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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유다의 어리석은 신뢰 (이사야 30:1-7)

유다 백성들은 이쪽 이웃 나라에 의해 공격당하면 - 하나님을 쳐다보고 그를 의지하는 대신에 - 저쪽 이웃 나라의 원조를 구하는 과오와 어리석음을 자주 범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아람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왕하 16:7). 앗수르 사람들을 치기 위해서는 애굽의 도움을 구했다. 그래서 랍사게는 그렇게 하는 그들을 꾸짖었다(왕하 13:21).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이러한 그들의 죄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 속에 있는 무엇이 하나님을 격노케 했는가를 보자.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위험과 환난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도,

1. 하나님께 의논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림이나 예언자들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미 준비되어 있는 확실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자신의 머리로 일을 하려 했다. 하나님께 상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방법의 신중성을 매우 신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는 것을 필요없는 일로 생각했다. 아니, 그들은 신탁과 그런 문제를 연관짓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이 그들 중에서 그리고 서로 계교를 베푸나, 내가 상의를 구하지 않고 있으며 더군다나 내 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맹약을 맺으나(그들은 폭풍의 격렬함을 막아 줄 수 있는 어떤 피난처로 도피하려 한다) 나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한다(하나님 즉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으로, 곧 자기의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들에게 지시하신 대로 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너무 작은 덮개이며, 거짓 피난처임이 드러날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신임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 편으로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친구로 삼으려고 전심을 기울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해지려 하였다. 그들은 바로를 유력한 맹우로 생각했고, 그들이 그를 그들의 편으로 가지고 있는 한, 앗수르 사람들에게 대항할 능력이 있다는 것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애굽의 그늘(그것은 그늘에 불과했다)이 그들이 자신을 감싸고 있던 겉옷이었다.

Ⅱ. 이 죄가 준 재앙은 무엇이었는가?

1. 그것은 그들이 "패역한 자식들" 임을 말해 주게 되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그러한 자들에게 "화" 가 통고되어 있다(1절). 그들은 신앙 고백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땅히 패역한(배신한) 자들로 낙인이 찍혔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한다면, 그것은 실상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죄에 죄를 더했다. 그들을 환난으로 내몬 것은 죄였다. 그러자 그들은 회개하기는 커녕,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다" (대하 28:22).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정욕을 불태우는 연료로 악용했던 자들은, 또한 그들의 곤고를, 하나님을 불신하는 핑계로 삼음으로써 그 곤고함을 악용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욱 나쁘게 되었고 죄에 죄를 더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슬을 스스로 무겁게 만들듯 그렇게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재난을 더 두려운 것으로 만드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죄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1) 그들은 애굽 사람들을 맹우로 만들기 위해 지나친 수고를 기울였다.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고 했다. 그곳으로 가는 편한 길을 발견하기 위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하나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허락하시고 찬성하시는지를 결코 고려하지 않았다.

(2) 그들은 그 일에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16절). 그들은 그들의 보화를 "남방 짐승" (유다의 남방에 있는 애굽에서 가져온 말)에다 실었다. 겁에 질린 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들은 자기들의 어느 지역보다도 그 짐승의 등이 더욱 안전하리라고 꿈꾸었던 것이다. 또는, 그들은 바로의 조신들에 대한 뇌물이나 그들의 군대에 대한 보수를 위해 그들에게 재물을 보내어, 그들과 인연을 맺으려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값없이" 도우시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은 그것에 대한 댓가를 단단히 치루어야 했고,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소비된 재물은 나쁜 결과로 보응되리라.

그들은 위험하고 곤고한 땅, 가나안과 애굽 사이에 있는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는" (신 8:15) 땅을 지나 애굽으로 그들의 물건을 운반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애굽으로 가져가기 위해 그 위험한 광야를 지나는 모험을 하려했다. 또는 그 말은 애굽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속박의 집이었으므로 위험하고 곤고한 땅이었고, 거기에는 굶주리고 있는 해로운 짐승들이 많았다. 하나님을 버린 자가 어떤 위험에 빠지는가 보라. 그리고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고 피조물에게 기대를 거는 그들이 어떠한 위험에 빠질 것인가를 보라.

Ⅲ.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1. 애굽 사람들은 그들의 사신을 영접할 것이며 매우 존경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걸고 기꺼이 그들을 대우하려 할 것이다(4절). "그 방백들이 소안" - 거기에 있는 바로 궁에 - "있고," 거기에 그 왕의 접견을 받았다. 그리고 그 왕은 그의 우정과 그가 그들에게 보내려하는 원조를 의지하라고 그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2. 그들은 그들의 기대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했다" 고 했다(5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은 유다 족속에게 무익하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6절). 그리고 각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로 그대로 우리에게 관계한다.

애굽인들이 그들에게 지원해 주기로 했던 군대는 알맞는 시기에 징집될 수 없었다. 또 그들이 소집되었을 때에는, 맡은 일을 하기에 적합치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원정에 있어서 감히 주력 부대가 되려하지 않았다. 또는 그 행군이 매우 길었으므로, 적시에 올라올 수 없었다. 또는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성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고, 어떤 이유를 붙여 앗수르 사람들 쪽으로 은밀히 기울어졌을 것이다.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7절). 그들이 유다 사람을 돕기는커녕 방해하고 해칠 것이다.

