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33:1
화 있을찐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 여기 이른바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는 자들은, 앗수르를
가리킨다. 그 때 앗수르는 유대인들에게 학대를 받은 일 없이 그들을 침략하였다. "속
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는 역시 앗수르인데 유다를 도와줄 듯이 약속하고(왕
하 18:14,15)도 계속하여 침략하였으니 속이는 자이다. 앗수르는 필경 유다를 학대하
며 속이는 일을 그치는 날이 있을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간섭으로 말미암
아 그 나라도 패배하는 때가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 나라 임금 자신이 피해를 당한
다. 사 37:36-38 참조.
사 33:2-4
이 부분에는 선지자가 유다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한
결과, 원수 앗수르는 그 침략 행동을 포기하고 도망하게 되며 그 노략물을 다 빼앗기
울 사실에 대하여 진술한다.
"주를 앙망"한다는 말에 대하여는 45:22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아침마다"
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랍베카림(* )이니 "속히"라는 뜻이라고 하나,
반스(Barnes)는 이것이 "계속적으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칼빈(Calvin)은, "옛
적부터"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우리의 팔이 되신"다 함은, 우리에게 힘이 되심을 가
리킨다.
"진동시키시는 소리"는 원수 앗수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는 음성을 가리
킨다(단 10:6). 이것은 물론 비유의 말씀일 것이다. "주께서 일어나"신다 함은, 그가
이제 앗수르를 물리치시기 위하여 행동을 개시하신다는 의미이다. "민족들"과 "열방"
이란 말은, 앗수르 침략군에 포함된 앗수르의 모든 식민지 백성을 가리킨다.
"황충의 모임 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라 함은, 앗수르군이 전쟁 당
시에 내어 버리고 간 노략물들을, 유대인들은 회수하기 위하여 황충의 떼와 같이 모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메뚜기의 뛰어 오름 같이" 보일 것이다.
사 33:5,6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높아지셨다는 의미이니 곧, 그가
앗수르의 멸시를 당하시다가 때가 이르매 그의 구원 사역을 유대 민족 상대로 나타내
심이다. 이제부터 그는 높아지시는 영광을 차지하신다. 그는 본래 높은데 계시니 그렇
게 되실 수 밖에 없다. 그는 이제 시온 곧, 유다 나라를 위하여 그 원수를 물리쳐 주
시는 공의를 행하신다. 그러므로 "너의 시대" 곧, 히스기야 시대에 "평안"과 "구원"이
임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지혜와 지식 곧, 여호와을 앎이 그 민족 가운데 풍성하
여 진다. 이렇게 된 마당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상 보배로운 것이 없다고 모든 사
람에게 알려진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모든 보배를 빼앗겼다(왕하 18:14,15).
그러나 그와 그의 동지자(同志者)들은 여호와로서 만족한다.
사 33:7
본절의 "그들의 용사"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엘엘람(* )인데 사신(使
臣)을 의미하나니(Calvin), 하반절에 나오는 "사신"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유대 나라
의 사신들이 앗수르의 침략시에 침략자를 찾아가서 화친(和親)을 청한 일이 있었다(왕
하 18:14). 그러나 침략자는 침략을 계속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사신들")은 비관하게
되었다.
사 33:8,9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침략하여 오니 교통은 두절(杜絶)되었으며 파약(破約)하고
들어오는 군대는 무자비하게 살륙(殺戮)한다. 따라서 땅은 슬퍼하며 쇠잔함 같다. 전
화(戰禍)로 인하여 아름다운 레바논산은 볼모양 없어져 부끄러워함 같고, 비옥(肥沃)
한 사론 들(平野)은 사막 같아지고, 과실 많은 바산과 갈멜은 잎 떨어진 삼림(森林)
같이 쓸쓸해진다. 이런 참변(慘變)은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절망 상태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런 때가 바로 하나님의 일하실 때이다. 이 뜻으로 다음 귀절은 말한다.
사 33:10
이 귀절에 "이제"(* =알타)라는 말은 뜻 깊은 말이다. 곧, "이제"(유대 민족
의 할 수 없이 된 때)야 말로 바로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사
람이 기진(氣盡)한 때는 하나님의 일하실 기회이다. "일어나며", "나를 높이며", "지
극히 높이우리니"라는 말은, 모두 다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 개시
(行動開始)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곤난을 보시고도 오래 참으시는 동안에
는 원수들이 그를 무시한다. 그러나 그가 구원 행동을 개시할 때에는 그의 권능이 나
타나므로 원수들은 두려워하며 그는 영광을 받으신다.
