, 무엇을 행한다는 것이다. 신자가 기도하는 중에나 혹은  믿음으로
영혼의 양식을 먹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행할 때에는 분망하기만 하고 심령은
파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신자들이 어떤 직책이나 사업을 행하노라고 심령은  피
곤하여지고 혹은 주린 사람처럼 되어지니 그것을 보면 길에서는(무슨 직책이나 사무나
사업을 행하는 도중에는) 곤비하여지기만 하고 영적 양식을 공급 받지 못한다. 그런데
도 불구하고  우리 본문은 말하기를, "길에서 먹으리라"고 한다. 사실상 우리가  우리
의 직책이나 사업을 행하는 길에서도 바로만 하면 먹을 수 있다. 곧,  생명의  양식을
섭취하게 될 수 있다. 그 비결은 이러하니 곧, 직책이나 사업을 하는  자가,  사리(事
理)를 바로 분변하여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만 하고 또 그 일을 복음의 원칙대로만  할
때에, 심령이 피곤하여질 리는 없고 도리어 힘을 얻는다. 일을 하되 복음적으로  주님
을 의지하여 할 것 같으면 피곤하여질 리 만무하다.
  "모든 자산에서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자산"곧, 풀 없는 붉은 산에  풀밭
이 있으리라는 것도 이연(理然)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신령한 생활에는 될  수  있는
일이다. "자산"은 우리에게 곤난이나 난관 같은 것을 비유한다. 기독 신자에게는 사실
상 난관이 있어야 진보가 있다. 그들이 난관을 당하여 많이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볼
때에 영적 생활은 더욱 부요하여지며 또한 향상한다. 북극 지방의 사슴은, 땅에  덮인
눈을 긁어 치우고 밑바닥에 있는 풀을 먹는다고 한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난관이라는
것은 실상 많은 신령한 양식을 저장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아니라.  "자산"은
높은 곳이니 신자는 그 신앙 수준을 높일 때에 "풀밭"과같은 신령한 양식의 창고를 발
견하게 된다는 비유도 이 말씀에 내포되어 있다.

 

  사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
이 말씀은 윗절 말씀을 받아서, 메시야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 백성이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서도 영적 생활에 부족함이 없을 것을 비유한다. 이 말씀은, 사막의 여행자들을
염두에 두고 신자들을 비유한다. 사막에서는 "주리"며 "목마르"며 "더위와 볕"에 상하
는 일이 보통이다("더위" 라는 말       =쇠라브는 신기루를 의미하나니 사막에서  물
과 같이 보이는 熱氣임).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생활
을 하는 것은, 사막 생활과 같다. 이 세상이 이렇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 모든 악조건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요구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 뿐이다. 그들에게 신앙만 있다면 "샘물  근원으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그들과 함께 하신다. 졔 7:13-17 참조.

 

  사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 "산을 길로  삼"는  다는
것은, 바벧론에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이 아무리 산으로 막힌 것 같이 돌아올 길이  없
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고 돌아올 길이 열린다는  비유이
다.
  이사야는 이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장차 올 메시야의 구원 운동을 예표한 것이 분명
하다. (1) 기독 신자들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은 높을수록 더욱 좋은  길임을  비유
한. 다시말하면, 우리의 영적 생활이 잘 되도록 인도한 평탄한 길은, 도리어 험한  준
령(峻嶺)과 같은 어려운 난제(難題)들을 기회(機會)로 삼아 하난미을 향하여 높이  행
하는데 있다. 기독 신자들은, 산과 같은 통과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당할 때에 그 아래
깔리우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을 향하여 그 심령을 높은 수준에 올릴 때에 그 모든  산
과 같은 문제들도 해결되다. 태산이 높다하여도 하늘 아래 뫼이다.  (2)  여기  "모든
산"이라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산이 아닌데 사람들이 공연히 그것을 산과 같이 보
기 때문에 "산"이라고 해 둔 것이다(Maclaren). 사람들은 공연히 난제 아닌 것을 난제
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진실되이 믿어서 복음 진리를
밝히 아는 자는 그런 것을 산으로 보지 않고 대로(大路)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자들도 위에 말한 착각에 걸린 때에는 신령한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 그 잘못 생
각된 난관을 문제시(問題視) 하지 않도록 되어야 한다.

