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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교회의 번성(1) (이사야 54:1-5)

우리가 포로에서 돌아온 후의 유대 민족에게 이 말씀을 적용시킨다면 이것은 그들이 자기 땅에 정착한 뒤에 있을 인구 증가에 관한 예언이 된다. 예루살렘은 자녀없는 여인의 상태에 있었거나 쓸쓸하고 고독한 과부의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나 그 도시가 새로 보충되고 성 밖 백성들도 다시 보완되리라는 것이 약속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폐허가 다시 복구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외곽지대가 모든 방면으로 확장될 것이며 많은 건물들은 새로운 기초 위에 세워질 것이다. 수년 동안에 걸쳐 이방 바벨론 나라에 의해 불법적으로 장악되었던 재산들이 이제는 원래의 주인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또 다시 그들의 남편이 될 것이며 바벨론 포로의 치욕과 그 당시 축소된 적은 수에 대하여 잊어버리게 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번성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옛적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될 때는 그들이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제 1차로 바벨론에서 나온 사람들의 수는 겨우 42,000명에 불과했다(스 2:64). 그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던 당시 숫자의 약 1/15에 불과했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합세했으나 그것이 집단이 되어 나온 수 중 가장 많은 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년 뒤 즉 그들이 로마인에 의해 멸망되기 얼마 전에 드린 유월절 어린양의 머리 수로 계수가 되었는데 이 기준에 의하면(양 한 마리당 스무 사람으로 계산할 수도 있지만 열 사람으로 계산할 때) 최소한 전국의 인구수는 거의 300만으로 산출(算出)된다. 조세푸스(Josephus)는 말하기를 270여만이라고 한다(De Bell. Jud, lib. 7. cap. 1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전체 교회에다 이것을 적용해야만 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시, 그리고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주목해 보자.

Ⅰ. 기독교가 발생하기 전 오랫동안 세상에 있는 종교는 낮고 쇠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하는 자" (1절) 또는 "구로치 못하는 자" 같았고 남편과 자식들을 잃어버린 홀로 된자 같았다. 그 교회는 작은 구역 내에 있었고 따라서 열매를 거의 맺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실로 서약에 의해서 하나님과 혼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세한 개종자는 거의 없었다. 자라나는 신흥 세대들이라 해서 전도가 유망한 것은 아니었다. 진지한 경건심이 그들 후속 세대 사이에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하였다. 이방인은 유대인들보다도 신앙이 없었다. 이방의 개종자들은 이산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풍지박산된 가정의 자녀들처럼 "널리 흩어져서" (요 11:52) 그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다.

Ⅱ. 복음 전파와 기독교의 수립으로써 종교는 저조한 상태로부터 회복됨.

1. 많은 무리가 우상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교회의 거듭난 자녀들이었고 말씀에 의해 새로운 신적 본질에 동참하는 자들이었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54:1). 이것은 유대 교회에서 보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던 이방 교회 당시 세워진 많은 선한 자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인맞은 자가 계수되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인구와 비교하면 남은 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열방 중에서 인맞은 자의 수는 극히 많고 밀집되어 있으며 너무나 널리 흩어져 있어서 어느 누구도 능히 셀 수 없을 정도이다(계 7:4). 성대한 신앙 고백으로 자기들 자신들을 구별짓는 장소나 민족들에게서 보다 신앙심을 거의 과시하지 않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거의 누리지 못한 곳에서 많은 신앙심이 발견되는 수가 왕왕 있다. 그럴때면 남편이 있는 아내보다 홀로 된 자들이 보다 많은 자식들을 갖게 되며 의의 열매도 더 많이 맺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 이제 이것은 교회가 크게 기뻐할 제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즉 교회는 이런 이유로 힘껏 찬송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교회 수의 증가는 모든 교회의 친구들의 즐거움이고,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한다. 교회가 고독한 상태에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상실했던 기반을 회복 내지 더 많이 획득하기 시작할 때의 기쁨은 더욱 더 클 것이다.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들 사이에서까지도 회개하는 한 죄인에 대해서 유별난 기쁨이 있는데 하물며 회개하는 국가에 대해서랴. 만약 열매없는 무화가 나무가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이다. 그 무화과나무도 기뻐할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것으로 인해 즐거워할 것이다.

