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 (요한 계시록 3:1-6).
Ⅰ. 서론 부분을 살펴보자.
1. 이 편지의 수신자는 "사데 교회의 사자"이다. 사데는 트몰러스 산록에 자리잡은 루디아의 옛 도시로써 소아시아 지방의 수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지역에서 제일 먼저 회개한 도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데 교회는 맨 먼저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그리하여 제일 먼저 폐허가 된 도시라고도 한다. 그 폐허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어떤 교회의 흔적도 없었다.2. 편지의 발신자는 주 예수이시다. 여기 그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이시다. 그런데 1장 4절에 의하면 일곱 영은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이라고 한다.
(1) 주님은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능력과 은혜와 작용을 나타내는 성령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한 몸이시면서도 여러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신데, 여기 일곱이라고 표시된 것은 교회의 숫자가 일곱이며, 교회의 사자들의 숫자가 일곱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모든 교역자들과 모든 교회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영력(營力)의 공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 영력(營力)은 교회가 확장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그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개선되지 못할 때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때까지는 성령이 그들에게서 철수하지 않으신다. 교회도 개개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영력(營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쇠퇴해 가고 있는 교역자와 교회에 보내지고 있는데,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능력을 가진 일곱 영, 곧 성령을 가지고 계시며 따라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들의 소생할 수 있는 활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2) 주님은 교회의 사자들인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신다. 그들은 주님에 의해 파견되었고 또한 주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은 충성을 다해야 하며, 열심을 다해야 한다. 그 교역자들은 주님께서 고용한 교역자들이며, 주님은 교회의 이익을 위해 그 교역자들과 사귐을 가지고자 영적인 영향력을 구사하고 계신다. 보통 성령은 목회를 통해서 활동하시며, 목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손이 이 양자를 모두 지탱해 주신다.
Ⅱ. 이 편지의 핵심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점 한 가지가 있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들의 잘한 점을 칭찬하고 나서, 그들의 잘못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데 반해 이 편지(와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1. 먼저 책망의 말씀, 그것도 매우 심한 말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위선과 신앙의 쇠퇴가 곧 그 교회와 그 교회의 행위를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의 책망이다.(1) 이 교회의 평판은 매우 좋게 나 있다. 이 교회는 번창하는 교회라는 명성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순수한 교리라든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치 그리고 예배와 품위 그리고 질서에 있어서의 통일성 등으로 해서 살아 있는 교회라는 이름을 듣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불행한 분열의 조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만사가 순조롭고 잘된 것이라고 보였다.
(2) 그러나 이 교회의 실제는 소문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살아 있으나 실제로는 죽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었으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생의 원칙이 없었다. 그들이 아직 전적인 소멸의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봉사, 그 교회의 교역자들의 목회와 기도와 설교와 대화는 크게 죽고 있었으며, 교인들도 설교를 듣는거나, 기도하는 것이나 대화에 있어서 역시 크게 죽고 있었다. 아직 목숨이 약간 붙어 있기는 하나, 거의 끝장이 난 상태에서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다.
2. 이러한 퇴보된 교회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충고를 주신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다니 것을 굳게 하라"(2절).
(1) 주님은 그들에게 깨어 일어나라고 권고하신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타락의 원인은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기반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죄와 사탄과 그리고 우리의 선한 생명과 능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2) 주님은 그들에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사람들에 관한 권고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순결함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나마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일보전에 있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온통 죽음과 멸망의 분위기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자신을 생명과 "선한 능력" 가운데 간직하고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같이, 이것은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또는 충만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들에게 껍데기는 있었으나 알맹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형체는 있었으나 영혼은 없었고, 그림자는 있었으나 실재는 없었다. 내용물이 부족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텅비고 헛된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거룩한 요망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구제도 참된 자비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된 봉헌이 결여된 채 지켜졌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외적인 결핍된 상태에서는 그 형태마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3)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돌아보고,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고 권고하신다(3절). 그들은 그들이 어떤 것을 받고 또 들었으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고, 그들이 받은 자비와 은혜의 표가 어떤 것인지, 어떤 설교를 들었는가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또 들었는가, 하나님의 자녀의 영향력이 그들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의식들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애정심을 품게 되었는지, 그들이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환영하였었는가를 또한 기억하여야 한다. "그때에 너희가 말하던 축복은 어디로 갔는가?"
