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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정의의 통치 (이사야 32:1-8)

우리는 여기에서 번영하는 왕국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왕들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각자의 본분에 충실할 때, 그 땅은 복되도다." 이 대목은 장관들과 신하 모두에게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말해 주는 훈령집이었을 것이다. 또는 히스기야에 대한 찬사의 글일 것이다. 히스기야는 훌륭히 다스렸고, 자기의 선한 통치가 가져올 행복한 결과를 어느 정도 내다보았다. 그리고 이 대목은 그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히스기야의 통치하에서 누릴 행복과 그 때를 선용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고를 명확하게 깨닫게 하려는 것이요, 그것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 나라가 들여올 개혁의 시대를 기다리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교회를 안위하기 위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약속되어 있고 묘사되어 있다.

Ⅰ. 장관들은 각자의 직책에서 자기의 의무를 행할 것이며, 권세를 지닌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제정하신 그 큰 목적에 응해야 한다(1, 2절).

1. 즉위하여 다스릴 한 왕과 방백들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만사가 잘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방백들에게는 주권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군주인 왕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왕을 통해서 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왕에게는 관원으로서 그의 아래 있는 방백들이 있어야 한다. 그는 그들을 통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벧전 2:13, 14).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직책을 알고 완수할 것이다. 왕은 통치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당한 특권을 조금도 감소시킴이 없이, 그 방백들은 보다 낮은 영역에서 그리고 모든 것을 공적인 유익을 위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2. 그들은 율법대로, 그리고 그것을 거역함이 없이 자기들의 권세를 사용할 것이다. 그들은 의와 공평으로, 지혜와 공의로 선한자를 보호하고 악한 자를 벌하면서 통치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왕들과 방백들이 공의를 선포하는 당신에 의해서 그들이 통치하신다고 인정하신다(잠 8:15).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그러한 왕이요 방백이시다. 그는 법규대로 통치하신다. 그리고 "그는 공의로 세상을 판단하실 것이다" (9:7; 11:4).

3. 이처럼, 그들은 그 백성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그 사람", 곧 의로 통치하는 그 왕은 "피하는 곳 같을 것이다" (2절). 방백들이 그들의 도리를 다하게 될 때, 백성들은 방백들이 원하는 대로 행할 것이다.

(1) 그들은 많은 재앙에서 보호될 것이다. 이 선한 재판장은 그 신하들에게는 피해와 폭력이 폭우를 막아 주는 가리게가 될 것이다. 그는 "가난한 자와 고아를 보호하여," 그들이 강자의 희생이 되지 않게 한다. 압제당하는 무죄한 자는 중상 모략을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면, 그 재판장을 피난처로 생각하여 그에게 가지않고 누구에게로 가겠는가? 그에게 그것을 탄원하여, 그에 의해 시정된다.

(2) 그들은 많은 축복으로 새롭게 되며 안위함을 얻는다. 이 선한 재판장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칭찬할 만한 일들을 장려하기 때문에, 그는 땅을 시원하게 하고, 소중하게 하는 "마른땅에 냇물 같으며," 불쌍한 나그네에게는 "곤비한 땅에" 내려 쪼이는 태양열로부터 피할 곳을 제공해 주는 "큰 바위 그늘 같다." 멸시와 반박을 받는 중에도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는 선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자기들이 결국은 어떤 선한 재판장에 의해 지지받고 인정을 얻으며, 자기 일에 대한 찬성을 얻는다면, 그것은 큰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의 나라 충성된 백성에게 그러하며, 특히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그러하다. 최대의 재앙, 곧 광풍뿐만 아니라 폭우가 우리에게 미쳤을 때, 곧 죄책과 진노의 폭풍이 밀어닥쳐 우리를 괴롭힐 때도, 우리는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께로 가게되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안전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의에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냇물을 발견하며, 곤고한 영혼이 바랄 수 있는 원기 회복과 위로를 찾게 되며, 태양이나 비가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나무 그늘이 아니라 나그네가 피할 수 있도록 넓게 마련되어 있는 바위 그늘을 발견한다.