3. 그러므로 애굽 사람들은 매우 좋아한 이 백성들은 드디어 그들과 그들에게 기대했던 희망, 신뢰했던 사실을 온통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3절). "너희의 자랑이었던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될 것이다. 너희 모든 이웃이 애굽을 의지한 너희의 어리석음을 비난할 것이며, 너희도 스스로를 책망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의지했던 그 애굽의 그늘, 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18:1)이 너희의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너희를 실망시키고 너희를 수치스럽게 만들뿐만 아니라, 너희의 모든 원조까지 약화시킬 것이며, 너희에게 재앙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 후에 하나님은 바로 이 일로 하여금 애굽을 멸망시키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애굽은 이스라엘을 불순하게 대했고, 그들에게 "갈대 지팡이가" 되었기 때문이다(겔 29:6, 7). 애굽과 동맹을 맺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사신들은 애굽에 가서는, 그들의 쇠잔한 모습, 아니 오히려 그들의 비열함을 많이 목격하고는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고 오직 수치와 치욕이 될 뿐인 민족을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5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 그의 능력과 섭리와 약속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코 그들의 소망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을 의뢰하는 자들은 조만간에 그것이 자기들에게 치욕이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참되시며 의지할 수 있는 분이시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며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창조주는 만세반석이나 피조물은 상한 갈대이다. 우리가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너무 많은 반면에,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적다.

Ⅳ. 이 모든 일의 유용성과 의미를 보자(7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 곧 그들의 이 계획에 관하여 외쳤느니라(한글 개역과는 다름). 내가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포했노라. 나는 간곡히 그것을 강조했노라. 그들의 힘은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고(한글 개역과 다름) 즉 그들의 힘은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겸손히 의지하고, 그의 뜻에 완전히 좌우된다. 너희는 큰 환란을 당하여도 방황하거나 어떤 피조물로부터 도움을 구하려 하지 말라."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조용히 기다리면서, 또 우리의 보존을 위해 오직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환난의 날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그것이 곧 봉사와 고난을 위한 우리 영혼에 힘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힘을 약속할 것이다. 우리가 육체로 무기를 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약화시키며 하나님을 격동시켜 우리에게서 떠나시도록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께로부터 떠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조물들에게 도움을 구하기에 지쳤을 때에도, 창조주를 의뢰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그가 원하는 대로 내게 행하게 하소서."

 

30:2 없음.

 

30:3 없음.

 

30: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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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없음.

 

30:7 없음.

 

30:8

구하기 어려운 죄인의 운명 (이사야 30:8-17)

Ⅰ. 여기에 나와있는 서문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그 예언자는 이것을 선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록해야 한다. 그것을 "서판(書板)에 기록하여" 대중이 볼 수 있도록 걸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중하게 "책에 써야" 한다. 잃어버리거나 찢어질 수 있는 얇은 종이가 아니고 이 악한 세대에 대한 in perpetuam rei memoriam - 즉 영구적인 증거로서 후손을 위해 보존될 수 있는 책에 써야 한다. 다음에 계승되는 그 세대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그것이 남아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책은 의심할 바 없이 시간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책은 의심할 바 없이 시간 끝까지 지속될 것이며 읽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록되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그 말씀이 전해질 때 주의하여 들으려하지 않는 현 시대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하자. 그들은 읽으려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자손들은 그것으로 유익을 얻을지도 모른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시려는 심판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백성들은 그들이 얼마나 나쁜가를, 얼마나 하나님을 격노시키는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극단적인 방법을 쓰시기 전에도 그들을 얼마나 공정한 방법으로 시험하셨는가를 알지 못하는 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며 지나치게 엄하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3.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처럼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하여서이다. 그것은 가장 멀리 있는 장소와 세대의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말세를 만난" 자들에게도 경고가 되도록(고전 16:11)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말로 선포하는 일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일도 유용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록된 것은 남기 때문이다.

Ⅱ. 이 불경스럽고 사악한 유다인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슬프다. 이사야가 그들의 특유한 모습을 그리려 했다면, 그들에 관해서 "이는 패역한(배신적인) 백성이라" (9절)고 써야 했다(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들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거나, 그들을 사실보다 더 악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실대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유다인들이 그 당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유일한 백성이었으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신했다.

1.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념과 언약을 배신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식이며, 자기들의 말, 곧 정당한 약속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것도 이행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언약하셨을 때는, 그들에 대해,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63:8)고 말씀하려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하려 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처음말과 반대의 말씀을 하시도록 만든다."

Ⅲ. 그들에게 내린 문책은 중하며, 그들에게 언도된 형은 매우 무섭다. 그들은 여기에서 두 가지 이유로 문책받는다. 그들은 운명에서 그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무서운 운명이다.

1. 그들은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일과 자기들에게 신실하게 행하는 일을 금했다.

