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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울의 인사말(에베소서 1:1,2)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붙인 칭호, 그는 자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인 바울"이라고 부름으로 예수에게 속한 자로 자신을 생각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자로 택정받은 것을 대단히 큰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사도들은 기독교 교회의 가장 으뜸가는 공로자들로 특별한 사역자들에게 단 한번 허용된 명칭이었다. 그들은 위대하신 주님께로부터 주신 특별한 은사와 성령의 직접적인 도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교회가 아직 유년기에 있을 때 초대 기독교회를 다스리며 복음을 전파하고 널리 알리기에 적합한 사람들이었다. 바울도 그러한 사도를 중의 한사람이었다. 바울에게 그러한 직분이 주어진 것은 인간의 뜻에 의한 것이거나 바울의 주제넘는 자청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그분의 뜻은 바울에게 특별하고도 분명하게 전해졌다. 또한 바울은(다른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 자신에게 직접 불리움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모든 사역자들은(그들의 소명과 직분이 특별나게 주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바울 사도처럼 그 부르심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주어진 것으로 여겨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며 이로써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이다.

2. 서신의 수신인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시아의 큰 도시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낸다는 말씀이다. 바울은 그들이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었으며 진리와 실재에 의하여 살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성도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중의 대다수가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이같이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도라는 명칭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지상에서 그러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영광의 나라에서 결코 그들은 성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확고하고 끊임없이 붙잡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확고히 붙잡으며 그리스도와 관계를 성립하여 주는 신앙 고백에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주님의 자비를 얻어 신실하게 되는 것을 전도자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개개인에게 영예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은 모든 은혜와 영적인 힘을 얻으며 그들의 인격과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것이 그의 안에서 용납되어지는 것이다.

3. 사도의 축복.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바울의 모든 서신에 사용되었다. 또한 이러한 축복을 형제들에게 대한 바울의 선한 뜻과 그들의 행복에 대한 소망을 나타내 준다. "은혜에 의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과분한 사랑과 은총 그리고 성령께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은사를 이해하게 된다. "평강에 의하여서는" 다른 모든 축복들 곧 영적이며 세상적인 축복의 뜻이 들어 있다. 이 축복은 은혜의 결실이요 소산물이다. 은혜가 없이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특별한 축복은 창조주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에 의하여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을 구속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권리를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참으로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는 이미 은혜와 평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증대시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며 가장 선한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를 새롭게 공급해 주심을 필요로 하며 그 은사를 개선하고 증대시키는 것만을 소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과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은혜와 평강이 풍부하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본문의 내용이 편지로써는 특이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본장에서의 바울의 하나님의 일에 관한 강론이 기도와 찬송으로 시작되는 것을 옳게 여기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엄숙한 고백이므로 또한 이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게 있는 교훈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도가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찬송 역시 그럴 수 있다.

 

1:2 없음.

 

1:3

신령한 축복에 대한 찬미(에베소서 1:3-14)

바울은 감사와 찬송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위대하고 귀중하고 유익한 것들에 대한 풍부하고 넘치는 사랑에까지 확장하여 전개한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크나큰 특권들을 하나씩 열거하다보면 하나님께 대하여 찬양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Ⅰ. 넓은 뜻에서 바울은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먼저 찬미한다(3절). 본문에서 그는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예수를 중재자로 볼 때 아버지는 그의 하나님이 되시며 또한 복된 삼위일체의 제이위에 속한 분으로 예수를 볼 때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신다. 제이위에 속한 분으로 예수를 볼 때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신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신비와 합일을 뜻하는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요, 아버지이신 분은 신자들의 하나님과 아버지도 되시며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축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께로부터 죄된 피조물에게 주시는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다"고 말씀되고 있다. 신령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최고의 축복이며 그것을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간청해야 함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으로 복되게 만드시기 위하여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다. 우리는 그가 주신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며 그를 귀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조금이라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신령한 복으로 축복하신다. 즉 그들을 위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주셨고 나아가 이 모든 신령한 복을 그들에게 자유로이 주셨다. 그것은 세상적인 축복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의 축복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건강의 은총은 받았으나, 재물이 없고, 어떤 사람은 재물의 축복을 받았으나 건강치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축복을 모든 것이 포함된 축복이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축복들이다." 어떤 사람은 신령한 복을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하며 세상으로부터 불러 내심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신령한 축복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으로 인간들에게 하늘 나라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하며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이제 우리는 신령한 하늘에 속한 것들을 제일 으뜸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습득해야 하겠고 신령한 하늘의 축복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이 축복만 있으면 우리는 비참해지지 않으며 이 축복이 없으면 우리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말고 위로부터 오는 것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이 모든 영적인 축복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축복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예배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상달되듯이 우리의 모든 축복도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

Ⅱ.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는 특별하고 신령한 복들을 여기서 낱낱이 열거하고 자세히 설명하였다.