사 33:11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앗수르가 취한 침략 계획은, 하나님
이 보시기에 "겨"와 같아서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이 그 계획 실시로 얻을 것
은 "짚"과 같이 무가치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다.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사람이 불을 붙일 때에 호흡의 기운을 내불어
서 하는데, 이 말씀은 그것을 가지고 앗수르가 침략전(侵略戰)을 일으킨 것을 비유한
다. 앗수르가 침략전을 일으키고 그 자체가 패망케 되나니, 그것은 제가 판 함정에 제
가 빠짐이다. 시 7:15,37:15,57:6 참조.
사 33;12
여기 이른바 "민족들"이란 말은, 앗수르와 함께 침략전(侵略戰)에 나온 앗수르의
속방(屬邦) 인민들을 가리킨다. "불에 굽는 횟돌"은 쉬이 부숴진다. "가시나무"는 불
에 타는 것이 신속하다.
사 33:13
"먼데 있는 자들"은 이방 민족들을 가리키고, "가까이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
리킨다. 그들이 다 함께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벌하시는 것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사
37:36).
사 33:14,15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랴 ? 다시 말하면, 누가 악인에게 대하여는 진노하시
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랴 ? 이 문제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대답한다. 곧,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라고 한다. 여기 "의롭게 행하는 자"라는 말은, 그 아래 나오는 모
든 덕행(德行)의 총괄적 명사이다. 의로운 자라야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씀은 구약
에 많이 있다(시 15:1-5,24:3-6). 의로움은 하나님 백성의 특색이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소유하나니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믿음에서 맺는 열매이다. 그
런데 우리 본문에 있는 대로 그 "의"(義)의 내용은 다섯 가지인데, 모두 다 사람 상대
로 행할 도덕이고, 직접 하나님을 상대한 종교 의식 또는 예배 행위에 관한 것은 아니
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참된 경건(하나님 섬기는 신앙과 예
배)의 증표로서 언제든지 사람 상대의 옳은 행위를 요구 하신다는 것이다. 사람 상대
한 옳은 행실은 없이 신앙과 예배에 경건한 모양을 취하는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판정
된다. 이렇게 판정하는 것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사상이다. 사 1:11-17 참조.
여기 기록된 다섯 가지 의로운 행실은 외부적(外部的)인 행위 뿐만 아니라 그 심령
깊이에서부터 생명 있게 솟아나오는 신앙의 열매인 것이 명백하다. 몇 가지 예를 들
면,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긴"다고 하였으니 곧, 불의하게 빼앗은 물건을 취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부터 가증히 여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라는 말의 "손을 흔든"다는 것이 역시 마음에서부터 강력하
게 뇌물을 배척하는 행동이다. 또한 "귀를 막아"와 "눈을 감아"라는 말이 마음에서부
터 강력하게 죄악을 멀리한다는 말이다.
사 33: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
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높은 곳에 거"한다는 말은, 높이 있는 요색지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전쟁 때에 그 곳으로 도피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과 동거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하여 "견고한 바위"(요새지)나 "보장"
과 같이 되신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거하므로 양식과 물이 끊어지지 않는다(앗수르의
침략 때에는 그것들이 끊어졌던 것이다).
이 말씀은, 기독 신자가 잘 믿어 의롭게 살면 주님과 동행하게 되고 영적 생명 양
식이 풍부하게 될 것을 비유한다.
사 33:"17-19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
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측량하던 자가 어디 있
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
니라 - 이 귀절들은, 앗수르의 침략이 분쇄(紛鎖)됨에 따라, (1)유대인은 그 나라 왕
이 영광스러운 왕좌에 회복된 것을 보며, (2)예루살렘에 갇혔던 그들이 이제 노여나서
"광활한 땅"을 보게 되며, (3)그들을 두렵게 하던 앗수르 침략군이 이제는 지나간 일
로 생각되면서 감사를 느끼게 되나니(18절 상반) 그 침략자들을 찾아 보려 해도 찾을
수 없이 되리라고 한다. 이제는 "계산하던 자"도 없고, "측량하던 자"도 없고, "망대
를 계수하던 자"도 없고, "강포한 백성"도 없을 것이다. 여기 이른바 "계산하던 자"
(* =쏘펠)는 앗수르 침략군 중에서 전쟁 비용을 위하여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강
제로 징수하던 자들이다(K. Marti, die Zwingherrn und Beamten, die das als Steuer
und Kriegskontribution zu liefernde Geld abzahlten und wogen.-Hand Commentar,
III.p.240). 델리취(Delitzsch)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세를 측량하던 자"도 역시
그와 같은 사람이다. "망대를 계수하던 자"는, 전쟁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망대를
살펴보고 앗수르 군대장관에게 보고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강포한 백성"은 앗수르 사
람을 의미한다. "그 백성의 방언은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그
백성이 얼마나 유대인들에게 까다롭고 무서운 자들임을 보여준다.