(1) 이러한 그들의 죄가 묘사되어 있다(10, 11절). 그들은 그 예언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또는 적어도 그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예언자들을 매우 조롱하고 위협했으므로, 그들은 사실상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先見)하지 말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빛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히려 어두움을 사랑했다.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선견자가 있다는 것은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눈에 빼려고 온갖 힘을 다했다. 또한 그들 중에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었으나, 그들은 그 입을 막기 위해 온갖 일을 다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악한 방법으로 이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계 11:10). 선한 사역자들을 침묵하게 만들며 선한 가르침을 찬성하지 않는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 로 간주하고 칭해야 한다.

그들을 괴롭게 한 그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자.



[1]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말해 주었고 죄로 인한 그들의 비참함과 위험을 경고해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말을 해 주어야 했고, 그들의 죄에 대해 아첨하는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잘했다고 말해야 했고, 또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해로움이나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어떤 말이 아무리 올바르고 참되다 하더라도 그것이 듣기 좋은 것이 아니면,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그것이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좋은 의견과 일치하고 그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면 - 비록 그것이 매우 그릇되고 크게 속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 그들은 그 예언을 들으려했다. 속기를 원하는 자들은 속임을 당해야 마땅하다.

[2] 그 예언자들은 그들의 죄악된 일을 중단시켰고,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그 손에 들고 발람의 길을 막았던 천사처럼, 그들의 길을 방해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움 없이 일을 진행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큰 모욕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마음에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때에는 그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정로(正路)를 버리며 첩경(捷徑)에서 돌이키라. 너희가 우리의 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느냐?"

성실하게 훈계해 주는 자에게 방해하지 말 것을 명하는 자들은, 마음으로 그들을 해칠 일들을 가득 품는다.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대하 25:16)



[3] 예언자들은 계속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며, 얼마나 엄하게 죄인들을 벌하실 것인가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말을 들어 줄 수가 없다. 그 말의 내용이나 어법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진지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말하고자 할 때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로다 부르지 말라고 조건을 내세우려 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사악한 백성들의 대부분이 두려워하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즉 화이트(White)씨의 말대로 하면, 그 "공식적 서문" 으로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무서워하여 떠나지 않는 자들은 마땅히 그 죄 속에서 멸망할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2) 이것으로 인해 그들에게 언도된 판결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12, 13절에서 볼 수 있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자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셨다" 고 했다. 그들이 유달리 싫어하는 바로 그 하나님 칭호를 이사야가 사용하고 있다. 충성스러운 사역자들은 죄인들을 일깨우기에 적합한 이러한 표현은 - 아무리 죄인들이 싫어 할지라도 - 사용을 주저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참든 참지 않든 간에,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그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그 심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이 이 마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해 준 모든 말을 업신여겼거나, 아니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이심을 선언하는 그 말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을 업신여기어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들의 소망으로 삼아 그것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은혜를 입기보다는 압박과 허망을 믿으려 한다. 그들이 가진 재물과 그들이 사기와 폭력으로 얻은 힘을 또는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뜻을 위배하여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택한 사악한 방법으로 믿으려 한다.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의지하므로 쓰러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그들에게 임한 심판은 무엇인가?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 같이 되리라(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 너희가 의뢰하고 있는 이것이 모래 위에 지은 집같이 폭풍에 쓰러져 허물어질 때, 그것을 지은 자도 몰살될 것이다. 너희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사실이 너희가 의뢰하고 있는 그밖의 모든 것들을 불쑥 나온 담같이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어떤 무게가 조금만 가해져도 무너져 버리거나 또는 자체의 무게로 인해 쉽게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들이 이것으로써 스스로에게 초래하는 멸망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첫째, 갑작스런 멸망이다. 그것이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지리라." 그들이 그런 일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놀라게 되리라. 그리고 그들이 그것에 대한 준비나 대비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파멸이 될 것이다.

둘째, 완전한 멸망, 즉 보편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이 되리라. "너희와 너희가 의지했던 모든 것이 토기장이의 진흙같이 연약하게 될(29:16)뿐만 아니라,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파쇄될 것이다. 철장을 가지신 자가 너희 믿던 것을 깨뜨리실 것이며(시 2:9), 아낌없이, 그 어느 부분을 보존하거나 남겨 놓으려는 생각없이 파쇄하실 것이다. 토기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단 깨어지고 나면, 던져버려지거나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 중에는 적은 불이나 물을 담을 수 있는 조각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물과 불은 우리가 매우 필요로 하고 있는 두 가지의 것으로서, 가난한 백성들은 대개 그것을 깨어진 그릇 조각에다 얻어 온다. 또한 그것이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시 62:3) 될 뿐만 아니라 아무 것에도 쓸 수 없고 고쳐 질 수도 없는 깨어진 잔이나 유리조각처럼 될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은혜로운 지시 사항 - 그들 자신을 튼튼케 하고 안전케 할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안정시키고 편안케 하는 방법 - 을 무시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 했던 것이다(15-17절).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하나님께서 구원과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보자. 그들을 알고 계셨고 또한 그들에게 적합한 것을 알고 계셨고, 그들의 행복을 원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처방을 주셨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추천되고 있다.

