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7:1,2
네 형 아론은 제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 모세가 입이 둔하다고 하면서 사명을 회피하려 할 때 (6:30)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종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거듭거듭 같은 말씀으로 위로하시면서 붙들고 사용하셨다.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번번이 실수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며 그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출 7:3-5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 에야 애굽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짐에 따라서 하나님은 권능을 더 나타내시게 되고, 거기에 따라 그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되었다(롭 9:17). 아빙돈(Abingdon) 단권 주석은, 귀절들(3-5)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잘못 말하였다. 곧, "만일 이 태고 시대에 여호와를 의(義)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였다면, 이런 관념(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관념)은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평은, 종교 진화론을 믿는 처지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 시대에도 동시에 존재하였던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옛적에 다신론 종교가 있었던 환경 가운데 유일신 종교가 엄격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종교 진화론의 원리로써는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원시 종족들이 모두 땅에 속한것들을 신(神)이라고 하는 어두운 판에, 같은 시대의 미개한 처지에 살면서도 이스라엘은 어떻게 독특하게도 탁월한 종교를 가졌을까? 이와 같은 현상은, 고상한 유일신 종교가 인간의 점진적 발달로 인하여 생겨진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된 것임을 증명한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고 그대로 버려 두셨다는 것이고, 본래 강퍅하지 않던 선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악화시켰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에서 떠나면, 필연적으로 강퍅해지는 법이다. 이렇게 강퍅해진 자를 버려 두심도 하나님의 주권 행위이고, 그의 죄를 벌 하시기 위하여 권능을 더 많이 행하심도 하나님의 주권 행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그의 성결의 위엄(威嚴)을 나타내시는 것 뿐이다.
출 7:6,7
이 두 귀절은, 모세와 아론의 순종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이 이제 사명에 투신(投身)하게 된 것은, 그들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나 어떤 선한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다.특별히 모세는 이때까지 자기의 부족 때문에 외축하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만 이 시점에 와서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순종한 것 뿐이다. 특별히 그들이 노년기에그 무거운 사명에 투신한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동기에서만 될 수 있었다.
출 7:8-12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이적을 내리신 일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다. 곧, 그가 모세와 아론에게(혹은 모세 한 사람에게) 그의 행하실 이적이 어떠한 방식으로 될 것을 예고하신 후에, 그들을 시켜서 실제로 되게 하신 점이다. 그의 예고하시는 말씀이 상당히 길게 나오곤 한다. 이와 같은 역사(役事)의 원리는,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계약(契約)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 신앙을 준다.
지팡이르 던졌더니 뱀이 된지라 - (10 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4:3, 7:9). 그러므로 이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이다.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 - (11 절). 근동 지방에서 "술법"(術法)에 의하여 뱀을 지팡이처럼 뻣뻣하게 만드는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관설된 "술법"의 결과는 마귀의 조작으로 되어진 거짓된 이적인 것이다(살후 2:9). 바울은 이 술사들을 "얀네와 얌브레"라고 하었다(딤후 3:8).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 (12 절). 이 사건은,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 나타난 권능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참된 것이고, "술객들"의 것은 거짓된 것이었거나, 혹은 마귀로 말미암았던 것임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거짓된 마귀를 이기신다. 그러나 악으로 완고해진 바로왕은 이 점을 크게 보지 못하고, 다만 술객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다는 사실만 크게 본 것이다.
출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 하나님의 권능이 술객들을 패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강퍅해질 위험성이 있다. 바로의 마음은 부패한 인간성의 표본이다. 그러므로 잠 16:32에 말하기를,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진 사실에 대한 이와 같은 논평이 여러번 나온다(22, 8:15,19). 그 목적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진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고, 일찌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명하실 때부터 예고해 주셨던 그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주려는데 있다(4:21, 7:3). 그러므로 모세는 바로의 강퍅해짐을 보고낙심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그는 더욱 용기를 얻을 만하였다.
출 7:14-17
이 부분에서는, 나일강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예고하시는 말씀을 보여 준다. 그가 미리 말씀하신 다음에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 일이 실현되도록 하심은 의미심장하다. 곧,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것이다. 위의 8-12 절 해석의 머리말을 참조하여라. 우리가 이 점에서 기억할 것은,강국 애굽 임금 앞에서 권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은 "지팡이"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15,17,19).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미천한 것으로써도 임금의 세력을 꺾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고전 1:27-29참조. 나일강 물을 피 되게 하는 재앙은, 실상 애굽 신(神)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다(12:12).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 물에 의하여 풍부한 농작물을 얻는다. 그래서 그들은나일강을 숭배하고 신으로 섬겼다. "바로"가 아침 일찍 거기에 나간 것도(15절) 나일강 상대로 종교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때에는제사장들이 저희 신을 찬송하였는데, 그 가사가 파피루수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 일차로,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믿고 있는 나일강 물을 "피로 변하게" 하여, 그것이 이제부터는 애굽 사람들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여 주셨다.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것 믿을 때에 그 죄를 심판에 붙이신다. 사 3:1-2을 자세히 읽으라.
출 7:20,21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 일설에, 나일강에 홍수가 날때에는물이 붉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자연수(自然水)를 친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이적(異蹟)이었다. "피"는 심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느데, 강퍅한 죄인도 그것을 볼 때에는 두려워하며 회개할 마음이 일어날 만한 것이었다. 이 기적의 목적이 그것이었다.
출 7:22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 하나님의 이적과 "술객들"의 "술법"의 결과가 표면상으로는 서로 유사하였다. 그러나 그둘이 내용에 있어서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참된 신앙이 없는 자들은, 종종 마귀의 거짓된 이적에 속아서 거기서 힘을 얻는다고도 하며, 또 산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요일4:1에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솔하였나시험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는 말하기를,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할지라도 신자들은 그것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신 13:1-3).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 13 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출 7:24
"애굽 사람들" - 은 나일강을 생명의 근원이나 되는 듯이 종교적으로 숭배하였던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통하여 지팡이로 그물을 치게 하시므로 그것을 죽음의 상징(피)으로 만들어 버리셨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 숭배를 단념했어야 될 것이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