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0:1
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 여기 "아들"이란 말(* )은 자
손들(손자들까지 포함)을 가리킨다. "70인"이란 숫자도 문자적으로 70명이 아니고 대
략으로 말한 것이라는 학자가 있다(John Gray). 그러나 우리는 이 숫자가 여자적(如字
的)으로 그만큼 많은 수효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왕하 10: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작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
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 곧, 요람의 아들들 중에서 왕이 될만한 자를 세우고 그
를 보호하기 위하여 싸울 용의가 있으면 싸워보라는 도전(挑戰)이다. 이것은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지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편지였다. 군대의 지휘자는 이렇게
병법상 지혜가 있어야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
우려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써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
아리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다(눅 14:31). 손 무자(孫武子)의 병서(兵書)에는 말하
기를, "상대방을 알고 나 자신의 실력도 잘 아는 처지에서는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더라"(知彼知己 百戰百勝)고 하였다.
왕하 10:4-6(상
이 부분 말씀을 보아도 예후는 병법에 능한 사람이어서 싸우지 않고 이기기를 계획
하여 그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있는 왕자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해하
지 않고 그들의 보호자들의 손에 의하여 죽였다. 그는 적편(敵便)에 있던 자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데 능하였다. 예후로 말미암아 아합의 가문이 전부 죽임이 된 것은
잔인한 일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비참한 죽음의 이면에는 보다 비참한 그들의
죄악이 그 원인으로 되어 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에는 아합 왕실에 대한 예후의 숙
청 운동은 하나님의 지당한 심판 행위였다. 우리는 무섭고 사정 없고 또 처참한 심판
사건 앞에서는 그 사건과 관련된 자들의 죄악의 참상을 기억해야 한다.
왕하 10:6(하반)
너희는 의롭도다(9절 상반) - 곧, 거기 모인 백성은 아합 왕실을 전멸시키는 일에
가담한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9절 끝) - 예후는 이 말로써 그의 간교하고 음흉
한 성질을 드러낸 것이다. 실상은 자기가 아합 왕자 70명을 죽이도록 명령하고도 이제
와서 자기는 그 사건과 전연 관련이 없는 듯이 그들을 죽인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합 왕실의 멸망이 여호와의 뜻대로 실현되었다고 하
며 그것을 정당시 하였다. 그는 아합 왕자들을 죽인 자를 정죄하지는 않은 것이다.
왕하 10:12-14
여기서는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을 죽인 사실에 대해 말한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이란 말(* )이 여자적(여자적)으로 바로 번역되
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을 가리킨다(대하 22:8). 예후로 말
미암아 이들이 죽임이 된 이유는 그들이 아합 왕실의 친속(親屬)들로서 이세벧의 우상
주위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찍부터 아합 왕실과 깊이 교통한 것이
마침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로 더불어 친근히 지내는 자들은
마침내 그 악인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런 악인과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된다. 요 1:10-11 참조.
왕하 10:15-17
"레갑"은 겐 족속에 속하였는데(대상 2:55), 모세의 장인이 이 족속에 속하였다(민
10:29). 이 족속은 사치와 방종을 피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 엄격한 경건(敬虔)을
유지하려고 유목 생활을 택하였다. 삿 1:16, 4:11 참조.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경건
의 모본으로 들어 타락한 유대인들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렘 35장 참조.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5-16) - 예후가 "레갑의 아들"(레갑의 자손이란 뜻)
"여호나답"을 이렇게 높인 것은 자기의 혁명이 경건을 위한 다는 인상을 민중에게 주
려는 정치적 목적이다.
왕하 10:18-20
하나님께서 아합 왕실을 벌하시는데 있어서 예후를 세우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예후는 그 받은 사명을 실행함에 있어서 너무도 잔인하게 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도 그
죄악 때문에 벌을 받도록 되었다. 호 1:4 참조. 하나님께서 어떤 죄를 벌하시기 위하
여 인생을 채찍으로 사용하시지만, 그 사람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면 그도 하나님의 벌
을 면치 못한다. 슥 1:15 참조. 그 때가 구약 시대였으니만큼, 바알의 선지자와 제사
장은 마땅히 죽임이 되어야 하겠지만, 바알을 섬기던 일반 민중("모든 섬기는 자들"
-19절)은 회개하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알게 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사무엘은
우상 섬긴 민중에게 회개를 독촉하였으므로 그들이 회개하였다(삼상 7:3-6). 우상 섬
긴 민중은 이렇게 가르쳐 회개케 함이 하나님의 뜻이다(삿 2:1-5). 유다에서 우상을
전부 파괴한 바 있는 요시야왕도 피동적으로 우상을 섬긴 정도의 사람들은 죽이지 않
았다. 왕하 23:4-25 참조.
왕하 10:29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우상 섬긴 자들을 다 죽이면서도 자기 자신은 "벧엘과 단"에
서 "금 송아지"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바알 우상주의에 대한 그
의 탄압은 진심으로 여호와를 사랑함에서 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왕권을 견고케 하려
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왕하 10: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작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 예후가 여호와의 명령대로(왕하 9:7) 아
합 왕가를 진멸한 것은 대체로 잘 한 일이었다. 그러니만큼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게
여기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저울로 달아보시듯 공정하게 평가하신다. 삼상
2:3 하반 참조.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 이 예언은 여호아하스(왕13:1),
요아스(왕하 13:9), 제2 여로보암(왕하 14:23), 스가랴(왕하 15:8)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으로 성취되었다.
왕하 10:31
예후가...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여
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 대하여는 왕상 12:26-32 참조하라.
왕하 10:32,33
예후가 잔인하고 포학하였던 죄값으로 거둔 쓴 열매는 이 때에 이스라엘이 당한 아
람의 침략이었다. 아람 왕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변방이었던 "길르앗 온 땅"을 괴롭혔다. 암 1:3-4 참조. 본서의 저자는 아람의 이와 같은 침략을 가리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셨다"고 한다(32절). 여기 이른 바 "찢으셨다"는 말(* )은 부족하도록 짜른다(cut short)는 뜻이다. 예후의 부족은 우선 이스라엘 영토를 모자라게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주신 벌이었다. "길르앗 온 땅"은 일찍 두 지파 반(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이 차지한 곳이다. 민 32장 참조.
왕하 10:34-36
본서의 저자는 여기서 예후의 이스라엘 통치에 대하여 결론을 내린다.
예후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모든 권세(34절 중간) - (1) 그는 하나님의 예언을 실행하되 자기의 방법대로 하였으니, 그것은 종교적 자율주의(religious volun-tarism)였고, (2) 그는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어 혁명을 실시하면서 자기의 권세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나친 잔인성을 드러내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3)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가 과거의 하나님만 알고 현재의 하나님은 무시한 행동이다 ( Jacques Ellul, The Politics of God & The Politics of man 1972, pp. 112-118).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34절 하반) - 왕상 14:19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