1. 선택과 예정. 선택과 예정은 다른 거룩한 은혜를 넘치게 하는 신비한 은혜의 근원이다(4,5,11절). 선택은 많은 인류 가운데서 어떤 이들을 선택함을 의미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분류되고 구별되었음을 뜻한다. 예정은 축복을 받도록 예정된자들과 관계있는 말이다. 또한 특별히 하나님의 "양자 삼으심"과 관계 있는 말이다. 때가 되면 우리를 그의 양자로 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그리고 자녀의 모든 특권과 유업을 누릴 권리를 부여하시는 것이 그의 목적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랑이 작용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한 말씀을 대하게 된다. 그것은 "창세 전에"부터 작용하였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기 전부터 뿐만 아니라 이 세계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 사랑의 역사는 있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은 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섭리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는 높은 경지의 축복으로 승화된다. 우리가 문 앞에 선 거지에서 적선을 할 때 그것은 갑작스러운 결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물려 주는 것은 깊은 생각의 결과이며 그러기에 엄숙하게 그의 유언장에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정은 신의 사랑을 찬미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에게 축복을 보증해 준다. 왜냐하면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결의는 불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신령한 복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수행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심에 따라 우리를 축복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 중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라고 강조적으로 불리워진 그리스도안에서 또한 인간들을 사랑의 눈길로 보시는 선택된 구세주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선택에 따라서 우리를 축복하셨다. 이러한 선택의 위대한 목적과 뜻을 여기서 살펴 보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행복에 이르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행복을 위한 거룩함을 갖추는 의무(선택)도 부여 되어 있다. 그들의 구원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사랑의 뜻의 결과이다. 그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뜻의 결과이다. 그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 백성들이 거룩함이 단지 외적이며 밖으로 나타난 모양에 끝나지 않게 함으로 인간의 비웃음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룩함이 내적이며 진실된 것이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하셨다. 마음을 보시는 영원하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거룩함을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헤아리신다. 이 사랑이야 말로 모든 참된 거룩함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거룩이란 단어의 본래의 뜻은 아무도 꾸짖을 수 없는 순결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해석자는 이 거룩함을 성도들이 장차 얻을 생명에 이르러서 곧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있게 될 때 성취될 완전한 거룩함을 말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거룩함은 하나님 앞에서 귀히 여겨질 것이라고 한다. 본문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근원적인 원인과 원리가 나와 있다. "그것은 그 기쁘신 뜻대로"라는 말씀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택하심은 그들 가운데 있는 어떤 가능성이 보여서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택하신 것이다. 또한 그의 택하심도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고정되고 변할 수 없는 "뜻에 따라"된 것이다(11절). 그분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능력있게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즉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영광이 될 모든 사업에 대한 궁극적이며 위대하신 목적을 지혜롭고 자유롭게 예정하시고 선포하신다. 이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며"(6절) 또한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12절).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찬미하고 영광을 나타내며 가장 최고의 찬송을 드리는 태도를 가지며 또 살고 행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하였고 그로부터 나왔으며 그를 통하여 오는 것이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리고 또 그를 찬양하는데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이며 우리가 행하는 바 모든 행동 가운데서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구절에 관하여 어떤 주석자는 이 말씀이 기독교로 개종한 에베소인들에게 주는 특별한 부탁이라는 대단히 다른 뜻으로 해석한다.