 

  사 49:12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 이 말씀
을 보아도 이사야의 이 부분 말씀은, 너무나도 분명히 신약 시대의 메시야의 복음  운
동을 보여준다. 여기 이른바 "워방", "북방", "서방"은, 모두 다 이방 나라들을  가리
킨다. 특별히 "시님"(    )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의 음역(音譯)이니 성경 다른데는
나오지        않는다.        70인역은        이것을        바사라고        하나(           
                            
), 대부분의 유력한 해석가들은 이것을 지나(支那=China 곧, 진나라)라고 한다.  중국
의 진(秦)나라는 만리 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서양에까지 이름을 내었다. 그러니 아시
아 민족인 유대인들이 진 나라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시님"의 어원(語源)이 하필
진 나라라는 이름에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할 것은 없다. 진(秦=Tschina)이라는 말 뜻
은, 크고 많은 재원(財源)이라는 뜻으로서 서양의 상인(商人)들이 중국을 진(Tschina)
이라고 불러왔다고 하낟. 본문의 "시님"(    )은 진(Tschina)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르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 여기서도 이사야는,  "하
늘"과 "땅"과 "산들"을 불러 "기뻐하라"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신약 시대에 복음 운동
이 가져오는 축복이, 만물까지라도 새롭게 되도록 하는 구속 운동(球束運動)이므로 모
든 자연물(自然物)들까지도 기뻐할만하다는 것이다. "고난 당한 자"는 바벧론에  사로
잡힌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으나, 모든 죄악에 포로 된 인생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이런 포로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矜恤)에서 시작되어  긍휼로
완성한다.

 

  사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
와. - 여기서는 선지자가, 유대인들의 절망 상태에 있는 것을 탄식하며 그들의 소망을
작흥(作興)시키려고 한다. 사람이 고통에 빠지면 낙심 절망하기 쉽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큰 것을 알고 살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된다. 신구약  성경
은 낙심하라는 말이 전연 없다. 하나님은 자기를 진실히 찾는 자를 버리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멸망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쾅쾅 쏟아지는  샘통  앞에서
목말라 죽음과 같다. 왜 낙심하랴! 왜 죽고자 하랴! 예수님은 38년 된 낙심 절망한 병
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시면서 그의 소망을 작흥 시키셨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
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시 27:10에 말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
은 종종 부모의 사랑에 비유되면서 그 이상 됨을 성경은 늘 밝힌다. 히 12:9,  10  참
조. 우리는 자연계에서도 모든 참된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 수 있다.
피조물계(被造物界)에 있는 사랑이 피조물 자체에서 창조되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그 새끼를 사랑할 때에 결심하고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하나니 곧, 그것들이 그 새끼를 사랑하지 않으려 해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충동이 생겨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것들
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능력(能力)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종종 이
해하기 어려운 역경과 재앙과 같은 것이 신자들에게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른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역경이나 재앙과 같은 것이  죄악  세상에는
없어서 안될 뿐 나니라 신자들에게는 실상 신앙상(信仰上) 유익을 준다 그러니  만큼,
그런 것들도 실상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 것이다. 시 119:71에 말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사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언제
나 기억하신다는 것만 아니고, 그가 무슨 일을 하시든지("손"은 일하는 것임) 그 택한
백성에게 유익하도록 만사(萬事)를 만들어 나가신다는 의미도 된다. 다시 말하면,  만
사에 그의 모든 솜씨는 하나님 백성을 위하신다는 것이다.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잡혀
간 것까지도 무의미한 것이 아니고 그것 역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취하여진  하난미
의 사랑의 처사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도 범사에 있어서 주님의 이름을 우리  장
중(掌中)에 새긴 듯이 모든 것을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루어 나가야 할것이다. 우리의
이름을 그 "손바닥에 새기"시고 모든 일을 하여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어
찌 그 어느 순간에라도 주님을 잊을 수 있으랴!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여기 "성벽"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바벧
론에 잡혀 가는 동시에 무너진 성별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는
이 때는 아직 그들이 바벧론에 잡혀 가기 전이었으나 그 예언의 관점(觀點)으로  말하
면, 이는 곧, 그 무너진 것을 폐허로만 생각지 않으시고 앞으로 확실히  있을  그것의
재거(再建)을 생각하심이다. 그보다도 그는, 더 영화로운 예루살렘성을  그의  계획에
두셨으니 만큼, 그것이 이상(理想)만이 아니고 현실과 같은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
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비참한 폐허(廢墟)에도 영화롭고 복된 새로운 건설을 하
여 주신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음 17절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여 준다.