(4)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받은 것을 잃지 않도록 굳게 지키도록 권고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 생활을 잃어버렸으니 만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회개하라"고 권고하신다.
3. 주님은 그의 권고가 무시되지 않도록 위협적인 말씀을 덧붙이신다.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절).
(1) 사람들이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때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린 죄인들은 심판주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낀다.
(2) 죽음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은 매우 신속하고도 놀라운 것이다. 그들의 영적인 죽음은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며,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노여움을 야기시키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또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그러한 방문은 그들에게 커다란 손해를 가져다준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 오셔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즐거움과 자비를 빼앗아 버리신다. 그러나 결코 속임수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빼앗아 버리신다.
4.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그들이 비록 죄많은 사람들이지만 결코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으신다. "심판 중에서 그는 자비를 베푸신다"(4절).
(1) 사데에 남아 있는, 비록 숫자는 적지만 충실한 남은 자들의 영예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언급하셨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 "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그 당시의 시대와 장소에 널리 횡행하던 부패와 부정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가 적을수록 하나님은 그들을 그만큼 귀하게 보신다.
(2) 주님은 그들에게 매우 귀한 약속을 하신다.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로 의로움과 인정받음과 위로를 나타내 주는 흰옷이거나 또는 저 세상에서 받을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낙원에서 즐거운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갈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충성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고결함에 합당한 명예이다. 그리고 그것이 법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가치관에서 온 것이며, 그들의 공적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기는 해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특권을 부여하신 것은 매우 합당한 처사이다. 이 땅에서 참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자는 저 세상에서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합당한 상급이다.
Ⅲ. 이제 우리는 이 편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앞서의 편지와 같이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커다란 상급이 약속되었다(5절).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편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순결한 은혜에 대한 상급은 온전히 순결한 영광이 될 것이다. 거룩함이 온전하면 그 자체가 상급이 되기도 한다. 영광이란 온전해진 은혜이다. 그 구별은 종류상의 구별이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그런데 그 경우에 매우 합당한 또 다른 약속이 첨부되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책을 가지고 계신다.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1] 그것은 영원한 선택의 책이다.
[2] 그것은 악한 세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으며, 경건한 삶과 능력을 간직한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책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택하신 그의 충실한 성도들의 이름을 결코 그의 생명책에서 지우시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가 신앙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이름을 교회의 명록 속에 써넣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영적인 삶을 동반하지 않는, 다만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러한 이름이라면 그러한 이름은 지워지고 말 것이다. 때로 그러한 이름은 그들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며 그들이 죽기도 전에 그 이름이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의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그의 모든 천사들 앞에서 이 생명의 책을 내놓으시고 거기에 기록된 이름들을 시인하여 주신다. 그 생명책이 열렸을 때 그리스도는 마치 재판장과 같이 이를 판정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그들의 대장으로서 그들을 이끌고 하늘로 개선하면서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실 것이다. "보십시오, 당신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녀들이 여기 있습니다. " 이 때에 그들이 받는 상급과 명예가 얼마나 놀랍고도 큰 것인가!
2. 온 우주적인 경각심을 촉구하는 명령의 말씀으로써 이 메시지는 끝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주목해서 들어야 한다. 비록 한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인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씀이시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 (요한 계시록 3:7-13)
우리는 이제 아시아에 있는 교회에 보낸 여섯 번째의 편지를 살펴 볼 차례가 되었다.
Ⅰ. 그 편지의 제목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보여 주고 있다.