[1] 모든 재앙의 화에서 구원되고, 그 속에 있는 유일한 악 곧 악의 시험으로부터 보호받고 그 저주를 면하게 되기를 원하는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한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우리의 안식처이신 그분 안에서 휴식해야 한다. 빗나갔던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의무의 길에 정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길이다.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이 계획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만족한 상태로 휴식하라.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너희 안전을 기대할 수 있다. 너희가 돌이켜(너희 마음과 생활을 철저히 개혁하여) 안연히 처하여야(너희 영혼을 완전히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그를 신뢰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다."

[2]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행할 수 있고 우리에게 부과된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얻고자 하는가? 그것은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얻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곧 그의 능력과 선하심을 의지함으로써, 우리 마음을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조용함을 가지고 묵상에 잠기면서, 거칠고도 격렬한 모든 감정을 누르고 마음의 평정을 지켜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행할 수 있으며, 그 백성에게 가장 훌륭한 것을 행하시리라는 거룩한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거룩한 용기를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난관에 부딪치든지 평안과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게 된다.

(2) 이러한 처방에 대해 그들은 멸시를 보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가 아무리 자기들에게 유익한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자기의 치료자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들은 마땅히 병으로 죽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 원수가 된다.

그들은 지시된 그 방법을 시도해 보려 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너희가 이르기를 아니라(16절),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겠노라. 우리가 말을 타고 도망하며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우리가 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황급히 여기저기로 가 보리라 하였도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기들의 유익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헤립이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모두 점령했을 때, 그 패역한 자식들은 조용히 앉아서 - 하나님께서 이전에 결국 그들을 위해 훌륭히 행하셨던 것처럼 - 이제도 행하실 것을 참을성 있게 기대하라는 권고를 받고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빨리 도망하려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3) 이것으로 인해 그들에게 언도된 형을 보자. 그들의 죄는 그들의 형벌이 될 것이다. "너희는 도망하고 싶어한다. 고로 너희가 도망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전 속력을 낼 것이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개들은 빨리 달아나는 자를 쫓아가며 짖는다. 정복자 앗수르 군대는 가만히 앉아있는 자들을 보호해 주었으나, 도망하는 자들은 추격했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을 구원하리라 바라던 바로 그 계획이 마땅히 그들의 멸망이 되었다. 죄책이 큰 자는 큰 고통을 당했다.

17절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



[1] 그들이 쉽게 잘리울 것이다. 그들은 도망침에 따라서 두려움으로 인해 점점 사기가 꺾일 것이므로, 한 명의 대적이 그들 천 명을 격파시킬 것이며, 다섯 며이 한 군대를 도망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아버리지 않는 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신 32:30).

[2] 그들의 대다수가 잘리움을 당할 것이며, 단지 여기 저기에 한 사람씩 호젓한 장소에 홀로 피신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산꼭대기의 깃대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죄악의 과정을 밟지 말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신뢰를 버리라는 경고를 위한 구경거리로 남게 된다.

 

30:9 없음.

 

30:1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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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8

약속 (이사야 30:18-26)

앞 문단의 끝말("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으리라")을 혹자는 그들 중 남은 자는 긍휼의 기념으로서 보존되리라는 약속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이 재항 후에 좋은 시대가 올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이 문단의 첫 말을 대조법으로 보아.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예언자는 애굽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라는 것을 보여 준 후, 여기에서는 조용히 앉아 하나님만을 의지한 자들은 그 안위함을 얻으리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곤경의 시기에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요, 악인들은 잘되지 못하리라" 고 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Ⅰ. 하나님은 남은 자들에게 은혜로우실 것이며,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선의 근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면, 우리는 우리가 고통을 당했던 그 기간 만한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1. 그들을 위해 저장해 둔 긍휼이 매우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 "그가 은혜를 베풀려고 기다리시리라(18절). 그는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와 그의 얼굴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며 그리고서 너희를 긍휼로 맞아 주실 준비를 하실 것이다. 그는 가장 적합하고 좋은 때에, 즉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가장 좋을 때에, 너희에게 가장 기쁜 놀라움을 줄 수 있게 될 때에 그것을 행하기 위해 기다리실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은총을 가지고 너희를 따를 것이며,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실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너희를 건지시기 위해 스스로 분발하시고 일어나실 것이다. 평소 이상의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너희를 위해 나타나시기 위해 그 성소에서 일어나실 것이다(슥 2:13). 그리고 이처럼 그가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즉 그가 자기 이름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그가 그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목적이다."

(3) "그가" 기도에 응답하시어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19절). 이것은 그의 친절을 갑절의 친절로 만든다.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매우 위급한 때의 너의 곤고한 소리 - 매우 열렬한 너의 기도 소리를 인하여 그가 네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그가 들으신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첫 마디에 그가 네가 응답하시며, 내가 여기 있노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정말 은혜로우시다.

세부적으로 말하면,



[1] 재산의 소유권을 침해 받았던 자들은 다시 자신을 조용히 즐기게 될 것이다. 그 위험이 끝나면, "백성들은" 이전처럼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재앙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2] 온통 눈물 가운데 있었던 자들은 기뻐할 이유를 갖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성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거기에서 그들의 눈물을 씻기기에 충분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2. 이것은 두 가지 큰 진리 위에 근거하고 있다.