2. 바울이 언급한 또 다른 신령한 복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납 받음이다. 하나님은 예정의 은혜에 의하여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용납하셨다"(6절). 그리스도 예수는 천사들이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신 자이다. 하나님의 용납을 받은 것은 우리의 크나큰 특권이다. 그 특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거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살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용납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 때문에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

3. 예수의 피를 통한 구속과 죄의 용서(7절). 속죄와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가 속박을 당한 것은 죄 때문이며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지 아니하고는 속박으로부터 자유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죄함을 입었다. 죄에 대한 책임과 더러워짐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지 않고는 지을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영적인 축복은 그리스도의 보혈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온다. 우리에게 자유롭게 흘러오는 크나큰 유익은 우리의 복된 구주께서 비싼 값을 치루고 사신 것이다. 또한 이 유익함은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심과 하나님의 부요한 은혜는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큰 사업을 성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우리의 대속물과 우리를 보증해 주는 징표로써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족을 얻으셨다. 그러나 이 보증의 징표로 자유롭게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아들을 보증의 징표로 자유롭게 내어 주심은 그의 풍성한 은혜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셨음"을 알 수 있다(8절). 즉 실행하심에는 아름답게 조화시키시고 하나님과 율법의 영예가 보장되는 동시에 죄인들의 회복과 구원을 확실히 보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얼마나 뛰어난가?

4. 바울이 본문에서 하나님께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또 다른 특권은 신적인 계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9절). 즉 오랜 동안 감추어져 왔으며 아직도 이 세상의 많은 부분에 감추어져 있는 그 뜻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려 주신 것은 그의 선하신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에게 이 뜻이 알려지게 됨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것이었다. 영원부터 아버지의 품에 계신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선포하셨다. "그가 목적하신 것" 즉 인간의 구원에 관한 그의 신비하신 뜻은 "그의 기쁘심을 따라" 즉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이러한 게시 가운데 또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은 풍성하게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과 우리에 대한 구원의 복음으로" 묘사되었다(13절). 복음의 말씀은 모두가 진리이다. 복음은 가장 값지고 중요한 진리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또 그 진리 안에서 우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님의 명세에 의하여 확정되고 인봉되었다. 이로써 우리도 신의 진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복음에 접하는 길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복음은 곧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복음을 말한다.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구원을 주심을 포함한다. 복음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지시한다. 복된 성령은 구원받을 영혼들에게 복음의 읽는 것과 복음의 사역을 효력 있게 하신다. 아 우리가 어떻게 이 영광된 복음의 소중히 보관할 수 있고 이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무슨 말로 감사할 수 있는가! 복음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불이다. 바로 이 점에 의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 이 불빛을 유의하여야만 할 것이다.

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은 대단히 큰 특전이며, 신령한 복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모든 은혜의 기초가 된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다"(10절).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빛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모인다. 모든 신앙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는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각각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써 또 서로 연합하게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가 된다.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왕래하며 화평하게 된다.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와 하나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목적하신 바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확정하신 바로 그 시간이 찼을 때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의 뜻을 성취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6. 영원한 상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가장 크나큰 축복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의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다(11절). 하늘 나라는 기업으로 주어진다. 하늘 나라의 복은 인간들에게는 더 없이 만족스러운 유업이다. 하늘 나라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선물을 주는 식으로 즉 상속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주어진다. "만약 자녀라면 그는 또한 상속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축복은 하늘 나라의 기업과 비교할 때에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속자가 어렸을 때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그가 성장하였을 때 그를 이하여 준비해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머리가 되시며 대표자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업에 대하여 현재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이며 또 실제로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7. 성령의 인치심과 보여 주시는 증거로 이러한 복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13절)고 말씀 되고 있다. 복되신 성령은 자신이 거룩하시며 또 그는 우리를 거룩하게 사신다. 그분은 약속된 성령이므로 "약속의 성령"이라고 불리운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편으로 분리되며 그를 위한 자들로 구별된다. 그리고 그에게 속한 자로 표시된다. 성령은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14절). 보증은 부분적으로 지불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후에 있을 전액 지불을 보증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가 바로 그러한 보증이다. 거룩케 하시는 자로서 또 위로자로서의 성령의 모든 영향력과 작용은 하늘 나라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를 통해 맺어진 영광의 씨와 새싹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성령의 조명은 영원한 빛의 전조가 된다. 또 성화는 완전한 거룩성의 전조가 되며 그리고 그의 위로는 영원한 기쁨의 전조가 된다. 성령은 "우리가 받을 상속을 소유할 때까지" 우리에게 전조가 된다고 말씀되고 있다. 여기서 하늘 나라가 우리의 소유라고 불리우는 까닭은 상속자들이 이미 그것을 확실히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 보증을 하시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유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그의 피를 치루시고 사신 것이다. 구속하신다고 말한 것은 죄로 인하여 우리가 기업을 상실하고 저당잡힌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의 법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그 기업을 원상대로 회복하여 주신다. 이 모든 말씀을 통하여 성령은 은사가 그리스도에게 간구하는 자들에게 보증된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약속인가를 생각하여 보자. 여기서 사도 바울은 모든 영적인 특권을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과 계획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는 우리로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우리에게 복음이 먼저 전하여졌고 또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개종하였으며 그에게 우리의 희망과 믿음을 두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찬미해야 하는 것이다. 선수(先受)는 하나의 특정임을 기억하자. 바울도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함으로 그보다 먼저 신앙을 가진 일을 칭찬하였다(롬 16:7). 그리스도의 은혜를 먼저 경험한 사람은 또한 더욱 하나님을 찬미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먼저 믿은 자들은 믿음이 강하여야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누구보다 뛰어나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목표이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창조되었으며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구속받은 것이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14절)이야 말로 우리가 기독교의 위대한 목적이며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즉 하나님께서는 주의 은혜와 권능과 완전하심이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뚜렷이 보이며 확실하여지고 그리고 인간들이 그를 찬미하게 되기를 기대하셨다.