1. 이 편지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 것이다. 빌라델비아 역시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로서 푸시아와 루디아의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애라는 그 이름의 뜻으로 해서 유명한 도시이다. 아마 이러한 이름은 그 도시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붙여진 것이며, 모든 신자들이 한 아버지를 모신 그리스도의 형제이며 또 형제여야 한다는 기독교의 교훈의 영향을 받아서 명명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이름이다. 시민들 사이에 가졌던 협동 정신에서 우러나온 사상과 친절 때문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귀한 정신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귀한 정신의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별되게 될 때, 훌륭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그 교회에 대한 잘못된 추궁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 다만 공동적인 면에서의 잘못을 약간 볼 수 있으나, 그것 역시 사랑이 이들을 덮어 주고 있다.2. 이 편지 역시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같은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의 우리 주님의 칭호가 어떻게 일컬어지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주님의 개인적인 인품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 본성은 거룩하시며, 따라서 그의 말씀은 진실하실 수밖에 없으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의 거룩하심에 의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성품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가 가지신 이러한 통치와 권위의 열쇠는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열쇠이시다.
(1) 그의 통치 작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1] 그는 문을 여신다. 그는 그의 교회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신다. 그는 그의 교역자들에 말문을 열어 주신다. 그는 들어가는 문을 여시며, 마음 문을 여신다. 그는 성찬식을 통하여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을 여신다. 그리고 그가 설정하신 구원의 원리에 입각해서 승리하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을 여신다.
[2] 그는 또 문을 닫으신다. 그가 원하시면, 기회의 문과 말문을 닫으사, 완고한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 속에 그들을 가두어 두신다. 그는 불신자와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는 교회의 문을 닫으시며, 은혜의 날에 깊이 잠이 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하늘의 문을 닫아 주신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문을 닫아 주신다.
(2) 그가 이렇게 문을 열고 닫으실 때는 매우 주권적으로 행동하신다. 사람들의 뜻이나 사람들의 능력에 의해 영향받지 않으신다.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 그가 하시고 싶으신 대로 행하신다. 그러나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방해할 자가 없다. 이것은 그만이 소유하고 계신 특권이며 특성이시다. 그는 원하시는 교회를 택하사 거룩함과 진실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충성하게 하시며, 그의 돌보심 아래서 자유와 기회의 넓은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Ⅱ. 이제는 이 편지서의 주요 부분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 하는 것을 그들이 기억하게 하신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8절). 내가 네 앞에 문을 열었으며, 아무리 대적하는 무리가 많을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문을 열어 놓겠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배우자.(1)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들이 바라고 있는 모든 자유와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한 영적인 자유와 특권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하여 주신다.
(3)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기하여 그들 앞에 열린 자유의 문을 닫으려고 애쓴다.
(4) 우리가 그리스도를 노하게 하사 이 문을 닫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누구나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2. 이 교회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았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이 말씀 속에는 매우 부드러운 책망의 말씀에 의한 지시가 들어 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희 앞에 열어 놓은 넓은 기회의 문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은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은혜이며 너희는 그것을 충실히 지켰도다." 참된 은혜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적은 힘도 받아 주시지만, 신자들은 적은 능력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성장하며, "그 믿음이 강하게 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참된 은혜는 비록 약하지만, 다른 일반적인 은혜보다 훨씬 커다란 은사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게 하며, 그의 이름을 배반치 않게 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순종과 충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유롭게 고백하는 것은 참된 은혜의 열매이며,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들이다.
3. 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은총의 약속이 여기 열거되어 있다(9,10절). 그 은총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의 원수들이 그 교회 앞에 굴복하게 하여 주신다.
[1] 그 교회의 원수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이라고 기술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거짓이며, 실상 그들은 "사단의 회"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회야말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거짓 신들을 예배하거나, 참 하나님이라도 거짓된 방법으로 예배하는 회들은 사단의 회이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거짓일 따름이다.
[2] 교회에 대한 그들의 굴복이 기술되었다.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그러나 교회 자체에 대해 경배하거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니며, 교회의 목회에 대해서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 자신들이 잘못 되었었으며, 교회는 올바르며,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교회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며, 그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같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원수들의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교회에 베푸시는 특별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은 가능하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다음을 살펴보자.
첫째,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는 명예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원수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은혜를 그의 백성들이 알게 하신다.
셋째, 이 그리스도의 은혜는 원수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와 함께 사귐을 가지고자 멸망하게 만든다.