혹자는 여기에서 이러한 사실을 지적한다. 즉 피하는 곳과 가리우는 곳, 그리고 바위 자신이 광풍과 폭우의 강타를 받아들여, 그 속에 피난처를 마련하고 있는 자들을 그 강타로부터 구원해 주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손수 폭풍을 담당하시어 우리를 그 폭풍에서 안전케 하신다는 사실이다.

Ⅱ. 신하들은 각자의 직책에서 자기의 의무를 행하게 될 것이다.

1. 그들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아 사태를 올바로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상관들과 스승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리의 빛과 능력에 복종할 것이다(3절). 이 복된 개혁 사업이 착수되어 사람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다하면, 하나님도 자기의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실 것이다. 그 때에 "보는 자의 눈" 이 곧 예언자들, 선견자들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상(異像)으로 축복하시어, 그들을 통해 백성들과 교통하실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읽는 자들은 더 이상 그 마음을 베일로 가리지 않고 사물들을 명료하게 볼 것이다. 또한 그 때에는 전파된 말씀을 "듣는 자의 귀가" 열심히 "기울여지고," 그들이 들은 것을 쾌히 받을 것이며, 이전처럼 듣는 일에 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특히 복음의 은총에 의해 되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듣는 자와 보는 눈을 만드셨고," 새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2. 그들은 배움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리라(4절).

(1) 그들은 총명한 머리를 갖게 되어서, 서로 다른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분별력을 갖게 되리라. 성급하고 "조급하여" 사물을 소화하고 심사숙고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자의 마음이" 이제 그 경솔함을 치료받게 될 것이며, "지식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총명을 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모든 백성을 위해 자기가 행하시고자 하는 일의 본보기로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지각을 주심으로써(요일 5:20)이 복된 일을 역사하셨다(눅 24:45). 선한 방백들의 경건한 의도는 신하들이 사물을 바르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도록 그들에게 심사숙고할 자유를 허용할 때 효과를 거둘 것이다.



(2) 그들은 민첩한 발표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말할 때마다 머뭇거리곤 했던 "어눌한 자의 혀" 가 이제 자기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믿는 것을 이해하고 믿기 때문에 말하는 자들처럼,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들에 관한 명확하고 뚜렷하며 체계적인 지식이 크게 증대할 것이므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자들이 그런 일들에 대해 총명하게 말하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교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이 선한 일들로 가득 차 있으므로, 그들의 혀는 "필객의 붓과 같이" 될 것이다(시 45:1).

3. 선과 악, 유덕과 비행에 대한 구별이 세워질 것이며, 빛을 어두움이라 하고 어두움을 빛이라 하는 자들 때문에 더 이상 혼돈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리라" (5절).

(1) 악한 자들이 더 이상 권좌에 등용되지 않을 것이다. 왕이 정의로 통치한다면, 그는 성품이 나쁜 자와 비열하고 인색한 마음을 가진 자, 그리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권리 침해나 피해도 행하려는 자들을 존귀와 권세의 자리에 앉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안티오커스를 그렇게 칭하는 것처럼, 단 11:21) "비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출세할 때는 "존귀하고 정대하다" 고 칭하여진다. 또 그들은 "은인" 이라고 칭함을 받는다(눅 22:25).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지혜로와질 때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의 공로대로 발탁될 것이며, 영예(이것은 미련한 자에게 결코 적당하지 아니하다. 잠 26:1)는 더 이상 그러한 자에게 부여되지 않을 것이다.