 

1:4 없음.

 

1: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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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없음.

 

1:8 없음.

 

1: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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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기도(에베소서 1:15-23)

우리는 이제 이러한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바울의 열렬한 기도로 구성되어 있는 본장의 마지막 부분을 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더 풍성히 공급해 주실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 바울은 신령한 복들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그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할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문에 의하여 이 축복에 대해 요청받기를 또 그들을 위해 그 축복을 주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러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셨다. 우리는 이 복에 대하여 아무런 권한이 없다. 다만 믿음과 기도에 의하여 간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그들을 위하여 이같이 기도하게 된 요인은 그들을 그가 좋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들었다"(15절)고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은 모든 다른 은혜를 더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이 같은 성도를 향한 사랑은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 비록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은혜가 연약하고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며, 불평이 많고 야비할지라도 그들을 모두 사랑한다.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이미 기업을 보증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앞의 절과 연결을 지어주는 "이를 인하여"라는 접속사를 통하여 인식할 수가 있다. 즉 바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을 포함한 말이다. "너희가 생각하기를 이제 유업에 대한 보증을 받았으니 다 잘 된 것이 아니냐, 이제 더 이상 염려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아닌한가? 결코 그렇지 않도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이를 인하여 오히려 감사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 너희를 말하노라"(16절)고 말씀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때도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그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고(17절) 더욱 풍성한 성령을 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가장 선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이 필요함을 명심하라. 우리가 믿는 형제들이 잘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그를 사이에 중재를 해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믿는 형제들의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게 증가할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은 그들이 박해로부터 자유하거나, 재산과 명예나 세상의 열락을 소유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이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은 그들의 이해하는 눈이 밝아지고 지식이 더욱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이었다. 바울이 말한 지식은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이었다. 성령의 은혜와 위로는 이해를 밝게 하여 줌으로써 인간의 영혼과 교통하신다. 성령은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찾아와 거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사탄은 관능과 격정을 통하여 인간들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해를 시키심으로 사람 안에 거하신다. 다음을 유의하라.

Ⅰ. 이러한 지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로부터 온다(17절). 주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며, 주께로부터 오는 것 이외에는 어떤 바른 구원의 지식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3절) 영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이 지식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본래적인 히브리 정신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무한한 영광을 지니고 계신다. 그의 피조물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하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영광의 주재자이시다. 그의 성도들은 이 영광으로 옷 입고 있으며 또 옷 입히울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성령을 주심을 통하여 지혜를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성도들의 선생으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 가운데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 만약 우리가 마을 가운데 성령의 지혜를 갖고 있지 않다면 성령의 계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성경을 쓰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가린 장막을 치워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고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더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성령의 계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혹은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서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적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을 알 뿐만 아니라 그에게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먼저 이해하는 데서 가능해진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시"라고 기도하였다(18절). 자기의 눈이 떠지고 하나님의 일에 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밝히 알고, 그 지식을 더 분명하고, 확실하고, 체험적으로 갖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미지근한 사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여서는 안 되며, 더욱 더 분명한 지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혜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현명한 교인이 되려는 긍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Ⅱ. 그가 더욱 바란 그들이 가져야 할 지식.