(2)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대해 주시는 약속은 가장 가혹한 시험의 때(10절)에도 계속 은혜를 간직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지난날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다. "가진 자에게는 더 주리라."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내의 말씀이다. 그것은 죄많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의 열매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고난에 대한 인내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을 참는 인내를 가지게 하여 준다.
[2] 이 복음은 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힘써 지켜야 할 말씀이다. 그들은 이 복음에 기록된 대로 믿고 실천하며 그리고 예배하여야 한다.
[3] 우리는 이러한 인내의 날에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복음적인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인내 끝에 온다.
[4] 때로 그 시련은 매우 보편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 시련은 온 세상에 임하며, 또 그만큼 보편적인 동시에 때로는 길지 않을 수 있다.
[5] 평화의 날에 복음의 말씀을 잘 지킨 자들은 유혹과 시련의 날에 그리스도로부터 보호함을 받는다. 복음을 지키는 것이 곧 시련을 이길 준비를 하는 것이 된다. 평화의 날에 그들로 하여금 충실하게 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핍박의 날에도 그들로 하여금 충실하게 만들어 준다.
4. 그리스도는 약속을 하시기 전에 교회에 대해 그들의 임무를 다하라고 명령하셨다. 즉 그것은 인내하며,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1) 그 의무는 이런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네가 가진 것이란 믿음과 진리와 은혜의 강함과 열심과 그리고 형제애이다. 너희는 이 보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굳게 붙잡으라."
(2) 그 동기는 그리스도께서 속히 임하시리라는 것 때문이다. "보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 보라, 나는 시련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오고 있으며, 그들의 충성에 대해 상급을 주며, 떨어져 나간 자들을 벌주기 위해 오리라. 그들은 그들이 바라며, 또 그들이 능히 차지할 수 있었던 면류관을 빼앗길 것이다. 그러나 참고이기는 성도들은 상급을 얻을 것이며, 뒷걸음친 자들은 그들의 상을 놓칠 것이다."
Ⅲ. 이제 이 편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12,13절).
1. 주님께서는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상급을 약속하신다. 그것은 두 가지를 약속하신 것이다.(1)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념비적인 기둥이 되게 하신다." 그 기둥은 성전을 떠받드는데 필요한 기둥이 아니다(하늘에는 그러한 버팀 나무가 필요치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이 없이 주시는 능력 많은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며, 로마의 황제와 장군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 놓은 기둥들같이 영원한 기념물일 따름이다.
(2) 그 기념비 기둥 위에는 그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것과 같이 명예로운 기명이 새겨져 있다.
[1]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 축복에 참예하게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 때문에 그들은 이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인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기둥 위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행한 모든 봉사가 낱낱이 기록될 것이며,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확장시켰으며, 교회의 순결성과 명예를 유지하도록 힘써 왔는가가 자세히 기록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싸운 용사란 이름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이름이 될 것이다.
[2] 그 기둥에 새겨진 또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구속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대의 대장이시다. 그의 이름 밑에 모든 이기는 자들의 이름이 함께 기명될 것이며, 그의 지도하에 행동하였으며, 그의 본을 받아 성도들은 용기를 얻었으며, 그의 영향을 받아 성도들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이 편지 역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귀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충성된 성도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의 가치를 알아주시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시며, 또 그들의 충성에 또한 해 어떻게 면류관을 내리실 것인가에 대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 (요한 계시록 3:14-22)
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오며 빌라델비아 교회와는 정반대로 제일 나쁜 교회에 대해 살펴 볼 차례가 되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책망의 말씀이 하나도 없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 살펴 볼 이 교회는 칭찬의 말씀을 한 마디도 들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교회라 할지라도 "일곱 금 춧대"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타락한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먼저 살펴 본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제목이 있다.
