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4:1
"부르짖어"란 말(* )은 '높은 소리로 애소(哀訴)함'이니, 간절한 기도에 대
해서도 사용된다. 엘리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그 여인의 중심의 간절함을 하감하실
것이다. 간절함은 진실과 같은 것이다.
왕하 4:2,3
"한 병 기름"(* )은(2절 하반) 작은 병의 기름을 가리킨다. 이렇게
적은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용되면 크고 많은 것이 된다.
조금 빌지 말고 - 이것은 그 과부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도
록 촉구하는 귀한 말씀이다.
왕하 4:4-7
이 때에 엘리사의 말씀대로 그 여인이 기름을 부을 때에 준비된 그릇들의 수량대로
기름이 모두 공급되었다. 이것은, 영적으로 신자가 은혜 받을 준비를 잘 할 수록 거기
에 비례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도 결정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왕하 4:8-10
수넴 여자의 신앙적 행위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하되
"간권"(懇勸)하였음. "간권함"(* )은 '강권(强勸)함'을 의미하는데, 루디아가 사
도 바울 일행에게 행한 것과 같다(행 16:15). (2) 그는 자기 남편을 권면하여 엘리사
를 위한 작은 방을 짓기까지 하였음(9-10). 그가 이렇게 행한 동기는, 엘리사를 "하나
님의 거룩한 사람"인줄 알고 그를 지성(至誠)으로 높이려는 데 있었다. 그것은 인정이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모하여 물질을 희생하는 신앙이다.
"수넴"(* )은 작은 헬몬산(the lesser Hermon)의 서남쪽에 있는 곳인데 현재
솔람(Solam)이란 곳이다. 엘리사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로 내왕할 때에는 이곳을 지나
게 된 것이다. "귀한 여인"이란 말(* )은(8절 상반) '큰 여인'(great
woman)이란 뜻인데 부자(富者)를 가리킨다.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10절 상반) - 이 문구(*
)는 "벽을 가진 작은 방을 짓고"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곧, 지붕 위에 벽이 있는
작은 방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날림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바람과 비를 잘 막
을 수 있도록 지어진 견고한 것이니, 엘리사로 하여금 고요히, 그리고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 그 방에 출입하는 데는 그 집의 내실(內室)을 통과하지 않고
밖으로 통한 계단을 사용하도록 된 것이다.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10절 하반) - 이것을 보면 그 여인은 하
나님의 사람을 대접하는 데 자세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엘리사로부터 "주밀하도다"란
칭찬을 받았다(13절). 여기 "촛대"로 번역된 말(* )은 "등잔"이라고 개역되
어야 한다.
왕하 4:11-13
엘리사가 그의 수종자 게하시를 동반하고 수넴 여자를 만나곤 한 것은 건덕상(建德
上) 모본이다.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13절 상반) - 이 문구(*
)는 다음과 같이 개역되어야 한다. 곧, "네가
이렇게 떨며 조심하는 모든 정성으로 우리를 섬겼으니"라고. 그 여인이 "떨며 조심함"
(*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성결을 존중히 한 행위이다.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13절 하반) - 그 여인의 남편이 부
자였으니만큼 그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서 권력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엘리사는 이
때부터 미리 내다본 것이다. 왕하 8:1-6 참조. 사람은 자기의 앞날을 알지 못하나 엘
리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다 아셨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13절 끝) - 곧, 자기는 자기 동포들 중에 평안히 살
고 있는 것만큼 어떤 권력의 보호를 특별히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여인은 이
때에 엘리사의 묻는 말씀이 내포한 장래의 요구(왕하 8:1-6)를 아직 느끼지 못했던 것
이다.
왕하 4:14-16
엘리사는 또 다시 게하시를 통하여 수넴 여인의 필요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았다.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16절 상반) - 이것은 그 여인의 진정한 소원을 알
게 된 엘리사의 축복 내용이다.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16절 하반) - 이 문구의 히브리 원문(*
)은, "당신의 계집종에게 속이는 소망을 격동시키지 마옵시오"(Do
not excite in servant any deceptive hopes)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그 여인의 이와
같은 말은 기쁜 풍자적(諷刺的) 표현인 듯하다. 그가 엘리사를 매우 존중한 것만큼
(8-10) 그 중심에는 그의 예언을 믿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이와 유사한 태도
를 표시하였다(창 17:17,18:12).
왕하 4:21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
수넴 여인이 이렇게 한 것은 아이의 죽은 사실을 자기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으려는 것
이다. 그는, 엘리사가 그 집에 오기만 하면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날 줄로 믿었다. 그래
서 그는 급히 엘리사를 찾아가기를 원하였다.
