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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무엘을 부르심(사무엘 상 3:1-10)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시기 위해 아래와 같은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

1. 사무엘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 비록 어린애였지만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 (1절). 이것이 엘리의 아들들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그들의 죄가 더욱 악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반역하였지마는 사무엘은 여호와를 잘 섬겼다. 그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무시하였지마는 사무엘은 이를 엄수하였다.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그의 감독을 받으며, 그의 지시에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다. 사무엘이 그들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바른 일로 행하였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이러한 준비가 있기에 하나님은 그를 높이고자 하신 것이다. 그는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곧 이어 더욱 큰 일이 맡겨졌다. 젊은이들능 겸손하며 또 부지런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야 그는 확실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훌륭하게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다.

2. 그 당시는 예언자의 활동이 매우 희귀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것이 사무엘 자신에게 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거니와, 이스라엘에게는 큰 은혜가 되었다. "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고 한다. 지금이나 그 때나 하나님의 사람은 특별한 일을 위한 심부름군으로 부름을 받는다(2:27 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문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볼 수 있는, 생각하는 예언자는 없었다. 예언자들의 활동이 희귀 하였기에 그 참다운 가치를 아는 자들은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더욱 귀한 것이다.

"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이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성막에서 횡행하던 그 숱한 불신앙과 부정이 온 나라를 멸망케 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함으로 예언의 영을 불러 가셨다가, 이제 보다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기 위해 그러한 처사를 돌이키사 충실한 예언자를 먼저 일으키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신 방법은 매우 특수한 방법이시었다. 그것은 매우 흔치 않은 방법이시었다.

Ⅰ. 엘리는 물러가 있었다. 사무엘은 엘리의 침대곁에서 그를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성전의 예배에 참석하였던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방으로 물러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2절).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워 있었다" 고 한다. 엘리는 일찌기 자리에 누웠다. 왜냐하면 이제는 일을 잘 할 수가 없고 쉬 피로를 느꼈기에 편하기만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는 자기 처소에 쳐박혀 있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자행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일찍 물러가고자 하였는지 모른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그 고통은 그의 아들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왔을 것이다.

Ⅱ. 사무엘은 밤에 그 노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엘리의 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려고 하였다. 아마 엘리가 잠이 못들면 그를 위해 책을 읽어 드리려고 하였는지 모른다. 엘리는 사무엘이 그의 말에 순종을 잘하기 때문에 자기집 식구 가운데 누구보다도 이 사무엘에게 이런 일을 맡겼을 것이다. 엘리에게는 그의 아들들이 그에게 큰 슬픔이 되었지만 이 어린 부하가 기쁨이 되었다. 비록 자녀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변에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채 꺼지지 아니 하였을 때에 자리에 누웠다" (3절). 아마 사무엘은 지성소와 매우 가까운 곳에 누웠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한 가운데 등불은 결코 꺼지는 일은 없지만) 곁가지에 있는 등불들이 꺼지기 전에 자리에 눕고자 한 것을 보아서 그 시각이 한 밤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각까지 사무엘은 책을 읽거나, 기도하거나 아니면 성전 안을 청소하며 다음 날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때에서야 자리에 눕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열심히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다.

Ⅲ.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러나 그는 엘리가 부른 것인줄 알고 그에게로 달려갔다(4,5절). 사무엘의 마음은 (다윗의 경우와 같이. 시 63:6) 잘 정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 께서 그를 부르실 때에 즉시 깨어 일어났다. 그러나 가까이 있던 엘리는 그 음성을 듣지 못했다. 아마 어떤 특별한 방법의 부르심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볼 만한 점이 있다.

1.엘리가 언제 부를지 몰라서 항상 대기하고 있는 사무엘의 근면함을 볼 수 있다. 그 음성이 엘리의 부르는 음성인 줄 알고 사무엘은 따뜻한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 보기 위해, 또는 어떤 불편한 일이 생기지나 않았는지 궁금히 여기면서 속히 엘리에게 달려갔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사무엘은 말했다. 부름을 받아서 윗 사람에게 온 모든 사환들은 이런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단지 노인들의 말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항상 그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분들을 잘 모셔야 한다.