2. 교회의 영역이 이전보다 훨씬 더 확장되었다(2,3절).

(1) 여기서 당시 교회의 상태는 장막 상태로 생각된다. 옛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이들처럼 교회는 장막에서 우거한다(히 11:9). 그 장막을 보잘 것 없는 것이며 이동식이고 폭풍우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도성은 존속하는 도성으로써 미래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장막은 곧 철거되어 이동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특권으로 상징되는 촛대는 곧 "그 자리에서 옮겨지게" 된다(계 2:5). 장막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다른곳으로 옮겨 정착하게 된다.

(2) 비록 교회가 장막 상태에 있더라도 때로는 아주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다. 식수가 늘면 설사 천막 교회라 하더라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초의 복음 전파에서도 그러했다. 사도들이 한 일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교회의 휘장을 펄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파하며(롬 15:20) 복음과는 생소한 도시와 마을에 복음의 누룩을 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장막의 밧줄을 늘였다. 이는 더 많은 자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늘어난 휘장의 무게를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뚝도 그에 따라 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회가 숫적인 성장을 하면 할수록 교회의 일곱 기둥을 지탱하고(잠 9:1) 실수와 부패를 막기 위해 경각심을 강화해야 한다.

(3) 곳곳에서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행 19:20)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과 동행했다는 증거였다. 물줄기가 좌우편으로 즉 사방으로 쏟아지듯 복음도 뚝이 터지듯 쏟아졌다. 복음은 세계 만방으로 확산되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교회들이 있었다. 교회의 자손은 이방인들을 유업으로 받았다. 황폐한 도시들(즉 참 하나님께 대한 지식도 예배도 부재하던 도시들)은 사람이 살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는 참 신앙이 확립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3. 교회의 위로와 존귀.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라" (4절). 네가 이전처럼 네 지겨의 협소함과 네 자녀의 희소함을 두려워 말라. 네 대적들은 그런 점을 들어 너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비난할 근거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너는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게 되리라(4절).

이 세상의 통치자나 왕자들 중 어느 누구도 기독교를 포용하지 않았고 더욱이 기독교가 보잘 것 없는 소수의 무리들에 의해 향유되고 신봉되었다는 것이 초창기의 기독교가 받은 비난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민족들이 제자가 되고 제국이 기독교화 되자 이러한 "청년 때의 수치는 잊혀지게 되었다" (4절).

4.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다" (5절)는 말씀처럼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남편처럼 서 계신다는 것과 관련지어져 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롬 7:4) 하려고 그리스도와 혼인한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께 거룩한 자손을 낳아 길러 주기 위해 그와 결혼한 기관이다. 거룩한 자손은 하나님께 자기 자녀로 간주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지으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교회는 한 민족으로 형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구속자시다. 구속자에 의해서 교회는 포로됨 즉 죄의 속박과 극악한 종살이로부터 건짐을 받았다. 그것은 교회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는 분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1) 그는 "만군의 여호와" (5절)시다. 그는 불가항력적인 권능과 절대적인 주권과 우주적 지배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단지 몇몇 무리들의 주가 된 왕들은 다른 무리들을 거느리고 있는 왕들을 보게 되며 그들이 자기들의 무리에 비해 힘이나 수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군의 주 여호와이신 것이다.

(2)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시다. 또한 그는 구약교회의 여러가지 사건을 주재하신 분이시고 구약교회와 언약을 맺은 중재자였다. 신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 만큼 풍요하고 확실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속자되신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시기 때문이다.

(3) 그분은 하나님과 중보자로서 "온 세상의 주" 라 불리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만물의 상속자시기 때문이다. 땅끝까지 그의 구원을 보게 되고, 온 세상이 그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그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때는 그렇게 불리워질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는 특수한 방식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분한 담이 무너져서(아덴에서 처럼)알지 못하는 신으로 불리던 곳에서조차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워질 것이다.

 

54:2 없음.

 

54:3 없음.

 

54:4 없음.

 

54:5 없음.