왕하 4:23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다 하
느뇨 - "초하루"와 "안식일"(레 23장)에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
하여 선지자의 집에 모이는 풍속이 있었다(Kimch, Hengstenberg, Delitzsch).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 이 말은 그 여인의 신앙을 보여준다. 그는 죽은 아이
가 다시 살게 될 것을 믿고 안심하였다. 그는 게하시가 문안할 때에도 "평안하다"고
대답하였다(26절 끝). 여기서 우리는 수넴 여자가 사랑하는 자식 때문에 열심으로 주
님을 더 믿게 된 사실을 본다. 곧, 그 여인이 그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신앙적 결
단을 가지게 되었고, 또 소망을 품고 달음질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랑과 믿음으로
출발한 일에는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
왕하 4:26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 수넴 여인이 자기 아들의 죽은 사실은 말하지 않
고 "평안하다"(* =솰롬)는 말만으로 일관한 것은 그의 굳센 신앙적 태도이다.
왕하 4:27
그 발을 안은지라 -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미암아 해결 받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결을 위한 그의 소원이 얼마나 간절하였음이 그의 이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그의 뜨거운 신앙적 태도이다. 그것이 게하시에게는 무례
한 행동으로 보일 정도였다. 막 10:47-48 참조. 생명이 약동하는 믿음은 어떤 때에는
형식에 매인 위신(威信)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왕하 4:28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 그 여인이 엘리사에게 자기 아들의 사망에 대하
여는 실토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암시만 하였으니 그것은 심각한 슬픔 때문이었다(F.C.
Cook). 그 여인의 이와 같은 말이 얼핏 보면 불평 같기도 하나 그 이면에는 믿음이 있
었다. 16절 하반 해석 참조.
왕하 4:29-31
엘리사가 게하시를 보내며 지팡이를 그 죽은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하였는데, 게
하시가 그대로 한 결과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면, 엘리사의 이같은 지시
는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게하시에게 지시한 것은 그렇게 함으
로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사람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려는 것이었다. 곧, 그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리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방법
으로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엘리사는 마침내 여호와께 기도함으
로 그 죽은 아이를 다시 살렸으니(33절), 그것은 그 죽은 아이를 살리신 이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신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하 4:33
여기에는 엘리사가 여호와게 기도하여 그 죽은 아리를 다시 살린 기적이 기록되었
다. "여호와께 기도하고"란 말이 엘리사의 사역에 중요하므로 이 말이 그의 사역의 첫
순서로 소개되었다.
왕하 4: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
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 이와 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보여준다. (1) 하
나님의 능력이 엘리사의 속에 느껴지고 있었다는 것.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는 누구나
그 인격의 내부에서 생명과 평강과 힘에 접촉된다. (2) 엘리사는 이 생명과 평강과 힘
을 그 죽은 아이에게 전할 의욕을 가짐. 그가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 "입에 입, 눈에
눈, 손에 손"을 댄 것은 그만큼 그 아이와 가까이 연합하려는 열원(熱願)의 표시였다.
영력의 전달이 이런 접촉에 의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를 긍휼히 여기는 엘리사
의 사랑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과 사
랑이 뜨거운 곳에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난다(복음 사역에 있어서 교역
자가 엘리사처럼 육체적 동작을 하여서는 안되지만).
왕하 4:35-37
왕상 17:22-24 참조.
왕하 4:41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이에 솥 가운데 해독
이 없어지니라 - 이 이적은 흉년 때에 비참한 처지에 빠진 불쌍한 자들을 돌아본 그의
자비였다.
왕하 4:42-44
엘리사는 또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한 자루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였다. 이것도 흉년 때에 길갈 땅에 가까운 "살리사"라는 지방에서 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이적도 하나님의 백성이 극도의 궁지에 빠졌을 때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이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은 이렇게 윤리적 성격이 있는 것이다. 마 14:13-21 참조. 여기 이른 바 그 보리떡이 "처음 익은 식물"(* )이라고 하였으니만큼 그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이고 그의 종들만이 먹는 것이었다(민 18:13; 신 18:4). 이제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기서 그것을 먹었다. 그들이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이 만든 우상 종교(왕상 12:26-33)와 타협하지 않고 따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경건한 단체 안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44절) - 이 기적은 엘리사의 어떤 공적(功績)에 대한 상급이 아니고, 주권적으로 그를 세우시고 그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43절)대로 성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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