(1)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의 섭리의 모든 시여(施輿) 속에서 지혜로우며 정의로우시고, 그의 말씀에 진실되시고, 그의 백성에게 온유하시다. 그가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신다면, 그것은 "공의(심판)로" 행하는 것이다(렘 10:24). 곧 그들의 형편을 고려하여 적당하고 지혜롭게 행하신다. 우리는 공의로운 사람에게는 우리 자신을 안심하고 위탁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길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2) 그러므로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 기도와 함께 그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그를 기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곤궁에 헤어나오기 위해 어떤 간접적인 방법을 쓰면서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미리 손을 쓰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 자신의 방법으로 나타나 주시기를 참을성 있게 기대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그에게 자기들의 사정을 아뢰는 자들은 진실로 행복하다.

Ⅱ. 그들에게는 은혜의 방편들이 다시는 부족하지 않으리라(20, 21절).

1. 그들을 위한 이 구원이 있은 후에도 그들이 곤경과 고통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정되어 있다. 그들이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 리라는 것이 앞에서 약속되었으나(19절),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 곧 죄수의 음식물(왕상 22:27)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거칠고 초라한 음식을 그들에게 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한 가지 고통이 끝났을 때, 또 다른 고통이 언제 올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고, 눈물을 제하기에 충분한 그런 위안을 받을 수도 있으나, 역시 환난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실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현재하는 것을 가지고 좋고 싫은 것을 판단하지 말기로 하자.

2. 그들의 눈이 그들의 "스승의 볼" 것이 가정되어 있다. 즉 그들이 성실한 스승을 얻을 것이며, 그를 존경하게 될 것이고, 이전처럼 그를 경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그 때에, 그들은 환란의 떡과 고생의 떡을 더욱 달게 받을지도 모른다. 옛 청교도들 중에는 "흑빵과 복음이 있으면 진수성찬이다" 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었다. 양식의 기근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근만큼 중한 심판은 아니다(암 8:11, 12).

그들의 스승들은 구석으로 몰려 있었던(아마도 아하스의 통치 기간 중에는 안전을 위해 부득이 피신해야 했을 것이다) 것으로 보이나,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다. Veritas non quoerit angulos - 즉 진리는 숨을 구석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의 스승은 때로 피난처를 위해 구석으로 몰려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곧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게 되고(계 12:6), 예언자들이 "오십 인씩 굴에 숨겨질" 때(왕상 18:4), 교회는 일이 잘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승들을 그 구석에서 다시 부르시어 그들을 엄숙한 집회석에 복직시키실 시기를 발견하실 것이다. 따라서 "회당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스승을 다 주목하여 보게 될" 것이다(눅 4:20). 그리고 흑암에서 나온 빛과 사망에서 나온 생명처럼, 그들이 얼마동안 속박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회복은 더욱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이 신실한 스승들이 구석진 곳에서 돌아오게 되고, 특히 그들이 "다시는 숨겨지지 아니하리라" 는 약속이 주어지게 된 것은 지극히 복된 구원의 사건이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능히 달콤하게 할 수 있는 큰 위로를 준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3. 그들이 공직의 혜택뿐만 아니라 사적이며 개별적인 경고와 충고를 받는 특전도 얻으리라는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21절).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리리라. 나그네가 길을 잘못 드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것처럼, 너를 부르는 말소리가 들릴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어디에서 이 말소리가 올 것인가? - "네 뒤에서 이다." 즉 너는 보지 못하나 너를 보고 있는 자에게서 올 것이다. "네 눈이 네 스승을 본다. 그러나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스승이니, 곧 네 자신의 양심이다. 이제 그 양심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일깨워져 그 직책을 다하게 될 것이다."

(2) 무슨 말인가?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네가 의혹 가운데 있을 때, 양심이 너희를 의무의 길로 향하게 할 것이다. 너희가 무딘 상태에서 빈들거리고 있을 때, 양심이 너를 그 길로 행하도록 촉구할 것이다." 하나님은 증인없이 일을 행하시지 않으셨듯이, 또한 우리에게 우리의 길을 보여 주는 지침도 없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는 않으셨다.

(3) 이 말은 적절한 때에 들려질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우편으로나 좌편으로 치우실 때"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갈대길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밟아 다져진 길로서 매우 곧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른 길로 착각하기가 쉽다. 좌편과 우편에는 과오가 있으며, 각 편의 미덕에는 극단적인 면이 있다. 유혹자는 우리를 곁길로 유인하기에 바쁘다. 그 때에, 충성된 사역자나 친구의 특별한 조언에 의해 또는 양심의 저지와 하나님의 성령의 저항에 의해 우리가 옳은 길에 있게 되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방지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4) 이 말의 성과를 보자. "그것은 말하여질 뿐만 아니라, 네 귀가 그것을 들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네가 무관히 여겼던(욥 33:14) 반면에, 이제는 네가 이 은밀한 속삭임을 주의하여 듣고 순종하는 귀로들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뿐만 아니라 들을 귀를 주신다면, 은혜의 방편들뿐만 아니라 그 방편을 선하게 사용하는 마음을 주신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매우 큰 은혜를 베푸셨다고 말해야 하고, 또 그가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긍휼을 저장해 두셨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Ⅲ. 그들은 그들의 우상 숭배에서 치료될 것이다. 우상에서 떠나게 될 것이며, 다시는 그것과 화합하지 않을 것이다(22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역사하실 구원은 그만을 섬기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무라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환난이 우상 숭배로 인해 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상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 환난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역시 그들이 그들의 스승을 보고 그들 뒤에서 들려온 말소리를 들은 좋은 결과이다. 이것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누린 은혜의 방편들로 인해서 보다 나은 자들, 곧 그들이 가장 사랑하던 죄와 결별한 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다음 사항을 고찰해 보자.