(2) 악한 자들이 다시는 백성들 중에서 명성을 얻지 못할 것이며, 악덕이 덕으로 가장되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나발을 보고 (문자 그대로) "너는 나딥이라" 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발처럼 탐욕스러운 구두쇠, 돈밖에 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는 신사 또는 방백이란 칭호로써 칭송을 받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자들,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할 줄 모르고 세상의 무익한 짐에 불과한 자들, 즉 "궤휼한 자를 내 주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에 대해 (문자가 뜻하는 것처럼) "그는 부자라" 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선한 행위에 풍족한 자들만이 부유한 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풍부하게 지닌 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잘 사용하는 자들이 부자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재물이나 그들의 명예로운 직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덕과 유용함과 인류에 대한 선행에 의해 평가될 때, 그 백성들은 복되다.

이런 일이 히스기야 통치 때에 이루어졌는지, 또 얼마만큼 그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우리는 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그 가진 것에 의해 판단되거나 어떤 사람의 성품이 잘못 평가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방백과 백성들에 대한 우수한 법칙, 즉 사람들을 그들의 공적에 따라 존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법칙을 시행하기 위해서, 여기에 인색한 자와 관대한 자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우리는 그들 사이의 매우 거대한 차이점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관대한 자에게만 주어야 할 존경을 인색하고 궤휼한 자에게 준다면, 우리 자신을 아주 잊어버리는 것이다.



[1] 어리석은 자와 궤휼한 자는 죄악을 행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자가 등용되어, 권세를 잡게 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의 높은 지위는 그들을 보다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쁘게 만들 것이다(6, 7절). 비열하고 나쁜 사람들의 성품을 보자.

첫째, 그들은 항상 불의한 것을 계획하며, 개인이나 민중을 해할 뜻을 품으며, 그런 일을 행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들은 충족해야 할 많은 어리석은 불만과 비천한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일말의 관대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은 계속 어떤 불의한 일을 하고 있다. 손의 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일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생각이 하나님께는 말이듯, 마음에 품은 계획은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일(works)이다. 죄인들이 죄를 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를 기울이는가 보라. 그들은 애써 죄를 짓는다. 즉 그들의 마음이 거기에 골몰하며, 큰 기술과 열심을 가지고 "불의를 행한다." 그들은 옛뱀이 가졌던 온갖 간교를 동원하고 심사숙고 - 이것은 죄를 더욱 심화시킨다 - 하여 "악한 계획을 베푼다." 죄 속에 계획과 술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에는 사탄에게 속한 것이 더욱 많다.

둘째, 그들은 계교와 위장으로 그 음모를 수행한다. 그들은 불의를 꾀하는 동안, "간사(위선)를 행하며," 스스로 의인인 체한다(눅 20:20). 가장 가증스러운 위해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사람에 대한 참작, 그리고 어떤 공통 선이라는 가장 그럴듯한 구실로 위장될 것이다. 정당한(아름다움) 말을 하면서, 가장 큰 악을 꾀하는 자들이 가장 악랄한 인간이다.

세째, 그들은 "어리석은 것을 말한다." 그런 자들은 격분한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이 존귀한 직책에 있는 자답지 않게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천하고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의 본성을 알게 된다. 또는 판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정의를 왜곡하여 사실을 고약하게 위장한다.

네째, 그들은 하나님을 모욕한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으로서 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그 속에서 불경스러운 짓을 행한다. 우리(KJV)가 "위선" (한글:" 간사")으로 번역한 그 단어가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부당하게 형을 언도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비준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사용한다. 마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신 1:17), 그 거짓되고 부당한 재판도 그의 것인 것처럼 행한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위해 진리와 정의를 말한다는 구실 아래,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 는 짓이다. 악을 장려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뻔뻔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는 없다.

다섯째, 그들은 인간을 학대하며, 특히 자기들이 보호하고 구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그렇게 한다.

1. 가난한 자의 궁핍함을 채워 주는 대신에, 그들을 빈곤하게 만들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한다." 주린 자들이 가진 양식을 빼앗거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를 거부 - 이것은 전자 못지 않은 죄악이다 - 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한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더 긴급한 때에 늘 해오던 구제책을 끊어버린다.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탈취하는 자들은 정말로 궤휼한 사람들이다.