 

  사 49:17

  "네 자녀들" - 곧, 하나님 백성이 바벧론에서 돌아오게 도고 그들을  압제하며예루
살렘을
   "황폐케 하던 자들"은, 그들(유대 민족)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황폐케 하던 자
들"을 눈 앞에 보면서 어떻게 시온의 영광의 회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신앙으로야 생각될 수 있는것이다 신자들은 외모(外貌)대로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
씀과 약속에 의하여 폐허에서도 전보다 영화로운 건설을 내어다 본다.

 

  사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
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 여기 이른바 "사방을 보라"는 말씀은, 주님이 말씀을  믿
는 신령한 눈으로 보라는 뜻이다. 이사야가 예언하는 때에 유대인들이 아직 잡혀 가지
도 않았으나, 앞으로 잡혀 갈 것과, 또한 그 후에 거기서 놓여날 것을  내어다  본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더러 그런 광복 사건(光復事件)을 내어다 보고  앞으로  당할
모든 난관들 중에서 소망 중에 잘 통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하나님은 그 말씀에 의하여서만 믿어지고  남는다.
그런데 그의 말씀 위에 맹세까지 하심은, 불신앙으로 흘러가기 잘하는 인생들로  하여
금 믿음을 가지게 하는데 가세(加勢)하여 준다. 히 6:17,18 참조. 하나님께서 그의 삶
으로 맹세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맹세로서도 가장 무거운 것이다. 그가 이 맹세에
의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하여금 믿도록 해 주시려는 것은, 장차 바벧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올 무리가 많으리라는 사실이다. 또 그 사실이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 커다란 영광
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사"는다는 것이 그 뜻이다. 여기 이른바 많은
무리가 돌아오리라는 맘씀은, 하필 바벧론에서 돌아올 유대인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
고,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명백히  가르친다.
12절 참조. 하나님이 교회는 어떤 설비(設備)를 가지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
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되나니, "신부"가 장식을 몸에  띠
고 자랑하는 것처럼 하여야 된다.

 

  사 49:19,20

 바벧론에 사로잡혔던 유대인들이 본국에 돌아오므로
   "황폐하고 적막" - 했던 곳들이 이제 사람 사는 땅이 되어
   "좁게 될 것" - 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많은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므로
그들을 다 수용할 땅이 없으리 만큼 될 것을 예언한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 - 가 바로 이 신약 시대에 일어날 신자들을 가리킨다.

 

  사 49: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
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 이 말씀의 요점은, 새로 일어날 무수한  하나
님 백성이 생김에 대하여 경이(驚異)를 느낌이다. 이 말씀은 바벧론에서 돌아온  일부
분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이것은, 구약 교회(하나님  백성)에
참가하여 무수한 신약 교회가 일어날 것을 내어다 본다. 무수한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
나님을 공경하는데 대하여도 유대인들로서 그 원인을 알기 어려운 하나의  경이(驚異)
이다. 하나님 백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
씀의 능력으로 되는 것인 만큼, 사람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엘리야도  그  때
이스라엘 중에 자기만을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모르는
가운데 신실한 성도 7,000명이 있는 사실을, 하나님 말씀(왕상 19:18)이 알려 주었다.
롬 11:2-4 참조. 이 세상의 무서운 세력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무서운 것을 생각할 때에 참된 교회가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는 무서운 세상 세력 가운데서도 계속하여 일어난다.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곧, 유대 나라가  전
쟁 중에서 많은 백성을 잃고, 바벧론의 압박 하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처럼 의로이  지
내게 되었다. 그 때에 이 나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므로 하나님 백성을 생상하게  되
는 일이 정지되었다. 그야말로 생산 못하는 과부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처지에 있는 유대인들이 내어다 본대로 무수한 하나님 백성이 일어나나니, 이는 신
약 시대의 신자들이다. 유대인들은 이 무수한 무리를 내어다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
다. 그들느,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사로잡혀 간 과부처럼
됨)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라고 하게 된다.
  위의 말씀은, 문자대로 성취되었다. 신약 시대에 무수한 신자들이 일어  나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
(猜忌)하게 되었다.