1. 수신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이다. 이 도시는 루커스강 근처에 있던 유명한 도시였으며, 매우 기다란 성곽과 세 개의 대리석으로 세워진 극장과 그리고 로마와 같이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써 유명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도시에 복음을 전파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골로새서의 마지막 장에서 사도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문안을 보내고 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로부터 불과 20마일 이상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제 4세기에 교회 협의회가 열렸던 기사가 있다. 그러나 그 도시는 파멸된 지 오래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폐허화된 그대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어린양의 진노"를 보여주는 무서운 기념비적인 도시이다.2. 이 편지의 송신자. 이 편지에서 우리 주님은 스스로를 "아멘 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일컫고 계신다.
(1) 그는 "아멘"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의도와 약속은 한결 같고 변함이 없으시므로 언제나 예이고, 언제나 아멘 이시다.
(2) 그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따라서 그가 사람들에게 행하는 하나님께 대한 증언은 능히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믿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할 때 그것 역시 그대로 인정될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증언은 미적지근한 사람들의 고백과는 달리 신속하고도 참된 것이다.
(3)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먼저는 그가 첫 번 창조에서의 근본이시다. 말하자면 그는 제일 원인이시며, 창조자이시며, 그리고 그 창조의 통괄자이시다. 그리고 또 그는 제이의 창조인 교회의 창조의 근본이시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며, 1장 5절에 밝혀진 바와 같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시다. 그리하여 이러한 칭호를 가지시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의 신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새로운 세계의 머리로서 그를 섬기는 살아있는 성전과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신다.
Ⅱ. 이 편지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들 자신들 보다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는 이가 그 교회와 목사와 그리고 교인들을 엄히 꾸짖고 계신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야 할 그들이 그렇지 못하고,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였다"(15절). 미지근하거나 냉담한 신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신앙적인 기질이다. 만일 믿음이 참다운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훌륭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심히 믿어야 한다. 반대로 만일 믿음이 참다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장 몹쓸 사기술이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만일 믿음이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한 것이면, 그것은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믿음에 대해 냉담하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노릇이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믿음에는 중립이란 자리가 없다. 불성실한 중립 표방자 보다는 오히려 공개적인 적대자가 더 떳떳하다. 그리고 그런 미지근한 자들보다는 차라리 이방인들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더 낫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그의 편인지 또는 그를 반대하는지를 열심히 밝혀 주시기를 바라고 계신다.2. 매우 엄중한 책벌이 그들에게 떨어졌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한 물이 비위를 뒤집어서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이, 미지근한 신앙 고백 역시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해 넌더리를 내시며, 그들을 그 이상 더 참지 못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미지근함에 대해 "사랑이라든가, 온유 또는 중용지도라든가 영혼의 관대함"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리스도를 지겹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내버려두신다. 그들은 끝내 거절을 받음으로 거룩하신 그리스도께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 만큼 철저하게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3. 그들의 그러한 냉담하고 불일치한 신앙의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의 자만심과 자기 망상에서 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더 성장하든지 말든지 무관심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17절). 여기서 우리는 그들 자신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그들을 보는 그리스도의 생각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1)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매우 좋게 생각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부족할 가능성조차도 없으리 만큼 부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그들의 육신을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배운 바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받은 바 은사가 있는데 그것을 은혜로 여겼다. 그들은 재치를 가지고 그것을 참다운 지혜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들의 의식(儀式)을 그 의식의 주인이신 하나님보다 더 윗자리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인가! 지옥에 떨어진 많은 영혼들 가운데는 그들이 천국으로 가는 줄로 알았던 영혼들이 틀림없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우리는 우쭐대다가 우리들의 영혼의 관심을 떠나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자.
(2)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해 품으셨던 바른 생각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들의 상태는 능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연민의 정을 끌어들일 만큼 곤 고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스스로를 자랑했지만 그들의 상태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겼다.
[1] 그들은 그들이 부자라고 말하며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실상 그들은 가난하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영혼을 실어나갈 양식이 없었다. 그들은 부요하다고 하나 그들의 영혼은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빚진 바가 많건마는 그 빛의 한 모퉁이조차 갚을 길이 없었다.