 

54:6

교회의 번성(2) (이사야 54:6-10)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자들에게 적시(適時)에 구조를 베푸셔서 그들은 속박에서 해방된다. 이 구원과 위로는 은혜의 언약 속에서 전체 교회와 개개의 신자를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모든 위로의 예표로 예언되고 있다.

Ⅰ. 이전 고통을 회고해 보라. 옛날의 고통과 비교해 볼 때 자기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여간 큰 위로가 아닌 것 같다(6-8절).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교회의 상황은 몹시 비참했다. 교회는 마치 남편과 사별했거나 아니면 "소시에 아내 되었는데도" (6절) 불화로 인해 버림받은 연인과 같았다. 버림받은 때문에 그 아내는 마음에 근심하고 속상해 하며 초조하게 되고, 우울증만 더해 간다. 즉 교회는 마치 거절당하고 배신당한 사람과 같이 불만에 차 있었다. 하나님께 아내가 된 자들조차 거절당하고 버림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소박맞을 까봐 마음에 근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결국에는 절망 속에 버려둠을 당치 않을 자들이라도 일시적으로는 곤혹과 재난을 당하는 수가 있다. 이 직유(직諭)는 7절과 8절에서 설명된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며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노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고통을 줄 때는 그들을 버리시는 것같이 보인다. 그들의 원수들도 그렇게 해석한다(시 71:11).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오산이다(사 49:14). 기도의 기대가 응답되지 않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마치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어떤 친절도 생각지도 않으시기라도 하는듯이 그들로부터 그의 얼굴을 숨기시는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렇게 행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계속 주지하시며 비록 자기 백성을 대적해서 얼굴을 돌리신 일은 없다고 하나(악인에게는 그러셨지만, 시 34:16) 그들에게 등을 돌리신 일은 왕왕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신다. 이 일은 실로 그의 노여우심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고 그들에게서 얼굴을 가리신 것은 진노에서였다(57:17). 그러나 그것은 작은 진노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찮다거나 무시할 만하다는 말이 아니라(" 누가 주의 능력을 알랴? 시 90:11)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나 진노의 잔이 쏟아질 대상자들에 비해 작은 진노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노를 다 일으키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이 그토록 작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 동안 계속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대해 영원히 노를 발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 노여움은 곧 끝이 난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데 반해 자비는 신속히 베푸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고난은 바람에 쉬 달아나는 구름처럼 가볍고 잠간이다.

