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 전심(全心)이 아닌 반심(半心)으로써 감사(感謝)는, 하나님에게 가납(嘉納)되지 못하며 또한 그에게 향기롭지 못하다. 그런데 전심 감사는 청렴(淸廉)자라야 한다. 탐심이 있는 자는 언제나 불만과 불평을 울린다. 탐심이 없는 자는, 적은 소유를 인해서도 감사한다. "기사를 전하리이다". 주님의 "기사"(奇事)란 것은 인위적(人爲的)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행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반드시 특별 이적만이 아니라, 일반적 섭리로 된것도 있다. 우리는, 이런 기사로 인하여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함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 이유는, 그 기사가 우리의 사용(使用)에 제공되기 위함보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기사가 많지 않아 보여도, 성도는 많은 기사를 보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필경 주님의 하실 일이 나타날 줄 믿기 때문이다(고전 13:7).
시 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여기 기쁨을 이중으로 역설(力說)한 것은, 그 기쁨의 지극히 큼을 표시하려함에 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 정도는 깊은 신앙이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한 자의 할수 있는 일이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도 기뻐하여 찬송하였고, 루덜포-드(Rutherford)는, 옥중에서도 기쁨으로 지나며 그 곳을 그리스도의 왕궁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기뻐한 이유는, 그 기쁨의 대상이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시 9: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 여기 말한 "주의 앞에서"란 것은,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 위세(威勢)를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 다윗의 원수 군대는 그들도 모르게 하나님의 신기(神奇)한 능력에 압도되어 패망하게 된 것이다. 기드온 군대 앞에 미디안의 대군이 패망하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예(例)이다. 화란의 개혁파 교회들은 서바나 구교도(舊敎徒)에게 많은 박해를 받아 화란은 국가적으로 멸망에 이를 뻔하였다. 그러나 화란군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참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싸웠으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신교국(新敎國) 화란은 구원을 받았다.
시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 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의로운 전쟁을 승리하도록 하셨다는 말씀이다. 다윗의 전쟁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정의(正義)를 위한 것이며, 정당 방어(正當防禦), 곧, "송사"(* )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선미(善美)한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 그러나 전쟁이 정당 방어의 목적은 가지면서도 그 수단이 의(義)롭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다.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란 말씀에 있어서 다윗은 자기가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다는 생각을 포함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성도가 된 사실에 의지하여 이 말을 한 것이다(사 43:25). 췌퍼(Chaffer)박사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은, 죄인을 의롭게 여겨 주시고 그를 하늘에 두시고 자기의 아들처럼 완전케 하신 일이다"라고 하였다.
시 9: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 다윗은 이스라엘 택한 백성을 대표하여 싸운 자이다. 택한 백성이 이 나라 혹은 저 나라에게 능욕을 당할 때마다 그는 싸워 이겼던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미루어 깨달을 것은, 진정한 교회를 박해하는 나라마다 망하다는 것이다. 다윗이 열방(列邦)을 이긴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택한 백성을 괴롭게 하는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시 9: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없나이다. - 원수들이 한 때에 덤비는 것을 보면, 천하가 다 그들의 것이 된것 같이 무섭다. 그러나 그들의 멸망할 날은 오는 법이다.곧, 그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이 될 날이 오고야 만다.
시 9:7,8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 하나님께서 현세(現世)에서 행하시는 섭리적 심판(6절에 진술된것)을 보는 자는, 세상 끝날에 있을 대심판을 생각하게 된다(J.Ridderbos). 다윗이 이 귀절들에 표현한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모든 민족들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구원을 실시하실 대종말(大終末)에 관한 것이다. 여기 나타낸 구원 개념(救援槪念)은 구약적 색채가 농후하다.
시 9:9,10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여기 "환난"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는 삐체르(* )란 어원(語源)에서 왔다(Delitzsch). 그것은 끊어졌다는 의미니, 곧, 모든 소망이 다 끊기어 할 수 없이 된 역경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은, 의(義)를 위하여 압박을 당하는 자에게 어느 때나 임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압박을 받는 중 극도로 할 수 없이 된 최후의 한 때에 임한다. -
"주의 이름을 아는 자".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적 은혜(知的恩惠)라고도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 대한 참된 지식이 없이는 참된 신앙이 있을 수 없다.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맹목적이고 무지한 신앙은 죽은 신앙과 같이 좋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시 9:11,12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 지어다 피흘림으로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부르짖음"곧,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기도는 파선 당한 자의 항구(港口)요, 물에 빠져 가는 자의 생명 줄이요, 저는 자의 지팡이요, 가난한 자의 보석광(寶石鑛)이요, 병든 자에게 고치는 자요, 건강을 보호하는 자요, 기도는 우리에게 축복을 계속케 하는 자요, 환난의 구름을 헤치는 자이다. 아! 복된 기도여 인간의 화(禍)를 정복하는 자이며, 인간의 행복의 든든한 기초이며, 언제나 계속하는 기쁨의 원천이고, 찰학의 어머니로다. 극도의 궁핍에서 한숨 지으면서라도 기도하는 자는 누구보다도 행복되다. 왕좌에 앉았어도 기도할 줄 모르는 자는 가장 불쌍한 자이다"라고 하였다.