2. 가련한 자들이 그들의 판단에 호소할 때에 그 가련한 자들의 권리를 찾아 주는 대신에, 그들은 가려한 자들을 멸하며 그들이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부유한 자에게 호의를 보이는 거짓된 말을 함으로써, 법정에서 그들을 파멸시키려 한다. 그렇다. 비록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비록 그들의 주장의 공명정대함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무리 가득할지라도, 그들을 주관하는 것은 뇌물이지 정의가 아니다.

여섯째, 이 인색하고 비열한 사람들은 그들의 고약한 목적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는 악한 도구들을 항상 그 주위에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이 모두 악하다" 고 했다. 불의한 일을 수행하는 연장으로 사용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계획보다 더 뚜렷한 불의를 지니고 있는 계획은 없다.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다. 따라서 그 외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이상의 위해를 행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위해 준다.



[2] 진실로 관대한, 그리고 그렇게 칭함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는 그의 본분에 따라 각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는다(8절). 다음 사실을 주시하자.

첫째, 그는 선을 행하려고 관심을 기울이며, 계획을 고안해 낸다. 그는 "고명한(liberal) 일을 도모한다." 인색한 자나 구두쇠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가진 것을 저축하고 쌓아두는 방법을 설계하듯이,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사용하고 내어 주는 방법을 애써 설계한다. 자선은 지혜로써 행해져야 하며, 관용을 베푸는 일은 신중하고 계획하에 행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선한 의도가 응답될 수 있도록 즉 잘못된 자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대한(liberal) 자는, 그의 능력이 미치는 관대한 일들을 다 행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능력에 따라 관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꾀한다.

둘째, 그는 선을 행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취하며 유익을 얻는다. "그는 항상 고명한(관대한) 일에 의해서 서리라." 또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확고한 번영과 견고한 명성을 그의 관대함에 대한 보상으로 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가슴속에 만족감과 견고한 평안을 풍성히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그를 어지럽히지는 못할 것이다. 즉 그의 마음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자선에 대한 보답이다(시 112:5, 6).

혹자는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방백 곧 영예로운 자는 영예로운 행위를 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예로운 곧 정직한 행위에 의해서 그가 서리라. 즉 세워질 것이다." 한 나라의 영예로운 자가 사실상 비열한 일을 멸시하는 존경할 만한 자일 때, 또 그 왕이 이처럼 숭고한 자의 아들일 때, 그 나라는 잘 되어 간다.

 

32:2 없음.

 

32:3 없음.

 

32:4 없음.

 

32:5 없음.

 

32: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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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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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망 (이사야 32:9-20)

이 대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열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즉 그들의 악행을 벌하시기 위해 일어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관대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의 관대함에 대해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행실이 크게 부패하여 거룩한 하나님을 격동시키는 일이 많을 때는, 곤경의 시대가 올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그러한 시대가 임할 것이 경고되어 있다. 그 경종은 "안일한 부녀" (9절)와 "염려없는 딸들" 에게 울려지고 있다. 그들의 교만과 허영과 사치를 채워 주기 위해 그들의 남편과 아비들은 가난한 자들을 굶어죽게 만드는 시험에 걸렸다. 그들로 하여금 그 예언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하라. "일어나라. 그리고 정중하고 주의깊게 들을지어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이 "연락(宴樂)하고 방랑하던" 땅에 큰 황폐를 가져오는 심판을 내리려 하신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라. 이것은 산헤립이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포위하고 있으면서, 그의 군대가 황폐케 만든 일을 주로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러 날, 여러 해" (KJV)라는 말은(난외의 해석대로) "일 년 남짓" (한글 성경은 이것을 채택) 으로, 즉 이 황폐함이 한 해 이상 지속되리라는 것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앗수르 군대가 유다 땅으로 처음 들어 왔을 때부터 패배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기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거기에다 행복을 거는 자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그 비참한 실망을 말한다고 할 수도 있다. "너희 염려없는 여자들아, 너희가 당황하게 되리라." 우리가 편안할 때 근심을 떨쳐버린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환난에서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염려없이 살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작은 고통도 큰 괴로움을 줄 것이며, 그들을 크게 압박할 것이다.