이런 무서운 자들이 이제는 다 지나갈 것이니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
원이 임한 사실이 명백히 알려진다.
사 33:20,21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
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측량하던 자가 어디 있
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
니라 - 이 귀절들은, 앗수르의 침략이 분쇄(紛鎖)됨에 따라, (1)유대인은 그 나라 왕
이 영광스러운 왕좌에 회복된 것을 보며, (2)예루살렘에 갇혔던 그들이 이제 노여나서
"광활한 땅"을 보게 되며, (3)그들을 두렵게 하던 앗수르 침략군이 이제는 지나간 일
로 생각되면서 감사를 느끼게 되나니(18절 상반) 그 침략자들을 찾아 보려 해도 찾을
수 없이 되리라고 한다. 이제는 "계산하던 자"도 없고, "측량하던 자"도 없고, "망대
를 계수하던 자"도 없고, "강포한 백성"도 없을 것이다. 여기 이른바 "계산하던 자"
(* =쏘펠)는 앗수르 침략군 중에서 전쟁 비용을 위하여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강
제로 징수하던 자들이다(K. Marti, die Zwingherrn und Beamten, die das als Steuer
und Kriegskontribution zu liefernde Geld abzahlten und wogen.-Hand Commentar,
III.p.240). 델리취(Delitzsch)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세를 측량하던 자"도 역시
그와 같은 사람이다. "망대를 계수하던 자"는, 전쟁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망대를
살펴보고 앗수르 군대장관에게 보고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강포한 백성"은 앗수르 사
람을 의미한다. "그 백성의 방언은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그
백성이 얼마나 유대인들에게 까다롭고 무서운 자들임을 보여준다.
이런 무서운 자들이 이제는 다 지나갈 것이니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
원이 임한 사실이 명백히 알려진다.
사 33:22
본절은 윗말씀의 이유를 보여준다. 곧, 예루살렘이 견고하고 안전해진 원인은, 여
호와께서 친히 유대 민족을 권고하시는 "재판장"(司法)이시며 "율법을 세우신 자"(立
法者)이시며, "왕"(行政者)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삼권(三權)을 가지시
고 통치하시니 택한 백성에게는 영원한 안전이 보장된다.
삼권(三權), 곧 사법(司法), 입법(立法), 행정(行政)은 이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사 33:23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었느
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
여기서는 선지자가 유대 나라의 원수 앗수르에 대하여 말한다(Calvin). 위에서 예루살
렘은 넓은 하수나 강으로 둘리운 요새지로 비유됐고, 하나님 백성의 원수 앗수르는 배
(船舶)에 비유되었다(21절 하반). 여기서 그 비유를 받아 가지고 다시 말한다. 곧, 그
배는 "돛대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고 돛을 달지 못하였"다고 한
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아니하는 나라는 다 이와 같다는 것이다. 옛날의 배는, 돛
대를 사용하지 못하면 표류(漂流)하다가 파선할 것 밖에 없었다. "많은 재물을 탈취"한다 함은, 앗수르가 멸망함에 따라 유대 민족은 부전승(不戰勝)으로 승리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는 패하고 성도들은 승리하게 될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사 33:2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 이것은, 택한 백성인 유다 민족이 앗수르의 침략에서 구원을 받고 죄까지 사유함 받았다는 의미이다. 육체도 구원 받고 죄까지 사함 받는 것은 은혜 위에 은혜이다. 마 9:2,5-7 참조. 질병은 혹시 죄악의 결과이다(출 23:25).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 함은, 이제는 죄사함 받았다는 뜻이다. 본절 하반절에서 이와 같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