2.다시 돌아오는 자비는 몹시 감미로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그 위로는 그들의 고난에 비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버림받고 상심할 때 그들을 부르사 언약을 맺으셨다. 그들이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을 고통에서 불러 내셨다(6절). 하나님의 분노는 잠시 동안 지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자기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며, 그들로 무리를 이루어 고토로 귀환하도록 하기 위해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다. 또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의 품으로 모으며 껴안아 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떠맡으실 것이다. 그는 마침내 그들을 자기에게로 모아들일 것이며 "곡식을 모아 자기 곡간에 넣으실 것이다" (마 13:30). 그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다. 이 말은 그가 결국 분노에서 돌아서서 자기 백성들에게 또 다시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불러모으심은 자기 백성들의 공로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큰 긍휼(7절)과 영원한 자비(8절)에서 비롯된다. 진노는 작으나 자비는 크다. 분노는 잠간동안이나 자비는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고난 중에 낙담하지 않고 구원을 체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노와 자비가 어떻게 대조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Ⅱ. 장차 있을 위험을 예기할 때 자기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항구적인 것 같고 그의 자비는 영원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약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계약은 "화평케 하는 언약" 이라고 불리워 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해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모든 선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이 언약은 섭리의 언약처럼 확고부동하다. 그것은 "노아의 홍수" (9절)에 비할 수 있다. 그것은 계절의 순환, 파종기나 수확기 등을 교란하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고 홍수에 대해 하신 약속과 같다(9절). 하나님께서는 그 때 크게 진노하셔서 만 일 년 간 세상에 사람들과 다투셨다. 그러나 마침내는 영원한 자비로 돌아오셨다. 그는 노아의 홍수가 다시 재현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창 8:21, 22; 9:11).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맹세처럼 어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래로 세상이 하나님의 노를 여간 격동한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지키셨다. 그는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세계는 불의 심판을 받기로 예비돼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은혜의 언약 역시 어길 수 없는 약속이다.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추방하시거나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파기할 정도로 노하시지는 않을 것이며(시 89:34) 이방인을 책망하실 때처럼 멸하거나 그 "이름을 영영히 도말" 하실 정도로(시 9:5) 책망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2. 그의 약속은 가시적 피조물 중 가장 견고한 것보다 더 확고부동하다(10절). 산들은 영원한 산이라고 불리며 작은 산들은 무궁한 작은 산들이라고 불리우는데도(합 3:6),산들이 떠나며 작은 산들을 옮기게 될 것이다(합 3:6). 이것은 자기 백성과 체결하신 하나님의 계약이 깨어지는 것보다 산의 요동이 더 수월하리라는 말씀이다. 산들은 이따금씩 지진으로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사건이 돌발할지라도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모든 산들이 떠나며 모든 작은 산들이 옮기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 산들은 노아의 홍수 때처럼 꼭대기가 덮일 뿐 아니라 바닥도 갈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와 지면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신자들 간의 화평의 언약은 그 언약의 모든 자손들에게 영원한 축복으로 계속될 것이다. 산들이나 작은 산들은 그 시대의 거물들이나 위인들을 의미한다. 이 거봉들은 '아틀라스'(신들을 배반한 벌로 하늘을 짊어지게 된 신--역주)처럼 하늘을 떠받치며 지탱하는 것같이 보이는가? 피조물에게 대한 신뢰는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다. "저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무리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렘 3:23). 그러나 창공은 확고하다. 하늘을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라질 때도 천공(firmament)은 그 이름 그대로 견고하다(firm).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시며 그의 인자도 떠나지 않으신다. 이 산들은 하늘 꼭대기에 닿기라도 하는 듯이 위협하며 팰리온(Pelion)과 오사(Ossa)처럼 하늘을 무시하는가? 이땅의 왕들과 지배자들이 스스로 여호와께 대항하는가? 그들은 떠날 것이며 옮겨질 것이다. 교회의 구원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들은 "평지가 될 것이다" (슥 4:7).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자기 백성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실 것이다. 화평의 언약은 결코 옮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그 언약은 움직일 수 없고, 어길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가변적이고 불확실한 우리의 공로를 토대로 수립된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치않는 하나님의 자비를 근거해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54:7 없음.

 

54:8 없음.

 

54:9 없음.

 

54:10 없음.

 

54:11

시온의 융성 (이사야 54:11-17)

여기에는 비천한 상태에 있는 교회에 대해 매우 고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즉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백성들을 이전처럼 계속해서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번영을 다시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아니, 그는 그들이 구가한 그 어떤 번영보다 더 큰 번영을 누리도록 그들을 높이실 것이다. 우리는 앞 장에서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높아짐을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그분과 함께 왕노릇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Ⅰ. 여기에는 교회의 비참한 모습이 명시되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런 참혹한 상태로 전락하였다(11절).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너 가난하고 곤궁한 무리여! 폭풍에 표류하다 난파 직전에 있는 배처럼 요동하는 자여! 그런 처지에서도 동정해 주거나 격려해 주려는 친구 하나 없으며(전 4:1) 고통의 경감이나 구출의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아 위로받지 못하는 자여." 이것은 바벨론 포로 중에 있는 유대인의 형편이었고 후일 한때 안티오쿠스의 폭정에 시달릴 유대인의 형편이기도 했다. 이것은 기독 교회와 개개 교인의 일시적 형편이기도 하다. 밖에는 전쟁이 있어 그들은 폭풍 속에서 곧 죽게 된 제자들과 같다. 그들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Ⅱ. 여기에는 교회의 영화로운 상태도 얼굴돼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영광된 상태로 환원된다. 교회가 극히 수심에 차 있으나 달리 위로자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의 고통과 곤경을 주목하시고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괴로움과 혼란을 당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런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근심과 두려움을 주시하시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곤경이 무엇이며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를 말씀하고 계신 때문이다. 그들이 슬퍼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슬퍼하사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11절)라고 측은히 말씀하신다. 그들의 온갖 고통 속에서 하나님 자신도 고통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교회를 곤고로부터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교회의 융성과 그 융성의 보장을 위해 큰 일을 반드시 행하시겠다는 말씀으로 교회를 격려하신다.