[2] 그들은 눈이 멀었다. 그들은 그들의 상태, 그들이 가고 있던 길, 또는 그들이 처해 있던 위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처지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앞일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들은 눈이 멀었건만 그들이 보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던 빛은 실상 어두움이었다. 그러니 그 어두움이 얼마나 짙었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히셨건만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언제나 계시건만 그들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건만 그 죽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영원한 가장에 서 있으면서도 그 영원을 볼 수가 없었다.
[3] 그들은 벌거벗은 몸이 되어 입을 옷도 없고, 집도 없었으며, 영혼의 항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입을 옷도 없었고, 칭의의 옷이라든가 성결의 옷 같은 것도 없었다. 그들은 죄와 더러움으로 말미암아 벗은 몸이 되었지만 덮어 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죄와 부끄러움에 노출된 채 내버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였다. 그들을 가리워주지 못하는 누더기였으며, 그들을 더럽게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집도 없고 항구도 없는 벌거벗은 몸과 같은 신세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거처가 되시며, 인간의 영혼을 위한 편안한 안식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부요는 영혼의 부요가 될 수 없다. 육체의 겉모양은 영혼의 빛이 될 수 없다. 육체를 위한 안락한 집이 곧 영혼을 위해서는 좋은 휴식처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 본성에 알맞는 집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적인 부요 속에서도 그 영혼은 가련하고도 불쌍한 처지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4.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죄많은 백성들에게도 좋은 말씀으로 권고하신다. 그 권면은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가졌던 공허하고 거짓된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진실한 모습을 찾아보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
(1)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하신 권고를 저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좋은 권고를 주신다.
(2)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우신 부르심과 권고를 기뻐하는 한 그들의 상태는 절대로 절망적일 수 없다.
(3) 우리의 귀한 권면자이신 복되신 주님은 모든 죄인에게 꼭 필요한 최선의 충고를 언제나 해 주신다.
[1] 이 사람들은 가난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지도록 하라고 권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하여야 참된 부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첫째, 그들이 그 부요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그리스도에게서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팩톨루스(Pactolus) 강이나 포토지(Potosi) 광산으로 보내지 않고, 값진 진주이신 그 자신에게로 초대하신다.
둘째,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로부터 이런 참된 금을 얻을 수 있는가? 그들은 그것을 사야만 한다. 이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한 말처럼 들린다. 그처럼 가나한 자들이 어떻게 금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돈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듯이(사 55:1) 그리스도에게서 사면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가치 있는 대가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참된 부요를 받아들일 만한 자리를 마련하기만 하면 된다. "죄와 자만의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고 빈 마음을 품은 채 그리스도께 오라." 그리하면 그는 그의 감추어진 보화를 가지고 너를 충만케 하여 주실 것이다.
[2] 이 사람들은 벗은 몸으로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어디서 그들이 옷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옷이 능히 그들의 벗은 것과 부끄러움을 가려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이런 옷을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주시는 흰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금 걸치고 있는 더러운 누더기를 벗어 던져야만 한다. 그 흰옷이란 그리스도 자신의 의를 가지고 그들을 의롭게 여겨 주시며, 그리고 그들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하는 옷이다.
[3] 그들은 눈이 멀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권면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지혜와 이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따라 순종하라는 권면이다. 그리하면 그들의 눈이 떠져서 그들이 가는 길과 그 끝이며, 그들의 의무와 그들의 참다운 이해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밝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광경이 그들의 영혼 앞에 전개될 것이다. 그들 앞에 전개될 새 세계는 아름답고 찬란한 것들로 꾸며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 찬란한 광채는 금방 어둠의 권세에서부터 놓여 나온 사람들에게 황홀함을 안겨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처럼 경솔한 심령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지혜롭고 선하신 권면이시다. 그들이 그의 권면을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명예에 입각해서 그들에게 주신 그 약속이 꼭 실현되게 하실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죄많은 사람들일지라도 그의 훈계와 충고를 반드시 따르도록 크고 은혜로우신 격려의 말씀을 덧붙여 주신다(19,20절).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1) 그는 매우 진실되고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심한 말을 하며 엄히 꾸짖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들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내가 만일 너희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의 그처럼 죄악된 미지근함과 헛된 신념에 대해 그렇게 공개적으로 책망하거나 또는 이를 고쳐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미워한다면, 너희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며, 죄로 말미암아 끝내는 너희 자신이 멸망하도록 버려둘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채찍에 의한 징계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의의 표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열심히 회개하고 그들을 치는 분에게로 돌아서야 한다. 친구의 험상궂은 얼굴과 상처가 원수의 아첨하는 웃음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2) 그들이 만일 그의 훈계를 따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줄 귀한 것들을 준비해 두고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절).
