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4:1-4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
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을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 엘리 후는 욥의 문제를 공정하
게 다루자고 한다. 그는 여기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자고 한다. 특별히 4절 말씀은
이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남의 일에 관하여 말할 때엔 공평의 도덕을 지켜야 한다. 엘
이후가 이 점에 있어서 언론의 공평을 기하려고 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자기 나
름대로 욥의 비(非)를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고 또 그것을 명백히 드러내기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욥을 오해한 확신인만큼 말의 공평을 장담하는 그
의 태도도 헛된 것이다. 사실과 진리를 오해한 사상은 그 확신의 정도가 강할수록 더
욱 공평과 반대된다.
욥 34:5,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
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이 말은 일찌기 욥의 변론 중에 나왔다(27:2). 곧, 욥이 자기 고
난의 원인이 될 만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환난을 주셨다는 것이
다. 그것은 그의 무죄한 사실을 무시하심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이롸 같은 말은 장벽
없이 하나님과 접촉하는 신앙 양심의 담력이고 원망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많은
주석가들은 주장하기를, 욥이 하나님 상대로 원망한 듯이 잘못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
들은 현대의 엘리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곧,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될 만
한 범죄건이 자기에게 없다고 주장한 것은 정직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세 친구들은 그 말을 거짓말로 취급하고 믿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에리후도
욥을 그렇게 오해한다.
일설에 "내 상처"란 말(* )이 "내 화살"(my arrow)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하지
만, 욥의 처지에 대한 적합한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내 상처"란 것은 그의 당한 정
신적 고통과 육신의 상처를 가리킨다. 그런 상처가 욥에게 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
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내신 것이다. 욥이 이점에 있어서 "하나님"이란 말(* )
을 쓴것은(5 절)귀하다. 그는 그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과 결부시켰으니 그것이 역시
그의 신앙이다. 다만 그에게 의문이 되었던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자기에게
허락하셨을까 하는 것인데, 그것을 원망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 장벽 없이 호소
한 그의 기도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후도 그것을 욥의 원망으로 오해한다.
욥 34:7-9
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이하다 하는구나.
- "훼방하기를 물마시듯" 한다 함은 하나님 훼방하기를 기탄없이 한다는 의미이다. 9
절의 내용이 이 해석을 지지하여 준다.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귄다" 함은 그 때에
욥의 말하는 방식이 악인들과 같다는 뜻이다.
엘리후의 이같은 주장은 전연 욥을 오해한 것이다. 그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어느
정도 옳으나 그가 진리에 대한 체험이 천박하였기 때문에 욥의 심각한 고난 문제를 오
해하였다. 우리는 진리를 생활에 옮겨야 바로 깨닫고 또 깊이 깨닫는 법이다. 그러나
엘리후와 같이 젊은 사람들은 이 방면에 부족하다.
욥 34:10-13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
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
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을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그가 만일 자
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
도 진토로 돌아가리라. - 엘리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여러 가지
로 증거한다. 그의 이와 같은 변론은 물론 욥을 교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욥을
오해하였다(5-9).
"단정코 아니"라는 말(* )은 엄금한다는 뜻을 가진다. 곧 하나님이 악을 행
하시는 말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엘리후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악과 불의를
행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1)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것(11-12). 이것은 성경에 많이 강조
된 사상이다(시 62:12; 잠 24:12; 렘 32:19; 롬 2:6; 벧전 1:17; 계 22:12).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상선 벌악의 섭리가 반드시 단시일(短時日) 안에
실시되는 것은 아닌 만큼 인류가 그것을 실감있게 얼른 깨닫기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
나 우리가 그것(상선 벌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을 확신할 수 있도록, 그 대표적인 사
건들이 역사상에 종종 나타난다. 물론 하나님의 상선 벌악의 처사가 현세에 있어서 인
류의 모든 행위에 걸쳐 전반적으로 실시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현세가 하나님의
마지막 대심판 마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땅과 세계를 다른 이에게서 받으신 것이 아니고 그것을 친히 지으셨
고 또 그것이 자기의 것이 만큼 그가 그것을 선히 돌아보신다는 것(13-14). 그는 누구
의 지배를 받으시거나 또 누구의 판정을 받으실 이유도 없다. 그 자신이 법이시고 또
선이시며 공의이시다. 이렇게 엘리후가 하나님의 창조주이신 권위에 근거하여 그의 공
의의 덕을 변증함은 참으로 정당하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의존하시지
않으시니 만큼 자충족자(自充足者)이시다. 그는 윤리의 원천이기도 하시다. 그러므로
그는 윤리의 어떤 표준아래 예속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인격(person)이시
면서 동시에 선과 의(義)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정의(定義)할 때에 다음과 같
이 말할 수 있다. 곧, "그것이 선인 고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할 것이 아니라 "하나
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니 그것은 선이다"라고 해야 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선과
의의 원천이시며 또 표준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행사를 전적으로 정당시 해야
된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나 인생의 생존이 유지되는 것이 그의 선으로 말미
암는다. 그렇다면 인생과 만물의 생존도 하나님의 선하신 증표이다.