1. 지금은 교회가 치욕 상태에 있으나 그것이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될 것이며 그것이 교회를 평안하게 만들고 다른 자들이 보기에도 사랑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계신다.

(1) 이것은 하나의 도성을 주제로 한 비유로서 약속되고 있다. 그것은 적절한 비유이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루살렘이 폐허와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으나 머지않아 재건될 것이며 미화될 것이고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화려하게 보일 것이다. 돌들은 견고히 쌓아질 뿐만 아니라 훌륭하고 아름다운 채색을 하여 쌓게 될 것이다. 그 돌들은 꾸미는 보석일 것이다(대상 29:2). 기초는 여기에서 언급된 보석 중 가장 값비싼 청옥(싸파이어)으로 놓아 단장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이신 그리스도와 사도나 예언자들의 기초는 그의 어떤 것보다 값진 때문이다. 이 집 또는 도성이나 성전의 창문은 홍보석으로, 성문은 석류석으로 그리고 모든 지경(뜰을 싸는 담벼락이나 그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선)은 보석으로 만들어질 것이다(12절).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교회의 건립을 장담하시므로 우리는 매우 크고 비상한 건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2] 신약 교회의 영광은 유대 교회의 영광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외면적 화려함이나 웅대함뿐만 아니라 무한히 귀중한 성령의 은사와 은혜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것은 "진주보다 귀한" 지혜다(잠 3:15). 그 지혜는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보다 값비싸며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 (욥 28:16, 19).

[3] 이 세상의 부와 이 세상에서 극히 귀하게 평가되는 물건들도 진실하고 생명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초개 같은 것으로 무시될 것이다. 교회의 모든 참 신자들은 이 세상의 보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보기 때문에 세상 재물은 무가치하며 자랑할 게 못된다고 무시해 버린다. 세상의 자녀는 재물을 자기 곳간에 쌓으며 흔히 자기 마음속에 쌓아 두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이를 포도(鋪道)로 삼고 발 아래 둔다. 이것은 재물을 두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이다.

(2) 또 여기서 약속되는 것은 이들 보석이 곧 교회를 미화시키고 영예롭게 하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곧 지식과 성결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다. 이 사랑 안에서 인간은 창조되고 소생되고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 보석들은 복음 성전을 부요하게 하고 아름답게 만들 청옥과 홍보석과 석류석과 보석이다. 이 보석들은 복음 교리의 능력과 효능에 의해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기초 위에 세워질 금이나 은이나 보석" 으로 비유하고 있다(고전 3:12).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고 "네 모든 자녀가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때" (13절) 교회는 아주 영광스러울 것이다. 교회의 자녀들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교훈을 받을 것이다. 그는 그들을 자녀로 택하셨으므로 그들의 교육도 담당하실 것이다. 교회의 자녀가 많아지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1절). 그러나 자녀가 많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수가 많기 때문에 소홀하게 여기신다거나 세심한 교훈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떠맡으신다. "그들은 전부 다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분처럼 가르치지는 못한다. 그것은 우선 가르침의 수단에 관한 약속이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육 수단이 바로 하나님의 교육임을 공인하는 약속이다. "네 모든 자녀는 하나님의 교훈을 받을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선정하시는 자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수고는 하나님의 지도와 축복 하에 있게 될 것이다. 그는 교육 방법도 정하실 것이며 말씀과 성례로써 구약 교회보다 더 큰 빛을 발하실 것이다. 세대로부터 세대로 지식을 전달하고 극히 작은 자로부터 극히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가 그 지식으로 풍요해지도록 하기 위해 교회자녀의 교육을 위한 조치가 베풀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계몽해 준다는 성령의 약속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은혜의 복음을 언급하려고 이것을 인용하시며 인용한 그를 믿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의 성취를 보신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요 6:45). 구세주께서는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그로 말미암아 가르침을 받은" (엡 4:21) 자와 아버지 하나님께 듣고 배운 자만이 신앙으로 자기에게 나아올 것이라고 추정하신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은혜의 영이 풍성히 부어져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다(요 14:26).