1. 이전에 배신의 날에, 그들은 그들의 우상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행했는가?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에 미쳐서" (렘 50:38), "지나치게 좋아한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조각한 우상에게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 이 있었다. 금에는 채색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은 거기에 덮개와 장식물을 또 올렸다. 그들은 우상을 존귀하게 만드는 일에 조금도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2. 그들은 이제 그들의 우상에 대해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얼마나 지혜롭게 미쳤는가? 이제 회개의 날에는, 우상에게 대해 거룩한 분노를 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우상을 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파손시켰고, 파손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럽혔다. 그들은 그 모양을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든 금과 은이 아무리 귀중한 것이고 또 개조하여 좋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을지라도 경건한 분노를 품고 던져버렸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것에 대한 존경심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신상에게 입혀졌던 값진 옷은, 그것을 만진 자들을 "저녁까지 부정하게" 만들었던(레 15:23) 더러운 옷처럼 여기고 던져 버렸다.

진실로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죄가 매우 증오스러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들은 죄를 몹시 싫어하고, 또 그래서 그들 자신을 몹시 싫어한다. 그들은 죄를 가장 적합한 장소인 거름더미, 아니 십자가에 던져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을 십자가에 못박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그들의 부르짖음은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게 Abi hinc in malam rcm - 즉 여기서 나가라 하고 말한다. 그들은 더 이상 그것을 끌어들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비록 한쪽 눈이나 한쪽 손만 남게 될지라도, 죄를 범할 수 있는 모든 기회와 죄의 유혹을 될 수 있는 한 멀리하였다. 그리하여 그 죄에 대해 에브라임처럼(호 14:8),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있으리요" 하고 말하게까지 되었다. 아마도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 산헤립의 군대로부터 구원되자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것을 버린 많은 개인들에게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게 돌아왔을 때 유대 민족 전체에게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그 후로는 우상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 영적인 우상 숭배에서 떠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으로 돌아오는 영혼의 회심에서 날마다 성취되고 있다.

주께 연합한 자는 모든 죄를 버리고, 그 죄에 대해 "여기서 나가라" 고 말해야 한다.

Ⅳ.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풍성히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스승을 주시고, 그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기 시작하는 "그 때에 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 더하실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때 "그 때에 땅은 그 소산을 내고,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시 67:5, 6). 따라서 그 말씀도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네가 네 우상을 버리게 될 때, 너의 씨앗에 주께서 비를 주실 것이다" (23절).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의무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다.

1. 하나님은 네 씨앗에 비를 주실 것이다. 비가 요구되는 때에 필요한 양의 비를 내리시어, 네가 뿌린 씨앗을 적셔 주실 것이다. 사람의 근면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가 지금 이 생애에서 향유하는 행복과 어떻게 잘 일치하고 있는가를 주시하라. "네가 땅에 뿌릴 것이다." 즉 그것은 네 임무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네 씨앗에 비를 주실 것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임무이다. 영적인 열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 수고해야 하며,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야 한다.

2. 땅의 소산은 풍성하고 좋을 것이며, 최상의 품질의 것이 되리라. 그것은 "살찌고 살찔" 것이며, 매우 살찌고 좋을 것이다. 그것은 "살찌고 풍성할" 것이며(우리 성경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 한글도 동일) 품질도 좋고 풍부할 것이다. 너의 땅이 참으로 가나안 땅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땅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에 의해 산헤립이 격파된 후에는 더욱 현저히 비옥해졌다(37:30). 하나님은 황폐로 인한 그들의 손상을 이렇게 복귀해 주시려 했다.

3. 경작지뿐만 아니라 목초지까지도 놀랄 만큼 비옥하게 될 것이다. "너의 가축이 광할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다" 라고 했다. 초장에 있는 가축들은 충분한 자리를 얻을 것이며, 땅을 일구는 일을 하기 때문에 더 잘 먹여야 했던 소와 어린 나귀들도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다." 곡물도 여느 때처럼 겨채로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육지창으로 까불어" 사람도 먹을 수 있는 훌륭하고 깨끗한 곡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 짐승들도 그 땅의 풍요를 함께 나누게 된다. 그것은 합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의 죄가 땅에 가져온 그 저주의 고통 때문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불모지였던 산꼭대기도 하늘의 비로 매우 촉촉해질 것이므로,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개울과 시냇물이 생길 것이다(25절). 그리고 천사에 의해 앗수르 사람들의 진영에서 일어날 "큰 살륙하는 날" 에 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기 위해 세웠던 "망대" 와 포곽이 또한 "무너질"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은 그 사건에 대한 편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군대가 진멸된 바로 그 때 즈음에 그 땅에는 놀라운 긍휼의 비가 내렸을 것이다.