 

  사 49:22,23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 이 말아미느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것을 가리킨다. 그 때에 이방인들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주님께로 돌아오나니 그것은, 마치 구약 교회(이스라엘)의  상속자("아들들"과
"딸들")를 품에 안는 듯이 사랑하며,
   "어깨에 메" - 는 듯이 기쁘게 데려옴과 같다. 그렇다면 이방 나라의 왕들은  하나
님 백성을 길러주는 양부(養父)나 유모(乳母)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왕
들이 보호하는 백성 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까닭이다.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  이것은,
(1) 하나님의 교회가(우리 본문에 "네개"라는 말씀은 교회를 가리킴), 모든 이방의 세
력 잡은 자들까지도 복종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 대하여  말
함이고, (2) 사실상 권세 잡은 자들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교회에 계심을 알고
돌아올 자들도 있음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와 같은 이방 임금들의 순종은, 교회로  말
미암아 알려지는 하나님 때문이니 교회 자체에게 대하여 그들이 숭배한다는 것은 아니
다. 오직 교회는 참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이 나타나도록  되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는 군왕들도 별수 없이 "티끌을 핥을"정도로 항복하게 된
다.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신자가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되면 군왕이라도  무
서워하는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날 것이니 그 때에는 신자 자신도 한층 더  여호와께서
만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여호와를
참되이 믿고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체험하게 되나니 그의 신
앙은 실패하지 않는다("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함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임). 여호와
하나님을 참되이 찾는 자를, 하나님께서 버리신적은 한번도 없다. 그 이유는, 그는 구
원하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멸망시키기를 즐겨하시지 않는 까닭이다.  그가
자기를 진실되이 찾는 자들을 버리실 리가 있으랴?

 

  사 49:24,25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
낼 수 있으랴 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
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
원할 것임이라. - 이 귀절들을 보면, 하나님 백성을 구원해 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어
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 만큼,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  힘으
로 말하면, 하나님 백성의 원수가 "용사"(勇士)인데 어떻게 그들을 이 용사의  손에서
건져내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신다(25절 상반). 마귀는 용사와 같으니 사람의  힘
으로는 그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용사를 결박할 수 있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
다. 마 12:29; 이 2:14,15 참조. (2) 강경(强硬)한 자로 말하면 하나님의 원수인데 그
손에서 그들이 벗어나기 어렵다. 24절 하반절에 "승리자"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찰
디익(      )인데 강경한 자(사정없는자)라는 뜻을 취함이 좋다. 어떤 해석에는 "법대
로 된 포로"를 가리킨다고 하나, 앞의 해석이 오히려 정당하다. 하나님 백성을 사로잡
은 자는. 만만치 않은 강경한 자이지만 하나님은 그 손에서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
기에 넉넉하시다.
  그가 이렇게 그 백성을 어디까지나 구원하시는 이유는, 25절 하반절에 밝혔다.  곧,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고 하신 말씀이다. 하
나님 백성은 그의 택하신 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라도 그는 그들을  구원하신다.
설혹 그들이 범죄하였을찌라도 그는 그들의 편에 서시는 것을 멈추시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죄를 벌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을 버리시지는 않는다. 그는 그들의 죄를 벌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을 버리시지는 않는다. 그는 사랑으로써 그 벌하시는  일을
취급하신다. 요컨대 하나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이, 영원한  구
원을 보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대항하는 자를 대적하신다. 저희가(그 백성
이) 범죄한 경우에, 그 원수를 저희에게 대한 채찍으로 사용하시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을 위험케하는 원수들의 대적에 대하여 하나님의  묵과(默過)하시지  않는
다. 그는, 원수들의 이와 같은 대적을 대항하신다.

 


  사 49:26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줄
알리라. - 하나님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자기의 고기를 먹게" 되며 "자기의  피에
취하게"된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나라에 내란(內亂)이 일어남으로 그 나라가 망한다
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백성을 학대하는  자가  자승자박(自乘自
縛), 혹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제가 빠지는 격으로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을  가리킨
다. 이렇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현저하게 그 벌이 천벌(天罰)인 것을 보여준다.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줄  알리라". 곧,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어디서든지 벌을 받으니, 모든 이방인들("모든 육체"라는 말은 모든 인류를 가리킴)이 하나님 백성 중심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고, 그 일을 행하시는 이가 천지 만물 창조 하신 여호와인 줄 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수중(手中)에 넣으시고 역사하시는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6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1장
6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2장
6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3장
6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4장
6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5장
6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6장
6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7장
5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8장
5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9장
5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0장
5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1장
5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2장
5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3장
5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4장
5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5장
5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6장
5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7장
4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8장
4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9장
4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0장
4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1장
4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2장
4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3장
4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4장
4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5장
4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6장
4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7장
3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8장
3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9장
3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0장
3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1장
3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2장
3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3장
3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4장
3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5장
3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6장
3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7장
2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8장
2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9장
2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0장
2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1장
2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2장
2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3장
2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4장
2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5장
2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6장
2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7장
1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8장
»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9장
1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50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나눔고딕 사이트로 가기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