2. 전능자의 환상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사무엘의 부족함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엘리의 부름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주 저지른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단지 목사들의 부름으로만 여기고 이에 응대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적으로만 생각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널리 울리건마는, 단지 지혜 있는 사람만이 여기 저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이해한다. 엘리는 그가 사무엘을 부르지 아니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를 괴롭혔다고 하여 꾸짖지 아니 하였으며, 그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 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가 꿈을 꾼 것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상냥하게 다시 가서 자리에 누으라고 말했다. 사무엘이 하여야 할 일이 없었다. 종이 주인의 부름에 응할 태세를 언제나 갖추고 있다면 주인 역시 종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남종이나 여종도 주인의 안식을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가서 누웠다." 하나님은 여러 사람들을 당신의 말씀으로 부르신다. 그 음성을 듣고 그들은 사무엘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음성을 곧 잊어 버리는 수가 많다. 그들은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모처럼의 결단이 허사가 되어 버린다.

Ⅳ. 똑 같은 부르심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같은 잘못도 두 번, 세 번 거듭되었다(6-9절).

1. 하나님은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으며" (6절), 또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셨다(8절).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고자 부르시는 그 부르심은 은혜를 주실 때까지, 다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은 자가 응답할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사무엘은 여전히 그것이 여호와의 부르심인 줄 알지 못했다(7절).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씌어진 말씀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종과 선지자들에게 여전히 "세미한 음성" 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것은 전혀 새롭고 낯선 방법이었다. 아마 그는 얼마 안 있으면 꿈이나 환상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오는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도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가진 것은 대부분 어렸을 때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다" 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난외의 주에 따라서 읽으면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그 때에 "사무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고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사무엘이 둔해 빠진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기의 의무를 잘 깨달을 수 있었다. 충실한 신앙인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증거도 때로는 이처럼 실패될 수 있다. 그리하여 위로가 되지 못한다. 또 죄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성령의 노력도 잘못 이해되어 그들을 회개시킬 기회를 잃어 버리는 수가 간혹 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욥 33:14).

3. 그 소리가 엘리의 목소리를 닮았으며 또 사무엘이 그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무엘은 두 번째도 그리고 세 번째도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것이 틀림없이 엘리의 목소리인줄 믿고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말했다. 비록 엘리의 목소리로 잘못 안 것이기는 해도, 사무엘이 부름을 받자 곧 달려 오는 것은 평소의 그의 책임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택하신다.

그러나 사무엘이 엘리에게로 몇 번씩이나 간 것은 그 나름대로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로써 엘리는 드디어 "여호와께서 이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게 되었다" (8절).



(1) 엘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셨을 때 그를 제쳐 놓고, 그의 앞에서 그를 섬기는 그의 종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고, 이는 매우 억울하고 분한 일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을 멸망 시키시고자 하시는 첫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었다. 그리고 엘리는 그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어린 아이를 통해서 주신 것을 깨닫고는 더욱 겸손해야만 했던 것이다. 엘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아야만 하였다.

(2) 이리하여 엘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또한 그는 사무엘에게 전달된 말씀의 진실성과 확실성을 충분히 믿게 되었을 것이며, 그것이 사무엘의 착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만한 마음은 도무지 가질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 메시지가 전달되기 전에도 이미 엘리는 하나님께서 뭔가 자기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사무엘이 바로 그것을 자기에게 전달해 주기까지는 엘리는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결코 하나님이 고용한 자의 약점과 실수도 무한한 지혜이신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 것이다.

Ⅴ. 드디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차비를 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서 나온 메시지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완벽한 예언자가 될 수 있도록 공개적 시상을 공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1. 엘리는 사무엘이 들은 음성이 분명 하나님의 음성인 줄을 알고, 그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잘 가르쳐 주었다(9절). 엘리는 이 일을 정직하게 행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기를 제쳐 놓고 직접 사무엘에게 갔다고 하는 것은 매우 망신스러운 일이지마는 엘리는 사무엘에게 어떻게 하여야 할는지를 잘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명예가 사무엘에게 간 것을 만일 엘리가 시기하였다면, 사무엘 자신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그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가서 잠을 자라고 명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는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였기에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엘리는 사무엘이 잘 될 수 있는 좋은 길을 그의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가졌다. 이처럼 노인들은 뒤따라 오는 젊은이들 때문에 그들의 장래가 암담해지고 가치가 떨어질는지 모른다고 하여도 인색하지 말고, 그들의 최선을 다해서 젊은이들의 진보를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뒤에 오는 이가 우리 보다 앞선다고 하여도 결코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요 1:30).