[2] 교회의 지체가 사랑과 일치 속에서 살 때 교회는 아주 영화로울 것이다.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다. 평강은 온갖 좋은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지식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선한 것도 기대할 수 없듯이 그분을 알도록 하나님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형용할 수 있는 탄탄대로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주의 법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리라" (시 119:165). 그러나 주의 법은 종종 사랑과 일치를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서로 서로 사랑하도록" (살전 4:9)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그 가르침은 교회의 자녀들 간에 평화를 유지해 줄 것이며 그들의 불화를 방지해 줄 것이다.

[3] 성령이 다스릴 때 교회는 영화로울 것이다. "너는 의로 설 것이다" (14절). 풍습의 개혁, 청결의 회복, 사회 정의의 시행, 정직하고도 공평한 거래의 성립은 교회나 국가의 힘이며 안전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라 이러한 의와 평강과 거룩함과 사랑의 나라이다.

2. 지금은 교회가 위험에 처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보호와 안전이 될 것을 약속하신다.

(1) 전에는 교회가 밖에서 싸움이 있고 안에서는 공포에 떨어 고통의 날에 있었으나 이제는 싸움과 공포로부터 면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다.

[1] 안에는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너는 학대로부터 멀어질 것이다(14절). 너를 학대해 온 자들은 이사갈 것이며, 너를 학대하고자 하는 자들은 제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학대가 아주 멀리 있어서 전혀 위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도 좋다. 너는 공포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악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악의 두려움으로부터도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네게 해를 주거나 너를 공포에 몰아 넣을 정도로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대로부터 먼 자들은 공포로부터도 멀다는데 주목하자. 학정을 막을 담벼락은 없으며, 폭정에서 도피할 수도 없으므로 치리의 지팡이가 학대의 뱀으로 변한다는 것은 한 민족에게 대한 최대의 공포가 된다.

[2] 밖에는 싸움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들에게 대한 모욕이나 침입이나 포위 공격이 시도되더라도 그것은 모두 허사가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15절). "그들은 모여 틀림없이 너를 칠 것이다." 너는 그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 정도까지는 허용되고 있다. 음부와 땅의 연합세력이 공격을 새로 할 것이다. 지옥에 악마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따금씩 놀랄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 임무나 후원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합세하여 손에 손을 잡고 모이지만 그것은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 이다.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에게 탈취하며 노략하라" (사 10:6)고 하신 것 같은 명령을 이들에게 내리지 않으셨다.

둘째, 그들의 시도는 그들 자신의 패망으로 끝날 것이다.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그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강할지라도 그들은 좌절당할 뿐만 아니라 "너를 인하여 패망하거나 네 앞에서 엎드러질 것이다." 그것은 네게 대한 그들의 증오의 정당한 처벌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에 대한 사랑과 돌보심 때문에 교회의 대적들로 패망하게 하신다. 이것은 자기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이행이다.



(2) 우리는 최대의 확신을 가지고 교회의 안전을 하나님께 의존할 수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1] 교회의 원수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16절에서 역설되고 있다. 사실 그들은 위로부터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던 분은 그들을 제한시킬 수 있고 금지시킬 수 있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욥 38:11).

첫째, 그들은 전쟁 무기와 병기없이 계획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런 무기는 만드는 대장장이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는 그에게 철과 놋쇠를 부어 만드는 기술을 주셨고(출 31:3, 4) 특별히 전쟁 목적을 위한 기구의 제조술을 주셨다. 스스로는 빨리 죽지 못해 안달이 난듯이 온갖 재간과 노력을 다해 사망 기구와 살상 방법을 발견해내려는 인간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장인은 숯불을 분다" . 이것은 금속의 늘임성을 좋게 하고 보다 강한 쇠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는 "진멸하는 자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할 수 있다." 전쟁의 시대는 철기 시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인을 창조하셨다" (16절). 그러므로 장인의 손을 묶어 원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실 수 있다(무기와 탄약 부족으로). 아니면, 여기서 말하는 장인은 참모 회의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쟁의 숯불을 불어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을 짜는 전략 회의는 장인의 역할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이상의 일을 하진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시키신 것.