시 9:13,14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진 이 시인(詩人)은, 다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할 마음을 가진다. 이 부분(13,14)말씀은 너무 요긴한 기도이기 때문에,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이 사닥다리 (기도)가 짧아도 땅에서 하늘에 닿는다"라고 하였다(The ladder looks to be short but it reaches from earth to heaven).이 기도에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신앙의 최고봉이다. 여간 도와주실 수 있는 정도의 하나님이 아니고 죽은 자라도 일으키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또 그는 말하기를, "그리하시면 내가...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한다.그것은 지도자로서의 아름다운 서원(誓願)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는, 교회로 하여금 그 구원의 은혜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이름(곧,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신 사실)을 알게 하여서 다 함께 신앙을 한층 더 굳게 해야 된다.일개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도 그의 사용(私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온"은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도의 대망(大望)은, 그가 아는 하나님을 타인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시온을 왜 "딸 같은"이라고 하였을까? 그것은,교회는 주님이가 신부(新婦)같기 때문이다(Delitzsch). "시온의 문"은 온 교회 앞을 가리킨다.우리는,"주의 찬송"곧 주님이 주신 구원과 은혜를 교회 앞에 간증해야 된다. 그 이유는,그렇게 하므로 교회가 힘을 얻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간증하는 일에 있어서 주의 할 것은,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을 일이다. 우리가 말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자기 자랑이 되고 만다.
시 9:15-17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믈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회가욘, 셀라)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 이 귀절들을 보면, 다윗이 전에 본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보복(報復)사실을 다시 회상하면서 확신을 강화시킨다.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란 것은, 극악한 사람이 남을 해하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해를 받게 되는 사실을 가리킨다. 스펄죤(Spurgeon)은, 이 말씀이, 일반적으로 행악자가 그 악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주광(酒狂)은 술을 먹어 자기를 해롭게 하고, 시기하는 자는 자기의 심장을 썩히고, 악담하는 자는 자기 영혼에 저주를 끼친다"라고하였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 "음부"란 말의 히브리어는 리쉬올라(* )이다.그것은 "음부로"라는 말인데, "로"토에 힘을 준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기 노제(論題)로 되어 있는 "악인"은 너무 괴악하여 가차 없이 반다스 "음부로"가게 된다는 뜻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잊어버렸다. 이 문구는, 그들의 배교(背敎)행위를 가리킨다."하나님을 잊어버린"것은 작은 죄와 같이 보이나, 그것을 길러 두면 장차 무서운 배교에 이른다.
위의 15-17절 말씀 내용을 간추려 보면, 악인이 필경 받게 된는 천벌(天罰)은 자작지얼(自作之蘖)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제가 판 웅덩이에 제가 빠짐"(自穽自陷), "제가 친 그믈에 제가 걸림"(自綱自罹),"제가 놓은 올무에 제가 걸림" (自繩自縛),그리고 지옥에 빠짐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회개를 위하여 오래 참으신다.그러나 그 악인이 끝까지 악하게 행하면, 그는 정확하게 심판하시고 보복하신다. "힉가욘"(* )은 묵상한다는 뜻이고,"셀라"(* )는 쉬라는 뜻인 듯하다.
시 9:18,19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으로 받게 하소서. - 성도를 가리켜 "궁핍한 자"라고 한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 있어서 곤고를 당하는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영원토록 그러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가 하나님이 도우심을 받는 시기는 꼭 온다.이 시구(詩句)는 그것을 역설(力說)하기 위하여, 18절에 같은 뜻을 거듭 말하였다.
시 9: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인생"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 에노쉬(* )는, 연약한 사람이란 의미를 포함한다. 약 4:14;벧전 1:24;사 40:7,41:14;욥 25:6 참조. 악인은,제가 피조물이 아닌 듯이 교만하게 덤빈다.그러나 저렇게 교만한 자에게도 인생은 연약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는 시기(時期)가 이를 것이다.그렇게 뻔뻔스럽고 오만한 인생이 촛밀 같이 녹아 질 때가 올 것을 누가 막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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