1. "부르심의 소망"(18절)에 대한 지식이다. 기독교는 우리가 받은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독교로 부르셨고 이 때문에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부르심에는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막대한 특권을 알게되는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받으리라는 기대와 하늘 나라에 속한 것에 대한 존경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길을 갈 때에 가장 근면하고 인내하도록 깨우쳐 주는 것으로써 바람직한 것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소망하는 위대한 목표를 분명히 내다 보고 또 충분히 알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2. "성도 안에서 풍요한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다(18절). 성도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기업이 준비되어 있고 또한 현재에도 성도들 가운데 현재적인 기업이 있다. 왜냐하면 은혜는 영광의 시작이요, 거룩성은 봉오리 맺힌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과 풍성한 영광과 그리스도인으로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더 뛰어나게 하며 더욱 더 참된 영광을 지니게 하는 풍요한 기업의 영광이 있다. 이 영광을 경험으로 알며 신령한 생활의 능력과 기쁨과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게 하는 지식을 누구나 갖기를 바라고 누구나 기쁨으로 환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늘 나라에서 그의 백성들을 복되고 영광되게 하시는 그 기업의 영광도 이 세상의 영광에 대한 지식처럼 사모되어지고 그리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도달하기를 바라고 그리워하는 하늘 나라에 대하여 할수 있는 한 많이 알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명상하며 기도하기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에 대한" 지식이다(19절). 하나님의 풍성하심에 대한 실제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동행하고자 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한 은혜의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의 믿음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고 동행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일이 바람직하다. 인간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며 주의 의를 위하여 또한 영생의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는 것은 전능하신 능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란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역사하시던 능력과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권능"(20절)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바랐다. 참으로 이 능력은 세상에 주신 복음의 진리에 대한 위대한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우리 안에 복사된 것(우리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부활과 일치하여 죄의 죽음에서 일어난 것)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증거이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있은 후 그렇다고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증거할 수 없다고 하여도(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진리임을 증거해 준다), 사마리아인들이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나니 마음 가운데 변화를 느끼게 되도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만족함으로 "우리는 이분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여기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는 말을 통하여 뜻하고자 한 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어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과 같은 능력으로 믿는 자들의 몸을 일으키시어 영생하게 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20절).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에 이르게 되므로 결국 그 권능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후 바울은 주 예수와 그분의 영광 받으심에 대하여 더욱 영광 돌리는 말씀을 하고자 주제로부터 약간 이탈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20,2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만물보다 위에 계시며 만물의 주재자 되시고 모든 만물은 그에게 복종되도록 창조되었다. 천상계의 모든 영광과 천상과 천하의 모든 권능은 전적으로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시 110:1).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었다"(22절). 모든 피조물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에게 예속되어 있다.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께 성실히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왕권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정죄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만물 위에 머리로 두셨다." 그리스도께 이러한 지배권과 통수권을 주시고 또 그를 위하여 교회라는 신비한 몸을 준비하신 것을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또한 이러한 권능과 권세를 가진 자를 우두머리로 교회에 세우신 것은 교회에 대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를 만물 위에 머리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주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이 모든 만물을 그의 손 안에 주셨다." 그러나 이 위로를 완전케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머리가 되사 만물을 교회에서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를 위임 받으셨다. 즉 그는 그의 교회에 관한 은총의 계획에 의거하여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다스리게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 때문에 열국의 사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시온에 기초를 세우셨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계를 다스리는 바로 그 같은 권세가(하나님의 권세) 교회를 다스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사랑하심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의 몸이요." "그의 신비한 몸이며" 그가 교회를 돌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23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결점을 보완하시고 성령과 하나님의 충만함이라고 일컫는다. 왜냐하면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결점을 보완하시고 성령과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그들을 채워 주신다(3:19). 그러므로 교회는 주의 충만함이라고 일컫는다. 왜냐하면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 만약 교회를 소유하고 계시지 않는다면 자신을 완전케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주께서 그의 나라를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왕이 되실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교회가 그의 충만함이란 것"은 중보자로서 그리스도의 영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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