[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들의 마음의 문을 찾아가시기를 즐겨하신다. 그는 자비와 친절한 마음을 가지시고 그들을 찾아 나서신다.
[2] 그리스도는 그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을 아신다. 인간의 마음은 무지와 불신앙과 죄악된 편견 때문에 본성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닫아 놓고 있다.
[3] 그리스도는 그 마음의 문이 닫힌 것을 보고도 즉시 철수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머리가 이슬에 젖을지언정 문이 열리기를 은혜롭게 기다리신다.
[4]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쓰시며 그들로 하여금 문을 열게 만드신다. 그는 그의 말씀으로 그들을 부르시며, 그의 성령의 충동으로 그들의 양심을 두드리신다.
[5] 그리스도에게 문을 열어 드리는 사람은 그의 임재를 맞게 되고, 커다란 위로와 도우심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있는 좋은 것들을 취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좋은 열매를 드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장 좋은 대접의 일부를 가져가실 것이다. 만일 그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대접받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져가실 것인가! 그는 새로운 은혜와 위로를 가져다주심으로 그들의 신앙과 사랑과 기쁨을 새롭게 활동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회개한 백성들은 함께 즐거운 잔치에 참예할 것이다. 그런데 완고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기를 거부한 죄인들은 얼마나 귀한 것을 잃어버렸을 것인가!
Ⅲ. 이제 우리는 이 편지의 결론 부분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1. 이기는 신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졌다. 그 약속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1) 이 교회가 전적으로 미지근함과 자만심 때문에 굴복 당하고 쓰러져버린 교회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열심과 활동력을 소생시켜서, 영적인 면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이전에 지은 모든 죄는 용서받고 뿐만 아니라 상급까지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급이란 어떤 것인가?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절). 이 말씀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시험과 시련을 겪으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시련을 이기셨고 단순한 정복자 이상의 분이 되셨다.
[3] 그 시련과 승리의 상급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게 되었다. 그러한 영광은 그가 아버지와 함께 영원 전부터 가지고 계신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구세주로서의 그의 구원의 사업을 완성시킨다는 보증으로서 그 영광을 아버지의 손에 위탁하고 그 자신은 땅에 내려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을 완성하심으로 해서 아버지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나가시기 위해 Pignus reposcere - 즉 그 보증을 되찾으신 것이다.
[4] 그리스도와 함께 시험과 승리에 동참한 사람은 따라서 그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 보좌는 세상 끝날에 세상을 심판하는 심판의 보좌이며, 영원히 빛날 영광의 보좌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머리되신 그분의 신비한 몸으로서 빛날 보좌이다.
2. 이제 전반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과 함께 모든 말씀이 끝을 맺게 되었다(22절). 그 말씀은 곧 이 편지서를 받아 볼 사람들이 그 내용을 사사로이 풀거나 또는 어떤 특정한 교회를 위해 가르치거나 책망하거나 시정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온 세상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생각하게 하여 주는 말씀이다. 그리고 또 여기에 나오는 교회들의 뒤를 이어 일어날 교회들에서도 그들의 은혜와 죄의 면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니만큼,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여기 나오는 교회들을 대하신 것과 같은 대우를 받으리라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것은 모든 세대를 위한 하나의 전형이다. 따라서 똑같이 충성되고 열매맺는 교회는 똑 같은 상급을 받을 것이며, 충실치 못한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어떤 교회들을 대하시는 품은 세상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교훈을 주는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먼저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겠는가?" (벧전 4:17) 이렇게 해서 이 책의 서신 부분인, 아세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끝났다. 이제 우리는 예언의 부분을 살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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