엘리는 사무엘에게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면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말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사무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저에게 말씀하옵소서, 지금 말씀하옵소서" 라고 말하여, 들을 준비를 하여야 하며,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여, "당신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말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를 갖추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시 85:8; 합 2: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설교하고자 하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빛과 능력 앞에 자기를 드러내고, 이에 순복하여야 한다. 즉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네 번째로 말씀하실 때는 전번 보다 약간 다른 식으로 사무엘을 부르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하나님은 사무엘의 이름을 불러 그를 부르셨지마는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임하여 서서" 부르셨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사무엘 앞에 이제 서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욥에게 하는 엘리바스의 말에 의하면" 그 형상을 분별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그의 "눈 앞에 있었다" 고 한다(욥 4:16). 사무엘은 그 때에 자기를 부르시는 분이 엘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알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계 1:12).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이름을 두 번씩이나 부르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기가 즐거우셨던 것 같았으며, 또는 이번에는 반드시 누가 그를 부르고 있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여 주시고자 하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한 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다" (시 62:11)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름으로 그를 아신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며(출 33:12), 그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시는 것은 매우 능력이 있고 효과가 많은 부르심이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라고 부르신 경우와 같이 현저하게 그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름을 불러 아브라함을 부르셨다(창 22:1).

3. 사무엘은 엘리의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의 입에는 제때에 좋은 말을 넣어 주며,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잘 알 수 있으며, 경건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훈련을 쌓을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말하여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라. 무지한 마음으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여야 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무엘이, 전번에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알았던 때와 같이 일어나 뛰어가지 않고 조용히 누워서 귀를 기울였다. 보다 조용하고, 보다 차분한 마음은 하늘의 일을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우리의 모든 소란한 생각과 감정을 진정시키고 모든 것이 조용히 마음 속에 가다듬어 지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사무엘은 말 한 마디를 빼 놓았다. 그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만 말했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지 아닌지 아직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하여간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한 대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와질 수 있었으며, 전능자의 이상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 (3절)에 일어났으며, 엘리가 멸망하여 우림과 둠밈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에게 신탁을 내리셨다. 이런경우를 두고 이스라엘의 지혜자들은 말하기를 "해는 뜨고, 해는 진다" (전 1:5)고 표현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한 의인의 태양이 지기 전에 또 다른 의인의 태양이 떠오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3:2 없음.

 

3:3 없음.

 

3:4 없음.

 

3:5 없음.

 

3:6 없음.

 

3:7 없음.

 

3:8 없음.

 

3:9 없음.

 

3:10 없음.

 

3:11

엘리와 그의 집에 내린 두 번째 위협(사무엘 상 3:11-18)

Ⅰ. 서론적인 이야기를 끝나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의 집에 관한 선언 을 말씀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그에게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얼마나 축복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여 주지 않으셨다. 젊은이들은 대개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무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심부름꾼으로 삼기 위해 찾아오셨다. 실은 이것이 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선포가 그 자신에게도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의 아들들이 엘리의 아들들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만큼 훌륭한 인물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 되었을 때 매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8:3).

그 선포의 내용은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전해 준것과 비교할 때 (2:27) 짧은 것이다. 사무엘이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길다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도 어린 아이들의 기억력을 지나치게 과신하여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전 장에서 선포한 경고를 재가하고 그 선언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는 것은 매우 슬픈 소식이요, 진노를 발하는 선포이다. 아마 그 경고를 듣고도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디어 이런 재차의 경고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면 할수록 이는 더욱 확실히 임할 것이며 그들의 멸망이 더욱 심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미 선포한 경고 가운데서 그 죄악과 이에 따른 형벌이 재 확인되었다.

1. 그 죄에 관해서 이는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 (13절)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이미 말한 바가 있고, 여러 번 그 자신의 양심이 자기 자신에게 이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죄악이며, "우리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노라" 고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죄악은 얼마나 큰 것이며, 우리가 받을 멸망 또한 역시 얼마나 극심할 것이 되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그 죄악은 "그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칭하되 그가 이를 금하지 않은 것이다." 또는 히브리어의 표현 그대로 "그들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한 것이다." 만일 엘리가 그의 노여움을 아들들에게 나타내 보였던들 그 정도까지 잘못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나무라기는 하였으되, 그들의 잘못에 대해 벌하지 아니 하였으며, 그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대제사장과 사사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인데도 그들의 잘못 사용되는 권력을 빼앗아 버리지 못하였다.

(1) 죄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자칭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타락시킨다(왜냐하면 각 사람은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될 때 시험을 받기 때문이다. 약 1:14).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려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들 뿐만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도들과 천사들로부터도 미움받는 존재가 된다. 죄악은 멸망을 자칭하는 것이며 인간을 가장 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였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사람들 앞에서 유린하였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 그들 스스로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저주를 자청한 셈이다.