Ⅴ. 이 모든 것의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별한 위안과 기쁨을 줄 것이다(26절). 빛이 증가될 것이다. 즉, 지식이 증가되거나(그 예언들이 성취되면 그들은 그것을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니면 오히려 환희가 증가될 것이다. 의인들을 위해 뿌려진 기쁨의 빛이 이제 큰 소득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달빛은 햇빛같이" 찬란하여 강하겠고, "햇빛은" 비례적으로 증가하여 "일곱 날의 빛과 같을" 것이다. 사람마다 평소보다 한결 더 즐겁게 될 것이고, 더욱 기쁜 모습으로 다닐 것이다. 앗수르 군대가 패망할 때 즈음에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기쁨의 봄소식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신다." 즉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도록 그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 침입으로 인해 그들에게 가해진 상처를 고치시고 그들의 모든 손실을 보상해 주신다. 그들이 처했던 큰 환난, 그들의 절망, 그리고 갑작스러운 구원은 그들의 기쁨을 보다 크게 해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복음이 세상의 흑암 가운데 앉아있는 자들에게 임한 빛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부적당한 것은 아니다. 복음은, 햇빛이 달빛을 능가하듯이, 구약의 빛을 훨씬 능가했고, 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그 상처를 싸맬"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30:19 없음.

 

30:20 없음.

 

30:21 없음.

 

30:22 없음.

 

30:23 없음.

 

30:24 없음.

 

30:25 없음.

 

30:26 없음.

 

30:27

앗수르에 대한 심판 (이사야 30:27-33)

앗수르 군대의 멸망에 대한 이 무서운 예언은, 비록 그들에게는 하나의 경고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약속의 일부였다. 즉 앗수르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앗수르를 벌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또 막으시리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이제 곧 성취될 이 예언은 앞의 약속들을 비준해 주고 확증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앞에 나온 약속들은 세상 후일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하나님 전능자의 분노가 앗수르 사람들을 치려한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권능과 무서운 분노의 하나님으로 소개되어 있다(27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 - 앗수르 사람들이 마치 자기들은 하나님의 이름의 권역에서 벗어났고 또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해를 끼칠 수 없다는 듯 무시하고 멀리했던 그 이름이 "원방으로부터 온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사신은 하늘만큼 먼 곳으로부터 온다. 그는 "그(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는" 분노의 사신이다. 하나님의 "입술" 은 랍사게의 모독으로 인해 "분노로 찼다."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열방의 신들과 비교했던 것이다. "그(하나님)의 혀는 삼키는 불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교만한 원수들을 멸망시키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입술의 기운은 창일한 하수처럼 큰 힘을 내며, 그것으로써 악인을 죽이실 것이다(11:7). 사람들은 까닭이 없거나 자기가 무기력할 때는 원한을 꺼버리고 말듯,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도전하는 적에게는 싸움을 선포하시고,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실 것이다" (30절). 그는 "그의 진노에 분개" 곧 최고도의 진노를 보이실 것이다. 그것은 "삼키는 불꽃" 과 같으리니, 불꽃은 "번개" 나 흩어지게 하는 바람이나 "폭우와 우박" 으로써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불사른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무서운 현상으로서 자연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Ⅱ. 여호와의 이러한 분노는 무엇을 하는가? 사람들은 단지 위협하고 허풍을 떨 때 종종 화를 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들려 줄 때는 그것이 전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그 팔로 치실" 것이다(30절). 그의 섭리의 작용은 그의 말씀의 경고를 이룰 것이다. "주의 손이 높이 들리는 것을 보지 아니하려는" 자들도(26:11) 그 팔이 내리치는 것은 느낄 것이며, 그 무게가 무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7절). 그것이 너무 무거워서 그들은 그것을 감당해 내거나 대항할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그 밑에 깔려 짓이겨져야 한다. "누가 그의 노의 능력을 알리요?" 또한 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 누가 상상할 수 있으리요?

여기에 그의 진노가 할 일을 위해서 다음의 다섯 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1.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河水)" 가 있다. 이 물은 앗수르 군대의 몸집을 삼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단지 그 군대의 머리인 산헤립만은 물위로 나오게 되어, 이 강타를 피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의 신 니스롯 신당에서 변을 당하기 위해 남겨진 것뿐이다. 앗수르 군대는 지금까지 유다에게 "목에까지 미치는 창일한 하수" 가 되어 왔었다(8:7, 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분노의 입김이 유다가 그들에게 그렇게 되게 하실 것이다.