그들은 충분한 돈과 쾌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일했고 염려 없었다. 그러나 그 예언자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1) 그들에게 소작료를 주며 산해진미를 대어 주던 그 나라가 멀지않아 황포케 될 것이다. "포도 수확이 없어지리라. 그러면 너희가 어떻게 포도주를 즐기겠느냐?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왜냐하면, 거두어 들일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수확물이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0절). 너희는 티이츠(teats), 곧 젖소에게서 나온 좋은 우유(한글 성경에는 없음)와 좋은 밭과 그 소산물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밭은 좋은 밭이다. "너희는 열매 많은 포도나무와 그것에서 나온 포도가 부족하게 될 것이다." 많이 있는 것을 남용한 것에 대해서는 기근으로 벌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생활의 필수품을 정욕의 식량과 연료를 삼고 바알을 위해 그 필수품을 준비하던 자들은 그것을 빼앗기는 것이 마땅하다.

(2) 그들이 편히 살며, 소작료를 쓰며, 맛있는 것으로 즐기던 성읍들, 곧 유다의 성읍들도 황폐케 될 것이다(13, 14절). "찔레나무와 가시나무" 곧 죄와 저주의 열매가 "내 백성의 땅에 올라와서" 그 땅은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 두게 될 뿐만 아니라,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 - 극장, 오락장, 술집 - 에도 "날 것이다." 왜국 군대가 그 나라를 약탈했을 때, 기뻐하던 집은 의심할 바 없이 애곡하는 집이 되었을 것이다. 그 때에 궁전 또는 귀족들의 집은 주인이 애굽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버림받은 집들이 되었다. 그 성읍의 지도자들은 그 성민들이 각기 자기 목숨을 위해 급히 도망가도록 방치했다. 그 때에 강함과 웅장함에 있어서 산과 망대 같았던 그 위풍당당한 집들은 "영영히 굴혈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버림 받을 것이다. 그 주인은 결코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그것을 여리고, 곧 저주받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가 회복될 때에도 그것은 중건되지 않고 황폐한 채로 버려질 것이다. 그래서 "들나귀들이 즐겨하는 곳과 양떼가 풀먹는 곳이 되리라." 이와 같이, 많은 집들이 죄로 인해 파멸된다. Jam seges est ubi Troja fuit - 즉 곡식이 토로이의 유적에서 자란다.

2. 이런 광경을 생각하여 그들로 하여금 "떨고 옷을 벗고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라(11절). 이 말씀은, 그 재난이 오면, 그들이 이처럼 공포에 떨게 되고, 스스로 옷을 벗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나아가 그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옷을 벗겨 알몸이 되게 하리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 환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스스로를 겸비케 하는 것이며, 진실된 자책과 경건한 슬픔으로 하나님 앞에 티끌 가운데 앉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평온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이것이 심판을 행하시는 중에 있는 하나님을 만남이요, 우리 자신의 잘못을 고침으로써 징계를 모면하는 길이다. 구부리려 하지 않는 자들만이 꺾여질 것이다.

(2) 환난에 대한 최선의 준비는 자기들 자신을 부인하고, 참회의 삶을 살며 모든 육적인 즐거움을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거룩히 경멸하면서 이미 자기들 자신을 벗긴 자들은, 환난과 사망이 올 때도 벗김을 당하는 것을 잘 견디어낼 수 있다.