둘째, 그들은 병력없이 그 일을 수행하진 못한다. 그들은 군인들이 있어야만 한다. "파괴하면 진멸하는 자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16절). 무사나 군인들은 자신의 큰 임무와 근사한 계급 칭호를 자랑하며 심지어 일반 병사들조차 자신을 본관이나 귀관(원뜻:신사)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괴하는 진멸자" 라 부른다. 왜냐하면 진멸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군인으로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의 재간, 노력,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위험한 직업에 적합한 힘과 용기를 주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자신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2] 교회의 안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 (17절)이라고 엄숙히 제시되고 있다. 그들은 이 약속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장에서나 법정에서나 그들을 적대자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첫째, 무력과 폭력과 칼에 의해 그들을 파괴하려고 생각하는 적대자들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숯불을 부는 장인이 무기를 아무리 정교하게 제조했다고 하더라도(16절), 또한 파괴를 일삼는 진멸자가 아무리 무기를 솜씨있게 휘두른다고 해도] 날카롭지 못할 것이다. 그 무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만큼 강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표적을 빗나갈 것이며 사용자의 손에서 아니면 너를 치려고 그 기계를 사용하는 자의 얼굴로 되퉁겨질 것이다." 교회를 치려고 제조된 어떤 기계도 오랫동안 날카롭지는 못할 것이며 이것은 교회의 복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대적하는자의 어리석음은 마침내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파멸을 위한 기구들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와 정의를 표방하면서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생각하는 법적 적대자들로 부터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전쟁의 무기가 날카롭지 못할 때 판단하려고 일어나는 혀가 있다. 이 양자는 교회의 파괴를 위해 노력하는 부류로 음부의 권세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옥의 문 안에(권세와 동의어) 무기고와 군수품 창고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를 빙자한 법정도 개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심판하려고 일어나는 혀는 곧 교회의 자녀가 합법적 포로이기라도 한양 교회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하며 양심을 압세할 권세가 있노라고 주장하는 자를 말한다. 또는 교회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란 교회를 그릇되게 묘사하고 무고하며 중상 모략과 허위 증거로 교회를 백성이나 통치자에게 보기 싫은 존재로 만들기에 혈안이 된자를 말한다. 유대인의 적들은 이 일을 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페르샤 왕들을 격동시켜 유대인을 대적하게 했다(스 4:12; 에 3:8). 그러나 너는 이런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혀를 정죄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네게 그들의 무례한 요구에 답변할 수 있는 자료를 주리라. 나는 네게 그들의 사악한 비난을 침묵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리라. 너는 "선행으로" 이 일을 할지니라(벧전 2:15). 네 대적의 양심에도 네가 그들의 주장과 다른 자라는 것이 밝히 드러날 일로 그들의 입을 막으라. "그들은 네게 정죄를 당하리라" . 즉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그들을 정죄하시리라. 그는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리라" (시 37:6). 너는 노아가 옛 세상을 정죄했던 것처럼 그들을 정죄하게 되리라. 노아는 자기에게 대한 경멸을 무시하면서 방주를 지음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고 따라서 정죄자들이 오히려 정죄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들을 인하여 사악한 자들과 셈하실 날이 임박할 것이다(유 15).

마지막 구절은 이 약속에 대해 언급할 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한 모든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 종들의 기업이다" (17절). 하나님의 종들은 그의 아들들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에게 부유하고 취소할 수 없고 확실한 유산을 부여하신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영원한 기업들이다" (시 119:111).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의를 분명히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그와 함께 있다. 이는 그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와 함께 있다. 이는 그가 그것을 변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의 의에 대한 보답과 그들이 의롭지 못하게 겪어왔던 모든 것에 대한 보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진실로 의로운 자에게 갚아 주시는 분이다(시 58:11). 또는 그들의 자체와 그들 안에 있는 선하고 바른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서 그 의를 이루신다. 그들의 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다. 그들의 의는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는 나중 유산을 남길려고 계획하시는 자들에게서 의를 이루어 주실 것이다.

 

54:12 없음.

 

54:13 없음.

 

54:1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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