2. "멸하는(영문은 "헛된") 키" 가 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앗수르 군대를 구성하고 있던 그 열방들을 까부르려고 하신다(28절). 위대하신 하나님은 열방들을 까부르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의 앞에서는 작은 티끌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 중에 보존될 만한 어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흔들어 서로를 치게 하고, 그들을 크게 놀라게 하며, 마침내 모두 없어지게 하기 위해 그들을 까부르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흔드는 것은 멸하는(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는) 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겨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3. "자갈" 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 자갈을 먹이시어, 그들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 자신의 목적에 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신다(10:7). 하나님은 특히 산헤립을 갈고리로 코를 꿰며 자갈을 입에 먹이시리라고 말씀하셨다(37:29). 그것은 그들을 "미혹되게 하는 자갈이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이권을 필연코 멸망으로 이끌며, 그들이 흘리게 되는 그러한 방법으로 행하도록 만드는 자갈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그의 백성은 바른 길로 인도하시나(21절), 그의 대적들에게는 자갈을 먹이시어 멸망으로 곤두박질 치게 하신다.

4. "막대기와 몽둥이," 그리고 "여호와의 목소리" 까지 있다. 그 목소리는 막대기와 몽둥이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의 말씀이다. 그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다" (31절).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둥이가 되어 그 백성들을 쳤다(10:5). 그것은 일시적인 막대기였다. 그러나 "기초가 잡힌(" 예정하신") 몸둥이" 가 앗수를 칠 것이다. 그 몽둥이가 앗수르를 끊임없이 칠 것이며, 그에게 자국을 남길 정도로 세게 쳐서, 치명상을 줄 것이다. 그것은 기초를 가지고 있는 몽둥이다. 즉 대적의 당연한 응보와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에 기초하고 있는 막대기이다. 그것은 작정된 소멸이다(10:23). 그러므로 그것을 피하거나 그 권역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것은 앗수르 사람이 발견되는 모든 지역에 있을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그 위에 더하시며," 그것으로 하여금 계속 머물러 있게 하실 것이다(32절). 이것이 하나님을 계속 적대시하는 자들이 받는 비참상이다. "여호와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문다."

5. 그들을 위해 "설립되었고 예비된 도벳" 이 있다(33절). 예루살렘에 인접해 있는 한 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도벳" 이라 불렀다. 앗수르 군대가 그 골짜기에 진을 쳤던 것으로 추정되며, 거기에서 그들은 그 멸망시키는 천사에 의해 살륙당했다.

히스기야는 "근래에 그리고 어제부터 (문자 그대로), 그것을 설립하였다." 즉 혹자의 말대로 히스기야는 거기에 세워졌던 그 신상들을 제거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불태움으로써, 그 대적들의 시체를 두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앗수르 왕을 위하여(즉 그의 군대를 위하여) 예비되었고." 그들 모두를 태울 연료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유황으로 인해서 불이 계속 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갑자기 그리고 효과적으로 태워질 것이다. 여호와의 입김과 말씀과 분노가 앗수르에 대해서는 그런 불과 같기 때문이다.

이 예언자는 앞의 약속들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의 은총과 위로에 대한 약속들이 살짝 들여놓았다. 이제는 또한 산헤립의 군대의 멸망에 대한 경고 속에다가 회개하지 않는 모든 죄인들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멸망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구주는 힌놈 골짜기를 암시하면서, 저주받은 자가 앞으로 당할 비참상을 "게헨나" 라 부르시고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사실을 그 참상에 적용하는 것을 어느 정도 지지해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최후의 비극을 종종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마귀와 그의 종들을 위해, 그 가장 큰 죄인, 가장 교만한 자를 위해, 그리고 자기가 말하거나 행하는 것으로 인해 문책당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해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는 왕들을 위해서도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불경건한 자의 세상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고 넓다. 거기에는 불과 많은 나무가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이며 죄인들은 그들 자신을 태우는 연료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호흡" (그의 노의 능력)이 이들을 사르며," 그것을 영원히 불타게 할 것이다(66:24 참조). 그러므로 "두려워하여, 저를 범하지 말라."

Ⅲ. 이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기쁨을 주게 된다. 앗수르 멸망은 곧 예루살렘의 승리이다(29절). "너희가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다." 곧 "밤중에 여호와의 전에" 서있는 자들이 노래하듯이 찬미의 시를 읊을 것이며, "밤에 찬송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영광돌리듯 그에게 찬송을 드릴 것이다. 그것은 헛된 쾌락의 노래가 아니라 거룩한 노래이다. 즉 거룩한 절기를 장중한 종교적 방식으로 지킬 때에 부르는 그런 노래이다. 교회의 원수들이 패망할 때의 우리의 기쁨은 거룩한 기쁨이어야 한다. "저를 불며(예언자의 생도들도 예언할 때 이것을 사용했다. 삼상 10:5)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송축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아니, 하나님의 보복이 앗수르 사람에게 임하는 곳마다, 앗수르 사람들은 슬퍼해 주는 사람도 없이 쓰러질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이웃들이 "소고와 수금을 가지고" 그들의 몰락에 참례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쫓아 버리시듯 그 "떨림의 전투에서" (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 그들과 싸우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기뻐할 것이다(32절). "악인이 망할 때에 성읍이 외친다" 고 했다.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처럼 무례하게 하나님께 도전하고 온 인류를 짓밟던 자들의 멸망은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을 특별히 만족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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