(2) 다른 사람들의 죄를 중지시킬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중단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남들의 죄악에 스스로를 동참시킨 결과가 되며 따라서 책망을 함께 받아야 한다. 만일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여야 할" 칼을 가지고 있는 당국자가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2. 그 형벌에 관하여 "이는 내가 그의 집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고 하셨다(12,13절).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 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대해 두고두고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뜻이다. 그 자세한 형벌의 내용은 전에 이미 말씀되어진 바가 있다. 그것들이 여기서는 되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가 보충되었다.

(1) 그 형벌이 선포될 때 온 이스라엘이 무서움에 떨며 놀라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11절). "그것은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고 하셨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의 아들들이 쓰러질 때, 엘리의 목이 부러지고 엘리의 집이 흩어지리라는 소식을 듣게 될 때 크게 두려워하며 놀랄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이 어찌 그리 무서운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푸른 나무에 떨어지면 이를 당장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사람에게 내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시 119:120).

(2) 이 무서운 형벌의 결과가 반드시 실현될 것이며 끝까지 실현될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고 하셨다(12절). 그 일이 실현되기 시작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말씀되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어떤 용서를 빌 수 있는 기간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있다 시행되어도 드디어 그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완전히 끝맺을 것이며 그 집을 멸망시킬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3) 이 선포가 취소되거나 그 형벌의 시행이 지연되거나 경감 되리라는 희망을 전혀 주시지 않았다(14절).

[1] 하나님은 결코 그 선포를 취소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였다" 고 그 선포에 뒷받침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일이나 심판을 내리시는 일에 있어서 한 번 맹세하신 일은 결코 돌이키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은 결코 속죄물 같은 것 때문에 타협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고 하셨다. 그 죄가 속량받지 못하며, 그 형벌이 감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율법에 의한 희생의 제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으로써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는 죄의 삯인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신다.

Ⅱ. 이 선포가 엘리에게 전달되었다.

1. 사무엘은 그 선포를 조심스럽게 잘 간수하였다(15절).

(1)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워 있었다." 아마 사무엘은 자기가 들은 바를 여러 번 숙고하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양식을 받아 먹게 되면, 이를 우리 자신속에 한동안 간직하며, 잘 소화시키는 것이 좋다.

(2) 사무엘은 언제나 처럼 아침에 제일 먼저 성전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다." 다른 때에 그가 성전을 연다는 것은 어린 그에게 있어서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 아침에만은 그러한 일이 보잘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당시의 어떤 어린이들보다 그를 더 높여 주고 명예를 씌워 주셨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명예를 자랑하거나 우쭐대지 않았으며, 또 이런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따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욱 기쁘게 성전으로 올라가서, 성전의 문들을 열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나타내 보여 주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예를 들면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라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은 자로 여겨 주기를 원하신다. 사무엘은 놀라운 이상을 본 그 감격이 지나쳐서 일상적인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을 조심스럽게 자기 속에만 간직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정신을 쏟았다. 하나님과 가졌던 우리의 은밀한 사귐을 지붕 위에서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3) 사무엘은 자기가 본 바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였다. "만일 엘리가 그에게 화를 내고 그를 꾸짖을까 두려워 하였다면, 우리는 평상시에도 엘리가 그 자신의 악한 아들들에게는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지마는 이 착한 아이에게는 엄중하게 대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랬다면 이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이 이 착한 늙은이를 근심하게 하고 괴롬을 알게 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만일 사무엘이 이 소식을 듣자마자 금방 엘리에게로 달려갔다고 하면, 마치 그가 엘리의 집이 속히 망하기를 바라고, 자기 자신의 집이 엘리의 집이 멸망한 그 폐허 위에 속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그 이상의 내용을 밝히기를 주저 하였을 것이다. 선한 사람은 악한 소식 전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특별히 사무엘은 제자로서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 엘리에게 악한 소식 전하기를 싫어하였다.

2. 엘리가 그 이상의 내용을 상세히 물었다(16,17절). 엘리는 사무엘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를 불렀다. 아마 그의 침상 곁으로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보고 이를 말하라고 명령하였다. 엘리는 이를 알기 위해("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고 말함으로) 사무엘에게 간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움추려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만일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면서 위협적으로 명하기도 하였다. 엘리는 그 말씀이 그에게 관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예언일 것이라고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만큼 모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든 또는 해롭게 하는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익히 알기를 원한다.