Ⅱ. 자기의 순전함을 지키는 남은 자가 아직도 있을 동안은, 마침내 좋은 시대가 오리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이사야가 즐겁게 전망하고 있는 그러한 때가 오리라는 것을 능히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때를 그들은 히스기야 통치 말기에 보았다. 그러나 그 예언은 보다 멀리 메시야의 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메시야는 "의의 왕" 이며, "평강의 왕" 이다. 모든 예언자들은 그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이 축복된 시대가 어떻게 도입될 것인가? "위에서부터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온다(15절).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주실 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좋은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심은," 누가복음 11장 13절과 마태복음 7장 11절과의 비교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사실상 그들에게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시는 것이다.

" 성령이 그들 위에 부어지리라" 는 사실, 곧 교회가 황폐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 필요성에 맞게, 이전보다도 더욱 풍성히 은혜의 성령이 쏟아지리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이것은 위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것을 위해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를 우러러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 은총을 내리고자 할 때는, 그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은총을 받을 준비를 하게 하시며, 그가 그의 은총의 도구로써 쓰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자격을 부여해 주시고 성공을 허락하신다. 왜냐하면 교회의 황폐함을 복구하려는 자들의 노력은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지기까지는" 모두 허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는 그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메시야의 나라는 성령이 부어졌을 때 임하였고 세워졌다(행 2장). 그리하여 그것은 지금도 존속되고 있으며, 세상 끝까지 존속될 것이다.

2. 그 복된 시대에는 얼마나 놀랍고 행복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메마른 불모의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우리가 지금 "아름다운 밭" 으로 간주하는 것도 그 때에 되어질 일과 비교해 볼 때 "삼림으로 여겨지게 되리라." "그 때 땅이 그 소산을 낼 것이다." 메시야의 날에는 "땅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리라" 고 했다(시 72:16).

혹자는 이 사실을, 이방인이 복음의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 사실은 광야를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었다)과 유대인의 거부와 배제(이 사실은 아름다운 밭을 살림으로 만들었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방인들 위에는 생명의 영이 부어졌으나, 유대인들 위에는 잠의 영이 부어졌다.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진 증거와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라. 성령이 부어지면, 그 사람(영혼)은 열매가 풍성하게 되며,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된다.

다음 세 가지가 이 시대를 행복하게 한다.



(1) 공평과 의이다(16절). 성령이 땅에 부어질 때,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그 광야를 아름다운 밭이 되게 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어" 그 밭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다. 사역자들은 율법을 설명하고, 재판장들은 그 율법을 집행할 것이며, 이들은 모두 매우 현명하고 충성되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악한 자들은 선하게 되고 선한 자들은 더 선하게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백성들, 즉 가난하고 천하며 무식하여 광야처럼 무시당하는 자들과, 부유하고 훌륭하고 유식하며 아름다운 밭처럼 존경받는 자들에게 다같이 사물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훌륭한 령명의 원칙과 선과 악, 죄와 의무에 대한 자각이 있을 것이다. 또는 그 나라 모든 지역, 즉 평원과 울타리를 한 땅, 시골과 도시, 좀더 거친 지역과 보다 더 경작되고 개량된 지역, 어디서나 정의가 잘 집행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가 그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공평이나 법칙을 들여왔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가 그것에 의해 구원받아야 하는 의를 들여왔다. 그리고 성령이 부어지는 곳은 어디든지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으며, 영원한 의로서 남는다.

(2) 평화와 평안이다(17, 18절). 여기에서 약속되어 있는 평화는 두 종류의 것이다.

[1] 내적인 평화(17절). 이것은 의가 내재할 때 따라온다(16절). 의의 일이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자들은 이 복된 결과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의 그 자체가 평화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 이다. 즉 마음의 거룩한 평정과 안심이다. 그것으로써 그 영혼은 스스로를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방해할 권세는 이 세상에 없다.

평화와 평안, 그리고 영원한 안전은 의의 길과 일(작용)에서 기대될 수 있으며 발견되게 마련이란 것을 명심하자. 참된 만족은 오직 참된 신앙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거기서는 반드시 얻을 수 있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정직) 중에" 사는 생활은 고요하고 평안하다(딤전 2:2).