욥 34:16,17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공의를 미워하시는
자시면 어찌 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 곧, 하나님
의 우주 통치로 보아서 그의 공의로우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공의로운
행정 없이는 무엇이 균형있게 유지되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가 우주 만물의 존재 형태
를 볼 때에도 거기 질서가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인류 사회는 옛날부터 고난과
환난이 끊이지 않았음을 들어 말할 수 있다. 인류 사회는 고난과 환난이 없으면 안된
다. 그 이유는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은 고난과 환난의 채찍 때문에 일반 은
총에 속하는 도덕과 및 사회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 이 세상에 고난과 환난이 없다면
인류는 극도로 악화되어 현세는 지옥처럼 될 것이다.
욥 34:18-20
그는 왕에게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도 악하다 하시며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
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 하나님은 임금들도 두려워하
지 않으시고 그들을 현세에서도 판단하시며 벌하기도 하신다. 물론 악한 임금들이 일
시 동안 불의한 세력을 뻗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침내 그 쌓아둔 벌을 한
몫 받을 한 날 한 때가 오고야 만다. 헤롯은 야고보를 칼로 죽이며 베드로를 잡아 가
두기도 하였다(행 12:1-4). 그러다가 그는 충(蟲)이 먹어 죽고 말았다(행 12:20-23).
하나님은 귀인, 왕족, 부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행하신다. 삼상 2:3-8에 말하기를,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
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을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
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 하시고 울리기도 하시는도
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며 낯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
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않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
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였다.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회개치 않는 자는 끝까지 강퍅하게 지내며 자기의 망할
것도 모른다. 그러니만큼 그의 멸망은 그 자신에게 뜻 밖에 일로 인식된다. 살전
5:1-3 참조. 밤중에 도적이 오듯이 돌연히 패망하게 되는 것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말로(末路)이다.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간섭에 의
하여 망한다는 뜻이다. 단 2:34, 8:25 참조.
욥 34:21-28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하는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들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한 시기에 오
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
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엎으
신즉 멸망하나니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김이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
게 상달케 하며 환난 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 하나님의 전지
전능(全知全能)하신 성품에서는 필연적으로 공의가 실행된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성품(性稟) 으로 다음과 같이 역사(役事)하신다.
(1)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심(21절). 시 139:1-12에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
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인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
취나니 주에게도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2) 아주 쉽게 악을 처치하심(23-25). 그의 처사는 조사 없이 아주 쉽게 해도 절
대로 공정하시다. 우리 본문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다는 것은 특별히 공의 문제
(公醫問題)와 관련된 말씀이다.
(3) 사람들의 목전에서 그 악인들을 벌하심(26절). 이 부분에서 엘리후가 염두에
둔 악인은 특별히 권세 잡은 악인이다(24절 하반). 18-20 참조. 하나님께서 이런 세력
있는 자를 벌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신다. 그 목적은 이렇다. 곧,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도 하나님의 계명을 떠났을 때엔 그를 쉽게 벌하신다는 것을 민
중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높은 자를 쉽게 벌하시는 하나님이 낮은 자들을 벌하시지
못하시랴? 민중은 이 사실을 명심하고 회개해야 된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처사는 그
야말로 일벌 백계주의(一罰百戒主義)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욥 34:29,30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께서 자기 얼
굴을 가리우실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 이는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곧, 하나님께서
압제 받는 가난한 자들(28절)을 하감하시고 그들을 건져주실 때에는 그것을 막을 자가
없고, 그가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이 감히 그 앞에 나와서 그의 정하신 뜻을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란 문구의 히브리어(*
)는 "주께서 가만히 계실때에"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곧, 그가 어떤
때에는 필요에 의하여 어떤 악인들을 벌하시지 않고 그들의 악행을 방임하시는 때를
가리킨다.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 단 4:35에 말하기를, "땅의 모든 거민을 없
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들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
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시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자가 없도
다"라고 하셨다.
욥 34:31-36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나
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엿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
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대로 말하라 총명한 자와
내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없다 하리라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
이라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을 많이 하는구나.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징계 받은 자가 있
다면 그는 회개할 것밖에 없다. 그 회개의 언사는 31-32정에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이 회개하지는 않고 도리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불평만 한다고, 엘
리후는 지적한다.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33절 상반). 이
것은 엘리후가 욥의 잘못을 지적한 말이다. 곧 욥은 하나님에게 자기 뜻에 맞도록 행
하여 주시기만을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신 징계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엘리후는
이 점에 있어서 욥을 오해한다. 욥은 자기의 당한 고난이 자기의 어떤 범죄건 때문에
받는 징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그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여 정신적
고통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33절 하반). 곧, 엘리후
는 욥에게 옳지 않은 소원대로 작성하려면 그대로 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그와
같은 사상을 취하지 않겠다고 한다.
"욥이 끝까지 내가 시험 받기를 내가 원하노니."(36절). 곧, 욥의 사상이 잘못되었
으니 만큼 끝까지 고난을 당하여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37절 하반). 곧, 욥이 그친
구들의 언사를 업신여기는 태도로 승리의 기세를 가지고 말하였다는 뜻이다. 엘리후의 이아 같은 말은 욥의 태도를 오해한 것이다. 욥은 그런 경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당한 고난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번민하였고, 또 그 친구들의 말에 응종할 수 없었다. 이점에 있어서 욥은 도리어 자기 문제를 진실하게 취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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