"만일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한 엘리의 엄포는 충실치 못한 파수꾼에게 내려질 무서운 저주를 가리킨다고 보여진다. 만일 그들이 죄인들을 경고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법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탄핵하여야 할 그 진노와 저주를 그들 스스로가 받아야 한다.

3. 드디어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포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었다(18절). "사무엘이 세세히 말했다." 사무엘은 일단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금도 숨기지 아니 하였으며, 보다 좋게 꾸며서 말하지도 아니했고, 또는 그 예리한 날을 무디게 하거나 그럴 듯이 도금을 해서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가 받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도 이처럼 말씀에 충실하여야 한다.

4. 엘리는 신앙적으로 이를 받아 들였다. 엘리는 사무엘의 기억이 완전한가를 묻지 않았으며, 그에게 꼬치 꼬치 따지지 않았고, 그 선고가 틀림없는 것인가를 묻지 않았다. 그는 그 형벌이 지나친 것이며 또 감당키 어려운 것이라고, 가인처럼 불평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이에 순복하였고, 그의 죄과를 받아 들였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라고 엘리는 말했다.

엘리는 그 형벌이 다만 일시적인 것이며 그의 후손들에게 망신을 주고 가난하게 하는 것으로만 이해하였고, 그의 후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고 기꺼이 순복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집안의 과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하나님께서 결코 돌이키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그 형벌이 취소되도록 중재 기도를 드리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엘리는 이와 상당히 비슷한 경우에 아론이 취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내맡겼다. 그때 아론은 "잠잠하였다" (레 10:3).



(1) 그의 짧은 말 가운데는 진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시다. 그가 이 심판을 내리셨다. 그의 몽둥이에 대해서는 항거할 수 없고, 그의 선고에는 예외가 없다. 그는 반드시 그 심판을 실현하실 것이며, 그의 힘을 대항할 수가 없고, 그의 정의에 대해서는 도저히 규탄할 수가 없으며, 그의 주권은 쟁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여호와시다.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며 그분은 그의 피조물에 대해 조금도 잘못된 일을 행하시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행하지 않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또 조금도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잘못 이상을 물으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2)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다.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나는 그분의 처사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다. 그의 하시는 방법은 의로우시며,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그분에게 죄를 범하였으니만큼 여호와의 노여움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아야 하며, 결코 우리의 조물주와 대항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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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로 세움 받은 사무엘(사무엘 상 3:19-21)

이처럼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상을 잘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가 보다 더 성장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명예로운 기사가 여기에 실려 있다.

Ⅰ. 하나님은 사무엘의 명예를 높여 주셨다. 사무엘에게 은혜를 끼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당신 자신의 일을 수행하시며 이를 빛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사무엘이 자랐다" (19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의 지혜와 은총이 성장한다. 우리의 성장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1. 하나님은 자신을 사무엘에게 더욱 많이 나타내심으로 그의 명예를 높여 주셨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 주신 말씀의 선포를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다시 사무엘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셨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21절). 은혜롭게도 하나님은 자기를 바르게 받아 들이는 사람들에게 거듭거듭 자기를 나타내신다.

2.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신 당신 자신의 말씀들이 그대로 실현되게 하심으로 써 사무엘의 명예를 높여 주셨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19절). 선지자로서 사무엘이 한 말은 진실한 것으로 나타났고, 제 때에 실현되었다. 아마 몇 가지 사무엘의 예언이 확실히 진실한 것으로 증명된 바가, 그 후 얼마 안가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의 사명에 대해 인식을 바르게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종의 말을 응하게 하시며, 그의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신다" (사 44:26).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현 시키신다.

Ⅱ. 이스라엘이 그의 명예를 높여 주었다. 그들은 모두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받은 것을" 알았으며 이를 시인 하였다(20절).

1. 그는 유명해졌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실로에 온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주목하여 보았으며, 그를 존경하였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그에 관해 서로 말을 많이 주고 받았다. 어렸을 때의 경건한 생활은 젊은이의 명예를 크게 높여주며 그들의 소문을 매우 좋게 만들어 준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여 주신다.

2. 사무엘은 사람들을 위해 매우 소용 있는 인간이 되었으며, 그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때를 맞추어 선한 사람이된 그 사람은 곧이어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의 확고한 사명과, 백성들로부터 받은 그의 확고한 소문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빛으로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늙은 엘리가 사라지게 되자, 젊은 사무엘이 세우심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위한 증인이 없이 홀로 계시거나, 그의 교회를 위한 인도자를 없애거나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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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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