첫째, "의의 역사(공효)는 평화이다." 우리의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서, 풍성한 참 기쁨 즉, 순종이 가져다 주는 커다란 현세적 보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비록 의의 역사(役事)가 고생스럽고 값비싼 것일지라도, 또 우리로 멸시받게 할지라도, 그것은 평화이다. 우리의 책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는 평화이다.

둘째, "의의 결과는 평안과 안전이다." 우리 시대의 끝까지 그러할 뿐만 아니라, 영원의 끝없는 세대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참된 성결은 현재에도 참된 행복이며, 앞으로도 완전히 행복 즉 영원히 완전한 성결이 될 것이다.



[2] 외적인 평화이다(18절).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조용하고 평안한 심령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거처(종용해 쉬는 곳)에 거하게" 되고, 집에서나 예배 중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큰 긍휼이다. 산헤립의 침입에 대한 두려움이 끝나면, 그 백성들은 의심할 것도 없이, 전쟁의 경보로 소란스럽게 되지 않는 조용한 거처가 주는 긍휼을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깨달았을 것이다. 각 가정으로 하여금 집안에서 둘이 셋을 대적하고 셋이 둘을 대적하는 분쟁과 싸움이 없이 조용하게 지내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자.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의 보호에 맡겨 안전하게 하고, 외부로부터 오는 "악의 두려움이 없이 조용" 하게 하자.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처소가 될 것이다. 33장 20절과 비교해 보라. 바람받이에 있는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그 위에 격하게 부딪히는 폭풍이 임하게 될 때도, 예루살렘은 "조용히 쉬는 곳" 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읍은 낮은 곳에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바람보다 낮은 곳에 있어서(높이 서있는 성읍들처럼) 노한 광풍을 맞지 않고, "예루살렘을 두른 산들" 에 의해(시 125:2) 보호받는 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 "산과 망대가 무너지나" (14절) 낮은 곳에 있는 성읍들은 조용히 쉬는 곳이 될 것이다. 겸손하며 낮은 데 처하기를 즐겨하는 자들은 매우 안전하며 매우 편안히 거할 수 있다(19절). 화평한 집에 거하려는 자들은 낮게 그리고 낮은 곳에 거하기를 즐겨야 한다.

혹자는 애굽 땅을 크게 황폐케 만들었던 우박의 재앙을 고센 땅이 피한 것에 대한 암시가 여기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3) 풍성함과 풍족함이 그 시대를 행복하게 한다. 각처에서 매년 매우 좋은 곡식이 모아질 것이므로,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농부들, 곧 씨 뿌리기에 적당한 모든 땅에 씨를 뿌리는 자요," "그 식물" 또는 곡물을 "물위에 던지는" (전 11:1) 농부들이 칭찬을 받을 것이며, 행복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나님이 수확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따라서 농부들은 부지런해야 하고 자기들의 일에 전념해야 하며,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농부가 그렇게만 한다면 곡식은 매우 무성하고 울창하게 자랄 것이므로, 그는 가축, 즉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몰아 그 윗부분은 먹게 하여 곡식을 억제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1] 말씀의 전파를 뜻한다. 혹자는 그것을 농부처럼 그들의 씨를 뿌리러 나가는(마 13:3) 사도들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도들은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렸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물은 백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촉촉하게 되고 말씀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어느곳에서든지 그들은 그 좋은 씨를 뿌렸다. 또 한편으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못하게 되었었는데(신 22:10),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제 그 구별은 제거될 것이며, 소와 나귀, 곧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복음 경작의 일에 종사하게 되고 그 이득을 즐기게 될 것이다.

[2] 자선 사업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행복한 때를 보내실 때,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그 소유를 향상시키는 자들, 즉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자들, 곤궁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들, 그들에게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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